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지상의 다락방 (잠자냥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문학이 우리를 구원하리라.</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4 Apr 2026 06:33:53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잠자냥</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372614541003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ocker</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잠자냥</description></image><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인간의 영혼이 파괴되면 일어날 수 있는 천삼백칠십육 가지의 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27901</link><pubDate>Mon, 20 Apr 2026 1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2790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030788&TPaperId=17227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3/6/coveroff/k2920307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88393X&TPaperId=17227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45/87/coveroff/897288393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835245&TPaperId=17227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73/88/coveroff/k18283524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5만 원짜리 위조지폐 석 장이 손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지폐라 그걸 사용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리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조지폐이므로 사용하지 않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아닌가? 내가 너무 순진한가? 그렇다면 나의 경우로만 한정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내 손에 들어온 5만 원 권 석장이 위조지폐인 걸 안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모른다. 두 눈 딱 감고 빨리 다 써버려?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신고조차 귀찮아서 폐기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신고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신고하는 선에서 끝낼 것 같다.<br><br>톨스토이의 &lt;위조 쿠폰&gt;이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시작은 평범하다. 어느 저녁.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자신의 방에서 귀찮은 서류를 정리 중이다. 그때 아들이 노크하며 들어온다. 아들의 이름은 ‘미티아’로 김나지움 5학년이자 열다섯 살 소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인 소년. 아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오늘이 1일입니다.” 말한다. 용돈을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달 1일, 3루블의 용돈을 주고 있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언짢은 얼굴로 지폐용 지갑에서 2루블 50코페이카짜리 쿠폰을 찾아서 꺼내고, 동전용 지갑에서 은화 50코페이카를 세어서 건네준다. 그런데 소년은 말이 없다. 건넨 돈도 받지 않는다. 다음 달 용돈까지 미리 달라는 말만 할 뿐이다.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요청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묻는다. 친구에게 돈을 빌렸는데 오늘까지 갚아야 한다는 아들. 갚지 않으면 자기의 명예가 떨어진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한심한 작태에 화를 내며 채찍으로 때리기 전에 당장 방에서 나가라면서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br><br>3루블을 받고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 채 방에서 쫓겨난 미티아는 분노가 치솟는다. 그깟 3루블 좀 미리 주면 안 되나? 다른 친구들은 용돈을 더 많이 받는데! 그런 와중에 돈을 빌린 친구로부터 편지가 온다. 내게 빌려간 6루블을 갚으라고 벌써 세 번이나 부탁했건만 너는 여태 어물쩍어물쩍 넘어가기만 한다. 네가 그 돈을 갚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친구가 너를 경멸하느냐 존대하느냐가 정해질 것이다. 정직한 이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지..... 미티아는 다급한 마음에 엄마에게 말해보지만 엄마도 오늘은 돈이 없다면서 내일이면 생길 테니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티아는 오늘 당장 돈이 필요한데 내일이면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내고 집을 나선다. 전당포에 시계를 맡길까? 아버지로부터 받은 3루블과 시계를 갖고 친구 마힌을 찾아간다.<br><br>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힌은 미티아와 마찬가지로 중학생이었는데 중학생인데도 콧수염을 길렀고 이미 카드 도박을 했고, 여자들도 경험해보았으며, 언제나 돈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약간 불량한 학생이다. 미티아가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으니 마힌은 그게 무슨 고민거리나 되느냐며 쿠폰을 위조할 것을 종용한다.<br><br>“더 나은 방법이 뭔데?”<br>마힌이 쿠폰을 손에 들고 말했다.<br>“아주 간단해. 2루블 50코페이카 앞에 1을 덧붙이는 거야. 그럼 12루블 50코페이카가 되지.”<br>“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br>“1000루블 표에다가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처리한 적이 있지.”<br>“믿기지 않는데?”<br>마힌은 펜을 쥐고 왼손가락 하나로 쿠폰을 펴면서 말했다.<br>“그렇게 할 거야?”<br>“하지만 나쁜 짓이잖아.”<br>“무슨 어리석은 말이야.”<br><br>그렇게 위조 쿠폰을 완성한 마힌은 미티아와 함께 사진 용품을 파는 상점으로 향한다. 때마침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을 넣을 사진액자가 필요하다나. 상점에 가니 선량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액자 하나를 고르고는 위조 쿠폰을 내밀고 잔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이 여주인은 지독한 근시이다. 액자 가격은 1루블 20코페이카인데 아이들이 12루블이나 되는 큰돈을 주니 여주인은 잔돈은 없느냐며 묻는다. 그러나 마힌과 미티아는 없다면서 빨리 거스름돈을 달라고 재촉한다. 결국 여주인은 액자를 포장한 후 10루블짜리 지폐 한 장, 20코페이카 동전 여섯 개와 5코페이카 동전 두 개를 꺼내준다. 상점을 나온 마힌은 미티아에게 10루블짜리 지폐를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갖는다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진다. 미티아는 엉겁결에 생긴 10루블로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br><br>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날까? 그렇다면 톨스토이가 아닐 것이다. 잠시 아내에게 가게를 맡겼던 상점주인이 돌아와 판매 대금을 파악하기 시작하는데, 상점주인은 쿠폰을 보자마자 위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내에게 소리친다. 바보! 멍청한 여편네! 욕을 퍼부으며 험담을 멈추지 못한다. 아내의 마음에는 그동안 남편에게 당해온 일들이 떠올라 분노가 치민다. 저놈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떠오르자 그런 마음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이 손해를 상점주인은 어떻게 처리할까? 간단했다. 손쉬웠다. 땔감을 가지고 온 농부에게 그 위조 쿠폰으로 값을 치른 것이다. 마힌과 미티아가 만든 12루블짜리 위조 쿠폰은 이렇게 상점주인의 아내 손에서 남편 손을 거쳐 땔감을 팔러 온 농부의 손으로 옮겨간다.&nbsp;<br><br>땔감을 팔러 다니는 농부 이반은 처음에는 쿠폰을 받기가 꺼려져 주저하면서 돈으로 달라고 부탁하지만 상점주인은 돈이 없다면서 한사코 쿠폰으로 값을 지불한다. 망설이던 이반도 상점주인이 “명망가처럼” 보이기 때문에 쿠폰을 받는 데 동의한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상점의 여주인도 남편에게 항의할 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날 감쪽같이 속여서 난 미처 몰랐어요. 중학생들이었어요. 한 아이는 잘생겼고 정말 품위 있게 보였다니까요.” 그 말을 듣자 남편은 더 욕을 퍼부었다. “난 쿠폰을 받을 때는 거기에 적힌 액수를 보고 확인해. 그런데 당신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주제에 꽃미남처럼 생긴 그놈들의 얼굴만 보고 있었던 거야.”&nbsp;<br><br>인간은 그럴듯한 외모에 잘 속는다. 사기꾼은 그래서 번드르르하게 차려입고 위장한다. 좋은 시계, 명품 가방, 브랜드 옷, 구두, 자동차, 번듯한 직업, 신분증…. 지금도 대다수 사기꾼들은 그렇게 자기를 위장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혹해서 투자를 하고 돈을 갖다 바치며 더 큰 재산을 노리다가 패가망신한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저 시대에도 역시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혹해 쉽게 속는다. 아주 잘생긴 소년, 품위 있게 보이는 그 소년은 위조 쿠폰을 만들었고, 명망가처럼 보이는 신사는 위조 쿠폰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어리숙한 농부를 속인다..... 농부 이반은 땔감을 다 팔고 집으로 가던 중, 너무나 추워 몸이나 녹이고자 들어간 선술집에서 이 쿠폰으로 계산을 하는데, 아뿔싸! 선술집 주인은 위조 쿠폰이라며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 그때도 이반은 이렇게 항변한다. “그 쿠폰은 진짜예요. 신사분이 준 거예요.” 오, 이런 어쩌면 좋은가. 그 상점 주인은 정말 신사인가?!<br><br>좋은 방법이 있다. 대질심문을 하면 된다. 이반은 경찰들과 함께 상점을 찾아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한다. 상점주인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가 정말 신사였다면 이때라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자신도 위조쿠폰인 줄 몰랐다고, 착각했노라고 미안하다고. 그러나 그는 신사가 아니었다. 신사였다면 애초에 위조 쿠폰을 어리숙한 농부에게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상점을 찾아온 경찰과 이반에게 딱 잡아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아주 놀란 얼굴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당신 미쳤나 보군. 이 사람 처음 봐요.” 이반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입니다. 당신의 임종 때를 생각하십시오.” 한 술 더 떠 예브게니는 상점 일꾼 바실리를 앞세운다.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땔감은 늘 상점에서 산다고 증언하도록 미리 손을 써둔 터였다. 그 대가로 그에게 5루블이란 돈까지 주면서..... 바실리는 상점 주인이 일러준 대로 땔감을 농부에게 산 적도 없을뿐더러 농부 이반은 본 적도 없다고 진술한다.<br><br>이 억울한 남자 이반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반은 분노를 참지 못해 없는 돈에 변호사까지 써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애쓴다. 그러나 법은 이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선량한 신사분인 예브게니와 그의 충실한 일꾼이자 하수인 바실리의 증언에 더 무게를 실어준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는 추악한 짓을 해서 괴로웠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진술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법정에서도 위증을 하고, 바실리에게도 위증을 하도록 또 종용한다. 이때도 예브게니는 바실리에게 위증의 대가로 10루블을 건넨다. 그나마 양심이 있었는지 예브게니는 이반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소송취하 비용 5루블을 자신이 내준다. 덕분에(?) 이반은 비방혐의로 3개월간 감옥에 갇힐 처지였다가 풀려난다. 중학생들이 시작한 위조쿠폰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톨스토이는 이렇게 쓴다.&nbsp;<br><br><br>그러나 그건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br>그 이후 바실리와 이반에게 일어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nbsp;<br>위조 쿠폰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바실리도 가진 자들이 도덕률을 어기며 산다고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그들만의 법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더 엄밀히 말해 그 사건에 관련된 거짓 증언을 하고서도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또다시 10루블을 벌어들이게 되자, 바실리는 자신이 모르는 어떤 도덕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살았고, 그런 삶을 지속해 나갔다.&nbsp;<br>위조 쿠폰으로 인해 불행을 당하면서부터 이반 미로노프는 오랫동안 술을 마구 퍼마셨는데 전 재산을 술로 탕진할 지경이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술 마시는 데 써버릴지도 모를 옷가지, 말의 멍에 등 모든 것을 감추어버렸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이반 미로노프는 그를 능욕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형제들의 소유를 빼앗아가는, 그곳에 사는 부자들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nbsp;<br><br>단지 바실리와 이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위조 쿠폰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자들의 마음속에는 속았다는 분노와 함께 이 세계는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는, 정의롭게 살아봤자 손해만 본다는 그릇된 생각이 싹트면서 거대한 악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톨스토이는 위조된 쿠폰이 저마다 인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끝까지 파고든다. 정의가, 윤리가,&nbsp; 도덕이, 양심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분개하면서 마음이 영혼이 무너지면 인간은 얼마나 한없이 망가지는지, 시궁창으로 떨어지는지 끝까지 보여준다.&nbsp;<br><br><br>내가 톨스토이의 &lt;위조 쿠폰&gt;을 읽은 까닭은 지난 금요일,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lt;돈 L'Argent&gt;(1983)을 보기 위해서였다. &lt;돈&gt;은 &lt;위조 쿠폰&gt;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브레송의 &lt;돈&gt;은 시작부터 톨스토이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다. 김나지움 중학생들이 파리의 고등학생 소년들로 바뀌었고 장작을 팔던 이반은 중유를 배달하는 이봉으로 조금 달라졌을 뿐 얼개는 비슷하다. 브레송은 “출발점이 된 작품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lt;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gt;, p.413) 브레송은 톨스토이의 아름다운 단편들 중 하나인 &lt;위조 쿠폰&gt;은 그에게 단순한 출발점 이상의 것을 주었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악, 마지막에 솟아오르는 선이라는 개념”(같은 책, p.416)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액수의 가짜 돈으로 인해 악이 거대한 눈사태처럼 미친 듯이 밀려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은 톨스토이나 브레송이나 마찬가지이다. 단지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브레송의 영화에서보다 훨씬 먼저 선(善)이 솟아오른다. 소설은 3분의 2가 종교적이고 복음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톨스토이 원작을 감탄하면서 읽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등등 종교적으로 결론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톨스토이구나, 에이... 잘 나가다가, 하고 좀 김이 빠졌는데 브레송의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달라진다. 브레송의 영화에선 속죄나 구원 같은 생각은 작품 끝에 가서야 등장하는데 그 마저도 정말 그것이 속죄이며 구원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비정하게 더없이 비참하게 끝난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톨스토이보다는 브레송의 시선에 더 동의한달까.<br><br>“사회가 그를 버린 거죠. 이봉이 그렇게 여러 사람을 죽인 건 절망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돈은 가증스런 가짜 신입니다.”&nbsp; -로베르 브레송, &lt;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gt; p.415<br><br>“아, 너무나 큰 죄를 짓는 거예요. 대체 어쩌시려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죽인다면, 당신의 영혼은 더욱더 파멸로 치닫게 될 거예요… 아, 아!”&nbsp; -레프 톨스토이, &lt;위조쿠폰&gt;<br><br><br><br><br>위조된 지폐를 들여다 보고 있는 상점의 여주인.........&nbsp;<br><br>이 지폐는 위조지폐입니다! 이봉(이반)의 삶은 속절없이 무너져간다......<br><br>마힌과 미티아(브레송의 영화 속에서는 물론 다른 이름) 이 못된 놈들 때문에.......<br><br>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73/88/cover150/k1828352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738859</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브레송과 함께 한 오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08125</link><pubDate>Fri, 10 Apr 2026 1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081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288&TPaperId=17208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8/22/coveroff/89329092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740&TPaperId=17208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12/76/coveroff/89320387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030788&TPaperId=17208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3/6/coveroff/k29203078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종일 비가 내린 어제, 목요일. 연차를 내고 하루 쉬었다. 비가 내러 출근하기 싫어서는 아니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 중인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퇴근 후 시간을 내서 봐도 되기는 하지만 하필 어제 내가 꼭 보려던 영화 두 편을 함께 상영하기에, 하루에 몰아볼 심산으로 휴가를 냈던 것이다. 오전에는 고양이들과 뒹굴뒹굴 부둥부둥. &lt;남성 판타지&gt;를 두 시간쯤 읽고(900쪽 돌파!), 집안 청소를 마친 후 집을 나섰다. 비가 내려 한산한 평일 오후 정동은 나름 운치 있었다. 3시를 조금 넘긴 시간,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브레송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앉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일찌감치 예매해둔, 외따로 떨어진 자리에 착석. 불이 꺼지고, 아트시네마 특유의 음악이 흐르는 순간..... 삶이 별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싶어진다.