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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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든가 사람이 고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거나 고독하다거나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도 없다. 오히려 외로움이나 고독감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 더 느껴지는 법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집사2가 핀잔을 준다. 넌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러는 자기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면 그렇기는 하다. 한 번도 철저하게 혼자였던 적이 없다. 애초에 가족 구성원도 많았고(자매도 많음), 어쩌다 보니 누군가와 헤어지면 금방 새 사람을 만나 사귀고 있어서 애인이 없던 적도 없고, 애인이라는 존재가 생기기 전인 초딩 때는 내성적인 아이이긴 했지만 책 때문에 딱히 친구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중고딩 때는 또 무슨 이유인지 아이들이 많이 좋아해줘서 사람 때문에,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친구들> 속 ‘빅토르 바통’ 이 청년, 이 남자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사람을 향한 갈망, 그것이 애정이든 우정이든 아무튼 그 갈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100자평에 남겼듯이 아니 이 인간은 대체 MBTI가 뭐지? E는 아닐 거야, I가 맞는데 I이긴 해도 T는 또 아닌 거 같아, 집안이 어질러진 걸 보면 J도 아닐 거 같은데… 뭐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멀찌감치 떨어진 관찰자 시점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구하느라, 사람을 만나고자 아침부터 일찌감치 일어나 거리로 뛰어나가는 그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혀를 차기도 했다. 아니, 이 사람이! 그 좋은 시간에 굳이 왜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뛰쳐나가?! 집에서 책이나 읽으라고! 시간이 아깝다…. 이런 생각들. 그런데 이 생각은 애초에 틀렸다. 왜냐하면 나는 앞서 말했듯이 빅토르처럼 철저히 혼자였던 적도 없고 사랑에 우정에 애정에 굶주려 본 적도 없으며. 늘 어떤 애정이나 우정의 상태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 안온한 상태에 머물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책이라는 세계, 글자로 이루어진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빅토르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밤에 잠들어서도 늘 철저히 혼자라면, 그것도 그가 어떤 진실한 애정이나 우정의 대상도 없이 그 감정을 스쳐지나가는 온갖 사람들로부터 구해야 할 지경이라면, 거기서 일말의 희망을 품어야 할 지경이라면 책이, 글자가 눈에 들어올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마치 몇날 며칠 빵 한 덩이조차 구하지 못해 굶주림 속에 놓인 사람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인의 진솔한 애정은 그에게 이 빵 한 덩이와 같다. 아니 어쩌면 ‘진솔한’ 애정조차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에게 조금의 호의, 관심만 보여주어도 그에게는 빵 한 덩이가 아니라 최고급 부위의 스테이크 한 조각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있다. 빅토르는 타인의 조그만 호의나 연민 또는 동정, 호기심을 지나치게 크게 받아들인다. 과대해석하고 곧 망상에 빠진다. 아마도 그에게는 현실 속 인간관계가 너무나 부재했기 때문에, 그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망상과 달리 실전에서 어떻게 인간들이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학습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에, 그는 타인의 조그만 행동도 지나치게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나가는 여자가 조금만 웃어줘도 혼자만의 생각에서는 결혼 날짜잡고 예식장 알아보고 있는 격이랄까. 그는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이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많이 하는데, 무엇보다 이 남자가 여자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가서 ‘닐 스트라우스’라도 만나보고 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이지만 하지 말자, 그냥 빅토르가 더 나은 것 같다). 그만큼 안타까움이 치솟는다.

에마뉘엘 보브의 <나의 친구들>은 제목이 ‘나의 친구들’이지만 사실 이 책에서 주인공 빅토르에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뤼시 뒤누아’, ‘앙리 비야르’, ‘뱃사람 느뵈’, ‘신사 라카즈’. ‘블랑셰’ 등 각 장은 빅토르가 만나고 관계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한쪽 팔이 불편한 채로 돌아온 빅토르는 얼마 되지 않는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아침에 눈뜨면 거리로 나가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그날그날 누군가를 만나기를, 그리하여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새로운 관계-친구든 연인이든-가 만들어지기를 학수고대한다. 때로는 그 간절한 소망도 응답을 받아 이 남루한 차림의 사내에게 누군가가 다가오기도 하고, 또 이 소심한 망상쟁이가 아주 큰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정말로 운이(?!) 좋아서 여자와 잠자리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딱 그뿐. 더 이상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근데 빅토르, 왜 한 번 잤다고 여자가 뭘 더 줄거라고 기대해?! 그럼 안 된다고!!).

우정을 기대했던 사람은 때로 그의 등을 처먹기도 하고, 그가 베푼 호의를 값싼 유흥에 탕진하기도 한다. 빅토르 그 스스로 누군가의 선의(또는 동정)를 잘못 받아들여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고독에 짓눌려 누구라도 친구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다가도 정작 인연이 싹튼 타인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자기 기준에서 조금만 어긋나버리면 가차 없이 그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한없이 소심한 데다가 자존감이 매우 낮은 인물인데도, 그가 원하는 사람은 딱 정해져 있다. 그가 원하는 건 “불행한 친구”이다. 그처럼 “있을 곳이 없는 사람, 같이 있어도 의리나 은혜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가난하고 착한 사람”(61쪽). 딱 그런 사람을 원한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조금이나마 빅토르 그 자신이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까닭은 이처럼 소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도 관계에서 자신이 조금만 우위에 놓이는 것 같아 보이면 그 권력을 한없이(조금이라도 더) 즐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권력은 ‘돈’에서 생긴다는 것을 꿰뚫어 본다. 연금으로 근근이 먹고살아가는 빅토르인데도, 이 작품에는 그보다 더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아니면 그런 상태인데도 허영 때문에 그걸 숨기는 인간군상이 등장하고 그들에게 돈으로 호의를 살 때면 빅토르 그 자신도 -관계에서의- 권력자 노릇을 톡톡히 즐기게 된다. 빅토르가 가난한 상황에서도 그 알량한 푼돈으로 관계에서의 권력을 조금이라도 누린다면 애초부터 가진 게 많아서 돈으로 이런 하층민의 마음을 살 필요가 없는 ‘라카즈’ 같은 인물은 이들을 그저 동정의 대상-구제해줘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이렇게 기울어진 관계에서 친구를 꿈꾸는 빅토르의 모습은 안쓰럽다가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가 이처럼 소심하고 이처럼 과대망상 환자에 가까울지라도 만일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면 그 근처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몰렸을 것이다. 많지는 않았더라도 이토록 철저히 고독한 상태였을까?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빅토르가 원하는 진솔한 애정이나 우정에는 기대에 못 미쳤을지라도 사람들은 그의 돈이나 배경 등에 굶주려 그 근처를 배회했을 것이다. 친구인척 연인인척.....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관계란 참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덧없고 허망한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상처받지 않으려면 우선은 자기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빅토르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해줬다가 이 인간이 들러붙을까봐 좀 무섭기도 하다.

게다가 이 작품 속 가난한 인물들 모두가 딱히 말은 하지 않지만 빅토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뤼시, 비야르, 느뵈, 블랑셰… 그들이 빅토르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빅토르와 어쨌든 상대를 해주었던 것은 그들 또한 빅토르의 신세와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고독한 상태를 다른 방식으로 잊고자 안간힘을 썼을 뿐. 외젠 다비의 <북호텔>에 그려지는 파리 하층민의 삶처럼 하나 같이 고독하고 쓸쓸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산다. 물론 죽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빅토르-가 내민 도움에 손길에 그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빅토르의 호의를 유흥비로 탕진할지언정 그때 그 순간 그의 눈은 빛난다. 산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나날의 반짝거림에 기대에 그날그날을 견디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빅토르에게는 그 반짝거림이 애정이고 우정이겠지만..... 그렇다면 이 친구야, 그 애정을 먼저 자네 자신에게 줘보는 것은 어떻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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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11-27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소설이 너무 궁금하고 읽고 싶게 만드는 잠자냥 님의 리뷰!
아래 <진>도 리뷰 써주실 건가요? 100자평으로는 부족한데...

잠자냥 2023-11-27 16:55   좋아요 0 | URL
주말에 책을 좀 정리해서 내다팔았는데 이 책은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ㅎㅎㅎㅎ

잠자냥 2023-11-27 17:44   좋아요 1 | URL
<진>은 한번 더 읽고요! ㅋㅋㅋ

공쟝쟝 2023-11-27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래의 잠자냥이 쓴 오지랖 조언을 읽고, 과거의 빅토르는 자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눈 뜨고 읽었고 ㅋㅋㅋ 읽고 와서 다 시 보겠어요.)

잠자냥 2023-11-27 20:25   좋아요 1 | URL
오지랖자냥의 오지랖리뷰 ㅋㅋㅋ

은오 2023-11-27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읽은 책에 대한 잠자냥님의 리뷰는 더 재밌네요 ㅋㅋㅋㅋ
진짜 말씀대로 빅토르처럼 철저히 혼자라면 책도 눈에 안들어올 것 같아요. 😭 처절하게 외로운데 책이 무슨 소용... 또 외로우니까 다급해지고 다급해하니까 사람들이 안좋아하고 결국 또 외로워지고 이 반복이 주디스헌이랑 같은 꼴 ㅠ
전 잠자냥님이 고픕니다 잠자냥님을 갖지 못해서.... 이 결핍은 잠자냥님과의 결혼만이 해결해줄수있다..

잠자냥 2023-11-27 20:25   좋아요 1 | URL
원래 읽은 책 리뷰가 더 재미있죠. 영화도 그렇고…

오늘 으슬으슬 춥고 배고프죠? 밥 먹어….

다락방 2023-11-27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외롭고 고독한 다락방 입니다... 훌쩍.

이거 읽어야지. 아마 읽으면서 남주 욕 천 번 할 것 같지만. ㅎㅎ 분명 제 감상에도 ‘친구하기 싫은 타입‘이라는 말이 들어갈 것 같아요.

잠자냥 2023-11-27 20:24   좋아요 1 | URL
천 번은 아닐지도… ㅋㅋㅋ 중간 중간 웃겨주는 센스 ㅋㅋㅋ

다락방 2023-11-27 21:43   좋아요 1 | URL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7 21:49   좋아요 0 | URL
역시 슬프고 외롭고 우울할 땐 책지름 ㅋㅋㅋㅋ

구단씨 2023-11-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낫.
저라는 인간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성향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긴 한데요.
빅토르 이 청년은 정말 궁금해질 정도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네요.
어쩌면 그의 과대망상 증상은 진료 받았다면 진단이 내려졌을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또 혼자인 빅토르 옆에 사람을 붙게 하는 건 돈이라는 쓰고도 쓴 현실이 똬아 펼쳐지니, 급우울해지는군요.

잠자냥 2023-11-28 05:16   좋아요 0 | URL
ㅋㅋ 제 리뷰 속 빅토르는 그나마 덜한 걸지도 몰라요. 책 읽다 보면 더 어처구니 없어요. ㅋㅋㅋㅋ 돈이 참 무엇인지…! 동서양 예전지금 가리지 않네요… ㅎㅎ

페넬로페 2023-11-27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뭡니까?
은근 외로울 여지가 없었던 잠자냥의 인생 자랑 아닙니까?
옆에 계속 애인이 있었으며 학교 다닐때는 인기가 쫌 있었다는~~
그런면에서 이 외로운 남자 얘기를 좀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잠자냥 2023-11-28 05:18   좋아요 2 | URL
아니 이것이 자랑?! ㅋㅋㅋㅋ 빅토르가 보기엔 그렇겠습니다. 아마 속으로 분하게 여길지도 ㅎㅎㅎ 이 책 재미 있습니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고요.

새파랑 2023-11-28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울 틈이 없었던 잠자냥 님~!!
책도 여유가 있어야 읽어지는거 같아요.
빅토르 INFP가 맞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가는길

잠자냥 2023-11-28 10:01   좋아요 1 | URL
책은 확실히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읽히긴 해요. 그러니까 여기 서재 분들은 마음은 부자!
빅토르 INFP 맞는 거 같음...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1-2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주디스 헌 만큼이나 친추 받아주기 싫은 그런 사람 빅토르..ㅋㅋㅋ
아니 근데 잠자냥, ˝애인이 없을 때가 없고˝ ˝친구들은 왠지 날 좋아해˝ 이 무심한 팜파탈이여.. 그냥 알라딘에 글만 썼을 뿐인데 팬덤도 생겼어. 이 매력 어쩔.
이 책 읽기 괴로울 것 같아요. 으.. 주디스 헌으로 충분해.. ㅠ

잠자냥 2023-11-28 16:31   좋아요 1 | URL
주디스냐, 빅토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어떡하지? 아아 어렵다.
그래도 책 자체는 빅토르가 더 재밌었다능.

