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제목. スキマスキ. 스키마스키. 직역하면 '틈새 좋아' 정도. 책 날개에 작가 약력에 보면 '틈새 사랑'이라고 적힌 걸 보아 전에 출판이 되었거나 아니면 출판 전에 제목이 더 임팩트 있게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언어유희를 잘 살린 것 보면 괜찮은 제목. 틈새 사랑도 나쁘진 않지만 뭔가 풀잎 사랑처럼 순수한 느낌이 드는데 내용상으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커플이기 때문이다.


틈새를 엿보기가 취미인 남자와 또 그 위를 나는 여자의 이야기가 한 권에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주간엔 알바를 하면서 야간 학부 건축과를 다니는 남자 주인공. 스스로 똥통 대학을 다닌다고 느끼고 있는 남자 주인공은 비슷한 패배감을 지닌 개성 강한 친구 두 명과 늘 같이 다닌다. 안 예쁜 여자 몇 명과 남자들만 드글거리는 공대 야간 학부 생활은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


틉새를 좋아하는 은밀한 취미는 항상 요~맨큼만 커튼을 열어 놓는 맞은 편 집 여자애의 방에 꽂힌다. 밤에 불을 켜놓고 예쁜 속옷만 위아래로 입는 여자애를 보는 남자의 마음은 설렌다. 하지만 이런 취미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엿보는 취미는 범죄로 연결짓기 쉽고 사실.. 지가 하는 짓은 범죄이기도 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단순한 남자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가 있다. 요만큼의 틈을 보여준 상대는 커튼도 하나 치지 않은 자신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상대편은 자신을 관찰하고 사진도 찍는다는 사실을. 


이런 범죄적인 상황이라도 이야기는 허술한 남자 주인공과 발랄하고 통통튀는 특이한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으로, 혹은 쌍방범죄라는 설정으로 안전망을 확보한다. 왜냐 이것은 한 권으로 끝내야 하는 밝디 밝은 개그만화기 때문에! 


개그 만화이지만 주인공들의 고충도 빼놓지는 않는다. 야간 학부라는 콤플렉스를 지닌 남자 주인공과 친구들. 인기가 많지만 은근히 남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자기가 원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는 여자 주인공. 그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인, 말라깽이 몸매와 귀염성 없는 성격이 콤플렉스인 친구...


하지만 이런 인간사의 고충은 개그 만화답게 유머로 밝게 버무려지고 눈 알이 유두모양으로 튀어 나가거나 혓바닥이 하트 보양으로 꼬여 나가는 등의 만화적인 장치는 정말 빵 터지기도 한다.


딱히 관음증같은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만화 한 편이다. 연애 만화에 몰입하려면 특히 여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하기에, 여자 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대사를 넣어 주었는데... 바로 "바나나 피시가 어쩌고..." 예쁜 여자는 뭘 해도 예쁜 법인데 상스럽지 않는 4차원적인 말을 하면 더 매력적여지는 법이다. 이래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거겠지?


우리가 완벽한 사람에게는 별 매력을 못 느낀다고 하는 것 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빈'틈'을 사랑한다. 모두다 틈을 비집고 나왔기도 하고. 예전에 임경선이 완벽한 여자들에게 좀 "귀여워지라!"는 충고를 한 것을 읽고 머리에 뭘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말인 즉슨, 틈을 좀 보여주고 비집고 들어갈 사람이 돼라는 말이겠지.


물론 질질 흘리면서(!) 다닐 필요는 없겠지만 틈은 정말 필요하다. 틈틈이 틈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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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만화의 여자 주인공은 바나나 칩을 배가 더부룩할 때까지 먹는다. 이유는 중간에 멈추는 걸 못해서. 특히 우유라도 같이 먹을 때면. 항상 자신의 바나나 칩 먹는 습관에 의문을 품던 그녀는 술을 마시다가 그런 고민을 줄줄 풀어놓는다. "바나나 칩을 위한 완변한 우유야" 라는 대사를 쳐가면서.