<br><br><br>첫 번째 영화는 &lt;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gt;(1966). 전에 본 영화이기는 하지만&nbsp; 오래되기도 했고, 지금의 나이에 보면 또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올까 싶어서 극장을 찾았다.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브레송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단순한 플롯(그러나 심오한)과 극적이지 않은 전개로 펼쳐진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느 당나귀의 일생이다. 그러나 어제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낌 감정은 지독하게 참혹하다는 것. 커다란 눈망울의 어린 당나귀가 어느 집에 팔려온다. ‘마리’라는 소녀의 집이다. 이 어린 당나귀를 끌어안고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마리와 또 다른 소년 ‘자크’. 마리와 자크는 소꿉동무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당나귀와 함께 여름 한철 즐겁게 보낸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자크는 내년에 또 오겠다면서 차에 올라타고 손을 흔들며 사라져간다. 그 순간 카메라는 마당의 나무벤치에 자크가 새겨둔 ‘마리♡자크’라는 낙서를 보여준다. 내년에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마리와 자크의 풋사랑도, 곧 덧없이 희미해지리라......<br><br>시간이 흘러 당나귀도 마리도 훌쩍 자랐다. 성년기의 그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마리의 삶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발타자르도 마찬가지이다. 마리의 아버지가 횡령 혐의를 쓴 채 빚에 허덕이며 가세가 나날이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청년이 되어 다시 나타난 마리의 첫사랑 자크는 마리의 아버지로부터 문전박대당하고 쫓겨난다. 보아하니 부유한 자크 네 집의 땅을 대신 관리해주던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들 간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돌아서는 자크. 그는 여전히 마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리의 귀에 들려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생의 무게에 비하면 공허하기만 하다.&nbsp;<br><br>딸과 아내를 돌보기보다 자신의 명예를 되찾는 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한 마리의 아버지는 저놈의 당나귀처럼 우스꽝스러운 걸 집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 또한 우습게 보는 것이라면서 발타자르를 내다 팔아버린다. 왜 애꿎은 동물에게 분풀이를 하는가. 인간은 이토록 잔인하고 어리석다. 이때부터 발타자르의 삶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마리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주인을 만나기는커녕 거의 날마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수레를 끄는 그런 당나귀의 삶. 한데 가혹하다 못해 이리도 가혹할 수가.&nbsp;<br><br>발타자르는 이번엔 빵집에 팔려 가는데 이 빵집의 아들, 제라르는 망나니 중에도 천하의 개망나니라 불량패거리와 함께 못된 짓을 일삼는 놈이다. 그래도 아들놈이라고 정신 좀 차리게 할 요량인지 그놈의 애비 애미는 아들에게 당나귀를 이용해 마을 곳곳에 빵을 배달하고 돈을 받아오는 일을 시킨다. 그런데 발타자르도 사람 보는 눈은 있는지 제라르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그럴 때 이 제라르란 놈이 하는 짓이란! 신문지에 불을 붙여 발타자르의 꼬리에 매다는 것이 아닌가! 엉덩이에 불이 붙으니 그 고통에 발타자르는 화들짝 놀라 달리기 시작한다. 분노가 치미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br><br>이 제라르란 놈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들 중 가장 악한 자이다. 발타자르에게 수시로 못된 짓을 일삼는 것으로도 모자라 발타자르의 첫 주인인 ‘마리’에게도 가장 나쁜 짓을 하는 놈이다. 애초부터 마리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훔쳐보던 제라르는 마리가 발타자르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당나귀를 이용해 마리를 유혹한다. 여러 차례 마리에게 거부당하면서도 결국 마리를 손아귀에 넣는 것에 성공하는데, 이때부터 마리의 삶 또한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비단 순진무구하고 무해한 동물 당나귀 발타자르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순진무구하고 연약한 소녀 마리의 삶이 어떻게 주변 인간들에 의해 망가지고 처참해지는지를, 그 두 가련한 생명체의 안타까운 삶을 극도로 건조하게 보여준다.<br><br>이 작품에서 마리 역을 맡은 소녀는&nbsp;&lt;사랑의 사막&gt;&lt;독을 품은 뱀&gt;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외손녀이다.<br><br>브레송은 &lt;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gt;에서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두 가지 생각, 두 가지 도식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당나귀의 일생은 인간과 똑같은 단계를 따라가는 것이다. 유년기에는 애정의 손길이, 성년기에는 노동이 그리고 생의 한가운데는 재능 혹은 타고난 재주, 그리고 죽음을 앞둔 신비스러운 시기. 이렇게 그려지는 당나귀의 삶. 당나귀의 여정은 저마다 인간의 한 악덕을 상징하는 사람들을 거쳐 가고 발타자르는 그 악덕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죽는다. 마리의 아버지는 명예욕과 아집 때문에, 제라르는 욕정 때문에, 그 후의 주인 아르놀드는 탐식(알코올) 때문에, 또 그 후의 주인은 탐욕 때문에 발타자르를 착취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nbsp;<br><br>브레송이 말했듯이 마리는 또 다른 당나귀이다. 당나귀와 평행으로 나아가는, 결국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고통당하는 인물로 인색한 인간에게 발타자르가 귀리조차 얻어먹지 못하듯이 마리도 그로부터 음식을 얻지 못하고 단지 잼 한 병을 가져다가 먹을 뿐이다. 잼 한 병으로 욕정의 대상이 되고..... 브레송은 마리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를 버리는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발타자르의 삶뿐만이 아니라 마리의 삶도 너무나 처연해서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발타자르가 인간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듯이 남자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는 마리의 삶.<br><br><br><br><br>브레송의 영화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lt;당나귀 발타자르&gt;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이 깃들어있다. 물론 이 영화는 브레송이 10년에서 12년에 걸쳐 생각한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lt;백치&gt;를 읽기 전부터 구상은 어느 정도 마쳤으나, 브레송은 어느 날 &lt;백치&gt;를 다시 읽으면서 놀라운 구절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백치가 동물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 사람들이 백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동물을 통해서 삶을 보게 된다는 더없이 멋진 생각에서 &lt;당나귀 발타자르&gt;는 더욱 깊이 있는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nbsp;<br>“그럴 때 나를 사로잡곤 하던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기억납니다. 난 울고 싶었죠. 모든 게 날 놀라게 만들고 나에게 불안을 안겼어요. 그때 날 끔찍하게 짓누른 느낌은 바로 모든 게 나에게 낯설다는 거였죠. 하지만 그 암흑을 완전히 벗어나던 순간도 기억납니다. 바젤에서 도착해서 스위스에 첫발을 디딘 날, 저녁이었어요. 시장에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어났지요. 그 당나귀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겼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속이 갑자기 환해졌죠.” -도스토옙스키, &lt;백치&gt;<br>이어서 본 &lt;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gt;(1977)는 브레송 후기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암울한 작품으로 꼽힌다. 극도로 염세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에 자살을 모방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18세 미만 관람이 금지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인공 샤를은 사랑은 물론 정치 집회, 종교 모임, 정신분석 등을 전전하지만 끝내 자기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마약에 중독된 친구에게 돈을 건네 자신의 살해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무얼해도 허무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샤를이 결국 친구들의 권유로 정신과의사를 만나러 가는데, 거기서 자신은 우울증이 아니라고,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인상 깊다.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 아닐까.... 남들처럼 그냥 눈 감고 쉽게 살면 되는데, 그걸 못하면 마음이 병들기 쉽지 않을까. 브레송은 이 작품에서 “경박한 낙관주의, 돈만 있으면 다 잘된다는 믿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두고 미친 듯이 날뛰는 사람들의 힘의 우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샤를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상태, 죽음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 거기에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을까.....<br><br><br>&lt;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gt;(1977)<br><br>극장을 나와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lt;당나귀 발타자르&gt;에서 흐르던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20번 2악장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도 없구나 싶어진다. 샤를, 너도 이런 데서 삶의 이유를 찾아보지 그랬니.<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3/6/cover150/k2920307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330688</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인간은 그렇게 치졸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믿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203823</link><pubDate>Wed, 08 Apr 2026 1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20382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034&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292/13/coveroff/893643803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54866&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9/46/coveroff/899845486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6077&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45/47/coveroff/s53293279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8049&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83/coveroff/893201804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026&TPaperId=1720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899/80/coveroff/8936438026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20382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최근 한국문학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 시작은 정영문의 데뷔작인 《겨우 존재하는 인간》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1997년에 출간되었으나 곧 절판, 소문으로만 전해졌던 명작 중의 하나였다. 몇 해 전 복간된 덕분에 나도 이제야 읽을 수 있었다. 소문대로 좋았다. 내가 이 작품을 좋게 읽은 까닭은 아마도 한국문학이면서도 한국문학스럽지만은 않은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정영문의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 볼 생각이다).&nbsp;<br><br> 번역 문장이 아닌 한국어로 쓰인 글을 읽을 때의 즐거움도 오랜만에 느꼈기에, 내친김에 다른 한국문학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펼쳐든 책이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이다. 내가 한국 현대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놀라워할 정도로(ex 다락방) 잘 안 읽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애란은 드문드문 읽어온 작가이기는 하다. 첫 작품집인&nbsp; 《달려라 아비》부터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에 이어 이번에 읽은 것까지 네 권은 읽었다. 김애란의 팬인가 싶기도 할 텐데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김애란을 읽게 된 것은 그 무렵 운영하던 블로그의 이웃들이 김애란 책, 한 번만 읽고 감상평 좀 남겨달라고 해서였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를 읽고서 잘 쓰는 것 같기는 한데 내 취향은 아니라고 했다. 너무 구질구질하다고… 그때부터 그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김애란의 작품을 ‘구질문학’이라고 명명했었다.<br><br>나는 그 가난함과 구질함을 어디서 느꼈던가. 《달려라 아비》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것은 많이 사라졌지만 《침이 고인다》 또한 여전히 ‘엄마’와 ‘가난한 삶’ 그리고 비루한 ‘서울 상경 살이’가 거의 모든 단편의 주제이자 소재였다. 《침이 고인다》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방’을 얻기 위한 20대의 남루한 투쟁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어떻든 자신만의 ‘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많이 부족하다. 그 ‘방’은 비가 오면 물이 콸콸 들어오는 반지하의 방이기도 하고, 느닷없이 찾아온 후배에게 속절없이 침범당한 작은 원룸이기도 하고, 신림동의 고시원이기도 하고, 옥탑방이기도 하고, 다 큰 남매가 한 공간에서 같이 자고 먹고 해야 하는 원룸이기도 하고, 노량진 학원가의 학사촌이기도 하다.&nbsp;<br><br>그런 김애란의 인물들은&nbsp;《바깥은 여름》에서 드디어 자기 집을 가진 이들이 된다. 널찍하고 화려한 집도 아니지만&nbsp;《침이 고인다》에서 방을 찾아 헤매던 청춘들이 어느덧 ‘자기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낡고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집’을 소유하고는 20대의 삶이 아닌 30대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도 낳고, 그 아이로 인해 생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자식 때문에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도,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도 그때보다는 어른이 되었구나, 자라고 있구나, 그럼으로써 삶이 던져주는 무게를 조금 더 묵직하게 느끼는구나 싶어졌다. 그런 변화가 조금은 반가웠던 기억도 난다.<br><br>《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기 시작하고 조금 놀랐던 점은 가난과 구질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더 성장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부유한 자들이 모여서 여는 ‘홈 파티’(&lt;홈 파티&gt;)에 초대를 받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lt;숲속 작은 집&gt;). 하긴 《달려라 아비》를 쓸 때보다 작가 자신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가 창조한 인물들 또한 20대에서 30대를 거쳐, 40대로 나이 들면서 생활도 조금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삶이 조금씩은 달라졌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녕이라 그랬어》의 단편 하나하나를 읽어나감에 따라 경제적 생활은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빈곤하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답답해졌다. 아니 마음의 빈곤함, 가난함은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한숨이 나왔던 것일까.&nbsp;<br><br>초대받은 ‘홈 파티’ 자리에서도, 해외여행을 떠나서도 계급과 돈의 위력을 줄곧 실감하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의 가난함은 &lt;좋은 이웃&gt;에서 절정에 달한다. 서울에서 전세살이 중인 어느 40대 부부는 늘 관심사가 자가 소유의 집, 그것도 아파트이다. 남편은 새로 들어온 신입이 ‘나보다 부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회사에서도 동료들을 단지 부(富), 집을 소유했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방문 학습지 교사였다가 독서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의 관심사 또한 온통 자기 집의 소유 여부이긴 마찬가지이다. 평소 자신이 특별히 ‘아끼던’ 학생 ‘시우’(그러나 뭐랄까 가난해 보이기 때문에 연민하면서 계급적 우월감을 느끼던 대상)가 어느 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황해한다. 자기 마음의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스스로 목도하는 것이다.&nbsp;<br><br>그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겁기만 하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하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자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낡은 집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과연 ‘반짝이는 세계’로 가는 것일까? 시우를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생각하다가 아내는 이런 쪼잔한 후회까지 하기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 원 더 올려 받을걸…….” 급기야 시우의 수업을 그만둘까 생각까지 한다. 시우가 자신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br><br>시우네 이사 소식을 들은 남편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자가래?” 남편의 이 노골적인 질문에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별말 아닌데 왜 수치심이 드는지 알 수 없었”노라 말한다. 그러나 본인도 알고, 읽는 나도 안다. 그 수치심은 바로 마음의 빈곤함/가난함 때문 아닐까. 그토록 아끼고 예뻐하던 학생 시우가 자기보다 낡고 허름한 집에 살 때는 괜찮던 것들이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니 왠지 배가 아프다. 시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열패감, 열등감에 휩싸여 수업을 그만둘까까지 생각하는 너무나 가난한 마음.<br><br>이렇게 사사건건 나와 타인의 삶을 주로 부와 계급으로 비교 평가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든 단편에서 등장한다. 여행을 떠나 에어비앤비로 빌린 집에서조차 “모국에서의 오랜 관성 탓인지 집주인 앞에 서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자꾸 환하게 웃게”되고, 부유하고 풍족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면서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생각하기도 한다(&lt;숲속 작은 집&gt;). 