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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서정적이다 ,서정적이다, 이토록 서정적인 제목이 있을까.
이 밤과 서쪽으로.
이토록 서정적인 제목인 얘는 에세이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여성 비행사가 1932년에 발표한.
리뷰를 쓸 때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소개는 인용하지 않는다.
마케팅을 위해 쓴 글이라 나의 감상과 맞지 않을 때가 많고,
책 소개를 읽고서 책을 읽으면 재미가 떨어지거나 오히려 실망할 때가 많기 때문.
그러나 '이 밤과 서쪽으로'는 책 소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저자 베릴 마크햄은 대서양을 서쪽으로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다.
2004년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최고의 어드밴처북 8위에 올랐다고 하며,
헤밍웨이가 이 책을 읽은 후 작가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얘기는 책 앞장에 인쇄되어 있다.
전사, 금발의 파일럿, 팜므파탈 등의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는 그녀.
강인하고 거칠고 투박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예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첫 페이지, 첫 줄부터 반하고 만다.
범접할 수 없는 내공의 소유자가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느낌.
붙임딱지가 아니라 색연필을 들고 앉는다.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살게 된 그녀는
사자에게 물리고 원숭이에게도 물린다.
곤봉으로 자기를 문 원숭이를 때려 죽이는 경험은 물론 멧돼지 사냥에 나서는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끼리떼가 농장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말이 물어서 집어던져도 자고 일어나 다시 말을 돌보러 나가는 아이.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말 한 마리에 보따리 두 개만 들고 집을 떠나 경주마 조련사가 되고
비행을 배운 후, 칠흑같은 어둠을 뚫는 야간비행과 횃불로 만든 활주로에 착륙하는 어려움도 불사한다.
'여전사'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삶.
그러나 그녀의 글은 너무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 밤과 서쪽으로라는 제목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서정적인 글.
번역도 매끄러워서 아름다운 문장과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가슴을 파고든다.
늦가을.
찬바람이 선선하게 불 때 창문을 활짝 열고 따듯한 이불 속에 누워 있는 그런 기분.
내용은 거칠기 짝이 없건만 전달하는 문장은 곱디 곱다.
영국식 차를 내놓은 테이블을 바라보며 갖는 생각이 건전(내 기준이지만)하니 더욱 맘에 든다.
"그 차탁은 사치가 아니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표시였을 것이다.
이는 영국의 팽창을 가능하게 했던 옛 중국의 두 가지 선물, 차와 화약에 여전히 이중의 빚이 있다는 증거였다." (102쪽)
사랑하는 것은 깊이, 천천히, 자세히 보게 마련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사랑하는 것들.
그래서일까?
묘사가 많다.
읽기에 속도가 붙지 않지만 몹시 좋았던 책.
헤밍웨이가 이 책을 읽고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에 절대 공감할 수 있었던, 이 밤과 서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