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익숙했던 공간과 사람들을 떠나 완벽하게 새로운 곳으로, 단 한 사람만을 믿고 거주지를 옮긴다는 게 가능할까? 이 한국이 너무 싫어서 가끔 집사2랑 완전히 다른 나라에 가서 살 생각을 하다가도 망설여지는 지점이 조금 있다. 집사2는 나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거의 비슷한 문화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다른 장소에서 그 사람하고만 살아간다는 게 엄청난 모험으로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타인들의 나라>의 마틸드는 대단하고 용감하다. 또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모하기까지 하다. 마틸드는 프랑스 알자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인으로,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고향을 떠나 모로코 메크네스로 향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곳에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것 같다. 그의 이름은 ‘아민’-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프랑스의 백인 여자가, 모로코의 흑인 남자와 함께 살기 위해 집을, 나라를 떠난다고? 와우- 그렇다 이 여자, 마틸드는 열아홉 살이 되던 1944년에 모로코 남자 아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민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39년에 프랑스군소속의 아프리카 원주민 기병부대에 입대해 프랑스로 온다. 프랑스를 독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아민이 입대하기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는 아민에게 모로코 메크네스에서 2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넓은 토지를 남긴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경영하리라는 꿈에 부풀어 전쟁을 버틴다. 전쟁 중 독일과 인접한 알자스의 한 마을에 아민이 속한 부대가 잠시 주둔하던 중 그곳에서 그는 마틸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한다. 전쟁이 끝난 후 마틸드는 드디어 남편이 먼저 가 있는 모로코의 메크네스로 향한다. 그녀는 꿈에 부풀어 있다. 새로운 땅, 사랑하는 남자, 그와 함께 꾸려갈 자기만의 가족, 새로운 미래..... 그런데 정말 마틸드 앞에는 그녀의 기대처럼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까?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은 예상할 수 있다. 마틸드만이 그것을 모를 뿐.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해.”
이 말을 그녀는 앞으로 자주 듣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마틸드는 자신이 외국인, 여성, 아내, 타인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민은 이제 자신의 고향땅에 있었으므로 규범을 알려주고, 나아갈 길을 일러주며, 염치, 수치, 그리고 예의 등의 경계를 제시하는 사람 또한 그가 되었다. (22~23쪽)
불길한 기운은 그녀에게도 곧 감지된다. 자유로운 프랑스에서 누구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았던 마틸드- 그런 그녀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모로코는 마틸드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곳에서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감시와 구속의 대상이라는 것을 경고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호텔에 묵을 때조차 아내와 남편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녀, 흑인과 호텔에 묵는 백인 여성을 향한 눈빛은 싸늘하기만 하다. 아민은 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꺼낸다. 계약문제 때문에 아민이 물려받은 농장으로 가 사는 것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아민은 농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 집에서 함께 지낼 것이라고 차갑게 말한다.
마틸드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호텔에서 지내는 일주일동안 그들은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아민 같은 남자가, 그러니까 간밤에 그랬던 것처럼 아내와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시어머니 댁에서 지내게 될 거’라고 말하는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다. “진심이야?” 묻는 마틸드에게 아민이 말한다.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해.”- 이 말을 할 때 그는 앉은 채로 일어서지 않는다. 마틸드는 아민에 비해 머리 하나 크기만큼 키가 더 크다. 아민은 굳이 이곳 모로코에서 아내와의 신장 차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아니, 아내보다 작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이곳은 자기 땅, 자기 나라, 자기의 모로코이고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곳이니까-
아민이라는 남자의 이 치졸함에 치가 떨려온다. 마틸드라는 여자의 어리석음에 한탄하게 된다. 아아, 이 어리석은 여자야, 그러니까 어쩌자고 모든 걸 버리고 저 남자, 자기의 작은 키를, 그 열등감을 프랑스에서는 잘도 포장해 숨겼지만 이곳, 자기 땅에 오자마자 돌변하는 저 가련한 남자, 저 치졸한 남자를 믿고 삶의 터전 자체를 바꾸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여자인가, 아무리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방탕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억압적이고 차갑게 굴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그런 가족을 빨리 떠나서 자기만의 가족을 일구고 싶었던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란, 하필이면 인종도 다른, 하필이면 피식민 땅의 남자와 하필이면 이슬람을 믿는 남자와 결혼해 프랑스를 떠나버리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마틸드는 아민의 눈부신 외모, 너무나 잘생겨서 누군가 낚아채갈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했던 그 외모를 찬양하지만.... 이 여자야 정신 차려, 혀를 끌끌 여러 번 차게 된다. 외모가 밥 먹여주니.
