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지상의 다락방 (잠자냥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문학이 우리를 구원하리라.</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4 Jun 2026 02:40:4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잠자냥</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372614541003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ocker</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잠자냥</description></image><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인생은 안갯속 그의 문장도 안갯속</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85317</link><pubDate>Tue, 19 May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853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838274&TPaperId=172853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17/85/coveroff/k89283827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208&TPaperId=172853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4/80/coveroff/89320452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94&TPaperId=172853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4/35/coveroff/893204519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몇 해 전에 헨리 제임스의 &lt;비둘기의 날개&gt;(아토북, 2022)가 출간되었다. 내게 헨리 제임스는 재미없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는 작가 그래서 결국 읽게 되는 작가 중 하나였으므로 이 책을 읽는 것은 당연했다.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는데.....! 읽을수록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헨리 제임스의 문장은 애초부터 종속절도 많고 우회적인 수사가 많기에 원문 및 변역문장 모두 딱히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책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번역 책에서 오역을 지적하거나 문장이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별 불만 없이 읽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토북에서 출간한 &lt;비둘기의 날개&gt;는 한국어 문장의 주술 호응 자체가 전혀 안 되는 엉망진창 책이었다. 중간까지 꾸역꾸역 읽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반납. 그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100자평을 남긴 적이 있다. 그 이후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의 평점은 2점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다들 얼마나 고통스럽게 읽다가 포기했는지 100자평 자체가 너무 재밌는 게 아닌가. 궁금하신 분들은 (저 아래에서) 책 클릭. 그리고 문제의 번역 상태가 궁금하신 분들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읽어보시라. 호기심에 구입 절대 금지!&nbsp;<br><br>아무튼 조금 지나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겠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대산세계문학 &lt;비둘기의 날개 1, 2&gt;로 출간되었으니 “어머 이건 사야 해!” 읽기를 마친 지금, 이런 지경의 현란한 문장이니 저 출판사에서 번역가 둘이 진짜 번역을 했든 아니면 번역기를 돌렸든 말이 안 되는 한국어 문장으로 뚱땅뚱땅 책을 펴낸 것이로구나 싶었다(한데 저 번역가들은 정말 번역한 게 맞을까? 편집자는 문장 감수도 하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lt;비둘기의 날개&gt;는 헨리 제임스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로, 헨리 제임스는 후기로 갈수록 그 꼰 문장 또 꼬기 지극히 현란하고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 뇌와 눈알 후리기 신공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lt;비둘기의 날개&gt; 읽다가 그 모호한 문장들- 그러니까 이게 그건지 그게 그건지 도대체 등장인물들이 왜 말을 콕 찝어서 제대로 하지 않는지 답답함에 속이 터져서 몇 번이나 아니, 복숭아가 먹고 싶으면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라고! 복숭아가 먹고 싶은데 “여름이면 왠지 털복숭이가 떠오르고는 하지 않아요?” 이러고 있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나 일어났으며, 안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비둘기가 더 싫어지려고 했다.....&nbsp;<br><br>그럼에도 1, 2권 합해서 장장 860쪽에 이르는 이 작품을 주말 이틀 동안 다 읽어버렸다. 헨리 제임스 작품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인간이 그런 꼰 문장 또 꼬기 신공으로 펼치는 이야기들은 마치 일일드라마, 그것도 막장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많기 때문이다(그 신공을 전수받아 오늘날 화려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 작가가 바로 21세기 게이로맨스계의 헨리 제임스, 앨런 홀링허스트이다). &lt;비둘기의 날개&gt;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설거지하던 어무니도 고무장갑 낀 채로 물 뚝뚝 떨어뜨리며 텔레비전 앞에 서게 앉게 만드는 일일드라마, 막장 드라마처럼 흥미진진, 그러나 대사는 참........ 복숭아를 복숭아라 말하지 않고 땀방울 송송 그 여름의 털복숭이라 운운하며 흐른다.&nbsp;&nbsp;<br><br>여기 세 가지 인생이 있다.&nbsp;<br>세 사람이 있다. 막대한 재산과 그에 어울리는 기품과 미모를 지닌 여자가 있다. 나이도 젊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그녀, ‘밀리’에게 부족한 것은 삶이다. 이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삶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칭송할 만한, 부러워할 만한 미모를 가진 여자, ‘케이트’-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말 그대로 “수려하다.” 젊음도 그녀의 것이며 이토록 아름다운 외모에 건강하기까지 하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하겠노라 맹세하는 연인까지 있다. 그런데 신은 공평한지 케이트에게는 집안이 지옥이다. 그녀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던 엄마는 먼저 세상을 뜨고 불한당 같은 아버지와 그녀의 언니-오! 가난하고 재능도 없는 남자와 결혼해 줄줄이 아이를 낳고 구질하게 살면서 호시탐탐 동생 케이트에게 기대어 살 궁리만 하는 짐 덩어리 언니 ‘메리언’이 있다.&nbsp;<br><br>헨리 제임스는 이 불한당 아버지를 묘사할 때도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몹쓸 짓을 했는지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그에 관해 묘사하긴 하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호하다. 케이트의 가족들에게 커다란 망신을 주었으며 ‘어리석고 잔인하고 사악하기까지’ 했으며 그래서 케이트의 엄마는 상처받고 버림받고 망가져 무능했다고 하는데 그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케이트는 그저 자신이 열다섯 살쯤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져서 아버지가 전혀 가망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결론적으로 느끼기엔 그가 화려하게 꾸미고 다닐지언정 속은 빈 깡통 같은 인물, 먹고사는 데 열심이기보다는 번지르르 꾸미고 다니면서 일평생 한량 짓만 하는 그런 기생충 같은 인물임을 감지하게 된다.&nbsp;<br><br>하지만 신은 케이트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아서 그녀에게는 부유한 이모라는 존재를 선물한다(‘모드 이모’). 이모는 첫째 조카 ‘메리언’은 일찌감치 포기해버리고 케이트를 점찍어 물질적 후원을 해주면서 그녀를 런던의 상류층으로 이끌어주고자 마음먹는다. 케이트는 그에 어울릴 만한 미모와 재능-그러니까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수완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구질구질한 집안을 벗어나 이모의 눈과 마음에 쏙 드는 생활을 해나간다면, 케이트의 삶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드 이모는 천사인가 싶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이모 또한 케이트에게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자신의 노년을 안락하게 보내기 위해 케이트의 가치가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nbsp;<br><br>그러나 거기엔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바로 케이트를 사랑해마지 않는 남자, ‘머튼 덴셔’가 문젯거리이다. 수려한 케이트에게 어울릴만한 매력적인 외모, 그러니까 한마디로 매우 잘생긴 외모를 지닌 이 남자, 또한 젊고 건강하며 똑똑하다는 재능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가난뱅이 신세였다. 조카를 상류층으로 이끌어주겠다는 모드 이모의 눈에 그는 거지나 다름없어 못마땅함을 떠나서 떼어내 버려야 할 암 덩어리 같은 존재이다.<br><br>당신이라면 어떤 생을 살겠는가?<br>막대한 부(富), 젊음과 미모를 가졌지만 질병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누구나 인정하는 수려한 외모에 젊음, 건강을 가졌지만 가난한 데다 진드기 같은 가족이 들러붙어 있는, 그러나 부유한 친척이 너만큼은 도와주겠노라(단, 내 말을 듣는 조건 아래) 약속한 상태인 인생, 빼어난 외모와 똑똑함이라는 재능까지 지녔으나 가난뱅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 이 세 가지의 삶 중 당신이라면 어떤 생을 선택해서 살겠는가? 현대라면 케이트와 덴셔의 조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둘 다 외모가 빼어나고 젊으니까 그 외모를 자원 삼아 부를 쌓을 수도 있고(연예인/아이돌 데뷔/부자와 결혼하기 등등), 덴셔의 경우에는 똑똑하기에 그 머리를 이용해서 차곡차곡 성장&amp;성공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때는 20세기 초반, 신분이나 지위, 계급 격차가 너무도 뚜렷하고 그것을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영국의 런던이다. 케이트는 아무리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할지라도 집안이 형편없기에 좋은 가문의 남자와 결혼해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어렵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직업을 구해 먹고살기도 버겁다. 머튼 덴셔의 처지 또한 케이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젊고 잘생기면 뭐하나? 좋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기엔 애초에 글렀다. 그의 신분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재능이 넘치면 뭐하나? 집안에서 밀어줄 수가 없어서 좋은 교육을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nbsp;<br><br>나라면.... 밀리의 인생, 저 막대한 부를 지닌 밀리의 인생이 차라리 괜찮지 않나 싶다. 어차피 언제고 한 번은 죽을 인생. 남보다 조금(?) 일찍 죽는다는 것뿐… 저토록 엄청난 부를 지녔으니 살아 있는 동안 실컷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남들보다 일찍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밀리도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살던 미국 뉴욕을 떠나 신대륙에서 구대륙인 유럽으로, 런던, 이탈리아로…. 그리고 그곳에서 케이트를 만난다. 밀리는 수려하고 당당한 케이트에게 한눈에 반하다시피해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nbsp;<br>&nbsp;<br>내 애인을 빌려드립니다<br>가난뱅이 연인 케이트와 덴셔는 모드 이모의 반대로 대놓고 사랑을 속삭이지는 못한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수완을 갖춘 케이트는 언니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가난한 덴셔와 결혼하는 것은 언니와 마찬가지로 시궁창을 걷겠노라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모드 이모는 종용한다. 덴셔와 멀어져라, 내가 원하는 남자, 너에게 어울릴 만한 남자, 런던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지위와 부를 가진 남자를 만나야 한다…. 케이트는 이모의 재산, 이모가 가진 부가 탐나지만 그렇다고 덴셔를 하루아침에 버릴 만큼 냉정하지도 못하다. 그러기엔 그를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이 수완가가 생각해내는 것이 “내 애인 빌려주기”였으니....<br><br>덴셔는 타고난 재능으로 어찌어찌 기자가 되어 미국의 한 신문사에 취업,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던 중 그 넓은 미국 땅에서 우연히 밀리를 알게 되고 잠시 친분을 나눈 전력이 있다. 그런데 이 잘생기고 똑똑한 남자한테 밀리가 호감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까. 이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는 비상한(?) 머리를 굴려 꾀를 짜내고 덴셔에게 말한다. 그녀, 밀리를 유혹하라고, 밀리의 마음을 차지해버리라고 그래서 그녀와 결혼하라고. 어차피 그녀는 곧 죽을 것이므로, 그러고 나면 그 재산은 온통 너의 차지가 될 것이고, 그러면 너는 그 막대한 재산을 갖고 나를 찾아와, 나와 다시 결혼하면 된다고. 우리 사이에 그깟 몇 년 참지 못하느냐고…. &lt;비둘기의 날개&gt;는 이런 막장 아닌 듯한 막장스토리로 흘러간다.<br>&nbsp;&nbsp;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일을 하더라도 이미 그것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면 폭로하기보다 차라리 도와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랑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비굴함의 주된 면모일지도 모른다. 일단 그녀 쪽에서 아무리 우회적일지라도 오로지 이득을 보려는 어떤 계획을 세웠다면 당연히 그 무엇보다 충성심이 요구되니까 말이다. (&lt;비둘기의 날개&gt;, 2권, p.93)&nbsp;<br>비둘기 한 마리 두고 모두가 잇속을 차리는구나<br>저게 가능할까? 케이트가 덴셔에게 하는 제안을 보며 생각해본다. 애정이 식은 것도 아니고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과 단지 지금 결혼할 처지가 못 되므로 조금 지나서 얼마쯤 조건을 갖춘 다음에 결혼하자고, 그런데 그 조건을 갖추기 위해 나 대신 다른 사람, 부자인 사람과 결혼했다가 다시 오라는 제안- 그게 과연 가능할까? 내가 케이트라면 나는 저런 제안을 하지 못한다. 내가 덴셔라고 해도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요즘이야 뭐 스와핑이니 뭐니 부부끼리 섹파도 바꾸고 그걸 관람까지 하는 일도 종종 있다지만… 글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꼴을 지켜보라고?! 만일, 밀리가 죽지 않는다면?(애매모호의 달인 헨리 제임스는 이 책에서 밀리의 병명을 끝끝내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백도인지 황도인지 천도인지 신비인지 말하지 않고 그저 여름 털복숭이에서 끝나고 마는 얄미운 제임스여......). 밀리와 덴셔 둘 사이에 애라도 생긴다면? 그 막대한 부를 이용해서 병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말 죽 쒀서 남 주는 일 아닌가?<br><br>덴셔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홀딱 반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척 연기하라고? 심지어 결혼생활을 하라고? 저 사람, 밀리라는 여자가 나에게 아무리 호감이 있을지라도 내 마음에 불을 켜지 못하는 대상이라면, 내 욕망에 불을 지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의 연기는 얼마나 고통이며 지옥이겠는가. 게다가 덴셔는 그렇게까지 파렴치한은 아니라서 눈 딱 감고 밀리에게 호감이 있는 척, 사랑하는 척하기가 어려운 부류의 인간이다. 그 여자와 말이 조금 통했고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이며 아픈 사람이라 연민이 들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뿐. 사랑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종종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엉뚱하고도 엄청나고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결국 케이트의 제안을 덥석 물어버리는 덴셔….&nbsp;&nbsp;<br><br>보라! 헨리 제임스 최초의 화끈&amp;모호 에로틱 아닌 애매모호틱 섹스신!&nbsp;<br>덴셔가 그런 아스트랄한 제안을 확 물어버리는 것은 오직. 그녀, 케이트와 결혼하기 위해서이다. 덴셔는 잘생기고 똑똑하고 파렴치한은 아니지만 우유부단해서 케이트가 하라는 대로 하는 좀 나약한 인물이다. 그래서 주변의 여자들-케이트, 밀리, 모드 이모, 밀리의 샤프롱 수전 셰퍼드에게조차 내내 휘둘린다. 케이트의 저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제안도 조금 고민 끝에 덥석 물어버리는데, 그러면서 그가 내 거는 조건이 있다. 끝없이 케이트에게 조르는 것이다. 뭘? 에이, 다 알면서..... 케이트여, 제발 단 둘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와요! 내 거처로 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여기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저놈이 그냥 자기 집에 와서 놀자는 것인가? 방에 들어가서 둘만 알콩달콩 놀자는 것인가?<br><br>덴셔는 주로 이렇게 말한다.<br>“우리가 결혼하고 나면 당신이 찬장 열쇠를 차지하고서 나한테 한 덩이씩 배급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br>“여기서 만날 수도 없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바깥에서 할 만큼은 다 해본 마당에, 이틀 동안 생각해보니 지난 화요일처럼 어쩌다 생기는 기회라도 난파선에서 나온 널빤지같이 없는 것보다 나아 보이던데. 하지만 그 친구들이 이 집에 그렇게까지 의무감이 있다면 그럼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거네요. 그러면 끔찍한 지연이라는 우리의 관에 고맙게도 못 하나가 더 박히는 거군요.”&nbsp;<br>“그러니까 여하간 이렇게 계속해나갈 수 없다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lt;비둘기의 날개&gt; 2권, pp.24~25)&nbsp;<br>뭔 소리래? 현대의 잠자냥어로 번역해보겠다.<br><br>“바깥에서 돌아다니면서 야금야금 손 잡고 뽀뽀만 하는 것도 지쳤다.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숫총각으로 관짝에 들어갈 판이다. 제발 자자!!!!!!! 다른 여자 유혹하라고 이렇게 어려운 걸 시키면서 섹스도 안 해주다니! 섹스 안 해주면 나 안 해!”&nbsp;<br><br>아무튼 덴셔, 이놈아 복숭아가 먹고 싶다면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똑바로 말을 해야지! 딱복 물복 황도 천도 백도 신비 운운도 아니고 시방 여름의 털복숭이 찾을 때인가? 저기 가서 한 수 좀 배우로 오거라! 이름은 없지만 욕망은 많은 주드처럼 이렇게 말해야지! “같이 자자! 섹스하자!”는 아니고.... “내가 자기를 사랑한 만큼 자기는 날 결코 사랑하지 않았소. 결코! 자기의 가슴은 열정적인 가슴이 못 되오. 자기의 가슴은 불꽃 속에서 타지 않소! 자기는 대체로 요정이거나 정령의 일종이지, 여자가 아니오.” (번역: 나랑 섹스하고 싶지 않으면 넌 여자 아님. 요정 아니면 정령임). “수, 난 자기를 사랑하오. 그러나 자기에게 오랫동안 시중을 들었는데 보상은 너무 초라해요.” ㅋㅋㅋㅋㅋㅋㅋ (번역: 난 너무 기다렸다. 기다린 보상으로 너를, 너의 몸을 달라!)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야 할 것 아니여?! 답답하구먼. (feat. 위 인용은 토머스 하디, &lt;이름 없는 주드&gt;에서 가져옴)<br><br>혈기왕성한 이십 대의 두 남녀, 게다가 서로 사랑해 마지않는 이 커플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단둘이 있기조차 참으로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연인이 아닌 척 숨기고 눈짓으로만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부족한데,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는 모드 이모의 눈을 피해 한 30분 정도 둘만 좀 있으려고 치면 케이트는 밀리를 꾀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덴셔에게 늘 그 이야기뿐… 뽀뽀라도 좀 해주지, 그 예쁜 입술로 허구한 날 계략만 짜기 바쁘다. 그러니 이 애정....... 또는 성욕이 끓어오르는 남자 덴셔는 케이트를 안고 싶고 만지고 싶어서 안달복달. 그래서 조른다. 당신 말 들을게요, 그러니까 내가 사는 집에 오라니까요! 그걸 안 주면(응? 뭘?) 도저히 이 남자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 주기로 결심한 케이트는 마침내..........