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만 아는 농담은 보라보라섬에 살고 있는 한 여자 이야기다.

에세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신변잡기를 바탕으로 떠오르는 단상을 쓰는 글이라 실제 내용은 모두가 거기서 거기.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어떤 에세이는 말도 좋하게 큰 감동을 주고

어떤 에세이는 내가 써도 이보단 잘 쓰겠단 자신감을 주고

어떤 에세이는 큰 위로를 주기도 하니

'글' 이란 것이 쓰는 사람을 담는다는 것이 맞는 말이긴 한가보다.

우리만 아는 농담은 잔잔한 감동과 잔잔한 위로를 주니, 저자가 개인적으로 궁금해지고야 만다.

아파서 온종일 혼자 누워 있던 날 읽은 부분이 우연히, 정말 아주 우연하게도

아흔이 넘어 자살 시도를 하셨던 친구 할머니한테 가는 장면.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가야겠는데 119를 부를 정도로 위급한 건 아니지만 혼자서는 움직이기 힘들어, 마냥 견디던 그 날,

나도 아흔이 넘어 자살 시도를 한 할머니가 된다.

홀로 계신 할머니를 다큐멘터리로 남기고 있는 손녀는 할머니가 외롭지 않게 곁을 지키려하고

손녀의 엄마는 할머니가 편히 가실 수 있게 그만하라고 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말하는 저자.

그래봐야 하루 들렀다 가는 거지만,

할머니 등에 붙어 잠이 든 손녀는 분명 할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고 살아갈 힘이 되리라고,

할머니에 빙의되었던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마냥 진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니 걱정마시라.

조카를 울린 에피소드는 유머집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고,

패들보드를 타고 바다를 건너 섬으로 놀러가는 용감함을 가장한 무모함은 감탄을 자아낸다.

덤덤하게 부부의 피자집 망한 이야기를 하고

문명과 동떨어진 무위자연의 삶을 살 것처럼 보이는 보라보라섬에서 인터넷에 매달려 사는 건 너무 인간적이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겨 읽을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


'내일의 일은 나는 모르겠다' 로 마무리되는 글이 꽤 있다.

세상이 온통 희망과 밝은 미래로 가득이던 시절에 나도 즐겨쓰던 말.

지금은 '내일' 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을 알아버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넘어갔던 부분.

그런데 저자 에필로그에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는 말의 "무게를 알고 썼나 싶다' 고 고백한다.

이거였구나!!!

소소하고 작은 일상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던 이유는 끊임없이 사색하고 성찰하는 자세때문이었구나.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는 소름 돋을 정도로 좋을, 우리만 아는 농담.

곱고 단아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세상 사람 누구도 웃지 않아도 우리끼리만 낄낄거릴 수 있는 우리만 아는 농담같은 이야기.

정말정말정말 좋았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렘을 팝니다 - 왠지 모르게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의 비밀
신현암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용이 너무 좋아서 맘이 불편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내용이 너무 좋아서 읽는 내내 맘이 좋지 않았던, 설렘을 팝니다. ㅠㅠ


 

무엇 하나 나무랄 점이 없다.

저자의 겸손하면서 깔끔한 어투,

충분한 현장 조사와 경제, 경영 이론의 접목,

그것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가르치지 않고 제안하는 형식,

무엇보다 저자가 소개하는 공간의 비밀이 가슴을 울리고 떨리게 해서,

읽기만 하고 보기만 하는데도 설레서,

그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특히 '무지(무인양품)' 편을 읽을 땐 어찌나 거부감이 들던지. ㅡㅡ;;


그렇다.

'설렘을 팝니다'는 일본 도쿄의 핫 스폿이라 불리는 곳을 소개하는 책이다.

일본산 불매운동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들어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나 스스로를 편협한 배타적 민족주의자라고 칭하는 순간이 바로 이럴 때.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한다니 잘 보고 배우자는 마음으로 보는데 이건 읽으면 읽을수록 빨려들어간다.

히야~ 감탄이 절로 나올 뿐.


식당인데 요리사가 사장이고 직원이 없다.

언제나 줄을 서서 밥을 먹어야 하는 곳이라 직원 대신 알바를 고용하는데

알바는 50분간 일하고 일한 댓가는 식당의 식권 한 장이 전부.

