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지상의 다락방 (잠자냥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문학이 우리를 구원하리라.</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8 Oct 2026 21:24:44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잠자냥</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372614541003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ocker</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잠자냥</description></image><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누가 소금이고 누가 후추일까요? - [레시타티프]</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84318</link><pubDate>Wed, 21 Oct 2026 12: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843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1304&TPaperId=175843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30/85/coveroff/k7621313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1304&TPaperId=175843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레시타티프</a><br/>토니 모리슨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br/></td></tr></table><br/>

얼마 전에 영화 &lt;알파 Alpha&gt;(2025)를 보다가 나 혼자 속으로 ‘헐 나 좀 봐라, 미쳤나봐!?’ 생각하며 반성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lt;티탄 Titane&gt;(2021)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최근 작품이다(뒤쿠르노는 &lt;티탄&gt;으로 제인 캠피언에 이어 영화사상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 감독이 되었다). &lt;티탄&gt;이 워낙 강렬했던 터라 이 영화도 기대했는데, 티탄보다는 너무 순한 맛에 어떤 점에서는 진부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열세 살의 소녀 알파는 파티에서 문신을 새긴 뒤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 정체불명의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이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은 몸이 차츰 대리석이나 석상처럼 굳어가는 기괴한 증상을 보인다(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가습기가 간절해지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알파는 그 이후로 불안에 시달리는 것도 괴로운데 학교에서는 낙인이 찍히고 점차 고립되어 간다. 몸이 대리석처럼 변해간다는 설정이 좀 신선하기는 했으나 누가 봐도 1980년대 프랑스를 강타했던 에이즈 위기와 신자유주의 속 의료 체계의 문제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좀 진부하다.<br><br>아무튼 내가 이 영화를 보다가 스스로 반성한 지점은 이렇다.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속속 병원으로 몰려오는데, 병원은 이미 포화상태라 환자를 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 질병에 놀라 위협을 느낀 병원에서도 의료진은 일찌감치 다 떠나버렸는지 몇몇 사람만 빼고는 의사고 간호사고 관리자이고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 중에도 두 여성이 남아 환자들을 돌보며 질병과 고투를 벌이는데..... 한 사람은 백인이고 한 사람은 유색인(아랍인)이다. 나는 극 초반에 이 두 여성이 당연히! 간호사인 줄 알았다. 의사인 남자는 다 떠나버렸으리라는 편견 한 숟갈, 두 여성이 동등하게 말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또 한 번 편견 한 숟갈.... 기타 등등.&nbsp;<br><br>그러다가 뼈 때리는 반성. 헐.... 유색인 여성이 의사였다!!(이 역할을 한 배우는 ‘이란’ 출신으로 인종상으로는 아랍인이 맞지만 영화에서는 마그레브 지역 출신인 프랑스계 무슬림으로 그려진다), 나는 시종 이 여성이 간호사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알파’의 엄마로 마약 중독자인 데다가 저 질병까지 감염되어 차츰 몸이 굳어가는 남동생을 누나이자 의사로서 헌신적으로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딸까지 감염되었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의사이자 엄마, 누나, 가장 역할을 해 나간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을 인종과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당연히 간호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흐르면서 의사라는 게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바로 그때 속으로 ‘헐 나 좀 봐라.. 미쳤나봐?!’ 했던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워진 지점.....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편견과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할 때는 나 스스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nbsp;<br><br><br>백인과 유색인 두 여성만 남은 병원.....<br><br>그러니까... 알파의 엄마는 이렇게 생겼었는데...<br><br>알파와 알파의 엄마. 엄마 머리 스타일 때문에 좀 헷갈리기도 햇었다... 하하하하..... -_-;;<br><br>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미디어-영화나 드라마 같은-에서는 얼마나 손쉽게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가 싶기도 하다. 이른바 클리셰cliché라는 명목 아래 성별 고정관념은 물론 인종, 직업, 성적지향에 따른 캐릭터 등등을 스테레오타입화하면서 수없이 판에 박힌 듯 뻔하고 예측 가능한 유형을 또 다시 재생산한다. 문학은 그렇지 않은가? 아니다. 문학 또한 그런 표현과 설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독자는 거기에 익숙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안경을 쓰고 책을 읽어나간다.&nbsp;<br><br>토니 모리슨의 &lt;레시타티프 Recitatif&gt;는 그런 면에서 ‘인종’에 관한 그런 모든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의도적으로 걷어내고자 시도한 하나의 문학적 실험작이다. 토니 모리슨의 이 도전적인 실험 때문에 독자는 이 짧은 단편을 읽어나가는 동안 여러 번 자신의 편견 및 고정관념을 맞닥뜨리면서 흠칫흠칫 놀라게 된다. 그런 점에서도 모리슨의 이 문학적 실험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토니 모리슨의 작품 중 유일한 단편 소설인 &lt;레시타티프&gt;를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읽은 그녀의 산문집 &lt;보이지 않는 잉크 The Source of Self-Regard&gt;에 실린 한 편의 글 때문이다. 그 에세이에서 모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마치 온 우주가 보이지 않는 잉크로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 &lt;레시타티프&gt;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독자가 가치관을 능동적으로 재조정하고 이야기의 공동 창작자로서 참여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행간 아래와 사이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잉크’를 찾아내도록 이끄는 초대장이다.”<br><br>&lt;레시타티프&gt;에는 흑인과 백인 소녀 두 명이 등장한다(‘후추와 소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덟 살 소녀들의 이름은 ‘트와일라’와 ‘로버타’- 토니 모리슨은 영리하게도 이 작품에서 내내 두 인물의 인종적 기호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그런데도 독자는 누가 과연 흑인인지, 또 누가 백인인지, 그러니까 후추와 소금을 찾아서 자기만의 머리를 굴리면서 수수께끼 또는 추리 소설의 탐정이 된 듯 행간 하나 하나를 놓칠 새라 읽어나가게 된다.&nbsp;<br><br>트와일라와 로버타는 둘 다 보호시설 세인트보니에서 처음 만나 같은 방을 쓴다. 트와일라는 엄마가 “밤새 춤을 추”기 때문에, 로버타는 엄마가 “아파서” 이곳에 맡겨졌다. 앞서 말했듯이 두 아이 중 한 사람은 분명 흑인(‘후추’)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백인(‘소금’)이다.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인종”과 방을 쓰게 되어 못마땅하던 두 사람은 이 보호소에서 고학년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등 좀처럼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결국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이 보호소의 주방에는 말을 못하는 나이 든 여성 ‘매기’가 있다. “피부가 연갈색”이고 “다리가 괄호 모양으로 휜” 매기 역시 고학년 아이들의 놀림감이다. 매기는 과연 후추일까 소금일까? 이니면 갈색설탕인가?(이건 내 표현) 이야기가 흐르면서 매기에 관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트와일라와 로버타는 저마다 그 기억을 안고 보호소를 떠나게 된다.&nbsp;<br><br>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두 소녀는 어느 날, 고속도로변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트와일라가 손님으로 온 로버타를 보게 된 것이다. 짙은 화장을 하고 두 남자와 함께 지미 헨드릭스를 만나러 간다는 로버타- 여기서도 또 한 번 독자는 후추와 소금 수수께끼에 도전하게 된다. 또 십여 년이 훌쩍 흘러 두 사람은 소도시 뉴버그의 고급 식료품점에서&nbsp; 마주친다. 평범하게 사는 트와일라와 달리 로버타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해 부를 누리고 있다. 그 옛날의 짙은 화장도 사라졌다. 때마침 인종 통합을 위한 아이들의 버스 통학제를 둘러싸고 도시는 둘로 갈라진다. 두 사람은 시위 현장에서 서로 반대편 팻말을 든 채 한 번 더 마주선다. 여기서도 독자는 탐정이 되어 소금&amp;후추 알아맞히기에 몰두하게 된다. 로버타와 트와일라 둘 중 누가 후추이고 누가 소금일까?<br><br>나는 트와일라가 화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트와일라가 흑인이라고 상상하면서 읽어 나갔다. 이 작품을 쓴 작가 토니 모리슨이 흑인, 그러니까 화자인 트와일라가 흑인아 아닐까... 관습적으로 나이브하게 생각한 것이다(대부분 우리는 유색인종이 쓴 인종에 관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작가가 유색인이기에 화자 또는 주인공도 당연히 유색인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몹쓸 놈의 고정관념!) 게다가 트와일라는 엄마가 아이를 돌보기는커녕 “밤새 춤을 추기” 때문에 보호소에 보내졌다는데... 생각해 보자. 밤새 춤을 추는 여자는 흑인인가 백인인가? 몸이 아프기 쉬운 여자는 흑인인가 백인인가? 트와일라와 로버타 두 소녀 중 한 사람은 글을 전혀 쓰지 못하고 한 사람은 글을 읽고 쓰기는 할 줄 안다. 백인과 흑인 중 누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 머리를 감지 않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건? 풍성한 머리는? 짙은 화장은? 엉덩이가 볼록 튀어나와 못생긴 초록바지를 입는 건? 지미 핸드릭스를 좋아하는 건? 고속도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기 쉬운 건? 부유한 남자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은 건? 엄마가 성경책을 들고 다니고 큰 십자가 목걸이를 하는 건? 여성이면서도 키가 그 어떤 남자보다 큰 건? 평소에 저녁으로 팝콘과 초콜릿 음료 한 캔 정도를 주는 엄마는? 그에 비해 닭다리, 햄 샌드위치 오렌지, 초콜릿을 입힌 통밀 크래커, 보온병에 든 우유를 점심으로 주는 엄마는? 등등등 이 짧은 페이지 안에서 독자는 여러 번 후추와 소금에 빠져들면서 자신의 인종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면서 “내 안의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를 발견하게 된다.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아주 결정적인 문장도 등장한다. “그들에겐 모든 게 너무 쉽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것 봐! 얘가 후추잖아! 하게 되지만 생각해보자. 저 말은 역차별 운운하면서 소금이 할 수도 있는 말 아닌가? 행간 아래와 사이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잉크’를 찾아내는 그 재미에 한번 빠져보시라....<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30/85/cover150/k7621313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308546</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문득 관계를 생각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75337</link><pubDate>Fri, 16 Oct 2026 15: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753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1471&TPaperId=17575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14/coveroff/k31213147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8837&TPaperId=17575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32/coveroff/892556883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인간 세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동창회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모교와의 연락을 하기 위하여 조직한 모임’이라고 한다. 동창의 뜻은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한 사이’ 또는 ‘같은 학교를 같은 해에 나온 사람’이라고 한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인간은 가까워질 수 있는 존재인가? 같은 학교를 다닌 사이라서 수 년 수십 년이 흘러도 다시 만나면 즐거운 걸까? 즐겁다고? 왜 만나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nbsp;<br><br>엄마는 종종 동창회를 가던데 한번은 내가 너무 궁금해서 물었다. “엄마, 거기 가면 재밌어? 무슨 이야기해?” 엄마는 반갑고 즐겁다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로 자기들 사는 자랑, 자식 자랑 그런 것들이나 하겠지. 울 언니도 종종 동창회를 가던데 그러고 나면 (무려 가족 단톡방에!) 중개를 한다. 그때 걔가 어떻고 저렇고…. 어릴 때부터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던 이 인간은 여전하군. 동창생끼리 다시 만나 불륜을 벌이는 일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그 시절 알고 지내던 사람이 새로운 존재로 다가오는 게 가능하다고? 이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인간은 정말 정에 굶주린 존재인가, 타인이 없으면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인가....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인간관계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그것 참 이해하기 어렵구나.......<br><br>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집사2는 “너는 한 번도 사람한테 결핍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래”라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보다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하는 소리가 따분하다. 재미가 없다. 그래서 굳이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친구가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친구라서 재미가 없는 걸까? 재미가 없기 때문에 친구가 된 걸까? 지금까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연인이자 친구였고, 대부분은 그 한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고 살아왔기 때문에 ‘친구’라는 존재가 별도로 꼭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nbsp;<br><br>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나마 있던 친구마저 다 정리했다. 나는 이제 정말로, 진심으로 친구가 없다(이렇게 말하면 다락방이 섭섭해 할 것도 같은데, 여기서 말하는 친구란 오프라인에서 오래 죽 알고 지내온 이들을 말한다). 그들과 점점 거리를 두다가 다 끊어버렸다.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할 텐데, 인간이 엮이며 만든 관계에서 빚어지는 이런저런 일들-감정소모들이 피곤하다. 서른 이후 친구라고 만났던 존재들은 대부분 전 애인인 X의 친구들이었는데 X와 헤어진 이후로도 이 친구들과 내내 가깝게 지낸다는 게 굉장히 피곤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치 않아도 X의 소식이 들려온다거나 또 때로는 나와 집사2의 소식이 그쪽에 전해질 수도 있다는 것들… 참 싫다. 마침내 드디어 끊어버린 것이다. 십여 년 전에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하다니..... 후련하다.&nbsp;&nbsp;<br><br>친구가 없다는 것, 인간관계가 협소하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 사회는 친구가 없으면 어딘가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설령 내가 성격파탄자라서 곁에 사람이 없다고 쳐도 뭐 그러려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뭘 그렇게 남들이 어떻게 볼지 신경 쓰는 걸까. 만나서 즐겁지 않은 사람들과 헛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한심한 일 아닌가. 그 시간에 홀로 충실하게 시간을 보낸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외롭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이 무리에 속해 있으면 외롭지 않은가? 오히려 소통이 잘 안 되는 무리에 속해 있을 때 더 고독해지지 않는가? 게다가 인간은 본디 태어나길 고독하게 태어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 아닌 타자가 그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nbsp;<br><br>관혼상제 같은 때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심리에서 인간관계를 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이 죽을 때 혼자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도 같다. 한데 죽을 땐 원래 혼자 아닌가. 장례 때 찾아오는 사람들 숫자로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고독하게 장례를 치르면 그는 인생을 잘못 산 것인가? 글쎄 그건 아닐 것 같은데.&nbsp;<br><br>“이제는 어릴 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꽃놀이처럼 한순간 터지고 마는 기쁨이나 슬픔보다, 오래오래 인생과 함께 살아가는 편이 재미있어.” (사노 요코, &lt;친구는 쓸모없다&gt;)<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갑자기 웬 친구 이야기인가 싶은데 최근 연달아 읽은 책 두 권이 공교롭게도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사노 요코의 &lt;친구는 쓸모없다&gt;는 사실 &lt;친구는 필요 없다&gt;로 오해해서 읽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쓸모없음의 한때를 함께 보내는 친구라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여서 좀 실망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다. 친구를 끊임없이 사귀고 있는 요코에 비해 같이 이야기를 나눈 슌타로는 친구 없이도 잘 살 수 있다주의자라서 그쪽에 나는 더 공감하면서 읽었다. 사노 요코와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부부로 살다 이혼한 사이인데 그 후로도 예술적 동반자로 담담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 책은 슌타로가 요코의 남편이 되기 전, 친구 사이로 나눈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친구 없이 잘만 살아왔다는 슌타로도 요코를 연인이자 아내이자 친구로 삼았던 셈인가 싶기도.<br><br>&lt;더 컴업펀스&gt;는 동창회를 그린다. 고교 졸업 후 20년 만에 만나는 다섯 사람. 이제는 마흔을 넘긴 그들이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재회한다. 동창회에 가기 전, 가깝게 지내던 다섯 명이 먼저 만나는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며 은둔하는 친구도 있고,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 다섯 명 중에는 한때 연인으로 지낸 이들도 있다. 정글 주스(Jungle Juice)를 마시고 대마초를 나눠 피우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면서 즐겁던 분위기는 차츰 균열이 생기면서 조롱과 비방 폭로 험담이 이어지고 갈등은 고조에 이르는데…. 상대의 불행을 확인하고 나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과시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등 인간의 저열하지만 솔직한 감정의 민낯이 거침없이 까발려진다. 그런 중에도 컬럼바인, 9.11, 전쟁, 트럼프, 코로나,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등등 미국 현대사를 간간이 훑는다.&nbsp;<br><br>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죽음’이 화자로 등장해 이 모임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죽음’은 다섯 사람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왜 아니겠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죽음을 생각하거나 죽음의 문턱에 다가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이 동창들의 모임에서 누가 죽나? 죽음이 왜 참여한 것일까?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2막에 이르러 그 죽음의 그림자가 누군가에게 드리워질지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울컥하게 된다. 하필이면 그 주인공이 연인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다가 그 연인이 떠남으로써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쓸쓸한 생이 눈에 그려지는 듯해 울컥하게 된다.<br><br>집사2는 종종 내게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나도 내가 먼저 죽고 난 후 혼자 남을 집사2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내가 먼저 죽으면 다른 사람 만날 거라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나는 심드렁하게 그러라고 하는데.... 그럼 또 섭섭해 한다. 아니 내가 다른 사람 만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나도 없는데 너 혼자 있는 건 바라지 않는다니까. 반면 집사2는 자기가 먼저 죽으면 나는 혼자서도 잘만 살 거 같단다. 다른 사람 만나서 잘만 살 거 같다나......... (아니 그 나이에...???) 아무튼 나는 또 심드렁하게 “응” 한다. 사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 혼자 남았다고 외로움과 고독에 몸부림치면서 곳통받을 거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집사2는 내가 자기보다는 하루 뒤라도 좋으니 꼭 나중에 죽어야 한다고 당부&amp;협박한다......... 그러다가도 정말 섭섭하다, 나 없이도 잘 지낸다니!!?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럴 때 나는 말한다. 인간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고. 너 없으면 나 죽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하는 인간들이 스토커가 되는 거라고. 하긴 그건 그래... 또 끄덕끄덕하는 집사2...ㅋㅋㅋㅋㅋ 아무튼 집사2가 나보다 나중에 죽어서 이 막막한 세상에 혼자 남는 걸 (저세상에서) 볼 자신은 없어서 나는 얘보다는 오래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술 줄여야 하는데......<br><br><br><br>지난주에 나 혼자 &lt;사탄탱고&gt; 보러 갔을 때 집에 홀로 남아 있던 집사2. 인터미션 때마다 집사2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고새 이런 메시지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고 싶다는 거야? 벗고 싶다는 거야? 둘 다인가? (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4년을 만나도 이런 인간이 있어서 내가 인간관계에서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가 봅니다.....<br><br><br><br>그리고 얼마 전 다락방의 플러팅 현장. 사실 이날(10월 7일)은 내가 지난주 연휴의 첫날이었던 터라 아침에 북플 확인 후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고 있었다. 그런 중에 이런 댓글이 다다다다다...... 나중에 확인하고는 이건 다락방이 만나자는 소리 같은데.... 싶었지만 모른척....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내가 요즘 사람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했는데 보다 못한 망고가 저런 댓글을 남기고 나는 역시 모호한 웃음으로 마무리....<br> 근데 보다 못한 폴스타프 님이 수육은 됐고 애호박찌개나 먹으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서 빵 터졌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br><br>근데 이 인간....... 포기하지 않는 이 인간, 다락방은 수육을 팽개치고는 빨랑 만나서 책 이야기하자면서 잠자냥에게 플러팅.