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강수돌 지음 / 지성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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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수돌은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농촌 이장이다. 농부가 대부분인 이장 중에 대학교수를 겸업으로 하는 이는 흔한 일이 아니다. 그가 이장이 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마을 앞에 초고층아파트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그가 동네에 알렸고 이를 감추는 동시에 허가에 필요한 주민들의 동의서를 조작한 이장의 비리가 드러났다. 이장은 자연히 물러났다. 당연히 재선거가 불가피했고 주민들은 마을을 아끼는 마음과 ‘똑똑한’ 그에게 이장을 맡기게 된 것이다. 그것이 2005년 이었다. 그는 올해 6월까지 임기를 성실히 마쳤다.(보통 2년인 임기를 고려하면 3번 연임한 것이다)




시골에 사는 교수라 하면 보통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게 된다.(그래서 이 책도 나왔을 것이다) 마을사람은 더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밝히면 동네에서 처음 보던 어른들도 “아, 위에 새로 집짓고 산다는 교수양반”한다는 것이다. 처음 그가 이장을 만났을 때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농사지으면서 사는 것이 최고라 맞장구쳤다 한다. 그런 이장이 돈을 앞세운 개발의 광풍 앞에서 문서를 위조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였다 한다. 허나 우리 주변에 흔한 모습이다. 그를 손가락질하기 전에 나를 다시 돌아봐야 할지 모를 일이다.




개발은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마을에 커다란 상흔만 남겨놓는다. 내가 시골로 들어오기 전에 인근 동네에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했다. 농사짓는 곳의 땅을 팔아서 골프장을 지으면 그곳을 터전으로 살던 사람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그들은 골프 치러오는 사람들의 왕래가 주변 서비스업의 활기를 가져올 것이고 지역에 지원하는 세금으로 생계에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감언이설이 실현된 경우는 거의 없다. 골프장을 짓는 이가 지역주민을 생각해서 짓겠나.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되지 않으라고, 건설 이후에도 거치적거리지 말라고 인심 쓰듯 하는 지원이 있을 뿐이다.




도시의 재개발이나 골프장건설, 경마장 건설, 카지노 건설 모두 시작단계에서 찬성과 반대로 편을 갈라서 사이좋던 이웃을 원수로 만들어 놓고 건설이후엔 주민들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정해진 수법이다. 언제 그 시설들이 지역민에게 풍성한 일자리라도 주던가. 농사짓던 노인들이 할일이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기껏 꽃 심고 풀 뽑고 하는 일들은 연속적이지 못하고 중간 브로커가 끼면 노동단가도 낮아서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개발을 반대하는 논리엔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땅과 하늘이 하는 일이고 이에 사람이 어우러져서 사는 것뿐이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자신의 삶과 연관해서 풀이하는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깃들어 사는 것’이라 한다.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위대한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별로 없다.




그에게서 받아먹기만 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대할 줄 모르는 태도다. 그래서 깃들어 산다는 말을 택했다고 한다.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자연의 순환과 지속가능함에 대한 철학을 몸으로 실천하고자 시골에 터전을 잡았다. 아이들 셋도 모두 그곳에서 키운다. 교육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내면과 인간성, 다양성을 자연에서 키워나가는 교육이다. 이것을 화학농교육과 유기농교육으로 비유한다. 유기농법이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자녀에 대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 충분한지를 핵심으로 삼는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자신의 내면적 욕구나 느낌에 솔직하게 반응하게 된다.




자신도 일류대학을 나와 교수를 하지만 이렇게 반문한다.