이혼한 아내가 새로 만나는 듯한 남자의 인스타를 염탐하면서 그의 사진에서는 “생활의 흔적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면서 “아무리 좋은 신발과 가방을 찍어도 은연중 드러나기 마련인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 계급의 표지”(&lt;이물감&gt;)를 찾아보려 애쓰는 한심하고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nbsp;<br><br>심지어 이 남자 ‘기태’는 그-‘최 대표’의 안색과 표정에서 ‘내장의 관상’까지 본다. 여기서 말하는 내장의 관상이란 ‘기태’가 “거래처의 고위 간부나 임원을 접대하며 종종 봐온 낯빛”이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라나.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라고 한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편안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며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다.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이라 불렀다.(&lt;이물감&gt;), 인스타에 올라간 타인의 사진을 보면서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에서 계급 표지를 찾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장의 관상 운운하는 장면에선 실소를 떠나 뭐랄까 불쾌한 기분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단편 속 인물은 도배사가 자기 집을 방문했을 “남의 집에 자주 다니는 업자들은 대충 살림만 봐도 그 집 분위기며 사정을 안다던데, 지금 저 여자에게 우리 집은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기도 한다(&lt;빗방울처럼&gt;).&nbsp;<br><br>이런 장면, 묘사, 문장들을 내내 읽다 보니 문득 정말 사람들이 다 이렇다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치졸하기도 한 존재라 잠시나마 그런 비루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안녕이라 그랬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관심사는 돈과 계급, 아파트이다. 그들은 거의 전부가 부유함과 가난함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자기 또한 그렇게 평가받으리라고 단정 짓고, 그러면서 내면으로 끊임없이 이런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 기를 쓴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니 경악스럽다 못해 진저리가 쳐친다. 대다수 한국인이 돈에 환장했고, 부유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서울에 자가 아파트, 빌딩 갖는 게 꿈이라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nbsp;&nbsp;<br><br>《침이 고인다》의 어느 단편에서인가 “서울이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구절이 있다. “멀리서 보니 한없이 가난해 보이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와 신림동 고시촌을 “지나가는” 수많은 젊은 청춘, 사회에 제대로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학원 강사”와 같은 이른바 “지식인의 막장 직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의 고단한 삶이 그려지는데 이런 고단한 삶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단편의 문장처럼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데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노라니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 인간이 자신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스스로 이렇게 자멸해도 되는 건가,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이렇게 한없이 낮아져도 되는 건가 싶어졌다.&nbsp;<br><br>원룸을 벗어나 방 두 칸짜리 빌라로 이사를 가고 낡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살게 되고, 또 언젠가는 서울의 자가 아파트에 입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재산의 규모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또 누군가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을 시기하는 치졸한 마음이라면, 그래서 내 삶이 한없이 비루해지는 마음이라면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 서울의 자가 아파트를 갖게 될지언정, 해외로 여행을 다닐지언정 나에게는 여전히 그 마음만큼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문학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nbsp;<br><br>인간의 마음이 하나같이 다 그럴까? 서울 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이 정말 하나같이 다 그럴까? 드물지도 모르겠지만 타인의 재산에, 나의 재산 불리기에 관심 없는 이들도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런 문학을 읽고 싶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덮으니, 언젠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을 때 느낀 당혹감, 그러니까 서울에서,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이 다 이렇게 너무 계산적이고 날카롭고 이기적이기만 하다고?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불쾌함과 씁쓸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의 대다수 한국문학은 주변을 관찰하고 그 일상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잘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가는 자들의 숭고함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고전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에서 인간은 세계에 번번이 패배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지고 말지언정 결국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려고 애를 쓰기에.<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손목 나가는 즐거움....(엥?)</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86013</link><pubDate>Tue, 31 Mar 2026 1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860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4618&TPaperId=17186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0/79/coveroff/893202461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565&TPaperId=17186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1/63/coveroff/8976829565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7808&TPaperId=17186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off/k1121378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2026년 상반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의 &lt;남성 판티자&gt;가 아닌가 싶다. 파시즘이 탄생해 나치즘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고찰한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비단 파시즘, 나치즘뿐만이 아니라 남성 정체성에 대한 뛰어난 분석서로 파시즘 동조 집단과 그들의 여성혐오 성향까지 파헤친다. 문화비평, 영화 이론, 페미니즘, 남성성 연구, 정신분석학, 젠더 이론, 독문학, 독일 역사학 등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셀과 극우파, 극우 남성성이 대두되는 요즘 더 깊이 연구해 볼 텍스트라 생각된다.&nbsp;<br><br>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br><br>일단 책의 서문에서 저자의 말에서부터 꽂혔다. 그러니까 이런 문장.<br>아버지는 동프로이센 농장주의 혼외자로 태어나 친척 아주머니 손에 길러졌다. 그런 까닭에 번듯한 가정을 몹시도 중시하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철도 공무원이었다. 당신 말마따나 한 인간이기 전에 몸과 마음을 다한 철도 공무원이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척 훌륭한 파시스트였다. 자식들 잘되라는 좋은 마음으로 평소에 매타작을 혹독하고도 넉넉하게 베풀곤 하셨다. 나는 훗날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파시즘 교육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양가적이었다. 맞아 싸다고 여기면서도 어쨌든 달래셨다. 그것이 파시즘 교육의 두 번째 단계였다. (p.6)<br>자신의 아버지를 파시스트라 말할 수 있는, 그리고 자기의 가정에서 처음으로 파시즘 교육을 받았노라 증언, 고백하는 이 구절, 통찰에서 이 책은 이미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br><br>&lt;남성 판타지는&gt;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활동하던 우익 민병대 조직 자유군단의 젊은 군인 남성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이 자유군단은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해산되지만 그중 일부는 나치 돌격대나 친위대로 흡수돼 제2차 세계대전 때 중책을 담당한다(예컨대 회스 같은 인물). 그들의 회고록, 일기, 문학 작품, 소설 등의 텍스트를 분석한다. 어제 읽기 시작한 ‘제1장 남자와 여자’에서는 자유군단 소속이었던 7명의 군인들의 회고록을 살펴본다. 그런데 너무 신랄하게 냉소적으로 까고 있어서 읽는 동안 여러 차례 웃음이 빵빵 터졌다. 마치 케이트 밀렛이 &lt;성 정치학&gt;에서 헨리 밀러나 노먼 메일러 냉소적으로 까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br><br>레토라는 군인은 회고록에서 아내에 대해 이렇게 쓴다.&nbsp;<br><br>(...) 아내는 특유의 개성과 빼어난 취향을 한껏 발휘하여 집 안을 장식했다. 역시 괴테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은 화가 티슈바인의 후손다웠다. (...)<br><br>저자는 바로 이렇게 분석한다.&nbsp;“사교생활을 무척 사랑했다.” 외에는 없다. 나머지는 그녀가 고급스러웠다는 내용의 반복이다. 남편으로서는 기분이 좋다. 사교계에서의 남편도 덩달아서 높은 대접을 받으니까. 아내는 “빼어난 취향”을 지녔다. 하지만 조상에게서 물려받았으니 부분적으로는 아내 개인의 덕이다. 괴테와 티슈바인이라는 이름을 끌어다가 죽은 아내를 수식했다. 로스바흐가 두 번째 아내를 칭찬하려고 실러와 하인리히 게오르크를 끌어온 것과 똑같다.&nbsp;<br>레토와 아내 사이에는 실체적인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아내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장황하게 칭찬하는 걸 보면 더욱 심증이 간다. 아내만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친아들 두 명 역시 전사한 후에야 넉넉한 칭찬을 듣는다. 이렇다 보니 레토가 한 문장 이상을 할애해서 친인척을 길게 칭찬하면 독자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싶어서.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 (p.37)<br><br><br>매우 냉소적이고 신랄하다. 아 진짜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이런 문장에서도 빵 터지지 않을 수 업다.&nbsp;<br>(...). 그러나 아내는 이름도 없고 날짜도 없고 역사에도 남지 않는다. 그녀에게 초혼에서 얻은 딸과 아들 쌍둥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20페이지 후에 어쩌다가 잠깐 언급된다. 첫 친아들이 태어나자 레토는 이런 문장을 쓴다. “.... 내 쪽 아들 뤼디거의 세례식에서.” 그나마 아들은 굳이 자기아들이라고 강조하는 성의를 보였다. 딸이 태어났을 때에는 “가족”에 1923년 11월에... (...) 딸 하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내가 죽는다. 레토는 장문의 추도사를 쓴다. 죽음 이후에야 말문이 터졌다. 회고록에서 아내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은 대목이다. 자못 처절한 추도의 글이다. (p.36)<br><br>“죽음 이후에야 말문이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이상적인 아내 상에는 뭔가 다른 것이 은밀하게 섞여 숨어 있다. 니묄러의 경우가 그랬듯 여성의 옆을 오라비가 지키고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눈길을 끈다. 남자 형제가 곁을 지켜주는 누이들은 특별히 보장된 신붓감이다. 오라비와 뱃놀이를 가고 청년 단체에 참석하는 아가씨들이라면 숫처녀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회스는 아내가 “오빠와 함께” 길을 “찾았다”고 강조한다. 행여 남자 경험이 있는 여자, 즉 “걸레”라고 오해받을까봐 미리 방어하는 듯하다. 숫처녀에게 무슨 말씀을! 그 점이 중요하다. (p.30)<br>이렇게 테벨라이트는 자유군단 남성 일곱 명의 결혼을 남편의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런 특징을 찾아낸다. 아내들은 이름이 없다는 것! 스쳐 지나가는 인물까지도 이름을 상세히 기록하는 이들이 자기 아내에 대해서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회고록에서 아내들은 대개 부차적인 인물이다. 아내는 신분을 상징해주거나 자녀를 낳아주는 사람. 혹은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지켜보는 인물일 뿐이다. 게다가 여성이 언급된 부분에서 발견되는 특이함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주의를 끈 것은 기묘하게도 양면적인 정서. 이들 텍스트는 강렬한 관심과 냉정한 무관심 공격성과 숭배, 증오, 공포, 소외와 욕망 상이에서 갈팡질팡”(p.55) 한다고.&nbsp;<br><br>아내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까닭을 저자는 잠시 후에 이렇게 해석한다.&nbsp;<br><br>소설이나 회고록에 등장하는 어떤 여성에게 이름은 있지만 오라버니의 보증, 뼈대 있는 가문의 성씨, 누이나 친구의 소개가 없다면 예외 없이 "창녀"라고 봐도 좋다. 혹은 모종의 이유로 주인공 남성의 아내 자격에 못 미치는 여자다. 아내 이름을 숨기는 것은 그래서 강력한 술책인 셈이다. (p.123)<br><br>저자는 특별히 군인 남성의 언어를 분석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br>“백색 테러”를 구성하는 본질에는 군인 남성의 언어가 들어 있다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군인 남성들의 언어가 어떤 식으로 “발화”되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그치는 문제의식이 아니다. 내가 집요하게 탐구하려는 것은 그들의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군인 남성이 외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도록 언어가 작동하고 있는지, 혹은 언어가 작동하는 육체적 장소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이다.&nbsp;<br>인간이 스스로의 육체와 맺는 관계, 그리고 타인의 육체와 맺는 관계가 확장 발전된 것이 바로 인간 육체와 외부 객관 세계가 맺는 관계다. 외부 세계가 맺는 관계가 다시 언어적인 방식이 되어 육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말하고 대상물에 대해 말하고 대상물과 맺는 관계를 말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파시즘적 언어”는 어떤 식으로 관계들을 말할까? 왜 그렇게 말할까? 이것이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p.54~55)<br><br><br>압도적 두께! 압도적인 하찮미를 자랑하는 지만지 책과 함께 비교해보았다....<br><br><br>집에 있는 비슷한 벽돌책들과 비교. &lt;남성 판타지&gt;&nbsp;원서는 1280쪽이고, 한국어판은 1464쪽이다....&nbsp;<br><br><br>&lt;정치 사상사&gt;를 능가하는 책이 드디어(?) 나타났다.....!&nbsp;(앗, &lt;일탈&gt; 포스트잇 안 떼었네?!)<br><br>ㅋㅋㅋㅋㅋㅋ 아 진짜...ㅋㅋ 책 읽는데 책 너머에서 자꾸 쪼물락쪼물락...!<br><br>뭐하냥...? 넌 뭘 그리 맨날 읽냥??? 나보다 이게 더 좋냥...?<br><br>결국 꾸벅꾸벅 조는 한나.......<br><br><br>한편 옆에서는....... 3호 망태형아, 망태오빠가 숙면 중....&nbsp;<br><br><br>궁금해서 한번 비교해보았다...! (읽는 중이라 책 커버는 분리) 헐.... 내 고양이 몸뚱아리만 하다!<br>ㅋㅋㅋㅋㅋ 이거 손에 들고 읽다가 조는 바람에 책 떨어뜨리면.....! 3호 사망각......!&nbsp;<br><br><br>아 그나저나 요즘 녀석들한테 인기... 아니 묘기(猫氣) 너무 많은 잠자냥 침대에 똑바로 누울 수가 없다... 이놈의 묘기란. 😹 ㅋㅋㅋㅋㅋㅋ<br>아무튼 오랜만에 손목 나가는 무게의 즐거움. (엥?) 어젯밤 손에 들고 읽다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읽다가 결국 앉아 읽었어..! 헐.<br><br><br><br>어제는 1장의 134쪽인가 “총잡이 빨갱이 년, 거세하는 여자”까지 읽었다. 흥미진진하다. 락방이도 얼른 시작해라.<br><br>더불어 아래 책도 같이 읽으면 더 좋을 듯.<br>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150/k1121378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5231</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사람 -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40101</link><pubDate>Mon, 09 Mar 2026 1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401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6722&TPaperId=171401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4/93/coveroff/k0421367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6722&TPaperId=171401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a><br/>퍼트리샤 그레이홀 지음, 송섬별 옮김 / 물결점 / 2026년 02월<br/></td></tr></table><br/>

