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 UE (무삭제 확장판) - 아웃케이스 없음
퍼시 애들론 감독, 마리안느 제게 브레히트 외 출연 / 에이나인미디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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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기 전에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할까. 이색적인 풍경, 특별한 인연, 일생일대의 사건...? 지리한 일상의 연장을 생각하고 여행을 감행하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보테로의 모델과 같은 중년의 백인 여자는 남편과 여행 중에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고 헤어진다. 짐을 싸들고 찾아간 곳은(맞닥뜨렸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사막 같은 곳에 서 있는 호텔 겸 휴게소, 바그다드 까페. 

마침 주인인 젊은 흑인 여자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남편을 쫓아 낸 상태였다. 여자의 품엔 갖난 아이가 안겨 있고 말썽쟁이 딸은 집밖으로 나돌고, 자칭 예술가인 아들은 허구한 날 피아노만 쳐댄다. 사막의 더위와 일상에 짜증난 여자. 캐리어를 옮겨달라고 젠체하는 백인 여자도 짜증스럽다. 한편, 백인 여자도 흑인 여자를 보고 식인종을 떠 올리는 등 그들의 첫인상은 좋지 않다. 

오해는 감시를 낳고, 일련의 소동이 벌어진다. 주인인 흑인 여자는 백인 여자를 주의깊게 감시하다가 (불행하게도 캐리어가 바뀌어 여자는 남편의 가방을 가져오고 말았다.) 남자 옷을 걸어놓은 여자의 방을 보고는 보안관에게 신고를 한다. 그러나 혐의는 없고.. 손님이니 더 못마땅하고 어색하게 지낼 뿐이다. 

사실 백인 여자는 매우 모범적인 손님이었다. 비록 소수이지만 단골인 까페의 손님들과도 적절히 말을 섞을 줄도 알았고, 신경을 건드리는 높은 소리로 우는 아이도 예쁘게 보았으며, 종일 건반만 두드리는 아들의 피아노 연주도 감상할 줄 알았다. 

일상의 무게에 지친 흑인 여자는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이들과 남편은 끊임없이 말썽을 피웠고 손봐야 할 호텔 일은 끊임없이 생겼다. 그날도 무슨 일이 터졌는지 흑인 여자는 급히 나갔다. 관광지를 이탈한 백인 여자는 할 일이 없었고, 그 때 지저분한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백인 여자는 땀 한 바가지를 흘리며 몽땅 치워버린다.(나에게도 이런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흑인 여자는 화를 낸다. 자신의 공간과 권한을 침입한 불쾌감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래도 가만 보면 정리된 상태가 더 좋은 건 사실이다.(근데 이것도 이해가 간다.) 일련의 사건을 거치고 일상에 지친 두 여자는 친구가 된다. 

백인 여자를 조롱하던 아이들도 여자의 훌륭한 에티튜드와 감식안을 알아보고 여자의 친구가 된다. 그리고 웬수같은 남편의 가방에서는 마침 마술세트가 나온다. 또 까페의 단골인 무명의 화가는 여자를 그려주면서 사랑에 빠진다.(개인적으로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단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 이제 사랑으로 넘치는 바그다드 까페는 유랑하는 이들에게 삭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같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존재가 된다. 영원히. 

  

(백인 여자가 보테로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과 무척 흡사하여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함.)

한없이 늘어지는 몽환적인, 영화보다 유명한 OST와 치유, 정화 계열(?)의 내용으로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영화다. 분위기는 경쾌하고 밝다. 영화는 말한다. 팍팍한 인생에 부드러운 변화와 활기를 주려면 열린 마음과 약간의 마술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은 흥얼거린다.  

아아아아아엠 코오올링 유~♬ 

이게 이 영화의 마술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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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딩 도어스
피터 호윗 감독, 존 한나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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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거의 7년만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기분 전환 겸 몇 번의 강한 파마로 상한 머리카락을 없애버리려고. 머리를 자르기 전에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했다. 회사에서 잘리고, 지하철의 닫히는 문 사이로 들어간 기네스 펠트로가 남친의 불륜을 알게 되고 새출발을 하려고 머리를 자르는 장면! 아 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 일인가! (게다가 기네스 펠트로는 예쁘다..쩝) 

항상 영화는 현실과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누가 말했지.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그랬다. 현실이 좀 시궁창이었다. 그날은. 닫히는 문사이로 들어간 건 아닌데.... 미용사는 더럽게 불친절하고 무뚝뚝했으며... 머리도 별로 예쁘게 잘라놓지 못했다. 게다가 비싸기까지 했다. 에이, 며칠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다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이제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다만, 머리가 그렇게 무거운지 실로 몇년만에 깨달았다. 머리가 정말 가벼워서 샴푸 광고처럼 막 흔들어보게 된다. 난 얼마나 많은 중력을 안고 살았던건지. 

