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동 - 전예원세계문학선 322 셰익스피어 전집 2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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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 다음? 그 다음? 하게 된다. 재치와 입담 넘치는 희곡. 헤로가 클로디오와 결혼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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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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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무거운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아마도 이 작품을 읽는 대부분 사람들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이 작품은 실제로 일어난 범죄를 다룬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까?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충실한 기록이라고 하기엔 카포티의 향기가 무척 느껴진다. 반면 단순한 소설이라 하기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너무나도 충실하게 1959년 미국의 한 마을이 재현되고 있다.


1959년 미국 캔자스의 작은 동네 홀컴에서 일가족 네 명이 엽총으로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살해당한 사람은 중년 부부와 그들의 10대 아들, 딸이다. 목격자는 없다. 증거도 없다. 아주 작은 액수의 현금만이 사라졌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왜, 무슨 동기로 그들을 그렇게도 잔혹하게 살해했을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카포티는 뉴욕 타임스에서 이 기사를 보고 친구(‘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와 함께 홀컴을 방문한다. 그들이 체류하는 동안 두 명의 범인이 체포된다. 카포티는 그들과 인터뷰를 시도한다. 범인, 마을 사람들, 수사 담당자 등을 만나며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를 위해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그렇게 해서 1966년 <인 콜드 블러드>는 세상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카포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생생한 기록 속에서 살인이라는 범죄가 일어나게 되는 배경, 동기, 살인이 일어난 이후 마을 사람들의 심리, 위선적인 행태, 희생자들의 삶, 남겨진 친인척 및 친구들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자의 삶,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배경, 범죄자들의 심리 등을 만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무엇보다 두 잔혹한 범죄자 딕과 페리 때문이다. 예전에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 느꼈던 당혹한 심정이 되살아났다. 연쇄살인범들과의 인터뷰를 다뤘던 이 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어린 시절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트라우마)를 얻었다.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고 어릴 때 성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폭행을 당한 경험이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성장 환경에서 자랐어도 범죄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보통은 그랬다.

일가족 4명을 잔혹하게 살인한 딕과 페리- 그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조금 특이하다면 딕은 그래도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를 공감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고, 작은 범죄로 감옥에 가게 되면서 감옥에서 점점 더 망가졌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큰 범죄자가 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페리는 불우한 가정환경, 한없이 부족한 관심과 애정, 사람들의 인정, 받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교육 환경 등 열악한 사회적 환경 때문에 범죄자의 길로 들어선 유형이다. 때문에 그에 관한 기록을 읽을 때면 분노가 일다가도 동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희생자는 어떨까? 살해당한 클러터 씨 일가는 마을에서 그 누구도 적이 없을 만큼 사랑받던 가족이다. 아이들도 그렇고, 클러터 씨 부부는 말할 것도 없다. 적이 없기 때문에 누가 그들을 죽였을지, 죽이고 싶어 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수사는 더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이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처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무기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야 한다면? 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은 두려움도 느껴진다.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복잡한 심경이 든다. 잔혹한 범죄를 예방하고자, 그리고 잔혹하게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일말의 ‘복수’를 하고자 사형을 언도하는 방식이 과연 정당할까? 파렴치한 범인들이 이토록 선량한 일가족을 몰살하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 때는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오르다가도 복수를 위해, 똑같이 죽음으로 되갚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진다. 그런다고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오는 것도 아닐 텐데…. 게다가 범죄자의 가족들이 사람들을 이목을 두려워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래도 자신의 아들이 끔찍하게 사형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을 볼 때면 더더욱 사형제도의 정당성에 의문이 든다. 

<인 콜드 블러드>는 딕 히콕에 비해 지나치게 페리 스미스를 동정적으로 묘사할 때가 많아 기분이 나빠질 때도 종종 있다. 카포티가 페리라는 인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카포티는 페리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도록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실제로 담당 형사 중 한 사람은 카포티가 페리와 애정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페리에게 사랑을 느꼈기에 카포티가 그를 그토록 동정적으로 묘사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카포티는 페리에게서 자신과 닮은 면을 봤던 게 아닐까. 자신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한 남자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은 아닐지.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딕과 페리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토록 죽기 두려운 너희들, 너희들은 죽기 그렇게 싫으면서 살려달라고 공포에 떨던 사람들에게 잔혹하게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댔지? 그러면서 너희는 그렇게 살고 싶니? 욕이 나오기도 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간의 이기심에 분노가 치민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을 바꾸는 데(교화하는 데는)는 결국 강력한 처벌보다도 애정이 중요한 것 같다. 사랑과 끊임없는 관심이 없다면 인간은 이렇게 쉽게 망가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구나 싶다.

