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오 상담소
소복이 지음 / 새만화책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 지정 공식 마스다 미리 마니아인 나.(현재 76번째 마니아다) 수짱 시리즈를 무지 좋아하긴 하지만 마니아라 뽑히니 뭔가 얼굴이 화끈하다. 


왜 마스다 미리와 비교를 하느냐..? 독자 별점 난에 '마스다 미리보다 훨 좋다'라는 평을 보고 읽고자 결심했으므로. 하지만 마스다 미리와 비교를 하는 것에는 좀 무리가 있다. 일단 마스다 미리는 다작을 한 작가라 작품마다 편차가 있고 아무래도 처녀작만큼 작가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뭐 다음 작품이 나와도 비교할 마음은 없다. 소복이는 소복이고 마스다 미리는 마스다 미리지. 하지만 그들이 같이 엮이는 이유는 아마 '여자 만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스다 미리가 하얀 종이에 HB로 살살 그린 그림이라면 소복이의 그림은 갱지에 B는 되는 연필로 종이가 패일만큼 꽉꽉 눌러 그린 그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대놓고 상담소를 주제로 한 [이백오 상담소]는 어쩐지 정제되지 않은, 대사가 옆에서 들리는 느낌이다. 날 두고 가지마.. 라면서 울부짖는 고미숙의 대사는 귀여우면서도 어쩐지 가엽다. 표지 뒷페이지에 있는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을 못하는 아저씨 컷 때문에 (명대사: "미..미... 미친놈아 니가 잘못했자나!") 유명한 이 작품은... 영화 소개 프로가 그렇듯 여기서 제일 재미있는 씬이다.



<점 풍선.. 진짜 ㅋㅋㅋ 웃으면서도 눈물이 난다.>



그치만 다른 에피소드도 만만치 않게 재밌고 눈물이 날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의 민낯을 섬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헉, 하는 순간도 있다. 상담소를 운영하는 '나'는 고시원에 205호에 상담소를 열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지만 일이 끊기면 생활이 막막해지니 어쩌다 보니 상담소까지 운영하게 된 것이다.


상담료는 2만 5천원. 선불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감정이 격해진 상담자들에게 돈을 청구하기가 힘들어서. 나는 보통의 상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아니지만 (끝에는 부적같은 그림까지 그려준다!) 솔직하게 이미 상담자가 듣고 싶은 말을 뱉어주어 월세 정도는 낼 수 있는 수익을 내는 편이다. 나에겐 항상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친구 고미숙이 놀러와서 짜장면과 고량주를 먹고 옆집에는 찌질해 보이는 두 청년이 살고 있다.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은 당연히 보통 사람. 보통 고민.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작지 않은 고민을 안고 온다.


이별 상담,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오는 사람, 소개팅 중독에 걸린 완벽한 남자, 술 마시면 개가 되는 사람, 친구한테 사과하고 싶은 사람, 전 주인이 걱정되는 고양이, 외계인... 그리고 징징거리는 고미숙이다. '나'는 더이상 감정교류를 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답게, 혹은 다섯 번의 연애에서 늘 갑작스럽게 차이는 여자답게 강제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많아서 그런지 상담을 능숙하게 잘해준다.


<상담소의 주체는 상담자보다는 '나'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나'와 고미숙은 영혼이 자유로운 그에게 빠져서 이야기에 활기를 부여한다.>


늘 외로운 '나'와 고미숙은 자주 같이 짜장면을 먹고 나쁜 남자(혹은 비전없는 남자)에게 쉽게 빠진다. 하필 잡아 둘 수 없는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그들. 연적이 되고 격한 싸움까지 하고 만다. '나'는 너무 힘들어 섬으로 떠난다. 섬에서도 먹을거리 등의 작은 선물을 받으며 상담을 이어가는데.. 그곳엔 우연히 다시 사랑하고 싶은 그가 오고.. 또 떠난다..


친구들의 격려에 다시 이백오 상담소로 복귀한 '나'.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고 계속 이야기를 만든다.



<장수 모텔에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다.. 이거 홍상수 영화니..?>




적당히 어둡게(?) 산 사람이라면 깨알같은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공감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다. 게다가 찡-한 대사까지. "당신은 어릴 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군요.." 같은 요지의 상담보다도 "당신에게 필요한 건 술친구" 같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비전문적일지라도 속이 시원한 상담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래서 점집이 흥한 것일 수도.


희안하게 삐뚤삐뚤한 느낌이 드는 그림과 찌질한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정말 상담소같은 느낌. 게다가 아주 무겁지도 않아서 아무 페이지나 후루룩 봐도 빵터진다.