&nbsp;<br><br>재치나 성격의 측면이라면 개의치 않겠지만 그녀가 자신보다 웅숭깊은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떳떳하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독립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에 그녀를 두고 싶었다. 그 결과 그는 곧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겠어요?” 그 말투에 담긴 진실함에 그녀의 얼굴이 약간 파리해졌다. (2권, p.27)<br>거의 화를 내듯 그녀를 와락 붙들고는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예요? 정말 그래요? 정말?” (2권, p.27)&nbsp;<br>여기서 다시 잠자냥어로 번역기 돌아간다....<br>“웅숭깊은 것” = 섹스 (참나, 헨리 제임스, 이 양반 섹스를 웅숭깊은 것이라곸ㅋㅋㅋㅋㅋㅋ)<br>“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 같이 알몸이 되자.<br>“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예요?” = “섹스도 안 해주면서 나 사랑해 진짜?”<br><br><br>그러다 그래서 결국 갑자기 모닥불.... 갑자기 불멍.....<br><br>위 지문에서 섹스를 암시하는 단어를 찾아보시오.<br><br>위 지문을 읽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해보시오......<br><br>했네. 했어. 아니 근데 나는 이 부분 한참 생각했다니까. 한 거야? 했니 니네? 한 거겠지..? 아닌가? 설마? 음… 마치 동시대의 이디스 워튼의 소설 &lt;여름&gt;에서 ‘채리티’와 ‘하니’가 만나면 키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채리티가 덜컥 임신해서 깜짝 놀란 그 기분…. 암중모색하는 기분이다.&nbsp;<br><br>그러나 이 섹스신(엥?)이 내가 알기로는 여태껏 내가 읽은 헨리 제임스 작품((feat, &lt;나사의 회전&gt;, &lt;데이지 밀러&gt;, &lt;워싱턴 스퀘어&gt;, &lt;보스턴 사람들&gt;) 중 거의 유일무이하게 육체적 접촉을 묘사한 획기적인 장면이 아닌가! 이 얼마나 화끈한 작품인가! 그러나 너무 애매모호 암중모색이라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고난도의 섹스신.... 헨리 제임스 이 나쁜 사람.... 그의 이&nbsp; 안갯속의 펜 끝은 여러 차례 그 신공을 발휘한다. 우리는 작품이 끝나도 알지 못한다. 밀리의 질병도, 케이트 아버지의 그 악덕도, 밀리의 편지도, 마크 경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도, 그래서 케이트와 덴셔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어떤 선택을 했을지도.&nbsp;<br><br>그러나 생각해보면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그저 좀 안다고 생각하고 착각하고 믿고 살아가는 것일 뿐, 인생도 사람도 사랑도 실체를, 전모를 다 알 수는 없는 법. 나는 책장을 덮고도 끝끝내 밀리의 그 마음이 궁금하다.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자신의 날갯짓이 불러올 파장을 다 내다본 선견지명의 달인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순수 그 자체라서 세상사람 모두가 다 자기 같을 것이라고 굳게 믿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nbsp;<br><br>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br><br><br><br>아 몰랑, 머리 복잡한 사람은 문제의 책 100자평과 함께 잠시 웃으시라.<br> <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4/35/cover150/89320451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43501</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씨네키드의 반세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72244</link><pubDate>Tue, 12 May 2026 1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722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7852&TPaperId=17272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69/44/coveroff/k48213785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570714&TPaperId=17272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68/6/coveroff/896157071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8245&TPaperId=17272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12/12/coveroff/896735824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8710&TPaperId=17272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39/99/coveroff/k982138710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노년이 되면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곳의 마당 있는 집에서 고양이들 뛰놀게 하면서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집사2가 말한 적이 있다. 어차피 나는 책만 있으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삶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데,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럼 영화 보러 가기가 너무 어려워지는 거 아니야?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그런 데선 잘 안 할 텐데.....”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다는 듯 집사2가 아하, 맞다 그렇지, 그렇다 한다. 직장만 아니면 서울의 이 번잡함을 벗어나고 싶다가도 끝내 망설이는 것은 영화관을 비롯한 문화/예술 시설에서 서울을 떠나기 어렵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도시에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nbsp;<br><br>누군가는 서울이 아닌 곳에도 영화관은 존재하고 또 누군가는 OTT 서비스가 이토록 발달한 때, 굳이 영화관 때문에 서울을 떠나지 못한다는 소리는 억지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서울에‘만’ 있는 영화관들이 있었고, 있으며 그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영화들을 만났다. 그 영화관들이 책과 함께 나를 키운 8할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수전 손택의 &lt;영화에 관하여&gt;는 이렇게 영화에 관한 사랑을, 기억을, 추억을, 뜨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사랑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고, 극장을 찾게 하고, 늦은 밤 불 꺼진 거실에서 TV를 켜고 영화로 몰입하게 한다. 그때의 영화는 오래된, 옛날 영화가 어울릴 것이다.<br><br>처음 영화관을 찾은 것은 미취학 아동 때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찾아간 동네의 허름한 동시상영관이다. 극장 안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만 가득했다. 조그맣고 조악한 화면에서는 &lt;로보트 태권브이&gt; &lt;마징가&gt; 또는 &lt;스페이스 간담 브이&gt; 같은 주로 로봇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상영 중이었고 그 이후는 아마도 그 시절의 영웅 심형래가 나오는 우뢰매 시리즈였을 것이다. 엄마가 내 손을 이끌고 이곳에 나를 넣어두고 당신은 그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던 것은 내가 이런&nbsp; 류의 영화들을 좋아했기도 했지만(언니는 좋아하지 않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는 동안 당신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 어린 날에도 불이 꺼지고 화면에서 색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참 좋아했다.<br><br><br>그러니까 이런 장면들.......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br><br>나 스스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고, 극장에 가게 된 것은 열네 살 때이다. 시험이 끝난 때라 친구 둘과 학교 근처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이 녀석들이 둘 다 그날 펑크를 낸 것이다. 이럴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른 날로 약속을 바꾸거나 자기도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는 갔다. 혼자서. 그리고 나는 그때 진심으로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느꼈다. 그날의 영화는 &lt;시네마 천국&gt;. 지금도 내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는다. 하필이면 영화를 좋아하는 꼬마 토토의 이야기. 청년이 된 토토가 엘레나와 쏟아지는 빗속에서 키스하는 장면, 어른이 된 토토,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주세페 할아버지가 남긴, 검열 때문에 잘린 키스 장면만 모은 필름을 스크린 위로 재생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열네 살의 나를 울리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지금도 여전히 나를 울린다.&nbsp;<br><br><br><br><br>이 친구들과는 그해 여름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도심 진출. 한 녀석이 꼭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lt;비 오는 날의 수채화&gt;였다. 이때도 나는 한국 로맨스물을 좋아하지 않아서(아, 미쳐ㅋㅋㅋ 취향 확고한 중딩 어린이 중2병 어린이 자냥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투덜댔는데 친구 두 녀석이 둘 다 너무 원하기도 하고(얘들은 로맨스빠...순이), 집 근처가 아닌 도심의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서 따라나섰다. 지금은 사라진 국도극장인가 그랬는데, 이 극장의 분위기는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하고 다들 좀 놀랐다. “여기 왜 근데 아저씨들이 이렇게 많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저씨들이 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보러 옴?”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도 좀 이상해! 구멍이 막 뚫려 있어! (현대의 불법카메라용 구멍과 크기가 다르다).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lt;추적60분&gt;인가 이런 방송을 보면서 알았다. 당시 충무로나 종로의 몇몇 극장은 게이들의 성지였다는 것을(ex 허리우드 극장의 기형도)...... 그리고 그 구멍은............&nbsp;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들이 게이였다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 아저씨들이 중학생 소녀들을..... 한데 그 시절 나는 소년스럽게 생겨서 아저씨들이 좀 뚫어져라 쳐다본 것도 같다. 소년이 아니어서 천만다행.<br><br>이때 친했던 녀석 중 한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어 그 이후로도 종로의 서울극장 등으로 몇 번 영화를 보려고 함께 갔다. 한데 이 녀석이 고르는 영화는 하나 같이 로맨스물(&lt;타이타닉&gt;, &lt;보디가드&gt; 등)이어서 좀 힘들었다. &lt;타이타닉&gt; 보고 나와서 친구는 막 우는데 도대체 왜 우는지..... 사실 나도 좀 울기는 했다. 우는 지점이 달라서 그렇지. 내가 이 영화에서 운 지점은 배가 침몰하는데도, 자신들이 익사할 것을 알면서도 한 치의 동요 없이 음악을 연주하던 그 연주자들을 지켜볼 때였다. 지금도 이 장면은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껴안고 우는 장면이 아니라.... 하하하.<br><br>엄마가 어린 나를 극장에 넣어줬다면 아빠는 십 대의 나를 비디오의 세계로 이끌어줬다. 아버지와는 연락하지 않은 지 수십 년이지만 내가 그래도 아빠에게 고마워하는 부분은 영화의 세계를 확장해 준 점이다. 큰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람이라 좋은 아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이 사람에게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음주 못함, 폭력적이지 않음이었다. 단지 한량처럼 놀고먹으면서 엄마 외의 여자를 너무 좋아했을 뿐이었다는 것. 그 한량스러움에 영화가 한몫했다. 아빠의 취향은 &lt;대부&gt;나 &lt;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gt; 같은 느와르였는데 덕분에 나는 이 장르를 십 대 시절에 섭렵했다. 아빠가 빌려오고 반납은 내 담당이었는데 그런 중 대부분의 작품은 “너도 봐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아빠 기준에 외설스러운 작품은 안 되지만 폭력이 난무하는 갱스터 영화는 괜찮았나 보다. 하긴 내가 100% 장담하는데 울 아빠가 집에서 음란비디오 같은 거 봤을 인간은 절대 못 된다. 딱히 볼 욕구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가서 직접 하면 되니까(엥? 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그 시절 &lt;대부&gt; 시리즈 &lt;스카페이스&gt; &lt;언터처블&gt; &lt;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gt; 등등 느와르 장르의 불멸의 고전들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lt;스카페이스&gt; 때문에 브라이언 드 팔마의 광팬이 되었는데, 드 팔마가 또 B급 영화의 A급 영화감독 아니겠는가! 드 팔마 때문에 나는 B급 감성 영화도 무척 좋아한다.<br><br>십 대의 나를 충격에 빠트린 영화는 &lt;퐁네프의 연인들&gt;이다. 이 영화에 관한 기억도 참 재미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텐데 중간고사가 끝난 후였나?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갔다. 어떤 선생님이 이 영화를 골랐을까? 시험이 끝난 후이므로 아이들은 다들 졸려서 비몽사몽, 그런&nbsp; 데다가 하필이면 프랑스영화였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우리 반 아이들은 스크린을 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남주가 저렇게 못생겨도 되는 것이냐! 드러워도 너무 드러운 거지다! 대체 뭔 소리야! 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흐를수록 자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나는 이날 이 영화와, 레오 까락스와, 프랑스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프랑스영화에 대한 열렬한 애정은 이날 생기지 않았을까?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제2외국어로 불어를 가르쳤는데 불어선생님이 이 영화를 고른 것일까?&nbsp;<br>고등학생 때 데이트하듯이 보게 된 영화는 &lt;써머스비&gt;이다. 프랑스영화 &lt;마틴 기어의 귀환&gt;을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영화인데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프랑스영화에서는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주인공이었는데 이 조합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데이트라고 하니 남학생과 봤는가 싶을 텐데 그건 아니고 ㅋㅋㅋㅋ(엥?) 그 시절 나를 참 많이 좋아해주던 한 선배와 같이 본 영화이다. 중고등학생 때 나는 좀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보이시했던 외모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책상 위에 선물이 많았던, 편지도 여기저기서 받았던 인기 많은 아이였다. 이 선배도 나를 참 좋아해 준 사람 중 하나였다....&nbsp;<br><br>야간 자율 학습이 9시에 끝나고 다들 집에 가기 바쁜데 내가 탈 버스는 늘 늦게 오곤 했다. 한참 기다리고 있으려니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나처럼 버스를 타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선배는 내가 몇 번 버스를 타고 가는지 알고 싶어서 늘 내가 먼저 타기를 지켜봤다는데 늘 너무 늦게까지 안 오더라는 것. 사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등하굣길이나 월요일 전교생 운동장 조회 시간 등등에서 이 선배의 시선을 눈치채고 저 사람도 나한테 반했네, 반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만방자함을 떨었는데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도 오는 버스는 타지 않고 늘 나만 쳐다보고 있어서 저 사람 중병이네 중병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선배는 결국 나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하고(엥? ㅋㅋㅋㅋㅋ) 편지와 선물을 싸들고 내려왔고(그 시절 우리 학교는 1학년은 2층, 2학년은 3층, 3학년은 4층을 사용했다. 내가 2학년 때라 3층의 우리 반 교실로 4층에서 내려오심), 그 이후 가까워졌다. 그렇게 처음 같이 보러 간 영화가 서울극장에서 개봉한 &lt;써머스비&gt;였다. 전쟁이 끝난 후 한 농부(‘리처드 기어’)가 귀향한다. 이 남자는 원래의 그 남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남편인척 내내 연기하는데 아내(‘조디 포스터’)는 그가 사실 남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내용이다.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선배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br><br>그 시절에 나를 좋아했던, 내게 열광했던 아이들 중 얼마나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졌을까 싶다. 그 많은 애정을 받으면서도(5월호 '정희진의 공부'에서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네, 겸허해지겠습니다........) 다 지나가는 일이라고, 한때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에 흔한 그런 애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선배는 좀 달랐다. 그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는 더더욱. 나는 타인의 애정에 익숙한, 오만방자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터라 선배가 졸업한 이후로는 거의 잊어버렸는데 선배는 그렇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도 자기 나름대로 연락을 취해 왔다. 그러니까 아주 고전적 방법-자기네 학보를 편지와 함께 우리 학교 과 사무실로 보내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내가 입학한 대학교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렇게 해서 연락이 다시 닿기는 했는데 대학교에 간 이후로 나는 연애 중이라 이 선배한테는 대충 연락하고 잊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 온 이 사람.&nbsp;<br>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건 이십 대 중반, 대학로의 어느 카페에서였다. 선배는 관련 학과를 나와서 승무원을 준비 중이었다(키가 크고 예뻤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반대한다고 고민 털어놓고는(하여간...-_-) 그 남자를 안 만날까 한다 뭐 이런 말을 하던 중에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빼서 나를 줬다(순금이었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어릴 때 그 마음이 그냥 그런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그 반지를 받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미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선배, 여기저기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나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꼭.<br><br>그렇게 스무 살, 대학생 때부터는 영화에 미친 나날을 보냈다. 역시 지금은 사라진 극장인데 종로의 코아아트홀에서는 대학생 모니터 요원을 선발해 운영했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코아아트홀에서 상영할 신작 영화를 먼저 감상하고 모니터링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때 만난 영화들이 대박이었다. 홍상수도 왕가위도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타르코프스키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타란티노도 다 이곳에서 만났다. 심지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영화 &lt;안토니아스 라인&gt;도 이때 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할 때 보았는데 이 영화는 페미니즘 공부한 이후에 다시 보니 진짜 페미니즘 영화의 정수이더라. 여러분? 페미니즘 공부하는 여러분? 이 영화를 보십시오. 웬만한 페미니즘 책 여러 권보다 페니미즘에 관해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br><br>코아아트홀-시네코아로 이어지는 대학생 모니터요원은 사실 1, 2학년만 받아줬는데 나는 4학년 때까지 계속했다. 