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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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담담하나 감동적인 이야기. 자꾸 울컥울컥하게 만드는 따뜻한 이야기.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라는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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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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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유석의 <판사유감>을 읽고 너무나 좋았더랬다. 조근조근 법정의 일을 써내려가는 그의 말법이 권위적이지 않아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래서 그의 신작을 보자마자 냉큼 집어들었다. 사전지식 없이 무턱대고 구입하면서도 당연히 저번과 같은 에세이겠지 했었다. 그런데 펼쳐보니 이게 웬 걸?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다. 신문에 연재하던 법정의 일을 사생활 침해라는 명목하에 소설로 구성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나니  나름 이해가 되면서도 현실을 그대로 말할 수 없는 지금의 세태가 생각나 입맛이 씁쓸하다.

 

  여튼 소설이라는 장르에 도전한 판사님의 필력은 역시 대단했다. 얼마나 오랜 동안 글을 읽고 써왔는지 그 내공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등장 인물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설 속 주인공은 생동감 있었고 덕분에 그들이 딛고 있는 곳이 허공이 아니라 현실 인 듯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현실이라 믿기지 않는 이유는 상식이 더이상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작금의 상황 때문이겠지? 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 말이다.

 

p99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대인관계 면에서는, 특히 이성에 대해서는 미성숙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결국 이성을 대등한 존재로 존중하면서 관계를 형성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 같아요. 유혹이란 대등한 존재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행위예요. 상하관계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멋진 유혹자가 될 수 있을 리가요.

 

남자와 여자가, 황인종과 백인종이, 상사와 부하 직원이 모두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이라고 외치면서도 누군가는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권력을 휘둘렀고, 누군가는 바다에 수장되어도 침묵해야 했다. 이 구절을 읽고 나서 그 모든 이유가 미성숙 때문이었구나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멋진 유혹자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는 대등하게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한 것이었다. 서로를 같은 눈높이로 볼 줄 아는 능력은 당연히 얻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도...

 

p122

임 판사는 젊고 뛰어난 사람이니 앞으로도 빛날 기회가 무궁무진합니다. 성 부장 같은 사람에게도 빛날 기회를 양보하면 안 될까요. 조직에는 성 부장 같은 사람도 필요합니다. 천재는 아니지만, 평생 성실하게 노력하는 성취 동기가 강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어야죠.”

 

소설을 쓰는 작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입장도 이해하게 되는구나 느꼈던 부분이다. 조직의 필요를 위해서는 정의가 아님에도 눈감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 임 판사의 공적을 낚아챈 성 부장을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고 그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수석부장의 말에 나는 끝내 납득할 수 없었다. 누구의 기준에서 불쌍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열심히 해도 엘리트를 따라갈 수 없는 성 부장은 진정 약자일까? 그를 배려해 주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절망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우리가 가 보지 않은 길과 우리가 볼 수 없는 결말 속에 얼마나 많은 잘못된 배려가 있는 것인지... 무섭기만 하다.

 

p189

이길보라 감독은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로 삶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다큐멘터리 속의 그녀는 자기 자신과 동생이 장애인의 자식이기 때문에 비장애인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착한 모범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자랐다고 고백한다. 한 여판사는 이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으며,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이 있고, 그건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영화 감독 이야기.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욱 모범생으로 살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

"부모가 저 모양이니까 자식이라도"라는 말은 사실은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는 배려의 말일 테다. 너무나 가혹하게도 그 마저 없으면 소수자들은, 문유석 판사가 말하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울한 평행 우주에 정착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가난한 임 판사에게 부유한 친구가 내밀었던 철없는 선의가 비수가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한번도 목격한 적 없는 마이너리그에 속한 사람들, 삶에서 권리라는 것을 한번도 누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권리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으려면 그들이 권리라는 말을 알아야 한다는 슬픈 현실. 그리고 준비가 된 그들을 대등한 관계로 바라볼 줄 아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 속에서도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만한 따뜻한 이야기가 있어 조금 숨을 쉬어 본다.

p85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언론에 나오는 거창한 사건들, 튀는 일들뿐이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대다수의 일하는 이들은 화려하지 않고 튀지도 않는 일들을 묵묵히 반복하고 있다. 그러기에 세상은 호들갑스러운 탄식과 성급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묵묵히 굴러간다.