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은 김승섭 교수의 책과 관련한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여 곧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육보다는 책. 아니 사실 두 번이나 외면하기는 뭐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불요불굴의 다락방이라는 친구가 있어서 내가 인간관계에서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가 봅니다222222222.......<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32/cover150/89255688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93279</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10월 산책(202610)</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69311</link><pubDate>Tue, 13 Oct 2026 11: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6931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5552&TPaperId=175693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91/27/coveroff/k37203555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034240&TPaperId=175693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00/84/coveroff/k1620342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7280&TPaperId=175693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22/2/coveroff/896262728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1471&TPaperId=175693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14/coveroff/k31213147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3591&TPaperId=175693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22/78/coveroff/k372033591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569311'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10월 8일,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고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앤 카슨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딱히 내 취향은 아닐 거 같아서), 발표 이후 좀 궁금해서 읽어봤다. 그런데 역시 내 취향은 아닌 작가로....... 근데 이분 요즘 복싱 배우기 시작하셨다네요. 74세의 나이에 복싱! 그 까닭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는데 복싱이 치료에 좋다고 해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파이팅입니다.&nbsp;<br><br>작년에는 수상자 발표 소식을 민음TV로 여행지에서 아이패드로 봤는데 올해는 집에서 TV를 켜고 큰 화면으로 봤다. 근데 이걸 옆에서 보던 집사2가 “헐 셋 다 작년보다 얼굴이 좋아졌어!” 이러는 게 아닌가. 그래서 여차저차 민음사가 유튜브 덕분에 매출 크게 올랐다, 특히 저 사람(김민경 편집자) 나름 유명해져서 공중파에도 출연하는 거 같더라(라디오스타/유퀴즈) 등등의 소식을 알려주면서 그래서 얼굴이 좋아졌나? 했다. 근데 집사2가 빵 터지면서 하는 말...“아니 근데 저 뒤에 저거 A4로 한 장씩 출력해서 붙인 거야???? 출판계 진짜 열악하다....” 이때 김민경 편집자가 “현재 6천명이 보고 있습니다...” “9천명 되나요?” “오늘 시청자 만 명 되면 정말 좋겠어요!” 이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사2가 애잔한 눈으로 진짜....... 저 정도 시청자인데 저 유튜브 방송이 정말 인기가 많은 거야?? 한국 사람들 정말 책 안 읽는구나... 운운...&nbsp; 음 그래.. 그렇단다. 아무튼 재미있게 봤다.<br><br><br><br>저 세 편집자 모두 수상자를 맞히지는 못했는데 나도 그렇다. 사실 나는 올해 남아메리카의 작가 중에 한 사람이 수상할 줄 알았다(나는 성별 분배보다는 대륙 분배설을 따르는 편). 재작년에 아시아의 여성 작가 한강, 작년에 동유럽의 남성 작가 라슬로가 수상자였기에 올해는 남아메리카의 작가겠구나! 하고 어떤 작가의 이름을 알라딘에 써서 냈는데..... 그는 받지 못했다. 아... 북아메리카에서 멈출 걸 너무 내려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년에는 다시 남아메리카 작가로 도전!&nbsp;<br><br>그나저나 앤 카슨(캐나다)의 수상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여사(86세...)는 영영 받지 못하게 되었다... 흐흑... 이 소식이 참 슬프네.<br><br> <br>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 &lt;타이가 열병&gt;<br>그래서 이 사람이 남아메리카의 수상 후보자 중 쭉쭉쭉 막판에 배당이 치솟은 작가였다(멕시코 작가).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 출판사 이름이 ‘물결점’,.... 신생 출판사인가 했더니... 판권을 보니 동아시아 출판사의 문학/예술 분야 임프린트였다. 아무튼, 이 책 급박하게 사서 다 읽었는데... 읽기는 했는데..... 일단 말을 아끼겠습니다.&nbsp;<br> <br>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 &lt;노스탈지아&gt;<br>작년에 저기 호피무늬 바지 입은 편집자(가운데 남자)가 픽했던 수상 후보자였다. 올해도 이름을 올리기는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lt;멜랑콜리아&gt;는 읽어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작품까진 한 번 더 읽어보기로.<br>&nbsp; &nbsp;&nbsp;<br> <br>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lt;아틀란티스&gt;<br>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19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국내에는 그간 &lt;직조공&gt; 정도만 번역되어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인기 없음 ㅋㅋㅋㅋ), 아니 언제 이 작품이 소리 소문 없이 출간되었어?! 나 몰래 이러기냥!? ㅋㅋㅋㅋㅋ “의사이자 병리학자인 주인공 프리드리히가 의학연구에서의 낭패와 심한 정신질환을 앓는 아내로 인한 삶의 위기상황을 피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약 4개월 동안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는데 너무 재미날 거 같아서 구매. 아니 뭐가 재미날 거 같으냐고?? 저 4개월 동안 배에서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br>[전자책]&nbsp;<br> <br>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 &lt;더 컴업펀스&gt;<br>퓰리처상 수상 작가 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의 희곡. 우정과 기억, 나이 듦과 죽음에 관한 잔인하고 유쾌한 블랙코미디. 너무 재미날 거 같아서 구매.......하려다 보니 종이책 너무 비싸.... 그래서 전자책으로 샀거든요? 아니 근데... 다운로드 받아서 읽으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DF 형식이었던 것이다......... 눈 아파... 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나중에 보려고 덮었다. 제길.......<br><br><br><br><br><br> &nbsp; &nbsp;&nbsp;<br>세라 F. 로즈, &lt;장애의 발명-산업화와 공공정책은 어떻게 장애인을 일터에서 밀어냈는가&gt;<br>10월의 기대 책. 믿고 읽는 김승섭 교수의 번역과 해제. 김승섭 교수가 소개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nbsp;<br><br> <br>칼 다이서로스, &lt;감정의 기원-우리의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gt;<br>우앙 이것도 너무 재미날 거 같다. 감정의 기원을 뇌과학적으로 풀어봅니다.... 칼 다이서로스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한 3인방 중의 한 사람.&nbsp;<br><br> <br>후고 뮌스터베르크, &lt;영화극- 심리학적 연구&gt;<br>올해 1월에 지만지에서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책이 출간된 걸 보고... 사고 싶었으나 책값이 역시 너무나 비싸서 에잉... 하다가 혹시?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문학동네에서 이미 몇 해 전에 이 책이 출간되었더라. 그럼 당연히 문학동네로 사는 거죠....,&nbsp; 이 책은 그러니까 시대를 앞서간 세계 최초의 영화이론서이자 개론서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고전입니다.&nbsp;<br><br><br><br><br>소박하다. ㅋ<br><br>아무튼 그리고 우리 고양이들.... 오늘은 꼬마 3인방.<br><br>아....... 일요일에 날이 갑자기 너무 더워져서(서울 한낮 기온 29도 무슨 일이니.) 애들이 또 저 위로 올라갔다....<br>아..... 내 책.... ㅠㅠ<br><br><br>늠름하시네.. 좀 전에 저기에 한나랑 같이 있다가 혼날 거 같아서 이리로 냉큼 피한 분.....<br><br><br>보기 드문 6호와 7호의 조합. 푸코야 너 왜 누나 따라갔어?&nbsp;<br>누나한텐 망태횽아뿐이야.....&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76/81/cover150/k9421316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768118</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그 종소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67554</link><pubDate>Mon, 12 Oct 2026 1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6755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0419&TPaperId=175675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4/65/coveroff/k34213041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최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lt;사탄탱고&gt;를 읽은 까닭은 노벨문학상의 계절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씨네큐브,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벨라 타르(Bela Tarr)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상영작 중 &lt;사탄탱고 Satan Tango&gt;(1994)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439분. 무려 7시간 19분이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몰입은커녕 집중하기 어려워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만 있던 중. 드디어 지난 토요일 상영작을 예매 성공했다. 씨네큐브에서는 9월에 한 번 상영한 적이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뒤늦게 예매하러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앞자리만 몇 개 남고 거의 매진이더라. 7시간 19분을 맨 앞자리에서 볼 수는 없어서 언젠가 또 하겠지 싶은 마음에 일단 그때는 포기했었다.<br><br>집사2는 7시간 19분 동안 이 영화를 볼 자신이 없다고 해서 혼자 관람. 나도 이게 속 편했다. 전에 벨라 타르의 &lt;토리노의 말&gt;(155분)을 같이 봤는데 도파민&amp;고자극물에 익숙해진 이 어린양.... 지루해하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동물(말)이 고통받는 장면에서 괴로워하는 게 보여서 나중에 &lt;사탄탱고&gt;는 혼자 보러 가야겠군, 했던 참이다. &lt;사탄탱고&gt; 원작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lt;토리노의 말&gt;보다 더 심하게 동물이 괴롭힘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하필이면 고양이..... 원작을 먼저 읽어서 예상했던 장면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고양이가 고통받는 장면에서는 너무 힘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드디어 혼자 보게 된 벨라 타르의 &lt;사탄탱고&gt;-<br><br><br><br><br>인터미션 시간까지 포함해서... 내가 극장을 나온 시간은 6시 50분. 해가 저물었다!<br><br>영화는 라슬로의 원작과 거의 비슷하다(라슬로가 직접 각본에 참여했다). 단지 좀 더 암울한 느낌이랄까. 원작에서 종종 보이는 농담이나 그 비슷한 것들을 다 제거하기도 했고, 흑백의 화면 위로 시종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어서 더 암담한 분위기이다. 절망과 나락뿐 어디에도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인물도 구성 방식도 원작과 거의 똑같아서 400쪽 가까이 되는 원작을 7시간 19분짜리로 만든 비디오북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어쨌든 영화 속으로 조금씩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br><br>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황폐해진 헝가리의 한 외딴 집단 농장. 몇몇 가구만 제외하고는 사람들도 이미 다 떠난 모양이다. 여기 아직 남아있는 그들도 드디어 떠날 결심을 한다. 오늘 밤에는 꼭 떠날 거야. 농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나눠 갖고 꼭 떠날 거야…. 그런데 10월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길은 진창벌판이고, 어쩐지 무기력이 이미 이 농장을 지배하고 있어 그들은 쉽사리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게다가 떠나려는 그들 앞에 한 소식이 전해진다. “이리미아시가 온대!” 그들은 동요한다. 거짓말 마라! 이리미아시는 1년 반 전에 죽은 사람이 아닌가! 이리미아시는 유령인가? 부활했는가? 그가 진짜 오는가?<br><br>이리미아시는 죽지 않았다.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자신이 죽었다고 소문을 내놓으라고 소년 서니에게 일러둔 탓에 사람들은 서니의 거짓말만 믿고 그가 죽었노라 생각하고 있던 터. 그런데 바로 그 이리미아시가 부하나 다름없는 페트리너와 함께 이 황폐한 농장으로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마을로 돌아오기 전에 경찰서에서 대위를 만나 어떤 지령을 받는다. 그들에게 내려진 지령은 무엇이며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는 마을로 돌아와 무슨 일을 벌이게 될까?<br><br>집단 농장에서 같이 일하며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후터키, 슈미트 부부, 크라네르 부부, 헐리치 부부, 교장 선생 등등은 이리미아시가 온다는 소리에 저마다의 반응을 보이며 삼삼오오 술집에 모여든다. 어떤 자는 이리미아시의 귀환 소식에 들뜨기도 하고 어떤 자는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들이 이리미아시를 기다리는 태도를 보면 베케트의 &lt;고도를 기다리며&gt;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리미아시는 과연 그들에게 희망인가 절망인가? 구원인가 나락인가? 삶인가 절망인가? 메시아인가 사기꾼인가?&nbsp;&nbsp;<br><br>영화에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농장이므로 소, 돼지, 닭 등의 가축부터 시작해 개, 말, 부엉이, 고양이 등등- 그런데 결정적인 장면마다 비 내리는 진창에서도 먹이를 찾느라 정신없는 돼지의 모습과, 비 내리는 와중에도 교미하려고 암소를 올라타는 수소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친다. 그저 돼지일까 소일까…. 마을에는 백치라고 불리는 소녀 ‘에슈티케’가 있다. 에슈티케는 오빠 서니에게조차 바보 취급을 받는다. 서니는 땅에 돈을 심으면 돈나무가 자란다고 속여 동생의 돈을 가로챈다. 에슈티케의 언니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몸을 팔고, 이 남매들의 엄마는 딸들이 그렇게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산다. 엄마도 종종 몸을 파는 눈치이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에슈티케는 차라리 백치인 게 낫지 않을까.&nbsp;<br><br>이처럼 숨 막히는 순간에 괴로워하며 자기 인식의 심연으로 던져진 그가 깨달은 것은, 뇌리를 스치고 가는 것은 그의 파란만장한 쉰두 해의 삶이 불타는 집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사소하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이었다. (&lt;사탄탱고&gt;, p.122~123)<br>영화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소녀 에슈티케가 절망 속에 술집으로 가 어른들이 술에 취해 춤추며 노는 모습을 창밖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장면이다. 에슈티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카메라는 한참 그 모습을 담는다. 이리미아시가 오기 전, 그들은 모두가 술에 취해 춤을 춘다. 탱고를 추기도 한다. 그들은 이리미아시외 함께 오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일까? 희망을 기다리는 것일까? 에슈티케처럼 그들의 춤을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이야, 소녀야, 너는 무얼 보고 있니. 일하고 취하고 춤추고 섹스하고 삶이란 그것뿐이란다. 노동과 술 그리고 섹스 단지 그뿐이란다...... 그리고 그 섹스에는 대개 사랑이라고는 없어. 그저 욕정뿐. 그게 인생이란다......<br><br><br><br><br><br>집단 농장의 이 마을은 아내도 공유하는지 거의 모든 남자들의 슈미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술집에서도 그들은 모두 저마다 슈미트의 아내를 탐한다. 저 어린 서니 놈까지도 이리미아시의 졸개 노릇을 하면서 슈미트 부인과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조건을 거는 지경이다. 여기에 어디 사랑이 있는가?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수소가 암소를 올라타려고 애쓰는 그 장면, 그와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그들은 술에 취해 먹고 또 마시고 먹고 또 마시고 그러다가 그대로 쓰러져 잠든다. 진창에서 먹이를 찾느라 킁킁대던 저 돼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리미아시는 이들의 그런 속성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게 사탕발림이나 현학적인 미사여구로 그럴듯하게 떠들어대며 그들을 속여 넘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이다. 이런 자들에게 제아무리 종소리가 깨지도록 울린다 한들 과연 깨어날 수 있을까. 가짜 구원자에게 속아 넘어가기를 자처하는 그들에게 희망은커녕 절망의 늪이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br><br><br>마을에는 이런 모든 장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자가 있다. 의사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종일 창가로 난 책상에 앉아 알코올과 줄담배로 연명하면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비대해진 몸과 운동 부족으로 숨 쉬기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 그에게 어느 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술이 다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그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주던 크라네르 부인이 농장을 떠날 생각에 일을 그만둔 것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나는 이 와중에 웃음이 좀 터졌는데) 알코올중독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알코올! 그는 술을 구하기 위해 드디어 집밖으로 나간다. 추적추적 내리를 비를 뚫고 걷기조차 버거운 비대해진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술집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그는 무사히 술집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눈앞에 음악이 흐르는 술집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그 불빛을 바라본다. 나는 또 생각한다....... 술집의 저 불빛은 지금 이 알코올중독자에게 희망인가 절망인가 삶인가 죽음인가 구원인가 나락인가. 의사에게도 영화 말미에 종소리가 들려온다. 후터키가 들었던 바로 그 종소리. 그는 이 종소리를 처음에는 죽음의 종소리라 생각한다. 그는 이 종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한 번 더 집밖으로 나간다. 이 종소리는 과연 죽음의 소리인가 삶의 소리인가? 가짜구원자를 메시아라 여기는 한 그 종소리는 파멸의 울림일 뿐이리라....&nbsp;<br><br><br><br>세상은 도처에서 이리미아시가 넘쳐나고 따르는 자들 또한 넘쳐나는구나.<br><br><br>까불지 마! 나 이런 사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nbsp;ㅋㅋㅋ 영화 끝난 후에 선물이 있다더니 이걸 주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빵터짐.<br>&nbsp;<br>영화 볼 때 포스터나 기념품 받아오는 일 드문데... 저 배지는 탐이 나더라.&nbsp;<br><br><br>이걸 어디다 달고 다니죠? 가슴에 달고 다닐까요? 물려줄 자식도 없고..... 관짝에 들어갈 때 가슴에 달아달라고? ㅋㅋㅋㅋ<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4/65/cover150/k3421304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46598</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다니엘 또는 디터에게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60296</link><pubDate>Thu, 08 Oct 2026 09: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602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3X&TPaperId=17560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24/coveroff/893204533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3X&TPaperId=175602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통역사 다니엘 슈타인</a><br/>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