이 시절은 내 인생의 영화 황금기였다. 학교에서는 과내의 소모임으로 영화동아리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활동했다. 주로 술 마시고 영화 이야기하고 영화 공부하고, 구하기 어려운 영화들을 어찌어찌 구해서 강의실 하나 빌려놓고 영화 보고 또 술 마시고…. 국문학과 내에서도 문학보다는 영화에 미친 애들이 모인 동아리였다고나 할까. 영화에 미친 자들 중에는 여자 선배들보다는 남자 선배들이 더 많았는데 (제길...-_-), 그들에게 지기 싫어서 더 미친 듯이 영화를 본 것 같다. 특히 후배 중에 한 녀석, 영화를 비롯해 록 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에 특출난 놈이 있었는데 이 녀석한테는 더더욱 지기 싫어서 더 열심히 본 기억이 난다. 얘는 특히 공포영화 마니아였는데 내가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이 장르란 말이지? 그래서 공포영화마저도 마구 섭렵하려고 애를 썼다(그래서 &lt;이블데드&gt;를 보게 된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녀석은 나중에 보니 그 특출난 재능을 살려 모 방송국의 대중문화 관련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활약 중이더라.<br>&nbsp;<br>코아아트홀과 함께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던 영화관의 계보는 스폰지하우스, 동숭시네마텍(하이퍼텍나다), 씨네코드 선재, 필름포럼, 아트하우스 모모, 서울아트시네마로 이어진다. ‘동숭시네마텍(하이퍼텍나다), 씨네코드 선재’는 프랑스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했는데 이때가 나의 프랑스영화를 향한 열렬한 애정이 꽃을 피운 시기였다. 트뤼포의 그 많은 영화들….<br><br><br>헐... 조금만 더 보면 한국 영화 넘어설 판....<br><br>TV가 등장해 영화관이 텅 비게 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매주 영화관에 가서 멋지게 걷는 법, 담배 피우는 법, 키스하는 법, 싸우는 법, 슬퍼하는 법을 배웠다(또는 배우려고 했다). 영화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에 대한 힌트도 주었다. 이를테면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레인코트를 입으면 멋져 보인다든가. 물론 영화를 보고 받아들인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더 큰 경험의 일부일 뿐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얼굴과 삶에 빠져 자신을 잃는 경험. 무엇보다 강렬한 경험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에 완전히 푹 빠지는 것,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관객은 영화가 자신을 납치해주길 바랐다. (-수전 손택, &lt;영화에 관하여&gt;. p.13)<br><br>손택의 말처럼 나 또한 영화관에서 멋지게 걷는 법, 담배 피우는 법, 키스하는 법, 싸우는 법, 슬퍼하는 법을 배웠을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영화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얼굴과 삶에 빠져 자신을 잃는 경험” 때문에 “무엇보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에 완전히 푹 빠지는 것”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를 매료시키기도 한다.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나, 보고 싶은 영화는 꼭 가서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지지해줬다. &lt;쥴 앤 짐&gt; 때문에 사귀게 된 ‘동숭이’와 달리, 프랑스영화라면 죽을 만큼 괴로워해서(&lt;아멜리에&gt; 보고 나와서 싸움. 으아! 그래서 내가 이 영화는 아직까지도 싫어한다) 자기하고는 프랑스영화 보러 갈 생각, 하지도 말라던 사람도 있었는데(‘과메기’), 이 사람의 취향은 &lt;해리포터&gt; 시리즈와 &lt;반지의 제왕&gt; 시리즈라서 내게 이런 영화의 지평을 열어준 존재로도 기억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 덕분에 혼자서 오롯이 예술영화를 보러 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았다.<br><br>X는 영화 취향은 잘 맞았다. 그래서 아트시네마나 씨네큐브, 미로스페이스, 심지어 한국영상자료원(영자원)을 찾아다니면서 알모도바르, 고다르, 브레송, 브뉘엘 등등의 영화를 함께 많이 본 기억. 그러고 보니 연애 초기에 이 사람이 당시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을 구해서 CD로 구워주기도 했었구나. 그런데 너무 웃픈 게 이 인간 하고는 사랑 관련 영화를 같이 보면 늘 싸웠다는 것. 나를 만나기 전까진 누군가를 사귄 적이 없었던 사람이라 화려한 과거...(응?)의 내 연애가 너무 심기가 거슬려서 하........ 언제나 질투와 집착과 그렇게 촉발되는 싸움. 허진호 감독의 &lt;행복&gt;을 보고 온 날 대판 싸운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이날의 싸움은 자살소동으로까지 번져서.... 하......... 너무 힘들었다. X야, 지금은 누굴 만나든 그러지 않길 바라. 너도 이제 과거의 연인들이 있잖아. 그치?&nbsp;<br><br>집사2와 가까워진 계기는 테니스는 당연하고 책도 한몫했지만 영화도 빼놓을 수는 없다. 집사2와 처음 같이 본 영화는 의외로(응?) 최동훈 감독의 &lt;도둑들&gt;이다. 이건 내가 고른 것도 아니고 집사2가 고른 것도 아니다. 당시 테니스장에서 같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영화 보러 가자고 말을 붙였는데 나는 당연히 보러 갈 생각이 없음에도 그냥 뭐 보실 건데요? 물었더니 요즘 &lt;도둑들&gt;이 재밌다나. 아.... 이 사람하고 이 영화를 보느니 집에 잔다... 싶은데 이 사람이 갑자기 00씨(집사2)도 보러 가기로 했어요! 한다. 이 말에 솔깃! 홀라당 넘어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급 태도 변화 “그럼 저도 갈게요!” 그래서 극장에 갔는데 영화를 보는 사람은 셋이잖아요? 저는 집사2 옆자리에 앉고 싶어서 머리를 굴려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맨 안쪽에 저 사람, 가운데 집사2 그리고 나. 이렇게 앉는 데 성공! 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는 그럭저럭 재밌었다.<br><br>영화를 본 후 셋이서 낮부터 치맥을 하는데 이 사람이 갑자기 극 중 김혜수를 언급하며 ‘헤프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근데 이 표현이 너무 거슬리는 나. 참지 못하고는 그만 “그게 헤픈 건가요? 헤프다는 게 뭐예요? 똑같은 행동을 남자가 하면 괜찮고 여자가 하면 헤픈가요?” 따지듯 물었다. 이 사람은 급당황해서 말을 얼버렸고 얼마 후 먼저 일어났다....(내가 바라던 바 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알고 보니 집사2도 바라던 바였다고 엥?ㅋㅋㅋㅋ) 집사2도 이 사람이 가고 난 후 사실은 저도 그 헤프다는 발언 좀 싫었다고, 근데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좋았다고 ㅋㅋ 집사2는 이때 내가 좀 평범한 사람들하고는 다른 사람인 거 같다고 느꼈다는데....(얘는 내가 책 선물해 줬을 때도 그러더니...) 아무튼 이날 집사2하고 새벽까지 술 마셨다.<br><br>집사2와는 씨네큐브, 아트시네마, 아트하우스 모모, 한국영상자료원 등에서 주로 영화를 본다. 언제였나, 혹여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인간적으로 씨네큐브, 아트시네마, 한국영상자료원에는 새로 만나는 사람 데려가지 말자..... 라고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아니 씨네큐브는 좀 어렵지 않냐? 했더니 그건 그렇네... 음 그럼 아트시네마, 한국영상자료원까진 좀 데려가지 말자, 콜!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본 구절 때문에 빵 터진 적이 있다. &lt;GV빌런 고태경&gt;이라는 책의 한 구절로, 시네필끼리 연애하다 헤어지면,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아트시네마 같은 예술영화관에서 마주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근데 진짜 내가 이거 경험했다는 거 아닙니까? X랑 헤어지고 얼마 안 된 때였다. 영상자료원에서 집사2와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헐 내 눈에 들어온 X, 물론 당연히 나는 못 본 척. 집사2도 보지 못했기를 바랐는데... 그날 술 마시던 중에 집사2가 묻더라. “아까, 거기 00씨 있었지?”(집사2와 X는 테니스장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서로 얼굴을 안다), “아.... 어....” “00씨도 우릴 봤을까?” “눈 나빠서 못 봤을 거야.” 또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집사2의 바람은 이루어져서 그 이후 다시 마주친 적은 없다.<br>시네필리아란 단순한 영화 사랑이 아니라 찬란한 과거의 작품을 보고 또 보려는 광대한 욕망을 바탕으로 형성된, 영화에 특정한 취향을 지닌 애정이다. (…) 시네필리아가 죽는다면 영화는 죽는다··· 아무리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더라도, 심지어 좋은 영화가 계속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되살아나려면 새로운 종류의 영화 사랑이 태어나야만 한다. (p.22)&nbsp;<br>집사2가 나를 만난 이후로 놀라며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보다 더 많이 본 사람은 내 주변에선 니가 처음이야!” “응, 그건 내가 너보다 7년 더 살아서 그래. 7년 더 살면 나만큼 보게 되지 않을까?” “글쎄... 그동안 너는 또 그만큼 더 보겠지!” “아.......” 하긴 요즘에도 내가 더 보긴 한다. 바쁜 집사2 두고 혼자 극장에 가기도 하고, 퇴근 후 같이 보려다가 집사2가 자긴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간다고 하면 그럼 나 혼자 보고 갈게! 하고 보고, 집에서도 집사2가 피곤하다고 먼저 자러 들어가면 또 혼자 본다. 내 왓챠의 기록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영화를 본 시간만 3천300시간이라고 한다. 집사2는 궁금해한다 그렇게 책을 많이 보는데 영화는 또 언제 그렇게 많이 봤느냐고. 나는 말한다. “학생 때 공부 안 하면 돼.”&nbsp;<br><br>그런데 나를 깨갱, 겸허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수전 손택. 그는 틀림없이 나보다 더 많은 책들을 읽었을 텐데, 나보다 더 많은 영화를 봤다, 봤을 것이다. 심지어 벨라 타르의 &lt;사탄탱고&gt; 그 7시간짜리 영화를 무려 열여섯 번을 본 사람이며 오즈 야스지로의 &lt;동경 이야기&gt;는 평생 서른 번을 봤다고 자랑한다. 손택은 말한다. “&lt;동경 이야기&gt;에는 볼 때마다 가슴이 칼에 찔린 듯한 느낌이 드는 놀라운 순간이” 있노라고. 손택은 본 영화 또 보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나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본 영화를 또 보는 경우도 드물다. &lt;동경 이야기&gt;를 서른 번이나 봤다고? 그럴 만한 영화인가? 갸웃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명감독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서양인들이 오즈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도 있지 않나 싶어진다. 오즈의 영화는 내가 보기엔 &lt;동경 이야기&gt;를 비롯해서 참 보수적이다. 이 보수적인 세계를 손택은 서른 번이나 봤다고?! 차라리 손택이 또 칭송한 나루세 미키오 쪽이 나는 더 좋다-이 책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lt;부운&gt;을 언급해서 참 좋았다. 이 명작을 다들 몰라요. 손택이 말한 나루세의 &lt;흐르다&gt;, &lt;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gt; 등등은 지금 보기에도 급진적인 면이 있다. 그에 비하면 오즈는 좀 갑갑하다.<br>저는 지금도 거의 날마다 영화를 보러 가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면서 일도 많이 합니다. 제 나이쯤 되는 사람이 일주일에 다섯 번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건 젊고 혈기 넘칠 때 하는 일 아니냐고요. 하지만 어떤 열정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저는 영화에서 엄청난 즐거움을 얻습니다. 특히 여러 영화를 반복하여 보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p.420)<br>나는 내가 시네필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시네필이라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간지러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책과 함께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손택처럼 일주일에 다섯 번 영화를 보러 가지는 못하지만(손택은 분명히 직장인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열정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그 말에는 지극히 공감한다. 그리고 내가 영원히 지속하는 열정의 대상으로 책과 영화가 내내 거기에 속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 공간들-씨네큐브, 아트시네마, 영상자료원 같은 지금도 여전히 특별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그 공간들이 이토록 OTT 서비스가 다양하게 넘쳐나고 이토록 수많은 숏츠 영상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오늘도 굳건히 버텨주기를 씨네키드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또 바라본다.&nbsp;<br><br>“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난 ‘모든 걸’ 바꿔 놓을 사람이나 예술 작품과 조우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던 수전 손택. 손택은 평생 그것을 찾아다닌 문화예술계의 굶주린 사냥꾼이었다. 그는 말한다. “질문하라. 이 사람이 뭔가 내게서 좋은 점을 끌어내는가? 아니면, 이 사람은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가?”(수전 손택, &lt;다시 태어나다&gt;) 여기 ‘이 사람’이라는 단어 대신 나는 이런 것들을 대입해 본다. “질문하라. 이 책이 뭔가 내게서 좋은 점을 끌어내는가? 아니면, 이 책은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가?” “질문하라. 이 영화가 뭔가 내게서 좋은 점을 끌어내는가? 아니면, 이 영화는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가?”<br><br><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39/99/cover150/k98213871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399925</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선택과 책임 - [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60423</link><pubDate>Wed, 06 May 2026 12: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60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2604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260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a><br/>윌리엄 포크너 지음, 권지은 옮김 / 민음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

몇 해 전인가 빔 벤더스의 영화 &lt;퍼펙트 데이즈&gt;를 감명 깊게 보았다. 이 영화에는 꽤 인상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가 그 주인공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일터로 향해 누구도 감시하거나 보는 눈이 없어도 온 정성을 다해 공공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점심에는 간소하게 식사하면서 공원의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 그. 일을 마친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헌책방에서 산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혼자 사는 집안은 깔끔하기 짝이 없다. 그만의 루틴으로 꽉 채워진 충실한 삶…. 이런 그가 즐겨 읽는 책 중 하나가 포크너의 &lt;야생 종려나무&gt;이다. 히라야마의 과거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지만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취미(음악, 책, 분재, 필름 카메라), 문득 찾아온 여동생의 눈물 섞인 한숨과 대사 등으로 보아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살아갈 만한 이력을 지닌 사람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포크너의 &lt;야생 종려나무&gt;를 읽어보면 그의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믿을 만한 번역본이 없어서 일단 궁금증 해소를 나중으로 미뤘다.<br><br>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2026년 5월에 ‘히랴아마’가 왜 포크너의 &lt;야생 종려나무&gt;를 읽었을지,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 공감하면서 읽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빔 벤더스가 괜히 포크너의 작품을 소품으로 집어넣은 게 아닐 것이라는 확신까지 든다. &lt;퍼펙트 데이즈&gt;가 아니었더라도 포크너의 &lt;야생 종려나무&gt;를 읽었겠지만 &lt;퍼펙트 데이즈&gt;를 통해 이 작품을 알게 되었으므로 더 풍부하게 이해하게 된 느낌. 정-반-합 모든 게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도 어떤 면에서는 &lt;퍼펙트 데이즈&gt;의 ‘히라야먀’, 그리고 &lt;야생 종려나무&gt;의 ‘해리 윌본’ 또 그리고 &lt;노인&gt;의 '키 큰 죄수'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패배하더라도 그렇게 살려고 애는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nbsp;<br><br>이쯤에서 아니, &lt;노인&gt;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은 사람도 있으리라. 《야생 종려나무-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읽기 시작했기에 아아아니, 포크너 이 양반 역시나 또 어렵네, 어려워!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lt;야생 종려나무&gt;와 &lt;노인&gt;이라는 장이 번갈아 가면서 전개된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이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라는 게 읽는 이의 골머리를 썩이게 한다. 분명히 뭔가 연결고리가 있으니까 이렇게 장을 배치했을 텐데 어떤 이유로 한 작품으로 묶은 것일까? 나 따위가 포크너의 그 깊은 심중을 다 헤아릴 수는 없으니 일단 읽어보자 싶어서 읽어나가기 시작......<br><br>&lt;야생 종려나무&gt;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것도 불륜. 바닷가 한 오두막에 결혼한 지 이십 년이 지난 의사 부부가 살고 있다. 이 의사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으로 바닷가의 별장과 그 옆 건물을 사들여 별장에는 자신과 아내가 살고 옆 건물은 세를 주고서 무료하지만 소박하고 한가로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옆 건물에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난다. 남자와 여자, 커플이다. 이 새로운 세입자가 집세만 제때 잘 낸다면 아무런 상관없다는 아내와 달리 이 커플의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기묘한 분위기에 의사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의사는 이 젊은 커플이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있을 거라고, 그게 뭘까 호기심을 떨치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커플을 이 건물에 세들 수 있도록 도와준 부동산 중개업자가 나타나 말하기를, 그들은 부부가 아니라고,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는 게 아닌가. 지금이야 그게 별 문제도 아니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의 남부이다. 보수적인 그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부부처럼 다니는 것은 금기이자 사회적으로 범죄나 마찬가지였던 시절. 그러니 이 커플의 등장에 부동산 중개업자는 물론 의사 부부도 신경이 곤두서기는 마찬가지. 의사에게는 이 남루한 행색의 남녀, 온 세상을 등진 듯 포기해버린 듯한 태도 등이 내내 눈에 들어온다.&nbsp;<br><br>의사는 생각한다. “돈을 주고 의사 또는 변호사의 기술과 지식을 사면서도 진실의 일부분을 숨기고 싶어 하는”(p.20) 무언가가 저들에게는 있노라고, 부디 저들이 다른 세입자들처럼 “이상한 걸 여기로 가져오지 않았”(p.27)기를 “비밀을 드러내서 나를 괴롭게 만들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야망도 큰 욕심도 없이 하루하루 편하게 살아가는 게 목표인 의사는&nbsp; 말썽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욕구가 무엇보다 큰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 바람은 곧 부서지고 만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어느 늦은 밤, 커플 중 남자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의사를 찾아온다. “그녀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남자가 말한다. “진료비는 얼마 정도...” 