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슴은 여전히 멋진 뿔과 날씬한 다리를 보여주며 물을 마시고 있을 것이고, 젖가슴이 드러난 인디언 여자는 계속 담요를 짜고 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이번에는 코트를 입고 왔다든지, 지난번에 왔을 때 짝꿍이었던 아이가 홍역에 걸려 다른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있다든지 하는 것처럼. 아니면, 에이글팅거 선생님 대신 다른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든지, 엄마하고 아빠가 욕실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은 다음이라든지, 아니면 길가의 웅덩이에 떠 있는 기름 무지개를 보고 왔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늘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 (중략)……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164~ 165쪽)



며칠 전 늦은 밤 <호밀밭의 파수꾼>의 위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10대였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던 그때는- 홀든과 비슷한 나이였을까? 아니면 더 어렸던 것 같기도 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던 그때, 비슷한 또래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이 작품이 그때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크게 와 닿은 게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지금 이 나이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밤에 운다. 홀든이 툭툭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 하나 하나가 가슴에 콕콕 박힌다. 나이를 거꾸로 먹나? 아니면 홀든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분노나 낭패감, 절망감 같은 것을 이제 내가 너무도 잘 알아서 더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성인 샐린저가 쓴 작품이라 10대의 시점보다는 어른의 관점이 녹아 있기에 성인에게 더 와 닿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간다. 홀든이 찾아간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 모형들만이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킨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것들은 그대로다. 그러나 세상의 다른 것들은 그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조차 쉬이 변한다. 그것들을 모두 붙잡아 유리 진열장 속에 보관할 수도 없다. 그저 변해감을 지켜봐야만 한다.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그 안타까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마음이 시리다.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까봐 그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홀든- 홀든이 지키고 싶은 것은 단지 그냥 아이들만은 아니리라. 아이들이 지닌 상징성- 순수함일 수도 있고 위선과 가식이 없는 세상일 수도 있다. 홀든 콜필드는 그런 세계를 꿈꾸고 그런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지만 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 못난 소년은 쉽게 상처받고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이 학교, 저 학교 전전하는 인생이 된다.

언젠가는 학교가 아닌 사회로 나가야만 하는 홀든의 삶은 그래서 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홀든의 모습에서 나,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은 더더욱 아닌 것만 같은 어정쩡한, 영원히 어정쩡할 것 같은 ‘어른아이들’의 모습이….. 이 ‘어른아이들’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히는 굉장한 작품이다.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같은 책, 247~248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9-0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이 열린 결말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어요. ^^

잠자냥 2016-09-07 17:16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읽었을 땐 왜 이 책을 그렇게 칭찬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던데(아마 그때 읽었던 판본의 번역 문제도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ㅎㅎ) 어른이 되고 나서 읽으니 아아... 이래서... 싶더군요.
 
오셀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19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권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득 작년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줄거리를 따라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 여겨졌고, 인물들의 대사, 행동, 심리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싶었다. 작년에는 <맥베스>를 읽었는데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오셀로>는 또 어떨까?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두 번째로 집어 든 작품은 <오셀로>다.

이아고: 공기처럼 가벼운 하잘것없는 것도, 질투하는 자에겐 성서만큼 강력한 증거가 되지. (제3막 제3장)

에밀리아: 하지만 질투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소용없어요. 그들은 이유가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질투심이 많아서 질투하는 것이죠. 질투심은 스스로 잉태되어 태어나는 괴물이에요. (제3막 제4장)


<오셀로> 또한 굳이 내용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질투 때문에 눈이 멀어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의 이야기. ‘질투’라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정도의 차이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감정 때문에 괴로웠던 기억이 있으리라. 그러나 보통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이 감정을 적절한 선에서 다스리게 된다. ‘오셀로’는 그렇지 못해 파멸한다. 그런데 이 ‘질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바로 ‘오셀로’를 질투하는(혹은 시기하는) 또 다른 사람, 이아고의 ‘말’에서 비롯된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비단 ‘오셀로’ 뿐만 아니라 극에 등장하는 여럿 인물들이 ‘질투’라는 감정에 시달린다.