사실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은 올해 우주 리뷰상에 응모할 작품으로 읽었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고 할 이야기도 많고 좋았다. 그런데 중반쯤에 접어들면서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지더니 자꾸만 다른 의문이 고개를 치솟고, 더 읽어 나가다 보니 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졌다. 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는 동기는 두 가지가 있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글로 남겨 다른 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때, 또 다른 경우는 작품에 불만이 많아서 뭐라고 투덜거리고 싶을 때. 이 작품은 어디에 속하는가 하면 후자에 속한다. 작품 자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뭐랄까 장점보다는 자꾸만 단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랄까. 처음에는 리뷰라는 게 꼭 장점만 써야 하는가 싶어서 내가 느낀 불만 그대로를 담아 우주 리뷰상에 응모할까 싶기도 했지만 일단 그건 포기. 그러고 나서도 하고 싶은 몇 가지 말들.<br><br>&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이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반적인 통역사라면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을 법하나, 이 남자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게슈타포의 통역사가 된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유대인이 게슈타포의 통역사를 한다니.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의 통역사 역할을 하는 조선인 김 첨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임무란 제 민족, 유대인을 팔아넘기는 일이 되기 쉽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환경, 유대인으로 폴란드에서 태어나 나치 치하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 때문에 히브리어와 폴란드어, 러시아어에 독일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언어 천재적 능력을 지니게 되고 그로 인해 게슈타포의 통역사로 살아가게 된다. <br><br>살아남고자 유대인 신분을 철저히 숨긴 그의 독일식 이름은 ‘디터’이다. 그러나 반전은 그가, 제 민족을 팔아넘기는 행위에 가담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유대인의 목숨을 살리는 데 애를 쓴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니엘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못한) 그의 직속상관 라인홀트 소령이 인도주의적 인물이기에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라인홀트가 적극적으로 디터를 도와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라인홀트는 자신이 무척 아끼던 디터가 독일을 배신해 유대인을 살리는 데 몇 차례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아량을 베푼다. 그로 말미암아 디터가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가톨릭 사제로서 살아가는 데 일조하는 인물이다. 라인홀트의 존재가 없었다면 통역사 다니엘은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의 목숨을 살리는 역할을 하다 사라진 인물로서 이 작품은 끝을 맺었으리라.....<br><br>그러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가톨릭 사제가 된 유대인 다니엘의 삶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유대인이 가톨릭 신부라니! 게다가 그는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유대 민족이 보기엔 게슈타포의 통역사 역할을 한 것도 1차 배신일 터인데,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가톨릭 사제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씻을 수 없는 배신일 것이다. 그렇기에 전후 이스라엘로 돌아가 국민으로 인정받고자 애쓰는 다니엘에게 이스라엘 정부는 그를 전쟁 영웅으로 받아들여 (게슈타포의 통역관으로 유대인을 구한 일이 인정받는다), 귀화 시민권은 주되, 국적을 주지는 않는다. 그의 종교 때문에 그 안의 유대인성을 인정하지 않아 국민으로 허락하지는 않은 것이다. 다니엘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곧 이스라엘 시민이 되겠지만, 스스로를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이라고 부를 권리는 없다는 거야. 폴란드에 가든 독일에 가든 거기서 모두에게 나는 유대인이지만 오직 이스라엘 정부에게만 나는 유대인이 아닌 거라네. 내 증명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 ‘국적 미확인’” (p.114)<br><br>다니엘, 이 디아스포라적인 인물의 생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언어에 재능이 뛰어나,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 게슈타포의 통역사요, 유대인임에도 유대교의 랍비가 아닌 가톨릭 사제로 살아가는 생이라니. 참으로 기구하구나. 그런데 여기서 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굳이...? 하는 지점들이 발생한다. <br><br>도대체 그는 왜 가톨릭 사제로서 왜 굳이 이스라엘로 가야만 했는가? 이것도 일종의 시온주의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1948년 1차 중동전쟁에 이어 지금까지 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물론 영국의 제국주의가 가장 큰 원흉이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 그들만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시온주의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폴란드가 조국인 다니엘은, 가톨릭 사제로 살아가면서도 왜 굳이 이스라엘로 간 것인가? 물론 다니엘의 이스라엘행은 일반적인 유대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영토를 유대인만의 땅으로 보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는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이끌며 민족은 물론 종교적인 화해를 시도한다. 때문에 그의 이런 행보는 유대 민족주의의 폐쇄성에 대한 도전이자 유대인, 아랍인, 기독교인이 역사는 물론·종교적 갈등을 넘어 서로 포용해야 한다는 믿음에 따른 행위이기도 하다. 종교와 민족의 경계를 허문 그야말로 화해와 공존의 통역이라고 볼 수 있다. <br><br>그러나, 그런 행위가 가능한 것은 그가 아랍인에 비해, 팔레스타인 민족에 비해, 가진 자, 강자의 위치에 서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위와 같은 화해와 공존의 실천은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했을까? 나 같은 비종교인의 눈에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종교적인 오만으로 보인다. 굳이 무슬림들의 땅에 기어들어 가 가톨릭이든 기독교이든 자신들의 종교를 설파하는 그들의 행위가 나는 평소에도 종교적 오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는 그곳에서 히브리어로 미사드린다. 이 또한 언어적 시온주의가 아닌가? 물론 이 부분도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 전통의 복원 및 이스라엘 현지인과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 수는 있다. 더욱이 그의 이런 행위는 정통파 유대인들의 눈에는 히브리어로 이방인의 종교인 가톨릭 미사를 보다니! 오히려 시온주의에 대한 도전이나 도발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히브리어는 갈라진 유대교와 기독교를 연결 지으려는 또 다른 통역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유대인인 그가 이스라엘로 가서 히브리어로 가톨릭 미사를....? 이것도 결국 또 다른 오만이 아닌가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br><br>결정적으로 그 언어 천재가 아랍 땅에서 아랍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점은 내 의구심에 기름을 붓는다. 그에게 감화받은 수녀 힐다가 말하길(그녀는 독일인으로 그의 민족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죄를 참회하기 위해 다니엘 곁에서 수녀로 살아간다), 다니엘 신부님은 폴란드어, 독일어, 히브리어를 잘하고, 다른 언어는 잘못한다고 하면서도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영어, 루마니아어 등을 사용하며 이스라엘에 온 견학단을 데리고 다닌다. 체코인, 불가리아인, 아랍인 등과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평생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는 결정적으로 아랍어를 배우지 않았다. 이것은 다니엘의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언어 천재가 그 땅에 살면서 히브리어로 미사들 드리며 현지 이스라엘인들과의 소통에는 진심으로 애를 쓰면서 왜 그 땅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아랍인들의 언어는 배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이제껏 그를 살려온 언어들- 그렇다 다니엘에게 언어는 살기 위한 도구, 실존을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과 달리 아랍어는 생존에 꼭 필요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인가? 이는 아랍인들의 땅에서는 굳이 아랍어를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기 수월하다는,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또 다른 오만의 증거 아닐까. 다니엘이 살아간 시기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죽 이어지고 있는 아랍-팔레스타인 현실에 대한 방관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니엘은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외치지만, 그의 신, 그가 외치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향하지는 않는다. 팔레스타인인, 그들의 고통에는 다니엘은 물론 그가 믿고 따르는 신도, 그리고 이 작품을 쓴 작가도 눈을 돌린다. <br><br>그렇다. 다니엘, 디터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그의 뒤에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있는 것을. 그녀는 실제로 이 작품 속에서도 직접 등장해 말한다. 이 작품을 “누구에게 필요할까 싶은 자유에 관해서”(p.167) 쓰노라 고심 중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자유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속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대상에 당연히 그들도 포함되지 않느냐고? 글쎄... 독자인 내가 읽기엔 유대인을 향한 핍박과 고난에 비하면 작가의 아랍인들을 향한 연민은 거의 느낄 수조차 없으니 무슨 일일까. 심지어 그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분노해 러시아를 떠나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살아가고 있는 행동파 작가가 아닌가. 그런데 왜 자기의 민족인 유대인에게는 이토록 한없는 연민만을 보내는 것일까. <br><br>루카치는 소설을 ‘총체성(Totality)을 상실한 시대의 서사시’로 정의하며 훌륭한 소설이란 파편화된 현실 속에서도 개인과 사회적·역사적 현실 간의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관계를 복원해 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 관점에서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은 명백하게 한계를 지닌다. 오늘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억압하는 현실은 군사, 영토, 자본, 생존권이 얽힌 철저히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사회적 모순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 참혹한 현실을 다니엘 신부의,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자’는 식의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박애주의로 해결하려 한다. 그로 인해 이토록 참혹한 현실을 낭만화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역사적 토대에 대한 냉철한 분석 없이 그저 관념적인 도덕론으로 가해와 피해의 객관적 현실을 흐리는 부르주아적 기만이 아닐까. 게다가 역사적·사회적 구조를 총체적으로 직시하지도 못하고, 작가의 출신이 유대인이라는 주관적 한계와 수많은 인물이 주고받은 편지의 나열과 인터뷰 등등 파편화된 서사 형식, 종교적 관념주의 뒤로 도피함으로써 소설이 도달해야 할 진실의 총체성을 획득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만다. <br><br>10월 8일 오늘은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이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력 후보는 아니지만 해마다 이 상의 후보자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가이다, 나는 그녀의 수상을 점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만일,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오늘 수상자가 되어 연단에 서서 연설하게 된다면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저 만행에 대해 한소리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추상적인 말들-사랑과 용서 화해 운운하면서 자기의 수상 소감을 밝힐 가능성이 더 크다. 이스라엘은 언제까지 피해자일까? 더는 아니다. 가해자의 위치에서 말하는 사랑과 용서, 화해는 공허한 기만일 뿐이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24/cover150/893204533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92431</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불가능한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41107</link><pubDate>Mon, 28 Sep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4110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5664&TPaperId=175411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68/46/coveroff/89374856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5656&TPaperId=175411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68/44/coveroff/893748565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 5권인 &lt;게르망트 쪽&gt;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lt;스완네 집 쪽으로&gt;와 &lt;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gt;는 화자의 유년기와 첫사랑을 중심으로 프랑스 사교계의 모습, 화자의 예술과 문학에 눈뜸을 그렸다면 &lt;게르망트&gt;는 본격적으로 귀족들의 신선놀음을 보여준다. 6권까지가 &lt;게르망트 쪽&gt;이므로 이 살롱 안, 그들만의 신선놀음은 내내 이어질 것 같은데 프랑스가 그토록 사랑한 벨 에포크란 결국 귀족과 부르주아지, 그들만의 벨 에포크는 아닐까, 벨 에포크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노동자나 하층 계급에 속하는-은 분명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그들에게도 이때가 정말 말 그대로 아름다운 시대였을까? 아니 그들에게 과연 아름다운 시대가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 않을 수 없었다.<br><br>이런 생각이 더 강렬하게 든 까닭은 연휴에 이창동 감독의 &lt;가능한 사랑 Possible Love&gt;(2026)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창동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쓰고 씁쓸하고 마음속에는 불유쾌한 감정이 오랫동안 남는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계급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저히 서로 화해할 수도, 이해할 수도, 공존할 수도 없는 그러므로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 영화에는 두 커플이 등장한다. 해고 노동자 부부인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녀의 남편 상우(조인성). 부부 사이에서도 저마다 계급차이는 선명하다. &lt;잃시찾&gt;의 화자의 집안에 견줄 수 있는 인물은 ‘상우’이다. 그는 이 네 명의 등장인물 중 가장 부유하다. 그의 부와 계급은 초월적 지위를 지닌다. 극중 상우의 대사는 어떤 면에서 챗GPT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실제로 아내 예지가 “너 지금 챗GPT처럼 말한다.”라고 받아치는 장면도 있다), 영화 속 그는 여러 면에서 테크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lt;잃시찾&gt;의 화자의 집안은 귀족은 아니지만 부유하고 교양 있는 상류 부르주아 계층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상우’가 딱 그러하다. 대대로 부유했고 그에 따라 취향도 고급스러운.<br><br><br><br>그렇다면 마땅히 아내 예지도 그래야 할 텐데 자못 간극이 있어 보인다. 서울 압구정의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지만 예지의 집안은 상우에 비해 부유하지는 않다. 아버지가 세탁소를 운영했기에 예지는 상우와 호석부부의 중간에 속하는 계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해서 유학길에 올랐고 그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덕분에 거기서 상우를 만나 결혼까지 이를 수 있었다. 상우와의 결혼으로 일종의 신분 상승을 한 속물부르주아 계급에 속한다고나 할까. 호석-미옥 부부는 예지-상우 커플에 비해 계급적으로 한참 아래이다. 철강 노동자로 입사해 열심히 일하다 운 좋게 대기업 직원이 된 호석. 그는 파업투쟁을 벌이다 해고노동자가 되지만 그래도 대기업 직원으로 일한 덕분에 자기 집도 마련했다. 그런데 미옥은 어떠한가. 가난한 집안 출신에 고등학교마저 중퇴했고, 호석과 결혼해 여전히 노동자이자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이 여자는 네 사람 중 가장 낮은 계급적 위치를 지닌다.&nbsp;<br><br>한데 이 전혀 어울릴 일 없을 것 같은 네 사람이 어떻게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감독인 예지는 대기업 해고 노동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찍고자 하고, 그러다 보니 ‘호석과 미옥’ 부부를 촬영하면서 만남이 잦아지게 되는 것이다. 출신과 배경, 처지 등이 서로 너무 다름에도 만남이 잦아지다 보니, 서로에게 없는 것을 욕망하게 되고 그 욕망은 균열을 불러일으킨다. 그중 가장 선명하게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은 ‘미옥’이다. 무뚝뚝하고 거친 호석을 10대 때 만나 그대로 죽 살아온 미옥에게 상우는 처음 마주한 세상이다. 저 매끈한 손, 매끈한 얼굴, 매끈한 몸, 매끈한 매너, 매끈한 취향…. 모든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미옥의 저 욕망은 한 번도 속해보지 못한, 가져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욕망한다고 해서 과연 가질 수 있을까? 한편 미옥은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면서도 생활력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있으며 고집스럽기도 하고 자기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lt;잃시찾&gt;의 하녀 ‘프랑수아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nbsp;<br><br>아버지가 세탁소를 운영하기는 했지만 미국 유학파인 예지는 어쩌다 노동자를 카메라에 담게 되었을까? 촬영팀 동료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예지는 말한다. 상우와 카타르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 인공 도시가 그토록 아름답게 깨끗하게 굴러갈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지금도 계속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시의 존재가 가능한 것이라는 상우의 말에 영감을 얻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세계’를 카메라에&nbsp; 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무려! 카타르 여행에서! 챗GPT 같은 남편의 말에 영감을 얻어! 영화를 찍게 된 감독! 예지! 이런 그가 카메라에 담는 영상은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진실을 담을 수 있을까? 아니, 진실에 가닿기나 할 수 있을까?<br><br>그럼에도 인정욕구는 있어서 “지금 나 잘하고 있지?” 묻는 예지에게 상우는 인상적인 대답을 한다. “그럼, 너 지금 메소드 연기 잘하고 있어.”라고 칭찬한다. “너와 그들은 다른 사람”인데도 이해하는 척 그들이 아픔을 다 아는 척 메소드 연기 참 잘하고 있다고 나름 격려한 것이다. 그 말에 기분이 상한 예지는 자신은 지금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호석-미옥 그 부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 사랑이라…. 사랑일까? 그 사랑이 가능할까?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아니 이해는커녕 연민조차 느낄 수 없을 텐데 사랑이 가능할까? 예지는 자기의 영화 소재로서, 대상으로서만 그들에게 다가서기에, 그녀에게는 영화를 잘 찍고자 하는&nbsp; 제 자신의 욕망만 존재하기에 이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 &lt;가능한 사랑 Possible Love&gt;은 씁쓸하게 다가온다.<br><br>두 부부가 함께한 식탁의 ‘달 이야기’도 인상 깊다. 호석과 미옥이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다가 불쑥 튀어나온 달 이야기. 가진 것도 없고 앞날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 도착한 곳은 인천 월미도의 바닷가이다. 그 바다에서 한없이 바라본 달. 이 달 이야기를 받아서 예지는 시카고 유학 생활 중 차가 끊겨 집까지 걸어가면서 바라본 달 이야기를 한다. 그때 정말 무서웠노라고…. 미옥과 예지는 그때 우린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같은 달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라며 깔깔 웃지만, 아무도 그 달이 같은 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조차도.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 뻔한 이들이 막막한 심정으로 바라본 인천 월미도의 달과 미국 유학생이 바라본 시카고의 달이 같을 리가.<br><br>그런 의미에서 &lt;가능한 사랑&gt;의 ‘달’은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에서 그려지는 벨 에포크 시대와 같다. 화자를 비롯해 화자와 신분이 비슷하거나 비슷하게 부를 소유한 계급, 또는 게르망트 대공네처럼 귀족인 그들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고 그들만의 이 벨 에포크가 끝이 날까? 나는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살롱에 앉아 날마다 차를 홀짝거리고 샴페인과 와인을 즐기면서 사교계의 이 사람이 어떻고 저 사람은 어떻고 연일 뒷공론이며 정치가 어떻고 음악이 오페라가 미술이 연극이 문학이 어쩌고저쩌고 예술을 논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 끊임없는 유희는 속물스럽기 짝이 없고 공허의 절정을 보여주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지치게 만들고 화자 또한 언젠가는 그 허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또한 환멸을 맛보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런 깨달음 속에 화자가 자신의 사랑은 내내 실체 없는 허상을 쫓은, 제 자신의 망상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질베르트-(사랑은 아니지만 예찬하는) 오데트-게르망트 공작부인에 이르기까지 본인은 ‘사랑’이라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지 자신에게 낯설거나 결핍된 것을 향한&nbsp; 욕망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과연 그러할지는 6~13권까지를 마저 읽어야 알 수 있으리라.&nbsp;<br><br>상상병 환자(feat. 몰리에르), 화자가 그토록 쉽게 질베르트에 이어 게르망트 공작부인 등에게 빠지고 마는 것은 그의 생활이 한없이 권태롭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그의 집 하녀인 프랑수아즈처럼 연일 바쁘게 노동해야 한다면 그녀들을 향한 그토록 수많은 망상과 집착을 할 여력이 과연 있을까? 혼자 열망하고 혼자 사랑하고 질투하고 혼자 이별하고…. 그에겐 놀 생각할 시간이 너무나 많다. 자기가 만든 공상과 환상 속에서 놀 시간이 너무나 너무나 많다. 흥미롭게도 &lt;가능한 사랑&gt;의 미옥도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유가 생기면서 자기 욕망을 직시하게 된다. 생전 처음 떠난 휴가다운 휴가지에서 자기의 욕망-상우와 상우로 상징되는 계급에 대한 욕망-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그 실체 없음이 환멸과 쌍을 이룰 수밖에 없음은 예정된 수순이 아닐까.&nbsp;<br><br>&lt;가능한 사랑&gt;도 그렇지만 &lt;기생충&gt;(72회 칸 황금종려상), &lt;슬픔의 삼각형&gt;(75회 칸 황금종려상), &lt;아노라&gt;(77회 칸 황금종려상) 등등 계급 문제를 다룬 영화가 최근 국제 영화제에서 큰 상을 연달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다는 방증일 텐데, 계급 격차는 더더욱 커질 뿐. 그들 사이의 사랑은커녕 이해조차 도무지 불가능한 시대. 그 오래전의 벨 에포크도 우리 시대의 벨 에포크도 가진 자들만의 것일 뿐. 이제 노동자들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저들의 아름다운 시대를 위해 오늘도 손발이 닳도록 뛰어다닐 것이다. 화자의 충실한 하녀 프랑수아즈가 그렇듯이.<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168/44/cover150/89374856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684410</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은 예수를 찾아서 - [예수의 어린 시절]</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29220</link><pubDate>Mon, 21 Sep 2026 16: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292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1879&TPaperId=175292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6/28/coveroff/k4821318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1879&TPaperId=175292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의 어린 시절</a><br/>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6년 09월<br/></td></tr></table><br/>

