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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 무색의 섬광들 민음사 철학 에세이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 옮김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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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검은색부터 시작해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검은색’에 관한 이토록 깊고 너른 사유라니 그저 놀랍다. 알랭 바디우를 잘 몰라도 누구나 친숙하게 읽을 수 있는 철학 에세이. 짧지만 깊고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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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강승현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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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에도 거칠 것이 없는 카테리나.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강렬한 캐릭터라니. 그럼에도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사뭇 아쉽구나. 그놈을 끌고 들어갔어야 하는데..... 아무튼 읽으면 읽을수록 반하게 되는 레스코프. 레스코프 선집 어디서든 다 번역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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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4-0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개봉했을 때 읽어봤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결말이 더 좋더라구요 책 결말은 잠자냥님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잠자냥 2020-04-04 22:50   좋아요 1 | URL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저도 꼭 한 번 봐야겠어요. ㅎㅎ

camiue76 2020-04-0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잠자냥님은 레스코프까지 섭렵하셨군요. 대단하세요. ^^ 저는 영화를 먼저 접했는데(우울하고 독특했어요)
이 리뷰 읽고 책도 읽어보는 것으로.

잠자냥 2020-04-06 11:22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가 왜 레스코프를 많이 읽지 않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다던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ㅎㅎ 영화와 결말이 다르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영화도 보기로 했습니다. ^^
 
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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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현대문학 세계 단편선 <대프니 듀 모리에 - 지금 쳐다보지 마>와 똑같은 작품이 실려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를 비교하면서 겹치는 작품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워낙 이 단편집을 흥미롭게 읽기도 했고, 듀 모리에의 다른 작품도 즐겁게 읽었던 터라, 아직 내가 읽지 않은 단편들 모음이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게다가 책 소개를 보니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에 걸쳐 쓴’ 초기 걸작 단편을 모아 낸 선집이라고 한다. 거장이 거장으로 자리 잡기 전, 얼마쯤은 어설프고 풋풋한 그런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내 생각은 책을 받아 읽는 순간 와장창 깨지고 만다. 아니, 이게 정말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에 쓴 작품이라고? 그렇다, 거장은 애초부터 거장인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제목에 끌려 <집 고양이>부터 읽었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암고양이》처럼 왠지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런 작품일 것 같았다. 느긋한 고양이가 등장하지만 그 고양이와 얽힌 기괴하고 짜릿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생각 또한 와장창 깨진다. 서스펜스의 왕이자(여왕이 아니다!!), 인간의 저 밑바닥 욕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 내려다 보고 있는 대프니 듀 모리에가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를 쓸 리가 없다. 비록 아무리 초기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 작품에는 단 한 번도 고양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양이의 특성을 비롯하여, 얼마나 묘사를 잘했는지 온갖 고양이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어린 꼬마였던 ‘나’는 파리에서 숙녀 교육을 마치고 드디어 성숙한 어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같은 존 삼촌과 함께 사교계를 누빌 꿈에 부푼다. 그런데 그 기대는 기차역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무너지고 만다. 처음으로 화장한 ‘나’의 얼굴을 본 어머니는 전에 없이 쌀쌀맞게 굴며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게다가 늘 졸린 얼굴이던 존 삼촌은 그날따라 기묘하게 눈을 빛내며 ‘나’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다.

존 삼촌은 사실 혈연관계는 아니다. 모녀가 그를 처음 만난 건 ‘나’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프린턴 해변의 얕은 물에서 해수욕을 하던 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존 삼촌은 집안 식솔로 여러 해를 함께 지내오면서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대신 처리한다. ‘티켓을 구입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장사꾼을 상대하고, 청구서를 지불하고, 역에선 그들의 가방을 옮겨주고, 차를 마실 땐 빵과 버터를 건네주고, 전화를 받고, 약속을 기록하는 수첩을 정리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양손을 문지르면서 아양을 떨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 오랜 세월,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어머니와 함께 한다. 어머니에게 여러모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이제 마흔을 훨씬 넘긴 존 삼촌. ‘나’의 친구는 언젠가 그에 대해서 “저 사람이 너희 어머니가 키우시는 집고양이야?”하고 묻기도 한다. 나는 친구의 그 말에 크게 웃으면서도 어딘가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존 삼촌은 ‘구석에서 조용히 가르랑거리다가 절대 발톱을 드러내는 일 없이 평화롭게 후다닥 우유 접시로 달려가는 고양이’ 모습과 어쩐지 닮았기 때문이다.

