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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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얼른 읽고 중고로 팔아야지(책이 더 많이 풀리기 전에)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읽어갈수록,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책꽂이에 꽂아둔다. 내겐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이 책을 청춘이라 부를 나이에 읽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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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2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신간도 아니니 6개월 정도
더 기다렸다가 저는 중고로 구해서
읽어 볼까 합니다만.

잠자냥 2018-12-27 14: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판매가 많이 되고 있는 책이라 중고에 곧 많이 풀리지 않을까 싶어요.

- 2018-12-27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흐저와같으시네요... 저도 팔려고 플래그 붙이며 읽다가 밑줄좍좍 그으며 보다가.. 그래도 젠더부분은 아쉽다가 ㅋㅋㅋ 그러나 청춘이 아련하고 결말도 좋아서.. 책장에 꽂아두기로! 청춘에 읽기 좋단 말에 동의동의합니다 ^.^

잠자냥 2018-12-27 21:41   좋아요 1 | URL
네 말씀하신 부분은 정말 좀 아쉽지요. 남자 작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랄까. ㅎㅎㅎ그래도 그 부분 빼고는 괜찮았어요.

카알벨루치 2018-12-27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겠네요 중고온라인 금방다녀옴

잠자냥 2018-12-27 21:42   좋아요 1 | URL
와 벌써 중고서점에 나왔군요! 그걸 또 운좋게 잘 낚으셨네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8-12-27 21:47   좋아요 0 | URL
다녀오기만 했지요 헛수고였슴돠 ㅜㅜ

잠자냥 2018-12-27 21:53   좋아요 1 | URL
ㅎㅎ 저런~ 저처럼 팔려고 하다가 갖고 있기로 한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8-12-27 21:56   좋아요 0 | URL
6개월 기다리면 레삭매냐님한테 빼앗길 것 같은데...저분 보통 분이 아니라...

coolcat329 2018-12-28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신기하네요. 팔려고 하다가 갖고 있기로 했다...안 읽으려고 했는데 조금 관심이 가네요

잠자냥 2018-12-28 10:4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또 재미있는 게 헌책방에 나온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이야기인지라. ㅎㅎㅎ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이 순간에도 사랑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와 어떤 이를 행복하게 만들고, 또 어떤 이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랑을 말하는 이는 많아도, 그 사랑은 어딘가 비틀어져 보인다. 사랑불능의 시대. 지금 이 세계는 그런 곳이 아닐까. 연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빼앗는 일이 날마다 일어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혐오하고 증오한다. 결혼이 꼭 사랑의 증거는 아니지만, 결혼식 비율도 줄곧 최저치를 갱신한다. 이 땅에서 사랑은 점점 소멸해가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연애는 할지언정 사랑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이들이 이 책들을 읽는다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몽테를랑의 <소년들>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숱하게 책장에서 쏟아진다. 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의 규칙은 많이 사랑하기, 많이 포옹하기, 많이 기도하기일 정도이다. 거기에 충실하려는 듯이 알방세르주를 끔찍이도 사랑한다. 사랑불능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고작 어린 소년들의 사랑을 다룬 책을 처방한다니, 실망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러나 <소년들>의 사랑은 그 어떤 어른의 사랑보다도 순수하고 숭고하다. 그리고 뜨겁다. 세르주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에 알방은 그를 포기할 줄 안다. 오직 사랑하는 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걸음 물러날 줄 안다. 알방은 그전부터 세르주를 향한 생각과 욕심을 버리려고 했으며, 그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절히 기도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한다.

 

많은 연인들이 헤어지고도 그 사람을 포기하지 못해서, 미련을 거두지 못해서 상대를 괴롭힌다. 헤어지기 전부터 자신만의 고통과 괴로움에 사로잡혀, 그 욕심과 뒤틀린 욕망 때문에 이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열여섯 살 소년 알방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더 훌륭하게 만들고싶은 마음에 그 존재를 위해 자기 인생의 가장 귀한 보물을 희생할 줄 안다. 그런데도 그저 이 사랑을 고작 십대 소년들의 풋내기 사랑이라고 가볍게 볼 수 있을까.

