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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7월
평점 :
나의 공황 증세는 비행기에서 시작됐다.
이런 증상을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들만 깊은 공감을 할 뿐,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넘겨 짚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놀라운 건,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온 사람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았다는 것.
더 놀라운 건, 나도 그거 안다며 격한 공감을 하지만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못하는 걸까?)는 사실.
정신과 약에 대한 두려움과 부작용, 꽤 오랜 시간 복용해야 하는 부담감을 알고나면 선뜻 권할 수도 나설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우리네 마음을 아는 것처럼 듣고팠던(?) 얘기만 쏙쏙 골라서 해주는 저자.
심리학에 워낙 관심이 많은 내겐 공황을 넘어선 여러 깨달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 중 가장 와닿았던 말은 "똥은 휘저어야 똥" 이라는 것.
보통의 경우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심리치료를 시작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픈 기억을 찾아내고 그것을 직시하는데 항시 결과물은 '부모님이 잘못했네' 가 되고 만다.
그 다음은?
슬프고 아픈 기억을 헤집어봐야 슬프고 아픈 기억일 뿐, 똥통을 휘저어야 똥만 있을 뿐. ㅎㅎㅎㅎㅎㅎㅎ
대면치료, 상담치료, 그룹치료......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고통스럽고 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려 부정적인 사고를 해내는 뇌의 길을 강화한다는 말이다.
공황을 몰고오는 공포도 같단다.
'이번엔 잘 넘어가면 좋겠다' 는 생각 자체가 공포를 일으키고 공황 상태가 되버리는데
이성이 지배하는 영역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생겨나는 생각의 다발이다.
뇌 안에 신경을 연결하는 시냅스 다발 수천 개가 공포에 관한 정보로 활성화되어 있어 시도때도 없이 즉각 반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러니 약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저자.
그리고 격하게 공감하는 나.
공황은 공포에서 출발.
공포의 실체를 마주하고 온 몸의 감각을 통해 나아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당연히 이런 치료 방법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몸이 보내는 사인(공황은 우리 몸이 나를 보호하려는 보호장치라 표현)을 없애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불이 나서 화재경보기가 울리는데 경보기만 끄고 불은 끄지 않는 상태에 머물면 안되니까.
나한테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온 이유를, 나는 안다.
비행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 직후엔 버스도 타지 못했고 자동차로 터널을 지나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 특별한 치료 없이 일상이 가능해진 건 역시나 근본적인 원인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불특정 다수가 모두 관심을 갖고 볼 책은 아닌 거 같다.
누군가 극한의 스트레스로 뜬금없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면 그 때 살포시 추천하겠는,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공황 증상을 경험하지 못했던 지인은 재미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책이었다 하니 참고하시길. 나는 상당히 좋았음.)
참, 다음 장에(뒷 부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거슬렸음.
그냥 당장 설명해도 되잖아, 왜 굳이 뒤에 자세히 말하겠다고 자꾸 알려주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