그나저나 알라딘 팬덤이라기엔... 잠사모 회장 괭, 회원1 은바오뿐
역시 잠자냥은 동물한테 인기 많은 스탈~ ㅋㅋㅋㅋㅋㅋㅋ
 
에이스 - 무성애로 다시 읽는 관계와 욕망, 로맨스
앤절라 첸 지음, 박희원 옮김 / 현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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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책에 관심이 많아서 신간을 훑어보고 궁금한 책은 보관함과 장바구니에 담아두지만 그럼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있다. 어쩐지 완벽하게 나와는 관련 없을 것 같은 그런 책들. 예컨대 올해 초에 읽은 <성스러운 동물성애자>가 그러했고, 며칠 전 읽은 <에이스>가 그러했다. ‘동물성애자’라고?! 어질어질하구만, 그런데 정희진 쌤은 왜 추천한 걸까? 아무리 정희진 쌤 추천이라고 해도 이건 넘겨야겠다. ‘무성애(asexuality)’라고?!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구만...... 평소 LGBTQ 관련 책은 관심 있게 보는 편인데도 ‘무성애’를 다룬 <에이스>는 보관함에 담아두고 언제 읽을지, 과연 읽을지 기약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스스로 유성애자라고 생각하는 내가 무성애자의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하고 흥미를 느끼겠느냐 싶었던 것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한다고 일찍이 카프카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물론 나는 책이 언제나 도끼 역할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책을 발견하면 큰 기쁨을 느낀다. <성스러운 동물성애자>가 그랬듯이 <에이스>도 나에게는 도끼였다. 편견으로 얼어붙은 내 안의 바다를 와장창 깨뜨려준 도끼. <에이스>는 최근에 미미 님이 이 책 3부를 읽다 보면 은오와 잠자냥이 생각난다고 하셔서(이렇게 낚으면 진짜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급박하게 전자책으로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는데도 이 책은 꽤 몰입해서 읽었다). 땡투를 미미에게 해야 할까 애초에 이 책을 알게 해준 은오에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주머니 가벼운 학생에게... (그래봤자 160원)

그러고 보면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도 <에이스>도 이 어린 학생을 통해 알게 되고 읽게 되었다. 와장창 도끼를 두 번이나 선사해준 셈이니 고맙기 짝이 없다. 내 주변에서는 이 또래 중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그 스펙트럼도 넓은 편) 이 친구가 읽는 책은 좀 관심 있게 지켜보는 편이다(책 읽는 것에 비해 귀차니즘을 극복하지 못해 리뷰는커녕 100자평도 별점도 안 남기는 경우가 많음). 은오보다 조금 어린 내 조카는 어릴 때는 그렇게 많이 읽더니 이젠 질려버렸는지 책을 잘 읽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릴 때 다독가가 좋을까 커서 다독가가 더 좋을까? 아무튼 요 녀석한테 <동물성애자>하고 <에이스>를 선물해주면 어떤 얼굴로 나를 쳐다볼지도 좀 궁금하다......

인간은 나이 들수록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고 그 편견을 좀처럼 깨지 않으려고 한다. 그 편견이 유일한 정의(定義)이자, 정의(正義)라고 믿고는 자기 의견만이 참이고 옳음이라고 생각해서 도무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상태를 늙음이고 꼰대라고 생각한다. 그런 꼰대는 되지 말자고 마음먹었기에 은오의 책장 목록을 지켜보고는 하는데, 그런데도 내 꼰대력이 나도 모르게 발동/상승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처음에 은오가 자신을 ‘에이스’라고 규정한 것을 보고 좀 웃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조금 했기 때문이다. ‘엥!? 이제 겨우 20대에 무성애자라고? 에이.... 아직 제대로 안 해봐서 그렇지, 에이, 나이 들어봐라, 에이. 진짜 좋은 사람 만나봐라.... 서른 넘고 사십에도 무성애자라고 하면 인정!’ (아........부끄러우니까 좀 웃겠습니다.......ㅠㅠ) 그렇다 이런 개꼰대 같은 생각을 조금이나마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선언하는 어린 처자들을 봐도 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마흔 넘고 쉰 넘고 그래도 그러면 인정. 그런 심정이랄까. 20대에는 뭔들 선언을 못 하겠니 싶은 심정(와 개꼰 잠자냥 ㅋㅋㅋ). 아니, 그냥 자신을 뭐라고 규정하는 일 자체가 좀 우스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니까 뭐랄까 트위터에 자신을 페미니스트이자 비혼주의자이자, 비건이자 우울증환자이자 ADHD이자 INTJ라고 소개하고 있는 꼴을 보면 오그라들어서 내가 쥐구멍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그런 감정과 비슷하달까. 선언보다 조용한 행동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자기를 설명하려고(또는 과시하려고) 붙이는 액세서리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꼰대 마인드로 이 책을 펼쳐들었다가 여러 번 도끼로 쳐 맞았다. 나는 이제 무성애가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적 지향’이라는 것을, ‘성적 끌림’과 ‘성적 충동’은 다르다는 것을, 로맨틱한 감정이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나는 좀 보기와는 달리 로맨틱해서 다들 로맨틱한 감정은 타고나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성애자들이 로맨틱한 감정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책의 분류들을 통해 보자면 나는 유성애자라기보다는 반(半)성애자(Demisexual)에 가깝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일 자체가 또 하나의 위계나 차별, 주의(ISM)를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예컨대 이 책에 따르면 반성애자(Demisexual)란 누군가에게 강한 정서적 유대가 생긴 이후에만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그러니까 원나잇이라든가, 어떤 술집에 딱 들어가서 처음 보는 누군가와 ‘하고 싶다’를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회색무성애자의 부분집합으로 간주되어 조롱당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무성애를 하나의 성적 지향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조차 반성애자는 ‘정상’인이 심오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맥박만 뛰는 대상이면 뭘 봐도 하고 싶어 하는 섹스에 미친 인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쓰는 독선적인 용어라고 폄하한다고 한다(아니거든!) “사람들 앞에서 내가 반성애자라고 말하고 의미를 설명하면 이 말이 특별하다는 기분을 느끼려고 쓰는 또 다른 이름표라 생각하거나, 아니면 여러 명과 자는 사람을 내가 경멸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컬럼비아 대학 재학생 저시 산의 말이다. 반성애자 무시가 만연하다 보니 산은 이 단어를 완전히 버리고 그냥 “다른 사람한테 끌림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라고 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알라딘 eBook. <에이스> 중에서). 또한 이런 식의 구분은 개별 정체성이 강조되어 성적 행동에 관해 계속해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분명 섹슈얼리티가 있고 오늘날 서구에서 섹슈얼리티는 정체성의 필수 요소로 여겨진다.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내가 무엇을 하는지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의 일부이자 내 진실의 일부로서 작동하지만 이것만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이 책은 분명히 지적한다.

저자가 중국계 미국인- 그러니까 동양인이라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무성애자사이에서도 존재하는 인종 차별적 요소를 꿰뚫어 본다. 초기 페미니즘 운동이 중산층 백인 여성의 전유물과 비슷했듯이 오늘날 자기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선언하는 일도 젊은(20대) 백인 여성, 그것도 고학력 중산층 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진실’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인간이 무언가를 선언할 때 그것이 진실에 가깝게 받아들여지는 것조차도 서구 백인 남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동양계 젊은 여성이 무성애자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일은 종종 그 의도를 오해받거나 또 다른 성적대상화를 불러오지만, 흑인이나 히스패닉 여성이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선언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말은 이 초성애화된 세계에서 흑인 여성과 히스패닉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그 얼마나 공고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이 무성애자로 선언하기도 어렵지만 애초에 장애인은 성적 욕구가 없는 존재이거나, 성적 욕구가 없어 마땅한 존재라고 치부하는 이 세계의 기묘함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성해방이 가져온 폐해랄까, 페미니즘이 불러온 성해방의 분위기도 무성애자들에게는 폭력적이었음을 지적한 장도 흥미롭게 읽힌다. 섹스를 즐기는 것은 자기 해방을 마쳤다는 증거이며, 이런 해방의 비전이 페미니즘 연단을 지배했을 때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은 퇴행적이고 보수적인 정치 신념을 지지한다는 표지가 된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억압’은 ‘해방’의 반대말로 문화적으로 리버럴한 집단에서는 성적으로 보수적인 여자를 대개 성적으로 억압된 여자로 간주하고, 성적으로 억압된 여자를 자유 이전 시대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적으로 억압된 여자는 동정의 대상이자 진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된다. 섹스를 하지 않는 여자를 묘사하는 데 쓰는 단어(비성관계, 금욕, 순수, 순결)는 저자 자신조차 경멸하는 것으로 도덕주의적인 느낌이 나는 것에 비해 섹스하는 여자를 묘사하는 데 쓰는 단어(자유, 역능, 대담)는 긍정적이다. 그래서 저자조차 “억압된 여자, 해방된 여자라는 전형과 매끈한 클리셰”를 받아들이고자 애를 썼다고 고백한다. 대중문화가 이런 분위기를 널리 유포하기 시작했고, 섹스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여자가 그렇지 않은 여자보다 더 페미니스트답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초성애화된 지구에서는 이런 식으로 성이 상품화되고 페미니즘조차 상품과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개인 브랜드를 팔기 위한 유행어가 되어버린다.

“섹스는 정치적이다. 쾌락을 즐길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 무엇이 관습을 위반한다고 여겨지는지, 그리고 섹스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는 건 정치적이다. 섹스와 페미니즘과 해방의 의미는 빈곤 여성과 유색인 여성, 장애 여성, 신앙이 있는 여성에게 모두 다르다.”는 구절은 그렇기에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또한 사회는 성을 팔기 위해 계속해서 이성애 로맨스 중심의 가치를 강화한다. 섹스가 뭔지, 섹스를 어떻게 하는지, 섹스는 얼마나 해야 하는지, 섹스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좋은 성생활이 무엇인지 주구장창 가르치는(세뇌시키는) 것이다. 그것 없이 작동하지 않는/못하는 자본주의 상품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알라딘에서조차 로맨스 빠진 책보다는 로맨스가 한 스푼이라도 들어간 책들이 더 잘 팔린다.

어제는 러닝 타임 328분의 일본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에서는 30대 후반 네 여성의 삶이 그려진다. 저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데, 그중 한 여성이 친구에게 부부 관계를 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면서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우울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래전 본 프랑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증거로 “우리 사이에 섹스 안 한 지 한 달이 넘었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한 달인지 두 달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난 좀 이게 충격이었다. 아니 한 달이? 왜? 역시 프랑스놈이라 그런가 싶었다. 어제 본 일본 영화에서는 1년 가까이 안 했다 뭐 그랬던 것 같다. 여기서도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섹스는 허구한 날 주구장창 하는 커플이 있는데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아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사이라면, 그들은 사랑하는 것일까? 그와 달리 늘 서로의 머릿속/마음속을 알듯이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나누지만 섹스는 거의 하지 않는 커플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게다가 저 두 영화에서 보듯이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즉 얼마나 자주 하느냐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일본인은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해서 사랑의 여부를 고민하는데 프랑스인은 그 기준이 한 달에 한 번이다. 이 얼마나 기묘한가.

초성애화된 지구, 강제적 이성애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성애자라는 믿음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이성애가 기본값이자 유일한 선택지라는 생각을 강화한다. 또 정상인은 모두 성적으로 활발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있으며 당신은 아픈 것이고 우울증이며 사회가 승인한 섹스를 원치 않는 건 부자연스럽고 잘못되었다고, 섹슈얼리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필수불가결한 경험을 놓치고 있다고 다그친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인간 모두에게 억압이고 폭력이다. “지도는 땅이 아니다.” 저자는 폴란드 철학자 알프레드 코르집스키의 격언을 인용한다. 지도는 실재하는 세상을 단순화해 재현한 것이며, 실제 땅은 언제나 화면에 표시된 것들보다 풍성하다. 그러나 지도와 단순화는 여전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모든 모형은 틀리지만 그래도 일부는 유용하기 때문이다. 모든 재현에는 한계가 있으나 훌륭한 재현이라면 시선의 폭을 넓혀준다. <에이스>는 내 인식의 지도를 한결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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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1-22 16: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은오곰에게 바치는 러브레터인가요?
은오에게 강한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잠자냥..

근데.. 러닝타임이 328분이라고요..?? 그걸 한자리에서 다 보신 건아니쥬? 🫢

잠자냥 2023-11-22 16:59   좋아요 3 | URL
이눔아! 탈로맨스가 시급하다! 괭!! ㅋㅋㅋㅋ

한자리에서 다 봤습니다... 어제 그거 보려고 연차 냄.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3 03:00   좋아요 2 | URL
엥?! 괭 왜 안 자?!?!

독서괭 2023-11-23 07:26   좋아요 1 | URL
애가 발로 차서 깼어요….
근데 328분을 한자리에서 보다니 대단..!!

미미 2023-11-22 17: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성을 팔기 위해 계속해서 이성애 로맨스 중심의 가치를 강화한다.‘이 부분 격하게 공감합니다.
너무 할 말이 많은 책이라서 독후감 쓰고 제 한계에 답답했는데 잠자냥님 리뷰 읽으니
속이 후련하네요!ㅋㅋㅋㅋㅋㅋㅋ

160원에 마음이 쪼끔 아프지만 상대가 은바오니까 저는 괜찮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2 18:08   좋아요 2 | URL
미미 님 말처럼 주옥 같은 문장의 향연이었습니다. 대인배 미미 님은 160원에 연연하시지 않을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11-22 17: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두긴 했는데 아직 손에 안 들어와서 바로 읽지는 못하고 이것 참 궁금하네요. 잠자냥님 글 보니 더욱더 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2 18:09   좋아요 1 | URL
난티나무 님 필독서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단발머리 2023-11-22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는 좀 보기와는 달리 로맨틱해서 다들 로맨틱한 감정은 타고나는 줄 알았다........
-------- 바로 여기가 은오팬더의 공략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바랍니다.

