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구라(忠臣蔵)'는 억울하게 죽은 주군을 대신해 복수를 하는 47명의 가신(家臣)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이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좀 챙겨보는 이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인데, 이걸 극화한 것이 무척 많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추신구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신선조(新選組)'이야기 또한 문학과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졌다. 특히 2004년에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는 젊은 세대의 관객들에게 신선조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사와시마 타다시 감독의 '신선조(Shinsengumi, 1969)'는 막부 말기 쇼군의 친위 부대였던 신선조의 결성과 몰락의 과정을 그린다. 신선조를 이끌었던 콘도 이사미 역은 당시 일본 영화의 간판 스타였던 미후네 토시로가 맡았다. 그는 제작자로도 참여했으므로 영화는 사실상 미후네 토시로가 지배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해 낸다. '신선조'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잘 정리된 자료들이 많으므로 참조하면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된다. 막부 말기, 교토는 천황을 옹립해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파와 쇼군을 지켜야 한다는 막부파가 대립하는 혼란스런 격전지였다. 신선조는 쇼군을 호위하기 위한 하급 무사들의 집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무사들 뿐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콘도 이사미 또한 농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농 집안 출신으로 일반 농민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신선조를 이끌었던 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막부의 시각에서 봤을 때, 신선조의 존재는 적당히 써먹고 버려도 좋은 '사냥개' 정도의 의미였을 것이다. 진짜로 신선조가 했던 일은 그러했다. 존왕양이파를 주도했던 초슈 번과 그 일당들에 대한 가차없는 암살과 처단으로 신선조는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미후네 토시로가 연기한 콘도 이사미는 쇼군과 막부를 옹호하는 신선조의 수장이다. 농민 출신인 그가 처음부터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선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신선조의 첫 수장이었던 세리자와의 알콜 중독과 상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를 보여준다. 신선조는 초창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후원이고, 나쁘게 말하면 상인들에게 '삥'을 뜯어야 했는데 상인들 입장에서는 막부파와 천황파 사이에서 줄타는 것이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세리자와는 자신의 무력을 너무 함부로 휘둘렀으므로 곧 제거의 대상이 된다. 콘도 이사미는 결격 사유를 지닌 전임자와 그 일파를 제거하고 정당한 수장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신선조를 이끌며 천황파의 막부 타도 음모를 분쇄하는데, 미후네 토시로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연기한다. 특히 존왕양이파들의 회합 장소를 습격해서 처단한 이케다야 사건 장면은 비좁은 공간에서의 처절한 결투를 잘 보여준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막부의 인정을 받고 잘 나가는 신선조에도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엄격한 규율의 적용과 반복되는 살상행위에 회의를 느끼는 신선조원들. 그들은 자신들이 피에 굶주린 막부의 개가 아니라며 항변한다. 그렇게 나가는 이탈자들에게 자비란 없다. 그러나 콘도 이사미는 그들에 대한 무자비한 처단을 명령하는 악역으로 비춰지지는 않는다. 그는 어디까지나 중용의 미덕을 지닌 인물로, 신선조의 엄혹한 교조주의적 입장을 대변하는 히치카타가 기꺼이 악역을 대신한다. 아무튼 미후네 토시로는 자신이 돈 들여 만든 영화에서 나쁜 모습은 하나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런 시대극에서 여성 캐릭터는 별로 말할 거리가 없다. 대의를 위해 자신과 어린 딸을 놔두고 떠나는 남편에게 '결심한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하는 콘도 이사미의 아내, 언제든 쉴 수 있는 안식처로 평생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게이샤 연인은 그저 영화 속 악세사리일 뿐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시의 그런 역사적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민중의 삶이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것이었다. 여성의 삶은 더 어려웠다. 결국 남편의 죽음을 마주하거나(콘도 이사미의 아내), 연인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거나(게이샤의 여동생), 기약없이 만날 날을 기다리는(신선조원 오키타의 정인) 일이 그들의 몫이었다.