무척 좋아하거나(이때 좋아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그 또는 그녀의 ‘글’을 뜻한다) 관심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라면 회고록이나 그에 관한 전기라든가 일기 같은 글들을 읽지 않는다. 작가의 사생활을 굳이 알아내서 작품 감상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럼에도 회고록, 전기, 일기 같은 것을 읽은 작가들이 종종 있다, 손택, 치버, 카버, 소세키 등등이 떠오른다. 요즘은 &lt;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일기와 노트 1941-1995&gt;를 사고 싶어서 눈독 들이고 있는 중이다(다음 달에 사자...). 아무튼 그러니까 이 정도 유명세를 지녔거나, 이 정도로 내가 그들의 작품을,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전기, 일기, 회고록 등은 웬만해서는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br><br>그런데 최근 읽은 &lt;침대와 침대를 오가며&gt;는 위와 같은 기준에서 모두 벗어난다. 저자 ‘퍼트리샤 그레이홀’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내게 무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없으니까.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에 관한 소개 글을 읽어보자. ‘의사, 에세이 작가, 소설가. 2022년 출간한 에세이 &lt;침대와 침대를 오가며&gt;로 다수의 독립출판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23년 배우자와 공동 집필한 &lt;황금빛 노년과 은빛 희망(Golden Years and Silver Lining)&gt;을 선보이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25년 &lt;우리가 머물 곳(A Place for Us)&gt;, 2026년 &lt;프레임드(Framed)&gt;를 연달아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nbsp;<br><br>의사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라고도 덧붙여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 또한 그저 의사가 쓴 병원/환자에 관한 에세이라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너무 뻔해 보이므로. 그런데 이 책에는 다른 키워드가 덧붙여져 있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던 시대의 미국에서 살아온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청년기 회고록이다. 만일 이 회고록이 그의 노년기까지 이어진다면(저자는 현재 일흔을 넘겼다),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딱 저자의 청년 시절 방황이 일단락되고 또 다른 생이 펼쳐지는 지점에서 마무리 된다.&nbsp;<br><br>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에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았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사형선고였다.”(p.19) 자신의 성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사는 이들도 많아졌고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 또한 많아진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대다수 동성애자들은 혐오 또는 차별이 일상적인 세계의 벽장 속에 숨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동성애가 금기시 되어 발각되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나라 또한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단지 그 성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청교도 국가, 1960~70년대의 미국 또한 그다지 진보한 사회는 아니었다. 게이나 레즈비언은 정신질환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또한 마땅했다. 그런 시대, 그런 세계에 퍼트리샤 그레이홀, 이 책의 저자는 태어난다.&nbsp;<br>&nbsp;&nbsp;<br>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녀의 성정체성을 알고 지지해주느냐(마치 &lt;콜 미 바이 유어 네임&gt;의 그 가정처럼)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몇 년째 깊은 우울증에 빠져 가족을 방치한 채 자기 삶을 지탱해나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어머니 혼자 퍼트리샤와 그의 여동생 두 자매를 돌보다시피 한다. 어머니는 퍼트리샤한테 여자아이다운 꾸밈을 강요하며 여성스러운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혹시라도 조금만 이상해 보이면, 정상적인 소녀다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취향을 드러내면 어머니는 극렬하게 혐오를 드러내며 딸을 야단친다. 이런 호모포비아 가정에서 퍼트리샤는 더 고립감을 느낀다. “내가 애리조나에서는 하나뿐인 레즈비언”일 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그 고립감을 벗어나고자 자신과 같은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곳,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리라 마음먹는다.<br><br>초반에 그려지는 퍼트리샤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동성애자로서의 자각, 그럼에도 호모포비아적인 엄마(와 가족), 주변 환경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고 사느라,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애쓰는 삶이 참으로 애처롭게 그려진다.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하고 만 장면이 있다. 그녀가 나이 든 남자에게 섹스를 허락하고 마는 장면이다. 사실 퍼트리샤는 자신에게 다가온 잘생긴 또래 남자와 연애를 해보기도 하지만(결국 그의 여동생에게 반하고 마는 퍼트리샤!) 집요하게 섹스를 원하는 남자 친구를 거부하다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중늙은이랑 섹스를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 이 남자와의 관계 때문에 임신하고 마는 퍼트리샤. 미성년자였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으로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이다. 그런 때 퍼트리샤는 임신중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십대 소녀, 미성년자임에도 성인과의 그루밍 관계에서 성착취를 당하고, 결국 임신, 임신중지를 겪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처참한 심정으로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nbsp;<br><br>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연애 상대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지만 그렇다고 삶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이렇다 할 직업도 돈도 거주지도 마련하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기 버겁다. 일상에 이렇게 허덕이는데 연애라고, 사랑이라고 잘 될 리가 있을까. 그럴 때 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인간의 생에는 한두 번 쯤은, 운이 좋으면 몇 번쯤은 꼭 도움이 되는 만남이 있다. 이 무렵의 퍼트리샤에게도 그랬다. 그렇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대학을 가라고 말하는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퍼트리샤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가고,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한다. 의대에 진학했으니 성공적인 삶이 펼쳐질까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퍼트리샤가 의대에 진학한 당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의대생 100명 중 여학생은 다섯 명이 전부이다. 보스턴에서 인턴 과정을 수련할 때는 그가 유일한 여성이다. 1970년대 의료계는 남성 중심적 위계로 움직였으며, 기득권 진입의 기회 역시 남성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오랜 세월 공고하게 유지된 남성들만의 카르텔에서 여성인 그가, 심지어 동성애자인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일과 사랑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일구기란 쉽지 않다.&nbsp;<br><br>특히 의학 수련이라는 거친 바다에 내던져져 만성적인 피로와 감정 고갈을 겪으면서 소진된 나날을 보내던 퍼트리샤는 남성 동료들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서 얻는 것과 같은 돌봄과 지지를 바란다. 그런 안정적인 연애를 갈망하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이 책에는 ‘케이트 밀렛’이 찬조 출연하기도 한다. ㅋㅋ) 성해방이 꽃을 피운 시기라 연애에서의 독점적이고 안정적인 관계에 관한 갈망이나 “아내 운운” 발언은 당시의 기조와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퍼트리샤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이나 발언이 문제인 줄은 알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인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고 싶은 것을 어찌하랴. 퍼트리샤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성공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레즈비언은, 게이는, 동성애자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불행한 삶을 살다 혼자 쓸쓸히 죽어갈 것이라는 사회의 저주, 경고, 편견을 모두 깨버리고 싶다.&nbsp;<br><br>그런데 참 재미나다. 인간이란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라 드디어 그런 관계를 가꿔나갈 수 있는 여자(캐스)를 만났는데 도리어 퍼트리샤는 한눈을 팔기 시작한다. “한때 나는 배려심 있고 잘 챙겨주는 여자를 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커리어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여자, 내 눈에 섹시하고 호감 가는 여자를 원했다. 그 모든 특성을 다 가진 한 여자만 만나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p.266), 캐스를, 또 다른 연인을 속이며 또 때로는 대놓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거나 일시적인 연애 관계에 놓이면서 퍼트리샤는 자신을 폴리아모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이토록 이기적이고 비열하기조차 한 존재이다. 그렇게 침대와 침대를 오가던 퍼트리샤에게 제대로 임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다니’- 지금껏 퍼트리샤를 매혹했던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이 여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녀.&nbsp;<br><br>헌데 ‘다니’는 퍼트리샤와 사귀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동성애자는 니가 처음이야!” 레즈비언이면서도 그간 헤테로 여자만 사귀었다는 다니가 너무나도 신기한 퍼트리샤....는 다니의 그 말이 지닌 의미를 곧 깨닫는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가릴 것 없이 끌어들이는 이 마성의 여자는 정말이지 문젯거리, 위험한 존재는 사실을…. 어느덧 퍼트리샤는 독점적인 관계를 원하던 ‘캐스’의 입장이 되어 ‘다니’와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지만 다니는 그럴 생각이 딱히 없어 보인다. 전 여친도 만나고 새 여자도 만나고 커플 상담사도 꼬시고 그러면서도 퍼트리샤 너 없이는 못산다 하고…대환장 파티다. 퍼트리샤는 다니에게서 지나간 시절, 폴리아모리를 외쳤던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퍼트리샤와 다니, 이 커플은 퍼트리샤의 바람처럼 안정적이고 독점적인 커플을 이룰 수 있을까? 퍼트리샤는 자신이 원하던 바로 그 ‘아내’를 얻을 수 있을까?<br><br>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해주기를 바란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인 애정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응?)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자신은 사랑하는 그 대상에게 그런 존재인가? 그렇게 온 마음과 에너지, 시간 등등 정성을 다해 그 상대를 사랑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퍼트리샤도 그랬을 것이다. 안정적인 관계, 따뜻한 돌봄과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하기를 꺼리던 사람, 이기적이고 철없는 사랑의 표본과도 같았던 그녀. 그리고 때로 그 말은 폴리아모리라는 말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 스스로도 “20대 시절의 나는 믿을 만한 사람도, 존중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나 자신에게 주어야 마땅할 사랑과 수용, 돌봄을 연인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p.430)라고 고백한다.&nbsp;<br><br>그러나 그 고백이 단지 고백으로만 끝났다면 허무했으리라. 그녀는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 끝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 퍼트리샤의 이 다짐은 성공할까? 인간은 사랑에 실패했을 때 관계에 실패했을 때, 상대, 타인으로부터 문제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나 자신은 과연 그 또는 그녀에게 그런 사람이었는가?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은 물론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한 줄이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4/93/cover150/k0421367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949328</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그 항아리의 속사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27379</link><pubDate>Tue, 03 Mar 2026 1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2737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831619&TPaperId=171273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82/75/coveroff/k48283161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238&TPaperId=171273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425/91/coveroff/89329122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9871&TPaperId=171273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84/6/coveroff/895469987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21&TPaperId=171273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86/72/coveroff/893746472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조지 손더스의 &lt;작가는 어떻게 읽는가&gt;를 읽고 얻은 뜻밖의 수확은 톨스토이다. 이 책에는 손더스가 말하고 내가 격하게 동의하는 바, ‘70년에 걸친 러시아의 믿을 수 없는 예술 르네상스(고골, 투르게네프, 체호프,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오스트롭스키, 튜체프,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다수가 활동하던 시대) 시기’에 쓰인 러시아의 단편 7편 전문이 실려 있다. 거의 읽어본 작품들인데 한 가지, 오잉?! 내가 이걸 안 읽었다고? 읽었는데 잊었나? 이럴 수가!! 했던 작품이 있다. &lt;작가는 어떻게 읽는가&gt;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톨스토이의 &lt;단지 알료샤&gt;라는 작품이다.<br><br>작품을 읽기 전, 제목만 읽었을 때는 ‘단지’를 ‘오직’, ‘오로지’란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단지(但只). ‘Only, Alyosha’와 같은 의미로. 그런데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곧 여기서 말하는 단지란 ‘항아리(Pot)’를 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짧은 단편인데도 전문을 읽다가 울컥했다. 이 작품을 내가 왜 여태 몰랐지? 안 읽었을까 싶은 충격. 이래서 내가 톨스토이를 아예 내려놓지를 못하지 싶었다. 다른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최근 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2번 &lt;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gt;에 &lt;항아리 알료샤&gt;라는 제목으로, 문학동네 &lt;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gt;에는 &lt;알료샤 고르쇼크 Алёша Горшок&gt;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르쇼크горшок’가 러시아어로 단지, 항아리를 뜻한다. 열린책들의 &lt;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gt;에도 &lt;알료샤 항아리&gt;라는 단편으로 실려 있다.&nbsp;<br><br>제목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내가 왜 이 이야기에 단번에 빠져들었는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글을 쓰기 전 한 번 더 읽어볼 요량으로 민음사판 &lt;항아리 알료샤&gt;를 펼쳤다(&lt;밀리의 서재&gt;에 있기에). 톨스토이의 단편이 대게 그렇듯이 이야기 자체는 참으로 단순하다. 단지 알료샤, 그러니까 항아리 알료샤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바보나 마찬가지로 톨스토이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순박한 바보의 전형이다. 그가 항아리 알료샤라고 불리게 된 이유도 꽤 단순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우유 항아리를 마을의 부제(副祭)에게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을 시켰는데 알료샤가 넘어지면서 항아리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를 때렸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그를 ‘항아리’라며 놀리기 시작한다. 항아리 알료시카-&nbsp;<br><br>작고 마른 아이로 코가 큰 알료샤는 이때부터 항아리 알료샤라 불리며 마을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된다. 글을 몰랐고 글을 배울 시간도 없는 알료샤. 그럼에도 그의 미덕이라면 묵묵히 일을 잘한다는 것.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여섯 살에 이미 누이와 함께 방목장에서 양과 소를 지켰고, 좀 더 자란 후에는 방목장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말들을 관리한다. 열두 살부터는 밭을 갈고 마차를 몰았다. 힘은 없지만 수완이 좋은 알료샤. 알료샤가 열아홉 살 되던 해에는 그의 형이 병사로 징집되는 바람에 형이 일하던 상인의 집에서 형을 대신해 허드렛일 하는 하인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이 상인의 집에서도 약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알료샤를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료샤의 아버지는 이 녀석은 찍소리도 하지 않고 일을 잘한다고 장담했고, 상인은 떨떠름하지만 그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br><br>처음에 상인의 가족은 알료샤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육받지 못한 티가 나고, 옷도 못 입고, 태도도 정중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너’라고 부르는 이 바보 같은 소년, 아니 청년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곧 다들 그에게 익숙해진다. 그는 형보다 훨씬 더 쓸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찍소리 하지 않으면서 소처럼 묵묵히 일한다. 그래서 집에서처럼 상인의 집에서도 모든 일거리가 알료샤에게 주어진다. 그가 일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일이 그에게 떨어진다. 주인의 아내도, 주인의 어머니도, 주인의 딸도, 주인의 아들도, 점원도, 여자 요리사도 모두가 그를 여기저기로 보내 이런저런 일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도 알료샤는 찍소리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해낸다.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다.&nbsp;<br><br>이렇게 바보처럼,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은 무엇이나 순종적으로 하는 항아리 알료샤의 생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까? 그저 이렇게 묵묵히 살다가 묵묵히 죽어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인가? 싶은데 그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한다. 이 순간을 톨스토이는 이렇게 덤덤히 쓴다.<br><br>“알료샤는 상인의 집에서 일 년 육 개월을 그렇게 산다. 그리고 두 번째 해 하반기에 접어든 그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nbsp;<br><br>손더스의 &lt;작가는 어떻게 읽는가&gt;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br><br>“그렇게 알료샤는 1년 반을 살았는데 갑자기 두 번째 해 하반기에 그의 평생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 일어났다.”<br><br>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사랑이구나....’ 했다. 그의 평생 일어난 적이 없던 일,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 수 있을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열아홉에 상인의 집에 들어와 하인처럼 일하는 청년에게 갑자기 일화천금이 주어질 리도 없고, 그가 갑자기 똑똑해지는 일은 더 불가능할 것이다. 일 년 반이 지났으면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이리라. 그런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사건이란 사랑,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일이 아니고서야 또 무엇이 가능하랴.