성적 해방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성을 매개로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잔다고 해서 자유롭거나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걸 역이용하려는 남자들과 피임의 고단함에 대해...
잘 모르는 세계지만, 1초간 상상해봤음요.

은오 2023-11-22 20:05   좋아요 2 | URL
그부분 읽고 잠자냥님의 전애인들과 집사2님이 갑자기 더 시러졌습니다

잠자냥 2023-11-22 21:0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은오 댓글 보고 빵 터짐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1-22 21:04   좋아요 2 | URL
그 분들은 잠자냥님을 로맨틱한 분으로 믿고 있겠죠. 우리와는 다르게?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2 21:11   좋아요 2 | URL
비슷하게 느끼는 거 같아요. 까칠하고 차가운데 다정해서 또 잘 챙겨준다고….

은오 2023-11-22 2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 160원으로 <도시의 마지막 여름> 샀어여!!
2. 고맙기 짝이 없다고 하시지만 결혼으로 고마움을 표현해주시지는 않는 잠자냥님 😤
3. 그래도 별점은 거의 다 남깁니다...
4. 우와 진짜 꼰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꼰자냥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직접 그 말씀을 하진 않으셨다는 점에서 리얼 꼰대는 아니십니다. ㅋㅋㅋㅋㅋ
5. 저는 로맨틱한 감정은 느끼므로 잠자냥님을 사랑합니다.
6. 한국 랟펨들은 성해방-쿨걸문화 주체적섹시 안외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전 근데 메갈 전에도 진지하게 키스도 섹스도 하기 시른 내가 이상한건가ㅠ 고민했다는 사실
7. 책에 나왔던 것 같은데 무성애자들 보통 키스부터 거부감 느낀다고들 하지 않던가요 ㅋㅋㅋㅋ 전 팔짱 포옹 뽀뽀는 엄청 좋아해요 친구들한테도 뽀뽀합니다 잠자냥님한테 무한대의뽀뽀를 드릴수있음
8. 역시 잠자냥님 리뷰는......🥹
9. 오늘도 차오르는 결혼욕구

잠자냥 2023-11-23 09:44   좋아요 1 | URL
1. 땡투 들어온 거 보고 그런 줄 알았습니다.
2. 헐 고맙다고 결혼하면 상대나 나나 불행의 지름길. (라면에 이어 밑줄 쫙…. 고맙다고 결혼 금지)
3. 엥? 아니던데?!…. 아 별점… 별점은 남기더군요. 5별에 박한 편 ㅋㅋㅋㅋ
4. ㅋㅋㅋㅋㅋ 결국 이렇게 리뷰에서 말하는 왕꼰대
5. 네….
6. 네에….
7.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과의 접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팔짱 끼거나 손 잡으면 당황해서 “저기 좀 봐!”하면서 빼는 편.
8. 네에에….
9. 네……….

은하수 2023-11-22 2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의 성적 젱체성은 어디에 둘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존중받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껴요...
욕구가 생기지 않는 것이 마치 비정상인듯 매도하는 남성들의 그 눈빛과 사고방식도 제발 바뀌었으면 싶네요.
페이드포에서도 잊을 수 없는 눈빛이 있었는데
차마 적지는 못했어요.

잠자냥 2023-11-23 03:02   좋아요 2 | URL
어떻게 보면 은하수 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지점, 이렇든 저렇든 존중받고 싶다, 존중하자가 이 책이 전하고 싶은 가장 큰 핵심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생각해 보니 <페이드 포>도 그렇고 <에이스>,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모두 여성들이 자기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해서 그간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함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을 대변하고 그래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 공통점이 있는 책들이네요! 은하수 님도 분명히 흥미롭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DYDADDY 2023-11-23 00: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보면 누가 이 개념을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요. 이성애를 기준으로 잡고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으로 분화하여 고정관념을 생성시키는 것을 고민해 볼 때 전통적인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은 결국 ‘남성‘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섹슈얼리티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성적 대상화에 종속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에요.
성해방이라는 것도 왜 프리섹스를 외치는 쪽으로만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개개인이 상호동의하는 성적 선호도에 맡기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 아닌가 싶어요.
잠자냥님이 쓰신 글을 보면서 저는 어느 부류에 속할지 궁금해서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3 03:04   좋아요 2 | URL
기존의 대부분의 개념들은 결국 서구 백인 남성이 만들었거나 그들을 기준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그 기준에 어긋나거나 그들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은 모두 비정상 취급하거나 억압했지요. 섹슈얼리티 개념 또한 그렇지 않겠습니까? ㅎㅎ
분명 성해방이 프리섹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 않을 자유, 하고 싶지 않은 자유, 성담론 자체를 거부할 자유 그 모든 게 존중되는 것이 진정한 성해방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책 바로 읽고 싶어서 전자책으로 주문했는데요, 받아보니 전자책 발행일이 11월 21일이더라고요?! 아주 따끈따끈한 전자책으로 대디 님도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듯합니다.(참 이 책에는 지정 성별 남성들의 다양한 사례도 등장합니다!)

DYDADDY 2023-11-23 09:07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 탈식민주의에서 항상 거론되는 존재가 ‘서백남‘이지만 함께 극복해야 할 것이 ‘로컬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체화된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니까요.) 도끼로 얼음을 깨 듯 하나씩 바꾸려고 노력(정말 노력만일 수도 있겠지만요.. ㅠㅠ)하고 있어요.
그런데.. 잠은 언제 주무시나요?.. (잠자냥 야행성냥 설)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3 09:45   좋아요 2 | URL
원래 고양이가 새벽에 잠 없는 거 모르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다다 하느라 바쁨요. ㅋㅋㅋㅋ

DYDADDY 2023-11-23 09:51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 밤에는 우다다 하지만 낮에는 햇살 따뜻한 베란다의 최애 의자 위에서 자야 하는데.. 츄르를 벌기 위해 출근을 하시니까요. ㅋㅋㅋㅋ 육고님들과 집사2님, 은오님과 오래 즐거우시기 위해서라도 잠은 잘 주무시기 바라요. ^^

잠자냥 2023-11-23 10:10   좋아요 0 | URL
네?? 마지막에 은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YDADDY 2023-11-23 10:12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 엄....

그럼 만날 업고 다니시는 푸은오로 수정할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1-23 20:22   좋아요 2 | URL
저랑 오래 즐거우실 생각은 안하시는군요....
 
사랑에 대하여 찰스 부코스키 테마 에세이 삼부작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 나에겐 길티 플레저 같은 인물인가. 현재 부코스키 마니아 2위에 올라 있는 나는, 이 사실이 좋으면서도 싫다? 아니 싫지는 않구나- 그냥 좀 웃음이 나올 뿐. 부코스키는 정말이지 나에겐 약간 의외의 인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어제도 늦은 밤 그의 시집을 읽다가 캬- 좋네, 캬- 술 마시고 싶네. 캬…. (여기에서 말줄임표로 생략한 생각을 100자평으로 남겼더니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항의가 빗발쳐 자진 검열. 아이쿠 아기들.)

부코스키를 처음 만난 것은 <여자들>과 <팩토덤>이었다. 별 내용 없다. 술 먹고 사고 치고 연애하고 싸우고 술 먹고 사고 치고 연애하고 글 쓰고 섹스하고…. 그 후로도 이 인간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족족 읽었다. 이것도 거의 별 내용 없다. 술 먹고 사고 치고 연애하고 싸우고 술 먹고 사고 치고 연애하고 글 쓰고 섹스하고…. 시를 쓰고 작가가 되어 여자 “따먹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따먹는”다는 표현, 나는 극혐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부코스키를 읽다 보면 정말 이 표현이 딱이라서 이것 외에 다른 말을 쓰기가 좀 애매하다. 잠자냥, 당신의 성향을 그간 지켜보건대, 이 작가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의왼데? 싶어질 것이다.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의구심을 가진 녀석이 있었다. 내가 이 작가 책을 계속 읽는 걸 보고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니가 안 좋아할 거 같은 작가인데 왜 자꾸 읽어? 뭐가 있어?” 그랬다. 과거 <여자들>이나 <팩토덤>을 읽고 남긴 평, 부코스키를 읽고 나서 하는 소리를 들으면 부코스키는 내가 절대로 좋아할 부류의 사람이거나 작품이 아닐 텐데, 이 인간을 계속 읽어대고 있으니 친구가 궁금해질 만도 했으리라. 나의 머릿속이 궁금해진 친구는 그래서 어느 날 나를 이해해 보고자 <호밀빵 햄 샌드위치>을 읽어봤단다. 그러고는 말했다. “니가 왜 좋아하는지 알겠다.” (<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그나마 이 인간의 작품 중 아름다운(?) 성장담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부코스키는 척하지 않는다. 허영, 허세, 가식이 없다. 위선도 떨지 않는다. 날것 그대로의 표현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워워 이게 뭐야 이것도 문학이야?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척하는 작가들, 시인들 너무 질리지 않은가? 문학이 어쩌고 하면서 뒷구멍으로 구린 짓은 다하고 앞에서는 근엄진지 척하는 거 너무 토 쏠리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부코스키, 또는 그의 분신 차나스키는 그러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냥 대놓고 구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여자들이 대놓고 몸을 던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솔직함에 반해서? 아니 이 사람이 술에 취해서 시를 읊어주면 반해버린 것인지도 몰라........(난 아님)- 부코스키가 여자를 몹시 좋아한 것도 맞지만 여자들도 그에 못지않게 이 비루한 남자를 좋아한다. 왜냐면, 잘 보면 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할 줄 알거든.



한밤에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당신의 코 고는
소리를 듣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당신을 만났지
그리고 나는 지금 병적으로 하얗고
아이들의 주근깨로 얼룩진
당신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어
그동안 등불이 당신의 잠에서부터
풀지 못할 세계의 슬픔을
내려놓지.

당신의 발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발이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야.

당신은 누구의 사람이지?
실재 존재하는 건가?
나는 꽃과 동물과 새를 생각하지
그것 모두가 너무나 좋고
너무나 선명하게
진짜처럼 보여.

(........)

하지만 나는 알아 당신은
동시대의 것, 현대의 살아 있는
작품
불멸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사랑했어.

부디 계속
코를 골기를. (<자는 여인> 부분)



자신이 비루하기 때문에 여자들의 비루한 모습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이 책에 실린 시들 속에서 여자들은 그다지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는다. 술에 취했고 토하고 싸우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다 떨어진 속옷 차림의 또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몸매로 그의 앞에 서 있거나 (대개는) 누워있지만 그는 그럼에도 사랑한다. 다정하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 “뜨겁고 차가운 여자들/나는 사랑을 잘해, 하지만 사랑은 그저/섹스만은 아니지,” 그러나 그가 아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무척 야심이 크다. “그리고 나는 오후 3시 매트리스 위 커다란 베개 위에서 빈둥대며 누워 있기를 좋아하지, 나는 저기 세상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햇빛이 바깥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는 게 좋아, 나는 너무 잘 알지, 온갖 더러운 책장들,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한 후에 천장을 향해 빈둥빈둥 누워 있는 걸 좋아하지 (,,,,,) 먹고! 사랑을 나누고! 자고! 먹고! 사랑을 나누고!” (<갈가리 찢겨 나간 인간 생명의 소리가 들려와> 부분). 야심 없이 사랑에 충실하고 현재에 충실하고 사랑을 한 후에 천장을 바라보며 빈둥빈둥 누워 있기를 즐기는 자.

세상의 어떤 허영 허세 가식을 벗어던지고 사랑, 그 자체에 충실한 인간. 그리고 글쓰기를 그 사랑 못지않게 뜨겁게 사랑한 인간. 그래서 그의 시에는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고 글을 쓰는 자기에 관한 묘사가 많다. 때로는 그것이-사랑이 글쓰기가 중첩되기도 한다. “한 남자가 글을 쓰는 방식 때문에/한 여자는 그를 만날 수도 있지/그러면 곧 그 여자는 다른 식의 글쓰기를/제안할 수도 있소.// 하지만 남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면/그는 그가 쓰던 대로 계속 글을 쓸 거요/그리고 남자가 시를 사랑하면/그는 자신이 써야 하는 대로 계속 글을 쓰겠지// 그리고 남자가 그 여자와 시를 사랑하면/그는 세상 어떤 남자보다도 두 배 더 많이/사랑이 뭔지 알고 있겠지// 나는 사랑이 뭔지 알아요./이 시는 그 여자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려는 거요.” (<어떤 비평가 나부랭이에게 보내는 답변> 전문)

부코스키의 사랑은 이렇게 주로 여자들과 글쓰기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지만, 때때로 자신의 딸을 향한 부성애로, 또 자기를 발굴해준 편집자를 향한 동료애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럴 때의 그는 또 한없이 다정하고 성실하다. 그리고 그 언어들은 대게 날것 그대로이다. 미사여구가 없어서 투박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진솔하게 다가오는 고백들. 부코스키를 사랑하고 그의 곁에 머물다간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서 보았던 것도 그 진솔함 아니었을까(솔직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잖아.....?) 그리고 뭐랄까 부(富)와 명예를 향한 집념보다는 부가 넘치는 세상임에도 모두가 거기에 미쳐 자신을 팔아먹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신, 그럼에도 그 생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았던 이 가식이라고는 모르는 인간의 글쓰기, 시 쓰기를 향한 열정에 반해버린 것은 아니었을지. 그러니까 이런 태도. “그걸 잊지 마, 비록 시가 돈은 안 되지만/죽음이 다가오고 석유가 터지길 기다리면서/야생 칠면조를 쏘면서 세계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면서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내가 돈줄을 창문 너머로 차버렸던 날> 부분) 이런 자세 말이다. 나는 그의 이런 면이 좋던데.

