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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도둑 벨루토
실바나 단젤로 글, 안토니오 마리노니 그림, 이현경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모든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그림책을 보았다.
텍스트가 다소 많아서 한 호흡에 후딱 읽히지는 않았지만.
차분히 그리고 꼼꼼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주인공 벨루토와 함께 숨죽이며 집안 곳곳을 돌아디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발레리나인 코린느 부인의 집에 살금 숨어든 도둑 벨루토.
그는 처음부터 평범한 도둑으로 보이지 않는다.
왠지 고급스럽고 기품이 있는 도둑이라고나 할까?
그가 동업자라고 부르는 '코'가 맡는 냄새는 없던 향기도
있는 것 처럼 느끼게 할 만큼 향기들을 상상하게 한다.
벨루토가 코린느 부인의 집에 들어간다. 바람처럼.
그리고 그는 집에서 퍼져 나오는 음식 냄새, 가구 냄새,
그림의 유화 물감 냄새, 책 냄새, 잠자는 아이의 냄새,
그리고 심지어 미래 냄새까지도..
한편 머리 속으로 상상하게 되는 후각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그림도 매우 훌륭하다.
코린느 부인의 집에는 19세기의 내노라 하는
이태리 예술 작품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술 작품들은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 져서
각각의 작은 이야기들을 담기도, 캐릭터와 상호작용을 하기도,
또 상황 자체를 풍자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각각의 예술 작품들이 그림책에서 가진 의미들을 뽑아내는 것
또한 나름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벨루토가 있고, 독자가 있는 거실의 불은 꺼져 있어 어두컴컴한 반면,
코린느의 가족들이 있는 공간에는 환하고도 따뜻한 불이 켜져 있다.
이와 같은 대비는 왠지 독자들을 숨죽이게 하면서,
가족들이 있는 공간의 따뜻함을 엿보게 한다.
그림책의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살짝살짝 보이는 오른쪽 미지의 공간.
살짝살짝 보이는 노란 불 켜진 각 방의 공간.
코린느의 가족들은 벨루토가 숨어있는 줄도 모르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가고,
이야기 속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왜 이렇게 진귀한 보물들이 이 집에 많은지도,
각각의 소품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도둑 벨루토가 진짜 훔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텍스트는 다소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 문체가 너무 아름답고, 담담하면서도 아름다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텍스트와 그림들을 한참을 쳐다봤다.
벨루토와 함께 하는 한 가족의 역사 이야기이자,
19세기 이태리 예술품 탐방이자,
무엇이 과연 중요한가를 성찰하게 하는 철학적인 이야기이자,
시각, 후각을 자극하는 공감각적인 이야기...
꼭 사서 곱씹고 곱씹어 다시 보고 읽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문화를 포함한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그림책 풍토가 얼른 다져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