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 불평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알고리즘 시대의 진실을 말하다
사피야 우모자 노블 지음, 노윤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알고리즘은 공정하고 객관적일 것 같다. 그러나 구글 같은 검색사이트들은 ‘공공’검색엔진이 아닌, 기업이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 때문에 자연스레 헤게모니 집단을 위해 운영될 수밖에 없다(여기서 성차별 인종차별이 교묘히 일어난다). 기억하자. ‘모든 정보는 동기와 의도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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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2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별점 테러가 좀 심하던데, 제목만 보고 ‘여성 차별’이라는 말에 부들부들거리면서 별점 테러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라. 손가락을 보지 말고 제발.... 에휴

young026 2024-06-1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리즘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죠. 알고리즘은 수단 내지는 도구일 뿐이고 더 우수한 알고리즘이라는 말은 더 잘 드는 칼이라는 말과 다를 게 없는 식의 개념입니다. 책 소개에서 예시된 포르노그라피 검색 같은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검색에서 원하는 결과가 그런 것이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라서 말씀하신 논점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잘 드는 칼(혹은 총 등등)을 어린애나 범죄자에게서 멀리해야 하는 것처럼 우수한 도구에 대해서 사회적 통제와 감시는 필요하겠지만 이는 또다른 얘기.
‘동기와 의도‘라는 논점에 대해 보자면, 특정 소수를 위한 반민주적 반사회적 조작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에는 대다수가 이의가 없겠지만 문제의 포르노그라피 검색결과를 치워 버리는 것 같은 것도 결과 조작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는 의견이 엇갈릴 겁니다.
 

Claude Chabrol, <여자 이야기(Une affaire de femmes / Story of Women)>, 1988


최근 시몬 베유의 책을 읽으며 자발적 임신중단법에 관한 글들을 읽다가 오래 전에 본 영화가 떠올랐다.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여자 이야기(Une affaire de femmes/ Story of Women),1988>가 바로 그 작품인데, 이 영화는 시몬 베유가 자발적 임신중단법안을 상정하기까지의 프랑스 현실, 그러니까 그 무렵 프랑스의 낙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서 베유가 언급했던, 낙태가 불법이라 고통 아래 신음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삶을 지켜볼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한 후 중반까지는 평범한 어느 여성의 삶이 잔잔히 그려진다. 그런데 중반 이후 이야기가 격하게 흐르더니 영화 끝 무렵에는 충격적인 반전과 함께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더욱이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한결 충격적이다.

<여자 이야기>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마리(Isabelle Huppert)는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남편은 전쟁터에 끌려갔고 두 아이와 살아남기 위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순전히 그녀의 몫이다. 우연한 계기로 이웃에 사는 친구의 낙태를 돕고 그녀는 그 대가로 전축을 선물 받는다. 이로 말미암아 본격적으로 마리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자들에게 은밀히 낙태 수술을 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곧 돌아오지만 그는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는 관심 없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할 뿐이다.

마리는 계속해서 불법 낙태 시술을 하며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점점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며 나치 치하 프랑스라는 암울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넉넉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우연히 사귀게 된 매춘부 친구인 룰루에게는 매춘을 할 공간으로 빈방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등 ‘돈’을 벌기위한 마리의 모험은 갈수록 위험해진다. 게다가 남편과 애정 없는 형식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그녀는 젊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 성적인 쾌락까지 느끼며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게 된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고자 본격적으로 개인교습까지 받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마리에게 느닷없이 큰 불행이 닥친다. 아내 마리의 방종한 생활을 지켜보던 남편이 급기야 경찰서에 그녀를 신고하는 것이다. 불법 낙태 시술을 하며 돈을 받았으며, 매춘을 알선했다며 그간 마리의 죄를 낱낱이 고발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가수가 될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던 마리는 행복에 겨워 두 아이를 끌어안고 춤을 춘다. 그때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 그녀는 결국 감옥에 갇힌다. 변호사를 고용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변호사는 여자에게는 그런 중형을 내린 적이 없다고 마리를 안심시키지만 어쩐지 마리는 점점 중범죄자들이 수감된 교도소로 이송될 뿐이다.