읽고 난 다음의 부작용이라면 짜장면과 쐬주, 고량주가 몹시 땡긴다는 것. 읽고 나면 느끼한 짜장면을 한 가득 입에 물었다가 고량주로 입을 개운하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전국 중국집 주인들은 이 작품을 홍보 자료로! 


<베스트 대사로 임명이오!>




*감상 포인트 하나 더. 정말 깜찍한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으니 앞 뒤 띠지도 꼭 펼쳐보길 바란다. 왠지 선물 하나를 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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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뉘앙스 사전 - Kodansha's Effective Japanese Usage Dictionary
마사요시 히로세 외 지음, 오현숙 엮음 / 넥서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아니,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정말 엄청시리 힘든 일이다. 이미 등록금으로 쏟아 부은 게 얼마냐 싶다가도 좋은 책이 있으면 살 수밖에 없는 이 콤플렉스같은 현실. 특히 뉘앙스를 알아차리기란 외국인에게 힘든 일이다. 모르는 사람은 잠시 초급 일본어만 배우고선 엥? 일본어는 쉽자너? 라고 속터지는 소리를 할 때도 있어 속이 상한다. (뭐.. 진짜 쉬운 사람도 있겠지만. 쩝)


입소문으로 칭찬하는 뉘앙스 관련으로 국내에 출판 된 도서는 2권. 하지만 모두 절판되었다.


중고책 시장에서 절판이 되면 무조건 정가보다 가격이 올라가게 되지만 사실 고운 시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절판되어도 중고책인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도 그런 거 상관없이 알라딘 추천대로 가격을 붙이기 때문이다. 돈 버는 재주같은 게 원체 없는 인간이라 그런지 왠지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너무 비난하지 마시길..


정가 25,000원 가량을 형성하고 있는 요 책. 어쩔 수 없이 중고를 샀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


아주 감동적인, 알라디너라면 누구나 알만한 이 문구는 훌륭한 문제집 앞에서도 통한다.(왜 당연히 문제집은 문학보다 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건가!)


최저가가 39,000원인 중고책을 보니 장바구니에 넣었다 담았다.. 고민을 많이 했다. 습관성 외국어 학습자인 나는 이미 일본어 단어집이 여러 권이나 있는데! 하지만 요 뉘앙스 책은 꼭 필요하지 않나? 그리고 정가보다 비싼 중고책을 보자니 부아가 치밀기도..


하지만 혜성같이 나타난 15,000원의 요 책. 게다가 등급도 '중'이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민할 것도 없이 얼른 장바구니에 담고 오전에 결제를 뙇! 오호, 당일 상품을 준비하는 이 신속함이란. 두구두구두구두구..  기대감으로 심장이 쿵쾅쿵쾅.


야근하고 가서 집에 온 책 꾸러미를 보니 피곤이 사르르 풀렸다. 됐어, 이제 나도 승승장구 할 수 있어!


신성한 마음으로 뾱뾱이 봉투 위를 자르고 조심조심 꺼내든 책, 질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행복도 몇 초 가지 않았으니....ㅠㅠㅠㅠ


책이 더럽지는 않지만 형광펜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습관성 외국어 학습자가 그렇듯 에이, (당신도)앞부분만 그렇겠지, 음하하하! 라고 승자의 기쁨으로 후루룩- 넘겼는데...............


헉.. 끝까지 공부한 흔적이...ㅠㅠ 심지어 공부한 날짜도 적혀있었다. 어떻게 이게 '중'일수가 있냐!!  


실망감에 풀썩- 주저앉았다. 항의를 해야할까 책을 물릴까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책갈피처럼 껴 있는 얇디 얇은 서울대 중앙 도서관 자리 배치증이 중력을 거부하며 핑글핑글 떨어졌다. 꼭 서울대생이 공부했다는 근거는 아니지만 갑자기 '중' 등급이 이해가 되었다. 아... 이런 사람에게는 이 정도가 '중' 일수도 있겠구나. 게다가 절판된 책은 아무 욕심없이 저가에 판 것을 보면 양심이 없는 사람은 아닐 터!


중고책은 아무래도 새 책이 아닌 까닭에 등급 메기는 것이 무척이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갑자기 그 날 밤, 나도 이 책을 다씹어 삼키며 소화시켜 버리리라! 하며 공부 열의에 불타 올랐지만... 역시나....... 우쒸... 


한 번 쭉- 훑고 필요한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공부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필요한 부분만 책 뒤쪽 색인에서 찾아서 얌생이 공부만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다.


