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웨어 에프 모던 클래식
닐 게이먼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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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버웨어는 영어 Never Where,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

길에서 정말 우연히, 너무도 우연히 만난 소녀 덕분에(?) 리처드는 지하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유령이나 정령, 동물은 아닌데 지상의 사람과는 섞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존재인 지하 사람들.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곳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다.

목숨을 따로 보관할 수 있고 인간의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기도 하지만 이것은 선택받은 사람들만 가능한듯.

리처드는 다시 지상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우연히 만난 지하세계 소녀 도어와 모험을 떠나게 된다.


판타지는 허무맹랑한 소재로 허무맹랑하게 쓰면 '쓰레기'가 되고 만다.

현실에 기반한 상상력이어야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으나 상상이 뻔하면 재미가 없다.

너무 현실적이면 판타지적 요소가 사라지고, 지나친 상상은 오히려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네버웨어는 판타지 소설이 갖는 이런 위태위태한 살얼음판 위에서 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서로를 만나는 과정은 대개 우연에 기대지만 만남의 과정과 배경이 기발해서 홀딱 넘어가고 만다.

몰살당한 도어 가족의 비밀,

도어를 죽이려고 하는 자의 정체,

도어 아버지가 유언처럼 남긴 사람들,

그들이 모험 중에 만나는 사람들,

리처드도 알고보니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여러 문제를 동시에 끌고가니 딴 생각을 품을 겨를이 없다.


기발함, 얽히고 설킨 자잘한 사건과 더불어 500쪽이 넘는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익숙함을 꼽겠다.

런던의 지하세계는 이미 여러 소설에서 다룬 적이 있었고

천사, 지하철과 역을 통한 이동, 미로, 소문으로 전해지는 괴물, 이름을 날리는 전사, 어리숙하지만 잔인하기 그지 없는 콤비 킬러 등.

낯익은 소재가 곳곳에 배치되어 편안하게 읽힌다.


긴장감이나 긴박함 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판타지라는 새로운 영역을 선보인, 네버웨어.

500쪽이 넘는 분량이 압박을 주지만 압박에 비해 무난하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음.

책 중간에 재미난 오타가 하나 있으니 찾아보시길.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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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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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등장하는 작품은 "행사작가".

단편은 짧은 시간 안에 결판(?)을 봐야 해서 사건의 흐름이나 화자가 처음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뻔한 소설이 아니라는듯, 주인공의 성별부터 모호한 시작.


주어지는 정보는 애매모호한데 화자가 남자라는 확신을 주는 문체.

소설의 이야기보다 그 문체에 빠져든다.

두 번째 소설 "순수한 사람"을 읽으면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기어이 걸음을 돌려 라면값을 받아주고 가는 딸의 모습 어디에서도 '행사작가'의 아저씨 작가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남자 작가가 쓰는 남자 등장인물의 사실감과 여자 작가가 쓰는 여자 등장인물의 사실감이 느껴지는 미묘함에 짜릿하다. ㅎㅎㅎ


그 짜릿함 위로,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 뒤를 잇는다.

5.18의 광주는 그나마 최근.

나도 처음 들어본 그것 - 사루마다(팬티, 잠방이)를 입지 않는 12세 소녀와 독일로 간 광부, 간호사가 등장하고

도시에 나가 버스 안내양을 하다 폐병에 걸려 돌아온 언니의 얘기는 이미 우려먹을대로 우려낸 옛날 이야기같다..


이런 소설을 사람들이 읽으려고 할까?

이젠 교과서에도 다루지 않는 소설이 아닐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에서 다루니 추천도서도 되지 않을 거 같은데.

좀 더 밝고 재미난 이야기를 썼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난 작가의 말.

"이야기였고 울음이었고 끝내 노래가 되었다" 더니만 나도 참을 수 없는 울음이 난다. ㅠㅠ

은주의 영화가 아니었던 은주의 영화가 결국 은주의 영화가 되었듯(작품은 직접 읽어보시길),

공선옥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였다.