<br><br>이윽고 톨스토이는 이렇게 쓴다.&nbsp;<br>그 사건이란 그가 사람들 사이에 서로의 필요 때문에 생기는 관계 외에도 대단히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 즉 부츠를 손질하거나 장에서 산 물건을 나르거나 말을 마차에 매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가 아니라 어떤 용무 없이도 돌봐 주고 애정을 쏟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알료샤 자신이 다름 아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놀라움 속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식모를 통해서 우스치니야를 알게 됐다. 우스츄샤는 고아였고 젊었고 알료샤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했다. 그녀는 알료샤를 동정하게 됐고, 알료샤는 다른 사람이 그를, 그 자신을, 그의 도움이 아닌 그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nbsp;<br>“서로의 필요 때문에 생기는 관계 외에도 대단히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 “어떤 용무 없이도 돌봐 주고 애정을 쏟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알료샤 자신이 다름 아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놀라움 속에서 알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은 그에게 스며든다. 사랑이 스며든다는 표현은 이 우직한 항아리 알료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그가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고 그도 웃음을 터뜨린다.”라고 쓸 뿐이다. 이 감정이 어찌나 새롭고 이상야릇했던지 알료샤는 처음에는 두려울 정도이다. “그래도 그는 기뻤고, 우스치니야가 꿰매 준 바지를 보았을 때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짓는다. 일할 때나 걸어갈 때 종종 우스치니야를 떠올린다. 우스치니야는 그에게 자기 운명을, 자신의 사연을, 온갖 사연을 들려준다. 그녀는 말하기를 좋아했고, 그는 그녀의 말을 듣는 게 즐겁다. 함께 웃고 자기의 숨겨진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듣기를 즐기는 두 사람. 사랑이다. 소박하지만 단순하고 그래서 깨끗한 사랑.<br><br>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가? 그렇다면 이 소설은 별다른 매력 없이 잊혔을 것이다. 내게 이토록 인상 깊게 다가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료샤와 우스치니야 둘 사이에는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 하지만 그건 둘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알료샤의 아버지도, 상인도 이 항아리 단지가, 묵묵하게 일 잘하는 항아리 단지 알료샤가 하녀인 우스치니야와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알료샤의 아버지는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br>“아무 생각도 안 했다니. 결혼하고 싶어 했잖느냐. 때가 되면 내가 결혼시켜 줄 거다. 도시의 행실 나쁜 여자 말고 참한 여자를 골라 결혼을 시킬 거란 말이다.<br>&nbsp;아버지는 많은 말을 했다. 알료샤는 서서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말을 마치자 알료샤는 빙그레 웃었다.<br>&nbsp;“좋아, 그만둬도 괜찮아.”<br>&nbsp;“아무렴, 그렇고말고.”<br>&nbsp; 아버지가 떠나고 우스치니야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아버지와 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문 뒤에 서서 듣고 있었다.)<br>&nbsp;“우리 일은 글렀어. 뜻대로 안 될 것 같아. 들었지? 아버지가 화가 나서 못 하게 해.”<br>&nbsp;그녀는 앞치마에 얼굴을 묻고 말없이 흐느꼈다.<br>&nbsp;알료샤는 혀를 찼다.<br>&nbsp;“어떻게 거역하겠어. 그만둬야 할 것 같아.”<br>이런 바보! 멍청이! 답답이! 아버지의 단 한마디에 포기하고 마는 알료샤, 심지어 그렇게 쉽게 단념하는 알료샤의 모습을, 아무런 저항 없이 순종적으로 따르는 이야기를 문 뒤에서 우스치니야는 다 듣고 있다... 이렇게 가슴 아플 수가!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화가 나서 결혼을 못하게 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알료샤는 혀를 찰뿐이다. “어떻게 거역하겠어. 그만둬야 할 것 같아.”<br><br>정말 바보 같은 놈이로군, 쯧, 나조차도 혀를 차게 된다.<br><br>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러나......<br>&nbsp;저녁에 상인의 아내가 그를 불러 창의 덧문을 닫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br>&nbsp;“어때, 아버지의 말을 따를 거지? 바보 같은 생각은 버린 거냐?”<br>&nbsp;“그만둬야 할 것 같아.” 알료샤가 말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br><br><br>-조지 손더스, &lt;작가는 어떻게 읽는가&gt; 중 &lt;단지 알료샤&gt;<br><br>&lt;착가는 어떻게 읽는가&gt;에서 이 부분을 읽던 순간, 나는 저 문장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한 문장에 이토록 많은 의미를 담을 수가 있을까. 알료샤,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알료샤, 항아리 알료샤. 누가 하라는 대로 묵묵히 살아가는 알료샤, 그래서 결혼조차 아버지가 하지 말라면 쉽게 포기하고 그러곤 웃지만....... 결국 울지 않을 수 없는 알료샤. 저 눈물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러나 알료샤 자신도 그 눈물의 모든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br><br>알료샤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다시 묵묵히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일해주면서 살아갈까? 그 후 알료샤의 인생은 짧게 끝난다. 그는 어느 날 지붕 위에 눈을 치우다가 떨어져 다치고 며칠 앓다가 죽는다. 죽기 전 우스치니야와 나누는 말도 항아리 알료사, 그답다. 그래서 매우 함축적이다.<br>“어떡해, 정말로 죽는 거야?” 우스치니야가 물었다.<br>“그러면 어때? 우리가 언제까지나 계속 살겠어? 언젠가는 죽어야 해.” 알료샤는 늘 그랬듯이 빠르게 말했다. “날 가엾게 여겨 줘서 고마워, 우스츄샤. 아버지가 결혼을 막은 게 더 잘된 일이야. 결혼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을 거야. 이제 다 괜찮아.”<br><br>그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달라고 청했을 뿐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했다<br>그는 무언가에 놀라더니 몸을 쭉 뻗고 죽었다.<br>오직 한 번 사랑했으나 함께 살 수 없었던 여인, 결혼할 수 없었던 여인, 그 여인에게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어야 한다며, 자신을 가엾게 여겨 줘서 고맙다고, 결혼해봤자 아무 소용없었을 것이라면서 이제 다 괜찮다고 체념과 단념 속에 죽어가는 알료샤. 그는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한다. 무엇에 놀랐을까? 조지 손더스는 이 작품을 다 말하지 않는 것, 생략의 묘미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 작품이라 칭송한다. 그러면서 “그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달라고 청했을 뿐 계속 무언가에 놀라곤 했다. 그는 무언가에 놀라더니 몸을 쭉 뻗고 죽었다.”라는 문장 뒤에 이런저런 가능한 이야기들을 이어서 써본다. 그러나 그 무엇도 저 두 문장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저 위의 문장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이다. 이 문장 후에 알료샤의 심정을, 왜 우는지 구구절절 설명한다면 이 작품의 심오하고도 미묘한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br><br>알료샤가 사랑을 포기한 후 웃다 눈물짓는 모습도, 체념 속에 다 죽어가면서 그럼에도 어느 순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놀랐다가 숨을 거두는 모습도 문장으로 그 까닭을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심정을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저마다 자기의 사정과 생의 경험에 비추어 헤아리고 반추해보지 않을까? 톨스토이도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으리라. 인생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놓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생에 순종하고 살았다고 해서 그가 어리석기만 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포기했다고 해서 그의 마음속을 비추던 한줄기 빛마저 완전히 잊고 살아갔을까? 그렇게 비천한 자기의 생에도 가끔 빛이 있던 때가 있노라고 그래서 놀라움 속에 죽어간 것은 아닐지.......&nbsp;<br><br><br>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86/72/cover150/89374647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6867245</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오랜만에 산책(202601~02)</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14891</link><pubDate>Thu, 26 Feb 2026 09: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148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1995&TPaperId=17114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7/92/coveroff/897297199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381638&TPaperId=17114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8/coveroff/8980381638_1.gif"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034341&TPaperId=17114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26/26/coveroff/k642034341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5438&TPaperId=17114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49/20/coveroff/k412135438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5133&TPaperId=17114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7/30/coveroff/k592135133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114891'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오랜만에 산 책 이야기. 지난해 12월에 산 책 올리고, 1, 2월에 구매한 책들을 올려본다. 책장 파먹기 중이기도 하고 딱히 흥미로워 보이는 신간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그런 중에도 오잉? 눈에 들어와 산 책 이야기..... 우리 냥이들 사진 기다리는 분들 있을 거 같아서 겸사겸사.<br><br> <br>퍼트리샤 그레이홀, &lt;침대와 침대를 오가며&gt;<br>간만에 진짜 재미있을 듯한 책 발견!!! 발행일 2월 26일 너무 재미나 보여서 급박하게 샀다.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라는 아스트랄(?)한 제목부터 흥미롭다. 부제는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nbsp; “미국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자 전직 내과 전문의인 저자가 남성 중심적인 의료계에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좇는 동시에 삶을 함께하고 싶은 여성을 찾아 병실 침대와 연인의 침대를 오갔던 젊은 시절을 회고한 에세이”라는데.... “병실 침대와 연인의 침대”를 오갔다는 표현이 확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설마 환자도 꼬신 건 아니죠? ㅋㅋㅋㅋㅋ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br><br>그나저나 송섬별, 이 역자분 거의 퀴어 도서 전문 번역자인 듯...? 내가 최근에 읽은 퀴어 관련 책마다 이분이 번역하고 계신 거 같다.<br> <br>미시마 유키오, &lt;소설가의 휴가&gt;<br>북펀딩할 때부터 눈여겨보긴 했는데 왠지 미시마 유키오 책 펀딩에 참여하긴 싫고....(이상한 심리) 읽어보고는 싶고 해서 보관함에 담아둔 지 오래. 설 연휴 직전에 신간 구경하는데도 이 책은 미출간으로 나와서 언제 출간 되려나 기다리면서 잊은 틈에 아아아니, 블랑카 님은 벌써 읽고 리뷰 남기셨더라는?! 뒤늦게 후다다닥 샀다.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다.&nbsp;<br> <br>블라디미르 나보코프, &lt;말하라, 기억이여&gt;<br>이 책도 아마 블랑카 님에게 땡투했던 것 같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자서전- 내가 싫어하는 책 종류 중 하나가 저자 본인이 쓴 자서전, 저자 본인이 쓴 회고록이다. 자화자찬, 미화 일색으로 흐르기 쉽거든... 그럼에도 이 책은 왜 읽고 싶었느냐! 단지 나보코프의 문장 때문. 번역된 언어로 읽어도 나보코프는 그 미문이 느껴지기 때문. 나보코프를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미문 때문에 읽는다. 미시마 유키오와 비슷한 이유.<br><br><br>크리스티앙 보뱅. 리디 다타스, &lt;세상의 빛&gt;<br>이 책은 출간 당시 좀 고민했다. 부제가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 이건 보뱅의 책인가? 리디 다타스의 책인가? 보뱅이 쓴 책이 아니라 리디 다타스의 책이라면 읽을 가치가 있는가... 보뱅의 책이라고 해도 “모으고 되살린” 말들의 대잔치라면 굳이....? 그런데도 호기심에 이끌려 구매. 오오오, 그리고 별 다섯! 안 읽었으면 큰일 날 뻔!&nbsp;<br><br>그나저나 이 책 발행한 출판사가 ‘THE CIRCLE PRESS’라고 나오는데, ‘1984Books’와 같은 출판사로 보인다. 이름을 바꾼 것인지, 별도로 또 차린 건지...? 이 출판사는 다 좋은데 좀 표지갈이하고, 판형 바꾸고 이러면서 개정판이라고 우기는 짓 좀 그만하면 좋겠다. 아니 에르노 &lt;세월&gt; 또 표지갈이 해서 개정판이라고 판매하더라..... 하 증말. 보뱅 책도 그렇고 몇 번을 바꾼 건지. 시리즈로 책 모으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짜 짜증남.&nbsp;&nbsp;<br><br> <br>플랜 오브라이언, &lt;세 번째 경찰관&gt;<br>소설 신간 중 진짜 간만에 눈이 확! 커진 책. 사실 요즘 ‘밀리의 서재’에 을유세계문학 이 시리즈는 거의 다 올라오더라. 그래서 신간 웬만하면 종이책으로 안 사고 기다리는데.... 이 책은 너무 궁금해서 그냥 샀다.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와 더불어 아일랜드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 플랜 오브라이언의 유작”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현대 아일랜드 문학의 삼위일체라 불리는” 이라는 소개를 보면 어떤 작품일지 가늠이 된다, 마조히스트적 즐거움이랄까.... 지극히 난해하고 고통스러운 재미의 추구. ㅋㅋㅋㅋㅋㅋㅋㅋ<br><br> <br>줄리언 반스, &lt;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gt;<br>반스 님의 마지막 책이라고 한다. 이 책까지만 쓰고 절필 선언했다고. 그래서 사두고 아끼느라 아직 안 읽었다. 이 책 읽기 전에 일단 사두고 안 읽었던 &lt;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gt;부터 읽음.<br><br> <br>라비 알라메딘, &lt;불필요한 여자&gt;<br>이 책도 신간 살피던 중 오랜만에 동공지진했던 책이다. 출판사 ‘뮤진트리’의 도서도 ‘밀리의 서재’에 자주 올라오기에 기다릴까....? 하다가 왠지 한동안은 안 올라올 거 같아서 그냥 종이책 샀다. 근데... 기대가 너무 컸는지 살짝 맥이 빠졌는데, 그건 다름 아닌! 작가의 향기(냄새)가 너무 짙게 느껴졌기 때문(문학 작품에서 저자가 너무 드러나면 좀 싫어하는 편). 이 작품에는 수많은 문학(책), 음악(작곡가, 연주자) 이야기가 나온다. 근데 아무리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너무 많아... 인용 구절도 투머치...... 조지 산타야나까지 인용한 부분에선 ‘으 이제 그만!’ 그냥 실소가 터져버렸다..... 문학 작품에서 다른 책 인용 구절이 너무 많으면 치트키처럼 느껴진다(페이지 늘리기 쉬운 수법 중 하나). 게다가 결정적으로 어느 순간 그게 주인공의 취향이 아니라 결국 작가 자신의 취향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너무 많으면 거부감이 든다. 주인공 ‘알리야’가 하는 일이 번역이기 때문에 그 많은 책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으나 그 수많은 리뷰들을 읽고 있자니 이럴 거면 그냥 알라딘 서재를 하시지 그럴까 싶어졌다..... 저자에게 묻고 싶어지기도. 이건 당신의 책 취향입니까? 알리야의 취향입니까? 참, 보후밀 흐라발, &lt;너무 시끄러운 고독&gt;의 노년 여성 버전 같기도.<br> <br>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lt;헤르쉬트 07769&gt;<br>라슬로 책은 좀 다 읽고 천천히 구매하려고 했는데.... “초판 한정 하드커버”라는 문구 보고 아아아 그냥 사! 해서 샀다. 라슬로가 노벨문학상 받은 후에 찍은 &lt;사탄탱고&gt; &lt;저항의 멜랑콜리&gt; 등등이 무려 양장본이 아니어서 원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다 양장본으로 갖고 있는데 이 책만 나중에 하드커버가 아니면 너무 싫을 것 같아서;; 언제 읽을지도 모르는데 일단 구매.&nbsp;<br><br> <br>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lt;오블리비언&gt;<br>에세이로만 접했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소설은 얼마나 재미나게 썼을지 궁금해서 구매. 근데 얼마 전에 폴스타프 님이 이 책 읽고 계시는 거 같아서 오오잉? 했다. 저보다 먼저 읽으실 듯... 이건 소설집인데 차라리 장편 &lt;무한한 재미infinite Jest&gt;를 소개하지 그랬을까 싶기도.<br>&nbsp; &nbsp;&nbsp; <br>리처드 예이츠, &lt;레볼루셔너리 로드&gt;<br>리뷰도 쓰고 100자평도 남기고 이렇게 산 책 페이퍼도 남기네. 민음세계문학전집에서 오랜만에 재미난 책 읽었다......<br><br> <br>리처드 예이츠, &lt;부활절 퍼레이드&gt;<br>그러니까 &lt;레볼루셔너리 로드&gt; 읽고 반해서 리처드 전작 읽기 도전.......하기엔 국내에 너무 조금 소개된 그의 책. 그마저도 판권 소멸로 절판. 도서관에서도 찾아봤으나 허허허 도서관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리처드 예이츠.... 어렵사리 중고로 구매.<br><br> &nbsp; &nbsp;&nbsp;<br>리처드 예이츠, &lt;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gt;<br>이것도 결국 그래서 중고로 구매. 신기한 건 위의 &lt;부활절 퍼레이드&gt;하고 알라딘 우주점 ‘잠실 새내점’에서 같이 이 두 권을 샀는데 서울 잠실에 리처드 예이츠 팬이 사시는가 봅니다. 근데 완벽한 팬은 아니신가 봅니다... 책을 결국 내놓으신 걸 보니...? ㅋㅋㅋㅋㅋㅋㅋㅋ&nbsp;<br><br> <br>조지 엘리엇, &lt;고장 난 영혼&gt;<br>올해 목표 중 하나가 조지 엘리엇 &lt;미들마치&gt; 읽기. 그전에 맛보기로 이 책 읽었는데...... 솔직히 좀 지루하고 심심해서 &lt;미들마치&gt; 자꾸 멀어져가네..... 요즘 책인 &lt;불필요한 여자&gt; 읽은 후 이 책을 읽은 탓에 더 고루하게 느껴졌던 거 같기도... ㅠㅠ<br><br> <br>롤랑 바르트, &lt;영도의 글쓰기&gt;<br>동문선에서 나왔던 최악의 번역 도서 중 하나 필로소픽에서 새롭게 나왔다. 사지 않을 수 있는가.&nbsp; &nbsp;&nbsp;<br> <br>엘렌 식수, &lt;메두사의 웃음-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선언&gt;<br>동문선에서 나왔던 최악의 번역 도서 중 하나 마티에서 새롭게 나왔다. 사지 않을 수 있는가222222222 북펀딩해서 받았다. 편집이 참 독특했다. 그래서 더 빨리 읽었다..&nbsp; &nbsp;&nbsp;<br><br> <br>주디스 버틀러, &lt;중요한 몸- 성의 담론적 한계에 관하여&gt;<br>이 책도 북펀딩으로 구매. 책을 받아들기 전에는 무척 흥미진진 재미날 거 같았는데, 이 책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재에 올라온 오역 지적 글을 읽었더니 하..... 이 책 읽고 싶은 욕구가 짜게 식어버렸... ㅠㅠ 그래도 조만간 읽을 계획. 버틀러는 참... 오역 없는 책으로 읽기 어려운 것인가.<br><br> &nbsp; &nbsp;&nbsp;<br>피에르 부르디외, &lt;세계의 비참 1&gt;<br>20대 때 읽었는데 기억도 희미하기도 하고, 그때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읽었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요즘 갑자기 부르디외 저작들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 구매...하려고 보니 에에엥? 