흑. 진짜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습관성 외국어 공부자에게 얼마나 더 절박한 사연이 필요한 건지.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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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5-18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관적 외국어 학습자로서 무척 공감되는 글입니다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5-05-18 11:30   좋아요 0 | URL
엄청난 실력가이신 비비아롬나비모리 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위로가 되어요..ㅎㅎ
 

여느 20대 어른(법적인 의미)들과 같이 나도 커피를 좋아한다. 새내기였던 1학년 때에는 아직 아메리카노를 잘 마시지 못했지만 이제는 대놓고 각성효과를 바라고 마시는 중. 조금씩 조금씩 사모아 은근 커피 도구도 있다.


이미 국민 모카포트인(네이버 블로그 여론 기준) 비알레띠 모카포트랑 베트남에서 사온 베트남 커피 추출기, 내가 그림 그려서 만든 도자기로 된 드리퍼까지. 


갖고 있으면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도 있지만 일단 그 자체로 디자인이 훌륭해서 갖고만 있어도 왠지 뿌듯하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케맥스의 커피 기구를 어떤 잡지에서 보고 사려고도 해봤지만 고가에, 예민한 유리 소재라 포기했다. 


커피 마시는 데 뭔 지식이 필요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카페가 김서방 만큼 많아진 요즘 시대에 좀 알아두면 교양있어 보일 듯도 하다. 일단 일상에는 도움이 될 듯. 올리브 티비를 즐겨보는데 발렌타인 기념으로 코코아에 대해 설명 하러 나온 쇼콜라티에(고은수 쉐프)의 귀여운 외모가 갑자기 지적으로 보이는 경험을 한 뒤 크게 든 생각이다. 


코코아도 원산지에 따라 산미도 다르고 어떤 것은 과일향이 나고.. 한 때 광풍 불었던 카카오 99% 처럼 카카오의 비율에 따라 쌉싸름한 맛이 다르다는 것. 생각해보면 나주는 배, 영덕은 대게, 안동은 소주 같이 대표적인 지역 음식도 있는데 당연히 코코아도 뭐..


기호 식품은 커피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물론 소믈리에처럼 한 모금 딱 마시면 원산지 같은 걸 알리야 없지만 가끔 고급 원두를 사 먹을 때 향기라도 다르게 느껴지지 않은가. 


책에는 원두에 대한 설명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지만..(하긴 이걸 어찌 표현한다냐!) 로스팅 기구, 커피 도구들에 대한 설명이 많이 나오는데 생각보다 실용적인 설명이 많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그림으로 설명해 줘서 알기도 쉽고. 같은 홈 커피 제조자로서 희안하게 집에서 하면 카페처럼 맛이 안 나온 이유도 알게 되었고 (이유 : 원두가 신선하지 않아서) 집에서도 로스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엄마가 자주 땅콩을 볶는데.. 따지고 보면 커피도 콩이니 가능한 말이다. 


일상적인 양면 팬 등을 이용한 홈 로스팅과 주사기로 추출한 커피 제조법을 보고 있으니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특히 주사기 제조법은 시도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정말 세척 방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라서 그런지 표지도 내지도 디자인이 훌륭. 띠지를 완전히 띠어내도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가득 그려져 있다. 글 읽기 싫어하는 사람도 그림만 봐도 들겁게 커피에 관한 일러스트가 빼곡하다. 내용도 기대 이상으로 충실하다. 생활 밀착형 커피 즐기는 팁이 가득. 커피 기구가 없어도 카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많은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850년 경에 에디오피아의 어느 목동이 발견했다는 요 커피는 어쩔 때는 악마의 음료로, 어느 때는 아프리카의 검은 눈물이라고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관능적인 음료로도, 아니면 노동자의 음료로 묘사된다. 우리나라도 곧 있으면 커피 소비국 10위 권 안에 들정도로 커피를 무진장 마신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왠지 그 작품을 한 번도 안 읽은 발자크가 생각난다. 


그는 하루에 엄청 독한 커피를 거의 40잔씩 마시면서 스무살 연상의 기혼인 연인에게 다가가려고 노동하듯 글을 썼다. 잘 살아보려고 시작한 사업이 망하고 빚 독촉에 시달린 발자크는 하루에 16시간씩 깨어있으면서 작품을 찍어냈다. 유명한 작품을 발표하고 마침내 연인과 살 수 있게 되자 5개월 만에 심장질환으로 죽게 된다. 이유는 바로 커피. 이 정도로 마셨으면 몸에 피대신 커피가 흐를 것 같다.


뭐든 과한 건 좋지 않다. 나는 이렇게 돈에 쫓겨서 글을 썼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속물이라 그런가?)