신간을 살펴보다가 소설 분야에서 이 제목을 마주했다. &lt;예수의 어린 시절&gt;- 제목과 책 표지의 분위기만 보았을 때, 쉽게 스크롤하면서 다른 책으로 넘어갔을 법한 그런 책이다. 그런데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은 “J. M. 쿳시”라는 이름 때문이다. 쿳시? 쿳시가 이런 책을 썼다고? 책 정보를 훑어보고 미리보기로 책을 살펴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지나치게 종교적인 내용이 아닐까, 에이 설마 그래도 쿳시가 그렇게 단순하게 썼으려고. 그래서 바로 사서 읽었다.<br><br>읽고 나서는 고개를 더 갸우뚱하게 된다. 오, 지저스Jesus!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이렇게 된다. 도대체 예수는 어디 있는가? 과연 누가 예수인가? 예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은유로서의 예수조차도 발견할 수 없으니 답답한 심정. 한편으로는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예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며 예수의 발끝 하나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이 작품 내에서 예수의 그림자를, 그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제목이 &lt;예수의 어린 시절&gt;이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소년 ‘다비드’가 예수를 상징하는 아이인가 싶기도 한데 그런 의심 아래 이 작품을 쭉 읽어나가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나는 다비드가 예수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다비드란 소년, 똘똘하고 귀여운 구석은 있지만 고집불통! 속 터져. 특히 중반 이후 정말 제멋대로 굴 때는 이 녀석은 분명 예수가 아니다!!!! 속으로 외치게 된다.<br><br>그렇게 예수 찾기에 실패하고 책장을 덮은 &lt;예수의 어린 시절&gt;- 이 책은 현재 알라딘 판매량에서 “종교/역학 주간 18위, 종교/역학 top100 2주”에 올라있고, 알라딘 분류에 따르자면 아프리카소설/아프리카문학/기독교 문학에 속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책의 분류 중 그나마 내가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영화소설(쿳시의 ‘예수 3부작’을 원작으로 한 영화 &lt;여기(Aqui)&gt;는 2026년 칸 영화제 프리미어 부문에서 상영해 큰 화제를 모았다)/노벨문학상(잘 알다시피 쿳시는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정도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문학으로 분류된 까닭은 쿳시의 모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이기 때문일 테고 제목에 버젓이 ‘예수’가 등장하기에 종교/기독교 문학으로 분류된 것이리라.&nbsp;<br><br>그러나 &lt;예수의 어린 시절&gt;을 읽고 나면 이 분류에 딴죽을 걸고 싶어질 것이다. 이 작품을 아프리카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쿳시의 이전 작품들 중엔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쓰인 것들이 꽤 있지만, 이 작품은 스페인어를 쓰는 ‘노비야’라는 공간 때문에 스페인 또는 최소한 스페인어의 영향을 받는 남미의 어느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심지어 이 작품은 영어로 쓰였음에도 영어판보다 스페인어 번역판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출간되었다. 이는 쿳시의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영어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이자 예수 3부작 주인공들이 가상의 스페인어 사용 국가에 도착해 스페인어를 배우며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이 작품을 굳이 분류하자면 아프리카도 스페인도 남아메리카도 영어권 국가는 더더욱 아닌 제3의 공간,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br><br>이 작품은 나이도 출신국도 정확히 알기 어려운 ‘다비드’(다섯 살로 보인다고 표현된다)라는 어린 소년과 늙은 남자 ‘시몬’(본인은 40대로 보이고 싶어 하지만 사실 남들 눈에는 60대로 보이는)이 ‘노비야’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과거의 기억을 거의 잊은 이들은 배를 타고 난민 수용소(로 보이는 곳)에 이르러 낯선 언어인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이곳에 정착하고자 애를 쓴다. 시몬은 엄마를 잃어버린 소년 다비드의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로 오해받는데, 두 사람은 배에서 처음 만난 사이로 시몬은 소년에게 엄마를 찾아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과연 다비드는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언어도 삶의 방식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곳에서 무사히 정착할 수 있을까? &lt;예수의 어린 시절&gt;은 이 두 가지 얼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br>“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로 여기에 있는 거야. 우리에게 살 기회가 주어졌고 우리는 그 기회를 받아들였단다. 산다는 것은 대단한 거란다. 그 어떤 것보다 대단한 거란다.” (p.33)<br>시몬은 배가 고프다고,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칭얼대는 다비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산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정말 산다는 것은 대단한가? 그 어떤 것보다 대단한가? 시니컬한 나는 시몬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다. 그 자신은 정말 그렇게 믿는가? 낯선 곳, 난민 수용소에 도착한 첫날부터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뜻밖의 난관에 봉착해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은 물론이요, 씻기는커녕 편히 잠잘 곳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엿 같은 상황에서 시몬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에게는 어쩔 수 없이 사탕발림하는 게 아닐까? 냉소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차갑게 말하지 않고 희망을 주려 애쓰는 저 어른의 모습에 슬며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br><br>그런데 이 노비야라는 곳은 좀 이상하다. 사람들이 무미건조하게 친절하다. 미식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이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굶주리는 사람도 없다. 시몬이 일자리를 구하면서 어울리게 되는 부두 노동자들이나 난민 수용소 사람들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화하다. 폭력적이지도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뜨겁지도 않다. 열정이나 욕망 또는 강렬한 사랑 같은 깊은 감정이 사라진 공간 같다. 단조로울 정도로 평온하고 통제된 시스템에 따라 큰 문제없이 흘러가는 사회…. 이런 분위기 때문에 노비야는 실제 도시가 아닌 가상의 도시 같기도 하고(이 책을 읽고 있는 망고 님의 말처럼) 혹시 사후세계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쿳시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배경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후세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사후세계로 읽지 않고, 난민이나 이주자들이 많은 가상의 도시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고,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 편이 현실적으로 더 와닿기 때문이다.&nbsp;<br><br>사막처럼 메마른 이 무미건조한 도시에서 시몬은 거의 혼자 뜨거운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의 기계적인 환대가 차갑게(만) 느껴진다. 그렇기에 난민 센터에서 자신과 다비드를 담당해 도와주는 여자 ‘아나’에게 속세에서 살려고 수녀원을 나온 수녀가 아니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아무도 원치 않는 일을 하기 위해서, 감옥, 보육원, 보호시설, 난민접수센터 같은 곳에서 일하려고 환속한 수녀…. 그러나 아나는 시몬의 질문을 가장한 이런 투정에 일침을 가한다. 센터는 감옥도, 자선단체도 아닌 사회복지의 일부일 뿐이라고.&nbsp;<br>“그렇다고 해도 우리처럼 무기력하고 무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오는 상황을 아무런 믿음도 없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죠?”&nbsp;<br>“믿음이라고요? 믿음은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믿음은 눈에 띄는 결과가 없어도 자신이 하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예요. 센터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예요. 우리가 도와주면 그들의 삶이 나아지죠. 그중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게 없어요. 어느 것도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일을 하고 모든 것이 결국 잘 풀려요. 그만큼 단순한 일이에요.” (pp.47~48)<br>그러나 시몬은 아나의 주장 또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센터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2주전에 비해 이곳에 와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확실해졌느냐면서 아나는 이것이 발전이라고 말한다. 시몬이 느끼기에 그것은 발전이 아니다. 아나를 비롯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시몬과 다비드를 환대하면서 그들의 욕망의 크기를 “크래커 콩 반죽” 정도로 제한한다. 그러나 시몬은 그 이상의 다른 것, 예를 들면 으깬 감자, 그레이비가 들어간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것을 바란다. 원한다.&nbsp;<br><br>“이 나라에서 가장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너무 핏기가 없다는 거요. 모두가 너무 점잖고 친절하고 착해요. 아무도 욕을 하거나 화를 내지 않아요. 아무도 술에 취하지 않아요.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아요. 당신은 빵과 물과 콩 반죽을 먹고 살면서 배부르다고 말하죠. 인간적으로 말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스스로한테도 거짓말을 하나요?” (p.49)<br><br>그렇다. 그, 시몬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라서, 결코 제 욕망을 채식 정도에서 멈추게 할 수 없기에 콩이 아닌 스테이크를 원한다(다비드에게도 스테이크를 먹이고 싶다). 고기를 원한다. 고기를 먹고 싶다...... 그러니까 그는 육체적으로도 고기, 즉 인간 여자를 원한다. 먹는 게 아니라&nbsp; 여자를 사랑하고 만지고 안고 싶다. 때문에 젊은 여자인 아나를 비롯해 다비드의 친구 ‘피델’의 엄마 ‘엘레나’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하고, 욕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인간의 본성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그녀들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고자 애를 쓴다. 그런데 참 그것이 쉽지 않으니… 시몬의 이 들끓는 욕망을 따라가면서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편한 사회이지만 욕망은 제거되다시피 한 공간에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nbsp;<br><br>한편 다비드의 생모 찾기에 실패한 시몬은 생면부지의 여성 ‘이네스’를 보고는 느닷없이 다비드의 엄마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나는 이 장면과 이네스의 선택이 이 작품에서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다비드가 예수를 상징한다면, 예수의 처녀 엄마인 마리아와 연결 짓기 위한 쿳시의 무리한 시도로 보임), 진짜 놀랍게도 이 처녀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이 부탁을 받아들여서 미혼의 싱글 여성이 무려 다섯 살 소년의 엄마가 된다. 한데 특이하게도 시몬은 이네스에게만은 여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줄곤 이네스를 묘사할 때 여자 같지 않다, 남자처럼 느껴진다 등등의 언어를 쓴다. 때문에 나는 혹시 이네스가 아이를 미치도록 갖고 싶은 MTF 트랜스젠더 게이, 또는 레즈비언 여성인가 의심했는데 이야기가 흐를수록........ (안 알려줌!). 아무튼 갑자기 어린 소년의 엄마가 된 이네스는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다비드의 교육과 양육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름 애를 쓰는데 이 부분에서는 한 인간을 키운다는 것, 교육한다는 것, 조건 없는 사랑의 의미도 생각해보게 된다.&nbsp;&nbsp;<br>그러니까 갓난아이와 젓 먹이의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호의로부터 우정과 행복이 나오고, 공원에서의 우정 어린 소풍이나 숲속에서의 우정 어린 오후 산책도 나온다. 그에 반해 사랑으로부터는 아니 적어도 사랑이 더 절박하게 표현되는 갈망으로부터는, 좌절과 의심과 상심이 나온다. 그렇게 간단하다. 그는 보편적인 것(호의, 선의)보다 개인적인 것(욕망, 사랑)이 먼저라고 우기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어째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냥 살아가지 않고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낡고 편안한 것(개인적인 것)에서 새롭고 불안한 것(보편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지나치게 완만한 과정의 일부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새로 도착한 사람이 겪는 성장 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알바로, 아나, 엘레나 같은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친 걸까? 그렇다면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그는 새롭고 완벽해진 인간이 될까? (p.84)<br>육식파이자 육체파(응?)인 시몬은 내내 갈망한다. ‘보편적인 것(호의, 선의)’보다 ‘개인적인 것(욕망, 사랑)’을…. 인간에게는 이것이 먼저라고. 앞서 말했듯이 노비야, 저 세계는 보편적인 것은 주어진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인간은 우정이나 보편적인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때로는 저 개인적인 갈망이 사람을 나락으로, 벼랑으로 몰아가가도 한다. 아니 그렇게 만드는 일이 더 잦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시몬의 저 드글드글한 욕망이 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좀 콩 반죽만으로는 안 되겠니? 심심하지만 평온하고 좋잖아 싶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년에 이른 시몬을 생각할 때 그러한 것이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다비드에게까지 스테이크의 세상은 잊어라, 콩 크래커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은 기만이리라.<br><br>환대 또한 그렇다. 환대하는 자들은 보편적인 것만을 제공하면서 제 임무를 다했노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래, 그 보편에도 미치지도 못하는 환대는 얼마나 많은가, 환대가 완전히 사라진 세계도 많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노비야에서 이뤄지는 환대는 환대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물론 그렇다고 육체를 제공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환대를 보여준 이는 시몬, 그 자신이다. 시몬은 부모를 잃은 다비드에게 조건 없이 대부가 되어주기를 약속하며 소년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쿳시의 펜끝에서 갑자기 마리아가 되어버린 이네스의 선택 또한 또 다른 의미에서의 다비드를 향한 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비드를 향한 이 두 사람 저마다의 환대 방식에는 또 나름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이렇게 끊임없이 낯선 자들을 향한 조건 없는 환대가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환대의 의미를 질문하게 한다. 성경에서는 환대에 관해 예수가 말하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5) 했다는데, 환대의 의미를 내내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 자체가 예수의 얼굴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6/28/cover150/k4821318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762861</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그와 그의 신, 그리고 나의 신</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15777</link><pubDate>Mon, 14 Sep 2026 14: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1577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609&TPaperId=175157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33/coveroff/8937461609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035&TPaperId=175157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12/9/coveroff/k45213803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409081&TPaperId=175157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66/62/coveroff/89594090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무언가를 열렬히 믿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을까. 때로는 그런 굳건한 믿음이 부럽기도 하다. 믿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흔들리더라도 믿는 것인가. 신이 존재하는가? 나는 답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그런 얼굴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서 말하는 신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종교를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질 생각도 없지만(그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나 스스로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그 어떤 종교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가질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럼에도 궁금하다.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을 믿는 것일까. 그들이 믿고 기대고 의지하는 신은 과연 어떤 신인가.<br><br>요즘 손석춘의 &lt;교양으로 읽는 기독교&gt;를 읽고 있다. ‘기독교를 바로 알기 위한 12개의 인문학적 통찰’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그 안에서 신과 예수의 참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저자는 기독교 목회자도 신학자도 아니다. 기자 시절 국내 성직자들과 로마를 비롯한 유럽, 미국, 러시아의 기독교인들을 취재하며 기사와 칼럼을 썼고, 대학으로 옮긴 후에는 ‘종교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책으로 펴내왔다. 이런 점들이 나 같은 독자, 즉 ‘교양’으로서 기독교를 공부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을 두 범주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썼노라고 밝힌다. 첫째는 “기독교를 ‘개독교’로 낮춰 보는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부르대는 사람이나 망언과 성 추문으로 종종 지탄받는 목사들을 보며 기독교란 으레 그런 종교로 치부하는 사람들” “개중에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적대적인 사람”- 이 첫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br><br>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 “더러는 모태 신앙, 더러는 기독교가 세운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교회를 나간 사람” “개중에는 방언을 하는 사람”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거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 이 두 범주 가운데 하나라면, 꼭 이 책을 정독하길 바란다고 저자는 당부한다. 전자라면 기독교를 더 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고, 후자라면 더 깊게 파고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이어 말한다. “자신이 주님의 뜻을 확신하는 ‘얕은 예단’은 기독교를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간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종교’라고 보는 ‘좁은 속단’ 못지않게 잘못되고 위험한 믿음”이라고. 이런 말만으로도 어쩐지 속이 시원해진다.<br><br>그러니까 나는 철저히 첫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좀처럼 좋아할 수 없는 편협한 인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신앙을 열렬히 간증하며 강요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울 것 같다. 연인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가치관이 맞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을 만난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결국 이런저런 모순, 서로 결코 화할 수 없는 지점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더라.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예수만 믿으면 이 현세에서 어떤 짓을 저질러도 천국에 갈 수 있노라 자만하는 자들이 싫다. 신을, 하나님을, 예수를 입에 담으면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또 때로는 성적으로 착취하는 신을 대리한다는 자들, 목사들, 그리고 그들의 종교가 싫다. 간음하지 말라 부르짖으면서 정작 자신의 일상에서는 부정부패를 일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자위하는 자들이 싫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을, 예수를 믿기에, 교회에 나가서 헌금을 하기에 천국에 간다고 자부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마주친 이 땅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그랬다. 당신 주변의 그들은 좀 나은가? 게다가 이제 그들은 정치 세력에 빌붙어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름만 대면 다들 알기 마련인 대형 교회들은 어떻게 저렇게 세를 불릴 수 있었을까. 일종의 종교 사업이다. 신을 믿고 예수를 믿노라 성경 구절을 설파하면서 그렇게 막대하게 쌓은 부를 세습하면서까지 내려놓지 못하는가? 그들이 그토록 맹신하는 성경에서 이르길 “부자가 천국에 들어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데도. 그들은 예수천국이라 천국행이 언제든 가능한 것인가? 쓴웃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다.&nbsp;&nbsp;<br>&nbsp;<br>그런 의미에서 아나키스트인 미하일 바쿠닌이 말하는 신은, 종교는 내가 미워하는 신, 내가 혐오하는 종교의 모습과 닮았다. 바쿠닌은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를 폐지해야 한다.” (미하일 바쿠닌, &lt;신과 국가&gt;, p,45) 단언한다. 그에게 신은, 종교는, 그리고 그런 신과 종교를 앞세우는 국가는 자유로운 인간을 억압하고 그렇게 길들여 착취하기 때문이다. 바쿠닌이 말하는 신의 모습은 야비하다. “그는 수십억에 이르는 가련한 인간들의 삶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그들을 영원한 지옥에 던져 넣은 다음에야 비로소 남은 자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이 신성하고 영원한 사랑을, 마찬가지로 신성하고 영원한 분노와 조화시키기 위해 다시 말해 늘 피와 희생을 갈망하는 자기 분노를 달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속죄의 제물로 보낸다.” 그리고 신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약속한 천국에는 오직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나머지, 즉 오늘날과 미래 세대의 압도적 다수는 영원한 지옥 불에 타게 될 것이다.” 바쿠닌은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들과 괴물 같은 교리들을 (그가 살았던) 19세기의 한복판에도 여전히 유럽 전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정부의 명령에 따라 공공연히 말해지고 가르쳐지고 있다”고 분노한다. 그가 보기에 이런 정부야말로 “조직적으로 인민 대중을 독살하고, 고의적으로 어리석게 만들며 자기 이익을 위해 그들을 우민화하는 주범들”(같은 책, p,30~31)이다.<br><br>바쿠닌이 보는 신과 종교의 폐단은 명확하다. “종교는 인간 해방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이성을 민중 안에서 말살하고 민중을 어리석음에 빠뜨림으로써 노예 상태의 필수 조건을 만들어낸다. 종교는 인간 노동의 존엄을 훼손하고 인간의 노동을 굴욕과 예속의 징표이자 근원으로 만든다. 종교는 인간 정의에 대한 개념과 감각을 파괴하며, 항상 그 저울추를 승리한 악당들 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그들은 신의 은총을 입은 특권적 존재로 간주된다. 종교는 인간의 자긍심과 존엄을 죽이고 오직 굽실거리는 자들과 비천한 자들만을 보호한다. 종교는 민중의 가슴속에서 인간적 형제애의 감정을 질식시키고, 그 자리를 잔혹함으로 채운다.”(같은 책, p.42)<br><br>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즉 불복종과 지식이라는 행위 다시 말해 반항과 사유를 통해 자신의 역사, 즉 인간 고유의 발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신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전혀 갖지 못하도록, 영원히 짐승처럼 무지한 존재로, 그리하여 자신이 인간의 창조주이자 주인이 되어 노예처럼 부려야 하기에 인간이 사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바쿠닌이 보기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당연히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최고 권위를 가진 주인일 것이고 그런 주인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영원히 노예이다. 인간이 노예라면, 정의도, 평등도, 형제애도, 번영도 불가능하다. 바쿠닌은 인간의 자유를 사랑하고 열망하며 인간의 그 자유가 인류 안에서 우리가 경배하고 존중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 조건이라 믿기에 마침내 이렇게 선언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노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책, p.41)<br><br>아나키스트이므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두 가지 권위로서 신과 국가를 고발하는 미하일 바쿠닌. 그에게 이 두 축은 인간 해방을 위해 반드시 부정되어야 할 권위이다. 초월자인 신, 그리고 종교는 쉽게 독단으로 타락할 수 있고, 국가는 쉽게 폭력으로 타락하며, 교육은 종종 교화로 변질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쿠닌이 말하는 신과 종교는 그것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도구화하면서 잘못 사용했기에 타락한 것은 아닌가? 