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박정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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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 표지.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 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책을 덮을 땐, 이 말에 공감 정도가 아니라 죄송한 마음에 가슴이 아릴 정도다.

이런 분을 나는 왜 몰랐고, 우리는 왜 들춰내지 않았을까?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화폐에 얼굴 넣을 여성으로 거론될 사람이라곤 유관순과 신사임당이 전부(?)고

그나마도 현모양처로 그려진 신사임당의 낙점으로 묘한 씁쓸함을 안겨줬던 기억이 떠오른다.

'함께 살자'는 얘기를 '편 나눠 싸우다 죽자'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함께 떠오르누나.


'이이효재'라는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 부모의 성을 다 사용하는 것 맞다.

부모님 모두 이씨 성이라 두 개의 '이'를 모두 사용하는, 1924년생 할머니가 바로 이이효재다.

일제감정기에 태어나 굴곡진 한국 역사와 함께 살아온 사람.

사회학 불모지의 땅에서 사회학을 뿌리내리게 하고 그 안에서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학자면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


한국현대사는 우여곡절 투성이다.

일제강점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내걸던 것을 시작으로

남과 북이 분단되어 전쟁하는 고통을 거쳐

군사 쿠데타로 유신헌법이 등장하고

인권을 찾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역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 우여곡절의 현장 모든 곳에 함께 했던 이이효재는 그 안에서 인간답지 못한 여성의 삶을 보게 된다.

그리고 외치게 된 "여성의 인간화" (124쪽).


여성은 한국 경제를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지만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었고,

여성의 예속과 희생에 기반을 둔 보수적 가족주의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남녀 차별적 가부장주의는 여성 노동자들을 남성 노동자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노동자로 묶어두는 근거를 제공했다. (142쪽)

그리하여, 가정 안에서 불평등한 구조 개선을 위해 부모 성을 동시에 쓰는 운동을 펼치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움직임을 일으킨다.

똑같이 근무해도 남성에 비해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정년을 25세로 규정한(법적 근거도 없이) 판례를 깨기 위해 함께 싸운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해방운동이란 이름으로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정권은 기존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것은 공산당, 빨갱이로 몰아갔기 때문.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고 경찰의 수배를 받기도 하며 이이효재는 엄혹한 시대의 리더로 자리매김한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영웅(?)이 만들어지던 시대에 영웅적 삶을 살았으나 알려지지 않은 존재.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발벗고 나서 분명 '민주화'를 이뤘는데 정치적인 분야만 중요하다 평가한다.

어린 아이도, 여성도, 남성도, 청년도, 노인도, 장애인도, 외국인 노동자도 모두모두

인간답게 존중받고 인간대접을 받는 것이 민주적인 것 아닐까?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하지 않던 시절에 온 세상을 상대로 문제를 지적하고 바꿔나가려던 용기를 가진 사람, 이이효재.

책을 보는 내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시종일관 침착한 어조를 잃지 않는다.

​유혈이 낭자한 시대인데 평온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분의 삶이 이러한 모양이다.

자신의 눈에 보인 의문을 풀어간 -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선생일 뿐 투사가 아니라고 믿은 삶.


이런 분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다는 게 얼마나 죄스러웠나 모르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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