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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혁명 - 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 심리학
세라 W. 골드헤이건 지음, 윤제원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공간 혁명이라길래 실내 인테리어 + 건축물에 관한 인문학적 접근 정도라 예상했다.
보기좋게 예상을 깨버린 심오하고 심오한 이야기.
추천의 글에서 이미 한 방 먹고 시작.
알츠하이머 치매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의 요양 시설과 파킨슨 환자들의 요양 시설은 달라야 한다.
건축가들은 그들의 증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등장하는 신경건축학.
이 놀라운 접근은 뭐지?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누구지?
추천의 글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 공간 혁명.
'공간 혁명'은 표지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저자는 하버드대학교의 교수이자 건축평론가로 교수를 그만두고 7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한다.
대학교수답게 깊이 있는 지식을 다뤘고
건축평론가답게(?) 건축가 실명과 건물 사진까지 갖춰 부족한 부분을 짚어내며
7년에 걸친 역작답게 사진 하나를 허투루 담지 않았다.
'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 심리학' 이라 소제목을 붙였지만 개개인의 삶이 아닌 전인류적 행복을 논한 대승적 마무리까지,
흠을 잡으려고 해도 잡을 것이 없구나. (흠 잡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 더 맞겠지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눈을 끄는 건축물이 많이 등장한다.
"어머 이게 뭐야!!! 합성 아냐?"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들로, 건축물 자체가 자연으로 들어가거나 자연을 건축물에 끌어들였다.
우리는, "고급스럽다" 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동경하며 곧 저런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거지는 슬럼이라고 한다.
디자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인구 과밀로 사생활도 없는 판잣집촌에서 성장한 경험은 평생의 역량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하는 저자.
그런 슬럼에 거주하는 사람이 7명당 1명 꼴이라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슬럼에 살지 않는 중산층의 거주 환경은 좋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상투적인 평면도로 대충 획일적으로 구획한 방,
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축 재료,
지역 주민이 이용할 서비스의 부족으로 주민 친화적이지 않은 곳 역시 칭찬할 공간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떤 건축물,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평생의 역량을 갈고 닦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공간을 뇌과학, 심리학으로 접근한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으로 시작하여 인지, 스키마, 햅틱 인상까지 동원해 우리의 뇌가 공간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니
설득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예를 들어 보자면.
햅틱 인상은 마음 속으로 촉각 시뮬레이션을 하게 만드는 시각 자극을 말하는데
교실에 놓인 부드러운 쿠션감 있는 의자를 본 학생은 직접 만지거나 앉지 않아도 온기와 편안함을 느낀다.
이런 햅틱 인상은 건물과 장소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단순히 보기 좋고 자연친화적 재료만 쓴다고 좋은 건축물, 좋은 공간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되겠다.
우리가 흔히 '멋있다'고 감탄하게 되는 건물 외관 디자인과 실내를 넘어선 공간도 다룬다.
인사동의 쌈지길과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파리 라틴 지구 세 도시를 같은 계절, 같은 시간대 도보로 이동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활동 무대'라 이름 붙인 장소가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식당, 놀이터, 교실에서 보이는 행동이 달랐던 행동심리학 연구 결과를 통해 공간이 행동을 유도한다는 결론.
결국 공간 디자인의 유무가 인간 경험을 가르고 인간 역량 강화에 영향을 미치니 중요하다는 이야기.
내가 감히(?) 리뷰를 써도 되는 책인가 싶게 경건한 맘을 품게 만들었던, 공간 혁명.
잘 모르는 분야를 교수님처럼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하다가
이렇게 대놓고 까도(?) 되는 건가 피식 웃게 만드는 독설 건축평론을 했다가
우리 자손에게 물려줄 자연환경과 인권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건축환경적 대안을 제시하는 석학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사진을 고른 기준을 세세히 설명하는 데서 두 손을 들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