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신부 - [할인행사]
마이크 존슨 감독, 조니 뎁 외 목소리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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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눈물을 흘렸던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턱에 손을 갖다댄 후, 고상한 척을 하면서 "음.. [델마와 루이스]나 [시네마 천국]이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결말도 멋있고.." 라고 말할 것이다. 왠지 있어보이는 영화니까.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분명 멋진 영화고 다 눈물을 흘리기는 했지만서도. 모아놓고 보니 우정에 대한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는 듯.


내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린 영화는 희안하게도 팀 버튼의 [유령신부]다. 그리고 혼자서 팀버튼의 베스트 작품으로 친다.


유령신부가 마침내 결혼을 하려는 장면, 진짜 신부가 뒤에 들어와서 결혼장면을 보는 것을 유령신부가 다시 확인하며 결혼을 맹세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나는 이미 같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바로 빅터의 독잔을 날려버리는 장면에서는 콧물도 나온다. 나로선 유령신부의 예쁜 마음에 연민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질질질.


무섭고 슬픈얘기지만 팀버튼 감독의 영화답게 유쾌하고 싸-한 흥이 난다. 말랑말랑한 점토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뼈다귀 캐릭터와 뮤지컬 음악만으로도 1시간 30분을 바칠 이유가 충분하다. 


명랑해서 더 슬픈 유령신부의 결혼전야의 달뜬 모습은 묘하게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닮았다. 사랑만 보고 돌진하는 에리얼과 유령신부는 회사를 잘못만나서(?) 전혀 다른 운명에 처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미국에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슷한 생각은 갖고 있나보다. 결혼 못한 처녀귀신이 구천을 떠도는 이야기를 이렇게 생기있게 만들어 내는 걸 보면 말이다.


아름다운 용모와 목소리, 노래 실력 그리고 근거없는 명랑함까지 유령신부는 [인어공주]의 에리얼을 꼭 닮았다. 대신 무진장 박복한 에리얼. 사랑한 남자한테 배신+죽임 당한 박복한 영혼. 그것도 결혼전야에! 하지만 여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원한 건 오직 사랑, 사랑이었으니.


엔딩은 아름답지만 속이 후련하지 않아 100%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유령신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손에 넣지 못했으니. 하지만 어떻게 만들었어도 이게 최선일 것이다. 어쨌든 나쁜놈은 응징되었고 유령 신부는 자기는 해방되었다며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갔으니.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는 대신 행복한 삶을 살지만 [유령신부]는 물거품 비스므리한 것이 됐다. 어릴 때 원작 인어공주의 결말처럼 될까봐 엄청나게 마음을 졸이며 보다가 미국 영화스럽게 키스로 끝나서 한시름 팍 놨었는데, [유령신부]는 얄짤없이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배신당한 느낌이다.


내가 왜이렇게 질질 우나 생각해봤더니 어릴 때 안데르센 동화책 읽고도 이리 질질 짰었다. 해피엔딩보다 새드엔딩이 왠지 무게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다른 대안은 없었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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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뷰티 - 할인행사
샘 멘데스 감독, 아네트 베닝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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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자기 과시형 SNS의 인기없는 사용자로서 지난 몇 년 동안 느낀 점은 실제로 행복한 것 보다 타인한테 행복하게 보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낭비라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좋아요'의 숫자와 댓글에 민감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엔 인기 얻는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님을 실감하고 어디나 슬슬 멀어지게 되는게 내 SNS의 말로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행복을 가장하는 건 연예인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부가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경우가 제법 있는 듯하다. 미국도 예외는 아닌 듯 가족이란 이름만으로 묶여져 있는 구성원들이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라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어느 주의 주택가에 두 가정이 있다. A 가족은 딸과 아내의 무시로 자괴감과 무기력에 빠진 아버지이자 남편,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부동산업자인 어머니이자 아내, 반항기가 가득한 어두운 10대 소녀이자 딸로 구성되어 있다.

 

B 가족은 해병대 출신으로 나찌 시대 물품 콜렉터인 엄격한 아버지이자 남편, 무기력에 하루종일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식물같은 어머니이자 아내, 비디오 찍는 취미를 갖고 있는 마약상인 10대 소년이자 아들로 이뤄져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특별해 보일 것 없는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을 유지하며 사는 그들의 속은 서서히 썩어간다. (이래서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다'는 건가?) 10대 자녀가 있는 가족들이 서로 대화가 없는 것은 태평양 건너서도 비슷한 풍경인가보다.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를 물고 뜯고 끌어내리기 시작하는 그들은, 그럼에도 각자의 관습에 맞게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사춘기를 맞고 있는 십대 소년 소녀와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는 부부는 가족이 아닌 밖에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다. 