사실 독자는 존 삼촌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의 ‘어머니’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 ‘어머니’에게 빌붙어 사는 기둥서방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게다가 성숙하게 자라서 젊음 그 자체로 빛나는 딸을 보고 기뻐하기보다는 질투와 시기를 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엄마가 딸을 경쟁상대로 느낀다는 것도 곧 알 수 있다. 그 두 모녀 사이에서 이 ‘집고양이’ 존 삼촌의 능글맞은 변화를 엿보는 일은 아주 흥미롭다. ‘나’가 기차역에 내렸을 때부터, 아니 ‘나’가 드레스를 사러 갔을 때 쳐다보던 그 음흉한 시선에서 이 존 삼촌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예상가능한데, 그런 변화를 고양이에 비유하고 있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매력적인 젊은 아가씨를 꾀어낼 궁리를 마친 존 삼촌은, 자기의 은밀한 연인인 ‘어머니’의 눈을 피해 딸을 만나기 위해 ‘나’의 귀에 속삭인다.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오너라.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나한테 찾아오면 돼.” 이렇게 말할 때 ‘나’는 ‘잠깐이지만 그의 모습이 정말로 잘 먹고 자라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나직이 가르랑거리며 등을 활처럼 굽히는 얼룩고양이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존 삼촌은 때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고양이처럼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둡고 축축한 벽에 기대어 자신이 만든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있는 교활하고 냄새나는 도둑고양이’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고양이에 빗댄 묘사와 그 상황이 너무나도 절묘해서 그저 감탄이 나온다.

다정함과 친절함으로 감춘 존 삼촌의 음흉한 속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쩐지 차가워진 어머니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집고양이, ‘작고 뺀질뺀질하고 땅딸한 남자’의 정체와 ‘미모가 사라져 겁을 집어먹고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자기 딸의 젊음을 시기해 질투에 사로잡힌 여인’인 ‘어머니’의 저열한 속내도 깨닫게 된다. 이 또한 성장이라면 성장이겠지만 참으로 그 대가는 쓰디쓰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대프니 듀 모리에를 경쟁상대로 느끼고 끊임없이 견재했던 듀 모리에의 친어머니와의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읽혀,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왠지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복잡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친밀한 관계의 부도덕한 이면, 사랑스러움도 없고 로맨스도 없었다. 그녀도 자기 차례가 되면 이렇게나 어머니와 똑같은 가면을 쓴 채 거짓으로 점철된 가혹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집고양이’,  163쪽)



표제작인 <인형>은 여러 의미로 충격적이다. 이 작품은 액자식으로, 바닷가에서 발견된 한 권의 수첩 속 이야기를 스트롱맨 박사라는 이가 옮겨 적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박사는 ‘본문에 실린 글은 베이의 어느 바위 틈새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바닷물에 젖어 상당 부분 색이 바랜 너덜너덜한 수첩에서 발견된 내용’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수첩의 주인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으며, 아무리 부지런히 탐문을 해보아도, 주인공의 정체를 밝히는 데 실패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아마도 수첩 주인은 수첩을 숨긴 지점 근처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시신마저 바닷속으로 사라졌거나 자신의 비극과 자기 자신을 잊으려고 노력하며 세상을 떠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수첩은 ‘인간은 스스로 제정신이 아니란 걸 알아차릴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너무도 끔찍한 공포와 너무도 크나큰 절망으로 가득차, 두뇌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간혹 있다.’ 이렇게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아주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내용일 것임을 예고하는데, 실상 초반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리 심란하지는 않아서 조금 뜻밖이었다. 수첩의 주인인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부다페스트 출신 ‘리베카’라는 이름의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는 그녀에게 뜨거운 애정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왠지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가까워져도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가까워진 듯하면 멀어지고, 멀어진 것 같으면 또 금세 가까워지고, 리베카는 ‘나’를 쥐락펴락하는 데 선수 같다. 리베카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왠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리베카는 말한다. “나는 애정을 품을 만한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사랑에 빠져본 적도 없어요. 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언제나 사람들을 싫어했어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리베카 곁을 떠나지 못한 채 그녀와 가학/피학적인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마침내 맞닥뜨린 그녀의 비밀은 당시로서는 그리고 이처럼 심약한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 또한 리베카의 ‘비밀’이랄까, 그 비밀의 베일이 벗겨지는 광경을 맞닥뜨렸을 때는 헐 정말? 진짜? 하는 생각이 들어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텐데, 이 작품을 읽을 이들을 위해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인형>은 사디즘, 마조히즘, 관음증을 비롯해 문제의 그 장면에서까지 정말 여러 의미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무튼 이 작품이 대프니 듀 모리에 20대에 쓰인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여년 전 작품일 텐데 이런 생각을, 게다가 리베카라는 여성이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상상력이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서고 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한 단편이 많다. <점점 차가워지는 그의 편지>는 서간체 형식으로 오직 사랑에 빠진 남자의 관점으로 쓰였는데, 처음에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예의와 조심성을 갖추더니, 뜨거운 열정의 시기를 거쳐 여인의 마음을 얻은 뒤 조금씩 편해가는 모습이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격 차이>나 <주말 >같은 단편에서도 사랑하는 남녀의 겉모습과 그 속마음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인생의 훼방꾼>이라는 단편은 ‘믿을 수 없는 화자’, 자기 자신이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타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데 탁월한, 소름끼칠 만큼 진저리나는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단편집에서 대프니 듀 모리가 창조한 캐릭터 가운데 완벽하게 선한 인물은 없다. 겉으로는 제아무리 선함을 가장하고 있다하더라도 사실 그들은 무엇보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그 욕망이 이루어지면 기뻐하고, 좌절되면 분노한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인간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차디차게 비웃는다. “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언제나 사람들을 싫어했어요.”라는 저 리베카의 말은 듀 모리에 그 자신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인간을 잘 관찰했기에 그런 저열한 속성까지 낱낱이 알고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도 무려 20대에 말이다. 서스펜스의 왕 대프니 듀 모리에. 그이의 국내 번역 작품은 이제 <희생양> 하나 남겨두고 다 읽었다. 안타깝다! 또 다른 책이 얼른 번역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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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0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이 리뷰 다 읽기도 전에 읽어야겠다고 아주 강하게 마음 먹게 됐어요. 사두고 안읽은 나의 사촌 레이첼도 읽고 싶어졌고요. 아 초조하네요 얼른 사고 싶어서.