만약 자녀들이 ‘무조건’ 일류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물어 보자. 과연 일류 대학 나온 사람들 중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넘어 온 사회가 행복해지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는 이들은 도대체 몇 퍼센트나 될까? 나아가 우리나라를 망가뜨리는 사람들 중 일류대 출신의 많은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가? 대답이 뻔하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아이들이 무조건 일류대에 가기를 갈망하는가? 대답을 찾자면 두 가지다. 하나는 일류대 출신이 갖는 기득권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그걸 갈망하는 부모 자신이 가진 열등감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더 만족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직접 집짓기에 동참했다. 작은 귀틀집을 짓고 흙 속에서 산다. 이반 일리치를 인용한다.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이 우리에게 내면적 힘을 주지는 않는다. 이 물건들은 불구자의 목발 같은 것이다. 우리가 편의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더욱 커진다.”그의 말은 더 많이 큰 것을 가지고자 하는 이들, 마음과 몸과 생활 방식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일갈한다.




그가 추구하는 삶은 결국 ‘소박한 자연속의 삶’이다.




사람은 대개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첫째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해 줄 걸 하는 후회, 둘째, 인생을 좀 여유롭게 살 걸 하는 후회, 셋째,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걸 하는 후회가 바로 그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을 위해 아등바등 사는 사이에 평생이 다 흘러버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뿐인 이 소중한 인생을. 경쟁과 시기, 질투등에서 조 비껴서 내면을 성찰하고 보다 큰 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삶의 기쁨과 관계의 즐거움을 일상적으로 느끼며 날마다 작은 행복을 만들며 살아가는 인생, 그런 삶과 그렇게 사는 삶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겸손하고 건강하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전국 방방곡곡, 세계 구석구석마다 창조하는 일이야말로 간디와 장지오노의 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가 아닐까?




농촌의 삶은 국가가 버린 농업을 ‘새로보기’ 한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5%내외다. 나머지 75%는 외국에서 수입해 해결한다. 대단히 위험한 구조다. 그나마 자급률 중 90% 이상은 쌀농사이고, 그것도 100% 수입에 의준하는 석유를 이용해야 가능한 수치다. 따라서 석유 빼고 쌀빼고 보면 진짜 자급률은 5%밖에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농민을, 존중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스스로 먹고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정책자들이 되어야 한다.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아서 매분기 기록을 경신하는 대기업에 몰아주기위해 농업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시골생활을 총괄하는 일기다. 현재 학교에서<녹색평론>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마을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그가 과거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얻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골 흙집에서 살게 된 것은 시대흐름에 대한 ‘저항’이다. 몸소 실천하고 행동하는 지성의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 모순된 경제시스템과 그릇된 가치관에 대한 지적, 올바른 삶에 대한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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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현대의 지성 118
다케우치 요시미 지음, 서광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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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쓰는 역사 이야기.

 




쓰라린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슬퍼할 것 없어. 역사가 주는 교훈을 제대로 인식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로 삼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현실이 꼭 그렇게 보기좋게 나아가지만은 않지만 비틀대면서도 걸을 수 있는 것이 삶이라면 공동체의 그것이 곧 역사 아니겠니.




가장 아픈 기억을 떠올리자면 막 20세기를 열던 때지. 한일합방으로 이어지는 굴욕의 역사는 한 세기가 흐르고 두세대가 교체된 지금도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에게 적지 않은 견제심을 갖게 한단다. 올림픽, 월드컵 자국의 선수들이 활동하는 것을 가지고 국가의 자부심을 들먹이는 국민들을 보면 그냥 생긴 의식이 아니라 뿌리깊은 과거의 영향이다 라는 생각이야.




당시 한국은 러·일·미·독·영 등의 열강에게 휘둘려서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시기였어(지금도 그리 다르진 않아.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을 좀더 가지고 있으라고 국군 통수권자가 미국대통령에게 아양을 떨고 있잖아) 결국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은 일본이었지. 일본은 한국을 합방함으로써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다리’를 확보하게 된 거지. 일본군이 중국에 들락거리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지고 막 왕조에서 개혁을 꾀하는 세력달의 주도권다툼으로 외세에 제대로 대항하기는커녕 어떤 나라를 잡을까 눈치보는 위인들이 넘쳐났지.




