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은 잡으면 이틀 안에 읽는 편이다.

초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아부으니 소설 시작하는 게 살짝 두려움.

혹여나 읽기 시작했는데 진지한 내용이면 망(?)하니깐. ㅡㅡ;;


경애의 마음이 그렇게 망한 책.

아주 오랜 시간,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급 읽기 속도였음.

그리고 지금부터 김금희님 소설을 찾아서 읽기로 결정.



 

경애의 마음을 읽어내는 속도는 그리스인 조르바였으나,

책을 덮으며 느낀 감정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 급이었다.

클라이막스 없이 덤덤하게 읊조리는 이야기.

가끔은 답답해서 가슴에 천불나게 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내 안에 숨겨진 내 모습과 너무도 닮은 그들.


잘 나갔던 아버지 덕분에 낙하산으로 취직한 미싱회사.

회식할 때 경애를 챙기는 걸 보면 사회생활 좀 알고 싹싹한 사람 같으나,

팀원 없는 팀장 발령을 받고, 실적이 없어 눈총받으면서도 당당하게 회사 다니는 걸 보면 실없는 사람같은 상수.


회사 파업 때 삭발을 하고,

책상을 차지하고 앉았지만 딱히 업무도 없는 회사를 묵묵히 다니는 걸 보면 당참이 하늘을 찌를 것 같으나,

떠나버린 옛 애인을 떨쳐내지 못해 질질 달고 다니는 질척, 답답 캐릭터 경애.


사양길로 접어든 미싱회사의 골칫덩이 경애와 상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 팀이 되고 베트남 발령을 받는다.

불의를 보면 우선 발끈하는 경애와,

불의를 봐도 일단 눈 한 번 감는 상수가 함께 걷는 길.

과거는 '은총'이로 연결되어 있고, 현재는 '언니는 죄가 없다' 사이트로 연결되어 각별하지만,

그 각별한 관계를 알고도 둘의 거리는 크게 좁혀지지 않는다.


마음을 열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사람들.

공적인 자리에선 강하지만 외로움을 처리하지 못해 한없이 나약해지는 사람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현재를 지키기 위해 쉽게 거짓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내느니 자연스럽게 때가 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사람들.

수많은 인간 군상이 아니라 상처받고 웅크린 '나' 의 모습이 그 안에 있다.


남자 주인공이지만 여성스럽기 짝이 없는 상수와,

여자 주인공이지만 남성스럽기 짝이 없는 경애를 통해 '사람' 그 자체의 모습에 촛점을 맞춘, 경애의 마음.

결국 둘은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는 해피엔딩. (해피엔딩은 해피엔딩인데 왜 해피 느낌이 아닌가........ ^^;;)


350쪽짜리 장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호흡으로 마무리.

의미없이 주고받는 대화로 달라진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섬세한 표현력.

피식, 웃음을 흘리게 만드는 위트있는 문체.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특별한 애정을 느낄 수 없게 만든 객관성 최고의 창조자.

무엇보다 '삭발 경애'와 '언니 상수'로 대변할 수 있는 중성적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는 거.


읽는 내내 힘들었지만 참 좋았다, 경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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