샐린저의 작품[호밀밭의 파수꾼]을 감탄해가면서 두 번이나 읽었는데 바나나 피시에 대한 단편 소설이 있는 줄을 몰랐다. 제목은 [바나나 피쉬를 위한 완벽한 날]. 단편집 [아홉가지 이야기]에 실린 아주 유명한 단편이다. 요 이야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니.. 과연.. 읽어보니... 감탄이 나왔다. 대신 [호밀밭의 파수꾼]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작품인만큼 그 소설이 불호인 사람은 진저리칠만한 내용. 샐린저를 좋아한다고 해서 꼭 중2병이라든지 염세주의자로 취급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바나나 피쉬]에도 영감을 준 작품이니 샐린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라.


얼마 전에 책을 시켜서 너무 궁금했던 [바나나 피쉬를 위한 완벽한 날]만 읽어보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리뷰를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이 짤막한 이야기 한 편에 대해서도 리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치만 왠지 카뮈의 [이방인]도 생각나고 뭔가 스콧피츠제럴드나 헤밍웨이 글에서도 느꼈던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근거도 이유도 없지만 여튼 느낌은 그랬다. 


샐린저는 베일에 쌓인 작가이지만 아이의 솔직함?에 대한 어떤 집착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궁금증을 계속 유발하는 작가이다. 절대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았던 그는 역설적으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원작이 워낙 좋겠지만 번역자는 최승자 시인이라 그런지 문장이 꽤 생생하고 세련됐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최승자 시인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시를 한 편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찾아봤다. 역시 시집의 제목은 멋지다. [아홉가지 이야기] 외에도 번역한 작품도 여러 권 된다.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듯. 


이해력이 조금 떨어지는 나는 역자 후기를 참 꼼꼼히 보는 편인데 아쉽게도 [아홉가지 이야기]에는 역자 후기가 없다. 번역자가 시인이라 얼마나 멋진 문장으로 해석을 해줄 것인지 기대가 엄청 컸는데 조금 아쉽다. 아마 너무도 바빴거나 시인으로서도 너무 감명을 받아 오히려 후기를 못 쓰는 일이 있었을 수도. 날이 쌀랑해지면 시집 한 편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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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자학의 시]. 꼭 아름다운 시를 좋아하진 않는데 앞에 자학이 붙으니 뭔가 섬뜩한 기분이 난다.


자학의 시를 쓰는 주인공은 유키에라는 여자이고 성질이 나면 매일같이 밥상을 뒤엎는 남편 이사오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 이사오의 본업은 없고 부정기적으로 가끔씩 일을 하지만 유키에가 힘들게 잡아준 면접에서 평소 습관처럼 책상을 엎어버리고 나오거나 힘들게 번 돈으로 힘들어서 택시를 타고 와버리는 등 인간으로서도 실격인 남자다. 유키에가 식당에서 서빙 및 배달일로 돈을 벌어오는 것을 경마로 탕진하며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이다. 그런 걸 매일 듣는 옆집 아줌마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유키에에게 이사오와 헤어지라고 조언한다. 특히 유키에가 일하는 음식점의 사장인, 유키에를 연모하는 마스터는 계속해서 유키에에게 사랑의 어택을 날린다.

하지만 유키에에게는 이사오와 떨어질 수 없는 이유가 백만가지다. 남녀사이 아무리 둘밖에 모른다지만 자기에게만 눈물을 보여주었던 이사오, 자신에게 평생 사랑을 맹세했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무리 힘든 일도 그와 함께 있으면 다 풀려버리는 착각이 드는 유키에에게는 당연히 불행한 가정사가 있고 박복한 인생의 시련이 있다.

유키에는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이다. 행복한 사람의 조건은 톨스토이가 그 유명한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에서 말했듯 비슷하고도 단순하다. 행복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가정에서 나고 자라서 헛된 욕망없이 좋은 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거기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춘다면 더할 나위없다. 불행한 유키에의 인생 조건은 이렇다. 