  막부가 천황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 이후에도 신선조는 끝까지 저항한다. 쇼군의 친위부대에서 하루아침에 반란군이 되어버린 신선조. 그들이 근대 일본 탄생의 걸림돌에서 무사도의 화신으로 변모하는 과정의 열쇠는 신선조의 부대 깃발에 새겨진 '마코토(誠)'에서 찾을 수 있다. 극중 콘도 이사미는 몰락해 가는 막부의 모습을 목도하고도 신선조로서 '마코토'의 마음가짐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신선조를 수구 권력의 시대착오적 저항의 이미지가 아닌, 격동의 시대에 충심을 다한 무사의 후광을 씌운다. 일본 시대극(時代劇) 영화, 그리고 미후네 토시로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놓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신선조의 백과 사전 항목을 보는 듯한 밋밋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과 한 집단의 흥망성쇠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사진 출처: zh.wikipedia.or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외의 다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마치 패키지로 보이는 다큐들이 있다. 산악 다큐인 'Free Solo(2018)', 'Meru(2015)', 그리고 'Man on Wire(2008)'.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암벽산 엘 캐피탄(El Capitan)을 맨손으로 등반한 알렉스 호놀드의 이야기를 담은 'Free Solo'는 정말이지 나름의 충격 같은 것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도전의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 호놀드가 엘 캐피탄 등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도전하다 사망한 동료 산악인들 소식을 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로 그가 하는 일이 목숨을 걸고 할 만한 일일까? 호놀드와 비슷하게 목숨을 걸고 도전을 했던 이가 있었다. James Marsh의 2008년작 다큐 'Man on Wire'는 1974년에 뉴욕 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빌딩에서 외줄타기 도전을 시도한 필립 프티트(Philippe Petit)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큐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프티트와 당시에 프티트의 도전을 도왔던 이들의 증언, 기록 영상과 사진, 재연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티트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층 빌딩에서 외줄타기를 선보인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17살 때 세계 무역 센터의 착공 소식을 읽은 후 당시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로 기록될 그 곳에 매료되었다. 저글링과 줄타기 같은 거리 공연을 하며 자신만의 외줄타기(high-wire walk) 기술을 연마해 나갔다.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선보인 외줄타기 공연의 성공으로 그는 고무되어 있었다. 물론 그런 시도 자체는 모두 허가받지 않은 것이었고, 매번 체포되어 일시적인 구금을 겪어야 했다. 마침내, 프티트는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꿈에 도전한다.

  영웅 신화에서 영웅이 조력자 없이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결같은 정서적 지지를 보낸 여자 친구 애니, 사진 작가, 자금 담당, 장비 설치를 돕는 이들... 모두 다 프티트가 가진 열정과 놀라운 재능에 사로잡힌 이들이었다. 이미 성공한 모험이었음에도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전이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프티트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릴 터였다.

  어쨌든 이 20세기 돈키호테 필립 프티트는 무작정 창 하나 들고 풍차에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가 가진 재능은 단지 외줄타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놀라운 집중력과 실행력까지 갖추었다는 점에 있었다. 프티트는 자신이 도전할 빌딩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철저히 조사했다. 헬리콥터 빌려서 항공 사진으로 빌딩 외부를 촬영했고, 빌딩의 구조적 측면을 알아내기 위해 가짜 기자로 위장하고 건축가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했다. 당시에도 세계 무역 센터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으므로 필요한 신분증을 위조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프티트와 친구들은 여러 시일에 걸쳐 필요한 장비들을 빌딩 최상층부까지 나르고,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외줄에 몸을 맡기고 세계 최고층 빌딩 사이를 여러 번 왕복했다. 당시의 장면은 스틸 사진으로 제시되는데, 그 사진 속의 프티트는 충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장면은 관객들이 그를 외줄타기 모험가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이후에 예술가의 정체성을 갖고 high-wire walk에 대한 공연을 이어갔다. 24살에 달성한 위업은 그를 단번에 유명인사로 만든다. 프티트는 온갖 찬사와 각광을 받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조력자들에게 인간적인 신의는 갖추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큐는 프티트가 가진 인간적 약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유명세를 즐기던 프티트는 미국에 정착했다.