우려했던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의사는 그들이 세 든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한다. 어디에 피를 흘린다는 것일까? 대체 왜 피를 흘리는 것일까? 독자 또한 의사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 피를 흘리는 것일까? 왜 피를 흘리는 것일까? &lt;야생 종려나무&gt;는 그렇게 시작한다.<br><br>그다음 난데없이 펼쳐지는 &lt;노인&gt;- 이 장에서는 갑자기 죄수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키 큰 죄수’라는,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어느 죄수이다. 그는 철없던 십 대 시절 기차 강도 행각을 벌이다 붙잡혀 십오 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감옥 근처, 미시시피강 유역에 큰 홍수가 일어나 죄수들은 제방 작업 및 물에 휩쓸린 시민들을 구출하는 작업에 투입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건 하나의 기회이지 않은가. 홍수가 나서 물이 범람하고 있고 비록 간수들이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혼란스러운 틈을 타 달아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러나 어쨌든 ‘키 큰 죄수’는 간수가 지시한 대로 물에 휩쓸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시민을 구하기 위해 보트에 올라 노를 저어 나아간다. 그런데.....<br><br>&lt;야생 종려나무&gt;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녀가 피를 흘리고 있다”며 의사에게 도움을 구하러 온 청년 ‘해리 월본’과 피를 흘리고 있는 여자 ‘샬럿’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이 청년 ‘해리’는 의대를 졸업한, 인턴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아직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의학을 공부했으므로, 피를 흘리고 있는 여자를 진찰할 정도의 실력은 있는 이 남자는 왜 다른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일까?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의대를 진학하기까지의 해리의 삶도 저 ‘의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어찌어찌 의대를 진학했으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은커녕 고학생으로 겨우 학교를 마칠 정도의 돈만 있는 상태. 해리는 자신의 이런 처지를 스스로 ‘돈을 거부했고’ ‘따라서 사랑마저도 거부’한 삶이라고 자조한다. 그렇게 강의실과 기숙사의 방을 오가는 삶을 살던 그에게 어느 날 룸메이트가 함께 파티에 가자며 조른다. 비사교적인 성격의 해리는 당연히 거절하지만, 그날이 하필이면 그의 생일. 오늘이 해리의 생일이라는 걸 알게 된 룸메이트는 더 조르기 시작하고, 마지못해 따라나선 해리는 그 파티에서 그녀 샬럿을 만난다. 유부녀인 샬럿을.&nbsp;<br>그녀를 만날 수 있는 파티에 간접적으로 초대받는 운명 또는 행운 역시 더 이상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행운이 아닌 불운이기도 했다. 만약 여러 파티에 초대받았다면, 그는 햇살과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것이 세상의 모든 시간과 모든 들끓는 숨결 중에 딱 한 장소에서 한 순간에 한 사람을 향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쳤을 것이다). (p.56)<br>그 파티에서 샬럿을 만난 것은 해리의 생에서 행운일까 불행일까? 해리가 만약 은둔자처럼 고독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다양한 여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날 그때 샬럿을 선택했을까?&nbsp;그 이후로 이어진 그들의 인생행로를 보면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해리 자신조차 불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를 만날 기회가 조금 더 있었더라면 굳이 유부녀인 그녀와 사랑에 빠지기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취업해서 어떤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저 바닷가에서 낡은 오두막일지언정 자기 집을 갖고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해리라면 저 바닷가의 의사처럼 그런 삶에도 분명 만족하고 살아갔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모두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샬럿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연인들은 죽어도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지독하리만치 사랑을 믿는 이 여자를. 해리와 샬럿은 그래서 사랑만을 믿으며 도피행각을 벌이다가 여기 이 바닷가까지 오기에 이른 것이다.&nbsp;&nbsp;<br><br>살아가면서 비록 실수를 저질렀지만 최선을 다해 행동했던 모든 남자와 여자 그리고 미래에도 살아가면서 실수할 테지만 최선을 다해 행동할 모든 남자와 여자를 위해 부탁하는 거예요. 어쩌면 당신을 위한 부탁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당신의 인생 역시 고통일 테니까. (p.271)<br><br>결국 인간은 아무리 최선의 판단을 따른다 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고,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 일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내 생각에 돼지는 여전히 돼지일 뿐이야. 겉모습이 어떻든 말이지. (p.309)<br>지독하게 가난한 연인, 불륜이기에 도망자처럼 숨어 다닐 수밖에 없는 연인, 죄를 지은 남자, 달아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필이면 구조해 준 여자가 임신 중이라 지독하게 운 없는 자신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자비 없는 태양 아래에서 움직임 없이 매료된 통나무배들이 원형 경기장처럼 그를 둘러싼 가운데 외롭고 번쩍이는 진흙탕 위에서 사투를 벌이”(p.318)는 ‘키 큰 죄수’.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분명 있었다. 선택의 순간이 여러 차례 주어졌었다. 해리는 애초부터 샬럿을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심지어 중간에 여자를 버릴 수도 있었다. 죄수는 또 어떤가? 임신 중인 여자를 외면해 버리고 노를 그 여자를 위해 젓지 않을 수도 있었다. 홍수의 심연 속으로 죽은 척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미련하기 짝이 없어서 보통 사람들 눈에는 바보 천치 같아 보인다. 저 ‘히라야마’가 선택한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남들이 보기에 번듯하게 살 수도 있는데 화장실 청소부라니!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 비록 그 선택으로 인해 패배하고 지독한 고통을 겪을지라도. “비통함과 무(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비통함을 선택하겠어.”(p.391) 해리 윌본의 이 마지막 말은 그래서 뜨겁게 가슴을 울린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150/89374649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0890</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꽃이 지고 남는 것 - [제자벨]</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48519</link><pubDate>Thu, 30 Apr 2026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485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8760&TPaperId=172485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8/93/coveroff/k93213876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8760&TPaperId=172485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자벨</a><br/>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채단비 옮김 / 레모 / 2026년 04월<br/></td></tr></table><br/>


의학 분야에서도 여남 차별이 존재하지만 사법체계에서도 이와 같은 차별은 참 공고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사법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참 어쩌면 저토록 투명하게 차별적인가 씁쓸해질 때가 많다. 같은 죄를 지어도 형량이 더 무거울 뿐만 아니라 신상 공개도 놀랍도록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게다가 피해자인 남성에게는 성실하고 착한, 미래가 창창한 청년의 서사가 덧붙여지기 일쑤이다. 그런 남자를 죽인 여자는 마녀이자 악녀가 된다. 그 개인의 사연이야 어떻든....&nbsp;<br><br>이렌 네미롭스키의 &lt;제자벨&gt;에도 그런 장면들이 펼쳐진다. 2026년의 대한민국 법정이나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백여 년 전의 프랑스 법정에서나 법이 작동하는 방식은 어쩜 이토록 닮았을까, 젊은 남자, 미래가 창창한 남자, 성실한 남자를 죽인 여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악녀이자 탕녀이자 마녀이다. &lt;제자벨&gt;에서 그 악녀의 이름은 ‘글라디스 아이제나흐’이다. 작품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nbsp;<br>피고석으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창백한 얼굴에 멍하고 지친 기색이 드리웠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물에 젖어 생기를 잃은 매력적인 눈꺼풀과 입꼬리가 처진 입이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젊어 보였다. 머리카락은 검은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p.15<br>여자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배심원은 물론 방청석도 소란스럽다. 예쁘긴 하구먼, 근데 나이가 몇 살이래요? 젊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예쁘구먼 숙덕숙덕.... 여자의 죄명은 살인이다. 사람들은 더 숙덕거린다. 저런 미모의 여자가 사람을 죽였다고? 누구를? 살해당한 대상을 알게 되자 배심원석 방청석 모두 크게 동요한다. 젊은 남자를 유인해 살해한 것이다! 심지어 귀족 애인이 있음에도 아들뻘인 남자를 호텔 방으로 끌어들여 죽인 것이다! 아니, 저 가녀린 여자가? 저렇게 부유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여자가? 대체 왜?! 한데 이상하다. 여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다. 내가 죽였노라고 순순히 인정하기만 한다. 그저 법정에서 빨리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애인도 있는 여자가 젊은 남자까지 탐하다가 죽여버렸구만! 온 세상이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정말 이 남자를 죽였을까? 그게 진실이라면 왜 죽였을까? &lt;제자벨&gt;은 그 사연을 숨 가쁘게 펼쳐놓는다.<br><br>법정에서는 여자를 물어뜯으며 신이 난다. “피고인과 백작의 약혼은 꽤나 공식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파혼했어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답변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마도 구속받지 않는 방탕한 생활과 이러한 자유가 가져다주는 이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겠죠.” “1930년부터 1934년 10월까지는 어떠한 연애사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 4년 동안 피고인은 몬티 백작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희생자가 될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베르나르 마르탱이라는 스무 살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평민 출신이며 호텔 지배인의 사생아였습니다. 베르나르 마르탱은 파리 문과 대학의 학생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사교계 여성이자 미모와 부를 겸비한 매력적인 피고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피고인, 말해보십시오. 피고인은 정말 이상하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베르나르 마르탱에게 빠져들었습니다. 그 청년을 타락시키고 그에게 돈을 주 다가 결국 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운운....<br><br>그러면서도 여자의 미모를 내내 칭찬한다. “피고인은 미모가 출중합니다. 잔혹한 짓을 저질렀지만 미모만큼은 부인할 수 없죠.” 그러나 늙어가는 여자가 20대 청년의 젊음에 끌렸을 수도 있고, 낯선 남자와의 연애가 선사하는 자극에 이끌렸던 것일지도 모른다면서 소설을 쓴다. 젊은 애인의 별 볼 일 없는 조건에 끌렸을지도 모른다고, 자신과 같은 계급 안에서의 애정 관계에서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청년의 유혹에 넘어갔지만 정신을 차리고 싶었던 여자는 돈을 주고 젊은 애인을 떼어내려고 했을 것이라고 부유한 여성의 오만함이 저지른 일이라고 소설을 쓴다. 그러나 술집 여자나 어린 매춘부만 만나봤던 청년은 여자의 미모와 명성을 떨쳐내기 힘들었으며 그래서 여자를 뒤따라가 협박했고, 그러자 여자는 두려움에 그를 살해한 것이라고..... 정말 이 검사의 추측은, 소설은 진실과 가까울까?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여자의 삶을 좇게 된다.&nbsp;<br>배심원 여러분, 지금 이 법정에서 피해자를 젊은 애인이나 지속한 기둥서방으로 묘사하며 낙인찍으려 들지만, 사실 그는 얌전하고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을 향한 추잡한 추측은 무엇으로도 용인될 수 없습니다. 피해자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던 학생으로, 라탱 지구에서 무척 검소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는 허름한 여관의 작은 방에서 살았습니다. 사망 당시 그의 방에 있던 돈은 400프랑이 전부였습니다. 가진 것도 조촐한 옷가지뿐이고 보석도 없었습니 다. 여기서 배심원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이를 부유한 여자에게 귀여움 받는 젊은 애인이자 끊임없이 협박을 일삼는 사람의 생활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이 여성이, 배심원 여러분의 앞에 있는 이 여성이 자신의 미모와 재력, 사교계 명성을 등에 업고, 젊은 피해자를 유혹해 타락시킨 다음 죽이기까지 한 것이 아닐까요? -p.36<br>검사는 이 여자를 부유한 백작 애인이 있음에도 젊은 남자와 놀아나다 잔혹하게 살해해버린 악녀로 만드는 동시에 피해자인 젊은 남자! 오, 그래 전도유망한 이 젊은 남자에게 너무나 안타까운 서사를 부여한다. 정말 이 젊은이는 검사의 말대로 ‘얌전하고 성실’한 청년이기만 했을까? 이런저런 증인이 등장하면서 여자의 과거 및 현재의 생활에서 속속 놀라운 점들이 밝혀진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이 여자, 글라디스. 빼어난 외모 덕분에 온갖 남자들로부터 숭배와 욕망의 대상이 되면서 애정과 사랑을 받아온 이 여자. 사랑에 빠져 결혼도 했지만 남편을 잃고 또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청혼까지 받아 약혼을 했다가 파혼하고 그러다가 또 이런 젊은 남자와 ‘놀아나기’까지 한 이 여자… 충격적이게도 매춘업소까지 드나들었다는데....... 글라디스는 정녕 기이한 욕망을 지닌, 마음이 병든 탕녀인가?&nbsp;<br>“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신이시여, 저를 지켜주소서.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글라디스는 지나치게 외모를 꾸몄어요. 가벼운 추파나 남자들의 칭찬을 지나치게 좋아하긴 했지만, 그게 죄는 아니잖아요.”<br>“그뿐이라면 죄는 아니죠.”&nbsp; -p.47<br>가까운 친구로 지냈던 이가 증인석에 앉아 한다는 소리이다.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지나치게 외모를 꾸미고 지나치게 남자들의 칭찬을 좋아했다, 지나치게 관심을, 애정을, 숭배를, 사랑을 갈구했다 말한다.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다. 그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궁금하다. 글라디스는 왜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만 한 것일까. 그러나 이 법정에 있는 사람들 누구 하나 궁금하지 않은 것 같다. 어느덧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아름다움이 글라디스를 영원히 떠나버리기라도 한 것” 같고 “영락없이 지쳐버린 늙은 여자”일 뿐이지 않은가. 글라디스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검사의 구형을 듣는다. 법원의 문이 열리고 방청객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온다. “연극이 끝나면 배우를 잊어버리듯 아무도 글라디스 아이제나흐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 그녀의 역할은 끝났다. 결국 흔하디흔한 역할이었던 것이다. 치정 범죄와 적당한 형벌. 글라디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글라디스의 미래와 과거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p.63)&nbsp;<br><br>그러나 &lt;제자벨&gt;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프롤로그 부분만 60여 쪽. 글라디스 아이제나흐,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쩌다 살인자가 되었는지, 피해자는 정말 검사의 증언대로 성실하고 착하기만 한 청년이었는지 1장부터 22장까지 긴박하게 흐르는 이야기에 책장이 절로 넘어간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외모와 젊음에 집착한 이 여자 글라디스. 책장을 덮을 때쯤에도 그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고 이렌 네미롭스키에게 양가적인 감정이 들기도 한다. 여성이면서도 이토록 여성혐오적인 시선으로 여자를 그릴 수 있을까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렌 네미롭스키의 이 뿌리 깊은 여성혐오는 자신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부유했지만 불행했던 어린 시절, 딸에게 애정을 주기는커녕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두었던 어머니를 향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nbsp;<br>“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글라디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br>“결국 인생은 슬픈 거 아니겠어요. 다만 취기 오르고 열정 넘치는 몇몇 순간이 존재할 뿐이죠. 밤에 테라스로 나가 경쾌하고 조금은 황홀한 음악을 들을 때처럼, 아니면 춤 출 때처럼. 아, 말로 설명은 못 하겠지만 그런 게 바로 행복이에요. 우리는 그런 행복을 찾는 거고요.” -p. 103<br><br>글라디스여, 그대에게 말하노니. 꽃은 시든다. 외모도 시든다. 젊음은 간다. 인생은 진다. 사랑도 간다. 시선도 사라진다. 욕망도 사그라든다. 남는 것은 당신 자신뿐. 그렇다면 그 생을 어찌 살아야 하는가?<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8/93/cover150/k93213876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89376</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소멸로 가는 길에 붙잡고 싶은 그것 - [바다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43466</link><pubDate>Tue, 28 Apr 2026 12: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434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2756&TPaperId=172434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534/22/coveroff/895464275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2756&TPaperId=172434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다 (무선)</a><br/>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br/></td></tr></table><br/>

아끼는 밴드의 좋아하는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Since I was born I started to decay” 태어난 이래로 내내 썩어가기 시작했다는,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그런 가사…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시절-그러니까 중2병 시절이라고 하자. 그때도 크게 공감했지만 살아갈수록 늙어갈수록 저 가사는 정말 명언이 아닌가 싶어진다. ‘Teenage Angst’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1996년에 발표되었다. 이 음악을 처음 들을 당시의 나는 사회적 기준으로는 한창 성장 중인, 자라나고 있는 나이였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인간은 사실 태어남 자체가 부패의 과정, 죽어가는 과정, 썩어가는 과정, 소멸하는 과정 그리하여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아닌가.