요즘에 역시 도박빚에 허덕이면서 돈을 위해 글을 썼던 도프도예프스키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 발자크 책도 읽어 보리라.











* 내 친구 중에 정말 컴플레인을 조곤조곤 잘하는 친구 H양과 다니다 보면 간혹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예전에 학교 앞에 나름 꽃미남 전략으로 여대생의 마음을 사로 잡는 카페가 축제 기념으로 학교 안에 들어와서 장사를 했는데 바쁘니깐 커피를 조금 뽑아 놓았다. 나는 전혀 지식이 없는 상황에 그녀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상황. 우리의 H양은 화를 내며 크레마(crema)가 죽지 않냐며 뭐라뭐라 따지니 꽃미남 바리스타가 깨갱- 하면서 커피를 다시 뽑아 준 이야기. 그땐 그게 뭐간디 했는데 알고보니 진짜 중요한 거 였구나. 사실 친구도 내게 "카페에서 바로 뽑아준 거 아니면 사먹을 필요가 없는거야. 그럴 바엔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셔. 신선한 거 아니면 2천원이든 2백원이든 똑같아!"  


그렇게 똑부러지는 내 친구는 앞가림을 잘해서 곧 시집간다. 잘 살아...ㅎㅎ 


* 제 3의 물결이라는 블루보틀 커피가 도쿄에는 착륙했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우리나라에는 들어올지는 미지수. 하지만 들어온다면 깔끔한 디자인에, 핸드드립의 훌륭한 맛(듣기에는)에, 성공적일 것 같다.


* 터키, 인도식 커피는 맛 본 적이 없는데.. 베트남 커피를 베트남 식당에서 맛볼 수 있듯이 얘네를 맛 보려면 터키 식당, 인도 식당에 가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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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이 먼지(munge)인 이 작가의 저서가 꽤 몇 권이나 된다. 우왕. 그중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은 예전에 신간 평가단 했을 때 받아서 아주 만족했던 책. 비전공자인 내가 보아도 아주 실력있다. 











요건 표지 디자인했던 것.. [노서아 가비]는 근현대 시대에 있었던 커피에 관한 소설이라고 한다. 고종 할부지가 그렇게 커피를 좋아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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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기전에 만화책을 보고 있다. 만화도 이거 하나밖에 없기도 하지만.. 중학교 때 보고 재밌어서 일본어 공부(이 핑계로 만화든 잡지든 드럽게 많이 삼..) 겸해서 샀는데 나이 들고 보니까 진짜 재밌다. 사실 중학생 때는 조금 대사가 많아서 한국어라도 버겁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고급스런 블랑제리 문화 따윈 모를 때 였으니 케잌 설명하는 부분은 쿨~하게 넘겨버렸다.


내가 드럽게 성숙했는지 내 친구들은 별로 안 좋아했다. 일단 그림의 문제도 있고. 일반적인 여중고생의 취향은 아니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얘기도 없다. 게다가 이 책이 재밌다고 추천할 때 당최 어디서 끓어읽어야 하는지가 애매하기도 하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이게 맞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베이커리를 파는데 동양과자점은 될 수 없으니) 이렇게 발음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제목도 공유를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일단 요시나가 후미는 내가 젤 좋아하는 만화가. 주로 게이물이 전문이다. 그 쪽(?) 취향은 아니라서 전 작품은 안 읽어봤고 [오오쿠]와 [사랑해야 하는 딸들] 정도 까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것은 요 시리즈인데 남자들로 구성된 예능 토크쇼가 재미있는 이유는 필터링이 많이 없어서인 것과 같이 대사가 찰지다. 과자점 '앤티크'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네 남자의 과거 이야기, 상처가 중점이 되는 나름 힐링 만화다.


먼저 앤티크의 주인인 타치바나. 엄청난 대기업 일가 중 한명으로 경영 세습 순위에는 들지 못하지만 도쿄대 출신에 외무고시도 사법고시도 합격하는 '되는 남자'이지만 매번 여자에 차여서 좌절하고 무너지면서 금방 그만두고 자기네 회사 영업직을 지냈다. 같은 회사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실패함과 동시에 평소 숙원의 사업이었던 카페를 개점. 천재 제빵사(고급표현 : 파티시에) 오노를 고용하고 예쁜 여자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하고 싶었지만 오노의 성정체성과 여자를 두려워 하는 마음 때문에 실패. 어릴 때의 공포스러운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주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기도 한다. 진짜 '엄친아'이지만 여자에게 차이면 쉽게 그만두는 유리멘탈의 소유자에 가슴 큰 여자만 좋아하는 시시한 취향을 가졌다.  


