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최초의 미국 소설로 출판된 후 120주 간이나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라가 있던 그런 '대단한' 소설이다. 아마도 미국과 아랍 지역간의 분쟁이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을 자아내고, 미지의 세계, 아픔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두려운 호기심이 그토록 이 소설책을 사람들의 손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나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손에 넣고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함께 영어 스터디 하는 분들이 모두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가슴 벅찬 감동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작가는 정말 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유년기에 생긴 죄의식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극복하지 못한 한 남자의 성장기를 너무나도 깊이 있게 잘 풀어내면서, 그 남자의 삶을 관통하는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으로 얼룩진 슬픈 역사와 사회를 독자들에게 소상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과 사회적 배경은 너무나도 스케일이 커서 짤막하게 요약하기는 상당히 어려운데.
주인공 Amir는 그 사회에서 재력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영향력 있는 아빠 Baba와 노예인 하자라 족 Ali와 그의 아들 Hassan과 함께 Kabul에서 살고 있다. Amir의 엄마는 자신을 낳으면서 죽었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원죄 의식을 가지고 산다. Baba의 아빠, 즉 Amir의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부터 함께 살았던 Ali는 소아마비를 알아서 한쪽 다리를 절며, 그 아내는 아들인 언청이인 Hassan을 낳자마자 집을 나간다. 이렇게 이 Kabul 유년기 때 함께 살던 네 명의 인물은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이 있다.
Amir는 원죄 말고도 또하나의 상처가 있는데, 그것은 아빠가 도무지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 이유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소설 끝 부분에 이유가 나옴) 무엇을 해도, 어떤 일을 해도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떳떳해하지 않는 아빠. 자신 보다 오히려 종인 Hassan에게 더 관심을 주는 아빠의 무관심은 그 아이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되었다. Hassan은 어찌보면 예수님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모든 아픔을 다 감내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인인 Baba와 Amir에게 충성을 다하는 그런 순하고 올곧은 양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이 둘은 언덕의 석류 나무 아래에서 함께 뒹굴며 놀고, Amir가 자신이 쓴 글과, 책을 읽어줄 때면 너무나도 행복해 하는 그런 소년이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9%를 차지한다는 Hazara 족은 외관상으로 보기에도 chinese doll 같은, 그러니깐 몽골족 처럼 얼굴이 평평한 눈에 띄는 존재들로, 주류 세력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는 인종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이며, 비주류인 Hassan은 Amir에게는 떳떳하게 내놓고 친하게 지낼 수 없는 비밀 친구와도 같은 셈이다.
문제의 사건은 일년에 한 번 열린다는 연날리기 대회 날에 벌어진다. 아프가니스탄 전통 놀이 중 하나인 이 연날리기 대회는 모든 연을 끊고 마지막까지 하늘에 연을 날리고 있는 소년이 우승을 거머쥐며, 결승에 올라간 연 두개의 경합이 끝나고 준우승한 연을 줍는 자가 final 영광을 안게 되는 그런 대회이다. Amir와 Hassan은 환상의 연날리기 작이다. 연을 날리느라 피가 철철나는 손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 둘은 결국 결승에서 우승을 하고, Hassan은 주인님을 위해 준우승한 연을 잡기 위해 뛰어 나간다. 하지만, 연을 찾으러 간 Hassan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늦어지자 연날리기 대회에 참석했던 아이들은 하나 둘 돌아가고 날도 어둑어둑해진다. 마음이 조급해진 Amir는 Hassan을 찾으러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찾는다. 그러다가 너무나도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Hazara 족을 경멸하는 백인 혼혈인인 Assef가 Hassan에게 준우승한 연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한다. 주인인 Amir에게 줄 연, Amir가 우승에 준우승한 연까지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Baba에게 인정을 받을 그 증표인 연을 Hassan은 내놓을 리가 없다. 이에 Assef와 일당은 Hassan을 성폭행하고 이 장면을 Amir는 목격하고 만다. 자신을 위해 늘 모든 것을 내놓았던 Hassan이 그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얼어 붙은 듯이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던 Amir. 피로 얼룩진 Hassan의 바지. Hassan은 이후 Amir에게 연을 넘기고, Amir는 상처뿐인 영광을 얻게 된다. 우승에 준우승 연까지 손에 넣은 대단한 Amir. 모든 이들, 자신에게 무관심하기 그지 없었던 아버지 조차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봐 준다.