그중에서 돋보이는 삶들이 있게 마련이야. 그런 사람들을 위인이라고 하지. 하지만 그 속은 알 수 없어. 역사는 역사를 쓰는 사람마다 틀린 시각을 가지거든 그래서 한권의 책을 읽고 그안에 푹 빠질 필요는 없어. 여럿의 관점을 잘 관찰하고 나의 주관으로 판단하는 것이 ‘나의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사설이 길었네. 사실 루쉰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었어. 교과서에 한번씩 등장하지 ‘아Q정전’이라는 소설로 유명하지. 그 외 몇 유명한 소설과 시, 그림들이 전해지고 있고 그가 쓴 글을 통해서 당시의 중국을 개혁하는 사상을 전파한 이로 기억되고 있어.




당시 중국 국내사정을 잠깐 언급해볼까.




19세기 말에는 한반도도 마찬가지였지만 봉건제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중국에서도 일고 있었어. 일종의 국가개혁운동으로서 ‘양무운동’이 그것이었지. 어느정도 성과가 있을만 할대 청일전쟁의 패배로 한계에 다르지. 역시 봉건적 청나라가 가진 한계라고 생각한 세력들이 “변법자강운동”을 벌여. 캉유웨이, 량치차오등이 광서제와 손잡고 한 개혁은 서태후에게 막히고 결국 이것도 100일 만에 막을 내리지.




그래도 과거제폐지와 대학설립 등은 신해혁명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지. 당시 전통 청군대는 약화되고 있고 이홍장의 신식군대가 커나가는데 ‘북양군’이라고 해. 그 뒤를 이은 위안스카이가 강화하고 각 지방 군사학교 세워 장교도 양성하는 등 힘을 쓰지. 위안스카이는 기억해두는 것이 좋아.




1900년을 갓 넘기는 시기였어. 해외유학생 중심으로 화홍회라는 조직이 생겨나고 상해 차이위안페이, 장빙린등이 광복회를 결성하는 등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었지. 결국 1905년에 단체들을 통합해 ‘중국동맹회’가 성립해. 유명한 쑨원 알지? 그양반께서 대표를 맏게 되는데 4대강령이 뭔지 알아?




“만주족 축출, 중화회복, 공화국창립, 토지 소유의균등”




짜잔, 급진적이지. 왜냐구. 모든 사람이 똑같이 토지를 나누어 가지는 것을 생각해봐. 지금 어디서 가능하겠어. 만주족 축출이야 당시 청나라가 만주족이 집권한것이니까 축출한다는 것이고 중화는 정권교체의 정당성을 위한 허울이지. 화이사상에서 나온것인데 오랑캐가 정권을 잡을때에도 중화회복을 내건다니까. (애초에 한족이 약하고 오랑캐인 오호족이 세상을 호령하던 때에 나온 말이니까)




아들, 공화국이 뭐야? 모른다고. 우리 헌법에도 나온 말인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민주는 알고 공화국은 모르지. 공화국은 공화제를 채택한 나라야. 공화제(共和制)는 공화주의의 정치 체제를 가리키며, 형식적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국가주권이 그 구성원에게 있는 정치 체제야. 기본적으로 입헌제이고, 이에 따라 법을 기반으로 구성원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차별 없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사회로 운영되는 정치 체제지.




어찌보면 민주와 서로 중첩되는 의미가 있지. 애초에 등장은 군주제에 반대해서 나온 것이야.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공산체제 등이 모두 공화국이 될 수 있다구. 우리가 북한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라 하쟎아.




참, 그래서 이러한 시기에 1911년 무창이라는 곳에서 우연히 충돌이 발단이 되어 혁명이 일어났어. 신군병사들이 주축이되어 순식간에 남부일대를 점령했지. 중심축이 없는 무조건적인 봉건반대가 이유였기 때문에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었지. 청나라 입장에서는 진압군이 필요했어. 망해가는 청군대로는 힘들었지. 위안스카이. 그가 등장해. 전권을 등에 업고 혁명군을 무력진압하지. 타격을 심하게 입은 혁명군입장에서는 협상을 제안하게돼.