손석춘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종교의 폐단을 언급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기독교는 ‘지배계급이 민중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기독교 성직자들은 대다수 민중에게 법과 질서를 잘 지키고 착하게 살면 죽은 뒤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교하는데, 그 법과 질서는 지배계급이 만든 것으로 그들의 재산과 이권을 수호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nbsp;<br><br>레닌-스탈린 체제 러시아에서는 기독교(정교회)가 위와 같은 관점에서 체제의 적이자, 억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체제 내 결속을 위해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 억압 속에서도 러시아인 대다수는 정교회를 버리지 못했는데,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는 질문에 한 러시아인은 이렇게 말한다.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힘을 주니까요.” 이 소박하한 대답에서 나는 인간이 신을 믿는, 종교에 의지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손석춘 또한 이 대답에서, 자신의 오랜 의문이 풀렸노라 밝힌다. 비단 러시아인들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인생에서 절망을 느끼거나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힘을 줄 수 있다고.<br><br>손석춘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인구가 급성장한 까닭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를 국시처럼 삼았으며 미군이 38선 남쪽에 진주했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미국 개신교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이 지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교회를 나가면, 작게는 초콜릿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크게는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렸다. 유학을 다녀온 뒤에 개신교의 ‘인맥’은 ‘입신양명’의 튼튼한 ‘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인구가 절반 아래로 줄었고(약 48%), 기독교인조차도 기독교인을 믿지 못한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다.&nbsp;<br><br>손석춘은 묻는다. “구성원들이 성경을 많이 사랑하는 사회가 도덕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빈곤을 사실상 퇴치한 사회가 도덕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많은 구성원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회가 윤리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린이와 노인, 고아의 복지를 위해 전문적인 보살핌을 제공해주는 사회가 윤리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br><br>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개신교인 루터교의 전통 속에서 오래 살아왔던 대다수 북유럽 사람들은 성경이 신의 말씀을 그대로 적은 책이라거나, 예수가 처녀에게 태어났고 죽은 뒤 부활했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더는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돌보고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일, 그것이 북유럽 사람들이 말하는 기독교의 고갱이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돌보고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일, 이것은 예수가 말한 마태의 기록에 정확히 언급되어 있다.”&nbsp;<br>“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마태복음 25:31~46)<br>내가 처음 신의 존재를, 예수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궁금해 하기 시작했던 것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인 때문도 아니고 같이 교회를 가자고, 성당을 가자고 권유 또는 강요했던 주변 인물 때문도 아니었다. 오래전 읽은 엔도 슈사쿠의 &lt;깊은 강&gt;에는 신을 양파라고 부르는 ‘오쓰’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말한다.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고”,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엔도 슈사쿠, &lt;깊은 강&gt;, p.177)이라고. 오쓰는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 거창하고 절대적인 신이 아닌, 껍질을 벗겨내도 끝내 눈물을 자아내는 양파야말로 예수의 참모습이라고 말한다. 양파 같은 신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인간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자기를 내어주는 존재이다. “신은 존재라기보다 손길입니다. 양파는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같은 책, p.94)<br><br>손석춘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예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자기 성숙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면서 성경에서 예수가 지상에서 가르친 고갱이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사랑”임을 거듭 강조한다. 오쓰의 양파 이론과 맞닿는 지점이다.<br>신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신 안에 살며 신도 그 사람 안에 살고 있다.(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요한1서 4:16)&nbsp; &nbsp;<br>바쿠닌은 “흔들리고 흐릿한 불빛은 아예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 빛은 뒤따르는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 마련이기 때문이다.”(&lt;신과 국가&gt;,p.99)라고 말했다. 지금 여기 이 땅의 신은, 기독교는 흔들리고 흐릿한 불빛은 아닐까. 나는 그 흔들리는 불빛만을 보고 신을 안다고 예수를 안다고 말했던 것은 아닌가......<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66/62/cover150/89594090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666284</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요즘 뭐 들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09730</link><pubDate>Fri, 11 Sep 2026 16: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0973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830608&TPaperId=175097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65/24/coveroff/k3528306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130302&TPaperId=175097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86/1/coveroff/k06213030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033464&TPaperId=175097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0/42/coveroff/k68203346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7607&TPaperId=175097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01/23/coveroff/k982137607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652736743&TPaperId=175097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17/57/coveroff/921757948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509730'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봄가을에는 주로 클래식을 듣기 때문에 9월 들어 다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는데(요즘처럼 찬란한 날씨, 바흐가 참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여름에는 아무래도 좀 가벼운 음악 위주로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올 여름 자주 들은 음악 중 추천하고 싶은 앨범 몇 개 끼적임. 그런데&nbsp; 나는 음악도 사대주의자라 국내 음악을 거의 듣지 않고 해외 음악에서도 R&amp;B나 힙합처럼 좀 느끼한 음악은 잘 듣지 않는 편이라 이런 장르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페이퍼에서 딱히 건질 게 없을 줄로 아뢰오...만 영미록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 요즘 앨범 이야기 좀 해봅시다.<br><br><br>그러니까 요즘 다시 바흐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br>이렇게 말한 까닭은 아니 요즘....! 왕들의(?? ㅋㅋㅋㅋ 옛날 왕들)의 귀환이야?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던 록 밴드들이 2026년 올해 대거 새 앨범으로 찾아오고 있는데..... 심지어 이전 몇 해 동안 내놓은 앨범마다 구리구리구리하더니 2026년에 무슨 일이야?! 다들 정신 차렸나? 들어보니 다들 썩 나쁘지 않아서....(심지어 오...?! 회춘?! 싶은 앨범도 종종 있다). 그런 앨범들을 소개해 본다.<br><br> <br>Weezer, "Weezer (Gold Album)"<br>내가 올해 정말 놀란 앨범. 아니 이 앨범 재킷 처음 보고 뭐니... 이 인간들 이젠 하다하다 골드 앨범이냐?! 했더니 정말 &lt;골드 앨범&gt;이라고 부르기로 했는가 보다. 이 앨범이 무려 이들의 통산 20번째 정규 앨범이다. 1992년에 결성해서 30년 가까이 스무 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은 것이라고 하면 과작은 아닌 편인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화이트 앨범부터라고 하자....)부터 너무 막 만들어서 내는 거 아닌가 싶어서 나조차도 더는 찾아듣지 않게 되었던 위저.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위저는 그동안 앨범 재킷을 한눈에 보기에도 컬러가 눈에 띄게 제작, 발표해서 주로 그 앨범 재킷 색깔로 명명하곤 했다. 예컨대 불후의 명반 1집은 블루(1994), 3집은 그린(2001), 6집은 레드(2008), 10집인가가 화이트(2016).&nbsp; 그러다가 이번에 20집! 드디어 골드(2026) 앨범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록밴드가 그러하듯이 위저 전설의 음반은 1집 &lt;블루&gt;와 2집 &lt;핑커톤&gt;(1996), 쉬운 리듬 때문에 대중적으로 성공한 3집 &lt;그린&gt; 앨범까지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에 나온 골드 앨범은 이 1집~3집을 내놓던 시절의 위저를 생각나게 한다. 믿기지 않는다고요? 정말이라니까요? 한번 들어보시라. 대부분의 해외 매체에서도 전성기 시절 생각나게 하는 앨범이라고 찬사 중.. 그러나 피치포크(Pitchfork)만 유일하게 무난하지만 일부 트랙에선 과거의 자가복제 맛이 난다고 평하고 있는데 피치포크 얘네들은 너무 짜! 늘 그러니까 무시하자...<br>아래가 바로 위저의 블루, 그린, 레드, 화이트 앨범되시겠다...<br>    <br><br><br><br><br><br><br><br>여기까지가 위저....<br>그리고 다음은 카시비안!&nbsp;<br><br><br>Kasabian, "Act III"<br>꺄~ 카사비안도 돌아왔어! 너무 좋아! 카사비안하면 1~3집의 그 사이키델릭 신나는 그루브가 강점이자 매력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새 앨범 "Act III"가 바로 그 시절 그때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그들이 젊었을 때의 1~3집에 비하면 폭발하는 사운드는 좀 부족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게 웬일... 카사비안은 그동안 보컬이었던 돼지 왕자 톰 메이건이 탈퇴하고 세르주가 메인 보컬을 맡게 되었는데 카사비안 색깔에는 세르주가 더 잘 어울리는 거 같긴 하다. 첫 곡부터 둠칫둠칫 몸을 들썩이게 하다가.... 6번째 곡 ‘Nothing Better Than This’에서는 폭발합니다. 달려! 카사비안 음악은 드라이브할 때(단 길 뻥 뚫려야 함 ㅋㅋㅋㅋ). 자전거 탈 때, 달릴 때, 산책할 때(경보로 ㅋㅋㅋㅋ), 수영할 때(엥? ㅋㅋㅋㅋㅋㅋㅋㅋ) 추천합니다. 일단 귀에 꽂고 달려보시오. 얘들 공연은 펜타포트 내한했을 때... 두 번은 본 거 같은데 9집 낸 기념으로 한 번 더 내한하지 않겠니? ㅋㅋㅋㅋㅋㅋ 노구를 이끌고 가서 보고 싶다. (1, 2집 내놓던 시절의 얘들도 늙었고 그 시절의 젊었던 팬들도 늙었고...)<br><br>드라이브하거나 자전거 타거나 달리거나 수영하거나 들어보숑...<br><br><br> <br>The Strokes, "Reality Awaits"<br>ㅋㅋㅋㅋㅋ 록 밴드 보컬 중 꽃미남의 대명사였던 줄리안 카사블랑카... 세월도 무심하지 신은 역시 공평하여 그에게도 살과 주름 기타 등등 세월의 흔적을 어김없이 뿌리셨으니..... 그러나 스트록스의 이 앨범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아직 죽지 않았어! 라고 평할 만하다.&nbsp;<br><br> <br>Muse, "The Wow! Signa"<br>이 앨범 듣고 집사2에게 말했다. “헐 뮤즈 정신 차렸나봐! 진짜 좋다니까! 뭐 물론 아직 우주로 나아가려고 난리인 부분은 있지만.....” 그렇다. 뮤즈 정신 차렸다. 이 앨범 전에 내놓은 9집... 솔직히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대. 실. 망. 그러나 1집 "Showbiz"(1999), 2집 "Origin of Symmetry"(2001), 3집 "Absolution"(2003), 4집 "Black Holes and Revelations"(2006)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 명작 아니겠습니까?! 특히 1, 2집은 젊은이 감수성 폭발시키는 그 흐느낌 절규 어쩔 것이여.....?! 그러나 어느 순간 너무 우주까지 집어삼킬 듯한 욕심을 내는 바람에(이런 비슷한 욕심을 내다 망한 밴드로 콜드플레이가 또 있다. 그만 해! 우주!) 점점 나와 멀어져 버린 뮤즈... 그러나 10집에서 드디어 정신 차렸어! 물론 이 앨범은&nbsp; 외계 무선 전파 신호인 ‘와우 시그널(Wow! signal)’에서 이름을 따왔고, 우주와 AI, 인간의 감정적 여정을 결합한 특유의 스페이스 오페라 사운드를 담고 있긴 하다만 전작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찬사 폭발 중.... 그 와중에 피치포크만 혼자 또 고고한 척 “너무 과하다” 비판했는데... 피치포크! 그만 해! 니들이 과해!&nbsp;<br><br> <br>Jack White, "Frozen Charlotte"<br>화이트스트라입스의 잭 화이트. 이 인간은 내놓는 앨범마다 수작이다. 솔로로 활동하면서 내놓은 앨범마다 수작... 이 앨범도 마찬가지. 블루스 록, 하드 록, 개러지 펑크…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깔 게 없다. 천재인가...?!<br><br><br> <br>Paul McCartney, "The Boys Of Dungeon Lane"<br>폴 매카트니 옹 올해 몇 살이시죠...? (84세) 그런데도 마르지 않는 창작력. 이 앨범도 좋은데... 아쉬운 것은 목소리가... 아무래도 늙었어요. ㅠㅠ 할배 목소리... 흑흑. 그러나 그의 나이에 어울리는 앨범이랄까. 리버풀 어린 시절, 존 레논/조지 해리슨과의 추억 등이 담긴 노스탤지아 물씬 나는 앨범....(아, 무려 링고 스타도 올해 새 앨 범 냈음! ㅋㅋㅋㅋㅋㅋㅋㅋ)<br><br> <br>Charli xcx, "Music, Fashion, Film"<br>찰리는 내가 크게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는 아닌데 듣다 보면 계속 듣게 된다. 창작력 폭발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잠자냥이 좋아하는 여성 음악가. 나는 사실 여성 보컬 음악을 잘 듣지 않는데(디바 창법 안 좋아함... 귀가 피곤해서 ㅋㅋㅋㅋㅋ), 거의 유일하게 듣는 해외 여성 뮤지션이 4명 있으니! 빌리(아일리시), 찰리(xcx), 카렌(Karen O,), 스네일(Snail Mail)- 이 네 사람 음악은 계속 찾아 듣게 된다. 새 앨범 나올 때마다 그리고 늘 좋아. 다들 천재인가요? 찰리의 이 앨범은 전작인 &lt;BRAT&gt;(2024)에 비하면 살짝 흥이 덜하지만 이 앨범도 역시 좋다.....<br><br> <br>Death Cab for Cutie, "I Built You A Tower"<br><br> <br>Broken Social Scene, "Remember The Humans"<br>이 두 앨범도 좋다..<br><br><br> <br>아참 그리고 새 앨범은 아닌데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nbsp;이 녀석들! ㅋㅋㅋㅋㅋㅋㅋㅋ 재결성하고 요즘 투어 다니느라 4집 앨범 리마스터링한 앨범이 애플뮤직에 올라와 있어서 신나게 듣는 중. 2008년에 내한하고 무려....... 잠깐만 몇 년 만이냐? 18년 만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내한하는데..... 사실 원래대로라면 이미 공연했어야 한다. 4월에 공연 예정이었는데 이 녀석들이 11월로 미뤘단 말이지...?! 11월에 야외 공연이라고.... 음..... 아무튼 기다리는 중인데 나원참 또 미루거나 취소하기만 해봐라.&nbsp;<br><br>2008년에는 혼자 공연 갔었는데(주번에 MCR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음), 이번엔 집사2하고 가기로 했다. 내가 MCR 노래 들려주니까 유일하게 좋아하게 된 사람. 근데 너무 재미있는 게 집사2의 학생 중 한 녀석이 MCR 너무 가고 싶은데 티켓팅 놓쳤다고(아니 요즘 10대에게도 어필하는 MCR? 하긴 MCR이 10대/중2병 나이에 어필하는 노래이긴 하지,... 아니 그런 난 뭐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동동 했다는데.... “선생님 거기 간다~” 했더니 너무 부러워했다나........ 응 그거 내가 끊었단다. 얘야,&nbsp;<br><br><br>특히 이 노래는 무한반복 송.....<br><br><br><br>11월 7일 토요일 저녁 8시....... 얼죽콘(얼어죽어도콘서트) .... 예정 -_-;;<br><br>주말엔 푸코야 무슨 음악 들을까?&nbsp;<br><br>싫은 표정. 도망갈 표정.&nbsp;&nbsp;브리티시록 좋아하지 않는 브리티시숏 ㅋㅋㅋㅋ&nbsp;<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8/96/cover150/c0029399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89614</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9월 산책(202609)</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504555</link><pubDate>Wed, 09 Sep 2026 1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50455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5067&TPaperId=175045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42/86/coveroff/k15213506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415&TPaperId=175045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37/77/coveroff/893204141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036471&TPaperId=175045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68/66/coveroff/k92203647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5019&TPaperId=175045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85/97/coveroff/893746501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667&TPaperId=175045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63/38/coveroff/8937464667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504555'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책 읽기 좋은 계절...은 아니고 놀러 다니기 좋은 계절. 그러나! 나는 방구석에서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므로 그래서 산 9월의 책들.<br><br> <br>김영준, &lt;편집자의 책읽기&gt;<br>여러 의미로 공감하면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구매. 미리보기로 좀 읽어보니까 글빨이 역시...!<br><br> &nbsp; &nbsp;&nbsp;<br>벤 웨어, &lt;멸종하는 인간&gt;<br>이 책의 부제, “애써도 소용없다는 느낌은 어디에서 올까?”에 깊이 공감해서 구매. ㅋㅋㅋㅋㅋㅋㅋ&nbsp; 멸종 종합선물세트인 듯?<br><br> <br>에릭 앵그너, &lt;어떻게 경제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gt;<br>그러게요, 제가 경제학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사람의 주의주장에 한번 설득당해보고 싶어서 구매. 목차와 미리보기를 보니 왠지 의외로 재밌을 듯. 경제학과 사랑에 빠질 각......<br> <br>수나우라 테일러, &lt;짐을 끄는 짐승들- 동물해방과 장애해방&gt;<br>보관함에 오래 담겼던 책. 최근 초록비 님 100자평 보고 그래 이제는 읽어야지! 싶어서 드디어 구매했는데.... 또로록.. 사고 나서 혹시 해서 검색해봤더니 밀리의서재에 올라와 있어서 너무 슬펐다....는 후문. ㅠㅠ 뭐 근데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훨씬 집중 잘 되기는 하니까.<br><br> <br>칼 쇼르스케, &lt;세기말 빈&gt;<br>이 또한 보관함에 오래 담겼던 책. 츠바이크의 &lt;어제의 세계&gt;가 최근 북펀딩으로 새로 나왔던데 그 책 새로 나온 소식을 보고 이 책이 읽고 싶어져서 구매....(엥? 이상한 의식의 흐름 ㅋㅋㅋㅋㅋ) 츠바이크 &lt;어제의 세계&gt;는 구판으로 갖고 있는데 그걸 먼저 읽지.<br><br> <br>고든 올포트, &lt;편견- 사회심리학으로 본 편견의 뿌리&gt;<br>내 안의 편견을 좀 깨뜨려보려고 샀습니다. (엥?) 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 <br>클리퍼드 기어츠, &lt;저자로서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에번스프리처드, 말리노프스키, 베네딕트&gt;<br>인류학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저자’에 방점을 둔! 글쓰기에 관한 책! 옮긴이의 말에 따르자면 “비평적 심리를 현대 인류학 거장들의 저술에 적용하여, 인류학 저술 작업 자체만이 아니라 저술 방식,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독해 방식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고.&nbsp; 1989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br><br> <br>강유원, &lt;고독서정-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gt;<br>국내 저자 중 드물게(?) 믿고 읽는 강유원- 이번에는 한시! 우리는 오래전 학창시절에 대부분의 한시는 입신양명 우국충정 독야청청 은둔고수(엥?ㅋㅋㅋㅋ)가 주제라고 배우면서 읽어왔다. 이 책은 그와 달리 고독한 서정, 그러니까 고립孤立(loneliness)과 독존獨存(solitude)에 방점을 두고 한시를 읽는다. 이 가을에 읽기 좋은 책-<br><br> &nbsp;<br>정희진, &lt;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gt;<br>국내 저자 중 드물게(?) 믿고 읽는 정희진- 이번에도 좋았지만 내가 그간 희진쌤 책하고 강연 팟캐스트 등 열심히 읽고 들었는지 (나에게)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새로운 독자 유입에는 큰 역할을 할 책이 아닐까 싶음, 아니 근데 그나저나 희진쌤 &lt;공부&gt; 매거진 요즘 너무.... 드라마 이야기, 그것도 내가 진짜 보지 않는 분야인 한국 드라마 이야기만 하셔서 좀... 그만 들어야겠다 싶어졌다. 그 뭐더라? &lt;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gt;? 또 뭐더라 &lt;참교육&gt;?&nbsp; 두 달 내내 연달아 이 드라마들을 소재로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둘 다 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둘 다 영원히 보지 않을 드라마라고 자신할 수 있어서 ㅋㅋㅋㅋ &lt;모자무싸&gt; 쓴 작가의 또 다른 작품 &lt;나의 아저씨&gt;도 보지 않은 나...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그만 들어야겠다 싶다. 휴... 그리고 쌤 모자무싸 주인공 남자 얼굴 조막만하다고 티모시 살라메하고 비교하셨는데 정말 반대입니다. 티모시는 예쁘게라도 생겼지... 모자무싸 주인공 남자 배우는... 너무.. 구.... 아 그래 이 남자 이름 구교환이지? 구질구질하게 못생겼습니다...(이렇게 생긴 얼굴 싫어함;;; 너무 비굴하게 생겼음). 티모시하고 비교하신 건 좀.. 너무했어요. &lt;참교육&gt;인가 뭔가는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을 거 같은데 이런 걸 왜 보는지..? -_- 아무튼 이 말이 하고 싶었다.<br>&nbsp;<br> <br>김찬호, &lt;무수면 사회&gt;<br>국내 저자 중 웬만하면 챙겨 읽으려고 하는 김찬호. 신간이 나왔다. ‘잠’으로 읽는 한국 사회, 불면의 사회학-<br><br> <br>세사르 아이라, &lt;유령들&gt;<br>&lt;바라모&gt; 두 번 읽은 사람.... 잠자냥. 이것도 한 번 더 읽어야 할까...?&nbsp;<br><br> <br>제럴드 머네인 &lt;소중한 저주&gt;<br>요즘 민음사빵이 그렇게 대란이라면서요?? 출판사에서 빵까지 팔 줄이야. 아무튼 그 빵은 본 적 없고, 그 빵을 살 생각도 없지만 그 빵을 사 먹으며 몸을 살찌우느니 책을 사서 머릿속을 살찌우노라 싶은 생각에 이번에 머네인 책 구매. 전에 읽은 &lt;평원&gt;은 딱히 좋은지 모르겠는데... 한 번 더 도전.&nbsp; &nbsp;&nbsp;<br><br> <br>아베 코보, &lt;밀회&gt;<br>일본 근현대 작가 중에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착가이긴 한데...(&lt;모래의 여자&gt; &lt;불타버린 지도&gt; &lt;타인의 얼굴&gt; 등 실종 3부작 모두 너무 좋았거든!!!) 근데 이건 좀 실망이었다. 혼자 마스터베이션 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남자가 발기는 그대로인 장면에서 세기의 발기력인가 싶어졌고 이때부터 나원참... ㅋㅋㅋㅋㅋ&nbsp; &nbsp; &nbsp;<br><br> &nbsp;<br>아베 코보, &lt;벽&gt;<br>이 책 작년인가 북펀딩으로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아베 코보 작품 중 이걸 읽었나 안 읽었나 가물가물해서 펀딩에는 굳이 참여하지 않았고 구매하지도 않았는데.... 안 읽은 거 같아서 일단 구매.&nbsp;<br><br> <br>응우옌후이티엡, &lt;왕은 없다&gt;<br>20세기 베트남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응우옌후이티엡의 소설집- 베트남 문학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제는 드디어 읽어보자 싶어서 구매. 