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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ㅣ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평점 :
가끔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 읽은 책에서 현실보다 더 지독한 이야기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책들은 말한다. 세상은 따뜻하거나 아름답기만한 곳은 아니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지거나 도망칠 수 밖에 없다고.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하고, 받아들여야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싸우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다. 아무 것도 하지않는 선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을 선택하든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부터 엔터테인먼트 소설까지. 이 책에서는 38권의 하드보일드 소설을 5개의 파트로 구분해서 얘기한다. 짧지만 강렬한 어느 얘기든지 한번 쯤은 꼭 읽어보고 싶어지는 글로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봐야하는가,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면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느껴야하는가부터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적절한 책들과 장면을 통해 보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세상은 꿈도, 희망도 없어 보인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혹은 정신적인 만족을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을 이용하고,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해하는가를 보다보면 난 여기에서 나가겠어!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악인들을 조각조각내는 주인공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혹은 남들에게는 악인으로 보이는 주인공들이 사실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차분하게 얘기한다. 이 책에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소설이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라는 것이 전반적으로 사건보다는 사람에 중점을 두는 책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것도 같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악인이거나, 그런 악인을 처단하는 사람이거나 어쩌다 트러블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이다. 어느 소설도 그들 중 하나의 편을 들지 않는다. 악인은 왜 그가 이렇게 되었는가,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 냉정하게 설명하고 악인을 처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영웅이라고 묘사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그 일을 해야했기때문에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 사건을 통해서 비정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 세상에서 살아나가는 법을 배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읽히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소설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았는가, 아닌가. 어째서 이 사람은 살아남고, 저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나하는 주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악인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적어도 <타운>의 더그는.
클레어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범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길 원하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비극이 된다. 그리고 저자는 그런 더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한다. 나를 이끄는 것은 저 바깥의 무엇이라고. 그래서 기다리고, 갈망한다. 누군가 나를, 무엇인가가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내가 나를 구원하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그 후에야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비로소 다가오는 것이다. (p.192)"
그렇다.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우선 스스로를 붙잡아 끌어내야한다. 누군가가 와서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손을 잡아줄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르듯이. 이 책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심어줬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믿을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는 건 꽤나 슬프고 우울한 일이지만 남을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믿고 일어서는 게 더 빠를테니까.
+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도. 전자는 한 번 읽어볼까 하다가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포기했던 소설인데 읽어보기 시작하니까 역시나 재밌다. 후자는 저자가 생각하는 것을 같이 생각해보고 싶어서 다시 읽는 건데... 이것도 역시나 재밌다. 책에 직접 등장한 책들은 38권이지만 시리즈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제목만 등장한 다른 책들도 나온다는 걸 감안하면 읽을 책이 상당히 많아지지만 시간을 들여서 다 읽어볼 생각.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밌겠지싶다! 다행인 건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는 얼마 전에 다 봤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