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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오스 폴립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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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의 전공책 수준의 크기.(실은 내 전공책 중에는 이렇게 큰 책이 없었다.) 속지는 갱지같은 걸 써서 가볍지만 눅눅한 여름에는 페이퍼백 특유의 냄새가 올라온다. 종이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읽기 힘들 수도. 

주의 : 싸구려 포스트잇을 붙이면 찐득한 것이 남을 수도 있음!  

 

2. 제대로 된 그래픽 노블을 처음 읽어봤다. 감탄이 나온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다. 건축, 조각, 음악....심지어 철학, 무신론과 유신론까지...  아스테리오스의 인생에 대한 책이라 우리가 인생에서 한 번 쯤은 고민해 보는 문제들이 다 담겨있다. 정말 수준높은 책이다.

 

3.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도 나와있지만... 정말 디테일을 잘 봐야한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고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스테리오스의 말풍선과 글씨체, 가능성을 열어놓는 다소 우유부단한 하나의 말풍선과 글씨체는 다르다. 게다가 갈등 상황만 되면 파란색 선과 형태로 이루어지는 아스테리오스, 빨간색 면을 색으로 가득 채우는 하나...  

디테일을 보면 이해가 더 쉽고 감탄이 나온다. 작가는 만화라는 장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인 것 같다. 잘 된 만화라면 모름지기, 텍스트와 이미지를 잘 조합해서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어떤 장면도 허투루 보지 마시길... 등장인물들은 계속 등장하여 사건을 만들어 낸다. 무척 재미있다. 

 

4. 나도 쌍둥이였다면 어땠을까. 어느 문화권이나 쌍둥이, 특히 일란성 쌍둥이는 더 특별한 존재들인 것 같다. 나와 직업도 똑같고 생각의 패턴도 비슷한 이가 있다면 그건 비극일까 희극일까.

그것도 태어나는 중에 내가 아닌 다른 쪽은 죽었다면... CCTV를 설치하면서까지 강박을 갖는 주인공의 행동이 어쩐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다. 

 

5. 학계에서는 인정받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지어진 건물이 없는, 이상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건축가. 50세의 생일에 불이나서 자기장으로 움직이는 손목시계, 아버지에게서 받은 지포라이터, 옛날에 해변가에서 주운 만능 커터기(?)만을 챙겨나온 남자. 설정이 재밌으면서도 어쩐지 비극적이다.  

결국 그가 처음 지은 건물이라고는 카센터 주인집 아들에게 지어주는 아늑한 나무 상자같은 집이다. 군더더기는 하나도 없는. 

 

덧> 역사적 감정을 다 배제하고... 일본의 이세신궁이라는 곳은 20년 마다 한 번씩 무너뜨리고 새로 짓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엄청 참배객이 많은 인기가 많은 절이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2천 년 이상이 되었다고 말한다고 한다. 

설명할 순 없지만 신비하다. 나는 어떤 정신적인 것도 (정신적으로 위대한 것도) 처음에는 물리적인 것에 신세를 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정신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을 뛰어넘었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신비한 일이다. (사실 왜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하는 일을 계속 하는지는 크게 이해가 잘 안 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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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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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끄 쌍뻬 아저씨의 팬이라 전시회도 갔다왔다. 고양시까지. 평일 오후에도 사람들이 많았던 걸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진짜로 많나보다. 사람들은 참 고급스런 취향을 가졌다! (내가 좋아한다고 이런 말 하는 건 아님.) 

진짜로 대단한 게, 쌍뻬 아자씨는 하루에 8시간씩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그는 노력형 천재였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유머러스한 글을 쓸 수가 있는 거다. 이것은 확실히 타고난 천재들에게는 대부분 없는 것이다. 

그의 따뜻함과 통찰을 보여주는 책 한 권. 다른 화집도 충분히 감동스럽고 재미있지만 이렇게 스토리 라인을 가진 책은 몇 권 없어서 더 소중하다. 