서두가 너무 길었다. 시놉시스만 보고도 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거의 매일같이 내가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 내가 저 버스만 탔더라면..... 모두가 알다시피 떠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는 보여준다. 그 조그만 사건이, 그러니까 지하철의 닫히고 있는 문같이, 인생을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아님 그렇게 믿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아직 미성년자였을때, 어떤 경로로....(엄마의 주민등록번호를 잠깐 빌려서) [언페이스풀]을 봤었는데, 불륜을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건전한 결심을 했으면 좋을텐데, 언제나 그렇듯 교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끝장면에 여자가 후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그 바람이 안 불었더라면, 내가 그 택시를 탔더라면, 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머 이런 후회를 하면서 그 상황을 그려보는 것. 그 장면이 제일 공감갔다.  

물론 이 영화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슬라이딩 도어즈]는 운명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대한 운명. 근데 그 운명이란 게 또 별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한다. 인간지사 새옹지마?

 영화가 닫히고 있는 문을 뚫고 탑승한 후, 탑승하지 않은 후에 대한 전망이 거의 뚜렷하게 갈리는 것 같지만,결국 둘 다 크게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점이 영화의 수준을 높혔다. 만약 이쪽은 해피엔딩이고 저쪽은 새드엔딩이었다면, 앞으로 버스를 놓친 아침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이제는 거의 자학하겠지. 악, 저건 내 운명을 바꿔놓았어!! 

결국, 지나간 버스는 별 것 아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인생이 꼬여있으면 문제다. 영화에서 드는 예는 정말도 대표적인 경우. 잘못된 남자를 고르는 것 같은 문제 말이다. 지나간 버스는 인생을 별로 바꾸지 못한다. 그런데 근본부터 잘못된 문제는 인생을 영원히, 반대 방향으로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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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쇼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드 해리스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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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 돈이 좀 생기고..(그래봤자 거의 엄마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지만...) 나는 맨날 무언가를 사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쇼핑 장소는 올리브 영이랑 왓슨스인데 그냥 구경만 해야지 하고 들어가면 꼭 손에는 물티슈라도 쥐고 나오게 된다. 백화점 1층에서 나는 향기와 흡사지만 또 다른 그곳만의 특유한 향기와  밝으면서도 따뜻한 조명, 적당히 흥겨운 음악은 립글로즈를 발라보고 향수 여러개의 향기를 맡다가 뿌려보게 하고, 진열대에 있는 것들을 들었다 놨다 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날 계산대로 이끈다. 감사합니다 하는 친절한 언니들의 힘찬 목소리를 뒤통수로 들으며 쇼핑백을 확인했다가 한숨을 크게 푹 쉬지만, 바로 자기 자신을 안심시킨다. 그래 이건 꼭 필요했던거야!(근데 진짜로 물티슈가 필요하긴 필요한 거라고.. 그거 없음 어째살아.. )

이것은 어떤 절차와도 같아서 한번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맨손으로 나오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곳에선 없는 수입화장품은 어떻고! 또한 날마다 있는 할인행사와 1+1의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 어렵다. 

나의 자발적인 의지이긴 하지만, 또 그것은 아닌.. 이런 경우는 나 뿐만 아니라 현대, 그러니까 소비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지하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옆집 순이랑 영희도 맨날 그런 번뇌를 하고 살아간다고요.

흔히 지름신이 왔다고 하여 그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데, 그게 마음이 훨 편하기 때문이다. 0.1초만에 저지르는 그런 비합리적인 소비를 나의 이성으로 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은, 아주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니까 신들렸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다는 거다. 사실이 그렇다. 뭐 하나가 사고 싶으면 그 순간엔 이성이고 뭐고 없는 거니까.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나는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옆 집의 많은 순이와 영희들은?  