그렇게 아끼는 시이기 때문에, 그는 시를 가져간 여인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젠장/열두 편의 시가 사라졌고 난 복사본도 없어 그리고 네가/ 내 그림들도 가지고 갔지, 가장 좋은 작품들을. 거 답답하군/너 다른 놈들처럼 나를 뭉개버리려는 거야?/차라리 내 돈을 가져가지 그랬어? 사람들은/ 길모퉁이에 토하고 자고 있는 술주정뱅이의 바지에서 돈을 훔쳐 가잖아.//다음번엔 내 왼팔을 떼어 가든지 50달러를 훔쳐 가/하지만 내 시는 안 된다고 /내가 셰익스피어는 아니지 하지만 언젠가는 그냥/더는 시를 못 쓸 거야 (...........) //하지만 하느님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말씀하셨지/ 수없이 많은 시인을 만들었던 곳을 굽어보았지만/ 시는/별로 보이지 않더라”(<내 시를 가져간 창녀에게>부분). 시인은 많지만 시는 별로 보이지 않는 세상. 그 세상에서 부코스키는 술을 마시고 시를 쓰고 사랑을 한다. 그렇다고 사랑이, 이 세상의 전부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종과 같지 않아/그거 시적이긴 하네, 정말,/하지만 난 그녀의 목소리에서 다른 걸 들었지/내 비참함의 토사물 속에서/깨진 노란 이를 드러내고 싱긋 웃는/창문에 앉아 있는 죽은 머리 속에서”(<우편함에서 발견한 쪽지에 대한 대답> 부분). “사랑이 콜타르 바른 종이처럼 지속될 수”(<여기엔 파티가 있어> 부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름다움과 관련해서 가장 엄청난 사실은/그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유효기간 만료의 장난> 부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술과 사랑과 글쓰기에 현재에 충실했던 이 인간 부코스키. 길티 플레저라고 해도 좋아할 수밖에 없구나.


이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두 편을 소개해 본다.




첫사랑

한때
내가 열네 살이던 시절
조물주는 이게 기회라는
단 한 번의 느낌을 내려주셨지.

내 아버지는 책을 싫어했고
내 어머니는 책을 싫어했지(내 아버지가 책을 싫어했으니까)
특히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왔던
그런 책들,
D. H. 로런스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고리키
A. 헉슬리
싱클레어 루이스
기타 등등

난 침실을 혼자 썼지만
저녁 8시가 되면
우리는 모두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사람이 건강해지고 부유해지고 현명해진다."
아버지는 말하곤 했어.

"불 꺼!" 그렇게 소리쳤지.

그러면 나는 침실 등을
이불 밑에 넣고
뜨끈뜨끈한 열기와 숨겨놓은 빛과 함께
계속 책을 읽었어.
입센
셰익스피어
체호프
제퍼스
터버
콘래드 에이컨
기타 등등.

기회도 희망도
감정도 없던 자리에 그들은
기회와 희망과
감정을 가져다주었지.

나는 그걸 얻으려 노력했어.
이불 밑은 점점 뜨거워졌지.
가끔 전등에서는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혹은 시트에 -불이
붙을 것 같았고,
그러면 난 전등을 끄고
밖으로 내놓아
식혔지.

이런 책들 없이
내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꺼버렸을지
지금도 알 수가 없어.
외침,
살인자 같은 아버지.
어리석음, 무능,
칙칙한 절망.

아버지가 “불 꺼!"
소리쳤을 땐
두려워했던 게 분명하지.
우리의 최선을 다해
상냥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잘 쓰인 글들을,
제일 재미있는
문학 작품을.

그리고 그것들은 바로 거기 있었어
내 가까이에
이불 아래
어떤 여자들보다 더 여자처럼
어떤 남자들보다 더 남자처럼.

나는 그 모두를 가졌어
그리고 받아들였지.







어떤 정의(定義)

사랑은 그저 한밤에 안개를 훑고 달려가는
헤드라이트일 뿐

사랑은 그저
화장실 가다 밟아버린
맥주병 뚜껑일 뿐

사랑은 술 취했을 때
잃어버린 대문 열쇠

사랑은 일 년에 하루
십 년에 한 해
일어나는 일

사랑은 우주의
짓뭉개진 고양이들

사랑은 이제는 포기해버린
길모퉁이의 늙은
신문팔이

사랑은 올림픽 오디토리엄의
맨 앞 세 줄에 앉은
잠재적 살인자들

사랑은 네 생각에는
상대가 파괴해버린 것

사랑은 전함의 시대와 함께
사라져버린 것

사랑은 울리는 전화와
똑같은 목소리 혹은 바로
그 목소리가 아닌
또 다른 목소리

사랑은 배신
사랑은 뒷골목 술주정뱅이의
타오름

사랑은 강철
사랑은 바퀴벌레

사랑은 우편함

사랑은 로스앤젤레스의
가장 싸구려 호텔
지붕 위에 내리는 비

사랑은 관에 누운
너를 싫어하던 아버지

사랑은 다리 한 짝이
부러진 채로
5만 5천 명이 보는
가운데
일어서려고 하는 말

사랑은 바닷가재처럼
우리가 삶아지는 방식

사랑은 입에 물었으나
잘못 불붙인
필터 담배

사랑은 우리가 아니라고 말했던
그 모든 것

사랑은 노트르담의
꼽추

사랑은 찾아낼 수 없는
벼룩

사랑은 모기

사랑은 근위 보병 50명

사랑은 요강을
비우는 사람

사랑은 퀜틴 교도소의 폭동
사랑은 만원인 정신병원
사랑은 파리가 들끓는 거리의
똥 싸는 당나귀

사랑은 아무도 앉지 않은
술집 의자

사랑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오그라들어 산산이 부서지는
힌덴부르크 호를 찍은 영화

사랑은 룰렛 바퀴를 탄
도스토옙스키

사랑은 땅 위를
기어가는 것

사랑은 낯선 사람에게
바싹 달라붙어 춤추는 너의 여자

사랑은 빵 한 덩이를
뜯어내는 늙은 여자

사랑은 끊임없이
그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쓰이는 단어

사랑은 빨간 지붕이고 초록
지붕이고 파란 지붕이고
제트키를 타고 날아가는 것

그게 다야.



변태 수집인가.... 변자냥.




캬- 어젯밤에 읽어도 좋더니 비 오는 오늘 읽어도 좋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는 와인을 한 병 사야겠다. 그것도 싸구려 와인. 그리고 그 싸구려 와인을 와인잔이 아닌 투박한 유리컵에 따라 마셔야겠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나누고 그리고 시를 쓰고......


묻지 못하던 것
                      -잠자냥


어제
드디어 물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단지에 담아 볕 잘 드는 집안
창가에 두었다고

털복숭이 단지가 되어
돌아왔구나
웃다가 운다

울지 마
인생도 그래
살덩이가 먼지가 되는 것

먼지가 될 살덩이
아끼지 마
사랑하고 사랑받고
불태워

그래도 라면 먹고 가,
그건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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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16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로 그 시끄럽게 코를 고는 여자인데 말입니다. 흠흠.

책읽는나무 2023-11-16 15:51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바로 저였어요!
잘 때 코 고는 여자!ㅋㅋㅋ

다락방 2023-11-16 15:57   좋아요 2 | URL
앗 책나무 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지여!!

잠자냥 2023-11-16 16:11   좋아요 1 | URL
그러나 그대들은 부코 할배를 좋아할 리가 없고....

책읽는나무 2023-11-16 16:29   좋아요 0 | URL
동지!!!🫂

책읽는나무 2023-11-16 16:35   좋아요 1 | URL
전 좀 부코 할배 좋아질 것 같아요.
시인인 것도 오늘 처음 알았지만요.ㅋㅋㅋ
코 고는 여자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표현하다니...이제부터 자랑스럽게 코 골래요.^^
부코 할배 만세!!!

다락방 2023-11-16 15: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데 잠자냥 님 시도 잘 쓴다..

새파랑 2023-11-16 15:56   좋아요 0 | URL
부코스키 왠지 이부장님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희곡작가에 이제는 시인~!
라면만 국밥으로 바꾸면 좋을거 같습니다~!!

다락방 2023-11-16 15:57   좋아요 1 | URL
음..부코스키....다락방.....음.......음........글쎄요.......음.......그런가........음.......

잠자냥 2023-11-16 16:11   좋아요 1 | URL
다락방 너 지금 나한테 반했구나?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1-16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면 먹고 가는 신중해야 하나요? ㅋㅋㅋㅋ 마지막에 빵 터짐.
부코스키 하나도 안 읽었고 관심도 없었는데 궁금해지네요. 시 제목들이 재밌는 게 많군요. 내가 돈줄을 창문 너머로 차버렸던 날 ㅋㅋㅋㅋ 난해하지 않아 좋네요.
변자냥…

잠자냥 2023-11-16 16:39   좋아요 3 | URL
라면 먹고 가... 는 은오하고 약간 티키타카랄까? 밈(?)이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은오 님이 맞춤법 강의(4일차) 예문에서

3. 조사 ‘밖에‘ vs 명사 ‘밖‘
나한테는 잠자냥 님밖에 없어. (조사)
잠자냥 님, 추운데 왜 밖에 계세요? 저희 집에서 라면 먹고 가세요. (명사)

라고 해서...... 댓글에서.....


라면 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진짜 만나는 사람 생기면 라면 함부로 먹고 가라고 하면 안 돼 은오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만나는 사람한테도 안돼요? ㅋㅋㅋㅋㅋ
결혼도 안해주시면서!!!!!!!
아니 만나는 사람은 돼죠. ㅋㅋㅋㅋ 근데 이제 그 타이밍을 잘 선택해서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이 두 페이퍼 댓글 참조... ㅋㅋㅋㅋ

https://blog.aladin.co.kr/euno/15029921
https://blog.aladin.co.kr/euno/15040233

잠자냥 2023-11-16 16:28   좋아요 0 | URL
부코스키 시 하나도 안 난해하고 바로바로 이해 가능.
이 시집은 그새 절판이네요.(우웅 전자책은 판매 중)
민음사에서 나온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요런 거 읽어보세요~


책읽는나무 2023-11-1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작가였나요?
인용해 주신 시를 읽으니 살째기 제 마음도 흔들리네요.ㅋㅋㅋ
사랑은 우리가 아니라고 말했던 그 모든 것!
음...깊은 뜻이 있어 보입니다.^^

˝먼지가 될 살덩이 아끼지 마.˝
저 말은 우리집 남편이 늘상 하는 말인데...자냥 님께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요.ㅋㅋㅋ

잠자냥 2023-11-16 16:28   좋아요 1 | URL
그냥 소박소탈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도 거의 그렇고요.
과다(?)한 성 묘사가 좀 싫을수도 있지만.... <호밀빵 햄 샌드위치> 같은 작품은 한번 읽어보세요.

아니 나무 님 남편분에게 부코스키의 피가!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11-16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글은 보통 눈에 잘 들어오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와요... (이런 댓글 남기지마!)

나중에 다시 볼게요...

잠자냥 2023-11-16 16:27   좋아요 0 | URL
어제 늦게 자서.....(시 인용하면서 / // 이런 기호가 중간에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도 몰라요)

물감 2023-11-1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에서 19금 장면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유인즉슨 글보다 영상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ㅎㅎㅎㅎ
아니, 글로 읽어가며 장면을 상상하는 게 뭔 재미인지 모르겄어요!!!!!!!!

잠자냥 2023-11-16 16:41   좋아요 0 | URL
근데 이 작가는 좀 신기한게 그런 장면을 묘사(?) 하지는 않아요. 묘사는 오히려 헨리 밀러 이런 인간들이 징글징글하게 하는 듯...

은오 2023-11-16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시 읽으니까 어젯밤에 갈긴 제 시가 부끄러워지네요 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님은 왜 시도 잘쓰세요? 🥹
제가 살덩이는 좀 아껴서 신중하지만 마음은 안아낍니다 ㅋㅋㅋㅋ 온 마음을 드리리!!!!!

잠자냥 2023-11-16 20:33   좋아요 1 | URL
왜요 잘 썼어요. 2분 만에 천재 시인 탄생. 저는 3분 만에 썼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1-16 20:36   좋아요 2 | URL
역시 잠자냥님............
누가 또 반해서 결혼신청할까봐 겁나네요 ㅡㅡ

잠자냥 2023-11-16 20:38   좋아요 3 | URL
괜찮아요. 내가 안 해 줄 거라서…

은오 2023-11-16 20:41   좋아요 1 | URL
엥 근데 저랑도 안해주시는게 문제
안괜찮군요

잠자냥 2023-11-16 22:01   좋아요 1 | URL
아니 근데 잘 들어봐요
“사랑은 술 취했을 때 잃어버린 대문 열쇠“
”사랑은 뒷골목 술주정뱅이의 타오름”

안 좋아???!! 캬 술 땡(x) 댕기네…

은오 2023-11-16 22:16   좋아요 1 | URL
제가 잘생긴 무성애자를 못찾은 관계로.. 그렇게 찐한 사랑을 해본적이 없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ㅌㅌ 솔직히 아뭔말이래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

잠자냥 2023-11-16 22: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잘생긴/예쁜 사람은 있을 거 같은데 그 나이(20대)에 무성애자 찾긴 쉽지는 않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1-16 22:29   좋아요 1 | URL
섹스는 취미정도의 지위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놀 거리가 많은 세상에!! 섹스가 머라고!!

