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 세대 -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올리버 예게스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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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없는 게 반전' 이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결정장애 세대는 '개성이 없는 게 개성'인 세대다. 결정장애라는 말은 처음에는 '우유부단'을 바꿔 말한 것 같았으나 너무 많은 선택지 때문에 결정을 미루거나 결정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느낌에 더 가까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내면에 흐르는 것은 '회의주의'나 '미온(?)주의' 정도가 공통점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내가 봐도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한 애들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쾌락주의, 개인주의로 비판을 받고 있는 나지만 생각보다 그런 청년들이 많다는 사실에 은근한 안도감이 든다.   


"인생은 실전이야 X만아~" 라는 유행어가 한 때 인터넷을 떠돌았었다. 알아두면 유용한 표현이다. 그건 실제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어떤 세대에게나 그렇겠지만 물건이나 애인(?) 문화생활이든 즐기고 살 수 있는 자유는 넘쳐나는 젊은 세대이지만 시간, 일자리, 방향의 자유가 없는 지금의 세대에게는 인생은 진짜 실전이 되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촌언니들의 대학생활을 보고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땡보같은 대학시절을 보내서 빌빌 대고 있지만.. 엄청 열심히 살았던 친구들도 매일 우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인생은 실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결정장애 세대인 나에 대해 말하자면 페이스북 유저로 SNS를 사용해서 내 사생활을 떠 벌리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페타(PETA) 페이지를 팔로잉 하고 있으며 몸 생각을 끔찍히 하는 편이다. 한 때는 유기농 주의자이기도 했고 화장품이나 제조식품의 성분을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다. 채식주의자가 되고는 싶지만 언제나 박약한 의지 앞에서 좌절하는 중이다. 한 살 많은 같은 결정장애 세대인 우리 언니는 서른이 넘으면 채식주의자가 되겠노라는 말도 안 되는 선언을 하는 고기러버이고 왠갖 종류의 다이어트를 온 몸으로 체험하는 다이어터이기도 하다. 


미션스쿨을 졸업하고 힘들 때마다 교회를 가보는 등 자매님이 되기 위해 시도를 했지만 끝끝내 신을 믿지 못하는 불쌍한 어린양이고 틈틈히 스님들이 쓴 힐링 서적으로 마음을 달래는 비신자다. 종교는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꼭 애정을 가져야만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여자도 아니다. 공식석상에서 모피를 입고 나오는 연예인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 몸에 피트되는 예쁜 운동복을 몇 벌 갖고 있고 언제나 요가같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몸에 대한 생각은 끔찍 하지만 여전히 술을 좋아해서 과음하는 습관을 못 버리고 버릴 생각도 크게 없다. 언젠가 요리로 유명한 블로거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가족들이 음식에 손대기 전에 '잠깐!'을 외치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도 취미 중 하나이다. 


내 소망은 누구나 그렇듯이 내 소유의 방하나 있었으면.. 하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안정을 추구하는 결정장애 세대는 다 그렇다고 하니 어떤 면에서는 안심이 된다. 



작가는 젊은 세대가 이렇게 개성없이 된 이유를 '신자유주의'와 68운동의 부작용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은행의 비도덕성이나. 책은 우리 세대가 왜 이렇게 됐는지, 우리 세대가 정확히 어떤지 면면히 분석하지는 않는다.(못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근 300페이지를 이어가고 있다. 엄청난 재능이다.


작가의 묘사는 꽤 예리하다. 주절주절 읊은 것 같은 부분도 꽤 있지만 몰개성한 세대를 묘사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지 않나. 시니컬한 사람이라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을 왜 이리 풀어 놓은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모순된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음식(채식주의)에 대한 인식, 성에 쿨하게 되면서 오히려 '진짜 관계'에 들어서지 못하는 세태나 몸 관리를 징글징글하게 하는 지금 세대에 대한 묘사는 공감의 끄덕임을 유도한다. 작가도 결정장애 세대답게 자기 어필을 참 열심히도 한다. 주제에 대한 쓰면서도 주기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손을 번쩍 번쩍 드는 발표에 재미들린 아이가 생각나는 패턴이라 웃음이 비식비식 나오기도 한다. 