‘오셀로’는 ‘이아고’의 계략으로 아내인 ‘데스데모나’의 정조를 의심하고 한 번 의심이 생기자 의혹과 질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그토록 사랑한다며 아끼던 아내에게 ‘창녀’ 혹은 ‘갈보’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으며 학대를 하고 결국 목숨을 빼앗는다. 이성이 감성에게 잠식당한 것이다. 그저 ‘오셀로’가 싫어서 이런 계략을 꾸몄다는 ‘이아고’ 역시 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셀로에 대한 질투가 꿈틀거렸다. 이방인 주제에 승승장구하는 오셀로가 미웠고, 오셀로 역시 자기 아내 ‘에밀리아’와 잠자리를 했으리라 의심하며 복수를 꿈꾼다.


이번에 <오셀로>를 읽으면서 ‘어허라?’하면서 조금 놀랬던 것은 성적으로 굉장히 노골적인 묘사나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남성 캐릭터들이 자기 아내나 연인의 정조를 의심하고 그것을 옭아매려는 시도 또한 거침없다. 이 작품을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터라 표현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조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여과 없는 표현들을 읽고 있자니 불편한 감정과 함께 왠지 모를 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오셀로는 물론 이아고, 캐시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인 ‘브라벤쇼’ 등 등장하는 남자 인물에게 여자란 정조를 지켜서 순결한 상태로만 있어야 하는 존재, 그러나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창부와 같은 존재, 혹은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자에 대한 이런 의식을 기반으로 서로 알게 모르게 ‘연대’한다. 예를 들어 브라벤쇼는 자기 몰래 오셀로와 결혼한 데스데모나를 비난하면서 오셀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어 장군, 그 애를 잘 지켜보게나. 아비를 속인 애이니 그대도 속일지 모르네” (제1막 제3장)


남성인물은 그렇다 치고, 순결하고 고귀한(?) 인물로 그려지는 ‘데스데모나’는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이다. 사실 그녀가 오셀로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엥?’ 싶었다. 그가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일들을 들으며 서서히 오셀로에게 반한 것으로 그려지는데, 어쩐지 불충분하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정말로 데스데모나의 무의식에는 강하고 다른 것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던 것일까(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데스데모나의 이런 성적 취향을 정숙하지 못한 여자의 증거로 덧씌우며 공격하기도 한다). 극 초반에는 전장까지 따라가서 오셀로와 함께 살겠다며 상당히 적극적이던 그녀가 극 후반에는 억울하게 의심받으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이아고의 아내인 ‘에밀리아’의 캐릭터가 더 생동감 있다. 에밀리아는 만약 세상을 다 준다면 남편 몰래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스스럼 없이 말한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만 정절의 의무와 순결을 강요하는 남자들을 비꼰다. ‘아내들의 타락이 남편들의 잘못’이라며 한없이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이중성을 비난한다.


“아내들도 남편들처럼 보고, 냄새 맡고, 달고 쓴 것에 대한 미각도 갖고 있어요. 그들이 아내 대신 딴 여자를 택할 때 그들이 하는 짓이 무엇이지요? 재미 보는 일일까요? 그럴 거예요. 욕정 때문에 그런 짓을 할까요? 그럴 거예요. 그런 실수를 하는 건 나약해서 일까요? 역시 그럴 거예요. 그러면 우린 남자처럼 욕정도, 재미 보고 싶은 욕망도 나약함도 없나요? 그러니 남편들은 우리를 잘 대접해야 해요. 우리들의 잘못은 그들의 잘못이 가르친 결과임을 알아야지요” (제4막 제3장)


사특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아고’ 또한 묘하게 매력있다. 그는 이 모든 극의 연출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그만큼 인간의 나약한 속성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십분 활용할 줄 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장점으로 비추는 인간의 선한 면을 약점으로 잡아 그것을 공격한다. 그만큼 인간의 나약함에 정통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 작품에서 내가 공감한 구절 가운데는 이아고가 던진 말들이 많다.