A 가족의 경우. 가장은 직장 상사의 비리를 알고 협박한 후 1년 치 퇴직금을 받고 무기력한 직장 생활을 그만둔다. 최대한 책임감이 적은 맥도날드에 취직해서 패티를 구우며 몸을 키우기 시작한다. 왜냐.. 딸 친구인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소녀의 "너네 아빠 섹시해. 몸만 좀 키우면 되겠어.."라는 말을 듣고. 

아내는 성공한 부동산 업자와 바람을 피우며 새로운 활력을 찾아간다. 그의 성공한 이미지를 벤치마킹하면서 총 쏘는 기쁨도 알게 된다. 방아쇠와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딸아이는 자신를 추앙하는 신도를 얻는다. 이웃집에 살면서 자신을 비디오로 촬영하며 그녀를 숭배하는 소름끼치는 소년에게 마음을 뺏긴다.


B 가족의 경우. 가장은 여전히 가족의 전통적 가치, 아름답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전에 약물복용과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킨 아들을 감시하면서. 

아내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면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집 안에 떠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듯이.

아들은 아버지 몰래 마약딜러를 하며 큰 용돈을 벌어 비디오 기구들을 산다. 비디오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촬영하는 예민한 소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존재는 다름아닌 이웃집에 사는 소녀다.


A 가족 소녀의 친구, 모델 지망생인 예쁜 소녀는 평범하게 사는 것은 매우 비참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항상 시험해보고 싶어하는 소녀가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란..! (그렇다고 얘 잘못은 아닌게.. 머 예쁜 게 죄도 아니고..)


가족들의 갈등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최고조로 달아갈 때 들리는 한발의 총성. 그리고 깨달음은 왜 항상 늦게 오는지. 모든 것을 다 잃고 겪어봐야 깨닫는 사람들은 늘 어리석고 그래서 평범하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건 미덕이다. 미덕은 강요된 것이 아니기에 지켰을 때 아름답다. 영화의 메세지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아름답게 살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도 본인의 자유이지만.


아직 중년이 안 되어서 그런지 10대 소녀가 어둡게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게 더 안쓰러웠다.


특히 십대에는 세상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비참한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나도 실은 그랬었다. 어떻게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냐, 하고 조금 현실을 내려놓은 지금에는 그때를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 때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게다가 옆에는 거의 모든 남자애들이 흠모하는 예쁜 친구가 있다면. 친하게 지내지만 100% 마음을 열지도 않고 나를 은근 슬쩍 밑으로 보는 것도 분명한, 그럼에도 내 눈에도 예쁜 친구가 있다면.


열렬히 자신을 숭배(worship) 하는 소년의 존재는 그래서 더 반가웠을 것이다. 그것도 걔도 어느 정도 매력이 있어서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면.


창문 너머에서 자신을 카메라로 응시하는 소년을 위해 속옷을 열어젖히는 장면과 소년을 경멸하는 척 하면서도 자기를 지켜보는 걸 속으로는 기쁘게 생각해서 웃는, 그걸 반사된 거울에서 포착한 소년의 카메라가 확대되는 장면은 단언컨대 영화의 베스트 씬이다.


소년의 사랑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빠를 죽여달라고 하는 무리한 부탁을 해보거나 떠나자는 소년의 대책없는 말에도 고민없이 따라 나설 수 있는 10대 소녀의 치기어린 드라마는 무척 내 맘을 끌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었어도 나를 더 많이 좋아해준 사람에게 고마움보다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순진한 신도들을 등치는 교주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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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헤븐스 도어 - 아웃케이스 없음
토마스 얀 감독,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 외 출연 / 대경DVD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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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간이 좀 나면 예전에 봤던 영화를 찾아보고 있다. 뭔가 안전을 추구하는 불황형 영화 선택이랄까. 예전에 한 번 보고 좋았던 영화는 두 번 보면 더 좋고 처음에 못 봤던 것까지 보이는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이래서 첫인상이 틀렸다고만 할 수 있는지!


영화는 며칠 후면 죽을 두 사람이 만난 이야기치고는 가볍고 재밌다. 영화를 언뜻 보면 남는 것은 두가지.  도어즈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멜로디. 그리고 손에 꼽을 만한 멋진 엔딩 장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멋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역할은 그들에게만 남겨두기로 하고...