그새 절판이고 이 책을 중고로 겨우 구했다. 2, 3권도 구하고 싶은데 중고책팔이들의 그 사악한 가격으로 구매하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 1권만 여차저차 구매.&nbsp;<br><br> <br>미셸 푸코, &lt;광기, 언어, 문학&gt;<br>미셸 푸코 미공개 선집 5. “푸코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에 집필하거나 강연한 글 13편을 묶은 책으로, &lt;광기의 역사&gt;, &lt;말과 사물&gt;, &lt;지식의 고고학&gt; 사이에 위치한 그의 사유의 전환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근데 나 요즘 푸코하고 너무 친밀한 느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는 그의 이름... 푸코야! 푸코양! 풋코양! 아유 귀여! 우리 풋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nbsp;<br><br>푸코야!!!!!!!!! 울 귀염둥이!!!!! 꺄.......... &gt;_&lt;<br><br>울 귀염둥이 푸코 푸코 푸코 냐옹! ㅋㅋㅋㅋ<br><br><br>아니 일단 책탑!<br><br><br>오랜만에 흔들흔들 책탑...<br><br>그나저나&nbsp;이번 설에 집에 갔다가 폭탄 발언한 사연.......&nbsp;<br><br>그러니까.. 알라딘 이웃들은 다 아는데 울집 식구들은 모르는 게 있(었)다. 그러니까 푸코와 한나의 존재...... 지난해 9월 둘째 고양이 세상 떠난 것은 울집 식구들도 집사2네 가족들도 다 알고는 있었다. 그때 양가 부모님들이 위로와 함께 동시에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들... 또 데리고 오지 말아라...” 고양이 아무리 좋아해도 여섯 마리는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늘 말씀하시던 터라 한 마리가 떠나니 우리의 슬픔을 헤아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부모님들은..... 주문처럼 “또 데리고 오지 말아라...”<br><br>그런데 아시다시피 9월에 푸코랑 한나가 왔잖아요....? ㅋㅋㅋㅋㅋ 지금까지 계속 울집에는 비밀이었다(집사2는 나보다는 먼저 집에 고백 ㅋㅋㅋㅋ). 근데 엄마가 왜케 집에 안 오느냐, 가족 모임에도 안 오느냐 잔소리를 하시기에 아니 요즘 울 고양이(5호) 아파서 정신없어... (귀찮아서 안 가놓고 괜히 5호 핑계). 그러다 엄마가 잠깐 자리를 떴는데 동생들과 제부들이 동시에 묻는다. “또 데리고 온 거 아니죠?” “...............”<br><br>이날 이미 내가 울집 꼬마 조카(올해 6세)한테 만나자마자 울 푸코랑 한나 사진 보여준 참이었다. 이 꼬맹이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허구한 날 냥카페 가서 죽치고 논다는데... 아니, 조카야 이모 집이 냥카페란다... 어딜 가......(내 조카들은 큰조카부터 이 꼬맹이까지 다섯 명이 모두 고양이한테 환장한다. 이것도 유전인가.... 다들 울 집 와서 노는 게 소원ㅋㅋㅋㅋ). 아무튼 꼬맹이가 고양이 사진도 본 마당에 뭘 더 숨기나 싶어서 푸코&amp;한나 사진을 동생들에게도 보여줬다. 사진을 보더니 다들 헉......... 동공지진. “두 마리!!!!!!!!!!!!!!!” “한 마리는 데려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두 마리!!!!!!!!!!!!!!!!!!!!”<br><br>“근데 진짜 너무 이쁘다...........” (동생1,2&amp;제부1,2 사진 보느라 말잇못)<br>제부들도 고양이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울집 1호 고양이는 동생1과 제부1이 함께 구조해서 임보하던 녀석이다), 제부2가 푸코한테 반해버려서는...... “어우 너무 귀여워. 고양이 카페에서 제가 반했던 애랑 똑같아요! 만져 보고 싶어요. 놀러 가고 싶어요. 놀러 갈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부2는 이날 나랑 헤어질 때도 “놀러 갈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베란다에서 음식 챙기던 엄마가 돌아와 묻는다.<br><br>“뭐가 그렇게 이쁘다고?”<br><br>“우리 고양이”<br><br>“뭐? 또 데리고 왔어?????????????????????????????”<br><br>“아니?!............”<br><br><br>응 엄마,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nbsp;<br>푸코야 한나야 너희들의 요 귀여움을 울 엄마는 보지를 못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br><br>요랬던 녀석들이.....<br><br><br><br>그새 이렇게 컸습니다.<br><br>한나는 푸코랑은 절친이지만 역시나 3호 망태 오빠를 향한 사랑 못 잊어.... (발정이 끝나도 좋아하는 건 여전히 좋아하네요?!)<br><br><br>우리3호 망태형아/망태오빠 여전히 인기 폭발....&nbsp;<br>원조 막냉이랑 한나랑 둘이 3호 두고 질투 폭발...(3호&amp;원조 막냉이&amp;한나 셋이서 잠자냥을 두고 질투 폭발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허허허.......).<br><br><br><br>원조 꽃미남 꽃중년 울집 1호<br><br><br><br>노숙묘 체험 원조 막냉이...<br>막냉이는 볕 잘 드는 한낮에는 이렇게 옛 시절을 추억하며 베란다에서 스트리트체험이 취미입니다. ㅋㅋㅋ<br>(이 박스는 6호가 너무 좋아해서 버리지 못하고 있다...)<br><br>어젯밤 따끈따끈 원조 막냉이.&nbsp;오잉?! 머리 위에 후광이....?! &gt;_&l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4/93/cover150/k0421367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949328</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연극이 끝나고 난 뒤  - [레볼루셔너리 로드]</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09020</link><pubDate>Mon, 23 Feb 2026 16: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090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64&TPaperId=171090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04/45/coveroff/89374647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64&TPaperId=171090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레볼루셔너리 로드</a><br/>리처드 예이츠 지음, 이삼출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

좋아하는 것들이 이어져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lt;레볼루셔너리 로드&gt;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아니, 이 작품을 쓴 리처드 예이츠가 바로 그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 보물의 발견, 그 시작은 이렇다. 나는 좀 나이 들었을 때의 케이트 윈슬렛을 좋아한다. &lt;타이타닉&gt;을 찍었을 무렵이 아니라, &lt;이터널 선샤인&gt;이나 &lt;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gt; 이 두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을 때부터의 케이트 윈슬렛. 이런 류의 행복하지 않은, 비극에 가까운 인물을 연기할 때 그 피폐한, 그늘진 얼굴과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가 주연으로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lt;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gt;(2008)도 보았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nbsp;<br><br>이 작품의 원작인 리처드 예이츠의 &lt;레볼루셔너리 로드&gt;가 출간 되었을 때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 굳이 읽어야 하나? 볼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도 문학은 영화와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읽기를 선택했는데, 세상에나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을 내가 왜 여태 안 읽었던가. 탄식하고는 그이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장바구니에 담았다(아니나 다를까 국내에선 인기가 참~~ 없었던지 대부분 다 판권 소멸로 절판 상태라 중고로 구매. 그런데 중고 책도 많지 않았다).<br><br>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lt;레볼루셔너리 로드&gt;의 줄거리는 딱히 크게 소개할 것이 없다(만 흥미진진하다). 1960년대 미국 교외의 중산층 마을에서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20대 초반에 만나 그야말로 불꽃 같은 사랑에 빠지고 곧 결혼해 이제 뉴욕시 외곽 지역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한 프랭크와 에이프릴- 두 사람 다 주변에서 칭송할 만큼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데다가 귀여운 딸 하나, 아들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한데 왠지 그들의 결혼 생활은 시들대로 시든 듯한 느낌이다. 함께 생활한 지 몇십 년이 지난 커플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나이는 이제 20대 후반. 결혼한 지 7~8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 주변에 흐르는 이 무거운 공기는 무엇 때문일까.&nbsp;<br><br>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엔 별 의미 없어 보이던 이 작품의 시작 부분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시작한다. 이 마을 구성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취미 삼아 연극 공연을 준비한다. 프랭크의 아내인 에이프릴도 이 모임의 구성원으로 이번 연극에서 무려 여주인공을 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프릴은 프랭크와 결혼하기 전, 한때 배우 지망생으로 뉴욕에서 알아주는 극예술 대학교를 다녔다. 에이프릴은 자못 연기에 자신감이 넘치고 그녀의 이력을 알고 있는 마을의 몇몇 사람들도 공연을 지켜보면서 “저 여자는 꽤 잘하는데.”라고 속삭이며 짐짓 아는 체를 한다. 스물아홉 살, 잿빛이 도는 금발에 훤칠한 그녀는 아마추어의 서투른 조명 아래서도 기품 있는 미모가 고스란히 드러나 주위를 사로잡는다.....<br><br>하지만 이 연극은 혼자만의 모노드라마가 아니다. 거기서 불협화음이 시작된다. 상대역을 맡은 남자 주인공도 있으며 이런저런 어설픈 연기자들(이웃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한때 배우지망생이었던 에이프릴 혼자 아무리 기를 쓴다고 연극이 성공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지 않은가? 아뿔싸, 상대역의 남자 배우가 대사를 잊어서 버벅대기 시작하고 그 후로 연극은 엉망진창, 관람 온 여타 마을 사람들은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꿈지럭꿈지럭 하품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공연이 완전 실패했음을 객석에 앉아 아내의 연기를 지켜보던 프랭크 또한 안다. 그는 이미 마음이 불편하다. 공연이 끝난 후 에이프릴의 기분을 달래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하다. 아니나 다를까 연극이 끝나도 분장실에 홀로 남아, 돌아갈 생각이 없는 에이프릴- 사실 공연 후엔 늘 어울리던 이웃의 캠벨 부부와 한 잔 하기로 이미 약속했는데 아니 저 여자가 왜 갈 생각을 안 하는지?! 답답한 마음에 분장실로 찾아간 프랭크는 싸한 분위기에 좌불안석인데 결국 에이프릴의 심기를 건드려 두 사람은 폭발하고 만다.<br><br>상상하기 쉬운 장면이다. 한때는 배우를 꿈꾸던 여자, 옛 시절을 그리며 비록 비전문 배우들로 이루어진 극단에서 아마추어들의 연극이지만 무대 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자신만은 남들과 다르다는 평을 받으리라 기대했으나 별반 다를 바 없음을 확인 후 비참한 기분에 젖어 있는 여자. 남편은 아내의 그런 예민한 기질을 알기에 남편 된 도리로 달래줄 생각은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뭔가 울컥 짜증이 치솟고…. 그렇지만 사람들, 그러니까 이웃들 앞에서 좋은 남편으로 보여야 하므로 성실하고 다정다감하고 가정에 충실한 남편의 모습으로 한껏 연기하며 아내를 달래보지만, 아내는 이미 남편이란 작자의 본질을 십여 년 가까이 지켜봐 왔으므로 그의 서툴기만 한 연기가 역겨워 폭발하고 마는 그런 장면. 물론 모든 부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부부의 삶, 부부의 연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프랭크와 에이프릴 이 부부의 각본 없는 연기 또한 그렇게 흘러간다.&nbsp;<br><br>에이프릴의 과거는 그렇다 치고 프랭크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2차 세계 대전 막바지 프랑스 전선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으며 명문대학을 나온 자신을 이상주의적 경향이 강한 지식인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세상에 이렇게 멋진 놈이 또 없어! 단지 어쩌다 보니 가정을 꾸리기 위해 로봇처럼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뿐…. 비록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이사와 이 마을에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성실하게 꾸려나가고는 있으나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 마을의 머저리들 대다수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믿는다. 한때 배우를 꿈꾸던 자신을 잊지 못한 채 자기는 여느 가정주부들과 다르다고 믿고 살아가는 에이프릴과 똑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들 앞에서는 좋은 이웃-성실하고 모범적이며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을 연기하는 데 진심이다. 이상적인 부부로 보이고자 전력을 다하면서 속으로는 우리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자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다른가?&nbsp;<br>지성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문제들을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처리하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은 시내에 나가 죽을 만큼 따분한 일을 하고 또 죽을 만큼 따분한 교외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이 이런 일보다 훨씬 더 부조리하고 더 큰 문제들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먹고사는 것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것은 오염되지 않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하는 것이었다.(p.40)<br><br>프랭크는 지독하게 따분한 일을 하면서, 지독하게 따분한 교외에서 그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오염되지 않는 것’,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실체가 잘못 알고 있던 모습이거나 또는 도달하고자 꿈꾸는 초상이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비록 지금이라도 그런 자기 자신을, 자기의 참모습을 되찾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잊고 지낸 자기의 본모습을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br>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연극이 끝난 후 말다툼을 하고는 내내 냉랭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이 퇴근 한 프랭크에게 한없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이상하다 이거 참, 뭔가 꿍꿍이가 있을 텐데, 프랭크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하다. 지난 며칠 동안 그토록 쌀쌀맞기 그지없던 아내가 내 생일이라고 이렇게 돌변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폭탄 발언을 한다. 프랭크! 우리, 이 기만적인 삶을 접고 파리로 떠나요..... 아니 뭐라고? 여기서 겨우 자리 잡았는데 모든 걸 다 버리고 파리로?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무작정 파리로 떠나자고? 여행아 아니라 완전한 이주를 제안하는 에이프릴. 프랭크는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유럽으로, 파리로 떠날 수 있을까? 가서 무엇을 하며 먹고사느냐고 묻는 프랭크에게 에이프릴은 이렇게 답한다.&nbsp;<br>“모르겠어요? 그게 이 계획의 핵심이란 걸 모르겠어요? 당신은 칠 년 전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는 거죠. 당신 자신을 찾는 거예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생각하는 거죠. 시간을 갖는 거예요. 당신은 평생 처음으로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겠죠. 그리고 그걸 찾아냈을 때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적 여유도 갖게 되는 거란 말이에요.”&nbsp;<br><br>먹고사니즘에 갇혀 하릴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직장-집-직장만 오가던 남자에게 아내가 파리로 떠나자고, 이젠 자기가 일할 테니 당신은 진짜 하고 싶던 일을 찾으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덜컥 그 제안을 물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곳에서의 삶이 안온하다면, 따분하고 무료할지언정 뭔가 잡힐 듯한 기회가, 성공이 눈에 보인다면, 바로 저 앞에서 유혹한다면 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문제이다. 애초에 찾고자 하는 자기 자신이 가짜였다면? 존재하지도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찾을 것인가. 진정한 나 자신이라는 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곳인들, 파리인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절망적일 정도로 가망 없는 그 공허함을 벗어날 수 있을까?<br><br>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처음부터 그러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허한 인간들, 그저 남들이 사는 것처럼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까. ‘여느 다른 가장들처럼 자신도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독하게 따분한 직장에 취직’하고, ‘단정하고 건강한 삶의 중요성에 대한 성숙한 자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비싼 중산층 아파트로 이사’하고 ‘첫째 아이가 실수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둘째를 낳았고, 그다음 단계로서 합리적이고 또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교외에 집을 마련’하며 입증하고 입증하며 살아온, 그리고 ‘지금 이 여자와 결혼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pp.84~85)이라 고백하는 프랭크 휠러- 이렇게 타인에게 입증하기 위해 살아온 공허한 존재가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br><br>&lt;레볼루셔너리 로드&gt;에는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만이 아니라 그들 주변의 이웃 대다수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이 잘살고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살아가고 또 그게 잘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자위하면서 살아간다. 속은 다들 썩어문드러지면서도 겉으로는 웃는 연기를 한다.&nbsp; ‘집에서는 미치광이 아들이 장광설을 늘어놓고 기물을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해도 저녁이면 스프링쿨러는 잘만 돌아가고 텔레비전은 모든 집구석 거실을 같은 목소리로 울려 댄다. 한 여자의 하나뿐인 아들이 미쳐서 집으로 돌아오고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슬픔과 죄의식과 고뇌를 엄마에게 쏟아붓는다. 그런데 그 엄마는 건축 규제 위원회 활동이라든지 좋은 이웃 만들기 운동에 참여한다든지 마분지 상자에다 화초를 담아 나른다든지 하는 일로 바쁘게 돌아다닌다. “타락도 이런 타락이 없어.” (p.105) 프랭크는 짐짓 자신은 다른 척 중얼거리지만 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라는 기만극의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다. 그런데 섬뜩한 것은 이 기만극의 실체를, 이 연극의 끝을 지켜보고 있는 독자 자신의 삶도 그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연극은 언제고 끝난다. 무대는 텅 비고 자기만 홀로 남는다. 그런데 그 자기가 가짜였음을 깨닫는다면 텅 빈 무대는 더 쓸쓸하지 않겠는가. <br><br><br>영화 &lt;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gt;(2008)의 프랭크와 에이프릴-<br>이 장면만 보면 참 행복해 보여.... 