  다큐의 마지막은 희끗희끗한 머리의, 살이 붙은 중년의 프티트가 잔디밭에서 외줄타기 연습을 하면서 들려주는 조언으로 마무리 된다.

  "인생이란 벼랑 끝에 선 것과 같아요... 당신을 얽어맨 규칙, 성공, 반복되는 일상에 저항해야 합니다. 도전만이 살 길이에요. 당신은 당신 삶의 외줄을 타야하는 겁니다."

  아, 그냥 한숨이 나왔다. 저런 사람이나 되니까 저렇게 살아가지,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재능이 없는 열정은 무모한 시도를 반복하게 할 뿐이며, 결국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에 접어들 뿐이다. 내가 너무 늙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런 다큐를 보고나면 그냥 심드렁해진다. 어쩌면 이 다큐는 그저 1시간 34분 동안 감자칩을 먹으며 시간 때우기 좋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같다. 상업 영화적 감각이 뛰어난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 2015)'로 만들어 냈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인생, 필립 프티트는 그렇게 자신의 전기 다큐와 영화 작품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 출처: ny.curbed.com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얄라알라 2021-08-19 00:09   좋아요 0 | URL
푸른별님, 저는 Philippe Petit 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십수 번 외울만큼 읽다보니 이 분이 제 기억에는 젊은 모습 그대로 콕 박혀 있어요. 중년의 그가 외줄타기 하며, 저런 지혜로운 이야기를 전하다니! 다큐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푸른별 2021-08-19 23:20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이 다큐도 나름대로 재밌습니다.
 


  외신에서 아주 가끔씩 스페인의 바스크 분리 독립 운동과 관련된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스페인의 오랜 지역적 정서와 결합된 일부 극렬 정치집단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아마도 스페인 근현대사에서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약간만 알고 있는 정도의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대부분 그렇게 여길 것이다. 훌리오 메뎀 감독의 1991년작 'Vacas(Cows, 1991)'은 바스크 지방의 두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스페인 근현대사를 성찰한다. 영화는 4개의 챕터로 나누어 전개된다. 1. 1875년 3차 칼리스트 전쟁(The Third Carlist War), 2. 도끼(1905년), 3. 불타는 구덩이(1차 세계 대전), 4. 숲속의 전쟁(스페인 내전). 주인공 마누엘 역은 배우 까르멜로 고메즈가 맡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의 3대에 걸친 역을 소화해 낸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스페인 근대사의 칼리스트(카를로스파)들에 대한 개관적 지식이 필요하다. 1883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7세가 사망하자 3살된 딸 이세벨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이들이 왕실의 후손인 카를로스 백작을 왕위에 올리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무려 3차례에 걸친 칼리스트 전쟁은 스페인의 복잡한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 냈다. 결국 칼리스트들은 패배했지만, 바스크 지방의 칼리스트들은 바스크 자치주의를 주장하는 쪽으로 분화했다. 왕당파에서 반 공화주의, 극우 보수주의로 변화한 칼리스트은 스페인 내전에서는 프랑코 편에 선다. 프랑코가 그들이 원하는 자치권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칼리스트들을 경계하던 프랑코는 그들을 철저히 이용해먹고 탄압했다.

  영화 'Vacas'의 첫 장면은 도끼로 나무를 패는 남자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날이 바짝 선 도끼로 무지막지하게 나무를 찍어내리는 이 긴장감은 영화 내내 유지된다. 첫 번째 챕터는 3차 칼리스트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마누엘은 이웃 카르멜로를 전장에서 만난다. 총격으로 죽은 카르멜로의 피를 얼굴에 묻혀 죽은 척 했던 마누엘은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30년이 지나고 노인이 된 마누엘은 나무 쪼개기의 달인이 된 아들 이그나시오과 손녀딸들을 보며 노후를 보낸다. 그는 주로 소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소는 그가 전장에서 도망쳤을 때 숲에서 처음으로 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소는 음울한 기운을 내뿜으며, 피를 흘리고 있다. 소는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사건들의 말없는 목격자이다. 훌리오 메뎀은 '소'를 역사의 무심한 방관자로 설정한다.