 

이토록 숭고하게 희생정신이 빛나는 사랑의 모습 말고도 <소년들>에서는 사랑과 관련한 주옥같은 말들을 만날 수 있다. ‘애정은 무슨 선물꾸러미처럼 피에르에게 줄 걸 다시 가져가서 폴에게 주는, 그렇게 주문에 따라 옮길 수 있는 게 아니’(119)라는 말이나, ‘우리의 사랑은 얼굴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이 강렬함과 영속성, 그리고 자아에 대한 망각으로 어느 정도 절대적이 될 때, 그 사랑은 신의 사랑과 매우 가까워지고 피조물은 우리를 창조자에 이르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듯 느껴지지요.’(281) 이런 말들을 읽노라면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으며, 또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게 한다.

 

<소년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면, <세기아의 고백>은 이렇게 사랑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재능 넘치는 시인이자 낭만주의자였던 뮈세와 사랑의 여신 조르주 상드의 실제 사랑을 바탕으로 쓰인 이 작품에서 뮈세는 열정적이면서도 광기 어린 사랑을 한 편의 시처럼 절절히 고백한다. 뮈세의 페르소나인 옥타브는 첫사랑 여인의 배신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방황한다. 그러나 다시는 사랑이 없을 것만 같던 그의 인생에 또 한 번 사랑이 들이닥친다. 두 번째 연인 브리지트’. 어렵사리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순탄하지만은 않다. 첫사랑에 실패한 옥타브이기에, 그 사랑의 그림자가 쉽사리 걷어지지 않는다. 의심과 질투, 불안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첫사랑 연인을 완벽하게 믿었으나 그 신뢰가 깨져버리자 이제, 연인을 온전히 믿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행복 속에서도 질투와 의심이라는 망상이 그의 뇌리를 파고든다. 의심에 빠진 모든 사람들처럼 그 또한 감정과 생각을 따로 떼어놓고는 사실과 다투고, 의미 없는 말에 집착하면서 자기 사랑의 대상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심과 질투는 찬란했던 사랑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브리지트의 말처럼 사랑은 행복이거나 고통이다. ‘사랑이 행복이라면 사랑을 믿어야한다. 그러나 의심과 질투와 망상으로 깨져버린 이 사랑은 아무리 애정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더는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옥타브는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행복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신뢰로써 사랑하는 그 행복을. 브리지트의 저주와도 같은 예언처럼 아마도 그는 이제 영원히 누군가를 오롯이 믿고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저 눈에 보이고 손가락으로 만져지는 사랑만이 그에게 남겨지리라. 그런데, 이 모습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서로 연인이 되고, 연애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사랑과 닮았다. 연인을 완벽하게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세기아의 고백>아름답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꿈꾸며 오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이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인간에게 사랑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사랑은 어떠한지.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소년들>의 순수함과 <세기아의 고백>의 열정적인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아르세니예프가 리카를 처음 만난 날은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그날 그는 모든 것에 반한다. 땀 흘린 작은 소년에게까지…….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사랑의 시작은 항상 괜히 즐겁고 에테르에 취한 것과 비슷’(285)하므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결혼으로 하나의 결실을 본다. 그러나 결혼이 사랑의 끝이 아니기에, 오히려 또 다른 삶의 시작이기에 그 삶을 잘 가꾸지 못하면 사랑은, 그 새로운 삶은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얻은 뒤로는 한때 간절히 바랐던 열망을 쉽게 잊고는 자신만의 삶이 더 소중해지고 자유를 꿈꾼다. 그렇지 못한 다른 한 사람은 상대에게 원망 서린 한숨을 내쉬며 그의 삶에서 빠져나간다. 사랑을 계속 유지하기란 그토록 어렵다. 아르세니예프와 리카의 사랑도 그런 수순을 밟는다. ‘어리석은 희망과 꿈에 대한 환멸과 모욕이 극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 곁을 떠나는 것이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에서 사랑은 곧 삶이다. 사랑 없는 삶은 죽음이며,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함을 뜻한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했던 아르세니예프는 아침이슬이나 저녁놀, 고요한 어스름, 흰 눈, 끝없는 평원처럼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들을 사랑한다. 아름답지만 영원할 수 없는 것들을 유난히 사랑한다. 사라지기에 더 아름다울 것들을……. 아르세니예프는 말한다. ‘나는 나의 삶이나 다른 이들의 삶이 낮과 밤, 일과 휴식, 만남과 대화, 이따금 사건이라 불리는 기쁨과 불쾌함의 교차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이란 인상, 장면과 형상들의 무질서한 축적이고, 이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들만이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235). 사랑은 그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우리 마음속에 가장 강력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으리라. 그토록 순수하고, 그토록 뜨거우며, 또 그토록 깊고 향기 그윽한 사랑이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느냐고, 문학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그러나 알방과 세르주, 옥타브와 브리지트, 아르세니예프와 리카 세 쌍이 그리는 저마다 다른 사랑의 풍경은 모두 작가 자신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뒤늦은 회한이든 깨달음이든 읽는 이의 마음을 더없이 진솔하게 울린다.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먼저 생각하면서 사랑할 것, 사랑받기보다 사랑할 것,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 것, 그 사랑을 잘 가꾸어 나갈 것, 누군가의 마음을 얻은 일 자체가 끝이 아니므로. 그 사랑이 생활의 때가 묻어 조금씩 빛바래져가는 듯해도 그것을 그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영원함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랑은 퇴색한다하더라도 형태와 애정의 모양을 달리해서 삶에 여전히 머물 것이므로. 사랑불능의 시대를 넘길 지혜가 이 책들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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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다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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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다고 소설을 잘 쓰게 될 일은 없다. 이 책은 설터의 문학관이나 그가 읽은 책,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다만 설터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가 쓴 단편이나 장편의 탄생 배경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 보너스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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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24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메리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치버와 카버와 또 있죠? 잠자냥 덕에 알게된 작가들, 잠자냥님 글 덕에 제가 서재의 달인 같은 영예를 안았네요 감사드리고 잠자냥님도 축하드립니다 건강이 최고!