 

* 결정 장애가 거의 다 읽었다고 하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을 아직도 읽지 못 했다. 꼭 읽어봐야지. 

근데 나 예전에 영화 [치킨런]을 보고 펑펑 울며 그 날 저녁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을 국물에 밥까지 싹싹 비벼 먹는 나를 어이 없는 표정으로 보았던 언니는 그 사건을 아직도 놀리는데... 조용히 읽어야 겠다.


* 서양인에 대한 생각이 너무 획일적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그들은 부당함에 싸우고 내키지 않으면 일을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들도 부당함을 겪으면서 일을 덥석덥석 하는구나. 이 경우에는 독일인이라고 해야하나? 독일의 실업률이 낮은 것은 그들이 낮은 임금과 대우에도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돈은 누가 버는 거지? (+ 그들도 부모가 교수실까지 전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너무나 나약한 세대라는 건 인정하는 바다.)


* 책 서술 방식도 '결정장애 세대' 그 자체다. 키워드로 풀어내기는 하지만 항상 극단적인 반대 상황이 있기 때문에 확정적인 답은 없다. 객관적인 숫자 자료같은 것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꽤 정확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재미로 보는 혈액형 성격 같은 느낌이긴한데 한편으론 아주 씁쓸하다. 

청년기가 이제 더 이상 일종의 유예기간, 그러니까 실험기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p.41)

외면적으로는 털갈이를 했지만 내면은 그대로다. 우리는 지금도 늘 돋보이고 싶어 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 다른 사람도 중요하게 여겨주길 바란다. 그 결과는 질투심이다! (p.66)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은 예수님이 배달하는 것도 산타클로스가 몰래 갖다 놓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계몽이고,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주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계몽이다. 한 사회가 교회의 예속이나 독단적 교리 혹은 아편과도 같은 미신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계몽이다.(p.123)

"우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경직되어 있어요. 사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죠. 금기시되는 분야가 달라졌을 뿐. 예컨대 요즘은 우물쭈물하는 게 금기 사항에 속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성적으로 호탕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유행에 뒤쳐지지요. 모든 게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가 뭔가를 거부하는 건 금기에 속합니다." (p.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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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 열린책들 세계문학 87
카렌 블릭센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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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아프리카로 부터 나온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풍요때문에 오히려 힘든 일을 당하고 있는 땅이긴 하지만.. 그게 어떻게 아프리카의 책임이겠는가. 자원이 인간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다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을 부러워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프리카 땅을 놓고 서구 열강이 서로 물어뜯고 싸우다 전쟁까지 한 것을 보면 몹시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납득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 자원이 펄펄 넘치는데 가만히 있을 놈은 없지. 


납득이 된다고는 하나 여전히 얄밉다.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원주민들을 대한다고 하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서구 중심적인 시선으로 그들은 판단하거나 하인들을 다그치는 모습은 잘 읽고 있다가도 째릿-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몇 번이나 읽는 이유는 뛰어난 묘사와 인물에 대한 세밀한 시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 같은 걸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릴 때 류시화 산문집을 읽고 인도를 꼭 가겠다 마음 먹었었는데 지금은 별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이 마음도 언제 변할지는 모른다. 지금은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가지도 못하지만.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동식물은 바오밥 나무와 사자, 물소 같은 것이지만 작가가 묘사해 놓은 사슴 때문인지 꼭 사슴이 보고 싶었다. 서울 숲에서 우리에 있는 새끼 사슴 두 마리를 본 뒤로 더 심해졌는데 저번주에 일본 '나라'에 가서 봤다.(이런 걸 대리만족이라고 하나?) 교토,오사카, 고베, 와카야마도 갔지만 나라가 제일 좋았다. 하루 더 있었으면 좋았을 껄.. 이랬다.