아민은 얼마나 잘생긴 외모인지 모르겠지만 모로코 땅에서는 그냥 그렇고 그런, 흔한 이슬람 가부장제에 찌든 형편없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다. 아내를 향한 폭력도 망설임이 없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말한다.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해.”,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일이 돌아간다고.” “여기서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틸드는 자신이 더는 프랑스에 있지 않음을, 이곳에서 자신은 유럽, 프랑스, 식민자의 나라 출신, 백인, 여성, 외국인, 영원한 타자임을 진저리 날만큼 깨닫는다. 그리고 이 타인들의 나라, 단지 인종이 다르고, 단지 나라가 다르고 단지 종교와 문화 언어가 달라서만 타인이 아닌, 남편이라는 사람마저도 완벽하게 타인인, 그래서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 타인들의 나라에서 그 남자, 자기보다 훨씬 작은 이 남자에게 예속되어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은 고통 자체이다.
위치의 전복이다. 프랑스에서 마틸드가 아민을 처음 만났을 무렵 그녀는 아민의 안내자이자 보호자였다. 그가 마을에서 보냈던 길고 긴 주간 동안 마틸드는 그와 함께 산책했고,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주었으며, 또 카드놀이를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민의 말, 그의 명령과도 같은 말에 따라야 한다. 순종적인 시어머니 무일랄라를 비롯해 주변 모로코 여성들의 삶이 답답해보여서 조금이라도 바꿔 볼 시도를 해보면 아민은 싸늘히 말한다. “대체 뭐에 대해 불평하는 거지? 당신은 유럽 여자고, 아무도 당신이 하고자하는 일을 막지 않잖아. 그러니까 당신 일에나 신경 쓰라고, 어머니는 건드리지 말고.”(126쪽)
마틸드는 후회한다.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허영심을 탓한다. 모험을 하며 살고 싶었던 사람도, 어린 시절 친구들이 이국적이라면서 부러워했던 그 결혼을 허세를 부리며 성사시킨 사람도,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마틸드는 자신이 어떤 굴욕이나 배신도 당할 수 있는 신세임을 자각한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그녀 앞에 놓인 것은 농장 생활이 안겨준 고립감, 자칼들의 울부짖음만이 정적을 깨뜨리는 어두운 밤, 그런 밤의 두려움, 자기 자리가 없는 세계에 산다는 절대적인 고독, 부당한 규칙들에 휘둘리는 세계에 산다는 절망감뿐이다. 이것은 귀양살이이다. 실패와 환멸감만이 마틸드를 감싼다.
이 여자, 마틸드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타인들의 나라>는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총 3부작으로 구상한 작품으로 그중 1부에 속한다. 작가의 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이야기로, 마틸드와 아민은 레일라 슬리마니의 할머니-할아버지대의 이야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부부가 다 그런 것인지 저들 부부가 유독 저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저렇게 불협화음속에 살면서도 섹스만큼은 지치지도 않고 해서 이들에게도 자식이 생긴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딸인 아이샤는 아민처럼 검은 피부에 폭탄처럼 부스스한 머리털을 갖고 태어났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똑똑하다. 모로코 땅에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다. 백인도 흑인도 오렌지도 레몬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 게다가 아이는 이슬람 사회에 살면서 하필이면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게 된다. 마틸다는 명민한 딸을 교육하는 데 관심이 많다. 이 아이샤는 틀림없이 레일라 슬리마니, 즉 작가의 엄마를 모델로 하는 인물이리라. 오렌지나무 줄기에 레몬나무 가지를 접붙여 탄생한 ‘시트랑주’와도 같은 존재인 아이샤, 과육이 딱딱하고 맛이 써서 눈물이 솟구쳐 오를 지경인 시트랑주 같은 아이샤가 펼쳐나갈 세상도 마틸드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더욱 고단해 보인다. 아이샤가 살아갈 타인들의 나라는 또 어떤 모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