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오에게 자극받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이틀 만에 다 읽어버린 어젯밤. 뜻하지 않은 생각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추억 상념 기억..... 이런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흘러간 어떤 추억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스쳐지나갔다. 책을 펼친 첫날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옛 추억에 잠겼는데, 바로 이 책 29쪽에 나오는 어떤 노래 때문이었다. <딸들아 일어나라>라는 1980년대 민중가요.

아놔...... 책 읽다 말고 나는 왜 이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고 있는가? 그렇다. 나는 이 노래를 대학생 시절 참 많이도 불렀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생생하게 부를 수 있다(이 노래가 직접 들어보고 싶은 사람은 잠자냥에게 전화하세요. 불러드리리다ㅋㅋㅋㅋ).



우리는 이 땅의 노동자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
더 이상 벼랑 끝에 흔들릴 수는 없다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이 땅의 노동자로 태어나 자랑스런 딸로 태어나
고귀한 모성보호 다 빼앗겨버리고 참아 왔던 그 시절 몇몇 해
나가자 깨부수자 성차별 노동착취 뭉치자 투쟁이다 여성 해방 노동 해방



노래는 기억을, 추억을 일으킨다. 정희진 선생님은 이 노래를 80년대 민중가요라고 소개하면서 이 노래가 어떤 맥락에서 불렸는지, 가사의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신다. 나는 90년대 학번이니 그 이후 세대인데, 그 이후로도 이 노래는 학교에서 많이 불렸다. 주로 총여학생회에서. 나도 그 공간에서 처음 이 노래를 접했고, 그때 좋아했던 선배들-언니들이 이 노래를 너무나 사랑했었다. 술자리에서는 이 노래가 뭐랄까 애국가 같은 존재? 아니야, 아니야... 가장 사랑받는, 단골 레퍼토리였다.

총여학생회는 내가 대학 시절 도서관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사랑하던 공간이었다. 총여학생회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생각날 수밖에 없는 선배-언니 두 사람이 있다. 어젯밤에는 그 두 사람이 너무 보고 싶고 궁금해서 그들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쳤다. 한 사람은 P이다. P선배는 내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처음으로 반한 사람이었다. 신입생인 나는 입학 전에 강의실을 찾아서 뭔가를 써서 내야만 했는데, 좀 늦게 학교에 도착했고, 다른 아이들은 다들 이미 제출하고 삼삼오오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조교도 안 보이고 나 혼자 책상에 앉아 끙끙대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도와줄까요?”하면서 다가왔다. 그게 P선배였다. 선배의 도움으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와 같이 잠깐 걷던 그때 선배가 말했다. “국문과 92학번 P에요. 저는 과방보다는 주로 저기에 있어요.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와요.” 그러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는데 그곳은 유리창에 크게 ‘총여학생회’라고 쓰여 있었다. 대학을 가면 총학생회니 뭐니 데모할 생각 꿈도 꾸지 말라던 엄빠의 엄포를 들었던 나는 저기도 그 비슷한 공간인가보다 싶어서 “네....”하고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아마도 내가 저곳을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하지만 저 사람은 참 멋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총여학생회를 제 발로 찾아갔을 리는 없고, P선배와의 만남은 그 이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다시 이루어졌다. 지금보다 더 술을 잘 마시던 나는 동기들이 하나둘 술에 쓰러지던 순간에도 멀쩡한 정신으로 선배들이 먹이는 술을 받아먹었는데 그래도 어느 순간 술에 조금 취했는지 깐죽대는 도발적인 질문들을 했는데 그게 선배들 눈에는 귀여워 보였나 보다. H라는 이름의 한 남자 선배가 내 앞에 턱 앉더니 “얘는 내가 찜했다!”라면서 술잔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성적인 관심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시절 나는 소년 같은 외모에 크고 헐렁한 옷을 입고 다녀서(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는 바로 그 패션) 남학생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었다. 오티 때를 비롯해서 신입생들이 잔뜩 모이는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고학년 선배들이 간만에 똘똘한 남자애 들어왔다고 좋아하면서 내 앞에 왔다가....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선배는 저놈은 왜 늘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놀고 있지? 좀 괘씸하다고 생각했다고도.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H선배도 나중에 털어놓기를 니가 남잔 줄 알고 잘 키워보려고 했는데 아쉬웠다....만 그래도 키워보고 싶다! 뭐 이런 소리를 했었다. 그 시절 신입생을 ‘키운다’는 것은 운동권들이 포섭해서 의식화/세뇌/가스라이팅을 하겠다는 그런 의미였다.