나라 공원을 중심으로 우리 없이 아무 곳이나 활보하는 세상에 주인 같은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힐링이 따로 없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제일 예뻤던 아기 사슴. 센베를 줘봐도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도망가지도 않았던 요오~물.


엄청 예쁜 포즈를 취해주었던 녀석. 분명 암컷일꺼야..



이렇게 예쁜 것들은 정말 얼굴만 예뻤다. 작가가 묘사한대로 믿을 수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센베를 사서 사슴한테 줄 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센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놈들이 참 많았고 한 입 주면 졸졸 쫓아와서 사람을 참 곤란하게 만들었다. 말이 통한다면 나한테 센베 맡겨놨냐?고 한 번 퉁박을 주고 싶기도 했다.

성격도 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좋지는 않았던게 먹이를 주면 얼굴 정도는 한 번 만지게 해주는 녀석들도 있었고 먹이만 먹고 좀 쓰다듬으려고 하면 바로 뒷걸음을 깡총 뛰는 녀석, 새끼들에게 주려고 하면 중간에서 방해하는 넘들과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주려고 해도 주춤주춤 오지 못하는 녀석. 그리고 사진에 찍힌 저 아기 사슴은 정말 먹이도 먹지 않고 그럼에도 나를 떠나지도 않고 예쁜 눈을 마주쳐주었다. 사진을 찍어 보란 듯이.

얼굴만 예뻐서... 정말 사람을 애타게 하는 구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신의 사자'라고도 한다는데 얘네들의 신비한 외형을 보면 별명이 이해가 된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행복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거기 살면 매일매일 갈텐데... 라는 아쉬움만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특별한 경험만 한 작가가 너무 부러워 그녀가 겪은 불행까지도 부러운 지경이다. 나도 드라마같은 삶을 살고 싶다. 아프리카 주민들의 지혜를 듣고 내 마당에서 동물이 뛰놀고 하늘이 다채로운 빛을 내며 눈동자를 아름답게 어지럽히는 생활을 누군들 안 부러워할까. 맛있는 커피는 덤이다.

크누센 영감, 현명한 하인이었던 카만테, 소말리아족 여인들, 불운한 사고, 원주민들의 풍속과 지혜 등 작가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쓰이지 않았을 풍경이 그저 아름답다. (지금은 아프리카도 많이 변했겠지?)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이지만 언제나 나에게 베스트 챕터는 바로 룰루. 

룰루가 있는 챕터에 밑줄긋는 것은 힘들다. 거의 모든 게 밑줄긋기니까.
 



그때 룰루는 몸집이 고양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크고 고요한 자줏빛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다리는 어찌나 연약한지 앉거나 서면서 다리를 접고 펼 때마다 부러질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귀는 비단처럼 매끄럽고 대단히 표현력이 풍부했다. 그리고 코는 송로버섯처럼 까맸다. 작은 발은 전족을 한 옛날 중국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토록 완벽한 존재를 소유한다는 건 드문 체험이었다. (p. 68)

하지만 룰루는 사실 온순하지 않았고 속에 악마가 들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천생 여자로, 공격에 온 힘을 쏟고 있을 때도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는 데만 골몰한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공격적이어서 아무한테나 덤볐다. 심사가 뒤틀리면 말에게도 덤벼들었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하겐베크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동물 전문가인 하겐베크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사슴이며 하다못해 표범도 믿을 수 있지만 어린 사슴을 믿으면 조만간 녀석이 등 뒤에서 공격해 올 것이라고 했다.
룰루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요부처럼 굴 때조차 우리는 룰루를 자랑거리로 여겼지만, 우리는 룰루는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다. 룰루는 이따금 몇 시간씩, 어떤 때는 오후 내내 집을 비웠다. 가끔씩 주위 환경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면 룰루는 집 앞 잔디밭에서 사탄을 향한 짤막한 갈지자의 기도처럼 보이는 출전의 춤을 한바탕 추어 기분 풀이를 했다. (p. 71)