파티시에인 오노는 천재 장인, 제빵사이기도 하지만 유흥가에서는 '마성의 게이'로 통한다. 뛰어난 실력이 있지만 오노가 가는 가게는 언제나 오노를 둘러싸고 종업원 간에 싸움이 생기거나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해서 언제나 금방 짤리거나 도망쳐 나오기 일쑤다. 이 오노를 일그러진(!) 사랑으로 밀어넣은 것은 어떤 남자. 그리고 원수는 외나무, 아니 직장에서 만나는데.. 


에이지는 고아원에서 자라난 문제아였다가 권투 재능 하나로 꽃미남 선수로 꽤 이름을 날리던 중에 각막박리 때문에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된다. 배운 것 없이 뭘 할까 고민하던 중 마침 서빙할 아르바이트 모집에 면접을 보게된 에이지는 오노의 케잌을 맛보고 사정을 해서 견습생으로 들어오게 된다. 주인보다 사부를 따르는 스무살의 에이지는 여자와 노는 기쁨은 잊고(이미 어릴 때 다 경험해보았으므로) 순수한 열정으로 케잌 장인의 길에 매진한다.


외모만 보면 치카케는 매트릭스 요원처럼 위압적이고 멋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하지만 너무 순수하고 착해서 미워할 수 없는 착한 곰 캐릭터. 타치바나 집에 가정부를 했던 어머니를 따라 들어오게 되어 타치바나의 오른팔 같은 행세를 하지만 실제론 타치바나가 그의 뒤치닥 거리를 해주는 꼴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편안하고 믿음직한 느낌을 주는 치카케는 타치바나에게 은근한 힘이 된다. 착하고 순수한 치카케는 마성의 게이의 덫에도 걸려들지만 지나친 순수함으로 오노를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도 엄청난 비밀이..(스포일러 : 자식이 있음- 이 사실보다 자식을 만든 이유가 진짜 웃김)


이런 성격을 가진 남자 네 명이 드글드글하게 나와서 4권을 빼곡히 채우지만 전작 화려한 작가답게 화면 전환이 세련됐다. 그들에게 얽혀 있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가 적절히 혼합되어 캐릭터의 행동을 이해시켜준다. 그리고 화려한 케익과 에프터눈 티의 향연까지. 열심히 읽으면 무스가 어쩌고 버터의 온도가 어쩌고 딸기의 원산지가 어쩌고.. 제법 세련되어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일러문의 왕방울만한 눈을 갖지 않은 현실적인 그림체와 실생활에서 보는 소재로 현실성을 크게 부여하지만 이것은 만화다. 재벌가 + 외무고시, 사법고시를 대충 패스 + 손만 대면 스트레이트도 게이를 만들어버리는 마성의 게이.. 뭐 그래도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천재 파티시에를 고용해서 넉넉한 자본력으로 시작한 앤티크이지만 홍보를 위한 방송에서 여러 제빵점과 만나는 바람에 오노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오노의 옛사랑이 날아와서 해적을 쳐놓자 파티시에를 뺏길 위기에 놓였던 타치바나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내가 만약 너랑 자면 너는 우리 가게에 있어줄래?!" 같은 대사까지 막막 던지면서 은근 힘겨운 경영을 이어간다. (진짜 힘겹게 경영하는 자영업자는 이런 게 제일 만화같다고 여길 수도.) 


이 4명의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여자 인물들도 상당히 독특하고 생활력이 팔딱팔딱 한다. 생활력이 팔딱팔딱한 점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현실감을 주지만 반대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타치바나를 거쳐간 여인들의 헤어짐의 이유나 ("넌 너무 무리를 하고 있어." 혹은 "다른 애들이 뭐라 그러는 줄 알아? 같은 안경이라면 오노가 더 귀엽다고...그래도 걔랑 있으면 내가 필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도쿄대 출신이지만 일을 못해서 좌절하는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하자 자존심 상한 듯 걷어차거나.. 솔직히 재벌가 남자가 아름답게 청혼하면 그렇게 쉽게 거절할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되려나. 중학교와 성인 사이의 갭은 엄청난 건지 당시에는 이런 생각없이 순수하게 쭉쭉 읽었었는데. 쩝.


또 스치는 에피소드에서 권투선수의 아이를 가진 '물장사'하는 언니가 끝내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는 내용, 아이를 갖고 싶어서 치카케에게 매달리는 타치바나의 전 여친인 능력있는 작가까지... 아이를 만들고 싶었던 30대 후반의 작가가 허우대 좋은 치카케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대사가 진정 베스트다. '머리는 나쁠 것 같지만 팔팔한 정자를 갖고 있을 것 같은 남자...' 라고 생각한 그녀는 치카케에게 사정한다. "저기 당신하고 자고 싶어! 나 시간이 없어! 제에발..?!" 