이아고: 사람이 이런 사람이냐 저런 사람이냐 하는 것은 다 우리 마음에 달린 겁니다. 우리의 몸뚱이가 정원이라면 우리의 의지는 정원사죠. 그래서 쐐기풀을 심든, 상추를 뿌리든, 박하를 심고 백리향을 뽑아 버리든, 한 가지 풀만 심든, 여러 가지를 심든, 게으름을 피워 불모지로 만들든, 근면해서 잘 가꾸든, 이런 것들을 좌지우지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권능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지요. 만약 우리 저울에 정욕의 저울판을 균형 있게 만들어 줄 이성의 저울판이 없으면, 우리의 본능 중 정욕과 천박함이 우리를 터무니 없는 결과로 몰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날뛰는 감정과 음욕의 자극과 끓어오르는 정욕을 식혀 줄 이성이 있지요. 나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제가 보기엔 음욕의 곁가지이거나 어린 가지에 불과합니다. (제1막 제3장)

이아고: 악행이란 실행될 때까지는 진면목을 보이지 않는 법이지. (제2막 제1장)

이아고: 인간은 역시 인간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때로는 자신을 망각하는 법입니다. 사람이란 화가 나면 호의를 베푼 자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제2막 제3장)

이아고: 명예보다는 몸의 상처가 더 아프죠. 명예란 남이 안겨 준 가장 헛되고 공허한 것으로, 종종 아무런 미덕 없이 얻기도 하고 또 별 이유 없이 잃기도 합니다. 부관님은 명예를 전혀 잃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잃었다 생각하지만 않으면요. (제2막 제3장)

이아고: 장군님, 남녀 할 것 없이 좋은 평판은 우리 영혼의 가장 소중한 보석입니다. 제 돈주머니를 훔치는 자는 곧 쓰레기를 훔치는 셈입니다. 돈은 중요한 듯하나 아무것도 아니고, 제 것이었다가 타인의 것이 되며, 수많은 자들의 종이니까요. 그러나 제 명성을 훔치는 자는 스스로 부자가 되지도 못하면서 저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을 훔치는 셈입니다. (제3막 제3장)

이아고: 공기처럼 가벼운 하잘것없는 것도, 질투하는 자에겐 성서만큼 강력한 증거가 되지……. 위험스러운 억측은 원래 독약과 같아서 처음에는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을 잘 모르지만 혈액에 조금만 작용하면 유황 광산처럼 타오르지. 내 뭐랬나. (제3막 제3장)



1600년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셀로>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작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등장 인물들의 행동이나 말(데스데모나 제외하고 -_-)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공감을 얻는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정서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탁월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리라.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세 번째 작품으로는 <햄릿>을 생각하고 있다. <햄릿>은 또 어떻게 새롭게 다가올지 기대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9-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햄릿》을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읽으려고 하는데, 관련자료까지 참고하면 독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잠자냥 2016-09-01 16:06   좋아요 0 | URL
읽고 나셔서 쓰실 글이 벌써 궁금해지는군요. ㅎㅎ

cyrus 2016-09-01 18:22   좋아요 0 | URL
기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 책 읽고, 글을 쓸 지 몰라요. 잠자냥님의 <햄릿> 읽기가 제일 궁금합니다. ^^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운이 상당히 오래가는 책이 있다. 이 작품이 그랬다. 읽는 내내 무척 쓸쓸한 기분이었다. 대단히 건조하고 무덤덤한 어투로 서술하고 있는데 감정 이입은 상당하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좀 멍했다. 주인공인 프랭크는 날건달 떠돌이며 그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자기 남편을 배신하는 코라는 분명 도덕적으로 ‘나쁜’사람인데도 자꾸만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이들의 불륜이, 사랑이 끝나지 않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이 왜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단순한 대중소설, 통속소설인데 왜? 하고 반문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에서 그 어떤 고전에서도 느끼지 못한 강렬함을 느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쓸쓸하지?’ ‘삶이 뜻대로 되기란 참 어렵구나.’ 뭐 그런 느낌.

부랑자 프랭크는 여기 저기 떠돌다 고속도로변의 간이식당에 들른다. 음식 값을 치를 돈도 없다. 식당 주인 닉이 가게에서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프랭크는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주제에 튕긴다. 그러던 중 닉의 아내 코라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그곳에 머물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닉과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하던 코라는 프랭크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그다지 싫지는 않은 듯하고 결국 둘은 닉을 속여 가며 밀회를 즐기게 된다. 

