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입원 전에는 호기롭게 병실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겠노라 생각하며 전자책을 비롯해 책 두 권을 챙겨갔다. 상급종합병원 1인실은 비용이 어마어마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2~3인실 정도만 당첨돼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입원실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필이면 다인실, 그중에서도 5인실밖에는 빈자리가 없단다. 아무리 환자와 보호자 1인을 지정해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입실하게 한다고 해도, 코로나 시국에 다인실을 쓰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은 환자와 보호자의 수다였다! 코로나 시국에 다인실 이용하는 두려움보다 늦은 밤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환자 1과 2,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들의 수다였으니, 수술하기 전날 밤에는 책을 펼쳐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거듭했다. 수술 후로는 마취 깬 뒤의 온갖 고통스러운 증상 때문에 도무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좀 읽으려고 하면 어느새 잠들어 있는 나..... 몸이 축나니, 평상시에는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던 눈으로 글자를 쫓는 일도,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모두가 부담스럽고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수술 후 4일 가까이는 조금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들여 병동을 쉬엄쉬엄 걷는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5인실, 나를 제외한 환자 넷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듣게 되었다. 시종 수다를 떨면서 시끄럽게 굴던 환자 1과 2는 이 5인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환자 1은 60대 여성으로 몇 차례의 항암 이후 유방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는데 환자 2인 70대 여성(마찬가지로 유방암 수술을 받음)과 함께 종일 유방암과 관련한 대화 및 자기 가족, 지인 이야기로 조용할 틈이 없었다. 환자 1의 보호자로는 남편인 60대 남성이, 환자 2의 보호자로는 딸인 50대 여성이 병실에 상주했는데, 50대에서 70대로 이루어진 이 네 명의 수다는..... 그 소란스러움과 ‘오지랖’의 강도가 가히 견줄 데가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눈도 귀도 밝아서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침상에 누운 환자들이 대략 자기들보다 모두 나이가 어린 환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온갖 오지랖을 떨며 사적인 질문을 퍼붓고는 했다. 나와 내 보호자로 있었던 내 동생은 낯모르는 타인들이 사적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병실에서 커튼을 완전히 가린 채 꼬박 5일을 지냈다. 유방암 환자인 그 두 여성을 제외하고 다른 두 여성은 30대로 둘 다 공교롭게도 복강경 수술로 담석을 제거하려고 입원한 환자들이었다. 한 여성은 남편이 보호자로 와 있었고, 다른 한 여성은 보호자 없이 혼자 내원해서 수술 당일 무척 힘겨워했다. 알고 보니 그 여성은 집에 아이가 있어서 남편이 아이를 돌보느라 보호자 없이 혼자 입원해 있던 거였다.
이 두 30대 여성이 자신의 남편이나 엄마, 아빠 등 가족과 대화하거나 통화하는 내용을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너무 차갑게 말하나?’ 남편과 함께 입원한 그 여성도, 혼자 입원했지만 남편과 통화하는 그 여성도 자기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 어찌나 다들 다정한지 무뚝뚝하고 차가운 내 말투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몇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음은 다정한데 표현을 그다지 따뜻하게 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너무 차갑게 말할 때가 많아서 사귀는 사람들도 그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말하면 오그라드는 것 같고 진심이라기보다는 왠지 가식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음, 실은 이 알라딘 서재 분위기도 처음에는 댓글이 하나같이 다들 다정해서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한때는 그랬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이들이, 저토록 다정하게 서로 위하면서 따듯하게 말하고 있던 것이다.
70대와 60대 그 두 여성은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남편이나 딸과 너무나 오래 익숙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차갑고 서로 갈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그 말투를 듣노라니, 결국 이렇게 아플 때 서로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저렇게 못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진다. 그런 데다가 결혼도 하지 않아서 보호자로 남편은커녕 결혼한 동생이 두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엄마한테 맡기고는 내 보호자로 와서 며칠 상주하고 있으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엄마는 엄마대로 힘에 부치고 속이 상했는지 내가 수술한 다음 날,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언제 오냐”고 반 짜증 섞인 말투로 하소연하는 걸 내가 옆에서 고스란히 듣게 되었다. 그때의 서운함과 서러움이란..... 결국 나는 동생을 그다음 날 집으로 보냈고, 병실에서 하루하고 반나절은 혼자 있다가 퇴원하게 되었다.
그놈의 직계가족 동의서만 아니었어도 나도 내 애인을 보호자로 오라고 했을 텐데, 한국 사회는 너무나 ‘결혼’과 ‘직계가족’ 위주로 돌아간다. 퇴원하는 날에도 차로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은 제부였는데, 동생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차를 타고 병원을 나섰을 때쯤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하신 말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제부가 당황해서는 어쩔 줄 몰라하며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다독이는데 그만 눈물이 더 펑펑 쏟아졌다. 집에 오니 고양이 녀석들은 내게서 낯선 냄새가 나는지 다들 도망가 숨어버리고 그 한낮에 나는 홀로 누워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가 그렇게 미운 적은 처음이었다. 자기도 배 가르는 수술 해봤으면서 배 가르는 수술 한 지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어린애 돌보기 힘들다고 동생한테 득달같이 전화하는 엄마라니, 정말 해도 너무 했다 싶다. 창밖으로 햇살은 왜 또 그렇게 눈이 부신지 서러움에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하필이면 이즈음 너무나 바빴던 애인이 다 늦은 오후 집에 와서는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더니, 수술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부은 줄 알고 걱정을 한다. “그게 아니라 엄마가...” 하다 보니 또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내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그렇게 울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하다. 우리 엄마는 왜 다정하지 못할까? 하긴 나도 다정다감하지는 않지. 엄마가 좀만 더 다정했더라도, 내가 이렇게 서럽지는 않을 텐데. 별별 생각이 든다. 퇴원 후 나는 몸에 기운이 빠져서 그런지 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전보다 좀 더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게 듣는 이에게는 다정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다정함에 관해 침상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좀 더 다정하게 말하려고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인은 그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프고 나더니 왜 다정해졌냐고 묻는다. 병실에 누워 다정함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노라 말했다. “회사에 안 가고 있어서 유해진 거 아니야?” 묻는데, 얼마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회사에 다시 복귀하는 3월 2일 이후로도 나는 전보다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공감과 위로의 말 한마디가 심약해진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이렇게 늦게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다정함이 자연에 그렇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