20대에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은 천재일까요?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소설을 못쓰고 있는데 말예요. 언젠가는 근사하게 한 편 쓸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없어요 ㅠ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타고나는 재능이란 생각이 듭니다.

잠자냥 2020-04-02 16:21   좋아요 0 | URL
대프니 듀 모리에는 천재 같아요. 이야기도 잘 만들어 내고 그 묘사하며... 휴... <나의 사촌 레이첼>도 정말 재미있어요!

다락방 2020-04-02 16:38   좋아요 1 | URL
저 레베카 엄청 재미있게 읽고 나의 사촌 레이첼도 부랴부랴 사두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많은 책들이 그런것처럼 저쪽에 치워져있어요...오늘 집에 가면 어디있나 찾아봐야겠어요. 인생... ㅠㅠ

단발머리 2020-04-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름만 아는 작가인데 잠자냥님 리뷰 읽고 나니 당장! 읽고 싶네요. 얼른 서둘러야겠어요.
잠자냥님은 이제 <희생양> 하나 남으셨다고 하시니, 레베카, 나의 사촌 레이첼, 인형이 남아있는 제가 부러우시겠어요 호호

잠자냥 2020-04-06 10:3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ㅎㅎㅎ 레베카, 나의 사촌 레이철, 인형 등등 다 너무 재미있어요. 현대문학에서 나온 대프니 듀 모리에 다른 단편집도 그렇고요. 부럽습니다~!! ㅎㅎ

2020-05-07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7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언제 읽어도 좋은 시(詩)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펼쳐 읽다가 나는 다시 한 번 미소 짓는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눈앞에 선명하게 그 광경이 그려진다. 어디 이 시뿐인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흰 바람벽이 있어’ ‘여우난골족’ 등등 백석에겐 말 그대로 주옥같은 시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그의 시(詩) 말고는 다른 작품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백석의 수필과 소설을 접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고 하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게다가 이 책을 엮은이가 일찍이 <정본 백석 시집>을 펴낸 ‘고형진’이니 더 믿음직스럽다.

책을 펼치고 가장 첫 번째 작품인 ‘해빈수첩海濱手帖’부터 읽는다. 바닷가 마을 풍경을 ‘개’, ‘가마구’, ‘어린아이들’로 나눠 묘사하고 있는데, 그 시각과 묘사하는 언어가 시를 쓰는 백석 그대로이다. 그동안 줄곤 외국 문학 번역서를 읽느라 거의 잊고 지낸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백석의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다. 아, 어쩜 이렇게도 좋은가. 역시 백석이구나.



