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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를 먹으니 연륜이란 것도 생기지만 편견이란 것도 늘어난다.
책 제목만 보고(책 소개는 읽지도 않고. ㅡㅡ;;) 맘대로 판단, 읽기 목록에서 지워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확대 중인 편견 중 하나.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역시 제목만 본 후, 그렇고 그런 - 흔해빠진 에세이려니 넘겨 짚고 포기하려다,
늙어가는 나의 엄마 생각에 효녀 코스프레 차원에서 선심쓰듯 집어들었던 책.
근데 이거 안 읽었으면 엄청 후회했을듯.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제목만 보고 분명히 뻔한 에세이일 거라고 넘겨짚었지만 소설.
심지어 저자의 나이가 만 14세.
일본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12세 문학상'에서 초등학교 4, 5, 6학년 내리 3년간 대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최연소 천재 작가"다 뭐다 극찬이 이어지니 당연히 삐딱해져서 '얼마나 잘 썼나 보자' 라는 맘이 스멀스멀.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다.
23쪽, 다시 태어나면 뭐가 좋겠냐는 딸과의 대화에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겠어." 라는 엄마의 대답부터 무장해제, 저자의 천재성을 인정한다.
엄마의 고단한 삶을 이 정도로 이해하고 엄마의 언어로 풀어낼 줄 안다면 천재는 몰라도 작가적 역량은 갖춘 것 아니겠는가.
청소년 문학은 일부러 챙겨서 많이 읽는 편이다.
처음엔 내 아이에게 읽으라고 권할 책을 찾는데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맘에 드는 청소년 문학을 찾고픈 개인적인 욕심이 앞선다.
진로, 친구, 왕따, 자존감, 미래, 방황, 자살, 현안이 되는 사회문제 언저리를 맴도는 소재의 한계와
그로 인한 뻔한 주제, 교훈적 메세지는 책맛을 뚝 떨어뜨리기 일쑤.
가르침 없이 재미나고 편하게 읽으면서 작품성도 좋다고 말할 작품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러다가 이번에 눈이 번쩍 뜨이게 만난 좋은 작품. ㅠㅠ
주인공 '하나'는 아빠 없이 엄마와 둘이 산다.
엄마는 노동판에 나가 일을 하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반값 스티커가 붙은 음식을 사다 먹는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한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가고 싶어도 비싼 입장료때문에 가겠다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형편.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이런 '하나'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 & 연작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나의 아빠는 어떤 존재인가 궁금하지만 차마 묻지 못하는 마음.
아빠에 대한 상상의 나래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슬프지 않고 미소짓게 만드는 천진함.
엄마의 재혼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와 아까운 복숭아 네 개. (난 그 복숭아가 너무 아까웠다. ㅠㅠ)
가을에 은행 열매를 주우러 다니는 모녀가 만난 친구 가족의 모습과 그들만의 추억 만들기는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고 건강하다.
청소년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는 슬프지도, 감성을 자극하지도, 삶의 자세를 가르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른답지 않게 반응한다.
참 좋다.
어른이 쓰는 청소년 이야기와는 결이 다른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적극 추천.
두 번째 소설 시작이 앞의 소설과 겹치는데, 문장이 눈에 띄게 달라서 화들짝 놀란 거 말곤 모두 맘에 들었음.
만 14세 작가, 천재인 거 맞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