잠자냥 2018-12-24 18:17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제 덕분에 서재의 달인이 되셨다니요! 그런 말씀 마시고요~ ㅎㅎ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새해에도 가족과 함께 재미난 책 많이 읽으시고 좋은 글 계속 쓰세요!
 
[전자책]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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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글을 쓰는 법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만 그 말을 하기까지 너무 돌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라, 우리나라 현실이나 한국어와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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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 사운드를 사용한지 몇 달 지났다. 내가 전자책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기도 버거웠지만 무엇보다 전자책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은 조금 뜻밖이었다. 여름 밤, 불을 환하게 밝힌 채 창문을 열고 책을 읽노라면 제아무리 방충망이 있다하더라도 어디선가 온갖 벌레들이 날아 들어온다. 불을 끄고 책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전자책을 떠올렸다. 그래서 전자책리더기를 검색하다 알게 된 크레마 사운드는 작은 사이즈에 예쁘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자책과의 만남. 처음에는 기계만 사두고 잘 활용하지 못했다. 사둔 종이책을 읽기에도 바빴기 때문에 전자책리더기에 이렇다 할 콘텐츠를 담지도 못한 채 한 달이 흘렀다. 그러다가 문득 여행을 떠날 일이 있었는데, 아, 내게 전자책이 있었지! 하고 잊었던 존재를 기억해냈다. 그런데, 전자책을 구매하다가 알게 된 사실 중 하나, 사고 싶은 책이 드물구나! 콘텐츠가 빈약하다. 읽고 싶은 책 가운데 전자책으로 나온 것은 그리 많지 않고 나온다하더라도 몇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점 등등. 그래도 가끔 사고 싶은 책들이 있기는 하더라.

그리하여 나는 요즘 곧잘 전자책을 읽는다. 창을 열고 불을 끈 채 읽어보기도 했다. 방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벌레의 양은 확실히 줄었다. 어쩌면 여름이 다 지난 시점부터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할 때는 꽤 유용하다. 이런저런 책을 얇고 가벼운 기기 안에 쏙 담아서 갖고 다닐 수 있어 든든하다. 어떤 책을 읽다가 좀 지루하거나 여행지에서 읽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 금세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 된다. 비행기나 전철처럼 좁은 공간에서 읽기도 편하다. 한 손에 잡고 엄지로 톡톡 페이지를 넘기면 되니까.

그런데, 이토록 편한 기계에 생각지도 못한 난감한 일이 있을 줄이야. 아무리 읽어도 내가 얼마큼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또 얼마만큼 남았는지 쉽사리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더욱이, 나는 전자책을 읽을 때는 글자크기를 120% 정도 키워서 읽는다. 그러면 전체 쪽수는 그에 맞춰서 늘어난다. 종이책으로 500쪽인 책은 700쪽 이상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전자책을 읽을 때는 내가 지금 읽는 페이지가 전체 페이지 중 몇 쪽에 해당하는지 자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120/800, 321/783, 이런 식으로 읽다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때로는 목차까지 다시 확인해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책의 어느 부분에 내가 속해 있는지 안다는 것, 무의식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다는 게 독서에서 이토록 중요할 줄이야.