쑨원이 총통직을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협상을 통해 청나라의 마지막황제 부의가 궁을 떠나게 되고 2,132년에 이르는 중국 황제의 역사는 점을 찍게 되지.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에 취임하게 되는 과정. 이것을 신해혁명이라고 해.




자, 다시 루쉰을 떠올려봐. 이런 급변하는 시대에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는 루쉰은 신해혁명에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외세가 워낙 강하고 국가기반을 다지기에 충분한 숙성기를 거치치 못한 어설픈 국가로서의 중화민국은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고 외국세력에 휘둘리고 국민들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핍박받고 이유없는 죽음을 맞기도 하는 시기야. 지식인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겠어 (요즘 같은 시대에도 답답함을 느끼는데 말이지) 그것을 글로 푸는 거지. 소설, 잡문, 시 등으로 말이지.




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때에 그가 남긴 글은 독특해. 요즘이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글을 써서 웬만큼 특이한 표현력이 아니면 주목받기 힘들지만 당시에 그의 글들은 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느끼는 이들에게 불을 당겼다고 할까.




여러분은 실제로 전투하는 사람이며, 혁명의 전사입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아직 문하게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학을 배워도 전쟁에는 슬모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군가 하나쯤 지을 정도이고, 잘하면 전투하는 짬짬이 휴식할 경우 등에 즐거움은 되겠지요. 더 격식을 차린 비유를 든다면 마치 버드나무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성장하여 짙은 그림자가 햇빛을 가로막게 되면 농부가 점심때 나무 아래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숨을 돌리는 것쯤은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중국의 오늘날의 사회 정세는 실제의 혁명 전쟁이 있을 뿐입니다. 한 수의 시는 쑨촨팡을 위협할 수 없지만, 한 발의 포탄은 쑨촨팡을 달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로 문학이 혁명에 대하여 위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문학은 일종의 여유의 산물이고, 한민족의 문화를 나타낸다는 것이 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의 느낌이 어때? 당시 상황을 상상하면서 읽어봐. 패망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허망함이 느껴질 정도지. 총을 들고 나가서 싸우는 이들이 없다면 혁명을 이루는 일조차 불가능하겠지만 이를 위해 지식인들의 후방 지원(일제시대때의 이광수처럼, 근대문학의 선구자로서 비교해보자면 재미있을 듯 하구나)의 역할을 결코 작게 보아서는 안돼. 총과 칼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펜’도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라구. 그러므로 위의 글은 다소 현실에 대한 ‘조롱’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긴, 저런 글조차 쓰기 힘든 상황이 오고야 말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져 버리는 것이지. 표현의 자유라는 것도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성숙된 나라에서나 보장이 가능한 것 아니겠니. 오늘날이라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야 억압된 상황속에서 용기있는 행동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겠어.




제작년의 오늘, 나는 여관에 숨었지만 그들은 형장으로 끌려갔다. 작년의 오늘, 나는 포성 속에서 영국 조계로 피신했지만 그들을 이미 어딘지도 모를 지하에 묻혀 있다. 금년 오늘, 나는 비로소 나의 집에 있고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고요하다. 내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나는 새삼스럽게 내가 좋은 친구를 잃었다는 것, 중국이 좋은 청년을 잃었다는 것을 통감하고 비분 속으로 침잠했지만, 뜻밖에도 여러 해 쌓인 버릇이 다시금 침잠의 밑바닥에서 머리를 쳐들고 이상의 글을 엮게 한 것이다.

써나가고 싶어도 현재의 중국에는 역시 쓸 장소가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 향자기의 <사구부>를 읽고 쓸쓸한데다 몇 줄에 불과한 부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끝을 맺는 것은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젊은이가 늙은이를 위해 기념을 적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요 30년동안 내가 목격한 것은 청년의 피뿐이었다. 그 층층이 쌓인 피가 나를 묻어, 나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이렇게 필담을 사용하여 몇 구절의 문장을 엮음으로써 간신히 진흙 속에 작은 구멍을 뚫어 거기서 간간이 헐떡일 뿐이다. 이것은 어떠한 세계일까. 밤은 길고, 길 또한 멀다. 나는 다 잊고 아무 말도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간 꼭 그들을 행각해내고, 다시금 그들에 관해서 이야기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망각을 위한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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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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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을까.