떠도는 삶을 좋아하는 프랭크는 코라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코라는 결국 닉이 주는 안락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이 두 남녀는 그래서 결국 그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닉’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사랑한다면 그냥 함께 떠나지 꼭 누군가를 제거하면서까지 그곳에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결국 이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온전하게 지켜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계속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운 기분.

프랭크와 코라는 불륜을 저지르고 살인을 모의하고 실제로 살인을 하는 ‘인간쓰레기들’인데 왜 자꾸 동정을 하게 되는지, 특히 바보 같이 어눌한 프랭크가 왜 그토록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되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인데, 그런데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이 불쌍한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제임스 M. 케인이 이 작품을 출판했을 당시 폭력적이며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보스턴에서는 판매 금지를 당하기도 했단다. 살짝 폭력적이기는 한데, 대체 어디가 선정적이라는 건지? 분위기는 끈적끈적한데 정작 중요한 장면에서는 ‘나는 그녀를 가졌다.’ ‘그날 밤 악마는 제 값어치를 했다.’ ‘우리는 맘껏 즐겼다.’ ‘나는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등등 이런 식이어서 무척 아쉬웠다. ㅋㅋㅋㅋㅋ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두 번 영화화 되었다. 원작이 워낙 인상 깊어서 1981년 작품으로 영화까지 찾아보았다. 잭 니콜슨과 제시카 랭이 각각 프랭크와 코라 역을 맡았다. 젊은 시절의 잭 니콜슨을 보는 재미와 함께 그의 연기는 강렬했는데 영화는 원작처럼 좋지는 않더라. 원작에서는 코라가 상당히 팜므파탈적인데 영화에서는 너무 평면적인 인물로 그린 것 같고. 원작 특유의 쓸쓸하고 황량한 분위기도 영화에서는 좀 부족했고. 원작과 살짝 다른 영화 엔딩의 각색은 좀 어이없는 느낌까지….



영화의 한 장면


문학적 표현 : "우리는 맘껏 즐겼다."



문학적 표현 : "그날 밤 악마는 제 값어치를 했다."


문학적 표현 : "나는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8-26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적 표현이라면 소설에 나오는 문장을 뜻하는 거죠? 그런데 저 문장만 봐도 야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ㅎㅎㅎ

잠자냥 2016-08-26 17:46   좋아요 0 | URL
네 저 문장은 ㅋㅋ 민음사 번역본에서 고스란히 가져왔어요. ㅋㅋㅋ

단발머리 2016-08-3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날 밤 악마는...˝ 표현이 인상적인데요.
서둘러 읽어보고 싶네요. 정말 말 그대로 제목만 아는 소설이었는데 잠자냥님 리뷰 읽고 급 관심생겼어요.
감사해요 ㅎㅎ

잠자냥 2016-09-01 12: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책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은 편이고 문장도 술술 읽히는 편이라 아마 금세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로렌스 더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의 2, 3, 4편인 <발타자르>, <마운트올리브>, <클레어>를 내리읽음으로써 드디어 이 소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난 ‘장편’에는 약하다. 대하 장편소설이라고 부르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총 4권이니 내게는 꽤 길었던 셈. 1편인 <저스틴>은 로렌스 더럴의 현란한 문장에 익숙하지 않아 읽는데 좀 애를 먹었는데, 2편인 <발타자르>부터는 읽기가 수월해졌다. 같은 사건을 다시 복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조금 더 탄력을 받기 시작. 특히나 <발타자르>는 <저스틴>에서 ‘진실’이라고 여겨졌던 내용에 갖가지 의혹이 던져지며 대대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때문에 좀 더 흥미롭게 읽힌다.