겉보기에도 서로 다른 두 남자. 이 둘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며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망연자실해서 진탕 취한 그들. 당연히 죽기 전에 뭐할꺼야? 라는 질문을 하고, 이들 중 하나가 바다에 가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되자 나머지 하나는 놀린다. "천국에서는 모두 바단에 대해 얘기해.. 솟아 오르는 태양, 붉게 물드는 바닷물.. 근데 넌 아무 할 말도 없게 되지"


데킬라에 잔뜩 취한 이들은 바다를 보러 탈출을 감행하게 되고, 어쩌다보니 마피아의 돈이 든 멋진 벤츠를 훔친다. 그리고 좀 즐겨보기 위해 은행을 털고 예쁜 옷을 마련한다.( 얘들은 트렁크에 돈 가방이 있는 줄 몰랐다.) 이들은 쫓기는 몸이 된다. 다행이 그들을 쫓는 경찰과 마피아 조직원들은 무진장 멍청하다. 이들은 신나게 쫓긴다. 쫓기면서 그들만의 버킷 리스트 몇 개를 만들고 이뤄가면서 그들은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곧잘 이런 질문을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얼 할래?"

 

이건 너무 극단적인 질문이라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걍 집에서 최후의 식사를 하는 거지 뭐! 라며 가볍게 대답하곤 하지만.. 며칠 후면 죽을 수도 있다는 선고를 받으면 나는 어떤 일을 하게될까.


며칠 뒤에 죽는다는 보장이 있으면 카드 한도를 왕창 늘려놓고(은행을 털어볼 큰 간은 없으니) 온갖 명품을 휘감고 호텔같은 곳에서 신나게 돈의 맛을 한 번 보고 죽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근데 겁나서 못할듯.. 죽는 순간에도 카드빚은 무섭구나...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듯이 나도 희안하게 바다가 생각날 것 같다. 이왕이면 제주도의 맑고 투명한 바다를 보고 싶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지만 죽음만큼 삶에 대해 심각하게 만드는 게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봤던 미스테리 극장에선 언제나 저승사자 같은 분이 양팔을 꿰어 가거나 강 건너편에서 손짓을 하는 것에 익숙해서 죽는 순간이 좀 끔찍하게 여겨졌는데 예의 바르게 천국의 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들어갈 수 있다면 좀 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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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아담 브룩스 감독, 라이언 레이놀즈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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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어 공부를 위한 영화를 골랐다. 대게는 로맨틱 코메디를 고르므로.. 이번에도 로맨틱 코메디다.

 

그래서 3-4번 째 보고 있는 이 영화.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 해서 번역을 조금만 이상하게 해도 욕을 해대는 통에 (근데 간혹 더 괜찮은 것도 있는데.. 1:1로 뜻이 맞지 않다며 욕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듯.) 대부분의 배급사는 그냥 영어 제목을 택하는 것 같다.

 

원제는[definitely, maybe]. 아마도 꼭, 이런 식으로 그대로 한국어 제목을 붙였다면... 도저히 무슨 영환지 짐작이 어려울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도 좀 평범한 연애스토리 영화 같아보이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배급사가 잘 했다는 것이다.

 

가끔 기가 막히게 웃기는 제목들이 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번역된 한국어 제목이면 좋겠다. 입에 착착 붙으니깐.


광고 회사에 다니는 이혼남 윌 헤이즈는 대부분의 사람처럼 의도대로 살아오지 못한 불만감을 안고 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번은 딸을 만나러 가는 날이라 즐겁다. (엄청 헐리우드스럽다.) 그러나 그 날은 딸이 성교육을 받았던 날. 학교는 난리가 났다. (읭? 미국애들은 이런 거에 쿨하지 않고만.) 혼란스러운 딸은 계속해서 윌을 자극하고 결국 부모가 어떻게 만났는 지를 추궁하기에 이른다. (다시 엄청 헐리우드스럽게) 윌은 딸에게 자신이 결혼하기 전 만났던 여자와 젊은 시절 인생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 전 심각했던 애인 에밀리, 썸머, 에이프릴 이야기를 하면서 딸이 꿈많던 시절의 아빠를 만난다고 하기엔.. 영화 내용이 사실적이고 조금 19금적(?)이다. 동화같이 예쁘진 않아도 솔직한 얘기라 공감이 간다. 사랑이고 인생이고 동화같지가 않으니까. 그럼에도 반짝반짝하는 순간이 있으니까 조금 살만하지 않을까. 윌에게는 즐거운 과거(?)도 있었고 예쁜 딸도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영화의 백미는 윌이 이혼한 아내에게 딸아이를 넘겨주고 돌아오는 길에 센트럴 파크에서 네다섯명의 경호원을 끼고 운동하는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장면이다. 운동하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윌은 외친다. "헤이, 각하, 저는 19--년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윌리엄..."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운동에 심취한 전직 대통령은 엄지 손가락을 두어번 흔들고 갈길을 가버린다. 허탈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주인공.  