태어나자마자 도망간 어머니와 경제력+경제상식 제로에다 딸을 착취하는 나쁜 아버지의 슬하에 자라 어릴 때부터 사회와 돈의 무서움을 강제로 깨우친 아이. 엄마 얼굴이라도 보는 게 꿈이지만 결혼 사진은 재채기로, 바다에서 찍은 사진은 파도 때문에 엄마 얼굴만은 가려져서 엄마 얼굴도 끝내 알지 못하는 박복한 사연을 가진 아이. 외모도 반에서 못생긴 랭킹 베스트 3에 뽑힐 정도로 그닥 훌륭하지 않고 언제나 타인의 냉대를 받고 미화 부장에만 뽑히는 등의 궂은 일에 이골이 난 학창시절 기억을 가진 여자.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인기남의 애정을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진 친구들의 관심 때문에 밀어내는 눈 앞의 행복을 밀어내는 여자. 심지어 인생의 친구를 심하게 배반하고 마는 사람. 민감한 사춘기에 새로운 여자를 인생에 끌어들이는 아버지가 신문에 까지 나는 대형사고를 치고, 그 신문을 자기 손으로 배달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 결국 아버지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매장되고 어거지로 도쿄라는 대도시로 쫓기듯 오게된 여자. 오히려 아버지보다 아버지에게 돈을 받으러 온 '떼인 돈 받아드리는' 업자에게 선의를 받아 본 기억이 있는 여자.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빚이 늘어날 것 같아 그 선의를 선뜻 받지 못하는 모든 것이 죄송한 여자. 자기도 자기가 싫은 여자.

 

이렇게 불행한 한 여자의 일생은, 그러나 너무도 코믹하게 그려진다. 거의 4컷으로 이뤄진 이 만화는 정말 2권 끝까지 읽고 있으면 어느새 정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유키에라는 한 여자의 일생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비극인데 이렇게 희극적으로 그려놓으니 아무리 남의 인생이라도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키에가 주로 쓰는 말은 울면서 내는 "우엥~"이나 돈을 가져가려는 이사오, 혹은 아버지에게 "제발 이 돈만은!", 또 일을 할 때 "배달 다녀오겠습니다" 이다.


다행인지(?) 불행한 사람은 유키에 뿐만이 아니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는 유키에의 불행한 삶을 보고 죽은 남편을 살아 생전에 미워한 것을 반성하지만 그래도 유키에의 드라마 있는 삶이 부럽기도 하다. 아주머니도 데이트를 거듭할수록 싼 식당만 가고 피라미드식의 물건만 팔아대는 회장님(?)과의 연애로 은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도 이렇게 생각한다.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지.'

유키에를 좋아하는 마스터도 유키에 때문에 슬프다. 보너스를 줘도 이사오의 코트를 사줄 생각만 하는 유키에 때문에. 아무리 잘해줘도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유키에 때문에. 결국 위로받고 싶은 심정으로 유키에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를 사고 자기 경멸을 반복한다.

 

이사오부터 시작해서 유키에 옆에는, 이런 표현이 맞다면, 징글징글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유키에가 도쿄에 오기 전엔 구마모토라는 아주 강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친구도 있었다. 또 이사오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신도 좋아했지만 자기 혐오의 늪에 빠져, 아니면 친구들의 관심을 놓기 싫어 놓쳤던, 서로 좋아했던 남자도 있었다. 박복한 여자 유키에에게도 반짝반짝하던 인생의 순간은 있었다. 그리고 임신을 하면서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원체 자학개그를 안 좋아한다. 자학을 가장한 겸손은 빼고. 심성이 착해서 그런건 아니고 이유없이 불편해서다. 남의 불행이 딱히 내 불행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다. 하지만 이 책은 끝까지 보면 작가의 메세지에 동의는 하지 못하더라도 큰 위로를 받는다. 단순한 선 그림체에서도 생각보다 파격적인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임신한 유키에는 행복하다. 모든 포유류는 어미 젖을 먹고 자라고 모두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난다. 결국엔 아기 때 본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고 엄마에게 편지도 쓴다. 그리고 유키에는 깨닫는다.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메세지를 직접 주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서술이 1,2권을 통틀어 희안하게 슬프고 웃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왠지 안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떤 여자의 인생을 이토록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도 이렇게 정확할 수도 있을까. 불행한 인생이 아이러니하게도 유키에를 강하게 만들고 행복함도 가져다 준다.

