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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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뭐지?

신선하다.

처음 접하는 신세계.

경험상 "거의 모든" 이란 말로 - 전부가 아니면서 전부인 것처럼 포장하는 작가의 글은 유쾌했다.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도 못견디게 재미나진 않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니 작가의 문체와 상관없이 '말도 안돼' 라며 웃음이 피식 나오기도 한다.

1년 12달에 1월, 2월, 3월...... 이라는 숫자가 아닌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면 믿겠는가?

10월 22일부터 11월 20일까지는 "안개달"이라고 불렀단다.

심지어 10월 22일은 사과날이라 불렀다는 사실.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력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사용했었다니 난생 처음 접하는 시간의 역사는 충격 그 자체다.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는 이렇게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시간을 잡기 위해 그리니치 천문대를 폭발시키려 했던 어처구니 없는 일부터

규격화된 시간이 필요치 않았던 사람들이 굳이 시간을 통일해서 맞춰야 했던 이유가 등장한다.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데 어떤 날은 상영 시간이 길고, 어떤 날은 상영 시간이 짧기도 했던 필름 영화 시대 이야기는,

정해진 시간의 틀 안에 우리가 어떻게 갇히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나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달력은 이집트 문명에서 만들어졌다 믿은 것으로 끝났고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살면서 "시간"에 대한 의문같은 건 한 차례도 갖지 않았다.

시간의 역사라고 하니 단순히 "역사" 얘기라고 예상했다가 처음부터 핵주먹 한 방.

1년이 12개월이고 365일이며 하루가 24시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와 그것을 깨려는 수많은 시도를 접했을 때,

시간의 역사는 인류 발달의 역사이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착각을 갖게 만든 과정이었음을 보았기 때문.


하나의 과장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정말로,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전쟁, 사진, 연설, 기차, 시계, 음악, 육상선수, 과거, 현재, 미래....... 까지 전방위로 접근하는 저자의 박학다식함에 찬사가 절로 나오니,

그의 지식을 나눠가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손해날 것 전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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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엄마 콤플렉스 - 잘못된 보호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로 만든다
김지영 지음 / 책들의정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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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분야별 책을 구색 맞춰가며 읽는 편이지만,

어느 완전히 손을 떼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육아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턴 육아서 의존도가 확연히 떨어졌다.

아이와의 교감이나 인성 발달, 사회생활의 기초가 될 태도보단 당장 눈앞에 닥친 학교생활에 치이는데다,

육아서에서 하는 말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은 극히 적다는 깨달음도 얻었기 때문.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 아이를 두고 다시 집어든 착한 엄마 콤플렉스라니.



자녀를 잘(?) 키워보고자 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착한 엄마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자녀가 어디 나가서든 기죽지 않으면서 잘한다 칭찬 듣길 바라는 마음.

마음 아픈 일을 겪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

친구들과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선생님께도 이쁨 받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에서 엄마가 나서 아이를 돕는 것이 착한 엄마 콤플렉스.


인생은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 상황에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는 갈등 상황을 피하려고만 든다.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아이의 생각이나 마음상태도 알아야 하니 친구같은 부모를 자처한다.

그러나 친구는 친구고, 부모는 부모라는 것이 내 생각.

저자 역시 친구같은 부모 부분을 지적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엄마는 책 앞부분에서 주춤주춤할 것이다, 이미 겪었던 일이므로. ㅎㅎㅎㅎ

그런데도 읽는 내내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그래, 이럴 때가 있었어" 라며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시간이 몹시 그립고 행복하게 느껴져서 갑자기 기운이 나지 뭔가.

여전히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 않고 내 뜻대로 빨리빨리 되지 않음에 분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마지막 5장, 6장은 초등학교 중학년 이후 엄마에게 큰 도움이 될 부분.

책에서 말하는 '질문을 잘 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잘못된 질문이나 토론방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므로 '착한 엄마 콤플렉스'를 통해 충분히 공감했다면 좀 더 공부를 해도 좋겠다.


내 아이가 마흔이 되어도 나는 육아 중인 엄마일 것이다.

자녀가 하나인 나는, 예전에도 서툰 초보였고 지금도 서툰 초보이고 내가 죽는 그 날까지 서툰 초보 엄마로 남을테니.

내내 서툰 엄마가 육아서 하나로 뭐 그리 달라지겠는가.

저자가 어린 자녀를 집 밖으로 내쫓았던 과거를 고백할 때,

전문가도 감정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위로를 얻고 엄마로 살아갈 새 힘을 얻기 위해 책을 펼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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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위로
조안나 지음 / 지금이책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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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서재 소개나 유명인이 읽었다는 책 이야기가 인기였었다.