&nbsp;<br><br>&lt;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gt; &lt;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gt; 등 최근 읽은 책들이 유독 죽음과 상실을 다루고 있어서 저 노래가 가사가 떠오른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읽기를 마친 존 밴빌의 &lt;바다&gt;마저도 그럴 줄이야. “사물들은 지속된다, 살아가는 것은 조금씩 퇴보하지만.”(p.16) 이렇게 말하는 &lt;바다&gt;는 죽음과 상실의 이야기 그 자체이다. &lt;오래된 빛&gt;을 읽고 존 밴빌의 문장에, 스타일에 흠뻑 반해 사두고 안 읽은 지 수 년째인 &lt;바다&gt;를 드디어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도대체 언제 사 둔 것일까? 구매리스트를 검색해 보고 깜짝 놀랐다. 2016년 12월 13일. 무려 십 년 전에 사둔 책이다. 10년 전 나는 이 책을 어쩌다가 사두었을까? 기억은 이토록 허술하다. 망각도 잦다. &lt;바다&gt;는 또한 기억과 망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스의 &lt;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gt;가 그러했듯이… 인간에게 죽음과 상실, 소멸, 기억, 망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자인가보다.<br><br>&lt;바다&gt;에서 죽음은 이르게 찾아온다. 미술사학자인 맥스는 아내를 읽는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내의 곁을 지키다 아내가 떠난 후 그 슬픔을 달래고자 어린 시절 한때를 보낸 바닷가 마을을 찾는다. 죽음을 마주하고 생이 끝나갈 즈음의 인간은 과거의 장소, 특별한 기억이 머문 장소를 찾기 마련인 것일까? 맥스에게는 이 바닷가가 그러하다. 이 바다에서 그는 ‘시더스’라는 이름의 여름 별장에 머물며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한다. 죽은 아내와 또 언젠가는 죽어갈 자신, 그리고 자기 생의 흔적으로 남겨질 책 한 권….<br><br>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곳도 아닌, 이 유년의 바다일까. 이 바다는 그 여름의 소년 맥스에게 특별한,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안겨준 곳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아내 ‘에나’를 만난 덕분에 “태어나기를 딜레탕트로 태어”난 그래서 에나를 만나기 전까지 “부족한 것이라고는 자산뿐”이라고 말하던 이 남자 맥스는 이제는 화가에 관한 책을 쓰면서 유유자적 생을 누릴 수 있는 미술사학자가 되었으나 그 시절에는 참혹하게 가난했다.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자기의 낮은 계급을 누구보다 잘 인지했기에, 또 그렇기에 “내 힘으로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나를 망신시킨 부모를 그 자리에서 지워버렸을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뚱뚱하고 작고 헐벗은 얼굴의 어머니와 돼지기름으로 만든 듯한 몸을 가진 아버지를 바다의 물보라가 일으킨 거품처럼 터뜨려버렸을 것”(p.41)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는 이처럼 빈곤과 계급에 민감한 아이였다.&nbsp;<br><br>소년은 그래서 부를, 부의 지표를 동경한다. 이 가난을 벗어나리라, 이 계급을 벗어나리라, 높은 곳으로 날아가고 말리라 열망한다. 그런 소년 앞에 나타난 그레이스 가족. 부부와 쌍둥이 남매로 이뤄진 가족, 그들은 소년에게 마치 ‘신’처럼 보인다. 신을 동경하며 그 주변을 배회하는 작디작은 인간 맥스는 열심히 그 곁을 얼쩡댄 덕분인지 그들과 가까워진다. 신들과 가까워진다. 소년의 애정 또는 동경은 처음에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소년은 그레이스 부인의 육감적인 매력, 성숙한 매력에 반해 그녀에게 속절없이 빠져든다. &lt;오래된 빛&gt;의 그 소년처럼…. 밴빌의 취향이, 경험이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저 시절의 소년들이 친구의 엄마에게 반하는 것은 흔한 일, 일종의 통과의례인가? 잠시 의문을 품어보기도 한다. 물론 소년의 애정은 이윽고 제 자신에게 어울리는 대상으로 향한다. ‘클로이 그레이스’. 그 소녀에게로. 이렇게 시더스, 이 여름 별장이 있는 그 바닷가는 소년 맥스에게 새로운 세상-신들의 세상-이자 첫 경험들-갑작스러운 격렬한 포옹, 더듬거리며 영원한 사랑을 고백한 순간, 피 맛이 나는 첫 키스, 첫 사랑의 기억과 추억을 안겨준 공간이다.&nbsp;<br><br>그러나 노년의 맥스는 이 추억들을 떠올리며 말한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가 실제로 일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처음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고백한 순간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처음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겹겹의 과거 속에 묻혀 잊혀버렸”노라고….(p.134) 그는 이런 자기에게 놀라 되묻는다. “어떻게 그 애는 한순간은 나와 함께 있다가 그다음 순간에는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곳에, 절대적으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을까? (....) 일단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라지면 그 애는 당연히 허구, 내 기억 가운데 하나, 내 꿈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증거로 보건대 클로이는 비록 나와 떨어져 있다. 해도, 늘 견고하고, 고집스럽고, 불가해하게 그녀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로 떠난다, 실제로 사라진다. (,,,) 나 역시도 떠날 수 있다. 아, 그래, 나 역시도 당장에 떠나서는 본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p.133) 제아무리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일지라도 망각과 소멸은 불가항력이다.<br><br>바닷가에서, 이 여름 별장에서 그는 이처럼 과거의 기억을 헤맨다. 딸인 클레어가 “과거 속에서 사시네요.” 핀잔을 줄 정도이다. 그는 왜 이토록 늦은 나이에 들어서 과거에, 그 오래된 기억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가 생각하기에 ‘삶,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어린 시절의 맥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돌아보니 그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안, 아늑함, 그런 것들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들어가버렸다. 그는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노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을 갈망했다. 그리고 바로 과거가 그에게 그러한 은둔처이다. 그렇기에 그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내며 열심히 그곳”(p.62), 과거로,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nbsp;<br><br>언제나 자기의 출신을 부끄러워했던 아이. 애초부터 훌륭해지려고 노력했던 아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그런 소년이 그레이스 가족에게, 클로이 그레이스에게 원했던 것은 그가 말한 대로 그 가족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같은 수준에 올라가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그 ‘올림포스 산을 기어올라’가는 데 성공한다. 에나라는 부유한 여인을 만나 그 성공에 폭죽을 터뜨린다. 생의 불꽃을 태워 올린다. 그러나 공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일평생 살아온 나, 딜레탕트로 태어나 딜레탕트로 살아가는 자기, 노년의 맥스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nbsp;<br>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스스로가 싫었다. “내가 싫어한 것이 나라는 사람, 그러니까 독특하고 핵심적인 나였던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한 것은 나의 출생과 가정교육이 개성 대신 나에게 부여한 정서, 경향, 수용한 관념, 계급적 집착 등의 덩어리”였노라 고백하는 맥스. 자신은 개성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노라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또는 가졌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가져본 적이 없노라고. 자신은 늘 독특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며, 가장 강렬한 소망은 독특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었노라고 말하는 맥스. “왜 당신 자신이 되려 하지 않아?” 에나의 이 질문은 평생 더 높은 곳을 꿈꾸었으나 진정한 자아는 망각한 한 남자의 본질을 건드리는 뼈아픈 물음이었을지도 모른다.&nbsp;<br><br>“너 자신을 알라” 유년의 바닷가를 찾아 과거의 기억 속을 거니는 이 늙은 남자의 사투는 그래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일 것이다. 사별 후 슬픔에 젖은 그에게는 오직 과거만이 “견딜 수 없는 현재로부터 유일하게 가능한 시제”이자, 가장 생명력 있게 고동치는 “두 번째 심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서는 지나간 생을 다시, 또 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킬 것이다. 기억 속에서는 아내도 살아있으며 딸 클레어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놈과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고, 첫 사랑인 그녀들로부터도 환대받았기에 영원히 안식하며 은둔할 수 있으리라..... “인생은 많은 가능성들을 잉태하고 있다.”(p.240) 잊히고 소멸하고 사라지고 사멸하는 것들도 기억에서는 과거에서는 되살아나 찬란히 빛나기도 하며 영원히 불꽃을 태우기도 한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삶의 모든 것이 삶을 떠나기 위한 긴 준비에 불과한 것”(p.95)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멸의 기나긴 여정에서 인간은 기억과 추억이 있기에 살아갈 의지를 찾는 것일지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534/22/cover150/895464275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5342233</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인간의 영혼이 파괴되면 일어날 수 있는 천삼백칠십육 가지의 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27901</link><pubDate>Mon, 20 Apr 2026 1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2790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030788&TPaperId=17227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3/6/coveroff/k2920307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88393X&TPaperId=17227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45/87/coveroff/897288393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835245&TPaperId=17227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73/88/coveroff/k18283524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5만 원짜리 위조지폐 석 장이 손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지폐라 그걸 사용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리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조지폐이므로 사용하지 않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아닌가? 내가 너무 순진한가? 그렇다면 나의 경우로만 한정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내 손에 들어온 5만 원 권 석장이 위조지폐인 걸 안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모른다. 두 눈 딱 감고 빨리 다 써버려?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신고조차 귀찮아서 폐기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신고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신고하는 선에서 끝낼 것 같다.<br><br>톨스토이의 &lt;위조 쿠폰&gt;이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시작은 평범하다. 어느 저녁.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자신의 방에서 귀찮은 서류를 정리 중이다. 그때 아들이 노크하며 들어온다. 아들의 이름은 ‘미티아’로 김나지움 5학년이자 열다섯 살 소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인 소년. 아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오늘이 1일입니다.” 말한다. 용돈을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달 1일, 3루블의 용돈을 주고 있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언짢은 얼굴로 지폐용 지갑에서 2루블 50코페이카짜리 쿠폰을 찾아서 꺼내고, 동전용 지갑에서 은화 50코페이카를 세어서 건네준다. 그런데 소년은 말이 없다. 건넨 돈도 받지 않는다. 다음 달 용돈까지 미리 달라는 말만 할 뿐이다.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요청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묻는다. 친구에게 돈을 빌렸는데 오늘까지 갚아야 한다는 아들. 갚지 않으면 자기의 명예가 떨어진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한심한 작태에 화를 내며 채찍으로 때리기 전에 당장 방에서 나가라면서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br><br>3루블을 받고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 채 방에서 쫓겨난 미티아는 분노가 치솟는다. 그깟 3루블 좀 미리 주면 안 되나? 다른 친구들은 용돈을 더 많이 받는데! 그런 와중에 돈을 빌린 친구로부터 편지가 온다. 내게 빌려간 6루블을 갚으라고 벌써 세 번이나 부탁했건만 너는 여태 어물쩍어물쩍 넘어가기만 한다. 네가 그 돈을 갚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친구가 너를 경멸하느냐 존대하느냐가 정해질 것이다. 정직한 이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지..... 미티아는 다급한 마음에 엄마에게 말해보지만 엄마도 오늘은 돈이 없다면서 내일이면 생길 테니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티아는 오늘 당장 돈이 필요한데 내일이면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내고 집을 나선다. 전당포에 시계를 맡길까? 아버지로부터 받은 3루블과 시계를 갖고 친구 마힌을 찾아간다.<br><br>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힌은 미티아와 마찬가지로 중학생이었는데 중학생인데도 콧수염을 길렀고 이미 카드 도박을 했고, 여자들도 경험해보았으며, 언제나 돈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약간 불량한 학생이다. 미티아가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으니 마힌은 그게 무슨 고민거리나 되느냐며 쿠폰을 위조할 것을 종용한다.<br><br>“더 나은 방법이 뭔데?”<br>마힌이 쿠폰을 손에 들고 말했다.<br>“아주 간단해. 2루블 50코페이카 앞에 1을 덧붙이는 거야. 그럼 12루블 50코페이카가 되지.”<br>“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br>“1000루블 표에다가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처리한 적이 있지.”<br>“믿기지 않는데?”<br>마힌은 펜을 쥐고 왼손가락 하나로 쿠폰을 펴면서 말했다.<br>“그렇게 할 거야?”<br>“하지만 나쁜 짓이잖아.”<br>“무슨 어리석은 말이야.”<br><br>그렇게 위조 쿠폰을 완성한 마힌은 미티아와 함께 사진 용품을 파는 상점으로 향한다. 때마침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을 넣을 사진액자가 필요하다나. 상점에 가니 선량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액자 하나를 고르고는 위조 쿠폰을 내밀고 잔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이 여주인은 지독한 근시이다. 액자 가격은 1루블 20코페이카인데 아이들이 12루블이나 되는 큰돈을 주니 여주인은 잔돈은 없느냐며 묻는다. 그러나 마힌과 미티아는 없다면서 빨리 거스름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결국 여주인은 액자를 포장한 후 10루블짜리 지폐 한 장, 20코페이카 동전 여섯 개와 5코페이카 동전 두 개를 꺼내준다. 상점을 나온 마힌은 미티아에게 10루블짜리 지폐를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갖는다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진다. 미티아는 엉겁결에 생긴 10루블로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br><br>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날까? 그렇다면 톨스토이가 아닐 것이다. 잠시 아내에게 가게를 맡겼던 상점주인이 돌아와 판매 대금을 파악하기 시작하는데, 상점주인은 쿠폰을 보자마자 위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내에게 소리친다. 바보! 멍청한 여편네! 욕을 퍼부으며 험담을 멈추지 못한다. 아내의 마음에는 그동안 남편에게 당해온 일들이 떠올라 분노가 치민다. 저놈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떠오르자 그런 마음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이 손해를 상점주인은 어떻게 처리할까? 간단했다. 손쉬웠다. 땔감을 가지고 온 농부에게 그 위조 쿠폰으로 값을 치른 것이다. 마힌과 미티아가 만든 12루블짜리 위조 쿠폰은 이렇게 상점주인의 아내 손에서 남편 손을 거쳐 땔감을 팔러 온 농부의 손으로 옮겨간다.&nbsp;<br><br>땔감을 팔러 다니는 농부 이반은 처음에는 쿠폰을 받기가 꺼려져 주저하면서 돈으로 달라고 부탁하지만 상점주인은 돈이 없다면서 한사코 쿠폰으로 값을 지불한다. 망설이던 이반도 상점주인이 “명망가처럼” 보이기 때문에 쿠폰을 받는 데 동의한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상점의 여주인도 남편에게 항의할 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날 감쪽같이 속여서 난 미처 몰랐어요. 중학생들이었어요. 한 아이는 잘생겼고 정말 품위 있게 보였다니까요.” 그 말을 듣자 남편은 더 욕을 퍼부었다. “난 쿠폰을 받을 때는 거기에 적힌 액수를 보고 확인해. 그런데 당신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주제에 꽃미남처럼 생긴 그놈들의 얼굴만 보고 있었던 거야.”&nbsp;<br><br>인간은 그럴듯한 외모에 잘 속는다. 사기꾼은 그래서 번드르르하게 차려입고 위장한다. 좋은 시계, 명품 가방, 브랜드 옷, 구두, 자동차, 번듯한 직업, 신분증…. 지금도 대다수 사기꾼들은 그렇게 자기를 위장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혹해서 투자를 하고 돈을 갖다 바치며 더 큰 재산을 노리다가 패가망신한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저 시대에도 역시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혹해 쉽게 속는다. 아주 잘생긴 소년, 품위 있게 보이는 그 소년은 위조 쿠폰을 만들었고, 명망가처럼 보이는 신사는 위조 쿠폰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어리숙한 농부를 속인다..... 농부 이반은 땔감을 다 팔고 집으로 가던 중, 너무나 추워 몸이나 녹이고자 들어간 선술집에서 이 쿠폰으로 계산을 하는데, 아뿔싸! 선술집 주인은 위조 쿠폰이라며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 그때도 이반은 이렇게 항변한다. “그 쿠폰은 진짜예요. 신사분이 준 거예요.” 오, 이런 어쩌면 좋은가. 그 상점 주인은 정말 신사인가?!<br><br>좋은 방법이 있다. 대질심문을 하면 된다. 이반은 경찰들과 함께 상점을 찾아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한다. 상점주인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가 정말 신사였다면 이때라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자신도 위조쿠폰인 줄 몰랐다고, 착각했노라고 미안하다고. 그러나 그는 신사가 아니었다. 신사였다면 애초에 위조 쿠폰을 어리숙한 농부에게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상점을 찾아온 경찰과 이반에게 딱 잡아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아주 놀란 얼굴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당신 미쳤나 보군. 이 사람 처음 봐요.” 이반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입니다. 당신의 임종 때를 생각하십시오.” 한 술 더 떠 예브게니는 상점 일꾼 바실리를 앞세운다.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땔감은 늘 상점에서 산다고 증언하도록 미리 손을 써둔 터였다. 