그쥬?<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04/45/cover150/89374647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044526</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놀이기록</category><title>다음엔 내가 이기겠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105202</link><pubDate>Sat, 21 Feb 2026 17: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1052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930998&TPaperId=171052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37/69/coveroff/k58293099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5031&TPaperId=171052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95/coveroff/k18213503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1573&TPaperId=171052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17/8/coveroff/89546815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1828&TPaperId=171052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5133/51/coveroff/895465182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030408&TPaperId=171052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53/14/coveroff/k152030408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105202'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어제는 다락방을 만났다. 지난여름에 다락방이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약속이 이렇게 늦어진 거였다. 6개월 금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줄이야.<br><br>어제 만난 곳은 서울의 한 순댓국집. 사실 이곳은 2024년 여름에 다락방을 처음 만나기로 했던 날 가려고 했던 곳이다. 그런데 하필 이 순댓국집이 여름 휴가로 문을 닫았었고 그날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에 갑자기 장소를 바꿔야 해서 어디 가죠? 어디 가죠?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했던 곳이기도.<br><br>드디어 바로 거기에. 2월 14일부터 계속 휴가여서 두문불출 집콕 생활 중이던 나는 진짜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맞으러 나갔고…(그래도 설 당일에 본가는 갔었다!!! 장하다!) 5시 15분 전에 도착해서 다락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인간도 벌써 왔는지 아이메시지가 날아왔다. 나는 어차피 연차 휴가 중이라 낮술 마셔도 된다고 했는데 아 이 집 ㅋㅋㅋㅋ 브레이크타임도 있어서 저녁은 5시 오픈. 그래서 우리는 저녁 첫 손님으로 입장…!<br><br>그럴 줄 알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 인간은 가방에서 숙취해소제부터 꺼내줬고 나 또한 챙겨 온 숙취해소제를 꺼내는 바람에 우리 테이블에는 소주가 오기 전부터 숙취해소제만 4개가 놓였다. 이걸 보시곤 일하시는 분께서 “아이고 오늘 많이 마셔야겠네! 호호호” 하신다.<br><br>다락방한테 여러 가지로 고마운 게 많아서 순대국밥, 수육 내가 대접해주고 싶었다…..그런데! 아 이 인간, 가방에서 뭘 또 꺼내는데 성심당 소보루빵하고 호주에서부터 챙겨 온 원두 한팩, 드립백을 펼쳐놓는다. 내가 놀란 건 성심당 소보루빵….! “제가 어제 대전을 다녀오는 바람에….“ ”대전??? 대전이라고요? 아니 귀국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대전을 또…!” “일자산도 다녀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미치도록 바쁜 인간이다. 어딜 그렇게 나 다니지? 이 인간이 귀국해서 돌아다닌 거리+걸음수가 내가 2월 초부터 어제인 2월 20일까지 돌아다닌 거리+걸음수보다 많을 것이다. 장담한다….<br><br>소주 세 병을 비우고 8시쯤 되었나?! 이 인간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잠깐 자리를 비웠다. 워낙 예민한 방광과 장을 지닌 인간인지라 그려려니 했다.  돌아온 다락방이 여기서는 그만 마시자고 해서 그럼 저도 화장실 좀! 하면서 일어나서 계산하고 오려고 했는데….. 아 징짜 이 인간이 계산 또 다 했어. 진짜 왜 그녀는 지갑마저 기민한가? <br><br>너무 통탄스러웠다. 사실 나는 내가 더 쓰면 썼지 누구한테 얻어먹는 거(신세 지는 거) 못 견뎌하는 편인데 다락방한테는 늘 진다. 우리 둘째 고양이별로 떠났을 때도 그 싱가포르에서 위로 선물을 챙겨 보내서 진짜…. 너무 고마웠었는데 그래서 이 인간이 싱가포르에서 엽서 보냈을 때 오호라! 여기 주소 있겠구나! 뭐 좀 챙겨 보내야지 하고 엽서를 샅샅이 봐도 이 치밀한 인간 주소를 안 썼어……-_-<br><br>그래서 순댓국과 수육만큼은 내가 대접하고 싶었는데 그 기회도 빼앗기고 심지어 나는 어제 빈손,무가방(가방 들고 다니는 거 싫어함)으로 나갔는데 빵이며 커피며 쇼핑백 두 개에 그득그득 담아온 것이다락방 주변에 사람이 많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따뜻함도 한몫하지 않을까… 어제 잠깐 생각했다.<br><br>2차로는 근처 맥줏집을 갔는데, 이 인간이 소심하게 먹태 같은 걸 시킬까요해서 너무 웃겼다. 먹태개풀뜯어먹는소리….. 치킨 시켜요. 다 아는데 왜 이래! ㅋㅋㅋㅋㅋㅋㅋ 후라이드치킨을 주문했다. 한마리. 다락방은 싱가포르에서 이 한국 후라이드치킨과 순댓국이 진짜 먹고 싶었는데 오늘 다 먹는다며 참으로 행복해했다…… 누가 보면 싱가포르에서 6년 있었는 줄…..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다락방에게 후라이드치킨이라도 맛나게 사줄 수 있어서 기뻤다.<br><br>많은 이야기를 했고 많은 책 이야기도 했다. 어제의 뜻밖의 수확은 장안(?)의 화제 앤드류의 실물 영접….은 아니고 실물 사진 영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진짜 충격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님 그 멘트에 제가 한 살 더 올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앤드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아! 이게 제일 중요하다. 주말임에도 페이퍼를 쓰는 이유는…. 다락방이 꼭 호주에서 사온 원두를 마신 후 어떤지 후기 올려달래서!<br><br><br><br><br>오늘 아침에 5호 병원 다녀와서(5호는 여전히 주말마다 병원 투어 중) 느긋하게 커피를 내렸다. 커피맛에 일가견 있다는 다락방의 여동생분이 그토록 극찬했다는 이 원두. 호주의 자부심이 담긴 원두! 얼죽아인 집사2를 위해서는 아아로, 나는 따뜻하게….<br><br>집사2가 이렇게 말했다. <br>“헐… 올해 마신 커피 중에 제일 맛있어!!!!”<br>“올해 아직 2월인데….” ㅋㅋㅋㅋㅋㅋ<br>“아, 작년부터 올해까지 마신 커피 중에 제일 맛있어! 신맛이 이렇게 풍부하면서 고소하고 진해!“<br><br>정말 그랬다. 원두 생김새부터 좀 달랐는데 한 원두에서 이렇게 풍부한 맛이 난다니 놀라웠다. 따뜻하게 마시면 고소하다가 끝에 베리류 산미가 확 번지고 아이스로 마시면 그 반대로 맛이 느껴진다. 산미가 좋아서 그런지 아이스로 마시는 게 더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아무튼 최고였다락방! 고맙다락방!<br><br>그리고 아래는 어제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속에 등장한 책들….(10개밖에 못 올린다고!?)<br><br>샐리 루니 안 잊었지 다락방?! ㅋㅋㅋㅋㅋ<br><br>그리고 다락방 남동생분 대빵이님이 ㅋㅋㅋㅋㅋㅋ 추천하신 히든 픽쳐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오오, 재미나다!<br><br>아무튼 다락방 다음엔 내가 먼저 화장실 간다!!! <br><br><br>         <br><br><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82/11/cover150/89509574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821153</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087397</link><pubDate>Thu, 12 Feb 2026 1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0873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869&TPaperId=17087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86/29/coveroff/893747986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850&TPaperId=17087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69/71/coveroff/893747985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842&TPaperId=17087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474/42/coveroff/893747984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834&TPaperId=17087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127/81/coveroff/893747983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1590X&TPaperId=17087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741/36/coveroff/890121590x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087397'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열다섯에서 열여섯 그즈음. 사춘기의 시기. 질풍노도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 시절. 불안정하고 반항적이며 삶 자체가 따분해지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허무해지는 그런 때. 누구나 그 한때를 지나간다. 나 또한 그렇다.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지금의 나와 많이 다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반항이라는 것을 해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와 다름없이 읽고 끼적이고 듣고 보고 그런 나날을 보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nbsp;<br><br>생활은 그렇다 치고 머릿속은 어떠했을까. 그때도 염세적이기는 했다. 집안이 그다지 화목하지 않았고, 부모는 서로 사랑하지 않음을 알았기에 사랑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고, 혹여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유한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 또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모처럼 살기 싫어서라도 결혼이라는 것에 묶이는 짓만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은 본디도 추한 존재인데 나이 들수록 더 추해지므로 그러기 전에 제 손으로 죽어야 한다고, 인간이 추해지기 전의 나이는 딱 마흔까지라고 그러니까 마흔 전에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nbsp;<br><br>그런데 이미 나는 그 나이를 훌쩍 지나버렸다. 내 육체도 점점 더 추해질 것이다.<br><br>문득 이렇게 내 열다섯 열여섯의 그즈음을 떠올려보는 까닭은 미시마 유키오의 &lt;꽃이 한창인 숲&gt;을, 이 작품의 한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nbsp; &nbsp;<br><br><br>&nbsp;몇 번이고 나는 추억 따윈 따분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불과 일이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나는 어떤 편견에 따라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추억은 이미 지나간 삶의 빈 허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설령 그것이 미래의 과실(果實)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이미 현재를 잃어버린 쇠락한 인간을 위한 것뿐이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열병 같은 젊음은 그런 생각에서 무턱대고 긍정을 찾아내려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잠깐 사이에 나는 그것과는 또 다른 생각 쪽으로 간단히 옮겨갔다. 추억은 '현재'의 가장 청순한 증거인 것이다. 사랑이라느니 헌신이라느니, 현실에 자리매김하기엔 지나치게 청순한 그런 감정들은, 추억 없이는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거나 거기서 올바른 의미를 찾아낼 수 없다. 마치 낙엽을 헤쳐 찾아낸 샘물이 비로소 파란 하늘을 비춰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샘물 위에 떨어져 흩어져 있어봤자 낙엽들은 결코 하늘을 비춰낼 수 없기 때문이다. (&lt;꽃이 한창인 숲&gt;, 《미시마 유키오-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p.8~9, 현대문학)<br>미시마 유키오가 무려 열여섯에 쓴 작품이다. 열여섯 즈음의 나도 무언가를 늘 끼적이는 아이였지만, 내가 도대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이에 이르렀어도 저런 문장은 쓰지 못할 것이다. 내 눈길이 한참 머무는 곳은 이런 구절들이다. “몇 번이고 나는 추억 따윈 따분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추억은 이미 지나간 삶의 빈 허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이미 현재를 잃어버린 쇠락한 인간을 위한 것뿐이지 않은가”........ “사랑이라느니 헌신이라느니, 현실에 자리매김하기엔 지나치게 청순한 그런 감정들”........ “샘물 위에 떨어져 흩어져 있어봤자 낙엽들은 결코 하늘을 비춰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열여섯의 미시마 유키오, 당신은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가.&nbsp;<br>훗날 미시마는 &lt;꽃이 한창인 숲&gt;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41년에 쓴 릴케 풍의 이 소설에는 지금 보면 일종의 낭만파의 악영향과 애늙은이처럼 잘난척하는 것만 눈에 띄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열여섯 살짜리 소년은 독창성에 손을 내밀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손이 닿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잘난척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덧붙이자면, 이 단편집의 제명을 ‘꽃이 한창인 숲’으로 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뜻에 따라 나는 할 수 없이 선택했다.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p,89)<br><br>‘낭만파의 악영향과 애늙은이처럼 잘난척하는’이라는 표현을 달리 말하면 중2병스러움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중2병이 나에게 밀어닥친다면 나는 기꺼이 환영하겠다. 미시마의 이런 부끄러운 듯한 고백과 달리&nbsp; &lt;꽃이 한창인 숲&gt;은 열여섯 천재 소설가의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 추앙받으며 일본 문단의 전폭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는다. “ &lt;꽃이 한창인 숲&gt;의 작가는 완전한 연소자이다. [……] 바로 우리들의 어린 동료이다.” “유구한 일본 역사가 점지한 아이다. 우리들보다 나이는 훨씬 적지만 이미 성숙한 뭔가가 탄생한 것이다.”(같은 책, p.100~101)<br><br>“유구한 일본 역사가 점지한 아이” 열여섯의 천재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천재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시마는 천재라고 불려 마땅하다. 내가 이 천재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lt;가면의 고백&gt;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읽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lt;금각사&gt;를 찾아 읽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그 예전만 하더라도 이 땅에서는 미시마 유키오를 읽는다 하면 조금 이상한 시선을 받곤 했다. 그런 미친놈의 작품을 왜 읽느냐 하는 눈초리. 아, 하긴 이것은 내가 문학전공자라 전공자들 틈바구니에서 받았던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일반 세상에선 미시마 유키오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nbsp;<br><br>그 이후로도 나는 족족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찾아 읽었다. &lt;파도 소리&gt;(절판된 이 책은 현재 중고가 2만 5천 원에 팔리고 있다. 오호라, 나, 이 책 있는데!) &lt;사랑의 갈증&gt;, &lt;비틀거리는 여인&gt;(이 두 책도 최근 &lt;사랑의 갈증&gt;이 새로 나오기 전까지는 중고 책이 꽤 고가에 팔리고 있었다. 오호라, 나 이 책들도 있는데!), &lt;봄눈&gt;, &lt;미시마 유키오-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gt;, &lt;나쓰코의 모험&gt; 같은 작품들은 물론 &lt;부도덕 교육 강좌&gt;, &lt;목숨을 팝니다&gt;, &lt;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gt; 같은 좀 이상한(?) 책들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lt;봄눈&gt;에서부터 이어지는 풍요의 바다 시리즈 &lt;달리는 말&gt;, &lt;새벽의 사원&gt;, &lt;천인오쇠&gt;는 번역이 다 되면 한 번에 몰아 읽을 심산으로 아껴두었는데 이제 읽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lt;금색&gt;, &lt;오후의 예항/짐승들의 유희&gt; 등등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은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사두지 않은 게 없다.&nbsp;<br><br><br>궁금해서 갑자기 찾아봤다....... 그렇다 한다.<br><br>갑자기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나는 미시마의 무엇에 끌려 그의 작품이라면 번역되어 나오는 족족 다 읽어보려고 하는가? 심지어 평전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까지!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긴 좀 어려운 인간이다(일단 외모가 내 취향 아님).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는 무한정으로 끌린다. 무엇이 그렇게 끌리느냐 묻는다면 허무해서일 것이다. 파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극도로 자기 파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름답게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병약했던 소년이 훗날 그토록 육체 단련에 집착했던 것도 일종의 자기 파괴였다.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결국 그것을 제 손으로 파괴해버리는 죽음으로써, 사멸로써 불멸해지려는 욕구. 금각사를 불태워 버린 바로 그 마음… 그 충동.<br><br>《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을 통해 나는 내가 그의 작품에 한없이 매료되는 이유를, 결국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그 미학, 허무와 자기 파괴적인 미학의 실체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 알려졌듯이 단지 미시마 유키오는 문단의 총아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는 거의 대중의 우상이었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열여섯에 천재라는 소리와 함께 문단에 나타난 뒤 &lt;가면의 고백&gt;, &lt;금각사&gt; 등으로 격찬을 받은 것은 물론 심지어 영화배우와 사진 모델로 활약했으며 가부키와 현대극 극본을 쓰고 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연출까지 했던 대스타였다. 마흔다섯의 나이에 할복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 것까지도 너무나 센세이션한 미시마 유키오. 그가 그렇게 이른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에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가 미시마 유키오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nbsp;<br><br><br><br>'대스타'라는 말이 나와서 잠깐 언급하자면, 이 책을 통해 미시마 유키오가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단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마스무라 야스조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감독으로 변태 같은 영화를 참 잘 만든다. 