 

영화는 로맨틱 코메디라는 장르의 한계인 탓(!)에 그럭저럭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영어공부용으로 대사도 좋은 것이 많고 내용이 밝아서 아주 만족스럽다. 특히 마구잡이 우연이 범람하지 않아서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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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틀 선샤인 - 할인행사
조나단 데이턴 외 감독, 토니 콜레트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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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형 드라마보다 캔디형 드라마가 싫은 이유는 캔디의 가족은 (무능력하고 나약할 지라도) 정말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설정. 물론 신데렐라+캔디형 드라마는 최악이다.

 

캔디에게 당당할 이유를 준다. 내가 없이 살았어도 나와 우리 가족은 을마나 정의로운 인간형인데!!!

 

드라마를 대체로 안 좋아하지만 이런 드라마는 진짜, 진짜, 더 싫다. "캐보면 문제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에 완전 동감하는 나로서는 예쁜 여자가 신데렐라가 되는 드라마보다 없이 살았어도 인간의 도리를 잊지 않고 사는 '청정'한 가족이 있는 캔디형 드라마가 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담벼락 안 뛰어 넘는 x이 없다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쩜 그리 착해'빠졌'는지. 물론 경제력이 인간성에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이 자기한테 더 가혹하다면 인간성을 지키고 살기가 더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대부분의 가정(가까운 친척포함)에는 소위 '블랙홀'이 하나는 있게 마련이다. 사돈에 팔촌까지 안가도 된다. 불완전한 사람이 부대끼고 사는데 별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는 세상에서 내 가족은 안 그러라는 보장이 어딨단 말인지.

 

[미스 리틀 선샤인]은 그런 점에서 치유계 영화다. 당신 가족만 그런 거 아녜요, 당신만 못난 건 아녜요, 라고 경쾌하게 얘기해준다. 찌질하지만 사랑스러운 그들은 어쩜 내 주변(나 포함)에 이들과 비슷한지. 불행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왠지 미움을 받지만 미워하는 사람도 딱히 나을 것은 없다. 못난 사람들끼리 서로 예뻐하고 살면 좋을텐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안다. 자살시도를 한 삼촌, 성공한 이미지를 역설하지만 실직한 괘변론자 아빠, 나이값 못하는 음탕한 할아버지, 신체이상으로 파일럿의 꿈을 좌절한 오빠, 그리 특별할 것 없는동네 아줌마 엄마. 이들에게 사랑받는 예쁜 여자아이. 이 꼬마 숙녀는 '미스 리틀 선샤인'에 나갈 생각이다.

 

 (*미스 리틀 선샤인이란?  미스 코리아처럼 아이들한테도 미모 돼지 등급 순위를 정하는 열리는 쓰레기같은 대회... 영화적 장치인건지 실제하는지는 모르겠음.)

 

사춘기가 왔거나 지난 여자아이라면 분명 자기 가족을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을 할 법하지만, 역시 아이라 천진난만하다. 심각하게 고장난 차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곳까지 달리면서 가족은 서로를 멸시하고, 으르렁거리고, 못 견뎌하기 시작한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은 차를 타고 떠나는 순간부터 은근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다, 결국엔 전쟁이 시작된다. 그래서 결혼할 사람이랑 여행을 가라고 하는 건지.. 우리집의 경우는 자기 배로 낳은 자식도 맞질 않는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올바른 가족 구성원을 가진 사람은 영화를 보고 진심으로 동정하거나 경멸하겠지만, 투닥투닥 싸우는 게 일인 가족 구성원을 가진 나로서는 무지 웃겼다. 그래서 더 슬프기도 했고.

 

태어났는데 엄마가 고소영이고 아빠가 장동건이면... 어떤 면에서는 좋겠지? 물론 나는 비교당할 것 같은 두려움을 더 중점에 두는 사람이라 꼭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못난 사람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것도 심히 괴로운 일에는 틀림없다. 가족은 대부분 닮았으므로 자기도 못난 축에 드는 경우가 많겠지.. ('못난'이라고 해도 대체로는 평범한 사람.) 그러니 별로 잘날 것 없는 사람들끼리 아껴주고 살아보자는 게 영화의 메세지일 것이다.

 

  

 

 

 

 

사족 : 언젠가 라디오에 평론가한테 들은 얘기.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버리고 싶은 존재다"라는 수위높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근데 그게 듣는 순간, 그 어떤말보다 공감이 갔다. 뭔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위안과 안심이 됐다. 울엄마도 나를 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급 미안하고 고마워진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엄청 콩가루 집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뼛가루 집안이라도 이런 생각할려나? 그게 더 궁금..)

 

 

 

가족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 '왠만하면' 눈 한 쪽 감고, 귀 닫고, 입 다물고 사는게 현명하다. 어우, 이 징글징글한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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