여행을 떠나볼까. 먹거리를 위한 여행.




내가 어제 먹은 갈비탕 한 그릇에서 출발한다. 갈비탕은 커다란 갈비한짝이 잘 우러난 부우연 육수에 담겨있고 그 위로 계란지단이 넓적하고 길쭉한 맵시를 노랗게 자랑하고 크게 썬 대파 몇 덩어리가 둥둥 떠서 향을 더하고 있다.




국물을 맛보니 약간의 후추와 간장으로 간이 되고 통마늘의 단맛, 참기름 약간의 고소함 그리고 짭짜름함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소금간이 더 되어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 좀 싱거운 듯 먹는 것이 좋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옆에 준비되어 나온 공기밥은 쌀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7분 도미 이상의 쌀로 지어졌다. 우선 갈비짝을 들어내어 뼈와 분리시켜서 적당한 크기로 가위질을 했다. 먹기 좋게 썰어진 고깃덩이가 둥둥 떠 있는 국물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갔다.




밥을 말고 먹으면서 생각해본다.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기껏 갈비탕의 주 재료인 갈비가 호주산이라는 것뿐이다. 밥이 어느 지방에서 언제, 어디에서 도정된 쌀인지 알 수는 없다. 혹시 미국에서 수입된 칼로스쌀로 지은 밥을 맛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갈비탕을 먹는 곳은 전남 영광읍내의 한 음식점이었다. 적당히 불려서 밥을 지어 놓으면 홍성에서 지은 유기농 쌀인지(비싸기 때문에 식당에서 쓸 가능성은 적다) 경기도 이천쌀인지 제주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쌀인지 알 수 없다.




밥은 그렇다 쳐도 갈비탕에 갈비만 들어가는 것은 아닐 터, 한 그릇의 갈비탕이 탄생하기 위해 들어가는 수많은 밑재료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가. 알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눈감는다. 어떤 재료가 어떻게 쓰였든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집에서 해먹는 요리의 경우 장을 보면서 생산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되는 것인지는 알기 힘들다. 기껏 유기농, 무농약 등의 등급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건 마치 가격차를 두기 위한 말장난 같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갈비탕을 먹기 전에 물었다. “돼지인가요. 소인가요?”




내 물음에 종업원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갈비탕하나 물냉면 하나요 하며 주문을 확인하고는 주방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돌아서버렸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비탕이 소갈비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꺼다. 나는 정말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며칠 전 소비자고발프로그램에서 미국산 소를 국내산으로 속여서 팔아온 수많은 음식점들의 행태를 시청하고 나서 생긴 편집증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돼지갈비로 갈비탕도 하나 하며 아들에게 물 컵을 건네며 나를 배재한 대화를 시작해버렸다. 호주산. 호주산이라고 하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육식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대량으로 사육되는 소, 닭, 돼지들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짧고 불행한 삶과 죽음의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다큐, 영화를 통해 시청한적이 분명이 있긴 했다) 충분히 입맛이 떨어졌다.




상상해본다. 마당 한쪽에서 닭장을 만들어 대여섯 마리의 닭을 키워 달걀을 얻고 송아지도 한 마리 돼지도 몇 마리 직접 기르는 것이다. 새끼를 낳으면 부모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내가, 우리가 먹을 고기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웩.