알바는 그 식권을 식당에 붙여놓고 가면 한 끼 식사가 필요한 누군가가 그 식권을 이용해 밥을 먹을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이란 거창한 말 따위 없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식당이라니.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노동을 통해 사장과 알바가 함께하니, 감동이 아니라 감탄이 나온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 한복판에서 방금 도정한 쌀을 파는 쌀가게,

3만엔짜리 멜론을 파는 과일가게,

감귤 주스를 맛에 따라(맛을 구분한 것도 쇼킹) 수도꼭지에서 따라 마시는 주스가게,

12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문구점까지.

나의 사고 범위에선 손익계산서가 나오지 않는 가게들이 '성공'이란 이름을 붙이고 도쿄에서 성업중이란다.


그들의 성공 비밀은, 물건을 팔지 않고 공간을 판다는것.

머물고 싶은 장소, 다시 찾고 싶은 장소를 만들되

본질은 버리지 않고 시대 흐름도 놓치지 않는 -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만들어낸 결과물.

그것을 보여준다.


나는 일본의 가업을 잇는 풍속이 부러웠다.

유명한 대기업을 다니던 자식이 아버지의 생선가게를 물려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

'설렘을 팝니다'에서도 이런 일본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은 가업을 잇는 경우가 드물다곤 하지만

드물게 이어지는 그들의 '자부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책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도쿄 핫 스팟 21곳을 소개한다니 여행관련 서적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경제, 경영서로 분류될, 설렘을 팝니다.

읽는 내내 나처럼 마음이 불편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읽어보라 추천하고픈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에 갇힌 소년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기억 전달자로 유명한 로이스 로리의 작품이다.

잔잔하고 따듯하고 포근하지만 마음이 아픈 소설.

새의 선물,

앵무새 죽이기,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성장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침묵에 갇힌 소년.


 

수두로 8살 생일 파티를 놓친 그 해가 캐티에겐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해로 기억에 남았다.

엄마는 동생을 낳았고,

그런 엄마를 돕기 위해 농장에서 페기가 캐티네 집으로 왔다.

캐티네 옆집에는 페기의 언니 넬이 먼저 일하고 있었고,

그들의 남동생 제이콥은 캐티네 말을 보러 몰래몰래 헛간에 나타나곤 했다.


제이콥은 절대 말을 하는 일이 없었고 사람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언제나 털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기분이 좋거나 좋지 않으면 몸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정신이상이라 불렀지만 제이콥이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제분소처럼 위험한 장소에서 조심조심 본인이 원하는 것을 지켜보는 법을 알고

말은 하지 않아도 듣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사람과 동물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세계에, 침묵에 갇힌 소년.


침묵에 갇힌 소년과 말 없이 마음을 주고받게 된 캐티는 그가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을 알게 된다.

새끼 고양이를 사랑하는 방식과 새끼 양을 사랑하는 방식.

모든 것이 망가진 그날 밤.

제이콥이 한 일은 새끼 양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쁜 일이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침묵에 갇힌 소년은 침묵에서 나올 수 없었고, 그의 맘을 아는 캐티는 고작 9살이었다.

캐티가 제이콥을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기껏해야  '모자를 벗기지 말아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화려한 언변은 진실이라 믿었던 사실마저 의심하게 만들고 침묵은 비겁함이나 용기없음으로 비춰지곤 한다.

'착한 마음씨' 가 중요하다면서도 착한 마음씨 보여줄 기회를 주지 않고 천천히 볼 생각도 없다.

누구보다 착한 마음씨를 가졌지만 드러낼 방법이 없었던 소년은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제분소에 불이 났을 때 범인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그는 사람들이 몰아가는대로 몰릴 뿐.


소설 '침묵에 갇힌 소년' 은 큰 주제의식을 갖고 쓴 소설은 아니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데 어리기까지 한 인물에 대한 강자와 사회의 폭력으로 몰고 가기엔 무리가 있음.

할머니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한 소년을 기억해내는 것이 전부인데

문제제기조차 못하는 소년, 소녀 이야기라서 맘이 아프고 쉽게 잊히질 않는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잔잔한 소설.

번역이 너무 매끄러워서 우리나라 작품 읽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혀 감동받았던, 침묵에 갇힌 소년.

