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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이순원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이순원씨의 소설 다섯 편이 들어있다. 그 소설들 속의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참 아프고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베의 잠』에서는 주인공인 ‘바내’, 『삐비꽃 여인』에서는 ‘나’의 부대 뒷집에 살던 미친 여자 ‘성야’, 『은규』에서는 조각가인 ‘나’와 중국에서 다시 만나 몸을 섞기도 했던, 실종된 여인 ‘은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서는 오른쪽 팔 하나만 정상이었지 두 다리, 왼쪽 팔이 온전치 못 하고, 지능까지 어린애 수준이었던 ‘수모(氺母) 이세일’이 그렇다.
이순원씨의 작품으로는 전에 ‘19세’라는 장편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실제로 작가 자신의 경험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작가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인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에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 같아서 참 흥미로운 느낌이 들었다. (작중에서 ‘자신의 글에서 노새나 봉평장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효석의 영향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나 작가 자신이 전형적인 유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비추어 이 소설이 상당히 유교적 인간의 도리에 대하여 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서는 도근이 아저씨와 세일이 아저씨가 ‘인간의 도리’라는 측면에서 대비되는 인물로 비추어진다. 둘의 세상을 혹은 세월을 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덜떨어지고 가진 것 없어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의 몫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에 대하여 깨달았다. 반면에 자기 잘 살겠다고 남의 것을 탐하면서, 인간의 도리조차 저버리며 사는 인간은 얼마나 추악한가에 대하여도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세일이 아저씨의 죽음이 참으로 가진 것 없는 자의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허탈하고 쓰린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그 육신이 왠지 숙연한 기분을 느끼게도 하였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무언가 여운이 있는 제목처럼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