 

<어른없는 사회>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가 말했다. 지진이 난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발치에 놓인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이라고, 세상 전부를 단번에 바꾸는 일은 힘들다. 그때 누구라도 자신의 앞에 놓인 유리조각부터 차근차근 치우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저쪽에서도 누군가 유리조각을 치우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세상에 그렇게 많은 어른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몇몇은 반드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가 욕하는 사람들 뒤에는 여전히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는다면 우린 암흑만을 보아야 한다. 바닷물을 썩지 않게 만드는 것은 3%의 소금이라던가? 3%의 힘을 무시하지 말고, 3%가 30%가 되도록 묵묵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절실한 때이다.

 

p193

박 판사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박 판사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오 부장은 말을 이었다.

박 판사님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어서 누구보다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남의 상처를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줄 아니까요. 그저, 조금만 마음을 쉬게 해주세요. 자신의 상처에 튼튼한 새살이 돋아날 시간만 허락하세요.”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판사가 되었다며,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슬며시 눈물이 나왔다. 그에게 오 부장은 말한다. 상처입은 만큼 상대방의 상처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래야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고... 무엇이든 지킬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희망임이 분명하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부모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우린 또 다른 것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처가 있다고 모두가 망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자신을 보듬고, 상처없는 사람은 상처없는 사람대로 상처입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배려와 공감이 절실한 때이다. 이 글 덕분에 참 많은 생각과 함께 많은 결심을 했다. 그래서 이 책에, 이 글의 저자에게 감사하다.  

그래서 이 책은?

좋았다.

그래도 난 인심 야박하게도 별 하나는 빼련다. 왜냐고? 왜냐 하면, 난 문유석 판사님이 옆에서 조근조근 들려주는 법정의 이야기가 더 그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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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라는 감정은 무엇일까?

 

방금 '황경신'이 쓴 <초콜릿 도서관>이란 책을 덮었다. 그녀의 글에 천사들의 회의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은 '인간의 감정에서 질투를 제거할 것인가'라는 안건을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다수결이 아니라 모두의 동의를 구해야만 해결되는 천사들의 해법. 참으로 평화적이기에 지난한 싸움이 아닐 수 없다. 다수결이란 폭력을 제쳐두고 모두의 합의라는, 도달할 수 없는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만 해도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 천사적인(?) 방법이지 싶다. 그런데 반전은 인간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인간의 질투를 논할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또 한 명의 천사가 인간계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로 돌아온 천사가 한 명도 없다는...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질투는 나의 힘?

 

질투란 참으로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갈 힘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죽을 용기를 주기도 한다. 절망할 힘과 희망을 가질 기회를 주는 질투를 도대체 뭐라고 정의내려야 할까? 질투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내가 그 수많은 질투의 얼굴을 겪었기 때문이겠지. 난 참 많은 것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했었다. 어렸을 때 기억이 사뭇 흐리긴 하지만, 뭔가를 부단히 부러워하고, 부러워한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나는 성장했던 것 같다.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새로운 것 없이 뛰놀 때는 딱히 무언가를 부러워할 일도, 창피해 할 일도 없었는데 다른 동네를 보거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부러워도 하고, 부끄러워도 하며, 자랑스러워도 하고 창피해도 하면서 질투라는 감정을 맛본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질적이고 고급스러운 세계에 대한 감상. 나도 저걸 갖고 싶다거나 저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

 