<발타자르>만 그런 게 아니다. <마운트올리브>, <클레어> 등 매 편마다 전편에 나온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진실에 반하는 장면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니 결국 내가 보고 있는 이 진실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의문은 점점 증폭된다. 결국 이 긴 장편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내가 본 모든 진실은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보는 사람의 입장, 시각에 따라 같은 사건이(혹은 인물이) 이토록 달라질 수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전에 언급했듯 <저스틴>은 한 편의 단순한 불륜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발타자르>까지는 그렇다. 달리, 멜리사, 네심, 저스틴 이 네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한 편의 불륜 드라마, 연애 소설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저스틴>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사이로 보였던 달리와 저스틴 그 둘 사이가 어쩌면 한 사람만의 착각일 수도(환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타자르>에서 알게 된다. <마운트올리브>는 다른 세 편에 비해 상당히 정치적인 색깔을 띤다. 로렌스 더럴은 단순한 멜로소설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걸까? 작가의 욕심이 드러난 편이라고 여겨졌다. 이 정치적인 편에서조차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또 한 번 비틀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인 <클레어>는 그 후 그리고 그들은 어찌어찌 살았다는 식의 후일담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사족이 길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알렉산드리아 사중주>의 모든 편 <저스틴>, <발타자르>, <마운트올리브>, <클레어>를 읽고 나면 인간의 삶이란 참 쓸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참 고독한 존재구나 싶다. 완벽하게 잘 어울리고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부부에게도 남들에게 말 못할 그들만의 속사정이 있고, 그토록 가까운 부부 사이에도 비밀이 존재한다. 연인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가족 사이에서도 각자만의 비밀과 고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은 자신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어떤 한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그 사람의 모든 진실을 ‘안다’고 말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꽤 길기도 하고, 호불호가 좀 갈릴 듯할 작품이라 섣불리 누구에게나 읽어보라고 권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굉장히 매혹적인 작품일 수도 있을 듯.


다음과 같은 구절은 꽤 공감갔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소유하거나 전부를 잃는 것이다. 연민이나 다정함 같은 다른 감정들은 오직 표면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사회적인 구조와 관습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131쪽)

연인들은 결코 동등하지 않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언제나 한쪽은 상대방을 우울하게 만들고,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의 성장을 막아버리잖아. 그래서 우울한 쪽은 언제나 탈출하고 싶고, 자유롭게 성장하고 싶은 욕망에 괴로워하지. 사랑의 유일한 비극은 그런 것이 아닐까? (300쪽)

-로렌스 더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


사랑이란 전쟁터의 참호와 같다. 적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적이 그곳에 있다는 것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현명한 일임을 알고 있는 것처럼. (79쪽)

소유욕이란 90퍼센트가 질투인 거 아냐? (122쪽)

사랑의 위대한 모순 중 하나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전념과 소유는 독이 된다. (139쪽)

사랑의 법칙에서 소위 ‘어울리는’ 사람은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찾아온다는 거라네. (145쪽)

만일 누군가 가면을 쓴 채로 가면을 쓰고 있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 가면을 먼저 벗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연인들은 평생을 함께하면서도 계속 가면을 쓴 채 살아야 하는 걸까? (249쪽)

얼마나 끔찍하고 말이 안 되는 사랑인지! 난 그 자리에서 내가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 존재(같은 인간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네.)에게 아주 오랫동안 여신 같은 숭배를 받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숨에도 그 사람은 고통스러워했을 테지. 어쩌다가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당신은 동물의 다양함에 대해 생각할 테지? 난 화가 났고 분개했어. 그리고 동시에 상처를 받았지. 어찌된 영문인지 그 사람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그렇지만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끼어든 그 사랑에는 모멸감이 느껴졌어. (285쪽)

                                                            -로렌스 더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발타자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8-2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하소설을 끝까지 못 읽습니다. 그 대신 바다에 사는 대하는 배터져도 먹을 수 있습니다.

잠자냥 2016-08-24 13:35   좋아요 0 | URL
대하소설은 정말... 읽는 중간중간 다른 책 읽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드는지 말입니다. ㅎㅎ
대하구이 먹고 싶네요 ㅠㅠ

Falstaff 2016-10-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저스틴>읽고 왜 이렇게 재미없는 게 인긴가... 의아해하다가 한 1년 있다가 <발타자르>를 넘기는 순간 어느새 끝까지 다 해치워버린 소설입니다. ㅎㅎㅎ 잠자냥 님하고 비슷한 순서를 밟았군요.
근데 바다에서 양식하는 대하는 왠만하면 피하세요. 키우는데 항생제를 너무 많이 줍니다. 잔류농약보다 더 안 좋은 게 잔류 항생젭니다. 회사 저희 부서 아줌마 친정에서 대하 양식하는데 그 아줌마 양식 대하는 절대 안 먹습니다. ㅠㅠ