가장 큰 줄기인 타치바나가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과정은 이야기 끝에 조금 해소가 된다. 조금 현실과 동떨어지는 내용이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교양으로 재미와 감동은 보장한다.




* 드라마화 되었다고 하는데 안 봤다. 앞으로도 볼 계획 없다. [허니와 클로버]를 스무살이 넘어서 읽고 눈물을 줄줄 흘려서 영화도 조금 볼까 했더니 시작하자 마자 껐다. 굳이 같은 기분을 느낄 필요는 없지.

   

* 비추천 : 게이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안 좋아하는 사람. 글루텐 다이어트 중인 탄수화물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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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3-3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만들어 진 걸로 기억하는데요? 어즈버~~~ㅠㅠ
저는 다시 일본어 공부 한다고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교보에서 하루키의 색채가 있는... 그거 사왔는데 언제 읽을 지!!ㅠㅠ

뽈쥐의 독서일기 2015-03-30 20:30   좋아요 0 | URL
영화까지 만들어 졌나요~? 인기가 대단하네요. 스토리도 탄탄하긴 하지만서두..ㅎㅎ
우와 하루키 책으로 일본어 공부하시는군요. 대형서점 가면 공부가 마구마구 하고 싶어지죠.ㅎㅎ
응원의 박수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봉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일단 펭귄 클래식의 뛰어난 표지 디자인으로 읽는 기쁨도 배가 된다. 이런 세련되면서도 고풍스러운 디자인이라.. 가히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보바리 부인]은 이런 허영심을 갖고 읽기에 적절했다.


150년 보다도 전의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뉴스에 나온다면 욕을 줄줄이 얻어먹을 이 사건을 요약하자면 "의사 부인의 간통과 독극물 자살, 그 후 남은 빚 때문에 실의에 빠져 죽게된 의사"의 이야기다. 당시 시골 개원의의 부인이 여러 남자들과 정사를 벌이다 독약을 먹고 죽은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이 [보바리 부인]이라고 한다. 어쩐지.. 신문 기사 보듯이 생생하더라니. 


얼마전 간통죄가 폐지 되었다. 이제 이슬람권과 대만에만 존재한다는 이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기사에는 우려의 목소리를 한 댓글이 엄청나게 달린다.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도 이제 가정주부들은 어떻게 위자료를 받는 거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왜 여자를 위한 대출 광고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기사에도 '누리꾼'들은 변함없이 격한 반응을 보인다.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여자 잘못 '들이면' 개고생이란 게 저런거다.. 라느니 언제들어도 뻔한 댓글은 일종의 '좋아요' 수를 많이 받는다. 사실 그보다는 어음이 더 큰 문제인데... 결혼과 생활, 권태란.. 인생이란 도무지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보바리즘'이라는 말까지 낳은 이 소설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 엠마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집에서 태어났다. 머리도 어느 정도 좋고 외모도 예쁘게 타고난 그녀는 별 탈없이 의사인 보바리와 결혼을 한다. 문제는 드라마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드라마는 그녀의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들만큼 거창하다는 것. 교육은 독이 될 수가 없다고 알려져있지만 어설픈 교육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엠마는 수녀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꽤 똑똑하게 교리 공부도 했다. 종교에 심취하는 것이 자신을 구워해주리라 생각하며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런 자신에 모습에도 잠시 빠지기도 했으나 이내 염증을 느끼고 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돌아온다. 수녀원이 있던 곳은 시골보다는 번화한 곳이어서 곧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낀 엠마는 잠시 결혼이, 가사일이 이 지루함에서 자신을 꺼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저 변함없는 한적한 시골 생활이 이어질 뿐이었다. 안목이 높아서 예쁘게 꾸몄던 집안은 엠마의 정신이 실망하고 무기력해지자 어수선해지고 만다. 부인을 너무도 사랑하는 보바리는 이런 변화를 눈치채긴 하지만 신경증인 엠마를 배려할 뿐이다. 엠마의 머리속은 이 둔하고 촌스러운 남자에게 이미 정이 떨어졌고 죽을 날만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부잣집의 파티에 참석한 엠마는 모든 고급스러운 음식, 인테리어 용품, 옷감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춤에도 푹 빠지게 된다. 하지만 달콤한 하룻밤은 그렇게 끝나고 여전히 변화없는 시골 생활만 지속된다. 권태에 빠졌다가 갑자기 신경질만 내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그곳보다 번화한 곳인 용빌에 있던 의사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보바리 부부는 용빌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용빌은 그 전보다야 편의 시설이 많지만 화려한 파리에 비하면 한적한 곳이다. 촌스러운 사람들에 의사인 남편에 붙어서 커리어를 더 좋게 만드려는 욕심쟁이 약제사에.. 용빌이 그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엠마의 기대가 실망감으로 바뀌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얼마후 출산을 하게 되었지만 출산조차도 드라마 없는 인생을 바꿔주지 못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세들어 사는 하얗고 잘생긴 레옹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정숙한 부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서로 애만 태운다. 법 공부를 하고 있던 레옹은 그대로 파리로 가버린다.  