  나무 쪼개기 달인으로 온 나라에 이름이 알려지는 이그나시오와는 달리 그에게 시합에서 패배한 이웃 카르멜로 집안의 후안은 더욱 적대적이 된다. 후안은 이그나시오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페루를 낳은 여동생 카탈리나에게 목숨의 위협을 가하며 근친상간까지 시도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두 집안을 얽어맨 감정의 골과 정신병적 징후는 정파들의 전쟁으로 얼룩진 스페인 근현대사의 단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배 계급의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암투는 민중의 삶을 뒤흔들고 망가뜨린다. 미국으로 떠난 페루는 사진 기자가 되어 고향을 찾지만, 마을의 숲은 내전의 전장터가 된다. 삼촌 후안은 칼리스트로 프랑코의 정부군에 합류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다. 마누엘을 불구로 만들었던 참혹한 전쟁의 그림자는 그렇게 스페인 내전까지 이어진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망치는 것 뿐이다. 유럽이 전쟁 중이던 시기에 이그나시오는 카탈리나와 미국으로 도망쳤고, 삼촌의 호의로 겨우 목숨을 건진 페루는 연인인 이복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프랑스로 갈 것을 생각한다.

  'Vacas'에서 '소'와 함께 또 다른 목격자로 등장하는 사물은 '사진기'이다. 마누엘은 사진기를 접하고 틈만 나면 가족과 숲속의 동식물을 카메라에 담는다. 비공식적으로 기록되는 민중의 역사, 마누엘의 손자 페루가 종군 사진 기자로 다시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페루는 마을 숲속의 전투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떤 면에서 훌리오 메뎀은 자신의 첫 장편 영화에 스페인의 근현대사에 대한 영화적 성찰을 남긴 셈이다.


  그가 바라본 스페인의 고통스런 역사는 뿌리깊은 적의와 불화에서 뻗어져 나온 병든 가지들이다. 훌리오 메뎀은 그 모든 것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죽어가는 것을 모두 삼켜버리는 숲속의 오래된 그루터기, 마누엘이 만든 붉은 모자(칼리스트들의 모자)를 쓴 죽음의 사신 허수아비가 휘두르는 길다란 낫, 영화는 그런 이미지들과 함께 소리에도 집중한다. 숲속 장면에서 들리는 사람의 거친 숨소리, 나무를 찍어내는 도끼 소리, 그 소리들은 관객을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때로 어떤 영화들은 우리가 잘 모르는 낯선 나라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Vacas'를 만나는 관객들은 훌리오 메뎀이 영화적으로 예리하게 절단한 스페인 역사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사진 출처: dvdbeaver.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글은 영화 'Hair(1979)'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1979년작 뮤지컬 영화 '헤어(Hair)'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Hair'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이 처음 상연된 것은 1968년, 영화 제작 당시 이미 1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원작 뮤지컬은 영화로 바뀌면서 주인공과 이야기 설정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 노래들도 편곡을 달리했고, 영화 버전에 새로 작곡된 곡을 넣기도 했다. 나중에 영화를 본 뮤지컬 제작자들은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 심지어 뮤지컬 '헤어'의 진정한 영화는 만들어진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확실히 영화의 인물 설정이나 이야기는 군데 군데 엉성한 부분이 보인다. 밀로스 포먼은 히피 문화에 중점을 두었던 뮤지컬과는 달리, 계급 문제와 반전 메시지에 좀 더 집중했다.

  원작 뮤지컬에서는 다 같은 히피 그룹 일원이었던 클로드와 쉴라가 영화에서는 떨어져 나온다. 클로드는 징집 영장을 받은 오클라호마 시골 청년, 쉴라는 상류층 여대생으로, 히피 그룹을 이끄는 리더는 버거가 된다. 클로드는 군사 훈련을 받기 전에 뉴욕 탐방에 나선다. 공원에서 말을 탄 쉴라를 보고 반한 클로드. 마침 그곳을 지나던 히피 무리는 클로드에게 함께 지낼 것을 권유한다. 리더 버거는 쉴라와 클로드를 이어주려고 쉴라의 무도회 데뷔 파티에 클로드를 데려간다. 환영받지 못하는 히피들은 파티를 헤집어 놓고, 그들은 즉결 심판에 넘겨진다. 겨우 벌금을 내고 풀려난 클로드는 네바다의 훈련소로 향한다.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변한다. 쉴라는 클로드가 보낸 편지를 버거에게 보여주고, 그들은 클로드를 만나기 위해 함께 네바다로 떠나는데...

