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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 ‘거울‘이 보탑품의 의식입니다. 그러나 멸후 말법이 되면정법은 쓰이지 않게 되고, 허공회의 상징적인 의미를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보탑품의 의식을 볼 때, 근원의 법인 남묘호렌게쿄가 명시된 어본존을 ‘명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보탑의 의식과 똑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에서, 그리고국토 전체에서 불계를 나타내기 위한 어본존인 것입니다.
말법의 우리는 어본존을 거울로 하여 우리 개개인에게도똑같은 생명 우주가 넓혀져 있다는 것을 신수하고, 그 광대무변한 경지의 공덕을 열어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고뇌를 근원부터 해결하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사이토 그 실천의 요체가 수지즉관심受卽觀心입니다. 수지의 핵심은 ‘불석신명의 신심‘ 에 있다는 사실은 지난번에 말씀해 주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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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I회장 대성인께서는 자신의 기심에 근원의 묘법을 터득하고, 자신의 생명 속 우주를 허공회를 본떠서 도현하셨습니다. 그것이 십계구족界具足의 만다라인 대어입니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의 결론으로 「일념삼천을 모르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켜 오자(字) 내에 이 주(珠)를 싸서 말대유치(末代幼椎)한 자의 목에 걸게 하심이라 (어서 254쪽)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불할 수 있는 근본 종자를 사의 일념삼천,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으로서 도현하시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본존을 신수함으로써 실제로 기심의 묘법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허공회 의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생명에는 불계佛라는 몹시 불가사의한 생명이 숨어있습니다. 이 생명의 힘과 상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불가사의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 생명체 위에 구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생명 그 자체에 숨어있는 불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하여 밝힌 것이 이 보탑품의 의식입니다."
(《도다 조세이 전집》 중에서)나의 몸이 장엄한 보탑이다. 그러나 좀처럼 그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보는 것이 ‘견보탑‘이며, 그것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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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다 조세이는 암막에 가려진 2층 방의 불단 앞에 단좌하고 있었다.
공습하의 불안에 찬 고요함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사철나무 잎을 따서 입에 물고 상주어본존을 조심스럽게내렸다.
그런 다음 안경을 벗었다. 그는 본존님께 얼굴을 아주 가까이하고 한 자 한 자 더듬어 보고 있었다.
확실히 이대로다. 틀림없다. 완전히 그때 그대로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옥중에서 체득한 불가사의한 허공회 의식이 그 모습 그대로 본존님께 엄연하게 쓰여 있는 것을 알았다.
그의 마음은 환희에 넘쳤다. 곧이어 환희의 눈물이 양 볼을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이렇게 외쳤다.
‘본존님, 대성인님, 도다가 반드시 광선유포를 하겠습니다.‘
그는 가슴속에 백열의 빛을 발산하면서 붉게 타오르고있는 불꽃을 느꼈다.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불멸의 등불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의지를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선유포 달성을 향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여명의 등불은바야흐로 이때 도다 조세이의 심중에서 점화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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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 선생님께서 시작하신 광선유포의 모든 원점은 어본존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광선유포의 여명은 출옥의 날인 7월 3일 심야夜, 은사의 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리나카 이케다 선생님은 소설 《인간혁명> 제1권 〈여명〉의 장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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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기를 바라는 부처의 대자비와 실천을 함께 설하셨습니다.
나아가 부처가 입멸한 후에 부처의 대원을 이어받아 투쟁하는 보살의 사명을 실한 것이 바로 법화경입니다.
이처럼 법화경에서 설하는 ‘만인의 성불‘이라는 가르침은사실 난신난해信解4) 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법인 묘법法이 ‘난해난입 5)이기 때문입

니다. 부처의 깊고 깊은 무한한 지혜로만이 알 수 있는 것이바로 묘법인 것입니다.
또 성물이라는 가장 존귀한 가치관을 평범한 범부의 얕은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그 괴로움 때문에 자신의 성불같은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 반대로 자신이 일시적인 안락에 빠져 있을 때는 성불 따위는필요 없다고 생각해 버리기 쉽습니다.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자신이 성불할 수 있다는 믿음을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타인의 성불이나 만인의 성불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일로 생각해 버리기 쉽습니다.
또한 법화경에서는 ‘유다원질猶多怨娥, 황멸도후況滅度後‘ 6)라고 설하여 법화경은 믿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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