잠자냥 2016-10-31 17:11   좋아요 0 | URL
네, 이 작품은 좀 탄력이 붙어야 읽기 수월해지는 책 같아요.ㅎㅎ 읽고 나면 잘 읽었단 생각은 듭니다.
네! 대하 ㅋㅋㅋㅋ 잘 알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 펭귄클래식 65
로렌스 더럴 지음, 권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로렌스 더럴의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는 국내 초역된 작품으로 ‘사중주’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각각은 독립적인 한편의 소설로 읽을 수 있다는데, 아무래도 4권을 다 읽어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연작 소설 중 첫 번째에 속하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 The Alexandria Quartet : Justine>을 읽고 먼저 리뷰를 남긴다.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더라? 그건 잘 모르겠다. 난 언젠가 사거나 빌려서 읽어 볼 생각인 책은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그 리스트를 종종 들여다보는데, 어느 날 이 책이 위시리스트에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최초에 이 책을 어떤 이유로 담았는지는 모르겠다;;). 온라인 서점 리뷰에선 ‘온다 리쿠’의 어떤 작품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 언급되었다하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듯한데, 난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온다 리쿠의 그런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고...

서점에서 서서 몇 장 읽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사들고 왔는데,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문장이 상당히 시적이다! 나는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꾸밈없는 문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시적인 문장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처음엔 좀 짜증났음;). 은유, 비유, 상징 등등 현란한 문장 때문에 슬렁슬렁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은 주인공들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되었다는 식의 전통적인 서사구조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저스틴>의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불륜의 사랑’ 이야기다. 이집트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불륜의 사랑. 아, 그 흔한 불륜의 사랑!? 그런데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하다.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는 <저스틴>, <발타자르>, <마운트올리브>, <클레어>로 구성되는데 이 4권의 연작 소설은 각각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에서 보여준다. <저스틴>은 화자인 ‘나’(달리)가 사랑했던 여자 ‘저스틴’을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졌는지, 그녀와 겪은 일들,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달리에게는 동거녀인 ‘멜리사’가 있고, 저스틴 또한 이미 결혼한 몸으로 남편인 ‘네심’이 있다. <저스틴>은 이 네 명의 등장인물 위주로 흘러간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나’의 독백을 통해 설명되기도 하지만, 갑자기 소설 속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하고, 일기, 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인물에 대한 정보가 처음부터 세세하게 설명되지도 않는다. 읽다 보면 달리, 멜리사, 저스틴, 네심, 발타자르, 클레어 등등 주요 인물들의 관계 및 그들의 직업, 현재 처한 상황 등을 서서히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불친절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소설 속 인물에 대해 독자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역시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책을 읽는 사람도 (등장인물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서서히 각 인물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앞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언급했으나 뒷부분에 가서 큰 역할을 하는 내용도 종종 있다. 때문에 더 집중해서 봐야한다(슬렁슬렁 읽었다가 앞으로 다시 돌아간 적이 몇 번이나 있다;). 

나오는 인물이 그리 많지 않지만 다양한 인종과 언어, 종교가 나온다. 때문에 생소한 단어도 많아 그럴 때마다 책 뒤에 붙어있는 주석을 찾아봐야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낯모르는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급과 인종, 성적 취향을 가진 이 인간 군상들이 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나갈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저스틴>에서 ‘달리’는 그가 사랑한 여인 ‘저스틴’을 굉장히 매력적인 ‘팜므파탈’이자 ‘섹스중독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건 ‘달리’만의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가련한 동거녀를 뒤로 한 채 불륜에 빠진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2권인 <발타자르>를 펼쳐보니 초반인데 벌써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사람이 누군가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자기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지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8-19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가는 알라딘 매장에 가면 <사중주> 시리즈 중 한 두 권은 꼭 있어요. 네 권 모두 있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매장에 네 권 다 있으면 사서 읽어보고 싶어요. ^^

잠자냥 2016-08-19 17: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자주 가는 알라딘 매장이 두 곳 있는데 두 곳 모두 갈 때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 한두 권은 꼭 있더라고요. 네 권 모두는 없고요. ㅋㅋ 전 이 책을 한꺼번에 샀던지라 중고 매장에 싸게 나온 걸 보면 좀 배가 아팠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