원제는 라울 따뷔랭. 간단히 주인공 이름으로 된 제목이다. 출판사는 친절하게도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라울 따뷔랭]으로 번역했다. 라울 따뷔랭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전거를 계속 못 타지만.. 우리 안에는 영원한 아이가 살고 있음을 상기할 때, 기똥찬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라울 따뷔랭은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 꽤 유명한 자전거 기술자다. 얼마나 유명했던지 사람들은 자전거를 그냥 '따뷔랭'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사실 그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그건 중심잡기.. 그러니까- 자전거를 못타는 것이었다. 그는 수년간 자전거 위에서 균형 잡는 것은 연구했고, 자전거를 분해해서 비밀을 알아내려고까지 해봤다. 결국 그는 자전거를 기가막히게 수리하는 기술만을 얻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그의 크나큰 비밀을 몰랐다. 

그는 그런대로 잘 해나갔다. 특수한 자전거를 만들어 오히려 명성을 유지하기도 하고,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능글능글한 성격으로 마을 사람들하고도 잘 지냈다. 그는 연애에 한 번 실패했고, 실패한 연애의 상대방에 잘 보이려다 크게 다쳤고, 이듬해 그를 돌봐준 간호사와 결혼도 했다. 

라울 따뷔랭에게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사진사 에르베 피구뉴가 자전거를 고치러 왔다. 호감가는 인상의 그와 따뷔랭은 금방 친해졌다. 그 또한 마을에서는 사진이라는 말 대신에 '피구뉴'라고 불렀던 것이다. 

피구뉴는 따뷔랭에게 제안을 한다. 따뷔랭이 '따뷔랭'을 타는 모습을 찍자고. 그것도 절벽에서 내려오는 사진을. 

따뷔랭은 거절했지만 주위의 권유와 자신의 비밀이 탄로나는 것이 두려워 결국 수락해버린다. 결전의 날, 그는 속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도 마시고 미적미적거린다. 그리고... 비가 온 산의 내리막 길을 내달린 그는 엄청 크게 부상당한다. 하지만 피구뉴의 사진은 온 프랑스 신문에 실리게 된다. 

그건 엄청난 대작. 절벽 사이에 떠 있는 자전거, 엄청난 대작이었던 것이다. 따뷔랭은 몇 달 동안 병실에 누워서 뼈가 붙기를 기다리며 그 악몽에 시달렸다.

피구뉴에게도 비밀이 있었는데, 그는 사진 기자로서 활동하다 몰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따뷔랭이 절벽을 뛰어넘는 순간, 그는 너무 놀라 카메라를 놓쳤다. 그리고 그 대작은 탄생했다. 그의 첫 작품- 순간을 포착하는-인 동시에, 결국 그것도 그가 잡아내지 못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피구뉴는 그렇게 얻게 된 명성으로 사진집을 내고 전시회까지 열게 된다. 그들의 우정은 돈독해 보였으나, 그 사건 이후로는 그저 겉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피구뉴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지만 따뷔랭은 원망스러운 마음만 더 커져갈 뿐이다. 어찌되었든 그 사건으로 그들은 다 잘 풀렸고, 객관적으로는 더 행복해졌다. 

그런데 따뷔랭의 마음에서는 계속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있었다. 비밀이 들킬 것 같은 예감, 그러면서도 털어 놓고 싶은 마음, 그걸 자신이 털어놓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그리고 피구뉴가 따뷔랭의 가게에 왔다. 따뷔랭은 떠듬떠듬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못 타는 것이 하나 있는데....." 피구뉴는 웃었다. 그는 무슨 말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이 얇은 책에는 이렇게나 긴 스토리가 숨어있다. 생각해보면 다 그만한 사연도 있는 법인 특별하지 않은 일.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란 건 있으니까. 그걸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수 있는 쌍뻬는 정말 대가다. 

그의 특기인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은 물론이고, 핵심을 찌르는 문장까지. 분명히 덤인데 본품만큼 좋은 덤이라고 할까. 