아무튼 이 H선배가 주는 술을 받아먹고 있는데 그때 P가 나타난 것이다. 둘은 92학번 동기라서 서로 말을 놓았는데, P선배가 “H야, 벌써 작업 들어갔냐, 얘는 내가 찜했는데!”라면서 쓱 내 앞에 앉았다. H선배는 볼멘소리로 “총여로 좀 그만 데려가. 과에도 애들 좀 남기자!” 뭐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사람은 친해서 그 이후로도 나를 포함해서 셋이 술을 마시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되어서 나는 P선배에게 이끌려 총여학생회를 제집 드나들 듯(아니 집보다 더 자주....있었다. 이곳을 알고 나서부터 집에 안 들어가기 시작 -_-)이 하게 되었다. P선배는 그때 우리 학교 총여학생회장이었는데, 그곳에는 P선배 말고도 내 눈을 사로잡은 또 멋진 언니가 있었으니 경제학과 93학번으로 그때 선전부장을 맡고 있던 K선배였다. 이 사람은 귀엽게 생겼는데 재미나고 웃기고 근데 또 똑똑하고 마음도 넉넉해서 푸근하고 진짜 이 선배도 너무 사랑했다. K선배가 나를 선전부 차장에 임명하면서부터 P와 K 두 사람과 총여를 비롯해 학교 근처에서 술을 먹는 날이 잦아졌다. K선배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바로 이 ‘딸들아 일어나라’였다.

두 사람이 “너 이 책 읽어봤니? 한번 읽어보지 않을래?” 하고 권했던 책 중에 하나가 안일순의 <뺏벌>이다. 나에게 <뺏벌>을 쥐어준 그 두 사람. 총여학생회에서 그렇게 나는 두 사람이 알려주는 새로운 세계로 쑥쑥 빠져 들어갔고, 그 두 사람이 스무 살의 내게 끼쳤던 영향은 돌아보니 참 지대했다. 술이면 술, 책이면 책, 게다가 내가 이 두 사람을 얼마나 동경했던지, 두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것도 어쩜 저렇게 멋있을까? 생각하면서 나도 멋있게 피워봐야지!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뒤따라온 P선배가 이눔아 너는 안 피우는 게 더 멋있다, 해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겠군! 생각하기도 했다. 셋이서 술을 마시던 어느 날은 새로운 두 언니들이 술자리에 오기도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꽤 예뻤었다. 저 사람 되게 예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K선배가 둘을 소개하면서 둘이 연인이라고 해서 앗........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앗! 인생 최초 레즈커플 목격! 이런 촌스러운 생각을 머릿속에 잠시 떠올렸다가 저 멀리 치워버리기도 했다). K선배가 굳이 그 이야기를 한 것은 나의 학습(?) 능력을 높이 샀던지 LGBT의 세계로 인도는 아니고, 그런 세상에 대한 공부를 시켜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90년대에는 학교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총여학생회가 있었고(물론 여대는 그냥 총학생회), 각 대학에서 LGBT 성소수자 동아리가 속속 발족하기도 했다. 집회나 시위에 나가면 무지개깃발이 각 학교 깃발들과 함께 휘날리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총여학생회는 물론, 성소수자동아리를 향해서 혐오를 발산하는 것 자체가 대학생이라는 신분에서는 하면 안 되는, 마음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티를 내는 것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졌었다. 그러고 보면 집게손가락발작 이대남들 징징거림/떼쓰기/역차별 운운에 총여학생회가 하나둘 대학에서 자취를 감추고 혐오할 권리를 아무렇지 않게 외치는 자들이 넘쳐나는 현재가 그때보다 더 퇴보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려나.

그 여름에 P선배가 물었다. “너 여름방학 때 뭐할 거니?” H선배가 농활 가자고 해서 농활 갈 거 같다고 대답했더니 “거기 말고 나랑 다른 데 가자”한다. 다른 데 어디요? 물었더니 P선배가 말했다. “기활”- “기활이요?” 선배는 약간 머뭇거리더니, “어 그게... 너 밖에 대자보에 붙은 사진 봤지?”하고 묻는다. 그 사진이 바로 윤금이 씨 사진이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의 ‘부록’에는 기지촌 여성과 윤금이 씨 사건이 주로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운동권 내부에서도 윤금이 씨 사진을 공개하느냐 마느냐로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그 사진을 보게 된 것은 ‘공개하자’로 결론이 났고 그 이후였기 때문에 아무런 여과 없이 그 적나라한 사진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캠퍼스 곳곳에 그 사진이 대자보와 함께 붙어 있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그때 주로 구호는 ‘반미자주/한미SOFA 개정/양키고홈/미군범죄 국내처벌’과 같았다. 그 어디에서도 윤금이 씨 사건을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유린당한 관점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미국(외세)에 유린당한 민족의 딸 윤금이’가 그때의 기조였다.

