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작은 오디오를 하나 샀다. 크기는 작지만, 소리가 꽤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오디오였다. 반신반의했는데 물건을 받아
시디를 넣고 돌려보니 생각보다 훌륭했다. 기대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이 작은 오디오 때문에 삶의 큰 즐거움이 하나 더 생겼다. 나는
좋은 오디오에 대한 욕심이 있다. 지금은 경제 여건상 이 정도 오디오를 살 수 있을 뿐이지만 능력이 된다면 나중에라도 꼭
어마어마한 음질의 오디오를 마련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자동차라든가 집이라든가 이런 것에 쏟는 욕심처럼 나는 오디오에 꼭
그런 욕심이 든다.
그런 오디오를 마련해서 책과 시디로 둘러싸인 방에 오디오를 설치해놓고 책과 음악 나, 이렇게 그
방 안에 머무는 것이다. 어떤 방해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은 오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에 그대로
온몸을 맡긴다.... 볼륨을 한없이 올려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그런 곳이라면 더없이 좋다.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어떤 책은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예전에 읽은 <스토너>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진 생각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사람에게서 구할 수 있는 기쁨이나 행복은 매우 가변적이고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가족, 연인, 친구, 배우자,
동료 등등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관계 안에서 기뻐하고 행복해 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변하기 쉽고 그 변화 때문에 관계는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나 행복감 또한 한결같을 수는
없다.
어쩌면 그렇기에 '스토너'가 더더욱 문학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자신의 고독한 삶을 위로받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문학에 자신의 삶을 바쳤기 때문에, 아니 꾸준하게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의미 있는 삶을 살다 간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그리고 그런 삶의 의미를 아는 이들의 눈에는 스토너가 그저
외롭고 고독하게 죽어간 가련한 인간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책이나 음악도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만든 이의
의도를 알고자 사람들은 끊임없이 애쓴다. 그렇지만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의 의도를 100% 정확하게 알기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사람
또한 나 아닌 타인을 100% 완벽하게 알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알고자,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뿐이지만 완벽한 이해나 앎은
관계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책이나 음악은 사람의 해석을 기다리고 환영한다. 비록 작가나 작곡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독자나 청자의 주관이 깊이 배인 해석일지라도 환영한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수록 작품이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있는 그대로 보아주길 바란다. 해석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고, 이해가 아닌 오해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는 늘
불협화음이 따를 수밖에 없다. 타인의 주관적 해석 때문에 사람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이런 까닭에 어떤 예술 작품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일보다도 한 사람을 받아들이고 알아가는 과정이, 사람과의 관계가 한층 어렵고 까다롭다. 그러나 그 공들임에
비해 쉽게 어긋나는 것 또한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사람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변하기 쉽고 제한적이며
불완전한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돌아보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사람과 함께 할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에는 창고처럼 쓰이는 뒤꼍이
있었다. 형제가 많아 온전한 내 방이 없던 나는 그 뒤꼍을 어느 곳보다 사랑했다. 여름이면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라디오(이종환, 김기덕,
배철수 같은)를 들으며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나는 친구가 많았던 적도 없었고, 많기를 바랐던 적도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그 시기에는 사람으로부터 즐거움을 얻기도 했지만,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곧 모두 지나갈 것임을. 쉽게 변해버릴 한없이 가벼운 것임을.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인간은 인간에게 좋은 존재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나 또한 분명 타인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인간은 타인을 해석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 받는다. 그렇기에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편이 낫다. 아니면 해석할 여지를 아예 주지 않던가. 그러나 이조차도 불가능하다. 사람은 꼭 가까운
사람만을 해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친구가 얼마 되지 않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그 숫자가 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친구를 늘이고 싶어서 마음이 다급하지도 않다. 그런데 묘하게도 좋은 책이나 음악을 만나는 일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고, 저 음악도 들어보고 싶고..... 어떤 이에게는 무척이나 외롭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이런 삶에 나는 아주 만족한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이 내게는 진리나 다름없다. 그 구석방에 좋은 오디오까지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과 딱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그래서 행복하다. 어린 시절, 그 안에선 한없이
평화로웠던 뒤꼍에서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