지나갔으니까, 익숙하니까, 여러 사람이 했으니까,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요즘 애들한텐 생소하니까..........

그러니까,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 의미를 재단하고 평가할 자격을 누가 나에게 주었는가.​

나는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그만인 것을.

소설을 재미와 '돈' 이 되겠는가로 바라보고 있었던 내 잠재의식에 철퇴를 가한 소설, 은주의 영화.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 작가의 말, 중 >

이 소설들이 지금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 가닿아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까.

말을 걸 수나 있을까?

혹은 누가 이 소설들에 말을 걸어오기나 할까?

소설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의미가 있기는 할까?

나는 혹시 노래를 익혀 밤무대 가수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소설이 세상에서 그리 유용한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는 해도 어쨌거나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앞으로 사는 동안은 소설을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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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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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황 증세는 비행기에서 시작됐다.

이런 증상을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들만 깊은 공감을 할 뿐,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넘겨 짚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놀라운 건,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온 사람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았다는 것.

더 놀라운 건, 나도 그거 안다며 격한 공감을 하지만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못하는 걸까?)는 사실.

정신과 약에 대한 두려움과 부작용, 꽤 오랜 시간 복용해야 하는 부담감을 알고나면 선뜻 권할 수도 나설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우리네 마음을 아는 것처럼 듣고팠던(?) 얘기만 쏙쏙 골라서 해주는 저자.

심리학에 워낙 관심이 많은 내겐 공황을 넘어선 여러 깨달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 중 가장 와닿았던 말은 "똥은 휘저어야 똥" 이라는 것.

보통의 경우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심리치료를 시작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픈 기억을 찾아내고 그것을 직시하는데 항시 결과물은 '부모님이 잘못했네' 가 되고 만다.

그 다음은?

슬프고 아픈 기억을 헤집어봐야 슬프고 아픈 기억일 뿐, 똥통을 휘저어야 똥만 있을 뿐. ㅎㅎㅎㅎㅎㅎㅎ


대면치료, 상담치료, 그룹치료......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고통스럽고 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려 부정적인 사고를 해내는 뇌의 길을 강화한다는 말이다.

공황을 몰고오는 공포도 같단다.

'이번엔 잘 넘어가면 좋겠다' 는 생각 자체가 공포를 일으키고 공황 상태가 되버리는데

이성이 지배하는 영역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생겨나는 생각의 다발이다.

뇌 안에 신경을 연결하는 시냅스 다발 수천 개가 공포에 관한 정보로 활성화되어 있어 시도때도 없이 즉각 반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러니 약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저자.

그리고 격하게 공감하는 나.


공황은 공포에서 출발.

공포의 실체를 마주하고 온 몸의 감각을 통해 나아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당연히 이런 치료 방법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몸이 보내는 사인(공황은 우리 몸이 나를 보호하려는 보호장치라 표현)을 없애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불이 나서 화재경보기가 울리는데 경보기만 끄고 불은 끄지 않는 상태에 머물면 안되니까.

나한테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온 이유를, 나는 안다.

비행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 직후엔 버스도 타지 못했고 자동차로 터널을 지나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 특별한 치료 없이 일상이 가능해진 건 역시나 근본적인 원인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불특정 다수가 모두 관심을 갖고 볼 책은 아닌 거 같다.

누군가 극한의 스트레스로 뜬금없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면 그 때 살포시 추천하겠는,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공황 증상을 경험하지 못했던 지인은 재미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책이었다 하니 참고하시길. 나는 상당히 좋았음.)


참, 다음 장에(뒷 부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거슬렸음.

그냥 당장 설명해도 되잖아, 왜 굳이 뒤에 자세히 말하겠다고 자꾸 알려주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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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사설과 칼럼으로 보는 2019년의 이슈들 - 2020학년도 면접.논술대비(특목고, 대학)
최홍수 지음 / 사설닷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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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 책.

내가 아니라 자식놈을 위해서 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책.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보고, 내년에도 볼 예정인, 신문 사설과 칼럼으로 보는 2019년의 이슈들.

 


신문 볼 일이 없다.

