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문장 🌱
미시마의 문장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난해하고 관념적이어서, 번역하고 교정하면서 육체노동도 아닌데 온몸이 녹초가 되곤 합니다.
S에게 미시마 문장이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글을 대단히 어렵게 쓴다, 글을 대단히 잘 쓴다, 외국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일 거다, 라고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글이 대단히 논리적이고 치밀하다, 마치 눈앞에서 사물을 보고 있는 듯이 문장이 생생하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미시마의 소설을 번역한 어느 프랑스 번역가가, 미시마를 번역하는 작업은 마치 모자이크를 맞춰가는 것 같다고 했어요. 서양 언어 번역가인데도 정말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했습니다.
보통의 번역 작업이 돌담을 쌓아가는 작업이라고 하면 미시마의 문장은 모자이크나 직소 퍼즐을 맞추는 듯한 느낌입니다. 모서리가 딱딱 들어맞지 않는 돌을 쌓아올리려면 번역가가 어떤 식으로든 군데군데 틈을 메워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시마의 문장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만큼 논리적이고 철저하고 치밀한데, 그런 의미에서 번역가에게는 더없이 이상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독하는 범위는 저마다의 역량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요.
미시마의 문장에는 굉장히 어려운 어휘나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많습니다. 소세키야 메이지 작가니까 그렇다 쳐도, 미시마 같은 전후 작가의 경우에는 보기 드물어요. 인쇄소에 없는 한자가 많아 인쇄소로 3번 정도 원고를 주고받고 하면서 새로 활자를 만들 때까지 기다렸다고 해요.
이렇게 문장에 철저한 미시마였지만, 서양에서 발표된 기사나 인터뷰를 읽어보면 정작 자신의 작품 번역서에는 아주 관대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오역이 있었는데, 그렇게 읽을 수도 있군요 하며 호탕하게 웃어 넘겼다고 해요)
하지만 아마도 그건 서양 언어로 된 번역을 염두에 둔 거라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서양의 언어로 일본어를 의미 전달을 넘어서 문장의 맛까지 살려 번역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거예요. 소세키가 생전에 <풀베개> 번역을 허락하지 않은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풀베개> 같은 시적인 문장으로 쓰인 소설을 문장의 맛까지 살려 번역하긴 불가능해요. 하지만 전 우리말 번역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서양 언어에 비하면, 의미 전달만이 아닌 작가 고유의 문장과 어휘의 맛을 어느 정도까지는 음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시마가 생전에 미국에서 인터뷰한 기사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어요.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어려운 한자를 왜 쓰냐고 물었더니, ‘장미’를 한자로 쓰면서 이 글자를 보라고, 글자 자체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장미가 느껴지지 않냐고, 그래서 이 한자를 쓴다고 했어요.

요즘은 일본에서도 ‘장미’를 쓸 때는 간단히 히라가나로 쓰지만, 말의 소리, 글자의 모양 하나하나까지 철저했던 미시마라는 작가를 조금은 알 수 있는 에피소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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