은오 2023-11-16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는 잘 모르겠네요. 흠.... 별로 뭐가 느껴지진 않는군.. 잠자냥님이 왜 좋다고 하시는진 이해했습니다. ㅋㅋㅋㅋ
호밀빵은 조만간 읽으려고요!! (나머지 소설은 다 절판?! 😱) 전 에세이가 좀 궁금한데 좀 있더라고요. 제가 에세이를 한번 읽어보도록! ㅋㅋㅋㅋ

잠자냥 2023-11-16 20:43   좋아요 1 | URL
아니 댁이 요즘 내가 읽은 책에서 골라 읽는 거 중에 좋은 거 별로 없으니까 ㅋㅋㅋㅋㅋ 그냥 읽던대로 읽어. 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1-16 20:40   좋아요 0 | URL
그래도 팩토텀은 좋았자나요?!

잠자냥 2023-11-16 20:42   좋아요 1 | URL
참 그리고 은오 님이 부코스키 시가 별로인 건 은오 님은 문장성애자라서 ㅋㅋㅋㅋ 전 보뱅급이 아니면 문장성애자가 되지는 못해가지고 걍 다 그렇습니다.

잠자냥 2023-11-16 20:44   좋아요 1 | URL
취해서 오타 작렬 ㅋㅋㅋㅋ 오늘은 편집자냥을 잊으시길.

은오 2023-11-16 21:00   좋아요 2 | URL
그래서 그런 거였군요. ㅋㅋㅋㅋ 전 문장성애자이기도 하고 잠자냥님성애자이기도 하고....
잠자냥님 밤에 다신 댓글 보면 ㅋㅋㅋㅋ 알림에서 보이는거랑 수정하신 실제 댓글이랑 다른 경우 은근 있어서 웃깁니다 ㅋㅋㅋ 인간적이야...🥹

잠자냥 2023-11-16 21:02   좋아요 1 | URL
그게… 제가 오타는 또 수정하는 버릇이 있어서 ㅠㅠ 에효 죽일놈의 직업병….

은오 2023-11-16 21:05   좋아요 1 | URL
전 직업도아닌데?! 카톡할때도 그래요 ㅋㅋㅋㅋㅋㅋ
근데 막 쌍시옷받침 그냥 시옷으로 쓰거나 하는 누가봐도 오타인건 상관없는데
몰라서 틀린것처럼 보이는 되돼 에요예요 이런건 뇌빼고 쓰다가 실수하면 꼭 수정해요 ㅋㅋㅋ

잠자냥 2023-11-16 22:08   좋아요 1 | URL
그냥 내맘 속 양심 같은 거 ㅋㅋㅋㅋㅋ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거 아는데 내가 용납 못하는 1cm

공쟝쟝 2023-11-17 12:53   좋아요 2 | URL
*변태 수집인가.... 변자냥.*
= 변자냥 : 취미 : 변태수집 / mbti : edps / 좋아하는 것 : 츄르
= 요즘 업어 키우는 생물 : 아무데서나 못 자게 하지만 내 몸에는 손 하나 까딱 못 대게 하는 에이스 폴리아모리 상습 결혼신청범 범성애자 성스러운동물성애자 포스트휴먼 맞춤법 공부하는 판다

잠자냥 2023-11-17 12:47   좋아요 2 | URL
그 변태도 엄청난 변태 같기는 합니다. ㅋㅋㅋㅋ

steal0321 2023-11-23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서재에 올리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긴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찰스 부코스키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처음 들어보는 작가 이름이 한둘이 아님이 당연하지요)
첫사랑이라는 시는 마음에 확 들어와서 바로 필사해버렸어요.

잠자냥 2023-11-23 19:02   좋아요 0 | URL
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기회가 되신다면 부코스키 시집이나 소설도 한번 읽어보세요. 더 좋은 작품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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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소네치카>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대박이다” 하고 중얼거렸다. 문학 작품을 읽고 오랜만에 전율했다. <나는 고백한다>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감동이 너무 커서 <소네치카> 뒤에 실린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은 읽지 않고 그대로 잠들어도 좋았을 것 같았다(그렇지만 끝까지 읽기는 했다). 책을 덮고 불을 끄고 나서도 누워서 가만히 <소네치카>의 여운을 느껴보았다. 이 작품은 책으로, 문학으로 구원받은 한 여인의 이야기라고 단 한 줄로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삶을 담은 이 문학으로 나는 또 늦은 밤 감동에 쌓인다.

소네치카는 책벌레이다. 이 작품은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모두가 빨려들어 갈 법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네치카는 유아기를 갓 벗어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이었다.”(9쪽) 이윽고 책벌레였기 때문에 놀림받는 소네치카의 모습이 그려진다. 독설가인 소네치카의 오빠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끝도 없이 책만 읽는 소네치카, 의자 꼴 엉덩이에 코주부가 됐다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안타깝게도 오빠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고. 소네치카의 코는 서양 배 모양으로 부풀어 있었고, 넓은 어깨와 길고 가느다란 체격, 마른 다리와 납작한 엉덩이…. 유일한 자산이라고는 마른 몸에 왠지 어울리지 않게 일찍 성숙해버린, 큰 여인네 가슴이었다고.

그러나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또 다른 수많은 책벌레들은(‘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작품을 읽을 정도라면 책벌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 문장을 읽고 안다. 소네치카는 그런 것들-그러니까 자신의 못난 외모에 그다지 안타까워하지 않으리라는 걸, 개의치 않으리라는 걸, 신경 쓸 틈이 없으리라는 걸…. 그럴 시간이 있다면 책 한 권을, 책 한 권의 문장 속으로 침잠해가리라는 걸…. 실제로 소네치카는 일곱 살 때부터 스물일곱 살 때까지 꼬박 이십 년 가까이 쉼 없이 읽고 또 읽는다.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책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가 되어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오곤 한다. 독서의 관한한 누구보다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일종의 천재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인쇄된 글자에 너무나 공감한 나머지 상상 속 주인공들이 현실 세계의 친구들 사이에 서 있기도 하고, 가벼운 정신병리적 기운마저 감도는 이 독서열은 꿈속에서도 소네치카를 내버려두지 않아 그녀는 마치 꿈조차도 읽는 듯하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책벌레들은 이런 묘사에서 더없이 공감하며 미소 지을 것이다.

이런 문장, 이런 묘사들은 또 어떤가. “매 순간 의심 많은 도스토옙스키의 불안한 심연 속으로 내려가거나 때로는 투르게네프의 그림자 드리운 가로수나 왠지 이류 작가 같은 레스코프의 무원칙적이고 관대한 사랑으로 따스해진 지방 대저택 가운데에 출연해보면서 위대한 러시아 문학의 공간에서 자신의 영혼을 쉬도록 했다.”(12쪽)는 이런 문장. 문학, 특히 러시아문학을 좋아하는 책벌레들이라면 이 문장에서 공감하면서 키득키득 웃음이 터질 것이다. 나는 “왠지 이류 작가 같은 레스코프”라는 문장에서 빵 터졌다. 레스코프, 약간 그렇지 않은가...? 흠흠. 이렇게 이 작품은 책벌레인 한 여성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면서 이 책을 읽을 또 다른 책벌레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이 유혹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책벌레 소네치카는 당연하다는 듯이 도서 정보 전문학교를 마치고 오래된 도서관의 지하 보관실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 일은 그녀에게 커다란 기쁨이다. 종일 위층 열람실에서 내려오는 카탈로그며 흰색의 도서 청구서, 자신의 가느다란 팔로 떨어지는 무거운 책들로도 성이 차지 않을 지경이다. 그래서 먼지 쌓인 지하실을 단속하는 일까지 즐기는 사람이 된다. 독서광들이 대개 그렇듯이 소네치카는 글쓰는 일을 성스러운 행위로 여기게 되고 대부분의 작가들을 흠모한다. 수도사처럼 외따로 지내며 도서 보관실에서 몇 년간 근무한 뒤 소네치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독서광이었던 상사의 권유로 대학교 러시아문학부에 입학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책에 미쳐 살던 나날들…. 그러다가 마침내 운명이 드디어 그녀 앞에 나타난다.

로베르트 빅토로비치-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데다가 잿빛이라 만일 프랑스어로 된 도서목록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면 소냐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을 이 남자- 이 남자는 소네치카가 일하는 도서관에 찾아와 프랑스어 도서목록을 물어본다. 사실 이 도서관은 프랑스어로 된 책은 있었지만 목록은 벌써 오래전에 사라진 상태이다. 책벌레는 책벌레를 알아보고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것일까. 소네치카는 이 범상치 않은 독서가를 지하실 깊숙한 구석에 위치한 서유럽 서가로 안내한다. 남자는 허기지고 놀란 아이처럼 책장 앞에 오랫동안 서 있고 소네치카는 그의 등 뒤에서 그 흥분, 그 열기를 알아차리고는 얼어붙는다. 남자는 너무나 기뻐하면서 문득 뒤 돌아서더니 갑자기 소네치카의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며 몹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럴 수가 굉장하잖아. 몽테뉴에 파스칼까지......”

서지사항을 꿰고 있는 소네치카가 감격하여 이런저런 책 정보를 더 알려주자 로베르트의 눈, 그녀를 보는 그 눈은 열렬히 빛나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는 도서 대출 카드를 발급해 달라고 하는데, 아뿔싸 1930년대 초 프랑스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이 남자는 무슨 일인지 조국에서 무의미한 오 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지금은 보호관찰 하에 공장관리부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어 일정한 주소가 없다. 신분증과 거주등록증상 외지인이라 도서 대출 불가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네치카는 선뜻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도서 대출 카드에 내역을 써넣고 여길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책을 반납하라고 하라고. 아니 어디서 이렇게 작업의 기술을 익혔을꼬? 문학에서!?

이 작업을 알아차린 로베르트- 이 남자 정말 웃기다. “조용하고 맑고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갑자기 덮친, 운명이 결정된 듯한 강력한 감정”(19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이 남자는 바로 이 만남을 통해 자기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바로 자신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아버린다. 책벌레가 책벌레한테 반하는 일이야 있을 수 있지만 아니 이 사람들아, 이럴 일인가! 그런데 이 남자는 이틀 후에 다시 도서관을 찾는다. 소네치카를 만난 그는 입을 연다. “일전엔 제가....” 책벌레 소네치카도 정말 못 말린다. 오래전부터 구어에서 잘 쓰지 않는 “일전”이라는 근사한 단어에 미소를 머금는 그녀. ㅋㅋㅋㅋㅋㅋㅋㅋ 로베르트는 이어 말한다. “일전에 성함을 여쭙지 않았더군요.” 소네치카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자 말아 접은 꾸러미를 펼친다.


마침내 포장이 벗겨졌고, 소냐는 촘촘하지 못한 거친 종이 위에 부드러운 갈색과 세피아색 물감으로 그린 여인의 초상화를 보았다. 초상화는 훌륭했고, 여인의 얼굴은 고상하고 섬세했으며, 이 시대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소네치카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살짝 숨을 들이쉬자 차가운 바다 냄새가 났다.
“이건 제 결혼 선물입니다.” 로베르트 빅토로비치가 말했다.
“사실 당신에게 청혼하러 왔어요.”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20쪽)



나는 여기서 누군가, 그러니까 책벌레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알라딘 서재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저 로베르트처럼 뽀뽀와 하트, 사랑해요를 날리며 여기저기 결혼 신청을 남발하고 다니는 한 어린 여성-주은오라는 이름의 그녀가 떠올라서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책벌레는 책벌레를 알아보고, 저 바깥세상에서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아니 너무나 하찮게 여길 정보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홀딱 반해버려서 만난 지 이틀 만에 결혼 신청을 하게 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베르트와 소네치카의 나이 차이는 거의 스무 살은 되는데, 로베르트 은오에게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벌레를 이해할 사람은 또 다른 책벌레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벌레들은 결혼에 골인하느냐?! 그건 안 알랴줌. 확실한 것은 여기까지는 책의 아주 초반에 해당한다는 사실.

“세계문학의 상아탑”에서 지낸 소네치카. 소네치카의 젊은 시절. “판타지 소설”(47쪽)- 실제 삶은 문학만큼 사건사고가 다채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그 어떤 문학보다 더 극적일 수도 있다. 소네치카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녀는 내내 이렇게 책 속에서, 문학 속에서 안식을 얻으며 평온하게 지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아 “책 속 이야기 대신에 상상할 수도 없는 빈곤의 짐, 가난, 추위, 번갈아가며 병”(33쪽) 등 매일 매일의 끝없는 걱정이 들어선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문학을 좋아하던 고상한 소녀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가기도 한다. 나날의 노동 속에 “시외버스와 덜컹거리는 전차를 타고 다니며 그녀는 빠르고 추하게 늙어”간다(40쪽).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정말로 그러할까? 삶이 고통스러워질 때면 “어린 시절 몸을 맡겼던 문학이라는 마약에 또 한 번 순순히 자진해서 자신을 맡”(82쪽)기면서 하루하루 버텨온 인생. 책과 함께 지내온 소네치카의 삶은 책이 있었기에  남달랐다. 책이, 문학이 그녀를 그토록 단단하고 너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다 늙어버린 지금에도 “저녁이 되면 그녀는 배를 닮은 코에 가벼운 스위스제 안경을 걸치고 달콤한 심연, 어두운 가로숫길, 봄의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뛰어든다.” 이반 부닌과 투르게네프 작품을 배경으로한 이 문장들로 끝맺음하는 마지막까지 <소네치카>는 실로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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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25 13: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벌레가 책벌레 만나는 건 자연스럽고 또 평탄하겠지만 음 이왕이면 근육미 넘치는 육체남 만나서 사랑하는 쪽이 좋을것 같은데 말입니다. 순전히 제 기준으로 그 편이 서로 윈윈인데요. 한쪽이 지성미를 제공하고 한쪽이 격정적인 육체미를 제공하면 그 둘의 하모니 베리머치 땡큐 되는 것인데.. 낮에는 책 읽고 밤에는 ..