룰루가 없는 집은 다른 집들보다 나을 게 전혀 없는 듯했다.(p72)

룰루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깊고 그윽한 자줏빛 눈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나는 신이나 여신은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마치 암소 눈을 가진 헤라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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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치코와 리타
페르난도 트루에바 외 감독, 에만 소르 오냐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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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하면 몇 가지 키워드로 기억될 것이다. 시가, 춤과 음악, 체 게바라... 쿠바를 여행해 본 적은 없지만 쿠바를 여행한 사람들이 쓴 에세이를 읽으면 저렇게 멋진 키워드와 빈곤의 나라로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철저한 이방인의 입장에서 묘사된 쿠바는 낭만의 땅, 아니면 연민의 땅이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쿠바와는 다른 생생한 쿠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정치 혁명이 사람들한테 미친 영향이나... 아무래도 그들이 그린 자신들의 모습만큼 생생하게 그리긴 힘들 것 같다.



영화는 거리에서 구두를 닦으며 살아가는 노인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회상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맞춰 늙은 손을 움직이는 이 노인은 왕년에는 반짝반짝 빛났던 천재 피아니스트 치코다. 노년의 치코는 쿠바의 이웃들이 집 안에서 싸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가 만든 음악 '리타'와 함께 그의 젊고 화려한 인생이 시작된다.

젊은 날의 치코는 천재 피아니스트에 야망있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여자를 꽤나 울리고 다녔지만.. 리타가 노래하는 순간 치코는 알게 된다. 리타는 자신이 옛날부터 기다려온 사람이라는 걸. 열정적인 남녀답게 뜨거운 밤을 보내고 리타를 위한 노래도 작곡하지만 역시 여자 문제를 일으킨다. 미치게 쿨한 건지 둘은 다시 서로 공연도 하게 되고 행복한 나날을 잠시 보내지만 매력적인 리타에게는 뉴욕에 가자는 제의가 따른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1960년대는 뉴욕에서 쿠바의 음악과 맘보, 콩가가 대세여서 치코에게도 뉴욕에 갈 수 있는 길이 펼쳐진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와 미국 뉴욕의 차이만큼 갈라진 치코와 리타는 서로에게 다른 길이 펼쳐진다. 전형적인 이민자의 길을 걷게 된 치코. 화려한 뉴욕 주류 사회에서 인정 받은 리타. 뉴욕에서 '리타 라 벨'로 세련되어 진 리타는 치코를 버린다. (근데 여자 입장에서는 100% 이해가 된다. 누가 바람 피래?) 리타는 후원자(아주 떳떳한 사이는 아님) 의 지원으로 승승장구하게 되고 야망과 리타를 쫓아 뉴욕까지 온 치코는 부자들의 연회에서나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다.  


리타는 이제 '양키'가 다 되어 백인 주류사회에서나 라틴계 이민자들 사이에서나 어색해져버렸지만 여전히 강낭콩을 좋아하고 치코를 마음에 품고 있다. 화장실, 출입구까지 따로 써야하는 인종차별이 만연한 1960년대 뉴욕에서 그들은 라틴계 이방인으로서 서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결국 치코와 리타 사이를 질투한 후원자 론의 음모로 치코는 마약 밀매의 누명을 쓰고 쫓겨나고 리타는 술을 마시고 무대에서 인종 차별에 대해 서러워 하는 발언을 하고 예술가로서의 삶이 끝나게 된다.


이런 일을 다 모르고 조용히 쿠바로 돌아온 치코는 정권이 바뀌면서 재즈 음악을 연주하기 힘들게 되고 음악과는 상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그의 음악을 아는 젊은 예술가의 요청으로 그토록 꿈에 그리던 뉴욕에서 승승장구 하게 되는 노년의 치코. 그 사이 그의 친구 몬티는 이미 고인이 되어 뉴욕에 묻혔다. 치코는 수소문을 해서 리타를 찾는다. 그리고 노년의 리타와 치코는 47년만에 재회한다.