그리고 법정은 그녀에게 최고형을 선고한다. 낙태와 매춘 알선 등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일을 자행했고 그런 비윤리적인 일에는 최고형이 내려져 마땅하다고 선고한다. 전쟁이 끝난 뒤, 국가는 도덕 및 윤리, 사회 기강 확립이 필요했고, 그 선례로 이토록 비윤리적인 일을 자행한 여성은 마땅히 최고형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윤리’라니? 도덕적이지 못하다니?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서 살인을 하고, 돈을 주고 성(性)을 사고, 그 수많은 불법 낙태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이들은 모두 남자들이 아니었던가? 남자들의 ‘국가’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들이 ‘윤리적이지 못하다’며 마리에게 최고형을 내린 것이다. 그 또한 남자들로 이루어진 법정이었다. 이 영화 후반부에 국가 윤리 확립, 사회 재건설 등의 말이 쏟아질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전쟁 치하에서 마리는 아이들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말하는 ‘윤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 그녀를 찾아와 낙태를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그 수많은 여자들의 사연을 들어보라! 전쟁으로 인해 남편이 끌려가거나, 전쟁터에서 죽거나 등등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처지가 허다했다. 그런데도 국가는 정작 그런 전쟁을 벌여놓고 윤리와 사회 기강을 말하며 그 여자를 처형하기에 이른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윤리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파렴치한 ‘국가’는 여전히 이 지구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마땅히 개인의 선택이어야 하는 출산 및 낙태의 권리에 윤리와 죄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간섭하고 있다.

그저 노래하는 것이 즐거웠던, 가수가 되고 싶었던 여자 마리. 살기 위해 ‘윤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 마리. 그런 그녀에게 돌을 던진 국가는 과연 얼마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가? 마리를 연기한 이자벨 위페르는 신들린 듯한 연기로 이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그녀의 도도하고 차가운, 그러면서도 노래를 부를 때는 마냥 행복하던 얼굴, 마침내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덜덜 떨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여자 이야기>는 자발적 임신중단법과 여성의 권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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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19-08-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이자벨 위페르 연기를 보고 혈관 하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연기하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는 배우예요. 저는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다가 너무 처참하고 괴로워서 결국 중간에 시청을 중단했답니다. ㅜ_ㅜ (아직도 용기가 안나서 못보고 있음) 정말 대단하고 어떤 면에선 무서운 배우... 이 영화도 보면 참 우울해질 것 같네요.

잠자냥 2019-08-23 16:25   좋아요 1 | URL
<피아니스트> 보시다 말았구나. . 그 영화 정말 처참하죠;; 그래도 저는 끝까지 봤어요. 원작 책도 읽었다는;;; 이 영화도 보면 참 우울해질 영화입니다만..... 그래도 마리 역의 이자벨 위페르는 정말 신급 연기를 보여줍니다. 영화 자체도 매우 흥미진진해요.

목나무 2019-08-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영화를 알게되었네요.
역시 잠자냥님 리뷰는 언제나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해줍니다! ^^
이 영화 진짜 꼭 챙겨보고싶네요.

잠자냥 2019-08-23 18:1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 영화는 구하기가 어려울 것도 같은데 어떻게든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락방 2019-08-2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설해목님처럼, 덕분에 좋은 영화를 알게 되었다는 인사를 놓고 갑니다. 알지도 못하는 영화였어요.
저는 사실 설해목님 댓글을 그대로 복사해도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잠자냥 님. 글 써주셔서 늘 감사해요.

잠자냥 2019-08-23 18:13   좋아요 0 | URL
늘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히지요~ ㅎㅎ 이 영화는 다락방 님 꼭 보세요! 아마 부들부들 분노의 포스팅을 할 거리가 많을 거예요. 구하는 게 쉬웠으면 더 좋겠어요. 예전에 저는 어느 영화제에서 봤는데요, 음...

단발머리 2019-08-24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는데, 정말 시몬 베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에게 닥쳤던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모습들이요.
한나 아렌트 비롯해서 유대 지식인들 가열차게 비판하는 부분도 관심을 끌고요.
부지런히 읽어서 임신 중단법 제정을 위해 애쓰는 시몬 베유도 만나고 싶네요^^

참, 저도 설해목님 댓글 그대로 복사해서 쓰고 싶습니다 2!!!!

