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당신은 말야
틈이 없어
비루한 이 몸으로는
삐기고 들어갈 수
없어 그래서
바늘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지

당신도 인간이니까
어쨌든 틈이 있을 거
아냐 바늘이 되어
들어가면 콕콕
찔러줄 테야

작게나마 비명을
지르기나 할까
당신은 이기적이고
냉정하지 좀
재수가 없어

바늘 따위 똑,
하고 분질러 버리는
철벽의 유전자
무작정 비참하더군

포대자루 감자칩 한 봉지
식탁에서 삭제시켰지
그제서야 알았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인생의 허기였어

부러진 바늘 하나
마음에 품고
잠을 청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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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비


직박구리 새끼들은
벚꽃잎을 쥐어뜯는다
그게 단맛이 나는지

검은 얼룩무늬의
고양이는 천천히
빗속을 팔자 좋게
뱃살이 늘어졌구나

젊은 시절에
풍을 맞아
왼쪽이 마비된
여자는 늘 걷는다
비 오는 날에도

나이 들기 전에
결혼은 꼭 해야 해
여자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여자에게는
남편과 아이가 있다
그래서 행복한가
물어본 적은 없다

우비를 쓴 야쿠르트
아줌마는 한창
장사 중이다
자폐증을 앓는
중학생 아들
엄마를 보며
맑게 웃는

개나리는 아무리
봐도 볼품없어
목련은 금세
스러지지
가여운 모든
봄날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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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막이


바람막이가
갑옷 같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그래서
열심히 모았었지
딱지와 구슬
모으듯

더워지는 지구
바람막이를 입을
봄날은 며칠 되지도
않아 열 벌이 넘는
바람막이는
옷장에서
스러지는 중이지

입지도 못할
바람막이
써먹지도 못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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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아주 오래전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어

욕설에 반말에
사회의 밑바닥
거지 같은 것들이
몰려들더군

지들이 괴롭고
힘든 걸
분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야

콜센터는
우리 사회의
하수종말처리장이지

생쥐의 꼬리를
늘어뜨린
예의 없는 것들
존중이 어디 있어

아직도 그때 들은
욕이 기억나
실실 처웃으면서
그놈은 밥이나
먹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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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白日場)의 시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백일장에서
시를 써서
은상을 탔다
63빌딩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그래서 63빌딩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백일장 같은 시를
쓰는군

그게 무슨 뜻이야?

널 조롱하는 거지

그러는 넌
백일장에
당선이나 되어봤니?
백일장의 시가
뭔지나 알아?

오래전 기억 속
백일장의 시는
남루한 연인이지
두 눈을 잃은
그렇지만
버릴 수 없는

시간의 물음표
불운을 견뎌낸
두 눈을 다시
뜨게 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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