이런 물음에 불편해야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대중 매체 아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요즘은 그닥 불편해하지도 않을 거다. 그냥 돈만 벌면 장땡이다! 라는 장사꾼 마인드는 이미 친숙해지다 못해 숭배의 수준에 이르렀으니.) 또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광고 업체들도. 광고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어 이것을 피하려면 텔레비젼과 인터넷이 안 되는 산골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거나 그 꼬임에서 괴로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영화 [트루먼 쇼]는 트루먼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방송국에 입양되어 전부 꾸며진 관계에 둘러 쌓여 세계 방방곡곡에 일거수일투족이 방송되는 트루먼의 생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실은 매체와 소비 사회에 둘러 쌓인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 방송인 <트루먼 쇼>는 주인공에게는 설정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주변의 모든 것은, 사람을 포함해서, 모두 설정이다. 심지어 세계, 자연까지도. 또 그가 물을 무서워하게 된 트라우마도 다 설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별 중에 하나인 큰 조명이 떨어진 이후로 트루먼에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조명에는 시리우스 좌(별자리엔 관심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라고 적혀 있었고, 한 번 허술해진 시스템은 곳곳에서 헛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엑스트라 같은 사람들은 항상 똑같은 복장과 표정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또 떠나고 싶은 그를 무진장 티나는 방법으로 잡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트루먼은 대학시절 만났던 그녀를 떠올린다. 아니 사실 처음본 순간부터 계속 마음에 두었지만 모든 사람의 반대로 인해(그들은 엄청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지만. 아무튼 그는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매일 아침 이웃에게 하는 말이지만, 마지막에 프로듀서이자 신(god)에게 굿모닝,굿에프터눈, 굿나잇 이라고 말하고는 환하게 웃는 깜찍함이란!

매일 만나는 쌍둥이 할아버지들은 화면에 나오게 하기 위해 전광판에 그를 밀어붙이고, 모든 소품이자 생활 용품은 그 자체가 광고가 된다. 가짜 간호사이자 그의 아내는 싸움 중에도 코코아 선전을 할 정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다 눈여겨보고 있다가 카달로그에 실린 제품들을 찾아 헤맨다. 지금의 우리들이랑 똑같이. 인터넷에 손예진이 입은 원피스 어디서 나오는 거에요?라고 묻는 우리들이랑 똑같이. 

그렇지만 나는 꼭 여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진 않다. 이미 문명과 상품들이 주는 행복과 편리를 맛보고야 말았으니. 지금까지 더 좋은 제품이 나오면 영혼까지 팔 작정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 사회를 즐기고 있다. 그 금단의 열매들을 따기 위해서 이제 뱀의 꼬임도 별로 필요없게 되었다. 그저 그것이 새로 나왔다고만 일러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정말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아녜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다면 그저 감사하겠습니다..ㅎㅎ)

 

뜬근없는 생각. <신데렐라 그 이후...>, <집을 나온 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책들이 있는 것처럼 신적인 존재인 프로듀서의 품을 빠져 나온 트루먼은 어떻게 되었을까. 뭐 교육은 잘 받을 터이니 평범하게 다시 취직을 했을까. 아님 유명세를 이용해 또 다른 방송에 출연하거나 사업을 했을까... 아무튼 집을 나온 노라는 창녀가 되었을 것이라는 루쉰의 말처럼 비참한 결말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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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0-09-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소금창고입니다.
뽈쥐님 독서이력의 화려함에 놀랐습니다.
흠, 제가 읽은 아니 본 영화가 있어서 댓글을 달게 되어 기쁘다고 할까요.
겨우 아이들 책을 읽는 수준인 제 독서가 너무 게을러보이기도하구요..
좋은책 목록과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다 읽진 못했지만, ㅠㅠ)
트루먼쇼- 저도 의미심장하게 본 영화였지요.
왠지 뒤꼭지가 근질근질해지는, 왠지 날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을것 같다는, 난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있는걸까? 하는 의심이 생기게 했고요. ㅎㅎㅎ
전 요즘 예쁜 식물들을 사게 하는 크리스토프의 조종에 딱 걸려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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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님은 무언가를 사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거예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0-09-26 16:45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방문해주시고 글도 읽어주시고.. 감사합니다. 특히 마지막 한 줄이 특히 감사해요.ㅎㅎ

크리스토프가 누군가 해서 또 네입어를 이용했더니 크리스토프 라무르였군요!(사실 처음 들었사와요.ㅠㅠ) 한 때, 철학에세이를 읽는다고 했다가 상식 부족과 인내심 부족으로 항상 책을 반도 못 넘기고 탁 덮고 말아요.흑흑
또 한번 독서 편식을 반성하며..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생필품보다 식물을 사는 게 더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구요.^^



 
그녀에게(Talk to her)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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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감동을 받아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감독의 영화를 찾던 중, [그녀에게]라는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나쁜 교육],[귀향]도 꼭 볼 계획이다. 그리고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에서 본 귀여운 여배우, 레오노르 와틀링을 다시 보게된 것도 기뻤다.

