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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갈라파고스 맞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펼치게 만든 장소,
핀치의 부리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군도의 갈라파고스 맞다.
때는 1986년.
13종의 핀치 새가 있다는 갈라파고스로 유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처음 계획은 유명 인사들을 가득 태운 초대형 선박이 화려하게 출항하는 것이었으나,
어쩌다보니,
진화게임(저자는 출산의 가능성을 이렇게 표현했다)에서 제외된 - 남편 잃은 과학 선생님과
털복숭이 딸을 낳을 만삭의 여인과
과학 선생님처럼 진화게임에서 제외된 암컷 안내견을 동반한 맹인 여자,
살아있는 것 말고는 인류의 발전에 어떤 것도 하지 않았으나 '아담'이 될 남자 - 선장이 떠나게 된다.
한 점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확산될 새로운(?) 인류 출현의 역사적인 현장.
3kg 이나 되도록 크고 문제만 일으키는 거추장스러운 뇌를 버리고
가진 도구라고는 이빨밖에 없는 자연순응적 생물체로 거듭 태어나는 출발점.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진리에 정면으로 맞선 진화론을 탄생시킨 갈라파고스에서,
공교롭게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환경에 맞춰 변화를 시작한다.
초반에 어찌나 힘들게 읽히는지 환장할 뻔.
그러다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10장에 하나씩 붙임딱지를 붙인 것만 같다.
중반 이후엔 포기.
저자의 비꼼이 어지나 세련되고 우회적인지, 표현 하나하나를 전부 잡아두고 싶었다.
"백만 년 전, 사람이 하던 일을 최대한 많이 기계에게 넘기려는 그 이해하기 힘든 열의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뇌가 전혀 쓸모없다고 다시 한번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었겠는가?" (49쪽)
저자(소설 속의 화자이기도 하다)는 시종일관 인간의 큰 뇌가 모든 것을 망친다고 말한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미치도록 좋아했다 돌아서서 싫어하는 두 개의 감정과 생각이 공존하며
속이고 거짓말에 능숙한 골칫덩어리.
기계문명을 선도해 자연을 파괴하면서 지구가 준 양분을 독점해 굶주림을 양산하게 하는 문제.
저자 커트 보니것은 문제의 큰 뇌를 쇼킹한 방법으로 처리한 후,
인간을 개체수 유지까지 자연에 맡기는 존재로 바꾼다.
그의 상상력에 기립박수를!!!!!
백만 년 후의 존재가 1986년의 일을 서술하는 방식도 맘에 든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툭툭 내던지는 시크한 말투.
어떤 대상도 비난하지 않는다.
오로지 비꼼과 이해(?)만 있다.
전체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데
각 인물의 이야기까지 개별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방식이라 혼란스럽게 느낄 수도 있겠다.
나는 너무 좋았음.
특히 일찌감치 죽는 인물한테는 특별히(?) 별표를 붙여줘서 읽는데 편의(?)를 제공해주는 센스라니. ㅎㅎㅎㅎㅎㅎ
기발한 상상력과 삐딱한 시선, 친절한듯 후려치는 말투까지 맘에 쏙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