다시 드라마를 놓친 엠마 앞에 나타난 사람은 로돌프라는 돈이 많은 남자. 이미 여자를 '아는' 로돌프는 엠마의 아름다운 미모에 반했지만 현재 애인도 귀찮게 굴기도 하고 이미 다른 남자의 성을 딴 마담 보바리를 처음부터 '쉽게' 만날 생각이었다. 레옹과의 플라토닉 러브와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이미 망신창이가 되어 있던 엠마는 자신의 패션 센스를 알아주고 지겨운 시골 생활에 같이 염증을 느낀다며 공감해 주는 로돌프에게 홀딱 넘어가고 만다. 승마를 핑계로 남편을 꼬드겨 당당히 로돌프의 집에 드나들며 애정 생활을 즐긴다. 로돌프와의 연애는 재미있었다. 엠마는 로돌프가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줄 수 있는 남자라고 확신하고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지만 이미 엠마가 지겨워진 로돌프는 "사랑하니까 당신을 떠나요"같은 개드립을 들어놓은 편지를 보낸다. 다락에서 편지를 읽던 엠마는 순간적으로 거의 죽을 뻔 한다. 힘이 빠진 엠마는 그날 밤 마차로 자기 집 앞을 순식간에 도망가는 로돌프의 얼굴을 보고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다. 실연에 사경을 헤매던 엠마는 깨어나서도 반 미치광이처럼 정신을 놓고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누군가의 권유로 영국 오페라를 보러 가게 되는데 거기서 레옹을 만난다. 엠마는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레옹도 파리 생활을 하면서 여자와 노닥거리며 경험을 쌓았고 이미 엠마는 부인으로서의 정숙을 버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둘은 사랑하게 된다. 엠마는 다시 활력을 찾고 남편에게 돈을 받아 레옹이 있는 곳에 피아노 강습을 배우러 다닌다. 물론 피아노 강습을 받지 않고 레옹과 애정행각을 벌인다. 둘은 사랑하지만 또 금방 그만큼 미워하게도 된다. 하지만 애정행각을 멈출 수 없다. 엠마는 지루한 생활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언제나 무리하게 돈을 써대는데다 레옹은 남자를 갑자기 잘 홀리는(?) 엠마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이런 돈은 다 엠마의 남편 샤를르에게서, 그리고 방물장수 뢰뢰가 써준 어음에서 나온다. 신용카드가 소비를 팍팍 늘이는 것 처럼 어음은 엠마의 소비를 무절제하게 만들었다. 


뢰뢰는 로돌프에서 레옹까지 엠마의 불륜 행각을 알고 있었지만 돈이 되자 소문을 퍼트리거나 하지도 않고 묵인한다. 그러다 갑자기 엠마에게 변제를 하라고 독촉하기 시작한다. 엠마는 여기에 갑자기 놀래고 환자들에게도 남편 몰래 진찰료를 청구하거나 아버지의 토지를 팔거나 한다. 물론 이런 것은 다 뢰뢰의 지시였다. 그리고 또 어느날 갑자기 등기를 보내와서 어마어마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다. 차압이 되고 연인인 레옹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고 옛연인인 로돌프에게도 부탁을 하지만 레옹과 로돌프가 도움을 줄 의지가 없다는 걸 느끼자 엠마는 약국에서 그녀를 흠모하고 있는 소년에게 부탁해서 비소를 얻는다.   