요즘 읽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이 책도 전자책으로 구매했다)에서 아, 하고 무릎을 치는 구절을 발견했다. 저자인 우치다 타츠루는 종이책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근거로 전자책은 ‘뭔가 재미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자책에는 도대체 무엇이 부족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한마디로 그것은 책이 지닌 두툼한 느낌이 없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페이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을 전자책의 단점으로 꼽은 것이다(이 구절이 이 책 몇 쪽에서 인용했는지 정확히 기입하고 싶지만 전자책으로는 그것도 애매하다). 그는 ‘남은 페이지를 모르면 책을 읽기 어렵’다고 까지 말한다. 과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책의 어느 부분을 읽고 있는가에 따라 언어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으리라.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몇 페이지가 남았는지는 책을 집어든 두 손바닥에 전해지는 책의 좌우 중량의 차이로 알 수 있습니다. 20페이지쯤 남았구나 싶으면 끝나기 전에 아직 하나 더 파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주의 깊게 페이지를 넘깁니다. 그때 불현듯 ‘끝’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20페이지쯤 남았다 싶을 때 뒤에 남은 18페이지가 신간 광고로 채워져 있다면 낙담하겠지요.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읽어버린 나’의 공동작업입니다. 아무리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수께끼를 풀기 어려워도,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추리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지막에 탐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을 때, ‘오 과연, 그런 것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다 읽은 나’를 상정하기 때문입니다. ‘다 읽고 난 나’가 보증인이 되어주기 때문에 ‘지금 읽는 것’이 가능합니다. (...) ‘읽고 있는 나’와 ‘다 읽은 나’는 모래밭 양쪽에서 굴을 파는 두 아이와 같습니다. 계속 파 들어가는 사이에 점점 맞은편에서 굴을 파는 상대방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얇은 모래벽이 무너지면 손과 손이 만나고 바람이 훅 통합니다. ‘아아 드디어 만났구나!’하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는다는 것은 그런 식으로 ‘내가 다 읽은 것을 기다린 나’와 다시 한 번 만나는 것입니다.

전자책의 독서에 깃든 곤란한 점은 ‘다 읽은 나’의 자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디에서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몇 페이지가 남았는지 모르니까요. (...) 물론 디지털 표시로 ‘몇 페이지 남았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우리는 페이지를 일일이 체크하면서 ‘이제 몇 페이지가 남았으니 읽는 방식을 바꾸어야겠군’ 하는 귀찮은 방식을 취하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손으로 받쳐 든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감촉이나 무게감, 손바닥 위의 균형 변화 같은 요소, 즉 주제의 측면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시그널에 반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읽기 방식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지나치게 섬새해서 책을 읽는 자신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 책을 읽을 때 가슴이 뛰는 느낌은 무의식중에 ‘쾌락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읽어버린 나’의 공동작업이라는 말과 ‘다 읽은 나’를 상정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인간은 책을 읽을 때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무게감, 손바닥 위의 균형 변화 같은 요소에 반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읽기 방식을 미세하게 조정한다는 점에도. 때마침 종이책으로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은 700쪽에 가까운 두께를 자랑한다. 모두 3부로 나뉘어 있어 1부, 2부, 3부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유추해보게 된다. 이쯤이면 이제 사건이 터져야 할 텐데, 마무리가 되어야 할 텐데 등등 머릿속으로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아름다움의 선>과 같은 책이 이럴진대 미스터리 장르는 오죽할까. 만일 추리소설을 전자책으로 읽는다면 책의 무게나 부피, 남은 쪽수 등을 헤아려 이야기의 ‘감’을 잡는 일이 어려워서 종이책으로 읽을 때와 확실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전자책으로 읽을 때는, 실제 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이나, 문학동네 세계문학, 민음사 세계문학, 대산세계문학, 현대문학단편선처럼 내가 자주 구매하고, 그 생김새를 익히 아는 책들은 전자책으로 구매하더라도 딱히 그 모양새가 궁금하지는 않다. 그런데 최근 구매한 전자책 가운데 커트 보니것,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이라 스트로버, <뒤에 올 여성들에게>, 다이앤 세터필드, <벨맨 앤드 블랙>과 같은 책들은 한 번도 그 실제 모양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산 책들이라 그 생김새가 무척 궁금하다. 이 책,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도 마찬가지이다. 조만간 서점에 가려고 하는데, 아마 이 책들부터 살펴볼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샅샅이.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는 이제 ‘제7강 계층적인 사회와 언어’를 읽을 차례다. 절반쯤 온 셈인가? 아닌가? ‘다 읽은 나’와 ‘지금 읽고 있는 나’가 만나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감으로 헤아리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렇듯 전자책은 책이 지닌 고유의 물질성에서 종이책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 같다. 시디를 MP3로 대체할 수 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책의 부피감마저 독서에도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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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겠군요 잠자냥님 글 읽으니 전자책과는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는 느낌이 드는군요...ㅎ