베그니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정신과 의사가 보기엔. 그는 사춘기를 정상적으로 보내지 못했으니까. 그는 병상의 어머니를 오랜 시간 돌봐 왔다. 그런 그는 그의 집에서 내다보이는 발레학원의 알리샤에게 반한다. 몇 번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알리샤는 비오는 날의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다.

마르코는 여행잡지의 기자다. 옛 사랑이 남겨준 상처와 무기력함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 티비에서 투우사인 그녀, 리디아를 보게 된다. 삶이 버거운 그녀를 취재하고 싶은 그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제 옛 사랑에서 벗어나 그녀에게 정착할 즈음, 그녀는 투우 경기에서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다.

마르코는 그 병원에서 베그니노를 만난다. 알리샤를 정성스럽게 돌봐주고 있는 간호사인 그를. 그는 기적을 믿고 있다. 알리샤는 언젠가 깨어난다고 하는. 그래서 손톱 손질도 해주고, 머리도 잘라주고,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계속 얘기해준다. 마르코는 그가 한심하고 신기할 뿐이다. 결국 마르코는 리디아를 떠나고, 여행지의 신문에서 그녀의 죽음을 보게 된다.

마르코는 서둘러 돌아와 베그니노를 만난다. 알리샤를 강간한 혐의로 감옥에 간 그를. 그 무렵, 알리샤는 기적적으로 깨어나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베그니노는 그 소식을 듣지 못한 체, 탈출한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베그니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녀도 그 것을 원했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그는 의식이 없는 그녀를 강간했을 것이다. 그는 전혀 강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이런 사건이 뉴스에 났다면 분명히 뜨악할 일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몰입해서 보다 보니, 베그니노의 감정이 전해져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너무 진실된 것 같아, 진정한 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맨 정신일 때, 그녀와 얘기해 본 것은 단 몇분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20년 동안이나 병수발을 했다. 너무 외로워서,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는 그녀를 자신의 환상속에서 창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확실히 우리가 말하는 정상은 아닐 것이다.

편집증은 사전적 의미로, 체계가 서고 조직화된 이유를 가진 망상을 계속 고집하는 정신병이다. 이 설명에서 보면 베그니노는 편집증인 것 같다. 한 눈에 반한 그녀와 그는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인데, 그는 4년동안의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있음을 즐거워하며 헌신적으로 바쳤으니까. 실제로 그녀와 보통 사귀었던 사람들처럼 지냈다면, 환상은 없었을 것 같다.(그는 성장과정으로 볼 때, 아마 여자들과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여자라는 존재를 성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단지 외로워서? 정말 사랑해서? 아니면 정신병의 일환으로?? 베그니노, 도대체 당신의 의도는 뭐야???!!!..... 다 끼워맞춰도 맞는 말 같아서 나는 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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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 [할인행사]
다니엘라 페허만 외 감독, 실비아 바스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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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것도 무려 스무 살이나 어린 여자를. 엄마의 생신날 그런 황당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만 세 딸은 그 둘을 갈라놓으려 한다. 레즈비언 성향이 있는 그녀를 그들 중 한명이 꼬시자는 것. 시행착오(?) 끝에 둘째 딸 엘비라가 낙점된다. 엘비라는 혼란스럽다. 정신과 전문의에 의하면, 성적 취향도 유전될 수 있다는 것. 최근 그녀는 마음에 드는 남자도 만났는데...!

영화는 시종일관 깜직하고 재밌다. 엄마가 애인과 딸의 관계를 오해하고 갈라서는 장면과 그 충격에 쓰러지는 장면을 제외하곤. 그 사건 이후로 딸들은 절대적인 엄마편이 되어 맺어 주려고 한다. 정말 귀.엽.다.^^

동성애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꼭 보길 바란다. 동성애를 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족애를 다룬 영화라 나는 생각한다. 휴머니즘 코믹 드라마?? 이런 장르는 없겠지만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마지막에 엄마의 애인과 딸의 애인이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은 정말 짠~하다.

우리엄마가 만약 생신 때 커밍아웃 선언을 한다면, 나는 그녀들처럼 쿨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 진정 쿨한 것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아님 장난 반으로 엄마 애인을 꼬셔보자고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스페인은 성별에 상관없이 연애 자체를 인정하는 분위기 일까. 아니면 단지 영화적 장치일 뿐일까. 스페인에 대해 잘 몰라서 우리나라 정서는 어쩌네, 하는 말도 못 하겠다.

진실은 난 그녀들처럼 쿨하지 못하다는 것.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유럽 영화는 지루하고 난해한 줄만 알고 있었던 나의 생각을 깜찍하게 깨어준 영화.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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