사람들이 웃기는 사람들을 정말 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젓한 어스레함이 주는 무게를 갑자기 깨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이 웃기는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둔다. 자신에게도 가슴이 있으며 이 가슴에는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혼은 때로는 남과 함게 나누고픈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내놓고 말하고 싶어지는, 낭만이 과하게 들린 사람들이 자주 당하는 유혹을 따뷔랭도 느끼곤 했다. p. 39 

따뷔랭은 이날 저녁 다시 한번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젊은 여자란 방식은 다르지만 캄피오니시모 자전거 변속 장치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거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는 것, 그리고 상화에 따라서는 이 비밀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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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맛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그레고리 림펜스.이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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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은 왠지 모르게 슬픈 장소이다. 시끌벅적한 꼬마들이 빠져나간 오후의 수영장은 더더욱. 가둬 놓은 물이 이상하게 파랗기도 하고 비슷비슷한 수영복을 입고 말없이 수영을 하는 조용한 수영장이라면 더 슬프다. 수영장 물에서 나는 화학적인 냄새가 묘하게 슬픈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  

수영장 물에 타는 화학성분이 바로 '염소'란다. 순수한 염소의 맛이란 정확히 어떤 걸까.(여러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있으니 순수한 맛을 본 적은 없다.)

배경이 수영장이라 책의 모든 페이지는 파랗고 푸르다. 그림은 깔끔한 선으로 이루어져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디테일하다. 내용도 사소한 것 같지만 디테일 하고..  

주인공은 남자와 소년의 사이에, 여자와 소녀의 사이에 있는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는 풋풋한 때에 서 있다. 물리치료를 위해 간 수영장에서 그는 그녀를 만나고, 한때 챔피언이었던 그녀는 그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 수영장이 그들을 감상적이게 만드는 건지 곧 진지한 얘기도 나누게 된다. 

시합에 쥐약인 남자애는 있는 힘껏 노력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고백한다. 이 대사가 뭔가를 찡하고 울렸다. 나도 대결을 하는 순간에는 그냥 무기력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또 남자애는 이렇게 묻는다. 나도 언젠간 잠영으로 한 번도 쉬지않고 완수할 수 있을까? 여자애는 망설이지 않고, 응, 이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그녀(의 환영같은 것)을 따라가다가 잠영을 완성한다.  

정적인 장면들이지만 로맨틱하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왠지 두근두근하다. 작가의 내공이 보통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발견' 되었을까? 그리고 풋풋하면서 마음을 콕콕 찌르는 대사라니. 

정말 그녀는 물 속에서 뭐라고 했을까. 불어를 모르니 따라서 발음해 봐도 감이 안 잡힌다. 확실한 건 (다소 유치한) 쥬땜므는 아니란 거다. 

딱 스무살이나 그 정도의 주인공들의 때묻지 않은 풋풋함을 느끼고 싶고 그런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추하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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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과 유령선장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까미유 주르디 지음, 노엘라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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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지루하다.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남들도 그렇다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래도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다. 힘든 일이 쌓였을 때,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누가 날 일주일만 바다 있는 데로 납치해 주었으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붙박힌 듯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비극의 종류 중에, 사실 이게 제일 공감 갔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 그건 비극이다. 그것도 언제나 드라마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슬픈 일이 일어났을 때는 울거나 복수하거나 콱 죽는 수도 있지만,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저 상상하는 것이 젤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현명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강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 잔잔한 일상을 견디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것이다. 어른들의 말에 휘둘리다(?) 주관을 갖게 된 호기심 왕성한 소녀 안나, 항상 주인공의 이름을 아델이라 설정하는 소설가-그렇지만 글을 못쓰는-와 아내,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자 밋밋한 역할에 불만을 품고 있는 아델, 죽은 후 오랜시간을 액자 속에 갇혀 있던 유령선장까지. 

책의 인물들은 모두 귀엽고 매력적이다. 특히, 유령선장과 아델이. 몇 십년을 액자에 잘 박혀계시다가(?) 후손들을 혼절시키고 모험을 선언하는 유령 선장과 일기장에 콩고에 사는 오카피(어떤 동물이라고 합니다)를 그리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가상의 인물 아델....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줄거리는 환상적이고 그림은 더 환상적이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한다면 마음에 쏙 들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끔 꺼내서 읽어보면 행복감이 잔잔하게 오는 느낌을 받으니까. 

반면, 작가는 일상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너무 사랑해서 애증으로까지 발전해서 이런 책을 썼을까?)  

"날마다 제가 좋아하는 초콜릿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전 좀 비관론자처럼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요.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면 실망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 미소짓기도 하더라구요." 

일상은 대체로 지루하고 질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일상의 가치는 여전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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