다락방 2019-08-24 08:30   좋아요 0 | URL
힝.. 나만 안 읽었어, 시몬 베유 ㅜㅜ

잠자냥 2019-08-24 12: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 한나 아렌트 비판하는 부분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지적한 거라 꽤 공감하고 깊이 새겨둘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단발머리 님도 이 영화 꼭 보시길 ㅎㅎ

잠자냥 2019-08-24 12:28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조만간 시몬 베유 책도 읽어보시고요 ㅎㅎ
 

몇 달 전 신간 목록을 훑어보다가 시몬 베유(Simone Veil)의 새 책을 발견했다. 그때 내가 본 책은 ‘꿈꾼문고’에서 나온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었다. 이 책 표지에는 유대인을 뜻하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다. 게다가 책 제목도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니, 나는 당연히 그 유명한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 <중력과 은총>, <신을 기다리며>를 쓴 철학자 시몬 베유의 새 책인가 싶었다. 그녀에게 이런 저작이 있었다고? 의아한 마음으로 책 소개를 읽어보다가 뜻밖의 문구를 발견했다. “1974년 프랑스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 일명 ‘베유 법’을 통과시키며 여성인권 신장에 앞장선 프랑스 정치인 시몬 베유.” 아하, 그제야 동명이인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시몬 베유의 글도 궁금해진다. 그래서 사서 읽게 된 책이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다. 책을 받아들고 맨 먼저 읽은 장은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안을 상정하기 위해 그녀가 의회에서 연설했던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위한 투쟁’ ‘유럽을 위한 투쟁’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으로 이루어지고, 거의 연설문을 글로 담았다. 여성해방과 관련된 글 중심으로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는데, 이윽고 시몬 베유의 또 다른 책이 출간되었다. <나, 시몬 베유> 이 책은 그녀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다. 연설문을 죽 읽어가는 것보다 자서전을 먼저 읽는 게 좋을 것 같아 노란 책부터 읽기를 마쳤다.

두 책의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나, 시몬 베유>는 그녀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시작해서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겪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대학을 진학하고, 교정행정국 판사가 되고, 프랑스 보건부 장관에 올라 임신중단 법안을 통과시키고, 유럽의회 최초 선출직 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숨 가쁜 삶이 펼쳐진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 ‘홀로코스트/유럽해방/여성해방’으로 크게 분류한 것과 거의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이런 삶을 바탕으로 시몬 베유의 정체성을 단 두 개로 정의하라면 ‘유대인’과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시몬 베유는 강제수용을 겪었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타인의 존재를 모욕하고 격하시킬 수 있는 모든 것에 극도로 민감해졌다.’고 말한다. ‘신체적으로 밀착하는 것만큼이나 정신적인 소외를 싫어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마치 감옥 내의 투사처럼 여길 수밖에 없었다’.(<나, 시몬 베유>, 115쪽)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유대인과 여성이라는 정체성 못지않게 현재의 시몬 베유를 있게 한 존재로 어머니를 꼽을 수 있겠다. 베유의 집안은 화목했지만 아버지는 가부장제에 충실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집에서 정치는 언급될 수 없는 주제였는데, 부모의 정치적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우파 일간지를 구독했고, 어머니는 사회주의 경향의 신문을 구독했으며 아버지 몰래 중도좌파 또는 좌파 잡지를 읽었다. 그런 틈에서도 베유는 ‘아버지의 결정이나 금기가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 같다’고 서슴없이 말하곤 했다. 게다가 베유와 언니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너무 (경제적으로) 의존한다고 생각했고, 그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경제적인 자율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가계부를 상세히 보고해야 했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여러 번 주의를 준다. 그들은 유념해 듣는다. 절대 잊히지 않는 교훈이 담긴 충고였다. “일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베유와 자매들은 여성은 남편이 반대하든 아니든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와 독립’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몬 베유가 홀로코스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프랑스로 돌아와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그 사이에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고 마침내 변호사협회에 등록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녀의 남편은 불만을 터뜨린다. 그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사회 경력도 쌓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재능 있는 아내가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베유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뭐야? 당신 일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 일하기로 했잖아.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국립행정학교에 가서 잘 되고 있잖아. 내가 일하는 걸 막을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말했지만 베유는 자신의 남편이 이토록 부정적인 답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남편 또한 아내가 직업을 갖는 것을 거북해한다. 게다가 그는 법의 엄밀성과 힘을 믿으면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베유가 변호사라는 직업에서 피고인과 피해자를 바라보는 데 반해, 그녀의 남편은 돈을 낼 수 있는 의뢰인의 입맛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변덕스러움만을 보았다. 만일 이때 베유가 남편 뜻에 따라 집안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임신중단법은 어떻게 됐을 것이며, 과연 그녀가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묻히게 되었을까? 그저 가족 묘지에, 남편 옆에 이름 없는 여인으로 묻혔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시몬 베유의 삶을 일일이 옮길 필요는 것을 것 같다. 다만 그녀는 고통의 역사를 몸소 겪은 뒤 그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겪게 하지 않으려고, 다시는 그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는 점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베유 자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여성의 대의를 위해 투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살아갈수록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얻은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우슈비츠에서는 베유가 여성이기 때문에 한 여성이 일이 덜 고된 작업반으로 그녀를 지정해서 옮겨주며 보호해준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모든 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녀가 보기에 ‘여성을 위한 기회는 그저 운에 맡겨져 있었고 법이나 제도를 통해서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차별을 시정하는 대가로, 사회는 여성이 신음하는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구체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회의 불평등과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조치란 성차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통합과 결속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표지를 다시 보니 ‘다윗의 별’로만 보이던 그것이 이제는 장미꽃처럼 보인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바친 사람, 세상에 장미꽃을 주고 간 사람. 그녀, 시몬 베유.