분 단위로 바뀌는 세상을 일 단위로 움직이는 종이 신문으로 읽어낼 재간이 없다.

분 단위 세상을 미친 속도전으로 쏟아내는 인터넷 기사들.

어법도 틀리고, 맞춤법도 틀리고, 중요한 이름마저 제 멋대로 쓰고는 '아니면 말라'는 식의 기사를 보노라면

애들이 제대로 된 글을 읽을 공간이 있기는 한가 걱정이 앞선다.

글보다는 사진과 해시태그로 소통하는 각종 SNS 를 봐도 마찬가지.


내가 "신문 사설과 칼럼으로 보는 2019년의 이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제된 짧은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뭔 이슈가 있었는가는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

적어도 "그게 무슨 말이에요?" 라고 되묻지 않을 수 있는 읽기 능력과 이해 능력은 갖췄으면 하는 맘으로 자식놈에게 권하는 책이다.


각 신문사의 사설과 칼럼을 주제별로 모았다.

처음부터 하나씩 읽어도 좋고 알고픈 주제만 골라서 읽어도 좋고.

나는 알고픈 주제만 골라서 읽는 쪽.       


 

신문사의 사설을 주제별로 담았는데 청소년이 읽기엔 쉽지 않다.

그러나 걱정마시라.

친절하게 사설 내용을 설명해주고 어려운 용어는 풀이도 해주신다.      
마지막엔 생각할 주제도 던져주는 지나친(?) 친절함 장착.

마지막 방탄소년단을 주제로 한 칼럼엔 타임지에 실린 BTS 기사를 원문으로 실어준다.

'그랬다고 하더라'....는 인용보다 '니들이 직접 봐라'......라는 자세, 너무 좋다.

        
꽤 오랜 시간 책을 읽으면서 '가성비'라는 것을 따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엔  '가성비' 라는 말을 자꾸 입에 올리게 된다.

오랜 시간 축적한 누군가의 지식과 경험을 구입하는 비용을 비싸다 싸다로 평가할 수 없으나,

이 책은 가성비 최고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신문 사설과 칼럼으로 보는 2019년의 이슈들.

청소년에게 추천하나 엄마들만 좋아할 책이로구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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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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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를 둔 엄마들의 모임, 5월맘.

인터넷을 통해 알았지만 오프라인 모임으로 얼굴을 익히고 마침내 아기들을 뺀 엄마들끼리 저녁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문제가 터진다.

엄마들이 모여 있던 그 시간에 아기가 사라진 것.


자녀를 둔 부모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한가득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엄마들.

사람이 그리워 모임에 나오긴 했지만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매치시키지 못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개인적인 관심도 갖지 못한다.

오로지 관심사는 아기, 아기, 아기.

모유 수유때문에 커피도 와인도 참고,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하니 차림새는 엉망, 여전히 임신부로 보이지만 내 몸을 돌볼 여유는 없다.

내 시간을 15분이라도 갖고픈 엄마들의 지친 육아의 탈출구로 모였지만 그들은 서로의 아기를 안아준 적도 없다.


퍽퍽한 육아에 지쳤지만 그들은 "엄마"였다.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를 위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 찾기에 나선 것.

그 과정에서 숨겨둔 과거가 드러나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찾기도 하며,

지금의 내 삶은 피폐하고 도망가고 싶을지 몰라도 자녀라는 존재와 함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은 퍼펙트 마더였다.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자식" 이라는 존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했으므로.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그런데 등장 인물의 절반이 아기 엄마이고 아이를 양육하는 상황이라 인물 개개인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직업이나 가정 환경으로만 파악하는 평면적 인물들 속에 도드라지는 그 사람이 짜증유발 캐릭터.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인물들이 밋밋해서 짜증유발 캐릭터로 손에 땀을 쥐게 되고 범인이 잘 감춰진 느낌이다.

보통의 스릴러가 색깔이 강한 인물에 의해 끌려가는데 그렇지 않아 신선했던, 퍼펙트 마더.

영화로 만든단다.

이건 누가 봐도 영화로 만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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