모든 범죄는 단지 ‘절도의 변형’이라는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살인도 포함해서, 한 사람을 죽이는 건 그 사람의 삶을 빼앗는 거지’(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라는 말. 남의 물건을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오거나, 훔쳐 본 경험이 한 번쯤은 다들 있을 ‘인간’ 그런데 그 인간이 그런 행동을 단순히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끝내는지, 상습범이 되는지, 그러다 결국 타인의 생명까지 훔치는 잔혹한 살인범이 되는지는 결국 또 다른 인간의 사랑과 관심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일까? 인간이란 정말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그토록 잔인한 범죄자마저도 그 나약함을 벗어날 수는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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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녀 창비세계문학 37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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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악으로 가득한 책. 창비는 외래어 표기를 왜 이런식으로 고집하는지 도저히 이해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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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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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랑!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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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겐 을유세계문학전집 14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홍진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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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를 연극으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라이겐>은 창녀와 군인 / 군인과 하녀 / 하녀와 젊은 주인 / 젊은 주인과 젊은 부인 / 젊은 부인과 남편 / 남편과 귀여운 아가씨 / 귀여운 아가씨와 시인 / 시인과 여배우 / 여배우와 백작 / 백작과 창녀 총 열 커플이 등장하는 희곡이다. 등장인물의 배열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듯 한 사람을 매개로 계속 관계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관계는 모두 성적(性的)으로 이어졌다.


‘라이겐’은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손을 잡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을 말한다고 한다. 슈니츨러는 이 춤의 형식을 빌려 와 첫 번째 에피소드의 창녀를 마지막 에피소드에 다시 등장시킴으로써 ‘라이겐’의 원형적 구조를 완성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등장인물들이 아무런 도덕적 가책이나 양심의 거리낌 없이 배우자나 약혼자, 애인을 속이고 불륜을 저지른다. ‘젊은 부인과 남편’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다 불륜이며 그 관계에는 어김없이 성행위가 등장한다.

이 작품이 세상에 선을 보인 게 1903년이라고 하니, 당시 얼마나 파격적이었을까 싶다. 실제로 출간 당시 8개월 만에 1만 4천부가 팔렸는데 오스트리아와 독일 검열 당국은 곧 금서 목록에 올렸고, 공연 과정에서도 커다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창녀촌 연극’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상영 중인 극장 안으로 악취 폭탄이 투척 되기도 했단다(‘악취’ 폭탄이라고 하니 좀 귀엽기도 ㅋ). 퇴폐작가라는 오명까지 쓴 슈니츨러는 결국 ‘라이겐’ 공연을 스스로 영구히 금지했고, 이 작품은 저작권이 소멸한 1982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연할 수 있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퇴폐적이기만 할까?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홍상수의 영화를 연극으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홍상수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 아래 감춰진 ‘성적인 욕망’을 통해 인간의 비속함, 저열함 등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말한다. 여자는 고고하고 순결하며 도도하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꾀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달이 나있다. ‘사랑’이라는 말에 여자는 넘어가고 곧 그들은 성관계를 맺는다. 그 뒤 서로의 태도는 너무나도 뻔뻔하게 바뀐다. 남자는 여자를 막 대하기 시작하고, 여자 역시 처음의 고결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주인공은 계속 바뀌지만,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사와 행동은 다를 바가 없다. 

슈니츨러의 작품은 ‘문학 작품이라기보다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는 비판을 자주 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인간 심리를 마치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진찰하듯 분석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작품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을 비롯해 함께 들어 있는 또 다른 희곡인 <아나톨>, 단편 소설 <구스톨 소위>를 봐도 <라이겐>처럼 인간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그것도 인간의 찌질한 면을 잘 꼬집어서 보여준다. 

외설적이고 퇴폐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상당히 야할(?) 것 같지만 사실 <라이겐>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성행위는 모두 “……”로 암시되고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묘사도 없고 단지 그냥 “…”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연극으로 무대 위에 올렸을 때는 어떠했을까 좀 궁금하기도 하다. 남녀가 껴안은 채 무대 위의 불이 꺼지려나? 그런데 이런 연극을 보고 ‘창녀촌 연극’이라며 난리가 났던 것을 보면 100년이 지난 지금 주변의 자극은 실로 엄청나게 발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긴 뭐 요즘 연극은 정말로 관객의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데 더 말해 무엇하리.




저 가운데 줄 .........................이 바로 문제(?)의 장면이다.

촛점이 맞지 않아 사진이 매우 흐리게 나왔는데 왠지 어울리는 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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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22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6년 리뷰에 땡투합니다.
그런데.. 별은 셋이로군요.. 흐음.....

잠자냥 2022-08-22 16:22   좋아요 0 | URL
이 시절에는 슈니츨러가 전반적으로 저랑 좀 맞지 않는 작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장님이 갖고 계신 그 책, <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도 그랬고요. 지금 읽으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특히 구스톨 소위.... 기억에서 잊힌 구스톨아, 내가 다시 만나주랴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22 16:36   좋아요 1 | URL
곧 다시 만납시다, 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