아무튼 이 책 사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3-10-25 14:03   좋아요 1 | URL
낮에는 책 읽고 밤에는 .. 왜, 뭐, 왜?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25 14:39   좋아요 1 | URL
낮에는 책 읽고 밤에는 걷는다고요. 음란마귀 잠자냥..

잠자냥 2023-10-25 14:52   좋아요 0 | URL
어?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0-2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로베르토 은오와 소네치카 자냥은 결혼에 골인할까요? 이들은 집사 2가 없어서 더 수월할 것 같긴 한데.. ㅋㅋ
<도서관>이라는 그림책이 떠오르네요. 애서가들이라면 한번쯤 거쳐야 할 책일 것 같군요. 근데 나 러시아문학 넘 안 읽었는데…. ㅠㅠ

잠자냥 2023-10-25 14:2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로베르트 은오와 소네치카 자냥의 현실 나이와 상반되는 그들의 나이 ㅋㅋㅋㅋㅋㅋ 암튼 이 작품 속에 집사2는 없습니다만.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이 책 러시아 문학 많이 안 읽었더도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어요. 각주가 친절&적절하게 달려있습니다(뒤에 실린 <스페이드의 여왕>도 푸시킨 원작 몰라도 됩니다. 각주로 그 궁금증 해결할 수 있음).

잠자냥 2023-10-25 14:07   좋아요 1 | URL
참, 괭님 오늘 책 드뎌 오는 거 같아요-
내가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ㅋㅋㅋㅋㅋㅋ
오늘 사진 찍어서 낼 올릴 테니 기대(?)하시라....

독서괭 2023-10-25 14:13   좋아요 0 | URL
기대하겠음다!!

물감 2023-10-25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다가 은오 님이 나온 후로 이전 내용이 다 지워지네요.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앞으로 리뷰에 은오님 등장시키면 안될 듯한데요 ㅋㅋㅋㅋ 기억에 남는게 없어져요...

잠자냥 2023-10-25 16:3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재의 존재감 1위 옥동자 은오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0-25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박이라니~!! 실눈뜨고 잠자냥님 리뷰 읽었습니다 ㅋ
책벌레 소네치카라니~!
한국의 소네치카 잠자냥님~!!

잠자냥 2023-10-25 19:04   좋아요 1 | URL
잘하셨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은오 2023-10-26 0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번호를 여쭙지 않았더군요.

잠자냥 2023-10-26 06:50   좋아요 1 | URL
일전에 살짝 귀띔해드렸잖아요.

은오 2023-10-26 0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님이 책잘알이셔서 좋기도 하지만..........

그냥 잠자냥님의 모든게 좋습니다.

잠자냥 2023-10-26 06:51   좋아요 2 | URL
요즘 시험 공부하느라 피곤하죠? 만성수면부족의 폐해…..

은오 2023-10-26 08:22   좋아요 1 | URL
피중진담입니다.. 잠자냥님은.... 내 맘을 몰라..!!!!!!!!

은오 2023-10-26 0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거!! 나는 고백한다가 언급될 정도라니!! 꼭 읽어야겠어요!! 분량도 얼마 안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좋을 수가....?!?! 😱

독서괭 2023-10-26 05:46   좋아요 2 | URL
머야 은오님 요즘 왜이렇게 일찍 일어나세요?

잠자냥 2023-10-26 08:35   좋아요 2 | URL
시험 열공 중 ㅋㅋㅋㅋ

은오 2023-10-26 08:23   좋아요 0 | URL
시험날 밤 새는 버릇을 못 고쳐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0-26 08:35   좋아요 2 | URL
오늘도 올 에이뿔 기원

은오 2023-10-26 08:55   좋아요 2 | URL
💘💘💘💘💘💘💘💘💘💘

잠자냥 2023-10-26 09:00   좋아요 2 | URL
얼른 시험이 끝나야 애가 정신이 돌아올 텐데….

독서괭 2023-10-26 09:31   좋아요 2 | URL
시험 일정 챙기고 올에이뿔 기원까지..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요?🫢

은오 2023-10-26 13:32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은 해명하시죠

잠자냥 2023-10-26 13:37   좋아요 1 | URL
제가 사람을 좀 싫어하기는 하지만 제 나름의 인간 기준에서 일종의 허들을 넘어온 사람은 좀 잘 챙기기는 합니다. 근데 그 허들이 꼭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0-26 13:48   좋아요 3 | URL
제가 어쩌다 그 허들을 넘었죠??????????
저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으신지?????
어쩌다 절 사랑하게 되셨는지????

이런것들이 궁금해집니다
😳

잠자냥 2023-10-26 13:50   좋아요 1 | URL
엥? 이게 어떻게 그렇게 읽히니? 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0-26 13:57   좋아요 1 | URL
엥 행간의 의미까지 완벽하게 읽었습니다만??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0-26 14:13   좋아요 4 | URL
요약도 잘해~ 행간도 잘 읽어~ 이번에 올 에이뿔 받는지 꼭 알려줘요!

음, 은오 님 일단 깨끗하고 정갈해서 좋아하고요(깨끗한 거 중요함ㅋㅋㅋ)
열심히 읽고 쓰.....(쓰는 건 아니지만 쓸 의지는 있어 보인다...)려고 하는 것도 예뻐 보이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에 은오 님이 자기 좋다고 들이대는 거 사람들이 잘 거부 못 한다고 그런 적 있잖아요?
(물론 들이대는 사람이 너무 심하게 싫으면 좀 그렇지만 ㅋㅋㅋㅋ)
이것도 좀 맞는 거 같기는 하네요. 이 도끼는 좀 괜찮은 도끼구나 싶음(아직까지는.....).

다락방이 저랑 좀 인간 보는 눈이 비슷한 게 있던데 그런 다락방이 은오 님 예뻐하는 거 보면
비슷하게 예뻐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근데 온라인 인간 관계의 피상성도 저는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재미나게 놀고 지내도 언젠가 인연이 끝날 때도 있지 않겠어요?
그래도 위에 제가 언급한 속성들(깨끗/정갈/열심히 읽고 쓰려는 의지)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살아갈 것으로 보여서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은오 2023-10-26 14:51   좋아요 2 | URL
실실거리면서 읽다가...... 마지막 문단에서 젓가락질을 멈췄습니다 😫
얼른 번호를 따야겠군요 전 영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ㅠㅠ

저도 잠자냥님이 좋은 이유를 잠시 생각해봤습니다만
어느순간 좋아하게 됐음 -> 좋으니까 모든게 다 좋음 이렇게 넘어가서.... 잘모르겠네요
근데 이거 진짜 사랑아니에요?😱 원래 사랑하는 데 이유 없고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게 다 좋은데... 진짜 사랑하는듯? 어떡하죠?
아무튼 전 잠자냥님의 모든 면이 좋습니다

잠자냥 2023-10-26 15: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실 로베르트 은오와 소네치카 자냥의 대화 ㅋㅋㅋㅋ
아니 근데 집사2도 저의 모든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저 짜증 많고 성깔 드러울 때 있어서 그건 싫어함. ㅋㅋㅋㅋ
이건 극복 불가능할 텐데... (지나간 애인들 모두 공통적으로 싫어한 부분임 ㅋㅋㅋ)

공쟝쟝 2023-10-26 21:18   좋아요 2 | URL
아.... 신나게 읽다가 잠깐 잊었는데. 치카치카 하고 오겠습니다. (어필)

잠자냥 2023-10-26 22:05   좋아요 1 | URL
리뷰를? 아님 현실 로베르트 은오&소네치카 자냥 이야기를?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26 22:49   좋아요 2 | URL
당연히 리뷰를 흡입하고 댓글을 읽다가 깨끗한 사람 좋아한다 하셔서!!! 저는 니것 네것 없는 지저분한 집구석에서 자라서 청결정리관념이 평균아래인 것 같지만 ㅋㅋㅋㅋㅋ 소네치카 앞에서 치카치카하는 노력이라도!!!

은오 2023-10-27 08:16   좋아요 2 | URL
소네치카 앞에서 치카치카 ㅋㅋㅋㅋㅋㅋㅋㅋ 쟝님 어휘센스는 진짴ㅋㅋㅋ 힙찔이들은 쟝님 보고 배워야됨.. 철학책도 좀 읽고..

은오 2023-10-27 08:17   좋아요 3 | URL
집사2님과 그외 지난놈들은 역시 제 사랑을 못따라오는군요 잠자냥님의 그 짜증과 성깔도 다 인간미고 섹시함이거늘...

공쟝쟝 2023-10-27 11:40   좋아요 2 | URL
저도 잠자냥을 이해합니다! 왜냐면 저 역시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해요. (평소 짜증을 내지 않지만 가끔 욱하면 절대 안지는 논리 폭격자. 5년~10년이 지나도 상흔이 가라앉지 않으므로 이미 피를 흘리면서 칼좀 뽑아달라고 호소하는 근거리의 피해자들이.... 조금 더 어필해서 말하자면 저는 60세 이상 차이나는 친할머니와 35세 이상 차이나는 삼촌에게도 논리 폭격을 한 10살의 기억이 있습니다.... 삼촌 저 땜에 집나가서 3년동안 안돌아왔음. 할머니는 저에게 패배시인하고. 저를 더 믿기로... 전... 오랫동안 집안의 심판관으로 지냈습니다.. )
이렇게 잠자냥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니까 어쩐지 은오랑 경쟁하는 것 처럼 보이는 데요... 그거 아닙니다. 6집사 잠자냥의 폴리아모리!! 7각8각관계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는 저는 모노 아모리입니다!!!

은오 2023-10-27 15:03   좋아요 1 | URL
쟝님ㅠㅋㅋㅋㅋㅋㅋ 설날에 한번만 출장와줘요ㅠㅋㅋㅋㅋㅋㅋㅋ 여기도 논리폭격 들어야될 사람 한둘이 아닌데 심판관 쟝님 너무나 필요하다 ㅋㅋㅋㅋㅋ
전 알라딘 언니들한텐 질투 안납니다. ㅋㅋㅋ 내가 일단 둘다 좋아하는데 어떻게 경쟁을?! 제 경쟁자는 집사2님과 녹색광선 대표님 그외 제가 모르는 잠자냥님 현실지인들뿐....

공쟝쟝 2023-10-27 16:26   좋아요 1 | URL
은오님… 저의 결론은… 인간은 앞 뒤가 너무 맞는 말(논리) 앞에서는… 감정이 상한다입니다. (말했잖아요.피해 호소인들…ㅋㅋㅋ) 안 바뀝니다. 감정 ‘만’상해요. 그들이 돌아오거나 그들이 잘못을 시인했던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며, 제가 평소에 다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사람 앞에서도 언행을 조심해야한다는 것은 좀 아셨겠죠.

제 생각에는 심판관 역할은 그만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신이 아닌 이상 각자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기 때문이죠. 사법적 절차를 어긴 행위는 그건 재판소의 판관이 심판하면 될일인 것 같고요. 여하튼 관계에서 심판관 노릇 잘못하면… 감정 상해 떠납니다…ㅋㅋㅋㅋㅋㅋㅋ

말로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그 사람이 나를 떠난다거나 내가 그 사람을 떠날 각오를 하고라도 바로잡아야 겠을 때. 만 사용 합니다. 대개 앞에서는 알아 듣는 척 하고, 결국 떠나더라고요…. 난 논리 왕이니까. 결국. 외롭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아온 피해 호소인들은 오랜 친구 + 가족 정도가 다 이며, 그 관계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지냅니다. 나와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좋습니다. 아마 잠자냥님은.. 제 댓글에 대해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녹색광선은 맥락파악 못해서 아쉽네요ㅠ..ㅠ 저는 은오님이 좋아요. 아시겠지만 찡긋찡긋. 질은 다르지먄 양은 잠자냥님과 거의 비슷하게 좋습니다. 두분 제 마음 안에서ㅋㅋㅋ 경쟁해주세요.😈🎃👽🖤🖤🖤🖤🖤

은오 2023-10-27 18:20   좋아요 1 | URL
둥글둥글 기분좋게 말하면 못알아듣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기분 나빠하는게 사람인가봐요. ㅋㅋㅋㅋ 이건 진짜 말 안하곤 못살겠다 싶을 때 기분 상하게 할 각오 하고 해야됨. 맞습니다. ㅋㅋㅋㅋ
녹색광선은 전에 녹색광선 대표님이 잠자냥님 리뷰 너무 좋다고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잠자냥님께 책도 보내셨어요! ㅋㅋㅋㅋ
쟝님.... 말해 뭐합니까?! 녜?! 쟝님도 아시이라 믿습니다. 쟝님에 대한 제 마음을..
😳🫶💕

유부만두 2023-10-27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좋다!
지금 막 소네치카 다 읽고 뭐라 쓰기 전에 모범답안 보는 심정으로 다시 왔어요. 소설 전체에 무심한듯 깔린 문학 책 … 그리고 삶과 죽음과 작은 마누라…?!