  뮤지컬 영화 답게 대사가 좀 나온다 싶으면 노래가 이어진다. 영화의 첫 뮤지컬 넘버인 'Aquarius(물병자리)'부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래하는 흑인 여가수를 보여주는 트래킹 쇼트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좀 촌스럽게도 보인다. 요즘 영화에서는 레일 깔아놓고 빙빙 돌아가면서 찍는 장면은 거의 못본 것 같은데, 아무튼 밀로스 포먼은 현란한 트래킹 쇼트와 잘 짜여진 안무로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다. 초반부에 나오는 넘버들은 대부분 히피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Black Boys'와 'White Boys'의 외설스런 가사들, 버거가 쉴라의 집 파티장에서 부르는 'I Got Life'와 유치장에서 머리를 자르라는 지시에 거부하면서 부르는 'Hair'는 '히피란 이런 사람들이다'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한 명의 흑인과 세 명의 백인으로 이루어진 버거의 히피 무리에서 유일한 여성인 지니는 임신을 했는데, 애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LSD를 신성한 성체 받아모시듯 먹고 약에 취하는 너절한 히피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반문화 운동의 실체를 짐작케 한다. 마치 출구없는 일탈에 빠져든 히피들의 문화는 '베트남전'이라는 시대 상황과 만나면서 '반전(反戰) 운동'으로 발화한다.   

  버거는 쉴라의 파티에 모인 상류층 사람들에게 당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클로드가 전쟁터에 간다며 고마워하라고 소리친다. 포먼은 영화의 후반부를 클로드의 훈련소 장면으로 채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나가야 하는 클로드는 지독한 군사 훈련을 받는다. 꽃을 들고 노래하며 아무리 평화를 외친다 해도,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 권력은 젊은이들을 군인의 삶으로 강제한다. 훈련소 밖에서 클로드를 쉴라와 만나게 해주기 위해 클로드의 군복을 입고 있었던 버거는 갑작스런 명령에 따라 수송기에 실려 떠난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관객들은 묘지의 비석에서 버거의 이름을 보게 된다. 국가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군가 남아있다면 대신 전장으로 떠나야 했던 누군가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영화 'Hair'가 히피 문화와 베트남전의 시대적 종착지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갖는 의미는 바로 그 반전 메시지에 있을 것이다.

  9.11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20년만에 끝이 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아프간에서 뼈아픈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본 뉴스에서 탈레반은 카불 점령을 공식화하고 자신들을 아프간의 지배자로 선언했다. 이제는 오래된 구닥다리 영화처럼 보이는 'Hair'의 마지막 묘지 장면이 그토록 통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전쟁의 본질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곡 'Let The Sunshine In'에서 군중들이 외쳤던 평화의 햇살이 쏟아지는 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사진 출처: medium.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930년대 일본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뭔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수탈로 고통받는 시기인데, 영화 속 일본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또한 메이지 유신으로 일찍부터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 사회의 모습이 꽤 서구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37년작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淑女は何を忘れたか, What Did the Lady Forget?)'에서도 당시 일본이 구가한 물질적 풍요의 단면을 보게 된다. 영화는 대학 교수 미야와 아내 토키코, 그리고 부부의 자유분방한 조카 세츠코가 만들어내는 집안의 소동을 코믹한 터치로 담아낸다.