그 대가로 그에게 5루블이란 돈까지 주면서..... 바실리는 상점 주인이 일러준 대로 땔감을 농부에게 산 적도 없을뿐더러 농부 이반은 본 적도 없다고 진술한다.<br><br>이 억울한 남자 이반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반은 분노를 참지 못해 없는 돈에 변호사까지 써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애쓴다. 그러나 법은 이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선량한 신사분인 예브게니와 그의 충실한 일꾼이자 하수인 바실리의 증언에 더 무게를 실어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추악한 짓을 해서 괴로웠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진술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법정에서도 위증을 하고, 바실리에게도 위증을 하도록 또 종용한다. 이때도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위증의 대가로 10루블을 건넨다. 그나마 양심이 있었는지 예브게니는 이반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소송취하 비용 5루블을 자신이 내준다. 덕분에(?) 이반은 비방혐의로 3개월간 감옥에 갇힐 처지였다가 풀려난다. 중학생들이 시작한 위조쿠폰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톨스토이는 이렇게 쓴다.&nbsp;<br><br><br>그러나 그건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br>그 이후 바실리와 이반에게 일어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nbsp;<br>위조 쿠폰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바실리도 가진 자들이 도덕률을 어기며 산다고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그들만의 법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더 엄밀히 말해 그 사건에 관련된 거짓 증언을 하고서도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또다시 10루블을 벌어들이게 되자, 바실리는 자신이 모르는 어떤 도덕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살았고, 그런 삶을 지속해 나갔다.&nbsp;<br>위조 쿠폰으로 인해 불행을 당하면서부터 이반 미로노프는 오랫동안 술을 마구 퍼마셨는데 전 재산을 술로 탕진할 지경이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술 마시는 데 써버릴지도 모를 옷가지, 말의 멍에 등 모든 것을 감추어버렸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이반 미로노프는 그를 능욕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형제들의 소유를 빼앗아가는, 그곳에 사는 부자들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nbsp;<br><br>단지 바실리와 이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위조 쿠폰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자들의 마음속에는 속았다는 분노와 함께 이 세계는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는, 정의롭게 살아봤자 손해만 본다는 그릇된 생각이 싹트면서 거대한 악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톨스토이는 위조된 쿠폰이 저마다 인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끝까지 파고든다. 정의가, 윤리가,&nbsp; 도덕이, 양심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분개하면서 마음이 영혼이 무너지면 인간은 얼마나 한없이 망가지는지, 시궁창으로 떨어지는지 끝까지 보여준다.&nbsp;<br><br><br>내가 톨스토이의 &lt;위조 쿠폰&gt;을 읽은 까닭은 지난 금요일,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lt;돈 L'Argent&gt;(1983)을 보기 위해서였다. &lt;돈&gt;은 &lt;위조 쿠폰&gt;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브레송의 &lt;돈&gt;은 시작부터 톨스토이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다. 김나지움 중학생들이 파리의 고등학생 소년들로 바뀌었고 장작을 팔던 이반은 중유를 배달하는 이봉으로 조금 달라졌을 뿐 얼개는 비슷하다. 브레송은 “출발점이 된 작품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lt;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gt;, p.413) 브레송은 톨스토이의 아름다운 단편들 중 하나인 &lt;위조 쿠폰&gt;은 그에게 단순한 출발점 이상의 것을 주었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악, 마지막에 솟아오르는 선이라는 개념”(같은 책, p.416)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액수의 가짜 돈으로 인해 악이 거대한 눈사태처럼 미친 듯이 밀려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은 톨스토이나 브레송이나 마찬가지이다. 단지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브레송의 영화에서보다 훨씬 먼저 선(善)이 솟아오른다. 소설은 3분의 2가 종교적이고 복음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톨스토이 원작을 감탄하면서 읽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등등 종교적으로 결론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톨스토이구나, 에이... 잘 나가다가, 하고 좀 김이 빠졌는데 브레송의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달라진다. 브레송의 영화에선 속죄나 구원 같은 생각은 작품 끝에 가서야 등장하는데 그 마저도 정말 그것이 속죄이며 구원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비정하게 더없이 비참하게 끝난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톨스토이보다는 브레송의 시선에 더 동의한달까.<br><br>“사회가 그를 버린 거죠. 이봉이 그렇게 여러 사람을 죽인 건 절망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돈은 가증스런 가짜 신입니다.”&nbsp; -로베르 브레송, &lt;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gt; p.415<br><br>“아, 너무나 큰 죄를 짓는 거예요. 대체 어쩌시려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죽인다면, 당신의 영혼은 더욱더 파멸로 치닫게 될 거예요… 아, 아!”&nbsp; -레프 톨스토이, &lt;위조쿠폰&gt;<br><br><br><br><br>위조된 지폐를 들여다 보고 있는 상점의 여주인.........&nbsp;<br><br>이 지폐는 위조지폐입니다! 이봉(이반)의 삶은 속절없이 무너져간다......<br><br>마힌과 미티아(브레송의 영화 속에서는 물론 다른 이름) 이 못된 놈들 때문에.......<br><br>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73/88/cover150/k1828352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738859</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브레송과 함께 한 오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08125</link><pubDate>Fri, 10 Apr 2026 1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081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288&TPaperId=17208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8/22/coveroff/89329092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740&TPaperId=17208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12/76/coveroff/89320387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030788&TPaperId=17208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3/6/coveroff/k29203078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종일 비가 내린 어제, 목요일. 연차를 내고 하루 쉬었다. 비가 내러 출근하기 싫어서는 아니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 중인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퇴근 후 시간을 내서 봐도 되기는 하지만 하필 어제 내가 꼭 보려던 영화 두 편을 함께 상영하기에, 하루에 몰아볼 심산으로 휴가를 냈던 것이다. 오전에는 고양이들과 뒹굴뒹굴 부둥부둥. &lt;남성 판타지&gt;를 두 시간쯤 읽고(900쪽 돌파!), 집안 청소를 마친 후 집을 나섰다. 비가 내려 한산한 평일 오후 정동은 나름 운치 있었다. 3시를 조금 넘긴 시간,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브레송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앉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일찌감치 예매해둔, 외따로 떨어진 자리에 착석. 불이 꺼지고, 아트시네마 특유의 음악이 흐르는 순간..... 삶이 별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싶어진다.<br><br><br>첫 번째 영화는 &lt;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gt;(1966). 전에 본 영화이기는 하지만&nbsp; 오래되기도 했고, 지금의 나이에 보면 또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올까 싶어서 극장을 찾았다.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브레송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단순한 플롯(그러나 심오한)과 극적이지 않은 전개로 펼쳐진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느 당나귀의 일생이다. 그러나 어제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낌 감정은 지독하게 참혹하다는 것. 커다란 눈망울의 어린 당나귀가 어느 집에 팔려온다. ‘마리’라는 소녀의 집이다. 이 어린 당나귀를 끌어안고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마리와 또 다른 소년 ‘자크’. 마리와 자크는 소꿉동무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당나귀와 함께 여름 한철 즐겁게 보낸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자크는 내년에 또 오겠다면서 차에 올라타고 손을 흔들며 사라져간다. 그 순간 카메라는 마당의 나무벤치에 자크가 새겨둔 ‘마리♡자크’라는 낙서를 보여준다. 내년에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마리와 자크의 풋사랑도, 곧 덧없이 희미해지리라......<br><br>시간이 흘러 당나귀도 마리도 훌쩍 자랐다. 성년기의 그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마리의 삶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발타자르도 마찬가지이다. 마리의 아버지가 횡령 혐의를 쓴 채 빚에 허덕이며 가세가 나날이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청년이 되어 다시 나타난 마리의 첫사랑 자크는 마리의 아버지로부터 문전박대당하고 쫓겨난다. 보아하니 부유한 자크 네 집의 땅을 대신 관리해주던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들 간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돌아서는 자크. 그는 여전히 마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리의 귀에 들려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생의 무게에 비하면 공허하기만 하다.&nbsp;<br><br>딸과 아내를 돌보기보다 자신의 명예를 되찾는 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한 마리의 아버지는 저놈의 당나귀처럼 우스꽝스러운 걸 집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 또한 우습게 보는 것이라면서 발타자르를 내다 팔아버린다. 왜 애꿎은 동물에게 분풀이를 하는가. 인간은 이토록 잔인하고 어리석다. 이때부터 발타자르의 삶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마리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주인을 만나기는커녕 거의 날마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수레를 끄는 그런 당나귀의 삶. 한데 가혹하다 못해 이리도 가혹할 수가.&nbsp;<br><br>발타자르는 이번엔 빵집에 팔려 가는데 이 빵집의 아들, 제라르는 망나니 중에도 천하의 개망나니라 불량패거리와 함께 못된 짓을 일삼는 놈이다. 그래도 아들놈이라고 정신 좀 차리게 할 요량인지 그놈의 애비 애미는 아들에게 당나귀를 이용해 마을 곳곳에 빵을 배달하고 돈을 받아오는 일을 시킨다. 그런데 발타자르도 사람 보는 눈은 있는지 제라르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그럴 때 이 제라르란 놈이 하는 짓이란! 신문지에 불을 붙여 발타자르의 꼬리에 매다는 것이 아닌가! 엉덩이에 불이 붙으니 그 고통에 발타자르는 화들짝 놀라 달리기 시작한다. 분노가 치미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br><br>이 제라르란 놈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들 중 가장 악한 자이다. 발타자르에게 수시로 못된 짓을 일삼는 것으로도 모자라 발타자르의 첫 주인인 ‘마리’에게도 가장 나쁜 짓을 하는 놈이다. 애초부터 마리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훔쳐보던 제라르는 마리가 발타자르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당나귀를 이용해 마리를 유혹한다. 여러 차례 마리에게 거부당하면서도 결국 마리를 손아귀에 넣는 것에 성공하는데, 이때부터 마리의 삶 또한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비단 순진무구하고 무해한 동물 당나귀 발타자르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순진무구하고 연약한 소녀 마리의 삶이 어떻게 주변 인간들에 의해 망가지고 처참해지는지를, 그 두 가련한 생명체의 안타까운 삶을 극도로 건조하게 보여준다.<br><br>이 작품에서 마리 역을 맡은 소녀는&nbsp;&lt;사랑의 사막&gt;&lt;독을 품은 뱀&gt;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외손녀이다.<br><br>브레송은 &lt;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gt;에서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두 가지 생각, 두 가지 도식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당나귀의 일생은 인간과 똑같은 단계를 따라가는 것이다. 유년기에는 애정의 손길이, 성년기에는 노동이 그리고 생의 한가운데는 재능 혹은 타고난 재주, 그리고 죽음을 앞둔 신비스러운 시기. 이렇게 그려지는 당나귀의 삶. 당나귀의 여정은 저마다 인간의 한 악덕을 상징하는 사람들을 거쳐 가고 발타자르는 그 악덕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죽는다. 마리의 아버지는 명예욕과 아집 때문에, 제라르는 욕정 때문에, 그 후의 주인 아르놀드는 탐식(알코올) 때문에, 또 그 후의 주인은 탐욕 때문에 발타자르를 착취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nbsp;<br><br>브레송이 말했듯이 마리는 또 다른 당나귀이다. 당나귀와 평행으로 나아가는, 결국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고통당하는 인물로 인색한 인간에게 발타자르가 귀리조차 얻어먹지 못하듯이 마리도 그로부터 음식을 얻지 못하고 단지 잼 한 병을 가져다가 먹을 뿐이다. 잼 한 병으로 욕정의 대상이 되고..... 브레송은 마리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를 버리는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발타자르의 삶뿐만이 아니라 마리의 삶도 너무나 처연해서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발타자르가 인간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듯이 남자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는 마리의 삶.<br><br><br><br><br>브레송의 영화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lt;당나귀 발타자르&gt;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이 깃들어있다. 물론 이 영화는 브레송이 10년에서 12년에 걸쳐 생각한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lt;백치&gt;를 읽기 전부터 구상은 어느 정도 마쳤으나, 브레송은 어느 날 &lt;백치&gt;를 다시 읽으면서 놀라운 구절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백치가 동물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 사람들이 백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동물을 통해서 삶을 보게 된다는 더없이 멋진 생각에서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더욱 깊이 있는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nbsp;<br>“그럴 때 나를 사로잡곤 하던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기억납니다. 난 울고 싶었죠. 모든 게 날 놀라게 만들고 나에게 불안을 안겼어요. 그때 날 끔찍하게 짓누른 느낌은 바로 모든 게 나에게 낯설다는 거였죠. 하지만 그 암흑을 완전히 벗어나던 순간도 기억납니다. 바젤에서 도착해서 스위스에 첫발을 디딘 날, 저녁이었어요. 시장에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어났지요. 그 당나귀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겼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속이 갑자기 환해졌죠.” -도스토옙스키, &lt;백치&gt;<br>이어서 본 &lt;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gt;(1977)는 브레송 후기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암울한 작품으로 꼽힌다. 극도로 염세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에 자살을 모방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18세 미만 관람이 금지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인공 샤를은 사랑은 물론 정치 집회, 종교 모임, 정신분석 등을 전전하지만 끝내 자기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마약에 중독된 친구에게 돈을 건네 자신의 살해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무얼해도 허무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샤를이 결국 친구들의 권유로 정신과의사를 만나러 가는데, 거기서 자신은 우울증이 아니라고,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인상 깊다.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 아닐까.... 남들처럼 그냥 눈 감고 쉽게 살면 되는데, 그걸 못하면 마음이 병들기 쉽지 않을까. 브레송은 이 작품에서 “경박한 낙관주의, 돈만 있으면 다 잘된다는 믿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두고 미친 듯이 날뛰는 사람들의 힘의 우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샤를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상태, 죽음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 거기에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을까.....<br><br><br>&lt;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gt;(1977)<br><br>극장을 나와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lt;당나귀 발타자르&gt;에서 흐르던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20번 2악장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도 없구나 싶어진다. 샤를, 너도 이런 데서 삶의 이유를 찾아보지 그랬니.