변태 취향이라 그런가. 또 다른 변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nbsp;영화로 자주 만들었는데 《만지 (卍; All Mixed Up)》(1964), 《문신 (刺青; Tattoo)》(1966), 《치인의 사랑 (痴人の愛; Love for an Idiot)》(1967) 이 모두 거기에 속한다.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에서 말하기를 마스무라 야스조는 &lt;실없는 놈&gt;에서 주연을 맡은 미시마 유키오의 연기를 혹평했고, 미시마는 이로 인해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는데 나는 왠지 두 변태의 만남이 색다른 매력을 선사할 거 같다. 완전 B급 영화 감성이랄까....<br><br><br><br>Saint Sebastian (c. 1615) by Guido Reni<br>&nbsp;나는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왼편으로 한 장 넘겼다. 그러자 한 귀퉁이에서 나를 위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한 장의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제노바의 팔라초 로소에 소장되어 있는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였다. [•••••] 그 그림을 본 순간 나의 전 존재는 일종의 이교도적인 환희에 휩싸였다. 나의 피는 끓어올랐고 나의 기관은 분노의 색채로 가득 찼다. 이 거대한,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나의 일부는 전에 없이 격하게 나의 어떤 짓을 기다렸고, 나의 무지를 힐책했으며, 격분해서 헐떡거렸다. 어느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는데도 내 손은 저도 모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내부에서 어둡고 빛나는 뭔가가 잰걸음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것은 아찔한 도취를 동반하고 솟구쳤다....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p.46)<br>귀도 레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미시마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그의 작품을 한편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미시마 유키오는 이 그림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수음을 한다. “환희에 휩싸”이고 “피는 끓어올랐고” “기관은 분노의 색채로 가득”찬 채. 그의 작품 곳곳에 흐르는 동성애적 색채도 그러하고, 성과 죽음이 폭력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lt;파도 소리&gt;처럼 그리스 조각상의 건강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작품도 그렇고 &lt;우국&gt;처럼 격정적인 섹스 후에 피를 흘리며 왜 자결할 수밖에 없는지 그 모든 작품의 미학이 저 그림 한 장에서 출발한다고도 볼 수 있다.&nbsp;<br><br>그리고 하루 종일 햇볕을 쬐면서 나는 자신의 개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br>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고 모자라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br>나에게 남는 것은 확실히 감수성이고, 나에게 모자라는 것은, 뭐랄까, 육체적인 존재감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이미 차갑기만 한 지성을 경멸하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조각상처럼 의심하기 어려운 육체적 존재감을 가진 지성밖에 인정할 수 없었고, 그런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었다. 그것을 얻으려면 동굴 같은 서재나 연구실에 처박혀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태양의 매개가 필요할 터였다.<br>그리고 감수성은? 이놈은 이번 여행에서 구두처럼 닳아빠질 때까지 다 써버려야만 한다. 낭비할 수 있을 만큼 낭비해서 더는 그 소유자를 괴롭히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br>마침 잘됐다. 나의 여정에는 남미와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태양의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p.207)<br>《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에서 저자는 미시마 유키오라는 한 인간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그의 펜 끝으로 되살아난 미시마 유키오의 형상을 응시하노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극우 파시즘에 취해 할복 자살한 미친놈이라는 평가가 얼마나 치우친 시선인지 깨닫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왕족과 친분이 깊었던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 할머니의 손에서 어린 시절부터 유폐되었다시피 키워졌다. 유폐는 그의 상상력에 날개를 붙여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무너져버린 전통 앞에서 모든 것은 헛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윽고 근대화가 밀려와 일본은 부흥했으나 전쟁과 패전을 겪으며 몰락을 겪는다. 허무와 몰락, 폐허의 아름다움에서 끊임없이 표류하고 분열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총괄하는 것은 결국 죽음뿐이었다. “죽음은 마지막 작품”이라는 미시마 유키오의 말처럼.&nbsp;<br><br>허무를 형상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절망에 절망을 거듭할 뿐이지 않은가. 그런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우리들은 뿌리 깊게 그리고 교묘하게 뒤얽힌 기만의 구도에 얽매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에 있는지 스스로 알 수가 없다. 풍부한 문예 전통의 힘을 빌려 우리들의 거처를 정확하게 가리켜 보이는 것, 그리고 그 형상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작업이자 동시에 창조적인 일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비로소 모든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출발선에 설 수 있을 테니까.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p.541)&nbsp;<br><br>이제 &lt;풍요의 바다&gt; 시리즈를 읽을 차례이다.... 이 책 덕분에 더욱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br><br><br>        <br>&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53/61/cover150/k8820336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9536159</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그때는 안 보였지만 지금은 보이네 - [오블로모프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066171</link><pubDate>Mon, 02 Feb 2026 1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0661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3195&TPaperId=170661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2/coveroff/893201319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3195&TPaperId=170661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블로모프 1</a><br/>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03월<br/></td></tr></table><br/>

세상에 읽을 책이 많아도 너무 많기에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가끔 그런 책들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읽은 이반 곤차로프의 &lt;오블로모프&gt;도 그런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시 읽어도 재미나고 웃겼다(특히 자하르와의 티격태격). 재독의 장점은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이랄까. 물론 이게 단점이 될 때도 있다.  예컨대 10대 시절 푹 빠져 읽었던 헤세의 작품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니 견디기 힘든 점들이 마구 보이는 것이나, 다자이 오사무 &lt;인간실격&gt;을 20대가 아닌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읽으니 중2병에 오그라들 것 같았던 것이나 등등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nbsp;  &lt;오블로모프&gt;는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다시 읽어도 명작은 명작이구나 싶은. 이 좋은 책이 왜 이렇게 덜 읽힐까 싶은 안타까움도 들고 그렇다. 1859년에 이 책이 간행되었을 때 러시아 문단에서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톨스토이는 진정 위대한 작품이라고 치켜세운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혐오스러운 작품이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나는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lt;오블로모프&gt;에 대해서라면 톨스토이와 의견이 같다. 세상에나, 내가 톨스토이랑 의견이 일치할 때가 있다니! 아무튼 &lt;오블로모프&gt;는 명작이다.   &nbsp;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는 내가 백수였다. 백수가 되기 전에 몸담았던 직업에 진력이 나서, 넌더리가 나서 몸서리를 칠 때였다. 시기적절. 그래서 그때, 이 책은 더 진하게 와 닿았던 것이리라. 오블로모프, 그러니까 ‘일리야 일리치 오블로모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의 전형이다.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스스로 무엇 하나 할 수 없게, 아니 하지 못하게 키워졌다. 양말이나 신발조차 하인이 신겨줘야 한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대개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러시아 지주의 무능함, 또는 러시아의 무능력한, 마비된 정신을 비판하는 작품이라 평가받는다(투르게네프의 &lt;루진&gt;, 푸시킨의 &lt;예브게니 오네긴&gt;, 레르몬토프의 &lt;우리 시대의 영웅&gt; 등이 다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오블로모프 계열의 작품에 속한다),  &nbsp;  &lt;오블로모프&gt;는 실내복을 입고 누워있는 오블로모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작품이 끝나갈 무렵에도 이 인간이 다 떨어진 낡은 실내복에 감싸여 침대에 누워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게을러도 이렇게 게으를 수가 없다, 저렇게 살다간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굶어죽기 딱이다 싶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게으름뱅이가 1권(478쪽), 2권(369쪽) 장장 800쪽에 가까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이야기의 진전이 있기는 있나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야기는 흘러간다. 나처럼 심심한 스토리에도 빠질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자못 그의 일생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nbsp;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게으름뱅이가 무려 연애도 한다는 것. 아니 게다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한 여자만 후리는 게 아니다. 내가 이번에 재독하면서 놀란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게으름뱅이가 두 여자나 후린다는 것을 어떻게 잊고 있었던가?! 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음 읽었을 땐 이 인간의 게으름, 무한 나태에 놀라고 제 주인의 그런 꼴을 깐죽대는 자하르의 입담에 웃느라 나머지 존재들은 희미하게 기억하고 말았는가 보다. 물론 오블로모프의 절친 슈톨츠나 이 인간의 마음을 빼앗는 여인 올가의 존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그 여자, 여주인이자, 하녀인 그녀 ‘아가피야’의 존재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이 부분, 오블로모프의 사랑이랄까 러브스토리가 좀 색다르게 다가왔다.  &nbsp;  처음 읽을 때도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오블로모프가 올가를 결국 떠나보내고 마는 장면이었다.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변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변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상대는 물론 나의 단점도 극복해보고 싶고 바꿔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 지극한 사랑이나 애정이 아니라면 인간이 스스로 변화를 꾀하기란 쉽지 않다. 오블로모프 또한 한때 그렇게 되고자 애쓰기는 한다. 여기서 잠깐 소개하자면 올가는 오블로모프의 친구 슈톨츠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로 슈톨츠가 외국으로 떠나면서 오블로모프가 걱정이 된 나머지 그를 좀 잘 감시(?)해달라고 부탁하는 인물이다. ‘일리야’가 제발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수시로 산책도 같이 해주고 책도 읽게 이끌어주고 아무튼 방 안에 누워만 있지 않게 잘 좀 부탁한다고 맡기고 떠나는 여성이다.   &nbsp;  대부분의 여성에게 오블로모프는 딱히 매력적인 이성은 아닐 것이다. 곤차로프의 펜으로 그려진 오블로모프의 외모는 그렇게까지 쳐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자들이 보기에 뭔가를 추진하는 힘이나 활동적인 면이나 야망이나 뭐 이런 건 하등 찾아볼 수도 없는, 남성적인 매력이라곤 1도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사교계의 초대를 받아도 얼굴을 내미는 일도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어쩌다 나와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구석에 월 플라워 신세로 서서 과자조각이나 잔뜩 입에 처넣다가 들키고 마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올가는 어쩌다 이런 남자에게 반하는 것일까? 귀엽다고 느낀 것 같다. 과자를 잔뜩 입에 처넣은 그 모습이. 그런데 그 이전에 슈톨츠로부터 이 남자에 관해 이런저런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블로모프, 일리야 일리치만의 장점이라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아닐까. 한없이 선량한 존재. 그는 타인을 비방하는 법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그래서 사교계의 그 의미 없는 만남, 뒤에서는 서로 비방하기 바쁜 만남을 거북해한다). 종종 지성적으로도 빛난다. 단지 게을러서 그걸 꾸준히 추동하는 능력이 없을 뿐........ 게다가 예술적인 감수성도 충만하다. 그런 면을 알아본 게 올가 그녀이다.  &nbsp;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실내복 차림으로 종일 침대에만 누워 지낼 수는 없는 법. 물론 그런 날도 있겠지만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만 사는가? 아니, 그럴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뜻만 맞는다면…. 대지주나 마찬가지이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자기 재산 관리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남에게 다 맡겨 놓고 재산이 어떻게 줄줄 새는지 점검조차 하지 않는다면 남의 배만 불리고 자기는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더욱이 한쪽은 평생 실내복 차림으로 집안에만, 방안에만, 침대에만 머물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올가는 오블로모프를 사랑했음에도 평생 실내복 차림으로 침대에만 누워 지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와 결혼식도 치러야 하고 모임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이사도 가야 하고, 애도 낳아서 키워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오블로모프에게는 너무나 큰 장애물이다. 넘고 또 넘어도 넘을 수 없는 백두산 넘어 에베레스트산이다.  &nbsp;  그러니까 오블로모프는 올가를 사랑해도 결국 자기의 그 단점(올가가 보기에는)을 극복하거나 바꿀 만큼 그녀를 사랑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그 와중에도 세든 집의 여주인이지만 나중에는 오블로모프의 하녀가 되기를 자청한 아가피야를 곁눈질로 흘끔흘끔 훔쳐보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예전에는 그런 장면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블로모프가 올가와 사랑에 빠진 중에도 아가피야의 건강한 몸뚱아리나 일하느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탐스러운 팔꿈치를 바라보며(그러다 결국 한 번은 소심하게 만지기까지 한다!) 혼자 미소를 짓는 게 눈에 들어온다.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다. 어라 굼벵이가 팔꿈치를 훔치네...?!  &nbsp;  이런 장면들을 지켜보노라니 예전과 달리 이 게으름뱅이에게 좀 미운 감정이 든다. 주제에 한눈을 파네? 싶은. 한편으론 어쩌면 이 인간은 올가처럼 뭔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여성이 사랑해주는 것보다는, 그런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중이나 들어주면서 우쭈쭈해주는 유모 같은 여자, 그러니까 자기의 할머니, 어머니, 유모를 이을 여자, 이 셋 모두를 합친 존재인 엄마 같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괜찮았던 것은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사랑보다 누워있기, 변화보다 머물기, 그저 가만히 있기가 인생 모토인 인간. 그의 곁에 슈톨츠든 올가든, 아가피야든, 자하르든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밥은커녕 밥 떠먹을 숟가락조차 찾지 못해 굶어죽고 말 인간.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는 인간. 그가 바로 오블로모프였던 것이다.....  &nbsp;  그런데 그런 인간이 아가피야랑 사랑...아니 섹스를 했단 말이다. 이게 난 참 이번에 진짜 놀라웠던 점인데....... 이 에너지 없는 인간이,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조차 없는 인간이 어떻게 섹스를 한 것이란 말인가? 다들 알다시피 섹스도 엄청난 중노동이 아닌가? 길을 걷다 문득 이 장면을 상상해본 것이다. 이 굼벵이가 여자를 덮쳤다고...? 남성상위가 가능하...다고? 열정에 넘쳐서 끌어안았다고??? 아무리 상상을 해도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한 거여? 침대에 누워있는데 아가피야가 덮친 게 아닐까.........? 여성상위?? 아니면 아가피야가 손으로 해주다가...... (그만 하자 이런 상상........) 아무튼 너무나 놀라운 반전이었다. 오블로모프, 너란 남자. 할 줄도 아네.  &nbsp;  사랑에는 에너지가 꾸준히 필요하다.&nbsp;오블로모프에겐 잠시 타오르는 열정, 열정에 빠진 척 연기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그걸 계속 추동할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 다른 여자가 아니라, 나보다도 당신의 실내복이 당신에게 더욱 간절해지는 날이 오면 나는 어떡하느냐고 울부짖던 올가의 예상이 104% 맞아떨어졌다. 헌데 그 사이에 신통방통하게도 애 만드는 신기는 발휘한 오블로모프여. 러시아의 잉여조차 이 세상에 제 씨앗은 놓고 가는구나.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번식욕이여.... 그리고&nbsp;그 씨앗은 애비인 오블로모프보다는 양육자인 슈톨츠에 가까운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모두가 칭송하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슈톨츠. 이 인간은 도리어 참 무매력에 가깝다는 점에서 (곤차로프도 슈톨츠를 딱히 애정 어린 눈으로 묘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작품의 오묘한 묘미는 여전하구나.<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2/cover150/893201319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223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