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비가 옵니다,

사람들은 봄비라고 하는데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고 날은 춥기만 합니다.

비를 정의하는 것이 계절만은 아닐 텐데 지금은 모두들 봄비라고 합니다.

봄이 스르륵 가는 중이나 봄이 한창일 때면

소낙비, 는개비, 보슬비, 가랑비 등등으로 불릴 이름이 지금은 봄비 하나로 통일 됩니다.

아마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을 마구 말하고 싶은 마음에 봄비, 봄눈, 봄바람, 봄처녀, 봄나물, 봄기운이라고 마구 봄을 붙이나 봅니다. 그러고 나니 여름도 그런 이름에 들어가나 궁금해 집니다.

여름비. 글쎄요. 이건 어째 좀 이상해 보입니다. 여름은 그냥 장맛비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 여름은 어디에 붙어야 하나요. 여름 이불, 여름 옷, 여름 방학, 여름...

어째 봄보다 사람들이 홀대하는 기운이 두드러진다 싶습니다.

내친 김에 가을도 한 번 봅시다.

가을비, 가을바람. 가을걷이, 가을 달, 가을하늘, 가을... 제 언어의 한계인지 사람들의 상식이 요 정도인지도 궁금해지려 하네요.

그렇다면 그 춥고 스산한 겨울은?

겨울바람, 겨울산, 겨울외투, 겨울나무, 겨울비,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봄기운에 서린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여름이 오면 겨울을 그리고, 겨울이 오면 더운 여름을 그리는데 화끈한 겨울이나 여름과 달리 봄은 늘 사람들이 그리워 하고 보듬고 싶어하는 첫사랑 같은 존재인 모양입니다.

오는 듯 싶게 가버리고, 오겠지 기대하다 놓쳐버리고 마는.

출근길에 바라본 살픗한 앙상한 가지가 보송보송한 느낌이 든 이유는

가지 사이사이에 맺힌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꽃망울 때문일 텐데

가지 자체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듯 보여서

한꺼풀 봄이불이라도 두른 듯 괜히 따뜻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봄 때문일 테지요.

우리 모두에게 전해지는 봄기운이 나에게도 스르륵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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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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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펑펑 눈이 온 날이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간밤에 내린 눈이라서 아침에 그것을 바라본 나는, 오늘은 걸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살던 고향은 눈이 드물었는데 어찌하여 이곳은 눈이 징그럽게도 내린다. 징하게도 내린다. 예전엔 눈이 마냥 좋았는데, 이젠 눈이 싫어졌나 보다. 아니 사실은 눈을 여전히 좋아하는데 눈 때문에 벌어질 일 때문에 눈이 싫다고 말해버리는 내가 싫다. 여튼, 눈 덕분에 오래간 만에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다. 덕분에 밀쳐뒀던 이 책을 든다. 자동차 핸들을 놓은 덕분에 내가 얻게 될 이 많은 여유.

 

  그런데 세상에 좋은 일만은 없다고 했던가. 참다가, 참다가 책을 보며 내내 솟아오르는 눈물을 누르기가 힘들어졌다. 심장이 갈라져 벌어진 틈을 붙잡듯이 오른손을 왼쪽 가슴 언저리에 올려놓고 있었다는 작가의 말이 낯설지 않았다. 출근길에 벌건 눈을 해 가지고 줄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거리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당혹스러운 일인지...

 

  학교에서 배운 광주항쟁은 그냥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차가운 글자였다.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고, 책 속의 글자는 늘 그렇듯이, 특히 교과서에서 본 글자는 늘 그렇듯이 나와 무관한 글이었다. 대학시절,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속에 무수히 그려졌던 슬픈 학생 운동의 처참함도 그냥 슬프구나라고 생각하며, 가슴보다 머리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소년이 온다'라는 글을 읽고 있으니 이제껏 배웠던 5.18민주화 운동이 그냥 슬로건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나의 일로, 우리의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산가족의 상봉이, 삼풍백화점의 붕괴가, 세월호 사건이 모두 우리에게 일어난 일인데 나는 그걸 그냥 배우고 있구나 생각하니 슬퍼지려 한다. 우리가 배우는 그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건이 모두 한 사람의, 한 가족의, 한 이웃의 일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왜 몰랐을까. 고통을 줄이기 위해 누군가는 사건을 조각조각 이해한다는데 나는 사건을 조각조각 내기보다 너무 통으로 이해했던 듯 싶다. 그냥 그들이 나인 것을. 광주의 이야기도 이제 전설처럼 남으려 한다. 야속하기만 한 시간은 세월호도 이미 과거로 만들어 버렸다. 노란 리본의 물결이 넘실대던 그때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해지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더 많이 나왔나 보다.

 

  우리가 할 일은 잊지 말아야 하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고, 또 다른 슬픔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세상을 참혹하게 만드는 그들과 싸우는 일인 동시에 무심하고도 강력한 시간과 싸우는 일임을 이제 알겠다. 방금 내가 한 말도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려 한다. 그래서 글쟁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모양이다. 역사를 증언한다는 것, 시대를 노래한다는 것의 책무...

 

  도서정가제로 난리다. 어제 반값으로 팔던 책이 어느새 가격이 훌쩍 뛰어버렸다.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기도 겁이 난다. 그래도 읽어야 할 책이 있다.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해 볼 문제이니까. 그래서 훌쩍 거리면서도 '동호'가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이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본다. 잊지 말아야지. 그것부터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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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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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를 처분하는 팁을 얻을까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주석이 많이 달려 있어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일본이름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오는 걸 보니 늙기 시작한 듯. 빌려읽기를 잘 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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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춤추게 하라 - 당신과 내가 함께 바꿔야 할 교육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민들레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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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있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학교가 온실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이 됩니다. 학교를 서비스집단인양 교사와 학생을 공급자와 수요자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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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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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만 한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설가가 아닌 평론가의 글로 넘어가면서 권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고, 잊지말아야 할 문제이고, 깊이 새겨야 할 문제인 만큼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써 줄 수는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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