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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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쏙 빨아들이는 전개와 치밀한 구성, 충격적 반전, 혼을 뺄 듯한 스토리로 중무장한 소설은 재밌다.

빗발치는 총탄을 귀신같이 피하는 주인공은 따듯한 마음씨를 가졌고 인물도 훤칠하곤 한다.

이런 책은 읽을 땐 정신없이 재미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흥분했던 감정만 남지 내용이나 감동, 여운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일상의 평범함, 소박한 하루,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웃이 등장하는 소설은, 읽는 재미는 없어도 책을 덮은 후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기 쉽다.

소설 조선통신사가 그렇다.

흠뻑 빠져드는 재미는 없는데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느릿느릿, 더디게 조선통신사들의 이동 속도와 나의 책 읽는 속도가 엇비슷하다.

190여 일이 걸려 일본에 도착한 속도만큼. ^^;;


초반은 적응이 어렵다.

날짜 단위로 서술하는데 일지 정도의 분량과 내용을 담고 있다.

두 페이지에 3일치의 기록이 실리기도 했으니 의미없는 사무일지를 들여다보는 기분.

등장인물은 말도 못하게 많은데 그들의 구성이 내가 알던 것과 사뭇 달라 더욱 혼란스럽다.

내가 아는 조선시대 신분은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깔끔(?)하게 나누어 떨어지는데 조선통신사 안의 인물들은 경계가 모호하다. 

서얼이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순수혈통이 아니어서 이토록 업신여김을 당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높은 관리를 죽을 지도 모르는 뱃길에 보낼 리가 있느냐고 말할 정도로 조선통신사의 인물 구성은 예상 밖.


얼추 조선통신사들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책 읽는 속도가 붙는다.

배가 출항한 후로 짧은 일지가 긴 보고서 형태로 바뀌고 서술자가 등장하니 속도가 붙는 것도 같고. ㅎㅎㅎ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늘 통치자의 역사였다.

정치제도, 경제제도, 왕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백성의 실제 삶은 거의 모를 지경.

작가의 의도대로 소설 조선통신사는 잘나고 배불리 먹었던 왕후장상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까지 배 타고 가는 격군의 가족에게 제대로 된 급여가 아니라 환곡(갚아야 하는 쌀)을 주었던 비정한 현실,

그 앞에서도 비굴하거나 무너지지 않았던 그들은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1권 초반 가독성때문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나는 상당히 좋았던 책 조선통신사.

리뷰를 쓰려고 찬찬히 정리하니 김 훈의 칼의 노래가 떠오른다.

결국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이름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일반 사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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