 

아무리 징글징글한 삶이라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삶이 가지는 힘, 아니면 의미이기 때문일까.

 

누군가 이 작가를 '악마'라고 표현했다는데, 동의한다. 박복한 한 여자의 일생을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도 울게 만드는 재능은 가히 악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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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오 상담소
소복이 지음 / 새만화책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 지정 공식 마스다 미리 마니아인 나.(현재 76번째 마니아다) 수짱 시리즈를 무지 좋아하긴 하지만 마니아라 뽑히니 뭔가 얼굴이 화끈하다. 


왜 마스다 미리와 비교를 하느냐..? 독자 별점 난에 '마스다 미리보다 훨 좋다'라는 평을 보고 읽고자 결심했으므로. 하지만 마스다 미리와 비교를 하는 것에는 좀 무리가 있다. 일단 마스다 미리는 다작을 한 작가라 작품마다 편차가 있고 아무래도 처녀작만큼 작가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뭐 다음 작품이 나와도 비교할 마음은 없다. 소복이는 소복이고 마스다 미리는 마스다 미리지. 하지만 그들이 같이 엮이는 이유는 아마 '여자 만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스다 미리가 하얀 종이에 HB로 살살 그린 그림이라면 소복이의 그림은 갱지에 B는 되는 연필로 종이가 패일만큼 꽉꽉 눌러 그린 그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대놓고 상담소를 주제로 한 [이백오 상담소]는 어쩐지 정제되지 않은, 대사가 옆에서 들리는 느낌이다. 날 두고 가지마.. 라면서 울부짖는 고미숙의 대사는 귀여우면서도 어쩐지 가엽다. 표지 뒷페이지에 있는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을 못하는 아저씨 컷 때문에 (명대사: "미..미... 미친놈아 니가 잘못했자나!") 유명한 이 작품은... 영화 소개 프로가 그렇듯 여기서 제일 재미있는 씬이다.



<점 풍선.. 진짜 ㅋㅋㅋ 웃으면서도 눈물이 난다.>



그치만 다른 에피소드도 만만치 않게 재밌고 눈물이 날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의 민낯을 섬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헉, 하는 순간도 있다. 상담소를 운영하는 '나'는 고시원에 205호에 상담소를 열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지만 일이 끊기면 생활이 막막해지니 어쩌다 보니 상담소까지 운영하게 된 것이다.


상담료는 2만 5천원. 선불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감정이 격해진 상담자들에게 돈을 청구하기가 힘들어서. 나는 보통의 상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아니지만 (끝에는 부적같은 그림까지 그려준다!) 솔직하게 이미 상담자가 듣고 싶은 말을 뱉어주어 월세 정도는 낼 수 있는 수익을 내는 편이다. 나에겐 항상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친구 고미숙이 놀러와서 짜장면과 고량주를 먹고 옆집에는 찌질해 보이는 두 청년이 살고 있다.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은 당연히 보통 사람. 보통 고민.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작지 않은 고민을 안고 온다.


이별 상담,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오는 사람, 소개팅 중독에 걸린 완벽한 남자, 술 마시면 개가 되는 사람, 친구한테 사과하고 싶은 사람, 전 주인이 걱정되는 고양이, 외계인... 그리고 징징거리는 고미숙이다. '나'는 더이상 감정교류를 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답게, 혹은 다섯 번의 연애에서 늘 갑작스럽게 차이는 여자답게 강제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많아서 그런지 상담을 능숙하게 잘해준다.


<상담소의 주체는 상담자보다는 '나'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나'와 고미숙은 영혼이 자유로운 그에게 빠져서 이야기에 활기를 부여한다.>


늘 외로운 '나'와 고미숙은 자주 같이 짜장면을 먹고 나쁜 남자(혹은 비전없는 남자)에게 쉽게 빠진다. 하필 잡아 둘 수 없는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그들. 연적이 되고 격한 싸움까지 하고 만다. '나'는 너무 힘들어 섬으로 떠난다. 섬에서도 먹을거리 등의 작은 선물을 받으며 상담을 이어가는데.. 그곳엔 우연히 다시 사랑하고 싶은 그가 오고.. 또 떠난다..