잠자냥 2018-12-19 17:07   좋아요 1 | URL
하하하. 그래도 전자책의 장점도 있어요. 일단 보관과 이동할 때 편리하다는 막강한! ㅎㅎ

목나무 2018-12-1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자의 저 말에 공감하면서 전자책을 갈아탈까 말까 고민하던 마음을 그냥 가차없이 버렸답니다. ㅋㅋ
그래도 이사를 해야할 계절이 돌아오면 전자책으로 어쩌면 갈아탈지도.....--;; 이사의 가장 큰 적은 정말이지 책이지 싶어요! ㅎㅎ

잠자냥 2018-12-19 17:1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꽤 오래 전자책을 염두에 두다가 올해 마련했는데요, 확실히 책이 늘어나는 숫자가 조오오오금 줄긴 했습니다. 12월엔 종이책보다 오히려 전자책 구매량이 더 많네요.
이사할 때처럼 책이 원수 같을 때는 없죠. 이사할 때만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변환해서 옮겨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요. ㅋㅋㅋ

케이 2018-12-19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서 전자책으로 읽고 정말 좋았던 책이면 종이책도 또 사고 있답니다.;;;; (제대로 돈낭비 ㅋㅋㅋ)
저도 처음에 전자책 읽을땐 참 답답했어요. 그런데 그 답답함을 넘어서는 편리함이 있죠. 역시 가벼운 게 최고 장점이지만 저같은 경우는 전자책에 내장된 사전도 참 잘 쓰고 있어요.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전 책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꽤 많이 나오거든요. 그때마다 바로 찾아서 보니 너무 편리해요.
CD가 MP3 로 완벽 대체될 수 있었던 이유는 CD를 이용한 인류의 역사가 워낙 짧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책은 그렇지 않죠.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동안 인간 곁에는 책이 있었고, 그렇게 책을 읽어왔던 인류의 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처럼 즐기기에 간단하고 완벽한 물건도 없죠.동력도 필요없고, 몇 년 지나도 그대로 읽을 수 있으니까요.
작년에 봤던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류 대정전이 발생했을 때 전기를 이용해 저장한 모든 자료는 다 날아가고, 아이러니하게도 전기를 이용하지 않고 저장된 정보만이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책도 이사 다닐때마다 웬수 같아서 그렇지, 내가 잘 들고만 다니면 전자책보다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주절주절 말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잘 읽고 있어요. 잠자냥님 감사해요!

잠자냥 2018-12-19 17:45   좋아요 1 | URL
하하하, 종이책을 또 사시는군요! ㅋㅋㅋ
전자책은 정말 편리하기는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사전 기능도 그렇고, 포스트잇을 일일이 붙일 필요도 없고 등등.
CD가 MP3로 완벽하게 대체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케이 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정말 공감합니다. (근데 저는 MP3로 듣고 좋은 음악은 여전히 다시 CD로 사기는 해요. 애초에 처음부터 CD로 사는 음악도 있고요. 그러고는 그걸 또 굳이 추출해서 아이폰에 넣지요. 이게 무슨 짓인지 ㅋㅋㅋㅋㅋ 이 죽일놈의 소유욕때문에 ㅋㅋ)
그리고 정말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 편리한 전자책을 잘 사용하다가도 문득 두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이 기기가 완전히 망가져버리면 이 안에 있는 책들은?!!

암튼 책환자들한테 전자책은 보조 수단은 될지언정 메인은 되기 어려울 것 같아요- ㅎ

크리스마스와 연말 잘 보내시고 한해 마무리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