대사는 스페인 문화권답게 직접적이고 로맨틱하다. 재즈가사는 청승 맞아서 더 좋다. 남자를 상대로 몸싸움을 하는 라틴 언니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굵은 선으로 간단하게 표현한 그림과는 달리 계속 엊갈리는 운명이 좀 슬펐다. 이래도 가난이 죄가 아니라고..? 저런 일생의 사랑이란 게 진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의 해피엔딩에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 얼마 전 유행한 '비긴 어게인'도 그렇고 한때 국내에서 매니아층을 양상했던 '원스' 성공을 보면 이야기에 음악이 녹아들어간 영화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연인의 이름을 딴 곡을 만드는 이야기를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


* 스페인 문화권이 불타는 사랑만을 옹호하는 느낌인 것 같지만.. 마르케스도 그렇고 [치코와 리타]도 그렇고 47년 만에 완성되는... 노년이 되어서야 완성되는 사랑도 은근 많은 것 같다. 모두 용기 있어 보이는 라틴 사람들이라도 사랑은 참 힘든가보다. 


* 영화 [봄날이 간다]에서 유지태가 엄청나게 찌질한 표정으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같은 대사를 날릴 때 몇 년 전의 나는 어떻게 저렇게 찌질한 대사를 던지지? 라고 뜨악 하면서 소설 [한달 후 일년 후]에서 연인 베르나르가 그런 식의 대사를 날렸을 때 조제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요. 그럼 미쳐버리게 되요."라는 말을 했을 때 현명하다고 박수를 쳤었다. 여전히 조제가 현명한 것은 맞지만....... 이제는 왜 사람들이 유지태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명대사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봄날이 간다]는 참으로 많은 명대사를 남겼구나. 


정말 한달 후, 일년 후면 사랑도 사람도 다 변하는 구나.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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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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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전공한 내가 센 리큐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던 이유는 다도에 대한 문화 수업 때문도 아니었고 여행을 가서 호기심이 동했거나 고급스런 다도 취미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 어떤 칼럼에서 (아마 여성잡지였던 듯) 아름다운 꽃 단 한송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옆에 있는 꽃을 모조리 베어버렸더라는 일화를 들면서 아름다움이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좀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센 리큐. 일본 현대 다도의 기틀을 세운 사람이라고 한다. 본명은 따로 있었는데 중요치 않다. 다도라고 하면 이제 여성의 문화, 아니면 잘 모르는 사람은 티타임의 동양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나도 배워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다도는 처음에는 무사의 문화였고 상당히 인연이 중요한.. 철학적인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 다도라는 것이 생각보다 대단한 예술의 경지에 오른 퍼포먼스(?) 같은 것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정원이 어쩌고 저쩌고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다도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소설은 아무 지식이 없어도 읽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소설이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설에는 실존 인물이 꽤 나온다. 센 리큐와 우리에게도 악명 높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상의 왕자와 공주 이야기는 동화인 것이 신수 훤하고 인품 좋고 한 사람이 그 나라의 최고 통치자일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흠이 많아 인간적으로 어필을 하거나 사람 마음을 잘 읽어내서 잘 이용하거나 다들 갖고 있는 추한 마음을 실현 시켜주거나 하는 사람이 통치자일 경우도 많다. 세상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유는 바로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천하를 손에 넣고도 재능으로 자신에게 보기 좋게 엿을 먹이는 센 리큐를 못마땅해 해서 결국 사약을 내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보는 것도 약간의 통쾌한 재미가 있다. 목숨을 앗아갔어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 없는 지시를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보면 약간 꼬숩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한테 나쁜 놈인건 분명하지만. 