친구들의 격려에 다시 이백오 상담소로 복귀한 '나'.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고 계속 이야기를 만든다.



<장수 모텔에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다.. 이거 홍상수 영화니..?>




적당히 어둡게(?) 산 사람이라면 깨알같은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공감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다. 게다가 찡-한 대사까지. "당신은 어릴 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군요.." 같은 요지의 상담보다도 "당신에게 필요한 건 술친구" 같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비전문적일지라도 속이 시원한 상담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래서 점집이 흥한 것일 수도.


희안하게 삐뚤삐뚤한 느낌이 드는 그림과 찌질한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정말 상담소같은 느낌. 게다가 아주 무겁지도 않아서 아무 페이지나 후루룩 봐도 빵터진다.


읽고 난 다음의 부작용이라면 짜장면과 쐬주, 고량주가 몹시 땡긴다는 것. 읽고 나면 느끼한 짜장면을 한 가득 입에 물었다가 고량주로 입을 개운하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전국 중국집 주인들은 이 작품을 홍보 자료로! 


<베스트 대사로 임명이오!>




*감상 포인트 하나 더. 정말 깜찍한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으니 앞 뒤 띠지도 꼭 펼쳐보길 바란다. 왠지 선물 하나를 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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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기전에 만화책을 보고 있다. 만화도 이거 하나밖에 없기도 하지만.. 중학교 때 보고 재밌어서 일본어 공부(이 핑계로 만화든 잡지든 드럽게 많이 삼..) 겸해서 샀는데 나이 들고 보니까 진짜 재밌다. 사실 중학생 때는 조금 대사가 많아서 한국어라도 버겁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고급스런 블랑제리 문화 따윈 모를 때 였으니 케잌 설명하는 부분은 쿨~하게 넘겨버렸다.


내가 드럽게 성숙했는지 내 친구들은 별로 안 좋아했다. 일단 그림의 문제도 있고. 일반적인 여중고생의 취향은 아니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얘기도 없다. 게다가 이 책이 재밌다고 추천할 때 당최 어디서 끓어읽어야 하는지가 애매하기도 하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이게 맞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베이커리를 파는데 동양과자점은 될 수 없으니) 이렇게 발음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제목도 공유를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일단 요시나가 후미는 내가 젤 좋아하는 만화가. 주로 게이물이 전문이다. 그 쪽(?) 취향은 아니라서 전 작품은 안 읽어봤고 [오오쿠]와 [사랑해야 하는 딸들] 정도 까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것은 요 시리즈인데 남자들로 구성된 예능 토크쇼가 재미있는 이유는 필터링이 많이 없어서인 것과 같이 대사가 찰지다. 과자점 '앤티크'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네 남자의 과거 이야기, 상처가 중점이 되는 나름 힐링 만화다.


먼저 앤티크의 주인인 타치바나. 엄청난 대기업 일가 중 한명으로 경영 세습 순위에는 들지 못하지만 도쿄대 출신에 외무고시도 사법고시도 합격하는 '되는 남자'이지만 매번 여자에 차여서 좌절하고 무너지면서 금방 그만두고 자기네 회사 영업직을 지냈다. 같은 회사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실패함과 동시에 평소 숙원의 사업이었던 카페를 개점. 천재 제빵사(고급표현 : 파티시에) 오노를 고용하고 예쁜 여자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하고 싶었지만 오노의 성정체성과 여자를 두려워 하는 마음 때문에 실패. 어릴 때의 공포스러운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주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기도 한다. 진짜 '엄친아'이지만 여자에게 차이면 쉽게 그만두는 유리멘탈의 소유자에 가슴 큰 여자만 좋아하는 시시한 취향을 가졌다.  


파티시에인 오노는 천재 장인, 제빵사이기도 하지만 유흥가에서는 '마성의 게이'로 통한다. 뛰어난 실력이 있지만 오노가 가는 가게는 언제나 오노를 둘러싸고 종업원 간에 싸움이 생기거나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해서 언제나 금방 짤리거나 도망쳐 나오기 일쑤다. 이 오노를 일그러진(!) 사랑으로 밀어넣은 것은 어떤 남자. 그리고 원수는 외나무, 아니 직장에서 만나는데.. 