치카치카 하고 오늘의 숙제 하러 올게요.

멋진책 추천하시는 우리 잠자냥, 각설탕 여섯 개 줄게요.

잠자냥 2023-10-28 02:57   좋아요 0 | URL
소주 여섯 병으로 주세요!!!
만두 님이 즐겁게 읽으셨다니 좋습니다!
(근데 저 오늘 오타 많을지도 ㅋㅋㅋ 취했거든요! ㅋㅋㅋ)

coolcat329 2023-11-01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잠자냥님 100자평 보고 땡투하고 구입해서 이번에 읽었는데, 요즘 거의 책을 못 읽어서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읽어서 그런지...저는 그닥 재미가 없어서 놀랐습니다. 너무 기대가 컸었나 봅니다. 근데 잠자냥님 리뷰를 읽으니 또 감동이 올라오구...ㅎㅎㅎ
소네치카 책으로 구원받은 여인...책이 정말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니... 저도 마지막은 좋았습니다.

잠자냥 2023-11-01 13:25   좋아요 0 | URL
아아 이럴수가 기대를 좀만 낮춰드릴걸! ㅠㅠ 아쉽습니다.
그치만 마지막은 진짜 아름답죠!

달자 2023-12-02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의 리뷰가 너무 좋네요. 좋은 소설을 다 읽고 딱 덮어서 가슴팍에 얹고 그 여운을 느끼는 그 기분 정말 너무...너무 좋죠. 땡스투 날리고 이 책 사도록 하겠습니다.

잠자냥 2023-12-02 07:33   좋아요 1 | URL
달자 님 오늘 밀린 숙제하십니까 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달자 2023-12-0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달립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인 에어 을유세계문학전집 64
샬럿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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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 이야기는 시시하던 소녀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을 돌아본다면 잘한 일 중 하나가 글자를 깨우친 후로 거의 매일 같이 책을 읽어왔던 것이라고 생각할 것만큼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왔지만 그럼에도, 이 나이가 되도록 읽지 않은 책도 많다. 나는 호불호가 심하고 취향도 뚜렷해서 그만큼 편견도 많다. 어릴 때부터 그러해서 ‘여자 아이’라는 성별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소녀들의 이야기는 시시했다. 동화책을 읽어도 내 동생들을 비롯해 내 또래 소녀들이 좋아하는 공주 이야기는 시시했다. 고작 왕자나 기다리다 뽀뽀받고 행복해하며 눈물 겨워하는 꼬라지가 너무 시시했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책들은 <보물섬>이나 <왕자와 거지>나 <15소년 표류기>나 <톰 소여의 모험>처럼 소년들이 세상으로 나가 모험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직접 떠나기보다는 방구석에서 상상으로 모험하기를 즐기는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이런 확고하고 편협한 취향 때문인지 중고딩 시절 책 좀 읽는다는 아이들이 그토록 빠져들던 <제인 에어>나 그, 비슷한 이야기들(<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등) 그러니까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 등 한때 ‘여류’ 작가라고 불리던 여성 작가들이 쓴 소녀, 또는 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문학 작품을 읽지 않았다, 읽지 못했다. 대개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가정교사가 된 그녀들이 결국 고작 그 집안의 주인과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야기. 어린 시절 내게 이런 종류의-여성 작가들이 쓴 저 시절의 문학들은 결국 여자와 남자가 티격태격 쏘아대다 어느 순간 사랑이 싹터서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성(城)에 갇혔거나 감옥에 갇혔거나 마법에 걸려 잠든 공주에게 입맞춤 해주는 왕자, 그리고 그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동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제인 에어> 같은 소설에서의 감옥은 화려한 궁전이 아닌, 가난한 환경이고, 그녀들에게 입맞춤 해주는 왕자는 왕자가 아닌 주인- 그러니까 그녀들이 가정교사로 취직한 집안의 남자 주인이라는 게 달라졌을 뿐.

정작 해당 문학 작품을 읽지 않았으면서도 이런 의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준 것은 저 문학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들, 그러니까 영화화된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이 대개 그런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아아, 지겹다! 소년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서 곳곳을 모험할 때 왜 여자들은 남자의(주인님 또는 왕자님의-오 마이 갓 이 단어들도 너무 싫다) 눈빛, 말투, 손짓, 몸짓, 하나에 쓰러지고 죽고 살면서 스스로 영원히 그 로맨스라는 관계 안에 갇혀 있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영영 이 소설들-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등등은 읽지 않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잔 구바, 그리고 샌드라 길버트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갇힌 소녀들을 찾아서
며칠 전 드디어 마침내 그리하여 급기야 결국 <제인 에어>를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집사2가 내 방을 지나치다 내 손에 들린 문제의 책을 보고 물었다. “그걸 또 읽어?” “나 처음 읽는 건데.” 집사2는 깜짝 놀랐다. “처음? 진짜? 니가? 그걸 지금까지 안 읽었다고? 와우.” 그러더니 곧 덧붙였다. “시시할 거라고 생각했구나!” 역시 나를 잘 알아. 바로 알아맞힌다. “근데 그거 재미있는데....” 아니 너마저도 읽었단 말이냐?! 띠용...... 아, 하긴 너는 전공이.... “어 그냥 러브러브하는 로맨스 소설이려니 했지. 근데 생각보다 재미있네. 일단 꼬마가 못된 거 같아서 마음에 드는데.” 내가 <제인 에어> 재미있다고 하니까 집사2는 마치 자신이 샬럿 브론테라도 된 듯한 얼굴로 흡족해하면서(왜지?) 내 방에서 나갔다. 집사2는 내가 취향이 확고한 만큼 편견도 많다는 걸 알아서 내가 그 편견이나 취향의 벽을 무너뜨릴 때 좀 좋아하는 눈치다. 나를 더 갱생시키고 싶은 너여.... 그러나 사실 내가 이 늦은 나이에 <제인 에어>를 읽게 된 것은 취향이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진 리스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제인 에어>를 읽지 않고는 시작할 수 없으며,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더더욱 읽을 수 없다는 것을-아니 흥미롭게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두 책, ‘사르가소 바다’와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기 위해 드디어 마침내 그렇게 돌고 돌아 <제인 에어>를 마주한 것이다.

소녀답지 않아서 갇히는 소녀
그렇게 만난 제인 에어, 제인이라는 소녀는 착하구 순진무구해서 온갖 구박과 멸시를 꿋꿋이 참고 인내하는 그런 답답한 성격의 아이는 아니었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가난하기에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학대도 당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학대라는 것을 알 정도로 똘똘하고, 그 못된(그러나 제인이 비뚤어지고 이상한 아이이지, 자신들은 선하다고 굳게 믿는) 친척들에게 바락바락 대들면서 할 말은 하는 아이이다. 그러나 아이는 힘이 없고 조그맣다. 그래서 종종 벌을 받는다. 이 말 많고 똘똘하고 되바라진 소녀, 순종적이지 않고, 그래서 착하지 않다고 평가받는 제인이 받는 벌은 다름 아닌 붉은 방에 갇히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홀로 방 안에 그것도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방 안에 몇 시간이고 감금당한다. 꽤 자주. <제인 에어>는 그런 의미에서 시작부터 참 의미심장한 소설이다. 애초부터 부모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사회적으로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던 소녀가 소녀답지 않다는 이유로, 착하지 않고 순종적이지 않다고, 똘똘하게 제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가정 안에서 또 갇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붉은 방 안에....

그래도 이 소녀에게는 탈출의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만고불변의 진리인 ‘배움’. 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 저주스러운 가정을 떠나 기숙사로 향한다. 그리고 그 특유의 영특함으로 학업에서도 빛나는 성취를 이루고 드디어 홀로서기에 성공. 가정교사로 어느 집에 취직하게 된다. 붉은 방에 갇혔던 소녀가 또 다른 갇힌 여인이 사는 손필드의 대저택으로 떠나는 것이다.

볼 수는 있으나 눈을 감은 소녀
그런데,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고 경험도 부족한 이 젊은 여성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다. 로체스터라는 이름의 이 남자주인. 제인 에어보다 무려 스무 살이나 더 많은 주제에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자기가 잘생겼느냐고 묻지를 않나(나참 뭐래니.......), 당신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고 치켜세워주면서 살살 꼬드기지를 않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무려 독신이라고 한다(이미 <제인 에어>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므로 이 정도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제인이 가르치게 될 아델과 로체스터 그 자신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어처구니없기는 매한가지다. 딸인지 입양아인지 후견인의 역할을 맡은 것인지 아리송한 이 아이, 로체스터는 아델을 설명할 때 이렇게 말한다. “재수 없게 6개월 전에 바랑이 내게 이 여자아이, 아델을 보낸 거요. 그녀 말로는 내 딸이라는 거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거요. 얼굴을 보면 내 딸이라는 증거가 확실치 않지만 말이오. 아델이 딸이니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적도 없고, 지금도 이 아이 아버지가 아니므로 어떤 의무도 인정할 수 없소.(....)이제 당신도 저 아이가 프랑스 오페라 댄서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았으니.”(209쪽)- 배드파더의 전형적인 말투 아닌가! 사실 나는 로체스터의 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샬럿 브론테도 제인 에어도 거기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그렇게까지 만들면 안 그래도 쓰레기인 로체스터가 재활용도 불가능할 지경이 되리라고 생각했나보다.

게다가 로체스터 이놈 봐라? 자기가 다락방에 가둔 아내 ‘버사’가 얼마나 로체스터 이놈이 가증스러운지 잠든 침대에 불을 질러버렸는데 그걸 또 다른 여자 하인이 지른 거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 이 남자의 거짓말, 이 남자의 맨스플레인, 이 남자의 오만방자함이 역겹기 짝이 없는데도 순진한 제인은 무려 스무 살 차이의 이 남자에게 서서히 반해간다. 아이고야.... 원체 똘똘하니 이 남자의 이상한 점, 이 집안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 죽일놈의 로맨스가 무엇인지 그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진실로부터 스스로 눈을 감기를 선택한다.

착취당하고 끝내 갇힌 여인
로체스터는 자신이 독신이며 딸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도 불쌍해서 후견인 역할을 해줄 뿐이라면서 이 스무 살이나 어린 여성에게 구애를 해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한다. 제인이 기거하는 방 바로 위에 전처를 가둬놓고서. 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놈인가? 그런데도 본인은 내내 피해자이다. 저 여자, 다락방에 갇힌 미친 저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이 이토록 우울하게 망가졌다고 울부짖는다. 다락방에 짐승처럼 갇힌 그 여자 ‘버사 안토네이타 메이슨’- 서인도 제도 출신에, 자메이카에서 15년 전에 이 에드워드 로체스터란 놈과 결혼한 여자. 로체스터의 말대로라면 이 여자는 집안 대대로의 정신병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결혼 후 발병했으므로 로체스터 그 자신은 속아서 결혼한 피해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진실을 말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집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소음과 기괴한 일들은 모두 저 하녀의 짓이라며, 결혼하고 1년 하고 하루가 지나면 그때 진실을 말해주겠다면서 결혼부터 하자고 꼬드긴다. 에라이 이 썩을놈아. 제인에게 결혼 신청하고 마침내 스무 살이나 어린 여성을 손에 쥐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의 폭로로 그의 추악한 비밀은 벗겨진다. 그러나 그는 또 항변한다. 나는 피해자야 제인!!! 버사 메이슨은 미쳤다, 정신병력이 있는 가문 출신이다, 집안에서 3세대에 걸쳐 백치와 미친 사람들이 나왔다, 버사의 어머니는 미친 여자인 데다 술주정뱅이이다. 버사는 효녀답게 두 가지 모두 어머니 그대로 닮았다(이 비열한 인간 말하는 꼬라지 좀 보소)...

그런데도 이 찌질한 인간은 버사 메이슨이 매력적이었다는 것만은 인정한다. 나는 매력적인 동반자, 순결하고 현명하고 겸손한 동반자를 얻었다고 생각했다고, 집안이 부유했던 버사는 3만 파운드의 지참금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결혼 무렵 로체스터는 빈털터리나 마찬가지). 스패니시 타운에서 가장 미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로체스터 그 자신도 인정한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아름다웠다고. 키가 크고 피부가 검고 당당한 여자였다고. 자신에게 매력과 재능을 마음껏 보였다고. 그녀 주위의 모든 남자가 버사를 흠모하고 자신을 질투하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자극받고 현혹되었으며 흥분했다고. 무지하고 미숙하고 경험이 없었기에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고.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실수였고, 친척들이 부추기고 경쟁자들이 자신을 자극하고 그녀는 날 유혹했다고.....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버사와 결혼할 무렵의 로체스터가 스물다섯, 이십대라 어리고 미성숙했다고 쳐도 그때는 매혹되어 사랑에 빠져서(착각했다고 쳐도) 결혼한 여자를 이제 싫증났다고 단물 다 빨아먹었다고 저렇게 후려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인간이라면 양심과 도덕이 있다면 그러면 못쓴다. 부유한 데다가 이국적인 외모에 당당한 여자, 모든 사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그 자신도 트로피처럼 갖고 싶었으면서 싫증이 나니까 미친 여자로 몰아가고 그녀 가족 모두가 정신병자였으며 혐오스러웠다면서 매도하고 그 세월과 사랑을 묻어버린다. 로체스터의 아버지와 형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3만 파운드라는 돈을 생각해서 자신을 팔아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봐 로체스터,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그 손필드 저택에서의 생활이 다 버사 집안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닌가?