 


요약이라면 '여자의 불륜과 비극적인 결말' 이라고 엄청나게 간단하게도 요약할 수 있지만 '사실주의' 문학의 선두에 선 대표작으로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히려 조연에 가깝다. 계산에 빠르고 언제나 웃는 낯을 하고 있지만 돈에는 무서운 방물장수 뢰뢰, 제대로 된 면허는 없지만 정보에 빠르며 과학을 믿는 출세지향적인 약제사 오메(약제사가 마을 신부와 언제나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장면도 볼 만하다). 또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잘생긴 마초와 결혼했던 샤를르의 어머니가 샤를르를 사랑하는 방식이나 교양을 모르는 샤를르의 아버지의 교육방식이 충돌하는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엠마는 처음에는 시골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남편 보바리를 택했고 권태로운 시골 생활의 돌파구를 애인 로돌프로 찾으려 했으며 로돌프에게 버림 받은 처지를 레옹에게 보상받으려 했다. 만족을 모르고 드라마를 쫓아 다니다 비극적인 죽음을 택하고 주변 사람을 모두 비극적이게 만들어 버린 엠마를 욕만하고 끝내기엔 찝찝한 느낌이 든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하면 행복해진다고, 내면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생각만큼 쉬우면 세상은 이렇게 불행한 사람으로 넘치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에도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를 부리는 사람이 가끔 한심해 보일 때도 있지만 나도 한 때는 소비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엠마처럼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서 도피성 선택을 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엠마에게 동정도 비난도 하기 힘들었다.


엠마의 말로와 어리숙한 샤를르의 말로, 그들의 딸에게까지 이어진 불행은 씁쓸해서 슬프기까지 하다. 낙담한 샤를르를 위로해주는 사람보다는 불행한 그를 불편해하거나 거북스러워하는 사람에, 얼마 남지 않은 그의 가제를 훔쳐가는 가정부나. 워낙 외설스러운 소설로 유명했던 까닭에 예전에도 의도치 않게 평론도 많이 보게 되었는데(이래서 유명한 작품은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니깐)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엠마가 왜 엠마로 적히지 못하고 보바리 부인으로 적혔는가에 대한 글이었다. 내용은 확실히 기억이 안나는데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자신의 의지와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이었다. 모두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그 당시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에도 엠마는 행복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한편, 그녀의 외도를 적극적으로 돕는 방물장수(?) 뢰뢰씨의 어움 남발은 요즘 예쁘장한 연예인이 기타를 들고 '넌 여자니까~'를 노래 부르는 핑크빛 대출광고를 연상시킨다. 기사를 읽어보니 여자들이 특별히 더 변제 의지나 능력이 좋지도 않은데 광고를 하는 이유는 일종의 금융상품일 뿐이라고 관계자는 답했다는데 사실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지 않나.


사실주의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라 그런지 심리묘사가 아주 훌륭하다. 뒷표지에 적힌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던 작가의 세세한 묘사 능력에 감탄했다. 이래서 고전은 고전이라고 하는거지. 하지만 기대하던 외설스런 표현은 없다.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못 느꼈을 수도 있고. 


결혼 전, 그녀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랑에 응당 따라야 할 행복이 오지 않으니 자기가 잘못 생각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엠마는 책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황홀이니 하는 것들이 정환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었다. (p.60)

게다가 그녀는 이제 무엇이건, 누구건 간에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고 때때로 사람들 모두가 옹호하는 것을 비난하고, 타락하거나 부도덕한 것을 옹호하는 등 기묘한 의견을 내놓아 남편을 깜짝 놀라게 했다.(p.104)

그러자 그녀가 읽은 책의 여주인공들이 생각났다. 불륜에 빠진 정열적인 여성들의 무리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매와도 같은 그들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이제 그녀 자신이 이 이상적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긴 몽상이 실현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을 그토록 선망해 왔는데 이제 그녀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녀의 복수심 또한 만족되고 있었다. 그동안 어지간히 고통받지 않았는가? (p. 238)

소문에 의하면 그가 아직 배 수선공이던 시절, 어느 날 밤 그가 비아리츠의 해변에서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어떤 폴란드 귀족 부인이 그에게 홀딱 반해버렸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그 때문에 파산했고 그는 다른 여자를 찾아 그녀를 남겨놓고 떠나버렸다. 이 유명한 연애 사건은 그의 예술적 명성을 해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처세술에 능한 이 엉터리 배우는 광고 속에 자신의 육체적 매력과 민감한 영혼에 관한 시적인 문구를 잊지 않고 슬쩍 집어 넣었다.(p.322)

미소 뒤에는 항상 권태의 하품이 감춰져 있고, 기쁨 뒤에는 저주가, 쾌락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으며 최상의 키스라 할지라도 더욱 큰 관능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증만 입술 위에 남겨 놓을 뿐이다. (p. 410)

그는 마치 그녀가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녀의 취향과 생각에 맞추어 에나멜 장화를 사고, 흰 넥타이를 매고 콧수염에 화장품을 바르고, 그녀처럼 어음에 서명했다. 그녀는 이렇게 무덤 저쪽에서 그를 타락시켰다.(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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