믿고 보는 대산세계문학!<br><br><br><br>간만에(?) 높은 책탑. 한 번에 사버린 건 아니고.. 조금씩 ㅋㅋㅋㅋ<br><br>참 그리고 이것도 샀다.&nbsp;<br><br> <br>&lt;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gt; 이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시즌1 정주행 했는데 그 이후 새 시즌 나온다는 소식이 감감... (기다리고 있다고!!!) 아무튼 기다리다 지쳐 만화를 샀다. 여기 나오는 고양이 유키치는... 우리 둘째 고양이랑 매우 비슷하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집사들 돌보며(엥?!) 잔소리까지 하는 게 너무 비슷. 그래서 둘째 고양이 생각나게 하는 애니&amp;만화라 애니메이션 방영분 다시 보면 좀 울컥할 것 같긴...(울컥 정도가 아니라 또 징징 울라고! ㅋㅋㅋ)한데 아무튼 유키치도 보고 싶고 울 둘째도 보고 싶다. 둘째 고양이랑 유키치는 이름도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낼모레(9월 11일)면 벌써 둘째 1주기이다. 헐.... 낼모레에는 둘째 사진 앞에 생전에 좋아하던 와인 한 잔(엥?ㅋㅋㅋㅋ)하고 치즈 차려줘야지.&nbsp;<br><br><br><br>이 녀석은 이렇게 집사들이 와인 마시면 꼭 달려와서 병 입구나 와인 잔 핥기...가 취미였으니..... 손가락으로 좀 찍어주면 그렇게 좋아했었다...만 당연히 거의 주지 않았다. 낼모레는 마음껏 마셔! ㅎㅎㅎ<br><br><br>둘째 보고 싶다.....&nbsp;<br><br>아.... 슬프다. 슬프니까 다른 사진.. ㅠㅠ<br><br><br><br>보면 웃긴 애... ㅋㅋㅋㅋㅋㅋㅋ<br><br><br>얘는 누구일까요...? 3호 아님! 원조 막냉이 6호. 요즘 이 녀석 내 옆에서 이렇게 배벌렁하고 자서.. 너무 기쁘다. (나를 믿는다는 뜻 ㅋㅋ)<br><br>그렇지만 오빠를 더 믿는 거 같기도.... 음.. 오빠는 믿는 거 아냐! ㅋㅋㅋㅋㅋㅋ<br><br>어느 날 퇴근 후... 까꿍!<br><br>밥도 같이 먹는 푸코&amp; 한나.<br><br><br>ㅋㅋㅋㅋㅋㅋ 총으로 발사하면 날아가는 공 ㅋㅋㅋㅋ 울집은 저녁이면 공천지..<br><br>ㅋㅋㅋㅋ 이 녀석 공 받아치는 실력이 거의 페더러급입니다.&nbsp;<br><br>ㅋㅋㅋㅋㅋㅋㅋㅋ 푸더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한나 난입. ㅋㅋㅋㅋㅋㅋ 거실에 진짜 고양이 장난감 천지인데 얼마전 정수기 관리해주러 오신 분이 애기들 방 같다고 ㅋㅋㅋㅋㅋㅋ(이분은 n년째 울집 담당하고 계셔서 울집 고양이들 다 아신다)- 아무튼 나는 장난감 같은 거 널브러져 있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고양이 용품이라 그냥 다 괜찮아.... (집사2가 "너 정말 고양이 사랑하는구나. 이렇게 난장판인데도 가만히 있는 걸 보면"라고 했는데. 맞다. 고양이만 괜찮음).<br><br><br>ㅋㅋㅋ 이것도 지난 주말 궁디팡팡 캣페스타(고양이전문박람회) 갔다가 사 온 것인데... 원래는 캣타워 투명볼 안에 넣어주려고 했으나 바닥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거 같아서 그냥 뒀다... 난장판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좋아하니 됐다.<br><br><br>집사들 출근한 동안 집 청소 한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br>푸코는 팬케이크 굽고 있다는데..... 문제는........ 굽는 즉시 몽땅 자기 입으로 간답니다! ㅋㅋㅋㅋㅋㅋ<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5/72/cover150/k3721311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357200</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남부의 빛, 포크너의 빛</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470520</link><pubDate>Tue, 25 Aug 2026 11: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47052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831856&TPaperId=174705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89/97/coveroff/k97283185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6636&TPaperId=174705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6/1/coveroff/897275663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336&TPaperId=174705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79/coveroff/k17213833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4705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48X&TPaperId=174705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6/29/coveroff/893746148x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470520'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미국 남부 작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몇몇 있다. 마크 트웨인으로 시작해 윌리엄 포크너, 플래너리 오코너, 카슨 매컬러스, 유도라 웰티, 테네시 윌리엄스, 트루먼 카포티, 하퍼 리, 코맥 매카시…. 남부 문학을 남부 고딕 문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주로 정신적이나 신체적으로 문제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해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에서 폭력적이며 그로스테스크한 일들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인종차별이나 빈곤, 계급 문제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 폭로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남부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토니 모리슨의 문학도 이 계보를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nbsp;<br><br>사실 나는 이런 특징들-그러니까 흑백 인종차별, 초자연적이고(토니 모리슨의 마술적리얼리즘), 폭력적인 분위기 등의 이유 때문에 남부 고딕 문학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 중에도 카슨 매컬러스나 테네시 윌리엄스, 트루먼 카포티는 격하게 애정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바로 이들의 작품에는 여타 남부 작가들과는 좀 다른 ‘낭만’과 서정성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다들 극찬해마지 않는, ‘작가들의 작가’라 칭송받는 플래너리 오코너는 그 차가운 그로테스크함, 종교적 광기/광신자들을 모아놓은 분위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아지지는 않더라(&lt;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gt;, &lt;현대문학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gt;, &lt;현명한 피&gt; 등).<br><br>그러나 카슨 매컬러스를 보라(&lt;슬픈 카페의 노래&gt;, &lt;마음은 외로운 사냥꾼&gt; 등), 어딘가 온전치 못하고 병든 자들, 사회에서 이른바 비정상인들이라 여겨지는 인물들이 등장해 절절한 고독을 호소하다 서로 의지하면서 기어이 살아내는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면 산다는 것의 비장함, 숭고함 때문에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면서 마침내 묵직한 감동이 차오른다. 게다가 그 섬세한 문장이란! 카포티는 또 어떤가(&lt;차가운 벽&gt;, &lt;다른 목소리 다른 방&gt;, &lt;풀잎 하프&gt; 등) 동성애자나 몰락한 남부 귀족 등을 주요 인물로 내세워 펼쳐나가는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들 속에서 빛나는 서정성과 낭만, 연민과 따뜻함은 카포티를 따를 자가 없지 않을까. 테네시 윌리엄스 또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비극적인 서정미(특히&lt;유리 동물원&gt;!!!!!!!)가 절절하게 흐른다. 그러니까 나는 주로 미국 남부 작가들의 작품을 딱히 즐겨 읽지는 않으면서도 이 세 사람, 카슨 매컬러스, 트루먼 카포티, 테네시 윌리엄스는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 닥치는 대로 모조리 찾아 읽으면서 애정해마지 않는 작가로 꼽게 되었던 것이다......<br><br>그런데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윌리엄 포크너는 어디에 속했느냐 하면, 그런 것이다. 수능 준비를 하려면 국/영/수는 필수과목 아닌가. 그래서 꼭 공부해야만 하는데 어렵고 난해하고 재미까지 없어서 왠지 피하고만 싶었던 과목. 그러니까 내게 포크너는 수학 같은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수학처럼 포기는 하고 싶지 않은.... 왜냐하면 미국 문학에서 포크너를 제외하고 넘어가면 과연 미국 문학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마음이 늘 들기 때문이다.&nbsp;<br><br>내가 처음 읽은 포크너는 &lt;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gt;이다. 분량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아서 도전했던 것 같다. 나쁘지 않았다. 오호라, 시점을 이렇게 달리 쓸 수 있구나 신선했다. 그래서 또 도전했던 작품이 &lt;성역&gt;............ 아, 진짜 이거 읽고 나가 떨어져버렸다. 포크너 작품을 한동안 읽을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의 소개 문구를 보자. “미국 사디즘의 최고의 예” 이런 평을 받으며 충격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돌이켜보니 아마도 저 문구에 혹해서 읽었던 것 같다(소싯적에도 그래서 &lt;소돔 120일&gt; 읽었다가 나가 떨어졌었지... 그런데도 또 혹했구먼...). &lt;성역&gt;은 읽기 난해한 게 아니라 심적으로 힘들다. 이 작품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옥수수대로...강간하는 장면. -_-;;;; 그러니까 이 작품은 성불구자가 한 소녀를 강간하는데 그는 성불구자라 강냉이대로 강간하는 것이다. 이런 제기랄.... 인간의 비뚤어진 성적 욕망, 관음증, 강간 등 극단적인 폭력을 통해 그 시절 미국의 타락상을 폭로하는 &lt;성역&gt;(&lt;성욕&gt;아님)- 작품의 의의는 나름 있겠지만 저런 장면들이 너무 불쾌하고 충격적이어서 난 이 작가 더는 못 읽겠다 싶어서(그 시절 순진하고 꽃다웠던 30대 초반의 자냥 ㅋㅋㅋㅋ). 그 이후로 포크너는 좀 멀리 했었다. 그런데도 속 시원히 버리지는 못하고 그의 책이 출간되어 나오면 &lt;포크너 단편선&gt;(현대문학), &lt;소리와 분노&gt;. &lt;곰&gt;(문학동네) 등등 사두긴 했단 말이지..... 그렇지만 역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포크너여.<br><br><br>내가 갖고 있는 포크너.... &lt;성역&gt;은 읽고 팔아버린 모양...ㅋㅋㅋㅋㅋㅋ<br><br>그러다 내 이제 돌아와 다시 포크너 앞에 서게 되었으니.... 그것은 &lt;야생 종려나무&gt;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라?! 포크너도 서정적이네?! 아니 문장, 왜 이렇게 잘 써?!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포크너를 잘못 읽은 것인가, 아니면 그 사이에 내가 책 읽는 폭이 좀 더 깊고 넓어진 것인가(!ㅋㅋ) 포크너를 제대로, 이제야 드디어 마침내 제대로 다시 읽어야겠다 싶어졌다. &lt;야생 종려나무&gt; 이후 올해 두 번째로 집어든 포크너는 &lt;팔월의 빛&gt;- 이 책도 사둔 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면.... 그새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출판사도 역자도 똑같은 걸 보니 거의 표지만 바꾼 판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래서 그 옛날 사둔 구판으로 &lt;팔월의 빛&gt;을 읽다가 정말 속된 말로 뻑이 가버리고 말았다. 이제 나는 미국 남부 문학 좋아하는 작가 F4를 꼽아보라면 카슨 매컬러스, 카포티, 테네시 윌리엄스에 윌리엄 포크너를 넣겠다.......(어머나! 2카 2윌!! ㅋㅋㅋㅋㅋㅋㅋㅋㅋ)&nbsp;<br><br>그래서 오늘의 본론은(엥?! 이제야 본론?!) &lt;팔월의 빛&gt;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도 &lt;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gt;처럼 다중 시점이다. 화자가 여러 번 바뀌고 그에 따라 시점도 관점도 달라진다. 그래서 독자는 각 인물마다 그 내면의 고통을 깊게 헤아릴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자면 미혼모 ‘리나 그로브’, 자신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자기조차 헷갈리는 ‘조 크리스마스’, 오쟁이 진 목사 ‘하이타워’, 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에게 결국 반해버리는 바보 같은 남자 ‘바이런 번치’, 리나가 애 아범을 찾아 길 떠나게 만든 장본인 ‘루커스 버치(조 브라운)’ 등이다.<br><br>7월 중순의 뜨거운 태양 아래, 리나는 잔뜩 부푼 배를 안고 길을 떠난다. 앨라배마에서 미시시피주의 제퍼슨까지 그냥 무작정 걷는 것이다. 여자 혼자 길을 떠나도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데 이 여자는 심지어 만삭의 몸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우연이라도 마주치거나 보게 되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녀가 어디서부터 걸어오는 것이며, 왜 그런 몸으로 길을 떠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한다. 배 속의 아이 아버지가 일자리를 알아보고 집을 장만한 다음 자기에게 사람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노라고. 그러나 출산이 임박해도, 남자는 무엇을 하는지 소식이 감감. 그래서 여자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맨발로 길을 떠났노라 말한다. 이곳저곳에서 마치를 얻어 타고 만나는 사람마다 루커스 버치를 아느냐고 물어가면서 마침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가 루커스 버치라는 사람이 제퍼슨의 제재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br><br>그런데 과연 다행일까? 리나의 사연을 지켜보는 독자는 알고 있다. 루커스 버치라는 작자가 리나가 그렇게 믿을 만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남자였다면 임신한 여자를 두고 달아나듯 떠나버리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리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조차 남자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도망쳤구나, 감지한다. 심지어 ‘루커스 버치’라는 이름이 과연 진짜일까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왜 아니겠는가. 여자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반반하게 생긴 말만 번드르르한 한량 같은 놈인데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면서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면 달아나는 게 일상인 놈이 아닐까,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기에 이 여자, 리나가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도 리나는 묵묵히 걸어, 드디어 여기, 제퍼슨의 제재소에 도착한다.<br><br>“루커스 버치”라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제재소 안에서 나오는 한 남자. 그는 정말 리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집을 장만하고 당신을 부르겠노라 약속한 루커스 버치일까? 그런데 밖으로 나온 남자도, 리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제가 번치입니다만... 그렇다. 그의 이름은 ‘바이런 번치’- ‘버치’가 아니라 ‘번치’였다. 이름을 헷갈린 사람들이 버치가 그 번치려니 하고 이곳을 알려준 것이다. 리나는 루커스 버치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일하지 않느냐고, 혹은 제퍼슨에 다른 제재소가 또 있는 것은 아니냐며 묻는다. 그러나 번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적이다. 그런 사람은 없노라고, 게다가 제퍼슨에 제재소는 이곳 한 곳 뿐이라고. 리나는 절망해야 마땅한데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면 또 찾아봐야죠, 담담하기만 하다. 번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여자도 길을 떠나기 전에 이미 루커스 버치의 약속을 믿지 않은 건 아닐까.....? 이 묵묵하고 선량한 남자는 만삭의 여자를 외면할 수 없어서 그녀가 아이 아버지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 여자, 리나에게 반하고 만다. 이 두 사람은 어찌 될 것인가.<br><br>리나의 입으로 그려지는 ‘루커스 버치’의 모습을 듣다가 바이런은 어떤 인물을 떠올린다. ‘조 브라운’이라고 어느 날 이 제퍼슨에 나타난 젊은 남자. 가볍고 농담을 좋아하고 잘생겼지만 어딘가 한량 같은 놈팽이. 브라운은 마찬가지로 어느 날 이 마을에 나타난 남자 ‘조 크리스마스’와 함께 위스키를 남몰래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바이런은 직감적으로 이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리나의 연인임을 알아차린다. &lt;팔월의 빛&gt;은 이때부터 이 두 명의 ‘조’- ‘브라운’과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도 펼쳐지는데, 그중 특히 ‘조 크리스마스’의 살아온 생을 지켜보면서 독자는 리나와 함께 크리스마스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려니 짐작하게 된다.<br><br>‘조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얻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그는 갓난아기 시절 멤피스의 한 고아원 문 앞에 버려졌는데 그날이 마침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발견한 고아원 원장은 아~~무 생각 없이 ‘조 크리스마스’라 이름 붙여준 것이다. 고아원에 버려진 이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당연히 알지 못한 채 자라난다. 그런데 어느 날 고아원에서 보면 안 될 것을 보게 되면서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난다. 운이 좋아 백인 가정에 입양 가게 되지만 그게 과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지…. 조는 집안의 강압적인 환경 속에서 종교적/성적으로 억압받으며 자라나고(거의 학대 수준), 마침내 집을 탈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는 늘 자신이 백인의 피부를 지녔지만 흑인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망상일까 진실일까?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크리스마스는 급기야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되는데........<br><br>&lt;팔월의 빛&gt;은 리나, 조 크리스마스, 바이런 번치, 루카스 버치(조 브라운). 하이타워 목사 이 다섯 인물과 그들과 얽힌 여러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이 펼쳐지면서 남부 문학 특유의 문제들-흑백 인종 차별과 편견, 광기와도 가까운 종교, 왜곡된 성(性), 그리고 그 끝에 질문하는 인간의 존엄성 등을 정교하게 그려나간다.&nbsp;<br>“자넨 나에게 사랑을 막 배웠다고 말하고 싶을 거야. 하지만 난 자네가 희망을 막 배웠다고 말하고 싶군. 그래 그거야. 그것이 희망이야. 희망의 대상은 문제가 되지 않아. 희망 자체에게도, 자네 자신에게도 말이야....” (p.457)&nbsp;&nbsp;<br><br>‘사람이란 무슨 일이든 견딜 수 있는 것 같군. 하기야 사람은 전혀 해보지 않은 일조차 견딜 수 있지. 사람은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어. 소리 내어 엉엉 울 수도 있는 상황도 능히 참을 수 있지.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견딜 수 있어. 뒤를 돌아보든 아니든 상황이 나아질 게 없다는 것을 알 때는 특히 그렇지.’ (p.618)<br><br>리나는 조 브라운에게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조 크리스마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여러 차례 버림받는다. 게다가 그는 과연 흑인인가 백인인가? 겉모습은 누구나가 다 인정하듯이 백인 그 자체이다. 그런데 단 한 방울의 흑인 피만 섞여도 흑인으로 치부되던 그 시절 미국의 남부. 흑인들로부터는 백인 취급을, 백인으로부터는 검둥이 취급을 받는 조 크리스마스의 생은 만삭의 미혼모 리나의 삶과 마찬가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달파 보인다. 게다가, 목사답지 않은 행동 때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냉대 속에 버림받고도 제퍼슨을 떠나지 못하는 남자, 하이타워와 남의 아내나 마찬가지인 리나를, 하필이면 그 리나를 사랑하게 되는 바이런 번치. 이 남자들의 고통 또한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삶에도 과연 빛이 스며들까? 포크너는 그럴 수 있노라고 감히 말한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의 삶이 그래서 감동이라고 말한다.<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lt;팔월의 빛 Light in August, 1932&gt;은 &lt;소리와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1929), &lt;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As I Lay Dying, 1930&gt;, &lt;압살롬, 압살롬! Absalom, Absalom!, 1936&gt;과 함께 포크너의 4대 장편으로 꼽힌다. &lt;성역 Sanctuary, 1931&gt;은 그 외 문제작으로, &lt;야생 종려나무 The Wild Palms, 1939&gt;는 후기작이자 실험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그 밖에 주요 단편으로 &lt;에밀리를 위한 장미 A Rose for Emily, 1930&gt;와 &lt;헛간 타오르다 Barn Burning, 1939&gt;가 있으며 과거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lt;곰 The Bear, 1942&gt;은 올해 새로 나온 연작 소설집 &lt;내려가라, 모세여 Go Down, Moses, 1942&gt;의 핵심 중편으로 이 책에도 실려 있다. &lt;에밀리&gt;와 &lt;헛간 타오르다&gt;는 현대문학 단편선에서 읽었고.... &lt;소리와 분노&gt;, &lt;압살롬, 압살롬&gt; &lt;내려가라, 모세여&gt;까지는 꼭 읽어야겠다. &lt;성역&gt;도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으, 옥수수여....=_=<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Publicity photographs of Faulkner, summer 1924글 잘 쓰니까 잘생겨 보이기까지 함.... ㅋ]]></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22/22/cover150/k7329335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8222282</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놀이기록</category><title>동숲 또는 게임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463876</link><pubDate>Fri, 21 Aug 2026 15: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46387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0334&TPaperId=174638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2/90/coveroff/k59213033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다락방이 최근에 읽은 마스다 미리, &lt;사토 씨의 친구&gt; 100자평에서 “흐음.. 나도 동물의 숲.. 한 번 해볼까?”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두 눈이 동공지진. 동숲?!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동숲이냐! 정말 반가웠다. 다락방이 동숲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도 놀랍지만 마스다 미리 만화에서 동숲이 나오다니....(아 이건 이해된다).<br><br>그리하여 나는 평소 크게 관심이 없던 마스다 미리의 이 책을 클릭해서 미리보기 등으로 훑어봤다. 모동숲, 정확히는 &lt;모여봐요 동물의 숲&gt;으로 중년의 두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내용인 것 같다. 이해된다. 동숲은... 그러니까 놀동숲, &lt;놀러와요 동물의 숲&gt;은 한때 내 영혼(?)을 지배했던? ㅋㅋㅋㅋㅋ 아니 내 생활을 지배했던 게임이다. 한때는 아니고 30대 내내 이 게임을 했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여행을 가도 닌텐도 기기와 동숲 칩을 챙겨 가서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에 등장하는 모동숲은 닌텐도 스위치를 기반으로 해서 하는 게임인데 나는 닌텐도DS 시절 이 &lt;놀러와요 동물의 숲&gt;에 푹.... 완전 푹.... 빠졌던 것이다.&nbsp;<br><br>이게 얼마나 오래된 게임이냐면, 그 시절은 아직 내가 독립하기 전! 동생들하고 엄마랑 함께 살던 시절인데, 어느 날 막냇동생이 생일선물이라며 닌텐도DS를 선물해준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아무리 어려 보여도 그때 20대 후반이었는데 닌텐도 사주기 있긔 없긔? ㅋㅋㅋㅋㅋㅋㅋㅋ (막내는 나보다 일곱 살 어린데 내가 자기 동생 같다고 엥....? 아직도 나를 ‘너’라고 부른....다). 그렇게 닌텐도를 갖게 된 나는 그날부터 동숲 삼매경. 그때는 조카들이 꽤 어릴 때였는데 울 집에만 오면 이모 나도 한 번만 한 번만! 발동동 하는데 ㅋㅋㅋㅋㅋ 절대 안 빼앗겨! 닌텐도 지켜!&nbsp; ㅋㅋㅋㅋㅋ&nbsp;<br><br>&nbsp;내 닌텐도랑 동숲. ㅋㅋㅋ오래전 찍은 사진이라 크기가&nbsp; 매우 작다... ㅋㅋㅋㅋ<br><br>서른에 집 나올 때도 닌텐도는 꼭 챙겼다. ㅋ 독립 후 엄마 집에 갈 때도 늘 닌텐도를 챙겨갔는데 엄마 집에 가서도 닌텐도를 (그 이후로도 주야장천...) 하고 있으려니 어느 날은 엄마가 “너 아직도 그거 하니..?” 하면서 기막혀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막냇동생이 나한테 닌텐도를 사주게 된 계기는 자기가 하도 심심해서 닌텐도를 사서 동숲인가 해보니까 너무 재밌다나 그래서 자기랑 같이 하자고 하나를 덜컥 더 사줬던 것이다. 근데 끈기라고는 없는 막냇동생은 한 3-4년 하더니(내 동생의 끈기에 이것도 대단) 더는 하지 않더라.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이걸 하고 있으니 엄마가 보기에 놀라고도 남았을 것이다.....