내가 기억하고 있던 최초의 질투는 엄마 친구 딸에 대한 것이었다. 요즘과 달리 마당 있는 한옥집이 일반적일 때 그 아이는 아파트라는 곳에 살고 있었고, 한 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자던 그때에 그 아이는 자신만의 방에 놓인 침대에서 잠을 잤고, 주말마다 엄마 손 잡고 사람들로 북적대는 목욕탕에서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때를 밀던 그때 그 아이는 개인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거품 가득한 욕조는 아니었지만 괜히 고급스럽고 여유러워 보이던 곳이었다. 우리 엄마한테도 없던 화장대가 있던 그 아이의 방. 그래서 난 나보다 어린 그 아이 집에 시간이 날 때마다 놀러갔었고, 그 집 근처의 회사에 다니고 있던 아버지의 퇴근 시간에 맞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돌아왔었다. 그 집을 뒤로 하고 돌아올 때면 꼭 꿈에서 깨어나는 듯 서글프고 허망한 마음이 들곤 해서 나를 부르는 아빠의 전화소리가 원망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아이를 부러워하던 어린 나의 마음이 아빠에게도 전해졌겠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괜스레 아빠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분명 나의 부러움은 죄가 아닌데 왠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아빠에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을 과장되게 늘어놓았고, 아빠는 유독 나의 말에 대꾸가 없었다.

출발부터가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당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다고, 원하는 것은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주입받던 시절이었다.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렸을 때는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생활했었다. 원하는 것은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달콤한 주문은 나를 희망차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철이라는 게 들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삶은 평등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찬란한 봄이 오던 그 시간, 차갑던 겨울을 맞이하던 그 시간 나도 모르게 알게 된 것이 있다.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제주도라면 겨울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서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이 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봄을 먼저 맞이한 제주도에게 겨울도 먼저 선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봄을 먼저 맞이한 그곳에 겨울은 더 늦게 다가오곤 했다. 자연에서조차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평등은 모두가 똑같은 것이 아니라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시작한 사람들에게 출발점을 논할 때 쓰는 참으로 졸렬한 단어였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결국 평등을 놓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중시해야 한다는 소리일 테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일까? 

결국 하고픈 말이 없다는 소리일 테지. 평등은 없다. 질투는 힘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는 소리를 하고픈 건데 그래서 결론을 어찌 내야할지. 나에게 질투는?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왜? 좀더 나아지기 위해서.

몰라몰라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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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3 세트 - 전3권 (본책 3권 + 가이드북)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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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읽히는 힘이 있어요. 이걸 보고 나니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다시 한 번 찾아봐야지 라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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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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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메인에 마구 뜨기 시작한 작가.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책값들 사이로 나를 손짓하는 알라딘굿즈.

책을 사면 따라오는 사은품들이 오히려 책을 흔들기 시작한 즈음 알라딘굿즈를 획득하기 위해 그동안 눈팅하던 상품을 마구 담기 시작했다. 일단 한 권 사서 읽어보리라. 그리고 앞으로 그것을 가질지 빌릴지 고민하리라 하고 담은 책.

 

결론은? 일단 당분간은 그의 작품을 빌려서 읽으리라 결심했다.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고픈 마음인 나에게 베스트셀러를 쓰겠다 맘 먹은 작가를 만나다니...

쉽게 읽히고 중간중간 공대생으로서의 그의 쉬운 설명이 나를 사로잡긴 했으나

시공간의 연속체에 대한 설명이 어딘지 너무 쉽게, 주변을 속아내고 이해하기 쉬운 뭔가로 둔갑한 듯한 느낌.

그건 나에겐 양날의 칼로 여겨졌다.

그런데 시류를 알기 위해 베스트셀러를 읽긴 해야 한다는 독자로서의 결심 때문에

난 '한국이 싫어서'라는 그의 장편소설을 다시 빌렸다.

이 말은 독자가 읽게 만드는 이야기를 쓰는 힘이 그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아니, 나란 독자에게 책을 사게끔 하는 힘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공간의 연속체 속에서 '우주의 알'이라는 존재는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보다 끝이 더 좋다. 뭔가 하고픈 굵직한 말을 담아두고 있는 듯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달까? 

 

하나 더, 책을 읽으면 늘 기억나는 구절과 부분이 나를 사로잡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

그가 신문기사나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기 때문일까?

그러고 나니 또 '강병융'의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떠오르려고 한다.

여튼 그는 나에게 무수한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만은 틀림없다.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한 페이지도 못쓰는 어설픈 독자가 부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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