지금까지도 내가 본 가장 충격적인 사진이다. 그렇게 적나라하고 끔찍한 사진은 그 이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스무 살의 나는 그 사진 앞에서, 대자보 앞에서 말문이 막힌 채 선전선동을 하려고 이런 사진을 이렇게 공개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과연 이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인가? 그런데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아니 할 수 없다고? 저게 성(性)인가? 섹스가 저런 것인가? 저런 게 인간의 성욕/성본능이라면 안 하고 살겠다 진짜 끔찍하다… 별별 생각을 다했던 것 같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난 호 <정희진의 공부>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조현철 감독이 자신이 이 사진을 봤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문이 조금 막히던 그 지점을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조현철 감독은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그 사진을 봤을 텐데.......

P선배는 그 사진 속 윤금이 씨 같은 여성들- 그러니까 기지촌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활동을 기활이라고 한다면서 그때 처음 나에게 ‘두레방’을 알려주었다. 멀지 않아, 동두천에 가는 거야, 그런데 부모님들이 알면 싫어하실 수도 있어.... 말없이 오면 안 돼. 그런 말들. 두려움. 내 마음속에 먼저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농활은 보람과 낭만,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는데 기활은 ‘두려움’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감정이 없었다. 그래도 P선배와 K선배가 간다고 하니까 이쪽이 더 따라가고 싶어서 순진했던 나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한테 “엄마 나 방학 때 기활 갔다 와도 돼?” 하고 물었다. 기활이 뭐냐? 묻는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했더니....... 화들짝 놀란 엄마가 “미쳤어!” 한다. 절대 가지 마, 동두천하고 이태원 그쪽은 가면 안 돼! 얘가 미쳤나봐....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뭘 한다고 할 때 반대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때는 극렬하게 반대를 하신 것이다. 농활도 못 가게 한다고 해서는 겨우 허락받고 나는 그해 여름 결국 기활 대신 농활을 떠났다.......

그때 내가 기활을 따라갔다면 어떤 경험을 했을까. 확실한 건 P선배도 K선배도 기활을 다녀오면 얼굴이 잔뜩 어두워져서 술을 유난히 더 많이 마셨다는 것이다. 두레방에서 만든 빵을 총여에서 잔뜩 가져와서 판매를 한 적도 있는데 판매는 거의 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언급하신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총여에서 다 껴안고 우리끼리 나눠먹거나 그냥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나도 빵을 잔뜩 집에 가져왔더니 엄마가 웬 빵이냐고 물었고 기지촌 여성들이 만든 빵이라고 했더니(야 거짓말을 좀 해봐....) 엄마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먹지 않은 기억이 난다. 그때도 나는 내 부모의 모순을 목격했다. 거지가 마당에 들어와서 밥 좀 달라고 했을 때 라면까지 끓여주던 엄마가 기지촌 여성이 전업하기 위해 만든 빵은 더럽다고 먹지 않다니.... 내 기준에는 그때 그 거지가 더럽다면 더 더러운데 엄마에게는 저 빵이 더 더럽구나..... 엄마도 여자인데. 엄마가 갖다버리라던 그 빵은 나랑 동생들이 다 먹어치워 버렸다.

두 선배도 기활을 오래 하지는 못했다. 심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했고 어느 날은 두레방 활동가 언니들하고 말다툼이 있었다고도 했다. 너희들은 대학생이지 않느냐 여기 사람들하곤 다른 존재다. 너희들이 그 알량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와서 뭔가를 채우고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이게 삶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말이 너무나 맞는 말이어서, 자신들의 운동이 대체 뭘 위한 운동인가 회의감을 많이 느낀 것 같다. 아마 나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딸들아 일어나라, 기지촌 활동, 윤금이 씨, 두레방 빵…. 그리고 그 두 사람, P와 K언니.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은 이렇게 뜻밖의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P선배는 그 이후 내가 서른 초반, 선배가 삼십 대 중반이던 시절 연락이 닿아 안국동 어느 술집에서 술을 진탕 마신 기억이 있다. 그때도 선배는 어느 여성 단체에서 간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역시 내가 사랑한 선배답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필리핀 여성과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필리핀으로 떠난 것까지는 알고 있는데 그 후 소식이 끊어졌다. 보고 싶다 엄청 많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셋이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딸들아 일어나라’를 불러보고 싶다. 그러면 이제는 어디선가 돌이 날아오거나 너 페미냐? 칼이 날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스무 살의 나에게 그 두 사람이 일깨워준 세상은 나를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정희진으로, 그리고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계속 이끌어 준 것이다...