<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3/6/cover150/k2920307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330688</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인간은 그렇게 치졸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믿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03823</link><pubDate>Wed, 08 Apr 2026 1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0382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034&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292/13/coveroff/893643803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54866&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9/46/coveroff/899845486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6077&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45/47/coveroff/s53293279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8049&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83/coveroff/893201804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026&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899/80/coveroff/8936438026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20382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최근 한국문학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 시작은 정영문의 데뷔작인 《겨우 존재하는 인간》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1997년에 출간되었으나 곧 절판, 소문으로만 전해졌던 명작 중의 하나였다. 몇 해 전 복간된 덕분에 나도 이제야 읽을 수 있었다. 소문대로 좋았다. 내가 이 작품을 좋게 읽은 까닭은 아마도 한국문학이면서도 한국문학스럽지만은 않은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정영문의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 볼 생각이다).&nbsp;<br><br> 번역 문장이 아닌 한국어로 쓰인 글을 읽을 때의 즐거움도 오랜만에 느꼈기에, 내친김에 다른 한국문학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펼쳐든 책이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이다. 내가 한국 현대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놀라워할 정도로(ex 다락방) 잘 안 읽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애란은 드문드문 읽어온 작가이기는 하다. 첫 작품집인&nbsp; 《달려라 아비》부터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에 이어 이번에 읽은 것까지 네 권은 읽었다. 김애란의 팬인가 싶기도 할 텐데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김애란을 읽게 된 것은 그 무렵 운영하던 블로그의 이웃들이 김애란 책, 한 번만 읽고 감상평 좀 남겨달라고 해서였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를 읽고서 잘 쓰는 것 같기는 한데 내 취향은 아니라고 했다. 너무 구질구질하다고… 그때부터 그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김애란의 작품을 ‘구질문학’이라고 명명했었다.<br><br>나는 그 가난함과 구질함을 어디서 느꼈던가. 《달려라 아비》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것은 많이 사라졌지만 《침이 고인다》 또한 여전히 ‘엄마’와 ‘가난한 삶’ 그리고 비루한 ‘서울 상경 살이’가 거의 모든 단편의 주제이자 소재였다. 《침이 고인다》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방’을 얻기 위한 20대의 남루한 투쟁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어떻든 자신만의 ‘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많이 부족하다. 그 ‘방’은 비가 오면 물이 콸콸 들어오는 반지하의 방이기도 하고, 느닷없이 찾아온 후배에게 속절없이 침범당한 작은 원룸이기도 하고, 신림동의 고시원이기도 하고, 옥탑방이기도 하고, 다 큰 남매가 한 공간에서 같이 자고 먹고 해야 하는 원룸이기도 하고, 노량진 학원가의 학사촌이기도 하다.&nbsp;<br><br>그런 김애란의 인물들은&nbsp;《바깥은 여름》에서 드디어 자기 집을 가진 이들이 된다. 널찍하고 화려한 집도 아니지만&nbsp;《침이 고인다》에서 방을 찾아 헤매던 청춘들이 어느덧 ‘자기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낡고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집’을 소유하고는 20대의 삶이 아닌 30대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도 낳고, 그 아이로 인해 생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자식 때문에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도,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도 그때보다는 어른이 되었구나, 자라고 있구나, 그럼으로써 삶이 던져주는 무게를 조금 더 묵직하게 느끼는구나 싶어졌다. 그런 변화가 조금은 반가웠던 기억도 난다.<br><br>《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기 시작하고 조금 놀랐던 점은 가난과 구질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더 성장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부유한 자들이 모여서 여는 ‘홈 파티’(&lt;홈 파티&gt;)에 초대를 받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lt;숲속 작은 집&gt;). 하긴 《달려라 아비》를 쓸 때보다 작가 자신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가 창조한 인물들 또한 20대에서 30대를 거쳐, 40대로 나이 들면서 생활도 조금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삶이 조금씩은 달라졌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녕이라 그랬어》의 단편 하나하나를 읽어나감에 따라 경제적 생활은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빈곤하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답답해졌다. 아니 마음의 빈곤함, 가난함은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한숨이 나왔던 것일까.&nbsp;<br><br>초대받은 ‘홈 파티’ 자리에서도, 해외여행을 떠나서도 계급과 돈의 위력을 줄곧 실감하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의 가난함은 &lt;좋은 이웃&gt;에서 절정에 달한다. 서울에서 전세살이 중인 어느 40대 부부는 늘 관심사가 자가 소유의 집, 그것도 아파트이다. 남편은 새로 들어온 신입이 ‘나보다 부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회사에서도 동료들을 단지 부(富), 집을 소유했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방문 학습지 교사였다가 독서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의 관심사 또한 온통 자기 집의 소유 여부이긴 마찬가지이다. 평소 자신이 특별히 ‘아끼던’ 학생 ‘시우’(그러나 뭐랄까 가난해 보이기 때문에 연민하면서 계급적 우월감을 느끼던 대상)가 어느 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황해한다. 자기 마음의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스스로 목도하는 것이다.&nbsp;<br><br>그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겁기만 하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하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자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낡은 집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과연 ‘반짝이는 세계’로 가는 것일까? 시우를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생각하다가 아내는 이런 쪼잔한 후회까지 하기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 원 더 올려 받을걸…….” 급기야 시우의 수업을 그만둘까 생각까지 한다. 시우가 자신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br><br>시우네 이사 소식을 들은 남편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자가래?” 남편의 이 노골적인 질문에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별말 아닌데 왜 수치심이 드는지 알 수 없었”노라 말한다. 그러나 본인도 알고, 읽는 나도 안다. 그 수치심은 바로 마음의 빈곤함/가난함 때문 아닐까. 그토록 아끼고 예뻐하던 학생 시우가 자기보다 낡고 허름한 집에 살 때는 괜찮던 것들이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니 왠지 배가 아프다. 시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열패감, 열등감에 휩싸여 수업을 그만둘까까지 생각하는 너무나 가난한 마음.<br><br>이렇게 사사건건 나와 타인의 삶을 주로 부와 계급으로 비교 평가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든 단편에서 등장한다. 여행을 떠나 에어비앤비로 빌린 집에서조차 “모국에서의 오랜 관성 탓인지 집주인 앞에 서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자꾸 환하게 웃게”되고, 부유하고 풍족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면서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생각하기도 한다(&lt;숲속 작은 집&gt;). 이혼한 아내가 새로 만나는 듯한 남자의 인스타를 염탐하면서 그의 사진에서는 “생활의 흔적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면서 “아무리 좋은 신발과 가방을 찍어도 은연중 드러나기 마련인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 계급의 표지”(&lt;이물감&gt;)를 찾아보려 애쓰는 한심하고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nbsp;<br><br>심지어 이 남자 ‘기태’는 그-‘최 대표’의 안색과 표정에서 ‘내장의 관상’까지 본다. 여기서 말하는 내장의 관상이란 ‘기태’가 “거래처의 고위 간부나 임원을 접대하며 종종 봐온 낯빛”이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라나.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라고 한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편안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며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다.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이라 불렀다.(&lt;이물감&gt;), 인스타에 올라간 타인의 사진을 보면서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에서 계급 표지를 찾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장의 관상 운운하는 장면에선 실소를 떠나 뭐랄까 불쾌한 기분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단편 속 인물은 도배사가 자기 집을 방문했을 “남의 집에 자주 다니는 업자들은 대충 살림만 봐도 그 집 분위기며 사정을 안다던데, 지금 저 여자에게 우리 집은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기도 한다(&lt;빗방울처럼&gt;).&nbsp;<br><br>이런 장면, 묘사, 문장들을 내내 읽다 보니 문득 정말 사람들이 다 이렇다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치졸하기도 한 존재라 잠시나마 그런 비루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안녕이라 그랬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관심사는 돈과 계급, 아파트이다. 그들은 거의 전부가 부유함과 가난함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자기 또한 그렇게 평가받으리라고 단정 짓고, 그러면서 내면으로 끊임없이 이런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 기를 쓴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니 경악스럽다 못해 진저리가 쳐친다. 대다수 한국인이 돈에 환장했고, 부유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서울에 자가 아파트, 빌딩 갖는 게 꿈이라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nbsp;&nbsp;<br><br>《침이 고인다》의 어느 단편에서인가 “서울이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구절이 있다. “멀리서 보니 한없이 가난해 보이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와 신림동 고시촌을 “지나가는” 수많은 젊은 청춘, 사회에 제대로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학원 강사”와 같은 이른바 “지식인의 막장 직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의 고단한 삶이 그려지는데 이런 고단한 삶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단편의 문장처럼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데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노라니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 인간이 자신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스스로 이렇게 자멸해도 되는 건가,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이렇게 한없이 낮아져도 되는 건가 싶어졌다.&nbsp;<br><br>원룸을 벗어나 방 두 칸짜리 빌라로 이사를 가고 낡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살게 되고, 또 언젠가는 서울의 자가 아파트에 입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재산의 규모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또 누군가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을 시기하는 치졸한 마음이라면, 그래서 내 삶이 한없이 비루해지는 마음이라면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 서울의 자가 아파트를 갖게 될지언정, 해외로 여행을 다닐지언정 나에게는 여전히 그 마음만큼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문학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nbsp;<br><br>인간의 마음이 하나같이 다 그럴까? 서울 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이 정말 하나같이 다 그럴까? 드물지도 모르겠지만 타인의 재산에, 나의 재산 불리기에 관심 없는 이들도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런 문학을 읽고 싶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덮으니, 언젠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을 때 느낀 당혹감, 그러니까 서울에서,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이 다 이렇게 너무 계산적이고 날카롭고 이기적이기만 하다고?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불쾌함과 씁쓸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의 대다수 한국문학은 주변을 관찰하고 그 일상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잘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가는 자들의 숭고함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고전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에서 인간은 세계에 번번이 패배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지고 말지언정 결국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려고 애를 쓰기에.<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손목 나가는 즐거움....(엥?)</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86013</link><pubDate>Tue, 31 Mar 2026 1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860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4618&TPaperId=17186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0/79/coveroff/893202461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565&TPaperId=17186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1/63/coveroff/8976829565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7808&TPaperId=17186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off/k1121378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2026년 상반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의 &lt;남성 판티자&gt;가 아닌가 싶다. 파시즘이 탄생해 나치즘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고찰한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비단 파시즘, 나치즘뿐만이 아니라 남성 정체성에 대한 뛰어난 분석서로 파시즘 동조 집단과 그들의 여성혐오 성향까지 파헤친다. 문화비평, 영화 이론, 페미니즘, 남성성 연구, 정신분석학, 젠더 이론, 독문학, 독일 역사학 등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셀과 극우파, 극우 남성성이 대두되는 요즘 더 깊이 연구해 볼 텍스트라 생각된다.&nbsp;<br><br>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br><br>일단 책의 서문에서 저자의 말에서부터 꽂혔다. 그러니까 이런 문장.<br>아버지는 동프로이센 농장주의 혼외자로 태어나 친척 아주머니 손에 길러졌다. 그런 까닭에 번듯한 가정을 몹시도 중시하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철도 공무원이었다. 당신 말마따나 한 인간이기 전에 몸과 마음을 다한 철도 공무원이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척 훌륭한 파시스트였다. 자식들 잘되라는 좋은 마음으로 평소에 매타작을 혹독하고도 넉넉하게 베풀곤 하셨다. 나는 훗날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파시즘 교육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양가적이었다. 맞아 싸다고 여기면서도 어쨌든 달래셨다. 그것이 파시즘 교육의 두 번째 단계였다. (p.6)<br>자신의 아버지를 파시스트라 말할 수 있는, 그리고 자기의 가정에서 처음으로 파시즘 교육을 받았노라 증언, 고백하는 이 구절, 통찰에서 이 책은 이미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br><br>&lt;남성 판타지는&gt;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활동하던 우익 민병대 조직 자유군단의 젊은 군인 남성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이 자유군단은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해산되지만 그중 일부는 나치 돌격대나 친위대로 흡수돼 제2차 세계대전 때 중책을 담당한다(예컨대 회스 같은 인물). 그들의 회고록, 일기, 문학 작품, 소설 등의 텍스트를 분석한다. 어제 읽기 시작한 ‘제1장 남자와 여자’에서는 자유군단 소속이었던 7명의 군인들의 회고록을 살펴본다. 그런데 너무 신랄하게 냉소적으로 까고 있어서 읽는 동안 여러 차례 웃음이 빵빵 터졌다. 마치 케이트 밀렛이 &lt;성 정치학&gt;에서 헨리 밀러나 노먼 메일러 냉소적으로 까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br><br>레토라는 군인은 회고록에서 아내에 대해 이렇게 쓴다.&nbsp;<br><br>(...) 아내는 특유의 개성과 빼어난 취향을 한껏 발휘하여 집 안을 장식했다. 역시 괴테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은 화가 티슈바인의 후손다웠다. (...)<br><br>저자는 바로 이렇게 분석한다.&nbsp;“사교생활을 무척 사랑했다.” 외에는 없다. 나머지는 그녀가 고급스러웠다는 내용의 반복이다. 남편으로서는 기분이 좋다. 사교계에서의 남편도 덩달아서 높은 대접을 받으니까. 아내는 “빼어난 취향”을 지녔다. 하지만 조상에게서 물려받았으니 부분적으로는 아내 개인의 덕이다. 괴테와 티슈바인이라는 이름을 끌어다가 죽은 아내를 수식했다. 로스바흐가 두 번째 아내를 칭찬하려고 실러와 하인리히 게오르크를 끌어온 것과 똑같다.&nbsp;<br>레토와 아내 사이에는 실체적인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아내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장황하게 칭찬하는 걸 보면 더욱 심증이 간다. 아내만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친아들 두 명 역시 전사한 후에야 넉넉한 칭찬을 듣는다. 이렇다 보니 레토가 한 문장 이상을 할애해서 친인척을 길게 칭찬하면 독자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싶어서.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 (p.37)<br><br><br>매우 냉소적이고 신랄하다. 