출판사 에프에서 나오는 책은 전부 내 맘에 쏙 들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덕경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5
노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리와 철학'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학교 수업시간에 처음 만났는데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 떼로 나오고

차분히 설명해줘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핵심만 알려주곤 외우라더니 시험을 봤다.

쓰잘데기 없는 말장난질을 왜 이리 많이도 했냐고 투덜대던 기억 안에 그들이 있었다.

부정적인 기억 안의 그들을 나이 먹어 찬찬히 만나는 시간.

그 때도 이렇게 한 사람씩 알아갔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싶다가

나이 먹어서 보니 내 살아온 시간과 맞물려 더 좋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읽은 고전 철학, 노자의 도덕경이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던 중국의 역사 한가운데 노자가 있다.

도가 사상으로 알려졌으며 '무위자연'을 주장해 세상욕심 그득한 인위적인 모습을 버리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산 속에서 한가로이 장기두는 신선의 모습이 떠오르는 그것.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위적인 정치가의 모습을 버리라는 뜻이니

백성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위정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로 보는 게 이해하기 편하겠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도(道)경' 과 '덕(德)경' 두 개를 합쳐 도덕경이라 부른다는 것을.


도덕경을 모두 읽고나서도 '도'와 '덕'을 온전히 구분하진 못하겠다.

우리 귀에 익숙하고 한 눈에 쏙 들어와서 이해가 쉬웠던 부분이 '도경' 이라고만 받아들임. ㅎㅎㅎ


책 구성이 참 좋다.

제목 하나가 격언 그 자체고 아래에 원문을 그대로 썼다.

원문이 한자니 음을 달아 읽기 쉽게 해줬고 한자풀이는 별도로 써주심.

그리고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적용하면 좋을지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의 개념이 아니라 소제목만 봐도 되는 편안한(?) 독서환경을 제공한다.                     


책 구성이 너무 좋아서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읽을 수 있고 어지간한 자기계발서보다 300배는 유용하겠다.

굳이 책 전부를 읽지 않고 제목만 훑어봐도 삶이 충분히 윤택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함.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계속 불지 않고 소나기는 종일토록 내리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총명한 자다."

"가장 커다란 명예는 명예가 없는 것이다."

"진실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성이 없다."


이것은 흡사 명언집.


깊이 보자면 어렵기 끝이 없지만 노자의 가르침대로 욕심없이 보자면 만족도 최고인, 도덕경.

고전을 읽으면 뿌듯함은 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몬스트리스 1 - 깨어남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저리 류 지음, 사나 타케다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만화책이라 부르고 그들은 그래픽 노블이라 부르는 책, 몬스트리스.

확실히 만화책보다 글이 많다.

글이 많아야 되서 그랬나, 책이 크다.

만화책(자꾸 이렇게 불러서 미안~ ^^;;)류 즐기지 않는데, 요건 맘에 들었음.



 

이건 작가에 대해 알고나서 읽으면 더 좋겠다.

사전 지식 없이 읽으면서 '과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작품의 배경을 알면서 이해된 내 경험에 비춘 조언. ㅎㅎㅎ


작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중국과 일본의 신화와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몬스트리스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들의 신화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역사는 우리와 많은 부분이 겹치지 않는가.

내가 '과하다'고 느꼈던 장면들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난징대학살과 생체실험을 모티브로 했던 모양이다.

총을 옆에 두고 검으로 서로 사람을 죽이겠다고 경쟁하는 일본군의 사진이 남아있는 그 사건. 

난징(남경)의 60만 인구가 6주 후에 30만으로 줄었다는 충격적인 학살의 현장처럼 몬스트리스도 잔혹하다.

인간과 동물의 잡종인 '아카닉'을 인간이 학살하고 생체실험에 이용하는데 일말의 미안함도 망설임도 없다, 그들처럼.


​인간과 아카닉(인간과 동물의 잡종)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불가사의한 힘의 발견과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

몬스트리스는 판타지지만 세밀하고 고급진 그림과 신화,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져 탄탄하다.

오히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쿠마에아라는 마녀 사제가 등장하고 교황이라는 이름의 지도자도 등장하는 것이

어마무시한 스케일을 예고하는 거 같아 웃음이 실실 나온다. ㅎㅎㅎㅎ (제대로 쓰인 판타지 은근 좋아함)

세계적인 상도 여럿 받았다고 하니 작품성은 확실히 보장받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