에이지는 고아원에서 자라난 문제아였다가 권투 재능 하나로 꽃미남 선수로 꽤 이름을 날리던 중에 각막박리 때문에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된다. 배운 것 없이 뭘 할까 고민하던 중 마침 서빙할 아르바이트 모집에 면접을 보게된 에이지는 오노의 케잌을 맛보고 사정을 해서 견습생으로 들어오게 된다. 주인보다 사부를 따르는 스무살의 에이지는 여자와 노는 기쁨은 잊고(이미 어릴 때 다 경험해보았으므로) 순수한 열정으로 케잌 장인의 길에 매진한다.


외모만 보면 치카케는 매트릭스 요원처럼 위압적이고 멋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하지만 너무 순수하고 착해서 미워할 수 없는 착한 곰 캐릭터. 타치바나 집에 가정부를 했던 어머니를 따라 들어오게 되어 타치바나의 오른팔 같은 행세를 하지만 실제론 타치바나가 그의 뒤치닥 거리를 해주는 꼴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편안하고 믿음직한 느낌을 주는 치카케는 타치바나에게 은근한 힘이 된다. 착하고 순수한 치카케는 마성의 게이의 덫에도 걸려들지만 지나친 순수함으로 오노를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도 엄청난 비밀이..(스포일러 : 자식이 있음- 이 사실보다 자식을 만든 이유가 진짜 웃김)


이런 성격을 가진 남자 네 명이 드글드글하게 나와서 4권을 빼곡히 채우지만 전작 화려한 작가답게 화면 전환이 세련됐다. 그들에게 얽혀 있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가 적절히 혼합되어 캐릭터의 행동을 이해시켜준다. 그리고 화려한 케익과 에프터눈 티의 향연까지. 열심히 읽으면 무스가 어쩌고 버터의 온도가 어쩌고 딸기의 원산지가 어쩌고.. 제법 세련되어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일러문의 왕방울만한 눈을 갖지 않은 현실적인 그림체와 실생활에서 보는 소재로 현실성을 크게 부여하지만 이것은 만화다. 재벌가 + 외무고시, 사법고시를 대충 패스 + 손만 대면 스트레이트도 게이를 만들어버리는 마성의 게이.. 뭐 그래도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천재 파티시에를 고용해서 넉넉한 자본력으로 시작한 앤티크이지만 홍보를 위한 방송에서 여러 제빵점과 만나는 바람에 오노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오노의 옛사랑이 날아와서 해적을 쳐놓자 파티시에를 뺏길 위기에 놓였던 타치바나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내가 만약 너랑 자면 너는 우리 가게에 있어줄래?!" 같은 대사까지 막막 던지면서 은근 힘겨운 경영을 이어간다. (진짜 힘겹게 경영하는 자영업자는 이런 게 제일 만화같다고 여길 수도.) 


이 4명의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여자 인물들도 상당히 독특하고 생활력이 팔딱팔딱 한다. 생활력이 팔딱팔딱한 점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현실감을 주지만 반대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타치바나를 거쳐간 여인들의 헤어짐의 이유나 ("넌 너무 무리를 하고 있어." 혹은 "다른 애들이 뭐라 그러는 줄 알아? 같은 안경이라면 오노가 더 귀엽다고...그래도 걔랑 있으면 내가 필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도쿄대 출신이지만 일을 못해서 좌절하는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하자 자존심 상한 듯 걷어차거나.. 솔직히 재벌가 남자가 아름답게 청혼하면 그렇게 쉽게 거절할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되려나. 중학교와 성인 사이의 갭은 엄청난 건지 당시에는 이런 생각없이 순수하게 쭉쭉 읽었었는데. 쩝.