  학교에서는 근엄한 교수이지만, 집에서는 깐깐한 아내에게 눌려 지내는 미야에게 오사카의 조카 세츠코가 찾아온다. 이 조카는 담배도 피우고 운전도 할 줄 알며, 술도 잘 마신다. 숙모 토키코는 세츠코가 아직 성년의 나이가 되지 않았다며, 그런 조카를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도쿄에 온 김에 실컷 놀고 싶은 세츠코는 골프 여행을 간다던 삼촌을 꼬드겨 게이샤들이 있는 술집에서 진창 퍼마신다. 술에 취해 돌아온 세츠코를 토키코는 나무라지만, 세츠코는 무시해 버린다. 한편 미야는 제자 오카다의 집에서 뭉개면서 아내의 간섭 없는 주말을 보내지만, 그의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난다. 제멋대로인 조카와 남편의 거짓말에 화가 난 토키코는 남편을 몰아붙인다. 세츠코는 삼촌에게 남자의 강한 모습을 보이라며 충동질하고, 마침내 미야는 아내에게 반기를 드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세대 간의 갈등이다. 오즈가 그려내는 신세대 여성은 세츠코가 대표한다. 멋진 양장을 한 세츠코는 모든 것에 솔직하고 거리낌이 없다. 세츠코는 삼촌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운다. 게이샤들의 공연을 관람하며 술을 마시는 세츠코의 모습은 젊은 남성처럼 보일 정도다. 자신의 물건을 게이샤들에게 선물로 주고, 술을 더 따르라며 호기를 부린다. 집에 온 삼촌의 제자 오카다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도 안다. 이 여성에게 숙모 토키코의 모든 것은 답답하고 억압적으로 보인다.

  토키코는 부잣집 마나님의 위세를 보여준다. 부를 때 대답을 잘 하지 않는 하녀에게 대답 똑바로 하라고 매번 주의를 준다. 돈깨나 있는 친구들 불러서 차마시고 노닥거리는 것이 토키코의 일상이다. 그들 사이의 대화는 서로의 외모와 차림새에 대한 은밀한 허세와 질투가 깔려 있다. 말 잘 들어주는 남편처럼 조카도 고분고분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먹히질 않는다. 게다가 남편은 그런 조카를 오냐오냐 하고 있다. 골프 여행 간다고 속이고는 어디서 뭘 했는지도 말을 안해주는 남편에게 화가 치미는데, 이 남편이 조카 앞에서 자신의 뺨을 때린다. 과연 오즈 야스지로는 이 명백한 폭력적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놀랍게도 토키코는 남편의 사과에 누그러진다. 게다가 남편의 손찌검은 애정의 표현이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말한다.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우리는 1937년에 만든 영화를 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만 한다.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후기 영화들에서 보이는 여러 주제들과 촬영 기법들의 원형을 담고 있다. 세츠코와 토키코로 대비되는 신구 세대의 서로 다른 가치관은 미야의 제자 오카다와 어린 과외 학생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카다는 토키코의 부탁으로 토키코 친구 아들의 수학을 가르치게 되는데, 중학교 수학 문제에도 쩔쩔매서 아이들에게 대학 나온 거 맞냐는 놀림을 당한다. 이 어린 악동들은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즈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세대간의 갈등, 그리고 낮은 각도로 바닥에 카메라를 놓고 찍는 것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렇게 찍은 쇼트에서 인물의 얼굴이 잘리게 보이는 것도 오즈는 신경쓰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정교한 탐구를 비롯해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팬이라면 흥미있게 볼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밋밋하며, 현대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뺨을 맞은 아내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한다.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남편은 겉으로는 사과했지만, 부부 사이의 주도권을 되찾아왔다는 데에 나름의 만족감을 느낀다. 이 남편은 조카에게도 부부 사이는 솔직한 진심보다는 속내를 숨기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수긍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츠코는 오카다에게 자신들이 결혼하게 되면 그렇게는 못살 것 같다고 말한다. 어쨌든 미야와 토키코 부부의 애정은 깊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평온한 밤을 맞이하는 부부의 만족스런 표정을 보여준다. 차례차례 꺼지는 집안의 불빛 속에 고요한 침묵이 자리한다. 그렇게 부르주아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이 평화가 곧 깨진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다. 1937년, 일본은 중일 전쟁에 돌입한다.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끌려갈 것이며, 세대간의 갈등은 더욱 격화될 터였다. 그런 면에서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는 본격적인 전쟁의 광기에 일본 사회가 휩쓸리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한 스냅 사진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다음 글은 월요일에 올라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