개를 기르고 나서는 개고기도 먹기 힘들다. 소를 기르면 소고기, 돼지를 기르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다. 닭을 기르면 어디서 어떻게 기르고 잡혀진 채 튀김옷과 양념을 듬뿍 쳐 바르고 종이박스에 곱게 싸여 온 ‘치킨’을 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점심에 먹은 갈비탕의 고기는 호주에서 왔다고 한다. 땅이 넓어서 너른 들에 풀어져서 맘껏 풀을 뜯고 운동을 위해 언덕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늘어지게 풀 위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그렇게 일년 넘게 살다가 도살장으로 향한다.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한 마리가 겨우 통과할 만한 통로로 이동하다가  벼락을 맞는다. 총처럼 생긴 해머를 정수리에 맞고 뻗으면 다리를 쇠사슬에 건다. 쇠사슬에 들어올려져 고개가 아래로 늘어지면 목 부위를 그어서 피를 뺀다. 기절한 채로 피가 다 빠지면 부위별로 잘려서 선별한다. 아참, 그 전에 내장을 빼내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칼질은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잘못해서 소화기의 내장을 건드리는 경우엔 냄새가 심한 액체를 뒤집어쓰게 되어 고기를 못 쓰게 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푸른 들이 아닌 똥들로 뒤덮인 집약적 농장에서 자란 소일 가능성이 더 크다. 효율을 최우선시 하는 자본주의의 축산업은 더 빠르고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가 먹지 못하는 뼈, 옥수수, 고기 등을 섞어서 사료로 먹이는 것을 권장한다. 그 덕택에 병이 나고 주저앉는 소들이 생겨났지만 이를 ‘약간의 부작용’으로 생각하는 현재의 생산자, 소비자들이 근본적으로 변심하지 않는 한 이러한 ‘부작용’은 점점 커질 것이 확실시된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동물, 식물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데에서 생겨난다. 전통적으로 축적해왔던 먹거리에 대한 지식은 최근 급속하게 변하는 음식문화에 대항할 힘을 잃은 듯 하다.  “지혜는 혼란과 불안으로 뒤바뀐 지점에 이르렀다.” 기본적인 일인 무엇을 먹을 것인가도 이제 전문가의 도움이 아니면 해내지 못하는 지경이다. 내가 먹는 음식들의 출처와 생육방식에 대해 알 수 없고 알기위해선 전문가나 관련 업계의 고위직을 알아야만 가능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패스트(Fast)푸드의 기만적인 문화에 맞서는 슬로(Slow)푸드 운동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는 때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지금 음식업을 장악한 산업적 음식과 유행하는 산업적 유기농을 넘어선 초유기농에 대한 경험, 원시시대의 대명사인 수렵과 채집문화에 대한 체험을 기술하고 있다. 그가 떠난 여행에 마음을 싣고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 진지하고도 집요한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최고의 장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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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넌 누구냐? - 색깔 있는 술, 막걸리의 모든 것
허시명 지음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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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술을 처음 마신 것은 아주 어렸을 때였다. 아마 두 세살때 였을수도 있다. 컵에 있는 술을 모르고 벌컥 마셨다가 해롱대다 쓰러져 잤다는 고모의 증언이다. 기억으로는 대여섯 살 즈음에 남겨놓은 맥주병을 따서 벌컥 마셔버리고 동생과 싸운 것이 기억난다. 모아놓은 양주샘플들을 비우고 몰래 보리차를 채워서 뚜껑을 잠가놓고 치시미를 떼던 일도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추억이 깊은 술은 산행 후 마시던 한 잔, 막걸리였다. 아버지는 항상 당신이 막걸리 심부름하다가 몰래 홀짝거리고 비틀거리며 집에 왔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는 기회가 되면 두 아들과 함께 술 마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이었다. 명절 때와 등산 후엔 두 아들과 술을 나누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셨고 나와 동생 또한 즐겼다.




어릴 때 아버지 친구 차를 끼어 타고 주말이면 산에 갔는데 초등학교 산에 올랐다 내려와서 파전에 동동주를 마시는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졌다. 막걸리는 포천의 이동막걸리가 가장 맛이 좋았다. 아니,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도 마실 때 마다 “최고”를 연발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맛이 아닌 듯 느껴지는데 취향이 변했던지 만드는 이들의 공정과 원료가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다.