또 스치는 에피소드에서 권투선수의 아이를 가진 '물장사'하는 언니가 끝내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는 내용, 아이를 갖고 싶어서 치카케에게 매달리는 타치바나의 전 여친인 능력있는 작가까지... 아이를 만들고 싶었던 30대 후반의 작가가 허우대 좋은 치카케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대사가 진정 베스트다. '머리는 나쁠 것 같지만 팔팔한 정자를 갖고 있을 것 같은 남자...' 라고 생각한 그녀는 치카케에게 사정한다. "저기 당신하고 자고 싶어! 나 시간이 없어! 제에발..?!" 


가장 큰 줄기인 타치바나가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과정은 이야기 끝에 조금 해소가 된다. 조금 현실과 동떨어지는 내용이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교양으로 재미와 감동은 보장한다.




* 드라마화 되었다고 하는데 안 봤다. 앞으로도 볼 계획 없다. [허니와 클로버]를 스무살이 넘어서 읽고 눈물을 줄줄 흘려서 영화도 조금 볼까 했더니 시작하자 마자 껐다. 굳이 같은 기분을 느낄 필요는 없지.

   

* 비추천 : 게이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안 좋아하는 사람. 글루텐 다이어트 중인 탄수화물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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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3-3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만들어 진 걸로 기억하는데요? 어즈버~~~ㅠㅠ
저는 다시 일본어 공부 한다고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교보에서 하루키의 색채가 있는... 그거 사왔는데 언제 읽을 지!!ㅠㅠ

뽈쥐의 독서일기 2015-03-30 20:30   좋아요 0 | URL
영화까지 만들어 졌나요~? 인기가 대단하네요. 스토리도 탄탄하긴 하지만서두..ㅎㅎ
우와 하루키 책으로 일본어 공부하시는군요. 대형서점 가면 공부가 마구마구 하고 싶어지죠.ㅎㅎ
응원의 박수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초속 5000 킬로미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마누엘레 피오르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 3월 처음으로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후, 번듯하게(?) 직장을 잡고 나를 먹여살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가 더럽게 안 통한다는 서유럽권만 골라 다녀와서 그런지 다른 환경이 주는 이국물에 심히 심취되어 있었다.

 

목적없는 여행(내 인생에서는 큰 의미였지만서도)에 로밍같은 건 해 갈 리가 없으니 당연히 엄마와의 통화는 와이파이가 되는 호스텔에서만 가능했다. 엄마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전화를 걸면 (밤낮 싸돌아 다니다) 10시쯤 되서야 전화를 받거나.. 내가 8시에 밥을 먹다가 엄마가 자기전에 전화를 하는 식이었다.

 

물론 처음에야 잘 도착했다는 보고 정도는 했지만 슬슬 나중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여기 새로운 걸 경험하려고 온 건데! 나는 애가 아닌데! 가족한테 전화하다가 대화가 끊기 잖아요! 라면서...엄마한테 손 안벌리고 간 게 처음이라(으이유.. 내가봐도 한심타) 이런 반항의식이 더 심했다.

 

관광하면서 느낀 것은... 관광객은 역시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 관광만 하는 것도, 즉 놀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는 거 였다. 시간 죽이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긴 하지만 추운 날씨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내 과자 삥 뜯는 집시들도 무서웠고)

 

40일 동안 자유를 신나게 만끽하고 와서 서울에 오니 우울 그 자체.. 사실 나의 문제였음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게 아니다. 말도 안 통한 곳에 혼자 가서 죽지 않고 돌아왔으니 여기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곧 시들시들해졌다.

 

어쩌면 유럽여행에서 내가 얻고 싶었던 건 나 어디어디 가봤어요 하는 경험이라기 보단 날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취직은 이제 더는 백수로 살 수 없다는 절박감이 밀어붙여서 되었다.

 

책은 풋내기 시절의 사랑에서 중년의 위기(?)까지 공유하는 두 여인과 또 다른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경험의 부족인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다만 가슴을 때리는 대사가 몇 가지 있었다.

 

"떠나는 것 보다 돌아오는 게 더 힘든거야.."

 

"사람을 못 믿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식물을 좋아하게 되지.."

 

떠나는 거야 싫었던 일을 모두 잊을 수 있지만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게 될 때는 내가 부정했던 것들을 다시 껴안고 살아야 되는데 그걸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 더 큰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임을 잘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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