다도의 판을 바꿔 버린 센 리큐는 당연히 잘 나가는 사람이어서 부인과 첩도 거느리고 살았는데 부인과 첩은 서로 질투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사이를 이어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질투하는 여인이 있었다. 아마도 센 리큐가 젊을 때 만났던 단 한명의 사랑했던 여인. 그 여인은.......(책에서 확인하세요.)


미인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실제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뭐 예쁠 수록 인성도 좋아질 가능성도 많다고 하지 않나. 좋은 대접을 받아서 타인한테도 좋은 대접을 할 줄 안다는 원리로. 그런데 문제는 가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나만 소유하고 싶다는 것에 있다. 아름다움이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하고 공유하고 싶지 않는 이기심을 키우기도 하는 것이다. 


다도도 예술의 범위에 친다면 예술을 하는 사람답게 심미안이 보통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센 리큐가 아름다움을 취하는 방식은 이기적이고 섬뜩하다. 아름다운 글로 풀어낸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같은 느낌도 든다. 자기가 갖지 못하면 부숴버린다는... 하지만 그 영화처럼 거부감이 많이 들지 않는 이유는 다도를 할 때 처럼 평온한 풀 향같은 것이 나는 것 같은 분위기와 작가의 객관적인 시선에 있는 것 같다.   




*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사람 : 1. 어떤 식으로는 일본이 싫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나쁜 놈의 이름만 나오면 치가 떨린다고 하는 사람.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조정이 손을 놓고 있게 만들었던 내막이 나오면 피가 꺼꾸로 솟을 가능성 100% 

2. 재력과 명예가 있는 남자들이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사는 꼴을 못 보겠는 사람. 첩까지 지아비(싫은 표현인데 표현할 다른 방법이 없네)를 태평양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주는 걸 보면 2차 피 역류가 예상된다.


* 근데 리큐한테 뭘 물어야 되는거지? (비루한 독서력이 싫어진다.)


* 2012년 알라딘 기프티북 행사에 당첨되서 받은 책 입니다. 감사합니다. 절 꾸벅.



이틀 전 그냥 갔던 간사이 여행에서 오사카성.



언젠가 리큐 저택에 외국에서 들여온 나팔꽃이 많이 피었다고 해서 아침 일찍 일부러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원에 나팔꽃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다실에 들어가니 장식단에 단 한 송이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 한 송이를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정원에 핀 꽃을 리큐가 전부 꺾어버린 것이었다.(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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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婚しなくていいですか。(文庫) - ―す-ちゃんの明日
益田 ミリ / 幻冬舍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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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결혼 안 해도 괜찮을까요?]. 그 밑에 작게 -수짱의 내일-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수짱과 사와코짱. [수짱]에서 결혼한 마이짱은 벌써 임신을 해서 잠시 나올 뿐 입니다. 아기가 생기면 자신의 인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금 철학적인 질문을 하지만...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그렇듯, 이 작가의 전공(?)은 미혼 여성입니다.


수짱은 어느날 갑자기 불안해져 옵니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살지.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안 낳고.. 이대로 나이가 들면.. 흔하디 흔한 고민이지만 절대 가볍지는 않죠. 그래서 수짱은 유언장을 써 보기로 합니다. 유언 쓰는 법에 대한 책도 사보고요. (별 희안한 책이 다 있네요.) 이런 고민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게 됩니다. 네, 수짱은 요가를 시작합니다.

요가학원에서 만난 사와코짱. 사와코짱은 수짱이 대학시절에 아르바이트 하던 곳의 직원이었습니다. 갑자기 조우하게 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집니다. 사와코짱은 39세 싱글. 집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와 엄마와 같이 살고 있고 회사에는 자기 나이와 비슷한 여자는 생리통은 출산을 하면 나을 거라는 은근히 성희롱(?)하는 아들 하나를 둔 직원 한 명만 있는 상황입니다. 연애를 쉰 지도 어언 13년. 지금은 연애가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니, 남자가 그리운 것에 가깝습니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섹스를 하지 못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솔직하면서도 직구를 날리는 대사가 짱!)