저녁물이 끝난 개들이 하나둘 기슭으로 모입니다. 달 아래서는 개들도 뼉다귀와 새끼 똥아리를 물고 깍지 아니합니다. 행길에서 걷던 걸음걸이를 잊고 마치 밀물의 내음새를 맡는 듯이 제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는 듯이 고개를 쑥- 빼고 머리를 쳐들고 천천히 모래장변을 거닙니다. 그것은 멋이라 없이 칠월 강변의 칠게를 생각게 합니다. 해변의 개들이 이렇게 고요한 시인이 되기는 하늘에 쏘구랑별들이 자리를 바꾸고 먼바다에 뱃불이 물길을 옮는 동안입니다.
산탁 방성의 개들은 또 무엇에 놀라 짖어내어도 이 기슭에 서 있는 개들은 세상의 일을 동딸이 짖으려 하지 아니합니다. 마치 고된 업고를 떠나지 못하는 족속을 어리석다는 듯이 그리고 그들은 그 소리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듯이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우뚝 서서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들은 해변의 숭엄한 철인들입니다.
밤이 들면 물속의 고기들이 숨구막질을 하는 때이니 이때이면 이 기슭의 개들도 든덩의 벌인 배 위에서 숨구막질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이 끝나도, 언제까지나 바닷가에 우둑하니 서서 주춤거리며 기슭을 떠나려 하지 아니합니다. 저 달이 제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올 조금의 들물에게 무슨 이야기나 있는 듯이. (‘해빈수첩’)

어린아이들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
바다의 주는 옷과 밥으로 잔뼈가 굵은 이 바다의 아이들께는 그들의 어버이가 바다로 나가지 않는 날이 가장 행복된 때입니다. 마음 놓고 모래장변으로 놀러 나올 수 있는 까닭입니다.
굴깝지 위에 낡은 돗대를 들보로 세운 집을 지키며 바다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라는 그들은 커서는 바다로 나아가여야 합니다.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
흐리고 풍랑 센 날 집안에서 여울의 노대를 원망하는 어버이들은 어젯날의 뱃놀이를 폭이 되었다거나 아니 되었다거나 그들에게는 이 바다에서는 서풍 끝이면 으레이 오는 소낙비가 와서 그들의 사랑하는 모래텀과 아끼는 옷을 적시지만 않으면 그만입니다.

밀물이 쎄는 모래장변에서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고 바다에 싸움을 겁니다.
물결이 그들의 그 튼튼한 성을 허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더욱 승승하니 그 작은 조마구들로 바다에 모래를 뿌리고 조약돌을 던집니다. 바다를 시멸시키고야 말 듯이.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 두던의 작은 노리가 그들을 부르면 그들은 그렇게도 순하게 그렇게도 헐하게 성을 비우고 싸움을 벌입니다.
해 질 무리에 그들이 다시 아버지를 따라 기슭에 몽당불을 놓으러 불가로 나올 때면 들물이 성을 헐어버린 뒤이나 그때는 벌써 그들이 옛 성과 옛 싸움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해빈수첩’)



쏘구랑별이니, 산탁, 방성, 동딸이, 숨구막질, 든덩, 조마구, 두던, 노리 등등 아리송한 말들이 많다. 알 듯 모를 듯한 단어를 제 나름으로 상상하면서 죽 읽어 나가면 어느 사이엔가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고 나서 이 알 듯 모를 듯한 단어, 그러니까 평안북도나 남도, 강원도 등지의 방언을 엮은이가 친절하게 풀이한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감상하면 시에서 그려내고 있는 그 이미지가 더욱 또렷해진다. 나는 첫 수필에서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그 뒤로 죽 읽어 나가다가 ‘편지’라는 수필에서 또 한 번 아, 이게 바로 백석이지 하고 감탄한다.


이 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닭이 울어서 구신이 제집으로 가고 육보름날이 오겠습니다. 이 좋은 밤에 시꺼먼 잠을 자면 하이얗게 눈썹이 센다는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육보름이면 옛사람의 인정 같은 고사리의 반가운 맛이 나를 울려도 좋듯이 허연 영감 구신의 호통 같은 이 무서운 말이 이 밤에 내 잠을 쫓아버려도 나는 좋습니다. 고요하니 즐거운 이 밤 초롱초롱 맑게 고인 샘물 같은 눈으로 나는 지금 당신께서 보내주신 맑고 고운 수선화 한 폭을 들여다봅니다. 들여다보노라니 그윽한 향기와 새파란 꿈이 안개같이 오르고 또 노란 슬픔이 내냇같이 오릅니다. 나는 이제 이 긴긴밤을 당신께 이 노란 슬픔의 이야기나 해서 보내도 좋겠습니까. (.....) (닭이 우나?) 아 닭이 웁니다. 나는 이만 이야기를 그치고 복밥을 기다리는 얼마 아닌 동안 신선과 고사리와 수선화와 병든 내 사람이나 생각하겠습니다. (‘편지’)