<br><br>아닌가? 놀랄 일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해서 엄마가 딱히 놀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동생 잘 보고 있으라고 했더니 오락실에 동생 끌고 가서 손가락에 불이 나게 오락하다가 엄마한테 걸려서 끌려온 적도 있고(등짝 스매시... 그때 하던 게임은 갤러그Galaga. 나 이거 끝까지 가는 사람이다. 음하하하하..........자랑이다). 중학생 때는 엄마가 놀지 말라고 한 친구랑(엄마가 보기에 매우 불량해 보였음. 근데 이 친구가 나를 많이 좋아해서 울 집에 자주 놀러왔다) 오락실에 가서 놀다가 또 엄마한테 끌려간 적도 있고(그때도 등짝 스매시) 아무튼 오락실 죽순이였다.&nbsp;<br><br>유딩, 초딩 때는 남자애들하고 주로 놀았는데(남자애들을 좋아한 게 아니라 남자애들의 놀이를 좋아해서), 오락실도 그래서 얘네들하고 잘 다녔다. 이 녀석들이 ㅋㅋㅋㅋㅋㅋ 없는 돈에 오락을 오래~ 하려고 머리를 굴려서 짜낸 묘안(?)이 뭐냐면, 이렇게 해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10원짜리 동전에 테이프(스카치테이프)를 몇 겹 돌려서 만다. 100원짜리 크기 모양으로. 그러고 나서 그 동전을 오락기에 넣으면! 짜잔!!!!!!!!! 놀라지 마시라! ㅋㅋㅋㅋㅋ 기계가 작동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짓거리를 중1때까지 했다는 거 아닙니까. 아놔.... 근데 오락실 주인들이 이 수법을 알아서 기계가 바뀐 건지 아니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다가 수상한 애 발견하면 귀 짝 붙들고 흔들어대서 그런지 ㅋㅋㅋㅋ 어느 날부터인가 이걸 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나는 갤러그나 보글보글은 끝판까지 가기 때문에 굳이...... 10원을 100원으로 만들 필요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주로 그렇게 오락실용 게임을 하다가 PC게임으로 갈아탄 게 2000년대 초반. 다들 그렇게 좋아하던 스타크래프트는 별 재미를 모르겠고 내가 빠졌던 게임은 전술 FPS 게임인 레인보우 식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추억 돋네 ㅋㅋㅋㅋㅋㅋ) 이거에 빠져가지고 회사에서 ㅋㅋㅋㅋ 점심때 이걸 하고 있었단 말이죠? 그 시절 신입 사원에 팀 막내였던 주제에 나원참 ㅋㅋㅋㅋ 근데 내가 이 게임하는 걸 보고 그때 그 사람(이땐 사귀기 전...‘과메기’)이 이 게임에 빠져서는.... 아니 어느 날 이 인간이 레인보우 식스 전략&amp;공략 뭐 이런 책까지 사서 보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때 약간 이 인간이 좀 달라보였다 한다. “이걸 책까지 사서 보고 있어요???” 뭐 그랬던 기억(뭔가에 빠져서 진심으로 하는 사람 좋아 보임).<br><br>&lt;놀동숲&gt;은 독립해서 X하고 살던 시절에도 계속 하던 게임이라 X도 이 게임에 빠져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슬프게도 동숲을 서서히 하지 않게 된 때가 지금의 집사2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양다리에 환승으로..... 머릿속 정신이 홀랑 나가서ㅋㅋㅋㅋㅋㅋ 게임할 정신이 없........ 그 무렵 닌텐도도 내팽개치고 마을에 물도 안 줘서-동숲은 자기 마을 가꾸기를 해야 해서 매일 꽃에 물주고 잔디 뽑고 해야 한다- 꽃이 시들어 버리고 좋아하고 아끼던 이웃 동물도 홀라당 이사 가 버리고 동숲 마을도 난리가 났었다(이웃주민인 동물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좋아하는 친구가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내 사랑 링링이 떠난 기억. 헤어지는 막판에 X가 동숲 마을도 다 시들어버렸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nbsp;<br><br>그때 이후로 닌텐도는 다시 열지 않았던 것 같다. 모바일로 매일 같이 하던 캔디크러시 게임이 있는데 이건 집사2 만나고도 거의 매일 하다가.... 지금 쓰는 아이폰으로 바꾸면서 앱 삭제해 버렸다. 어느 날 집사2가 헐...! 너 드디어! 캔디크러시 안 하는 거?! 했던 기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캔디크러시 이 게임 멍 때리면서 하기 좋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끝난 게임의 역사. 닌텐도DS 기기와 여러 가지 게임칩들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무렵, 당근에서 닌텐도DS와 내가 갖고 있던 칩들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거 보고 한 번에 알괄 정리했다..... 동숲은 남길 걸 그랬나..? =_=<br><br>동숲은 마스다 미리의 만화 속 인물들처럼 현실 인간관계에서 쉽게 피곤해하고 인간관계에 그다지 만족을 못 느끼는 I형 인물들이 빠져들기 좋은 게임 같다. 그래서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나가 놀기 바쁜 다락방 같은 E형 인물들에겐 크게 매력 있는 게임은 아닐 것 같은데....<br><br><br>놀동숲 할머니 될 때까지 해서 기네스북 등재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건 실패했따.........<br><br>아무튼 오랜만에 내 블로그에서 동숲 관련 옛날 글 찾다가 발견.... 너무 웃겨가지고 여기에도 옮겨 본다.<br><br><br>강아지와 동숲<br>2008/08/03 21:42&nbsp;<br>오늘 동물의 숲을 하다가 발견한 사실. 내가 동물의 숲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강아지가 다가와서 동물의 숲이 나오는 창을 계속 바라본다. 강아지 표정은 진짜 동물이 여기 있는데, 왜 그 속의 동물들하고만 놀아주느냐는 듯 투정이다. 그러다 동물들이 삐리리리리~ 말을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코를 박고 한참 갸우뚱갸우뚱 거린다.<br><br>동물어를 알아듣는 것일까?<br><br>동생은 방이 벌써 다섯 개나 생겼다. 분발해야지;<br>(이런 마음에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집을 계속 넓히려는 것일까?;)<br><br><br>이상한 일<br>2010/04/21 14:26&nbsp;<br>이상한 일이다. 자전거를 타면 사람들에게 유해진다. 심지어 회사 사람들에게도 유해진다. 회사에서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 몇 마디쯤은 하게 되고 그 몇 마디에 농담을 섞는 정도까지 된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몸을 움직이게 되면 사람의 정신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하는 듯하다. 아주, 조금.<br><br>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참 악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별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에 기를 쓰고 악플을 단다. 까칠한 내가 보기에도 까칠하기가 그지없다. 마음에 안 드는 글이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꼭 칼날을 세우고 글 쓴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라도 되는 듯 달려든다. '나 심심하던 차에 오호라, 너 잘 만났다' 이런 태도랄까. 까칠할지언정 못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br><br>아침에 일어나면 동숲을 켜고 그냥 음악만 듣고 있다. 가끔 밤에 잠자기 전에도 그런다. 난 그 음악이 무척 평온하다. 심신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특히 음악이 끝나고 나면 혼자 산책을 하고 있던 동물들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나는데, 그때 그 발걸음 소리가 참 듣기 좋다. 난 몰래 훔쳐보듯 그 동물이 뭘 하는지 지켜본다. 오늘 아침엔 링링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귀여워. 그 몸짓, 걸음걸이. 숲속의 산책 소리- 참 평화롭다.<br><br>계속 이러지 않을까. 어쩌면 정말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몰라. '30년이 넘게 동숲을 해온 할머니가 있어 화제입니다.' 뭐 이런 헤드라인으로. 내가 그냥 닫아버리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데, 그 '닫아버림'을 못하겠다. 저벅저벅 혼자 산책하고 있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고. 마을에 꽁꽁 묶어둔 동물들을 보자면 그런 생각도 든다. '난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지는 못하지만 한번 좋아하고 나면 참 오래도 붙들고 있는구나.' 하는 생각.<br><br>본다 본다 하면서 계속 못 보던 예전 회사 후배가 먼저 또 연락이 왔다. 다음주에 꼭 보자며 날짜를 잡는 걸 보니 문득 '혹시 얘 결혼하나?' 싶어졌다. 그런데 설사 그렇더라도 불쾌하지 않았다. 만났을 때 '저 결혼해요'라고 말하더래도 '와- 축하해'라며 정말로 축하해주고, 결혼식도 갈 거 같은 기분이다(물론 지금으로선;). 이 아이가 그렇게 오래 나에게 계속 연락을 해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이 아이, 나도 모르는 사이, 동숲에서 묶어 둔 동물들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br><br>이상한 일이다. 내가 좀 유해진 거 같다;<br><br><br>무주식 대박났을 때 사진이다. 방에 가득 돈을 쏟아놨는데 너무 흐뭇해서 찍었다. 저게 정말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ㅋㅋㅋㅋ 그럼 내가 한 덩이씩 당신들 주겠소.<br><br>참 동숲 파란 장미가 한 송이 더 피었다. 이로써 우리 마을 파란 장미는 4송이<br><br>....라고 썼더라....... 마을 잘 가꾸면 파란 장미가 피어난다.<br><br><br><br>아니 이건 동숲 관련은 아닌데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ㅋㅋ<br><br><br>양말<br>2006/02/17 13:30&nbsp;<br><br><br><br>제 양말입니다. 어느 날 아침 이거 신다가.<br>아침부터 미친 듯이 웃었습니다. =_=;<br>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br><br>참고로 제가 사지 않았습니다.... =_=&nbsp;<br><br>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2/90/cover150/k5921303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229048</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특권이 사라진 후의 세계 - [라스트 화이트맨]</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459479</link><pubDate>Wed, 19 Aug 2026 12: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4594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322&TPaperId=174594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73/coveroff/k1421303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322&TPaperId=174594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라스트 화이트맨</a><br/>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08월<br/></td></tr></table><br/>

이따금 집사2와 “다시 태어난다면?” 놀이를 할 때가 있다. 놀이라고 하니 뭐 자주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주로 일방적으로 집사2가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시 태어난다면 뭐 전공하고 싶어?” “다시 태어나도 나 만날 거야?/나랑 살 거야?” “다시 태어나면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어?”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일하고 싶어?” 이런 질문들이다. 일방적이라는 까닭은 나는 현생도 너무나 피곤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가정 자체를 하(고싶)지 않기 때문에 집사2에게 저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집사2가 저런 질문을 하면 “다시 안 태어난다니까!” 버럭하기 일쑤이다. 그러면 집사2는 시무룩해져서 “그냥 상상이라도 해보라니까.....”<br><br>“페더러로 다시 태어난다면 생각해볼게.” “서유럽이나 북유럽 백인 남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한번 다시 살아볼게.” 이 정도가 내 대답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피곤한 지구에서 굳이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면, 그리고 그걸 선택할 수 있다면 페더러급 백인 남자가 아닌 이상은 다 거절할 것 같다. 페더러는 백인 남자인 데다가 스위스 태생이고, 신체조건은 물론이요 머리도 좋아(모국어인 스위스 독일어를 포함해 독일어/영어/프랑스어 등 4개 국어를 그야말로 유창하게 하고 이탈리아어와 스웨덴어도 할 줄 안다. 헐...), 아무튼 재능&amp;지능&amp;신체조건&amp;성실성 다 갖춰서 테니스에서는 전설적인 선수가 되었다. 부와 명성이 따라온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물론 그에게도 고통이 왜 없었으랴(신은 그에게 나달이라는 천적을 주어서 번번이 이 남부러울 것 없는 테니스 천재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셨으니). 그럼에도 페더러라면 다시 태어나도 그 자신으로 태어나겠느냐는 질문에는 “Of course!”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페더러에게 부룬디나 수단의 흑인으로 태어나야만 한다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답할까? 일단 이런 나라에서 흑인으로 태어난다면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테니스 자체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우리라.<br><br>나 자신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페더러가 아니라 서유럽/북유럽의 백인 남자로 태어난다면 그래도 좀 삶이 쉽지 않을까 싶다. 그때도 테니스를 칠 것 같고 그때도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닐 것 같은데 백남으로 태어난다면 혼자 자전거로 세계일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웬만한 나라에서는 길에서 자도 될 거 같음). 아무튼 이 지구에서 부유한 국가 출신의 백인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특권 중의 특권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대부분의 백인 남자-백인 여성까지 포함하자-는 그들의 태생 자체가, 인종 자체가 특권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것 같다. 하긴 뭐 그들에겐 공기 같은 것이겠지..... 그런데 이 특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소멸된다면? 그러고도 살아가라고, 살아가야 한다면 이 백남/백녀들은 어떻게 될까?&nbsp;<br><br>모신 하미드의 &lt;라스트 화이트맨 The Last White Man&gt;은 바로 이 백인 남성 ‘앤더스’의 특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아침, 백인 남자 앤더스는 제 피부가 누가 봐도 짙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 보자, 어라?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카프카의 &lt;변신&gt;을 읽은 이들이라면 이 문장에서 당장 그토록 유명한 첫 문장을 떠올릴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카프카, &lt;변신&gt;, 열린책들).&nbsp;<br><br>문득 궁금해서 원문도 찾아보았다. “One morning Anders, a white man, woke up to find he had turned a deep and undeniable brown.”/ “As Gregor Samsa awoke one morning from uneasy dreams he found himself transformed in his bed into a gigantic insect.”(“Als Gregor Samsa eines Morgens aus unruhigen Träumen erwachte, fand er sich in seinem Bett zu einem ungeheuren Ungeziefer verwandelt.”) 독일어 원문에서 영어로 번역한 카프카의 &lt;변신&gt;과 &lt;라스트 화이트맨&gt;의 첫 문장도 거의 흡사하다. 단지 독일어 “Ungeziefer”의 해석을 영어는 물론 우리나라 번역본에서도 “끔찍한 벌레”에서부터 “괴물 같은 벌레” 또는 “거대한 곤충” “갑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가 읽은 번역본인 열린책들 판에서는 ‘갑충’으로 옮기고 있다.&nbsp; 모신 하미드는 카프카의 이 “벌레(ungeheuren Ungeziefer)”를 “deep and undeniable brown”이라고 바꾸었다.&nbsp;<br><br>백인 남자였던 앤더스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벌레도 아닌 유색인이 되어 있다니! 이 무슨 일인가! 거대한 해충으로 변한 것도 끔찍하겠지만 유색인, 흑인으로 변했다니 이 또한 난리 또 난리 아닐까? 그에게는 공포가 엄습한다. ‘그레고르 잠자’가 그랬듯이. 그는 또 분노한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꿈이 아닐까? 그러나 꿈은 아니다 그는 거울을 깨부수고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잠자’와 달리 출근하라고 방문을 두드리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없다. 그는 혼자 살고 있기에. 그러나 그 또한 잠자처럼 직장은 가야 한다. 헌데 이런 피부로? 직장에서 사람들이 과연 알아볼까? 에라 모르겠다. 일단 그는 직장에 전화를 걸어 몸이 아파 출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동안은 그럴 것 같다고 말한다. 한동안...... 정말 한동안일까?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br><br>인간에서 벌레로 종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 또 다른 인간으로 단시 피부색이 변했을 뿐인데 무어 그리 걱정이냐고, 앓는 소리냐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은 앤더스조차도, 유색인이 아닌 백인이었던 앤더스 그 자신조차도 알고 있다. 외출을 꺼리던 그는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거리로 나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위축되는 이 느낌은. 백인 남성이었을 당시의 그는 위축된다는 느낌 자체를 가진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알기는 알았을까? 그런데 단지 피부색이 짙어졌을 뿐인데 그는 거리로 나가는 게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신한 모습을 감추려고 후드티를 뒤집어 쓸까하다가 누군가에게 위협적인 인물로, 불량하게 보일까 봐 주춤한다. 도로에서는 운전 시비로 백인 여성이 차량 문을 내리고 욕설을 퍼붓는다. 앤더스는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뭐라 항변하지도 못하고 묵묵히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눈도 내리깐다.... 꽤 예쁜 여자라 앤더스는 왠지 억울하다. 집에 돌아온 뒤, 그는 반추한다. 만약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여자가 알 수 있었다면, 그때의 자신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 또 취할 수 있었을지” 생각에 잠긴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이 백인이라는 걸 스스로 알 수만 있었다면. 하지만 정작 자신조차 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그를” 짓누른다.(p.15)<br><br>문제는 또 있다. 여자 친구인 ‘우나’가 찾아온다. 우나 또한 백인 여성이다. 앤더스는 이 사실을 숨길 수가 없어 우나를 맞아들이면서 자고 일어나 보니 피부색이 이렇게 변했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나는 경악할 수밖에......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참 재미있게도 이 와중에도.....(아닌가? 새삼 놀라운 기회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은 섹스를 하는데 이 장면이 인상 깊다. 분명 오래도록 사귀어온 연인 사이인데 뭐지? 이 낯선 기분은? 당신은 누구? 나는 어디? 뭐랄까 이런 기분에 두 사람의 변신 이후 첫 섹스는 색다르기 짝이 없다(우나야, 낯선 사람하고 한 거 같아서 좋았던 거 아니니? 그만 하자 이런 이야긴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사람은 나중에 우나의 집에서도 섹스를 하게 되는데 우나는 엄마와 같이 사는 중... 근데 아뿔싸 엄마가(백인) 이 장면을 보고(아니 이눔들아! 방문을 왜 안 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악. 헐....... 두 사람 앞에서 구토를 한판 거하게 하신다. 아니, 어머님, 토하기까지야....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하는 섹스가 좀 그렇긴 하다고 해도.... 21세기에 구토까지 할 일인가요. 아무튼 흑인 앤더스와 백인 우나의 묘한(?) 연인 관계는 계속 이어지기는 한다.<br><br>앤더스는 이제 어떡할까? 혼자 사는 아버지를 찾아가니 아버지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 아니 아들이 흑인으로 변했으니 입틀막... 이걸 어째. 어쨌든 일상을 살아가야 하므로 그는 살아간다. 직장에도 출근하기 시작한다. 앤더스는 헬스클럽의 트레이너이다. 백인 전용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라 흑인 트레이너 앤더스의 존재는 껄끄럽기만 하나. 헬스클럽에는 유일하게 유색인이&nbsp; 사람이 있다. “피부가 어두운 야간 청소부”- 앤더스는 늘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자신이 변한 뒤 그 남자가 보내는 새로운 시선은 왠지 달갑지 않다.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마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시선”(p.57)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이 불편함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앤더스는 문득 자신이 그동안 그를 친절하게 대했던 것이 진심 어린 호의가 아니었음 깨닫는다. 단지 상대를 “강아지처럼 대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는 것을 드! 디! 어! 깨달은 것이다. “몇 번 쓰다듬으며 ‘잘했다’ 칭찬하는 식의 가식”이라고. 이런 깨달음은 앤더스가 “예전보다 선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p.58)<br><br>어느 아침 흑인이 되어버린 남자, 앤더스. 그는 이대로 이렇게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어 현자가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우나에게 털어놓은 것처럼 자신이 전과 같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 상태, 혼돈 그 자체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가 우나에게 말했듯이 한 개인의 정체성이란 내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p.56)한 앤더스. 그의 생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여 책장을 넘기는데 어라라라...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앤더스, 이 남자 한 사람만 백인에서 흑인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백인이 흑인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질병처럼, 유행병처럼 피부색이 짙은 갈색으로 하루아침에 변한 사람들이 속속 등장한다. 도시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때부터는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lt;눈먼 자들의 도시&gt;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lt;눈먼 자들의 도시&gt;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일들이 앤더스가 사는 이 도시에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디스토피아..... 모두가 백인에서 흑인으로 변한다면 그래서 모두가 다 흑인이라면 문제도 소요도 갈등도 차별도 없을 것만 같은데 인간이 사는 세계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흑인으로 변해가는 이 도시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그리고 최후의 백인, “The Last White Man”은 과연 누구일까? 안 알려줌....... 페더러는 아님.<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73/cover150/k1421303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457342</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8월 산책(202608)</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436966</link><pubDate>Fri, 07 Aug 2026 09: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4369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039429&TPaperId=174369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06/50/coveroff/k09203942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635959&TPaperId=174369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267/96/coveroff/k07263595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1530&TPaperId=174369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32/coveroff/895733153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1548&TPaperId=174369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7/47/coveroff/89768215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6655&TPaperId=174369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58/70/coveroff/8976826655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socker/17436966'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요즘 출근 전 최대 고민은 창문을 열까 말까. 밤새 에어컨을 켠다. 새벽 다섯 시쯤 3호가 일어나서 울고 다니기 시작하면 그때 끄는데, 출근 전까지는 냉기가 나름 보존된다. 그런데 이제 집사들이 출근하면 애들은...? 