당시 나는 남자들이 임신중단보다 피임에 더 적대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피임은 여성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이전까지는 남성의 손에 쥐어져 있던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도로 여성에게 가져온다. 그러므로 피임이란 이전부터 내려져오던 관념을 문제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심중단은 여성을 남성의 전권으로부터 면하게 해주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을 멍들게 하는 것이었다. (<나, 시몬 베유>, 152쪽)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진 의회에서 이렇게 말씀드리기가 송구합니다만, 우선은 여성으로서의 저의 신념을 나누고자 합니다. 낙태 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성에게 낙태는 비극이고, 언제나 그러할 것입니다. 비탄에 빠진 이 여성들을 누가 보살피고 있습니까? 현재의 법은 여성들을 오욕, 수치, 고독에 빠뜨릴 뿐 아니라 익명의 존재로 만들고 구속에 대한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상태를 감추어야 하고, 곁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한 줄기 빛이 되어 도움과 보호를 제공해줄 사람 없이 홀로 남겨집니다.” (<나, 시몬 베유>, 270쪽)

“우리는 여성의 직업 활동과 더불어 여성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용어들과 함께 종종 따라오는 잘못된 논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일을 해야 한다 혹은 집 안에 있어야 한다. 여성 해방이나 속박이냐 같은 논쟁 대신, 저는 여성들이 바랄 수 있고, 바라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선택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여성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삶의 틀과 환경이 세워지고, 이어서 여성의 존재 방식의 모델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여성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공권력의 책무는 여성들의 이러한 욕구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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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박람회
외르케니 이슈트반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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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죽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면 어떨까? 이 작품은 지식인, 노동자, 예술가 세 사람의 죽음을 다큐멘터리로 찍어 방송하는 내용을 소재로 삶과 죽음, 예술의 문제를 질문한다. 중간중간 웃음 터지는 부분도 많은 블랙코미디. 죽음은 단 하나의 진실인데 그걸 담은 예술도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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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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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와 문학공모전이라는 특이한 제도, 간판과 서열 문화,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어떻게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시스템이 됐는지 꼬집은 책. 흥미롭게 읽었다...만 한국인들의 간판에 대한 집착은 영원할 것이라고 본다. 장강명 글은 처음 읽어봤는데 참 쉽게 막힘없이 쓰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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