음력 열엿셋날을 앞둔 고요하고 즐거운 어느 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잠들지 않은 채, 고운 수선화 한 폭을 바라보다 그 수선화를 닮은 좋아하는 이를 떠올린다. 그런데 그이를 떠올리다 보니 ‘새파란 꿈이 안개같이 오르고 노란 슬픔이 내냇(연기)같이’ 피어오른다. 그리하여 백석은 그 긴긴밤을 노란 슬픔과 얽힌 이야기를 편지로 풀어 보낸다. 그리움과 슬픔, 안타까움, 그리고 ‘수선화와 병든 내 사람이나 생각’하겠다는 구절에선 왠지 모를 다정다감한 마음까지 느껴진다.

어떤 수필에서는 백석이 평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를 테면 ‘가재미․나귀’같은 수필이 그렇다.


동해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광어, 문어, 고등어, 평메, 횟대…… 생선이 많지만 모두 한두 끼에 나를 물리게 하고 만다.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치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묘지와 뇌옥과 교회당과의 사이에 생명과 죄와 신을 생각하기 좋은 운흥리를 떠나서 오백 년 오래된 이 고을에서도 다 못한 곳 옛날이 헐리지 않은 중리로 왔다. 예서는 물보다 구름이 더 많이 흐르는 성천강이 가까웁고 또 백모관봉의 시허연 눈도 바라보인다. 이곳의 좌우로 긴 회담들이 맞물고 늘어선 좁은 골목이 나는 좋다. 이 골목의 공기는 하이야니 밤꽃의 내음새가 난다. 이 골목을 나는 나귀를 타고 일없이 왔다갔다하고 싶다. 또 예서 한 오 리 되는 학교까지 나귀를 타고 다니고 싶다. 나귀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가재미․나귀’)



백석은 가재미도 좋아하고, 나귀도 좋아하는지 ‘가난하고 쓸쓸한’ 밥상에 한 끼도 빠짐없이 가재미를 올린단다. 그리고 밤꽃 내음새가 물씬 나는 골목을 나귀를 타고 어슬렁어슬렁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는 이런 대상을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존재라고 말한다. 가재미에 대한 사랑은 시로 읊기도 했는데, ‘선우사(膳友辭)’라는 시가 바로 그 작품이다.


선우사(膳友辭)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선우膳友’란 ‘반찬 친구’를 말한다. 가재미 반찬을 친구라고 풀이한 것도 참신하지만 흰밥과 가재미처럼 새하얀 것들을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백석의 생김새를 보면 단아하고 곱다. 담백하게 생긴 미남상이랄까. 평소 가재미나, 나귀, 흰 바람벽, 눈이 푹푹 나리는 날의 흰 당나귀, 초생달, 명태, 노루, 짝새, 바구지꽃 등등 소박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를 아끼고 사랑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단풍처럼 화려한 것에는 마음이 쉬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빨간 물 짙게 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 빨간 정(情)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 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줄댄다.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여 시월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 따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 하늘이 눈부셔한다.
시월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 단풍도 높다란 낭떠러지에 두서너 나무 깨웃듬이 외로이 서서 한들거리는 것이 기로다.
시월 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단풍’ 전문)


이처럼 <정본 백석 소설․수필>에는 백석의 향토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쓰인 수필 열 두 편과 소설 네 편을 만날 수 있다. 수필이 시처럼 아름답고 따스하다면 소설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사실 백석이 처음 문단에 이름을 알린 것은 시가 아니라, 1930년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였다. 이 책에서 바로 그 작품을 볼 수 있는데, 토속적인 평안도 방언으로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문을 이용, 과부와 유부남의 일탈된 성(性 )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도발적이라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애잔하다. 그런 이들, 가난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엿보인다. 이런 경향은 ‘마을의 유화遺話’에서도 이어져 가난한 어느 노부부의 애환을 쓸쓸하지만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닭을 채인 이야기’는 동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해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수필도 소설도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한편, 백석의 시에서 그러했듯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들을 사랑했던 그의 면모를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왠지 내 마음도 나리는 저 흰 눈처럼 깨끗해지는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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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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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저 밑바닥 욕망까지 이토록 낱낱이 들여다본 작가가 또 있을까. 대프니 듀 모리에의 이 초기작들은 웬만한 작가의 전성기 작품에 비할 수 있다. 특히 표제작 ‘인형’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사디즘, 마조히즘을 넘어 ****까지! 완전 시대를 앞선다. 너무 금방 읽어서 안타까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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