P.S 이 책을 내게 선물해준 은오는 이곳에서 이 언니 저 언니들에게 좋아요, 결혼신청을 남발하고 다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저 시절의 내가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 결혼신청은커녕 “선배, 좋아해요”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그 두 사람이 나에게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임을 일깨워준 최초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안다. 은오는 그때의 나에 비하면 훨씬 더 똘똘하고 야무진 것 같다. 알라딘 서재 이곳이 총여학생회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언니들의 닮은 듯 다른 생각과 개성을 쭉쭉 흡수해서 무럭무럭 자라길. 그리고 글 좀 써. 쓰다 보면 당신이 좋아하는 냅과 고닉,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손택 언니의 장점만을 닮은 그런 글이 나오지 않을까....? (아 물론 시험 끝나고)






댓글(62)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잠자냥 2023-12-09 23:09   좋아요 2 | URL
<몫>은 검색해 보니 최은영 작가 단편인가 봅니다. 저는 최은영이 아니고 ㅎㅎ 그런 단편을 쓴 적이 없네요. ㅎㅎ 단편을 쓴다해도 이걸 쓰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ㅎㅎ 고대도 학생운동을 열렬히 하던 학교이긴한데…. 최은영 작가 학번쯤이라면 운동은 이미 소멸했을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023-12-10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0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12-11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이제야 정독했네요. 옆지기는 등록금 투쟁 같은 건 해본 적 있다는데 제가 대학 입학했을 때는 앞선 운동권 데모들 뿐 아니라 그런 등록금 투쟁들도 없어졌을 때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답니다. 아무래도 저는 공학을 전공해서였기도 했고 여자 선배들 자체가 귀했습니다. 맨날 남자 선배들만 계속 달라붙어서 짜증났던 기억이ㅋㅋㅋ
잠자냥님의 이런 경험이 부럽고 멋진 선배들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선배들을 만나실 수 있다면 그 후기가 궁금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건수하 2023-12-11 17:20   좋아요 1 | URL
등록금 투쟁은 꽤 나중까지도 있지 않았던가요...? 화가님 제 생각보다 많이 젊으신가 봅니다.
그동안 오해해서 죄송... ==33

거리의화가 2023-12-11 17:30   좋아요 1 | URL
등록금 투쟁이 소소하게 있긴 했을텐데 4년제 대학이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등록금 비용은 낮아서인지 큰 투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등록금도 저는 힘들게 내며 다니긴 했지만요.

잠자냥 2023-12-11 17: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도 건수하 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등록금투쟁은 2000년대 학번들도 하긴 하더군요(제 동생들에게 전해들음). 맨날 남자 선배들이 달라붙은 이야기 좀 해주세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12-11 17:39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도 사실 등록금투쟁에 참여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막연히 학생운동은 이념적인 것이라 생각했던지라 좀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랬던 제가 너무 삶을 몰랐다고 생각하지만..

거리의화가 2023-12-11 17:41   좋아요 1 | URL
ㅋㅋ 남자 선배들하고 하는 일은 뻔하지 않나요. 말술 잔치죠뭐! 자기들 술 먹는데 왜 맨날 나를 불러대는건지... 저는 집안이 엄해서 대학 때 처음 들어가서 술을 먹었는데 선배들이 몇 번 먹여보더니 ‘이 놈 봐라!‘ 하면서 저를 그다음부터 끌고 다녔다는! 대학 때는 술과 알바 밖에 기억나는 게 없어요ㅠㅠㅋㅋㅋ

건수하 2023-12-11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여기에 댓글을 안 달았었네요... 윤금이 씨 사건 사진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저도 화가님이 위에 쓰신 것처럼 여성 선배도 별로 없고 운동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때라...
친분이 있는 선배는 다 NL 계열인데 그쪽은 성향상 안 맞았었네요.
잠자냥님 후배들도 엄청 따랐겠는데요.

희진샘 책이 궁금해집니다. 올해 안에 펼 수 있을 것인가...

잠자냥 2023-12-11 17:38   좋아요 2 | URL
ㅋㅋ 저희 학교가 그 NL이었습니다. 희진쌤도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심(기활 자체가 NL학교 위주로 이뤄졌다고) 물론 저도 제 개인 성향은 PD쪽이긴 했습니다.

올해 안에 펼칠 것인가 건수하!?

건수하 2023-12-12 15:46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북토크 가려면 그 전에 펴긴 해야겠는데요....샘에 대한 예의상... @_@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