사와코 짱은 문제의 직원에게서 남자를 소개 받게 됩니다. 꾸민듯 꾸미지 않은 듯한 옷을 입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나간 소개팅은 의외로 남자가 괜찮습니다. 13년 만에 관계도 하게 되고요. 그리고 결혼 얘기까지 하게 됩니다. 여기서 유명한 대사.... "부모님이 손자만은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병원에서 애를 낳을 수 있는 진단서 같은 거 끊어 줄 수 있어?" 사와코 짱은 당황하지 않고, "너는?"이라고 하자 "나도 그런 것이 필요해?" 라고 말하는 큰 하자 있는 이 남자.... 결국 사와코 짱은 이 관계를 그만두기로 결심합니다.

다시 싱글로 돌아온 (돌싱이 아니고) 사와코. 그리고 수짱.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녀들은 계속 살아갑니다.


30대를 이제 겨우 몇 년 정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벌써 은근한 결혼압박을 받고 있다. 집안 분위기 자체가 결혼을 늦게 하는 분위기여서 생각도 안하고 있었고 지금 밥벌이도 비리비리 하는 지경이라 연애도 망테크를 타고 있는 실정인데 남의 속도 모르고 결혼 얘기를 꺼내는 엄마가 밉기만 한 요즘이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리고 예쁠 때(?) 과제를 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지금 좋은 직장을 잡고 있어도 정신적 미성숙 때문에 성공적인 결혼 생활은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최근 망한 연애는 이거 맞는건가.. 싶게 질질 끌다 저쪽에서 감사하게도 정리해 주어서 끝이났다. 끝나고서 자괴감이 들었던 것은 1. 헤어지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 열정,의미 없는 연애를 한 것. 2. 아니다 싶었는 데도 내 쪽에서 결단을 못 내렸던 것. 이다. 아마 지금 나이에 연애라도 해야 되지 않나라는 강박감과 주위에 나는 문제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질질 끈 관계는 스스로 미세한 스크래치를 남기고 소멸되었다. 기준이 하나 생겼는데 차라리 구질구질해도 불타오르는 연애를 다시 해볼 것, 이었다. 아니면 내가 망설임없이 바로 끝내기로. 여기 사와코 짱처럼.

싱글인 나를 궁상맞게 여기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사족. 조선일보 Why?에 실린 마스다 미리. 우리나라에서도 독자층이 꽤 두꺼운 편이라는데 30대 미혼 여성이 가장 많이 보는 편이란다. 거의 80%랬나.. (숫자에 약해서 못 외웠다..ㅠㅠ) 나는 몇 살 더 성숙한 편인지 마스다 미리의 단순한 그림과 글이 좋다. 단순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글. 지금도 이렇게 공감인데 30대가 되면 책을 잡고 질질 우려나 걱정된다.  



あたし、このままゆっくり老いていくのかな
老いていくのは仕方ないけど、ただ、セックスはしたい
あたしのこのカラダを もっと謳歌しておきたい
せめて、それくらいは後悔したくないって思う(p.27)

나, 이대로 슬슬 늙어가는 걸까.
늙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섹스는 하고 싶다.
이 몸을 좀 더 예쁨 받게 하고 싶다.
적어도 그 정도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将来何になりたいか
子供の頃はよく聞かれたけど、
大人になってしまえばもう、聞かれない(p.37)

미래에 뭐가 되고 싶니?
어릴 때는 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묻는 사람이 없다

アイロンをかけている自分を
誰かに見てほしいと思った(p.45)

다림질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누가 봐줬으면 좋겠다.

でも、慣れたりしない
慣れることは許すこと
こういう鈍感な言葉に 傷つくことができる
あたしでいたい(p.57)

그치만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익숙해진다는 건 허용한다는 것
이런 무심한 말에 상처를 받는 나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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