아 진짜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이런 문장에서도 빵 터지지 않을 수 업다.&nbsp;<br>(...). 그러나 아내는 이름도 없고 날짜도 없고 역사에도 남지 않는다. 그녀에게 초혼에서 얻은 딸과 아들 쌍둥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20페이지 후에 어쩌다가 잠깐 언급된다. 첫 친아들이 태어나자 레토는 이런 문장을 쓴다. “.... 내 쪽 아들 뤼디거의 세례식에서.” 그나마 아들은 굳이 자기아들이라고 강조하는 성의를 보였다. 딸이 태어났을 때에는 “가족”에 1923년 11월에... (...) 딸 하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내가 죽는다. 레토는 장문의 추도사를 쓴다. 죽음 이후에야 말문이 터졌다. 회고록에서 아내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은 대목이다. 자못 처절한 추도의 글이다. (p.36)<br><br>“죽음 이후에야 말문이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이상적인 아내 상에는 뭔가 다른 것이 은밀하게 섞여 숨어 있다. 니묄러의 경우가 그랬듯 여성의 옆을 오라비가 지키고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눈길을 끈다. 남자 형제가 곁을 지켜주는 누이들은 특별히 보장된 신붓감이다. 오라비와 뱃놀이를 가고 청년 단체에 참석하는 아가씨들이라면 숫처녀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회스는 아내가 “오빠와 함께” 길을 “찾았다”고 강조한다. 행여 남자 경험이 있는 여자, 즉 “걸레”라고 오해받을까봐 미리 방어하는 듯하다. 숫처녀에게 무슨 말씀을! 그 점이 중요하다. (p.30)<br>이렇게 테벨라이트는 자유군단 남성 일곱 명의 결혼을 남편의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런 특징을 찾아낸다. 아내들은 이름이 없다는 것! 스쳐 지나가는 인물까지도 이름을 상세히 기록하는 이들이 자기 아내에 대해서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회고록에서 아내들은 대개 부차적인 인물이다. 아내는 신분을 상징해주거나 자녀를 낳아주는 사람. 혹은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지켜보는 인물일 뿐이다. 게다가 여성이 언급된 부분에서 발견되는 특이함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주의를 끈 것은 기묘하게도 양면적인 정서. 이들 텍스트는 강렬한 관심과 냉정한 무관심 공격성과 숭배, 증오, 공포, 소외와 욕망 상이에서 갈팡질팡”(p.55) 한다고.&nbsp;<br><br>아내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까닭을 저자는 잠시 후에 이렇게 해석한다.&nbsp;<br><br>소설이나 회고록에 등장하는 어떤 여성에게 이름은 있지만 오라버니의 보증, 뼈대 있는 가문의 성씨, 누이나 친구의 소개가 없다면 예외 없이 "창녀"라고 봐도 좋다. 혹은 모종의 이유로 주인공 남성의 아내 자격에 못 미치는 여자다. 아내 이름을 숨기는 것은 그래서 강력한 술책인 셈이다. (p.123)<br><br>저자는 특별히 군인 남성의 언어를 분석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br>“백색 테러”를 구성하는 본질에는 군인 남성의 언어가 들어 있다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군인 남성들의 언어가 어떤 식으로 “발화”되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그치는 문제의식이 아니다. 내가 집요하게 탐구하려는 것은 그들의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군인 남성이 외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도록 언어가 작동하고 있는지, 혹은 언어가 작동하는 육체적 장소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이다.&nbsp;<br>인간이 스스로의 육체와 맺는 관계, 그리고 타인의 육체와 맺는 관계가 확장 발전된 것이 바로 인간 육체와 외부 객관 세계가 맺는 관계다. 외부 세계가 맺는 관계가 다시 언어적인 방식이 되어 육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말하고 대상물에 대해 말하고 대상물과 맺는 관계를 말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파시즘적 언어”는 어떤 식으로 관계들을 말할까? 왜 그렇게 말할까? 이것이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p.54~55)<br><br><br>압도적 두께! 압도적인 하찮미를 자랑하는 지만지 책과 함께 비교해보았다....<br><br><br>집에 있는 비슷한 벽돌책들과 비교. &lt;남성 판타지&gt;&nbsp;원서는 1280쪽이고, 한국어판은 1464쪽이다....&nbsp;<br><br><br>&lt;정치 사상사&gt;를 능가하는 책이 드디어(?) 나타났다.....!&nbsp;(앗, &lt;일탈&gt; 포스트잇 안 떼었네?!)<br><br>ㅋㅋㅋㅋㅋㅋ 아 진짜...ㅋㅋ 책 읽는데 책 너머에서 자꾸 쪼물락쪼물락...!<br><br>뭐하냥...? 넌 뭘 그리 맨날 읽냥??? 나보다 이게 더 좋냥...?<br><br>결국 꾸벅꾸벅 조는 한나.......<br><br><br>한편 옆에서는....... 3호 망태형아, 망태오빠가 숙면 중....&nbsp;<br><br><br>궁금해서 한번 비교해보았다...! (읽는 중이라 책 커버는 분리) 헐.... 내 고양이 몸뚱아리만 하다!<br>ㅋㅋㅋㅋㅋ 이거 손에 들고 읽다가 조는 바람에 책 떨어뜨리면.....! 3호 사망각......!&nbsp;<br><br><br>아 그나저나 요즘 녀석들한테 인기... 아니 묘기(猫氣) 너무 많은 잠자냥 침대에 똑바로 누울 수가 없다... 이놈의 묘기란. 😹 ㅋㅋㅋㅋㅋㅋ<br>아무튼 오랜만에 손목 나가는 무게의 즐거움. (엥?) 어젯밤 손에 들고 읽다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읽다가 결국 앉아 읽었어..! 헐.<br><br><br><br>어제는 1장의 134쪽인가 “총잡이 빨갱이 년, 거세하는 여자”까지 읽었다. 흥미진진하다. 락방이도 얼른 시작해라.<br><br>더불어 아래 책도 같이 읽으면 더 좋을 듯.<br>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150/k1121378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5231</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사람 -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40101</link><pubDate>Mon, 09 Mar 2026 1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401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6722&TPaperId=171401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4/93/coveroff/k0421367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6722&TPaperId=171401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a><br/>퍼트리샤 그레이홀 지음, 송섬별 옮김 / 물결점 / 2026년 02월<br/></td></tr></table><br/>

무척 좋아하거나(이때 좋아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그 또는 그녀의 ‘글’을 뜻한다) 관심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라면 회고록이나 그에 관한 전기라든가 일기 같은 글들을 읽지 않는다. 작가의 사생활을 굳이 알아내서 작품 감상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럼에도 회고록, 전기, 일기 같은 것을 읽은 작가들이 종종 있다, 손택, 치버, 카버, 소세키 등등이 떠오른다. 요즘은 &lt;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일기와 노트 1941-1995&gt;를 사고 싶어서 눈독 들이고 있는 중이다(다음 달에 사자...). 아무튼 그러니까 이 정도 유명세를 지녔거나, 이 정도로 내가 그들의 작품을,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전기, 일기, 회고록 등은 웬만해서는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br><br>그런데 최근 읽은 &lt;침대와 침대를 오가며&gt;는 위와 같은 기준에서 모두 벗어난다. 저자 ‘퍼트리샤 그레이홀’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내게 무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없으니까.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에 관한 소개 글을 읽어보자. ‘의사, 에세이 작가, 소설가. 2022년 출간한 에세이 &lt;침대와 침대를 오가며&gt;로 다수의 독립출판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23년 배우자와 공동 집필한 &lt;황금빛 노년과 은빛 희망(Golden Years and Silver Lining)&gt;을 선보이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25년 &lt;우리가 머물 곳(A Place for Us)&gt;, 2026년 &lt;프레임드(Framed)&gt;를 연달아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nbsp;<br><br>의사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라고도 덧붙여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 또한 그저 의사가 쓴 병원/환자에 관한 에세이라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너무 뻔해 보이므로. 그런데 이 책에는 다른 키워드가 덧붙여져 있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던 시대의 미국에서 살아온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청년기 회고록이다. 만일 이 회고록이 그의 노년기까지 이어진다면(저자는 현재 일흔을 넘겼다),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딱 저자의 청년 시절 방황이 일단락되고 또 다른 생이 펼쳐지는 지점에서 마무리 된다.&nbsp;<br><br>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에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았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사형선고였다.”(p.19) 자신의 성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사는 이들도 많아졌고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 또한 많아진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대다수 동성애자들은 혐오 또는 차별이 일상적인 세계의 벽장 속에 숨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동성애가 금기시 되어 발각되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나라 또한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단지 그 성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청교도 국가, 1960~70년대의 미국 또한 그다지 진보한 사회는 아니었다. 게이나 레즈비언은 정신질환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또한 마땅했다. 그런 시대, 그런 세계에 퍼트리샤 그레이홀, 이 책의 저자는 태어난다.&nbsp;<br>&nbsp;&nbsp;<br>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녀의 성정체성을 알고 지지해주느냐(마치 &lt;콜 미 바이 유어 네임&gt;의 그 가정처럼)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몇 년째 깊은 우울증에 빠져 가족을 방치한 채 자기 삶을 지탱해나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어머니 혼자 퍼트리샤와 그의 여동생 두 자매를 돌보다시피 한다. 어머니는 퍼트리샤한테 여자아이다운 꾸밈을 강요하며 여성스러운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혹시라도 조금만 이상해 보이면, 정상적인 소녀다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취향을 드러내면 어머니는 극렬하게 혐오를 드러내며 딸을 야단친다. 이런 호모포비아 가정에서 퍼트리샤는 더 고립감을 느낀다. “내가 애리조나에서는 하나뿐인 레즈비언”일 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그 고립감을 벗어나고자 자신과 같은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곳,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리라 마음먹는다.<br><br>초반에 그려지는 퍼트리샤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동성애자로서의 자각, 그럼에도 호모포비아적인 엄마(와 가족), 주변 환경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고 사느라,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애쓰는 삶이 참으로 애처롭게 그려진다.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하고 만 장면이 있다. 그녀가 나이 든 남자에게 섹스를 허락하고 마는 장면이다. 사실 퍼트리샤는 자신에게 다가온 잘생긴 또래 남자와 연애를 해보기도 하지만(결국 그의 여동생에게 반하고 마는 퍼트리샤!) 집요하게 섹스를 원하는 남자 친구를 거부하다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중늙은이랑 섹스를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 이 남자와의 관계 때문에 임신하고 마는 퍼트리샤. 미성년자였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으로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이다. 그런 때 퍼트리샤는 임신중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십대 소녀, 미성년자임에도 성인과의 그루밍 관계에서 성착취를 당하고, 결국 임신, 임신중지를 겪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처참한 심정으로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nbsp;<br><br>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연애 상대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지만 그렇다고 삶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이렇다 할 직업도 돈도 거주지도 마련하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기 버겁다. 일상에 이렇게 허덕이는데 연애라고, 사랑이라고 잘 될 리가 있을까. 그럴 때 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인간의 생에는 한두 번 쯤은, 운이 좋으면 몇 번쯤은 꼭 도움이 되는 만남이 있다. 이 무렵의 퍼트리샤에게도 그랬다. 그렇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대학을 가라고 말하는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퍼트리샤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가고,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한다. 의대에 진학했으니 성공적인 삶이 펼쳐질까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퍼트리샤가 의대에 진학한 당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의대생 100명 중 여학생은 다섯 명이 전부이다. 보스턴에서 인턴 과정을 수련할 때는 그가 유일한 여성이다. 1970년대 의료계는 남성 중심적 위계로 움직였으며, 기득권 진입의 기회 역시 남성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오랜 세월 공고하게 유지된 남성들만의 카르텔에서 여성인 그가, 심지어 동성애자인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일과 사랑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일구기란 쉽지 않다.&nbsp;<br><br>특히 의학 수련이라는 거친 바다에 내던져져 만성적인 피로와 감정 고갈을 겪으면서 소진된 나날을 보내던 퍼트리샤는 남성 동료들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서 얻는 것과 같은 돌봄과 지지를 바란다. 그런 안정적인 연애를 갈망하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이 책에는 ‘케이트 밀렛’이 찬조 출연하기도 한다. ㅋㅋ) 성해방이 꽃을 피운 시기라 연애에서의 독점적이고 안정적인 관계에 관한 갈망이나 “아내 운운” 발언은 당시의 기조와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퍼트리샤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이나 발언이 문제인 줄은 알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인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고 싶은 것을 어찌하랴. 퍼트리샤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성공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레즈비언은, 게이는, 동성애자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불행한 삶을 살다 혼자 쓸쓸히 죽어갈 것이라는 사회의 저주, 경고, 편견을 모두 깨버리고 싶다.&nbsp;<br><br>그런데 참 재미나다. 인간이란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라 드디어 그런 관계를 가꿔나갈 수 있는 여자(캐스)를 만났는데 도리어 퍼트리샤는 한눈을 팔기 시작한다. “한때 나는 배려심 있고 잘 챙겨주는 여자를 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커리어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여자, 내 눈에 섹시하고 호감 가는 여자를 원했다. 그 모든 특성을 다 가진 한 여자만 만나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p.266), 캐스를, 또 다른 연인을 속이며 또 때로는 대놓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거나 일시적인 연애 관계에 놓이면서 퍼트리샤는 자신을 폴리아모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이토록 이기적이고 비열하기조차 한 존재이다. 그렇게 침대와 침대를 오가던 퍼트리샤에게 제대로 임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다니’- 지금껏 퍼트리샤를 매혹했던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이 여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녀.&nbsp;<br><br>헌데 ‘다니’는 퍼트리샤와 사귀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동성애자는 니가 처음이야!” 레즈비언이면서도 그간 헤테로 여자만 사귀었다는 다니가 너무나도 신기한 퍼트리샤....는 다니의 그 말이 지닌 의미를 곧 깨닫는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가릴 것 없이 끌어들이는 이 마성의 여자는 정말이지 문젯거리, 위험한 존재는 사실을…. 어느덧 퍼트리샤는 독점적인 관계를 원하던 ‘캐스’의 입장이 되어 ‘다니’와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지만 다니는 그럴 생각이 딱히 없어 보인다. 전 여친도 만나고 새 여자도 만나고 커플 상담사도 꼬시고 그러면서도 퍼트리샤 너 없이는 못산다 하고…대환장 파티다. 퍼트리샤는 다니에게서 지나간 시절, 폴리아모리를 외쳤던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퍼트리샤와 다니, 이 커플은 퍼트리샤의 바람처럼 안정적이고 독점적인 커플을 이룰 수 있을까? 퍼트리샤는 자신이 원하던 바로 그 ‘아내’를 얻을 수 있을까?<br><br>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해주기를 바란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인 애정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응?)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자신은 사랑하는 그 대상에게 그런 존재인가? 그렇게 온 마음과 에너지, 시간 등등 정성을 다해 그 상대를 사랑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퍼트리샤도 그랬을 것이다. 안정적인 관계, 따뜻한 돌봄과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하기를 꺼리던 사람, 이기적이고 철없는 사랑의 표본과도 같았던 그녀. 그리고 때로 그 말은 폴리아모리라는 말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 스스로도 “20대 시절의 나는 믿을 만한 사람도, 존중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나 자신에게 주어야 마땅할 사랑과 수용, 돌봄을 연인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p.430)라고 고백한다.&nbsp;<br><br>그러나 그 고백이 단지 고백으로만 끝났다면 허무했으리라. 그녀는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 끝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 퍼트리샤의 이 다짐은 성공할까? 인간은 사랑에 실패했을 때 관계에 실패했을 때, 상대, 타인으로부터 문제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나 자신은 과연 그 또는 그녀에게 그런 사람이었는가?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은 물론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한 줄이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4/93/cover150/k0421367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94932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