2009년 히트상품에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막걸리. 보졸레누보에 대항한 막걸리누보가 당당히 이겼다는 신문의 기사를 접하고 작은 기대감이 생겼다. 점점 인기가 있어지면 소주나 맥주를 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막걸리도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최근까지 이어져온 막걸리열풍은 서울과 같은 도심에도 근사한 와인바와 같은 분위기의 말걸리바를 낳고, 전주 삼천동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말걸리 골목으로 급부상했다.




막걸리가 상하지 않는 겨울철엔 근동의 막걸리 주조장에서 말통으로 막걸리를 떼어다가 조금씩 마신다. 동네 이웃들과 나누어도 좋고 부부가 식사와 곁들여 한잔씩 마셔도 그만이다. 부드럽고 세지 않아서 여자들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은근하게 오르는 취기가 흥을 돋아 술자리의 즐거움을 경지에 오르게 한다. 많이 마셔야하는 맥주나 금방 취하는 소주와 다르게 풍부한 미감과 색감, 향을 지닌 전통주 막걸리.




흔히 탁주라 하기도 하는데 투명하지 않다는 뜻의 한자어이고 청주의 상대적 표현이다. 막걸리는 ‘막걸렀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막걸리라고 부르면 무방하며 동동주는 술을 빚을 때 거칠게 빚은 술을 뜻한다. 이때 쌀알이 동동 뜨기도 하기 때문에 동동주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막걸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누룩과 고두밥을 섞어서 물과 섞어서 발효를 시키면 술이 탄생한다. 누룩은 보통 밀로 만들며 쌀 소비를 위한 정부시책과 쌀100%의 표현에 맞추기 위해 쌀로도 만들기도 한다. 일본의 술이 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의 술이 가진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밀로 만드는 누룩의 유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쌀을 쪄서 고두밥을 만들고 이것을 누룩을 부셔서 섞어 치댄다. 풀처럼 곤죽이 되면 물과 섞어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키는 것이다. 이 일반적인 과정은 거의 같다. 술맛이 달라지는 것은 밑술인 누룩의 발효과정이나 환경의 차이, 고두밥 원료의 차이와 누룩과 비율, 물의 비율과 발효과정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막걸리는 식사를 대신할 만큼 풍부한 영양소가 가득하고, 많이 마셔도 살이 찌지 않는다. 첨가물에 따라 여러 약성을 띠게 된다. 콩, 오미자, 산수유, 오디 등을 첨가해서 다양한 맛과 색을 낼 수 있으며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술이 막걸리다.




오늘 막걸리를 한잔하기 전에 좀 더 우리 술에 대한 지식을 가진다면 술맛도 풍요로워 질것이 뻔하다. 안다는 것은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 말이다.




허시명의 <막걸리 넌 누구냐>는 전통과 현대의 필요가 만나 어떻게 조화되어 미래를 바라보는지 ‘우리 술’의 관점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더불어 각 장마다 풍부한 제조비법(?)이 소개되어 있어 흉내 내어 빚는 나만의 막걸리를 시도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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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행복
장혜민 지음 / 산호와진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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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말씀이 담겨있기는 하다. 좀 더 은밀하고 내면의 울림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덮는 것이 좋다. 책은 법정 본인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작가에 의한 '서평'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내용 전체를 깊이있게 보려고 해도 각 장마다 끊어지는 주제들을 머릿속에 오롯이 담기 힘들다. 그저 한장 한장 좋은 말씀을 담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다.




무소유가 절판되니 출판사의 상업적 기교가 극대화되어 출판된 책이라 봐도 좋다. 법정스님을 모욕하는 일이 아닐까? 무소유를 담아서 상업적 출판으로 잇는, 전형적인 '유행잡기'의 표본이라 할만 하다.




애초에 깊고 고요한 그분의 인생과 말씀을 담고 싶었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 책 저 책과 인터넷에서 조합한 그분과 관련한 자료의 조각들이 한권으로 묶였다고 보면된다.




무소유를 빌려 읽자. 그냥 그분의 정신이 오늘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에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알고 싶다면....




저자가 얼마동안의 기간동안 이 책을 준비햇는지는 모르나 그 분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모욕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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