하지만 Amir는 알고 있다. 그 영광이, 그 관심이 사실은 Hassan의 희생 덕분이었음을. 이 죄책감은 Amir로 Hassan을 마음으로부터 밀어내게 한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내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Hassan. 그토록 얻고 싶었던 놓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사랑과 마찰을 일으키게 하는 그 죄책감. 어린 Amir가 취한 방법은 끔찍하게도 Hassan을 도둑으로 몰아서 집으로 쫓아내는 것!
그렇게 Amir의 유년기는 하늘 높이 떠올랐던 연이 줄이 끊어져 땅으로 곤두박질 치듯 끝나버리고 만다. 평생의 친구였던 Hassan. 모든 것을 내놓았고, 주었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를 내쳐버린 그 끔찍한 죄책감. 그 죄책감은 Amir를 평생동안 죄의 굴레에 가둬 놓는다.
이후 Kabul은 소련의 침공으로 살기 위험한 도시가 되고, 재력가인 아빠와 함께 미국으로 도피를 한다. (사실 Hassan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너무나도 커서 Hassan과 무관한 삶을 살던 시기인 미국 시절 이야기는 조금 지루했다.) 그곳에서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은 그저 그런 이민 생활을 하고, 또 상처가 있는 아내 Soraya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15년 후. Kabul에서 전화가 한 통 온다.
전화는 파키스탄으로 이동한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이자, 아버지 보다 더 아버지 역할을 해준 Rahim Khan의 전화. '이쪽으로 나를 보러 올 수 없겠니. There is a way to be good again' (이 부분이 소설의 시작. 이후 회상) 다시 착해질 방법이 있단다. 자신 평생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Amir. 오랫동안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두었던 Hassan, Ali, Kabul에서의 삶.
그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서 죽어가는 Rahim Kahn과 해후를 하고, Hassan의 아들을 Taliban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오면서 평생의 죄책감을 결국 떨쳐낸다. (Hassan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들인 Sohrab을 왜 구출하기로 결심했는지, Sohrab이 일으킨 또다른 문제 등은 스포일러. ㅎ) 불임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Amir 부부는 Hassan의 아들인 Sohrab을 양자로 입양하고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들은 오래오래 행복했을까?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나는 참 인상적이었는데 본문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In Afghanistan, the ending was all that mattered. ... wanted to know was this: Did the Girl in the film find happiness? Did the bacheh film, the Guy in the film, become kamyab and fulfill his dreams, or was he nah-kam, doomed to wallow in failure? Was there happpiness at the end, they wanted to know.
If someone were to ask me today whether the story of Hassan, Sohrab, and me ends with happiness, I wouldn't know what to say. Does anybody's? After all, life is not a Hindi movie.
자살 소동 이후 말이 없어진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사는 Sohrab과 연을 날리면서 끝나는 이 소설책. 개인의 삶과 아프가니스탄의 상처뿐인 역사. 그 상처를 고스란히 삶에서 겪어나가는 인물들. 그저 미국으로 건너가 행복했습니다.하고 끝을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 있다. 땅에서의 인간의 삶은 그렇게 이상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것임을. 상처가 있으면 그 상처를 안고, 털어버릴 용기가 있으면 용기를 내어 맞서 싸우고, 그렇게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또한 삶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하나의 소설을 통해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렇게 널리널리 전파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 작가를 국가에서 상을 줘야하는 대단한 애국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의 역할. 개인적인 감동을 넘어서 사회를 향한 시각을 열고, 의식을 가지게 하는 그런 문학. 완벽한 짜임새와 숨막히는 반전들, 어느것 하나 소홀하게 다루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대단한 작품. 책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면 정말 멋진 작품이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머리 속에 내가 만들어 낸 상상의 Amir와 Hassan과 그 유년기의 따스했던 시절의 감동이 사라질 때 쯤 그 때가 되어서 영화를 한 번 봐야겠다. 아직까지는 그 여운을 상상 속에서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