심지어 로체스터는 아내를 가둬버린 후 여자 없이는 못 사는 성격이라 정부를 여럿 둔다. 아델의 엄마인 프랑스 댄서 바랑이 첫 번째 정부이고, 하나는 이탈리아인 자친타. 하나는 독일인 클라라이다. 로체스터가 묘사하는 이 여성들 버사, 바랑, 자친타, 클라라를 보면 대개 제인과는 좀 다른 외모(이국적인)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자기 입으로 이 여자들이 모두 뛰어난 미인이었다고 말한다(그러면서 내내 제인은 못생겼다고 말하는 세상 웃긴 놈). 그런 걸 보면 이놈은 여자 취향이 확고하기 때문에 버사의 외모에 매혹당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이후 이 남자가 하는 말이 또 전형적이다. 이 예쁜이들은 외모는 예쁜데 그 아름다움은 사실 다 무의미하더라고. 바랑은 난잡하고 방탕하고, 자친타는 부도덕하고 난폭하고. 클라라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멍청하고 그리고 버사는, 버사의 취향은 역겹고, 정신은 진부하고 저질이고 편협했단다. 근데 제인 너는 못생겼지만 똑똑해, 나랑 취향이 맞아(이것은 칭찬인가 디스인가 가스라이팅을 통한 길들이기인가). 그러면서 결국 이놈이 하는 말을 보자. “정부와 노예는 지위 상 늘 열등하며 흔히 천성조차 그렇소. 열등한 인간과 친근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타락이오.”(455쪽)- 와우, 제인, 제발 이놈을 떠나!

갇힌 로맨스여, 영원히 갇히기를
로체스터의 이런 역겨운 참모습을 제인도 견디기는 힘들었는지 그를 떠난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그녀는 다시 돌아와 스스로 로체스터의 그 폐쇄된 성(城) 안에 갇히기를 선택한다.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면서. 제인이 그러는 중에 독립된 주체성을 가진 인물로 거듭나는가? 글쎄 나는 좀 회의적이다. 갑자기 유산이 주어져서 부유해졌지만 그 돈으로 좀 더 나은 일을 하기보다는 또 그 돈을 싸들고 로체스터 놈에게 (버사처럼) 상납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제인은 사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이고 똘똘한 아이였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순간 로맨스에 눈이 멀어 진실을 마주하기를 꺼린다. 버사의 존재에도, 그녀의 참혹한 죽음을 마주하고도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누군가 타인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거나 타인을 착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행위일 수도 있다, 로체스터와 제인의 위대하신 사랑을 위해서 버사는 어떻게 미친년으로 몰려 죽어갔는가.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전처 버사에 관해 온갖 악담을 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장면은 <레베카>의 맥심 드윈터가 자신의 죽은 아내 레베카를 헐뜯으며 어린 현재의 연인인 ‘나’를 설득하는 장면과 똑 닮았다. 그런데 그 작품의 진실은 어떠했던가. 로체스터도 맥심도 예쁘고 당찼던 전 아내들을 부도적하고 타락했으며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여성들로 만들어 가두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런데도 이 두 남자들이 새로이 선택한 어린 여성들은 그 남자들의 나이, 경제력, 그리고 그 나이와 경제력이 빚어내는 후광에 눈이 멀어 그들이 만든 감옥 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기를 선택하고 만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모든 역경을 극복한 진실한 사랑이라고, 위대한 로맨스라고 볼 수 있을까. <제인 에어>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러한 방식- 제인과 로체스터의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춰 온갖 매체로 재생산되어 소비되어 왔다. 세상이 조금 달라지면서 제인이 점점 더 독립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게 좀 달라졌을 뿐. 그렇지만 이 갇힌 로맨스가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재생산된다면, 가진 것 없는 소녀들은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기보다는 왕자님이 나타나 뽀뽀로 나를 깨우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짜 왕자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갇힌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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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2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너무 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20 11:47   좋아요 1 | URL
안 길어!!! 샌 존 욕 빠졌으니까 속편을 내놓으시오!

잠자냥 2023-10-20 11:59   좋아요 1 | URL
그놈은 로체스터에 비하면 존재감 희미 ㅋㅋㅋㅋㅋㅋㅋ
그 후반 장은 좀 사족 같아요. 샬럿 언니도 쓰다 지쳤나 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3-10-20 11: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휴 기다렸다 읽은 만큼 보람찬 리뷰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는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 그 존재를 알자마자 흥분해서 읽었었는데요, 그 책은 제인 에어를 읽고 쓴만큼 기막힌 대사가 나옵니다. 버사에 대해 사람들이 그녀의 남편에게 들려주는 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버사가 하는 말이죠.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예요, 항상.˝

저는 그 대사가 진짜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진 리스가 하고자 했던 말은 그거였던 것 같아요. 모두가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을 보고 있을 때, 진 리스는 로체스터, 혹은 그 이루어진 사랑의 다른 면을 보라고 말하는거죠. 진짜 너무 짜릿하지 않나요? 저는 제인 에어를 읽고 광막한 사르가소를 써낸 진 리스가,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통해 모든 일에는 다른 면이 있다고 말하는 진 리스가 진짜 너무 멋져요. 그 존재 자체로 짜릿합니다.

만세!!

잠자냥 2023-10-20 11:58   좋아요 2 | URL
진 리스 좋아! 리스 언니 사랑해염!
그런데 진 리스 자신이 어떻게 보면 불행한 삶을 살았으므로 버사의 존재에 더 눈을 떴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녀 자신도 출신이 버사와 동일시하기 쉬웠을 테고....

다락방 2023-10-20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제인 에어 리뷰에 진 리스 응원했네요. 흠흠. 반성합니다.

잠자냥 2023-10-20 11:58   좋아요 1 | URL
괜찮아 내가 아끼니까....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0-20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인에어를 다시 한번 읽었는데 그때도 생각했지만 결말을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결국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 모험심 가득한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소공녀 이런거 질색팔색ㅋㅋㅋ 그래도 작은 아씨들은 조라는 캐릭터가 있어서 그나마 좀 읽을 만했지만 말입니다.
역시 믿고 보는 잠자냥님 리뷰!

잠자냥 2023-10-20 14:20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시대적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결혼 안에서! ㅋㅋㅋ
소공녀 저도 싫어했어요. 소공자도 있었는데 그게 더 재미...
작은 아씨들도 조가 있었으니가 그나마 읽었지만... 제 동생은 이 작품 엄청 좋아하는데 전 도무지 왜 대체? 이런 심정.

건수하 2023-10-2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전 세인트 존 때문에 로체스터에게 돌아갔다는 생각도 했어요. 혼자 살아갈 엄두는 나지 않고 이상한 놈한테 강요받느니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로체스터가 낫다..? 로체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부분은 좀 뭥미했지만..

<제인 에어> 읽으셨으니 좀 더 나아간 <빌레뜨> 도 읽어보시지요! 이렇게 잠자냥님의 벽을 무너뜨리자...!!

잠자냥 2023-10-20 14:25   좋아요 2 | URL
네 아무래도 로체스터에게 돌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이유를 만들려다보니 그 세인트 존처럼 뜬금없는 인물(그러면서 로체스터랑 비교되는 인물)이 등장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으으 그러나 그놈이나 저놈이나....

흠흠 저 <빌레뜨>는 창비에서 나온 버전으로 몇년 전에 읽었습니다!
(그것도 뭔가 읽어야해서 읽었던 것 같은데 역시 지루했습니다;;;)

건수하 2023-10-20 14:37   좋아요 2 | URL
<빌레뜨> 읽으셨군요!
<제인 에어>보다 <빌레뜨>가 좀 지루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한계에서 좀더 나아가려고 한 노력(설정)이 보인다는 ^^;

책읽는나무 2023-10-20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때 소공녀, 작은 아씨들, 비밀의 화원처럼 여자애들 이야기도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고, 톰 소여의 모험, 삼총사, 보물섬, 피터팬의 모험 이런 책들도 재미나서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중고딩 땐 책 읽기 싫어 안 읽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제인 에어같은 책을 안 읽었던 건가?싶기도 하구요. 로맨스 만화도 안 읽었구요. 뜬금없이 <동의보감>인가? 그거 읽고 음...하면서 사극에 빠져 살긴 했습니다.ㅋㅋㅋ
학교에서 책 읽으라니까 왜 그렇게 읽기 싫던지...그래서 어른이 되어 그때 좀 읽어둘걸! 조금 후회가 되긴 합니다만...지금 읽고 이렇게 리뷰로 얘기 나눌 수? 있어 또 좋네요.ㅋㅋㅋ
로체스터 싫어!
세인트 존도 싫어!
로체스터에게 돌아간 제인 바보!
코로나에 걸려 방에 감금?되어 읽었던 작년 겨울이 떠오르면서 혼자 추억에 잠겨 봅니다.ㅋㅋㅋ
속 시원한 리뷰네요.ㅋㅋ

잠자냥 2023-10-20 15:55   좋아요 1 | URL
아 삼총사! 삼총사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 ㅋㅋㅋㅋㅋㅋ
(소공녀, 아씨들, 비밀의 화원은.... 그 책들로 집짓기 놀이로 사용 ㅋㅋㅋㅋ)
푸하하 <동의보감> 빵터졌는데 재밌나봅니다?!
로체스터한테 돌아간 제인 바보22222 유산도 받았는데 다른 걸 하지...ㅠㅠ

유부만두 2023-10-20 19:24   좋아요 0 | URL
전 중학생 때 스탕달 <적과 흑>을 반복해서 읽었어요. 심지어 그 이상한 주인공 녀석 쥴리앙을 좋아했다요? 머리 자르는 게 맘에 들었을지도 모르고요. ㅋㅋ

자목련 2023-10-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안 긴 리뷰를 읽으니 저도 <제인 에어>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네요. 간략한 동화로 대충 읽은 기억만...

잠자냥 2023-10-20 23:03   좋아요 0 | URL
동화보다는 확실히 재미납니다. ㅋㅋㅋ

은오 2023-10-20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제대로 미친 쓰레기가..........
중간에 “결혼 신청”에서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ㅋㅋㅋㅋ 잠자냥님 리뷰만 읽어도 이거 막장드라마같고 재미는 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제인 성격도 마음에 들고요. 마지막은 최악이지만 우웨ㅣㅔㅔ엑...

잠자냥 2023-10-20 23: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거 노리고 집어 넣은 거. ㅋㅋㅋㅋ 결혼 신청! ㅋㅋㅋ 막장이라 재미는 있어요.

은오 2023-10-20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은 더 길게 써주셔도 됩니다.

재밌으니까요!!!!!
한 줄 읽는 속도로 다섯 줄 읽게 되는 잠자냥님의 글

잠자냥 2023-10-20 23:1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이거 A4로 다섯장이에요. ㅋㅋㅋㅋ

은오 2023-10-20 23:28   좋아요 1 | URL
솔직히 A1로 다섯장 쓰셔야한다고 생각

잠자냥 2023-10-20 23:17   좋아요 2 | URL
길어서 사람들이 싫어해!! ㅋㅋㅋ아, ㅋA4인데 A5라고 썼네. 취했냐!! ㅋㅋㅋ

은오 2023-10-20 23:20   좋아요 0 | URL
알아보고 수정하시는걸 보니.. 오늘 번호 따긴 글렀구나!! 😫

잠자냥 2023-10-20 23:33   좋아요 1 | URL
아무리 루팡이지만 나도 일은 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0-21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이 안읽은 고전문학이 있다는게 놀랍습니다. 역시 확고한 취향의 잠자냥님~!!

저도 완전판을 읽어보려고 책을 샀던거 같은데 제인 에어 리뷰를 많이 봐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ㅋ

제인=잠자냥
버사=다락방
로체스터=은오

정리끌 ㅋㅋ

잠자냥 2023-10-21 14:51   좋아요 1 | URL
안 읽은 거 많습니다요. 특히 요 시대 여성 작가들 책-제인 오스틴 한 번도 읽은 적 없어요.

근데 응? ㅋㅋㅋㅋㅋ 새파랑 님의 인물도식도 정리를 보니 <제인 에어>는 읽어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체스터 은오, 버사 다락방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

지나 2023-10-2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동감가네요.

잠자냥 2023-10-22 15:58   좋아요 0 | URL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 2023-10-24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중3때 읽다 관뒀는데 제인이 집에 갇혀있는 여자의 존재를 아는 데까지 읽다 왜인지 모르게 읽기 싫어져 그만두고 지금까지 안 읽고 있어요. 기숙학교 얘기까진 재밌었는데... 뭐 저도 언젠간 다시 읽게 되려나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잠자냥 2023-10-24 10:17   좋아요 0 | URL
기숙학교 이야기까지는 재미있어요. ㅋㅋㅋㅋㅋ 어린날의 케이 님도 로맨스가 싫었나 봅니다!

2023-10-24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24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