지금도 그 인기는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끊임없이 독서 에세이가 나오고 재간되고 있구나.

'책장의 위로' 역시 '달빛 책방' 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던 책이 새롭게 태어난 경우.

작가 조안나를 좋아하는 이웃님 영향으로 찜!!!! 해서 읽어본다.


독서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많은 책이 등장한다.

저자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간략한 소개와 느낌을 전달하니 열 권 남짓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독서에세이를 선택할 땐 신중해야 한다.

저자에 따라 소개하는 책의 수준이나 방향이 제각각인데, 소개하는 책마저 많으니, 나랑 코드가 맞지 않으면 짜증만 유발할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는 내내 위로받았던 책장의 위로는 내 코드와 딱 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 내가 읽었던 책이 꽤 있다 >

내가 재미있게 봤던 책 얘기가 등장한다.

좋아하는 책은 같고 좋아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의견을 나누는 기쁨.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희열.

왜 그걸 놓쳤을까,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경쟁심(?) 유발.

정적인 나의 독서활동을 팔딱팔딱 살아숨쉬게 만든다.


< 내가 아는 작가들 천지 >

책장의 위로엔 낯익은 작가들 천지다.

저자 조안나가 소개한 책은 읽지 않았어도 소개한 작가의 다른 책은 읽었다는 얘기.

그 사람이 이런 책도 썼단 말이지..... 를 연발하며 책 구입목록을 채워간다.

내가 몰랐던 작가의 뒷(?) 이야기를 전해듣는 비밀스러움이 느껴질 땐 신이 난다. ㅎㅎㅎ


< 친근함으로 무장한 문체 >

블로그에 쓴 글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라더니만 친근한 문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헛헛함.

나이들어가면서 달라지는 가치관.

내가 꿈꾸었던 삶과 다른 현재의 모습.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책 읽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책이란 건 읽는 시기가 참 중요하단 생각을 한다.

예전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책이 어느날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보물처럼 숨겨두었던 책을 다시 읽었더니 허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기도 하다.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추천하는 책은 가끔 어렵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남들은 다 좋다는 책이 나는 맘에 들지 않기도 한다.

내겐 실제로 큰 위로가 되었던 책장의 위로.

위로받을 필요없는 사람들이 읽는 책장의 위로는 어떨까, 몹시 궁금해지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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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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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86 세대가 아니다.

87년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1987"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 연장선에서 소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를 접한다.


영화 1987은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라는 - 모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둘러싸고 진행되니 긴장감이 넘친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현장에서 사건이 펼쳐지니 뻔히 아는 이야기라 해도 몰입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는 광장 한가운데가 아닌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다.

87년 당시 군대에 있었던 대학생, 그리고 군대 안에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

시대배경은 87년이지만 공간이 군대였기 때문일까?

긴박한 사건이나 팽팽한 긴장감, 심도 깊은 심리묘사는 없다. 

잔잔하게 과거를 되짚어 써나가는 일기같은 느낌.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가 아닌 주변의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굉장히 무겁고 어두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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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눈 + 어린 왕자 (문고판) 세트 - 전2권
저우바오쑹 지음, 최지희.김경주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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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어린왕자의 눈이라 어린왕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 이야기같지만

가만 읽다보면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어린왕자 이야기다.

심지어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눠 끊임없이 분석하고 의미를 파고든다.

감정을 건드리며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할 거라 기대했다가 깜짝 놀랐음.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어린왕자를 읽어야만 할 수 있는 생각들.

전투적이다.


예를 들면,

어린왕자의 별에 있는 장미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린왕자는 버릇없고 도도하고 자기만 아는 것처럼 보이는 장미가 싫어 떠났지만

지구에서 만난 오천 송이 장미를 보며 내가 "길들인" 장미의 특별함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길들인 장미의 특별하지 않음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오천 송이의 장미는 정말 특별하지 않은지에 대해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눠 의견을 피력한다.

특별함과 그렇지 않음에 대해 끝이 나면 그 다음은 "길들임"에 대해 시작.

길들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길들임이 무엇인지 알려준 여우에 대한 접근이다.


이토록 전투적으로 낱낱이 해부하듯이 펼쳐내니,

"어린왕자"를 읽지 않고 "어린왕자의 눈"을 읽기는 어렵겠다.

반대로 어린왕자를 재미나게 읽었다면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나처럼) 토론의 욕구가 치솟거나,

철학적 배움을 얻을 수도 있겠다. 


어린왕자에 대한 작가의 무한애정이 느껴졌던 책 어린왕자의 눈. 

보노보노나 빨강머리 앤을 기반으로 쓰인 에세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

비평서나 철학서로 보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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