창문을 열고 갈까 말까. 열면 바로 뜨거운 공기가 와락 유입된다. 차라리 안 여는 게 나은 거 아냐? 아냐 그러다 애들 다 녹아.... 에어컨을 켜놓고 가? 그건 너무 위험해! 인간이 없을 때 계속 돌아가다가 과열이라도 되면? 그게 더 무섭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헐....... 실내 온도 34도. 애들은 침대 밑/소파 밑 나름 시원한 곳 찾아서 늘어져 있다. 그 와중에도 3호랑 원조 막냉이 6호 망또냥이들은 더위에 강한 건지 3호는 이불속에 6호는 베란다에서 태닝 중이다....? ㅋㅋㅋㅋ 태닝이 아니라 베란다의 돌바닥이 차가워서 좋은 거겠지. 아무튼 이 폭염 속에 고양이들이 더위 먹을까봐 매일 걱정이다. 특히 울 집 유일한 장모 고양이 한나............ 집에서 털 밀어주려고 바리캉까지 샀는데 ㅋㅋㅋㅋ 바리캉만 들면 후다닥 사라짐. 예들아 좀만 참아! 이제 집사들 휴가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nbsp;<br>책을 샀다. 휴가 때 읽어야지.....<br> <br>김내성, &lt;타원형의 거울&gt;<br>휴가니까 일단 좀 재미난 걸 읽어야지! 하고 고른 것은 김내성. 김내성은 우리나라 추리문학의 선구자. &lt;타원형의 거울&gt;은 그의 데뷔작이자 한국 추리소설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내성은 &lt;쾌컬 조로 The Mark of Zorro&gt;로 유명한 존스턴 매컬리(Johnston McCulley)의 &lt;검은별 The Black Star&gt;을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검은별 알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nbsp;<br>안개 속의 바람인가 검은별 (검은별) 검은별 (검은별)<br>나타났다 잡히고 잡혔다가 사라지네<br>뒤를 쫓는 그림자는 명탐정 (명탐정) 바베크 (바베크)<br>정의는 이기지요 힘을 내요 바베크<br>세상을 조롱하는 검은별이라 해도&nbsp;<br>언젠가는 잡히고야 말거야 (말거야!)&nbsp;<br>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노래 동생들하고 신나게 불렀는데ㅋㅋㅋㅋㅋㅋ &lt;모여라 꿈동산&gt; 보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br> <br>오에 겐자부로, &lt;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gt;<br>믿고 읽는 오에 겐자부로. 보관함에 오래 있던 오에 겐자부로의 책 이번에 구매.&nbsp;<br><br> <br>T. S. 엘리엇, &lt;사중주 네 편- T. S. 엘리엇의 장시와 한 편의 희곡&gt;<br>한 편의 저 희곡이 궁금해서 샀다.<br><br> <br>아사이 료, &lt;인 더 메가처치&gt;<br>이미 읽었다. 일본 문학이나 영화는 가끔 보면 구구절절 인물들이 너무 말이 많다. 뭐랄까 일상적인 대화에서 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문학이나 영화에서 진짜 길게 말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 책도 좀 그런 느낌이었다. 이 책에 나온 일본에서 인기라는 신라면 제조법이 궁금해서 좀 도전해볼까 싶었다. 신라면에 두유하고 참기름을 넣는다고.... *동공지진* 이번에 쉴 때 해볼까...?<br>&nbsp; &nbsp;&nbsp;<br><br>바로 이 레시피입니다.... 리면은 신라면. 일본인들은 매운맛을 중화하려고 저렇게 먹는다고?!&nbsp;<br><br><br>에밀 졸라 &lt;루공가의 행운&gt;<br>졸라가 20여 년간 집필한 20권짜리 대작 ‘루공마카르 총서’(1871~1893). 국내엔 그동안 중구난방으로 인기 있는 작품부터 소개되었는데 정작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 이게 무슨 일? &lt;루공가의 행운&gt;은 바로 그 총서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것부터 읽으면서 루공마카르 총서 중 그간 안 읽은 것들 다 읽어야지...... (헐 이거 책탑 사진에서 안 찍었네! ㅋㅋㅋㅋㅋ)<br><br> <br>마르그리트 뒤라스&nbsp; &lt;인디아 송&gt;<br>이미 읽음. 이 시리즈 좋아하는데 자꾸 본문 글씨에 색깔 넣어서 인쇄해서 좀 싫어지려고 한다. 검은 글씨로 해주세요. 잘 안 보여요.......&nbsp;<br><br><br>장 콕토&lt;인간의 목소리&gt;는 빨간색이고.. 뒤라스 &lt;인디아송&gt;은 주황색인데....<br><br>아 미쳐... 본문 글씨도 빨강에 가까우면 어쩌자는 거지요? =_= (위의 책이 &lt;인간의 목소리&gt;, 아래가 &lt;인디아송&gt;)<br><br><br> <br>토마 슐레세, &lt;모나의 눈&gt;&nbsp;<br>이 책 목차를 보면 정말 흥미로워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br><br>1부 루브르<br>1. 산드로 보티첼리 ― 받는 법을 배워라<br>2. 레오나르도 다빈치 ― 삶에 미소 지어라<br>3. 라파엘로 산치오 ― 초연함을 가꾸어라<br>4. 티치아노 베첼리오 ― 상상력을 믿어라<br>5.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너 자신을 질료에서 해방시켜라<br>6. 프란스 할스 ―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존중하라<br>7. 렘브란트 판레인 ― 너 자신을 알라<br><br>소설이냐고? 소설이다.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소녀 ‘모나’와 그런 손녀를 위해 매주 함께 미술관에 가기로 결심한 할아버지 ‘앙리’의 한 해를 그린 작품. 그림과 할아버지 그리고 손녀의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다!<br> <br>샐리 루니, &lt;인터메초&gt;<br>샐리 루니. 더 안 읽으려고 했으나 여기까지는 읽어보기로. 다락방의 외로움을 덜어주고자. 엥? 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br> <br>다니엘 디포, &lt;몰 플랜더스&gt;<br>재밌을 거 같아서 샀다. 전자책 쿠폰 모은 게 꽤 되어서 전자책으로 구매.<br><br> <br>&lt;고양이 이름 연구소&gt;<br>이거 너무 귀여울 거 같지 않아요? “10대 집사들이 직접 고민하고 정리한 작명 가이드” ㅋㅋㅋㅋㅋㅋㅋ 실은 세계 고양이의 날 맞이해서 고양이 관련 책 사면 냥 박스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박스 또 받고 싶어서 샀다. 이 박스 이벤트 한 지 벌써 몇 년이더라? 울 집 냥이들 대부분 이 박스에 들어가 봤는데 7호 푸코, 8호 한나 막내들은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녀석들 위해서 이번에 또 받음. 그나저나 집사2 반에도 고양이 키우는 아이들이 좀 있는 거 같던데 이 책은 다 읽고 집사2 반에 기증해야지.&nbsp;<br><br><br>바로. 이 박스. 푸코야 니 꺼야! 했더니 냉큼 들어가서 안 나왔다 한다.... 꺄 너무 귀엽게 나옴! +_+&nbsp;&nbsp;<br><br><br> <br>미하일 바쿠닌&nbsp; &lt;신과 국가&gt;<br>중2병 시절 아나키스트를 꿈꾸던 잠자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미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아직도 그 기질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참 심했다. 아무튼 그 시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 아나키즘 관련 책에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이 사람이 쓴 글은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국내 처음으로 바쿠닌의 책이 출간되었으니 당연히! 어머나 이건 사야 해!<br><br>&nbsp;“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노예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하일 바쿠닌<br><br>캬........ &gt;_&lt;<br><br><br> <br>에빌 벵베니스트, &lt;마지막 강의&gt;<br>부제는 “천재 언어학자 뱅베니스트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1968~1969)”- 최근 &lt;중동태의 세계&gt; 읽다가 벵베니스트한테 관심 폭발. 언어의 ‘중동태’에 관해 가장 선명하게 똑똑하게 연구하고 있던 사람이 벵베니스트였다. 그래서 그의 저작을 다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일단 접근하기 쉬워 보이는 책부터.<br><br> <br>김윤식, &lt;내가 읽고 만난 일본&gt;휴가 때 갑자기 국문학과 학생 모드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샀다. 엥? 근데 웬 일본이냐고요 "원로국문학자 김윤식 교수의 지적 여정기이자, 사유의 자서전. 이 책의 제목은 &lt;내가 읽고 만난 일본&gt;이지만, 이것은 사실 국문학 연구자이자 문예비평가로 50여 년을 살아온 저자가 살고 읽고 쓴 기록"- 오랜만에 김윤식 글 읽고 싶었다.<br><br><br> <br>임마누엘 칸트, &lt;판단력비판&gt;<br>칸트의 3대 비판서라고 하면 &lt;순수이성비판&gt;, &lt;실천이성비판&gt;, &lt;판단력비판&gt;이 있지 않겠습니까? &lt;순수이성비판&gt;은 전에 읽었고(어려웠다 ㅋㅋㅋㅋ), 이젠 칸트의 미학 이론이 담긴 &lt;판단력비판&gt;을 읽어보기로. 이것도 사실 고쿠분 고이치로(&lt;중동태의 세계&gt;, &lt;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gt;, &lt;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gt; 등)의 영향이 크다. 고이치로 저작에서 칸트가 자주 언급되는데 그러다 보니 너무 궁금해짐. 특히 이 책! 그나저나 아카넷은 왜 이렇게 책이 비싼 걸까요. 이렇게까지 비싸야 하는가....?&nbsp;<br> &nbsp; &nbsp; &nbsp; &nbsp;&nbsp;<br>어니스트 베커 , &lt;죽음의 부정&gt;<br>절판이라 구하기 어려웠던 전설의 책인데 작년인가 복복서가에서 다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구판으로 구매. “출간된 지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철학, 사회학, 심리학, 신학 등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며 죽음학 분야의 명실상부한 고전으로 자리 잡은” 책이라능.&nbsp;<br><br><br> <br>이게 바로 새로 나온 것.<br><br><br><br>이 중에서 휴가 때 얼마나 읽을지...?&nbsp;<br><br>그리고 고양이.<br><br><br>돌 사진 ㅋㅋㅋㅋㅋ&nbsp; 지난 7월 태어난 지 1년(푸코 0703/한나 0718), 첫돌 맞이한 푸코와 한나. 합동 돌 사진 ㅋㅋㅋㅋㅋㅋㅋ<br><br><br>1년 새 많이 컸다.&nbsp;<br><br><br>한나만 찍으려고 하니까 난입 푸코.&nbsp;<br><br><br>푸코......몸무게... 한 살 된 놈이 6키로 넘는다. 무슨 일이야.<br><br>브리티시숏은 먹는 거 좋아해서 비만 주의하라던데... 제길......ㅋㅋㅋㅋㅋ<br><br><br>진짜 이 녀석 먹는 거 좋아한다. 안 돼!&nbsp;<br><br><br>자는 것도 어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r><br>꿈에서도 사탕 먹어라 이놈아!&nbsp; (마따따비 캔디....인데 효능은 글쎄... 잘.... 없다.ㅋㅋㅋㅋㅋㅋ)<br><br><br>자니......? ㅋ<br><br><br>사실은 박스가 탐났던 1호 푸코가 자리 비운 틈을 타 냉큼.<br><br><br><br>더위에 강한 3호/6호.... 망토만 입고 다녀서 그런가.....? ㅋㅋㅋㅋㅋ&nbsp;<br><br><br>아무튼 휴가 꺄울........ 얘들아 안녕....<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1/80/cover150/k3221306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118043</link></image></item><item><author>잠자냥</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쓰레기가 되는 삶, 쓰레기 줍는 삷</title><link>https://blog.aladin.co.kr/socker/17429912</link><pubDate>Mon, 03 Aug 2026 1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ocker/174299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592655&TPaperId=174299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1/91/coveroff/895559265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6166&TPaperId=174299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178/94/coveroff/896090616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9592&TPaperId=174299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9/23/coveroff/k62213959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지난 금요일, 맥주를 한잔 하면서 영화를 볼 요량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뭘 볼까 요리조리 영화를 찾다가 고른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lt;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Les Glaneurs Et La Glaneuse&gt;(2000). 바르다의 영화를 좋아한다. 바르다 감독을 좋아한다. 지혜롭고 명민하며 유쾌하고 윤리적인 그의 카메라.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이라면 대부분 고다르나 트뤼포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여기 바르다가 있다. 누벨바그의 대모? 훗. 웃기지 마시라. 아녜스 바르다는 누벨바그의 왕이다. 여성이라 오랫동안 고다르나 트뤼포에게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을 뿐. &lt;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gt;를 보라, 그녀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창작한 영화이다. 그리고 나는 서울의 어느 한 구석에서 금요일 저녁 이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줄줄 흘린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울게 될 줄이야.&nbsp;<br><br><br><br>내가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이 영화가 감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큐멘터리이므로 카메라는 매우 건조하고 담담하다. 그런데도 왜 나는 여러 차례 울컥하다 마지막에 폭풍 눈물을 흘렸을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본 한국 영화 &lt;사람과 고기&gt;에도 폐지 줍는 노인들이 등장한다. 그때도 나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눈물을 흘렸다. 바르다의 &lt;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gt; 또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쓰레기 줍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정이나 연민 때문에 울었느냐고? 아니다, 결코 아니다. 두 영화 모두 쓰레기 줍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런 이유로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두 영화는 나를 울렸다. 물론 운 지점은 조금 달랐지만.<br><br>프랑스에도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많다. 어디 프랑스뿐만 그러할까 어느 영화에선가 부유하기 짝이 없다는 미국에서도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한국, 프랑스, 미국만이 아닐 것이다. 쓰레기를 줍고 사는 사람들, 버려진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 있다. &lt;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gt;는 프랑스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제목이 참 아름답다. 밀레의 &lt;이삭 줍는 여인들 Des glaneuses&gt;이 떠오른다. 당연하다. 바르다는 밀레의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lt;아녜스 바르다의 말&gt;에서 바르다는 “장터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뭔가를 줍고 있던 사람들, 그들의 그 동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는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을 봤을 때, 밀레의 그림 속 몸짓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밀레가 묘사한 그 시대의 이삭줍기는 집단적인 행위였죠. 여성들은 한데 모여 일했고, 나름 즐기면서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날의 줍기는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성들이 홀로 움직이고, 사회는 대량으로 음식을 생산하고, 대량으로 쓰레기를 만들어내죠.”(&lt;아녜스 바르다의 말&gt;)<br><br>바르다의 카메라는 프랑스 도시나 시골에서 생존하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바르다는 몇 개월에 걸쳐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면서 현대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모습을 디지털카메라에 담는다.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확이 끝난 시골 들판에서 곡식을 줍는 사람, 감자를 줍는 사람, 바닷가에서 굴을 줍는 사람, 버려진 가구들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 등등 사람들이 줍는 이유와 버려진 쓰레기들의 용도는 각양각색이다.&nbsp;<br><br><br><br><br><br>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인상 깊은 두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기다란 장화를 신고 바르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나타난다. 그는 바르다와 어느 카페에서 만나는데 에스프레소 한잔을 들이켜더니 이윽고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10년 동안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고사는 데 아무런 탈이 없다고. 자연스레 쓰레기통 뒤지는 모습도 보여준다. “직업이 있나요?” 바르다의 질문에 그는 “네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에 나는 놀란다. 그런데도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것들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주워 먹는 게 아니군요?” 바르다는 묻는다. 왜일까? 그는 답한다. 이것은 “나의 윤리”라고. 쓰레기가 너무 넘쳐나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멀쩡한데 사람들은 길바닥에 마구 버린다고. 낭비라고 “이렇게 가다간 에리카 기름유출 같은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이것은 나의 윤리”라고 말하는 이 남자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 울컥 한 번.<br><br><br><br><br><br><br><br>이윽고 시장에서 채소 위주로 주워 먹는 남자도 등장한다. 커다란 가방을 멘 이 남자는 시장에 버려진 채소나 과일들을 씻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입으로 가져간다. 상태가 좋은 것들로 골라 가방에 넣기도 한다. 바르다가 그를 인터뷰한다. 그는 방금 그가 주워 먹은 파슬리에 담긴 영양소를 줄줄 말한다. 바르다가 신기한 듯 영양성분을 잘 아는군요? 물으니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거든요.”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더 충격이다. 그는 석사 학위까지 있으며 쉼터에서 말리와 세네갈 등지에서 온 이주민을 대상으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였다. 그러나 그는 돈을 받지 않으므로 정식교사는 아닌 보조교사이다. 그를 보면서 또 한 번 울컥한다.&nbsp;<br><br>그가 프랑스어가 서툰 말리나 세네갈 이주민들에게 이런저런 단어를 가르치다가 묻는다. “성공이 뭐죠?” 학생들은 이런저런 뻔한 대답을 한다. 잘되는 거, 부자가 되는 거, 유명해지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이 교사는 다른 대답을 원하는 것 같다. 뭔가 좀 더 자기의 노력이.... 그렇다. 성취. 자기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 그것을 그는 성공이라 말한다. 결국 나는 이 남자를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눈물이 솟구치는지 모르겠다. 바르다는 이 남자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그렇다. 쓰레기를 주워 먹는 이 두 남자가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br>&nbsp;&nbsp;<br><br><br><br><br><br><br><br><br><br><br>영화를 본 후 &lt;아녜스 바르다의 말&gt;을 펼쳐서 &lt;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gt;와 관련된 부분들을 다시 읽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구절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10년째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사는 저 청년의 이름은 ‘프랑수아’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쓰레기 속에서 음식을 찾아 먹을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사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찾는 건 옷을 포함해서 모두 거리 위에 있다. 폐기물을 생각하면 어떤 것도 사고 싶지 않다는 그. 프랑수아는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에게 최고의 시기는 6월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엑상프로방스대학교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면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 것들을 전부 내다 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음식들이 넘쳐나요. 제 냉장고로 가져와 채우면 3개월 동안 잘 먹을 수 있죠.” 그의 표현대로 ‘성수기’이다.&nbsp;<br>이 사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요. 촬영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 지을 즈음 조감독이 그에게 말했어요. “출연료를 좀 드릴까 하는데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죠. “아뇨, 돈은 됐어요.” 그는 꽤 언짢은 듯 보였어요. 대신 책으로 받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래서 정리를 마치고 같이 대형 서점으로 갔어요. 프랑수아는 화집이 있는 쪽으로 가서 책들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궁금해하면서 이렇게 말했죠. “어떤 책이든 원하는 대로 골라요.” 그런데 이 친구가 어떤 책을 골랐는지 아세요? 부유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아주 고상하고 세련된 18세기 소묘화집이었어요. 그가 제게 말했죠. “저는 이 시기를 참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대저택에 살면서 연회를 즐기던 부자들의 모습이 담긴 커다랗고 값비싼 책을 그에게 사줬죠. -&lt;아녜스 바르다의 말&gt;<br>&lt;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는 이렇게 쓰레기라고 버려진 것들을 주워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실제로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도 있고 저 두 남자들처럼 자기만의 신념이나 윤리 때문에 줍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줍는 사람들도 있다.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이럴 때 바르다의 카메라는 프랑스의 계급 격차를 은연 중 보여주기도 한다. 재활용 물품들을 활용해 예술 실습을 하는 어린 학생들을 촬영하며 바르다는 궁금해한다. “이 아이들 중에 과연 쓰레기 수거인과 악수를 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바르다 또한 거리에서 버려진 의자와 바늘 없는 시계를 주워 오기도 한다. 바르다가 주워온 바늘 없는 시계는 그의 손끝에서, 집안에서,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인다. 그의 카메라를 통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또 바르다는 이 영화를 찍은 디지털카메라로 자신의 희끗한 머리칼이나 손등의 검버섯 같은 노화의 흔적을 영상에 담기도 한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일흔을 넘겼다. 그의 이 예술적 줍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br><br>제가 비록 줍는 사람은 아니지만—가난하지도 않고, 먹을 것도 충분하지만—세상에는 또 다른 종류의 줍기가 있어요. 말하자면 예술적 줍기죠. 아이디어를 집어 올리고, 이미지를 집어 올리고, 감정들을 집어 올리죠. 그것들을 활용해 영화를 만들어요. 또한 당시 저는 일종의 삶의 전환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lt;아녜스 바르다의 말&gt;<br><br><br><br><br>최근 &lt;피날레&gt;를 읽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챕터, 한 여성씩 읽고 있다. 서문에서 바르다의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웠다.&nbsp;<br>노년까지 살아남아 창조성을 보여준 영미권 여성 문인 중 다수는 백인이며, 경제적 특권을 누린 이들이었다. (....) 어슐러 K. 르 귄, 루스 스톤, 존 디디온, 에이드리언 리치 같은 인물들이 기나긴 경력을 이어가게 해준 물질적 이점을 생각해보라. 긴 경력은 그들에게 미적 야망에 대한 수치심이나 불안감을 극복할 힘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창조적 천재의 요절이라는 신화에서 힘을 빼기도 했다. (.....) 이 작가들 모두 이 책에 포함할 만한 사람들이고, 노년에 창의성을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말년의 사명으로 삼았던 메이 사턴 역시 그렇다.&nbsp; (.....)&nbsp; 다른 예술 분야나 다른 나라로 범위를 확장하면 더 많은 이름이 떠오른다. (.....)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nbsp;&nbsp;(-수전 구바, &lt;피날레&gt;)<br><br>&nbsp;<br><br><br>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너무 많이 사고 먹고 마시며 낭비한다. 저 세 사람, 프랑수아, 보조교사, 그리고 바르다의 신념과 윤리 앞에 한없이 먹먹해지는 금요일 저녁이었다.<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9/23/cover150/k6221395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49234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