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일상입니다. 그는 TV 속의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죠. 식사 시간이 되면 찬장에 있는 냉동식품을 꺼내어서 전자레인지에 넣습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그 음식을 먹구요. 문득 외로움이 몰려옵니다. 그는 자기 아파트 건너편 집을 바라봅니다.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네, 그들은 연인입니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아있지요. 그는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서 얼른 리모컨을 집어서 TV를 켭니다. 이리저리 돌리다가, 신기한 물건에 눈길이 갑니다. 로봇이네요. 말하고 미소를 짓는 로봇 말입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로봇 조립 세트를 주문합니다.

  Pablo Berger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Robot Dreams(2023)'의 시작은 그러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대사가 없어요. 감탄사와 효과음은 있지요. 아, 음악이 정말 좋습니다. 영화 내내 미국의 팝 그룹 Earth, Wind & Fire의 명곡 'September'가 흐릅니다.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곡이에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인 Dog와 로봇에게도 말입니다. 주인공이 정말로 Dog가 맞냐고요? 맞아요. 주인공은 'Dog', 달리 이름이 없어요.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애니메이션은 개와 로봇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개는 집으로 배달된 로봇 조립 세트를 완성합니다. 로봇은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하지요. 개와 로봇은 이제 일상을 함께 하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가 됩니다. 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Setember를 로봇이 좋아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함께 길을 걷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죠. 여름이 오자, 개는 로봇을 해변으로 데려갑니다. 수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 그런데 로봇이 좀 이상합니다. 움직이질 않아요. 그래요, 금속으로 만들어진 로봇의 몸에 물이 들어가서 녹이 슬어버린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개는 로봇을 해변가에 두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있잖아요.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개는 해변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여름에만 잠시 개방되는 그 해변은 그날부터 폐쇄되었습니다. 내년 여름에 문을 연다는군요. 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래밭에 파묻혀있는 로봇을 구하려고 합니다. 시청에 민원도 내지만 소용이 없어요. 로봇을 만나려면 1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목 'Robot Dreams'는 로봇이 꾸는 꿈을 의미합니다. 말하고 생각하는 로봇인데, 꿈이라고 해서 못 꾸겠어요?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 잠깐씩 눈을 뜨던 로봇은 꿈을 꿉니다. 다시 개를 만나게 되는 꿈이요. 로봇의 꿈속에서 개는 로봇을 잊고 잘 사는 것처럼 보여요. 로봇은 슬픔과 불안함을 느끼죠.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로봇의 꿈과는 달리 개는 잘 지내지 못해요.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여행도 하지만 개의 머릿속에는 늘 로봇이 있어요.

  마침내 개가 간절히 기다리는 그날이 왔습니다. 해변이 다시 문을 여는 날이지요. 개는 바람처럼 빠르게 그곳으로 달려가지만, 거기엔 로봇이 없어요. 로봇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로봇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요. 어떻게 하다 고물상에 팔려 간 로봇은 Rascal이란 이름의 너구리와 만나게 됩니다. 직업이 수리공인 너구리는 로봇을 정성스럽게 다시 조립합니다. 로봇은 다시 살아납니다. 로봇은 너구리와 친구가 되어 함께 지내지요.

  개에게도 새로운 로봇 친구가 생깁니다. 그렇게 개와 로봇은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요. 그런데 우연히, 로봇은 개를 보게 됩니다. 개는 새 친구 로봇과 길을 걷고 있었죠. 자, 로봇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개에게로 달려갈까요? 그런데 개의 옆에는 다른 로봇이 있잖아요. 개와 로봇, 둘은 어떻게 될까요?  

  'Robot Dreams'는 대사가 없지만, 아주 간결하게 정서를 전달합니다. 이 영화의 관객은 주인공 개와 로봇의 마음 속 깊이 빨려들어가게 되지요. 그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우리 인간과 다를 것이 없어요. 서로를 알아가고, 친밀해지는 관계. 인간인 우리가 그것을 우정이나 사랑이든, 그 무엇으로 부르든지 간에 말이지요.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 영화 '추억(The Way We Were, 1973)'이 떠오르더군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그 영화요. 서로 이질적인 배경의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둘은 헤어집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함께 했던 시간의 추억이 남아있겠지요. 영화의 우리말 제목 '추억'은 정말 잘 지었어요.

  개와 로봇이 서로 의지할 수 있었던 시간, 그 추억은 'September'라는 노래에 담겨있어요. 둘은 언제까지나 그 노래를 기억할 겁니다. 'Robot Dreams'는 보는 이에게 관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 과거의 추억에 현재의 시간이 겹겹이 층을 쌓아가며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꼭 그 추억의 누군가와 이어지지 못해도 괜찮아요. 지금, 여기, 내 곁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 테니까요.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arth, Wind & Fire의 히트곡 'September' 공식 뮤직 비디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s069dndI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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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재능


손을 꼽아 헤아려 보니
예술학교 졸업한 지
어느덧 열여섯 해

영화 공부 계속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타로 점집에서
키득거리던
1학년 애송이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이름을 들어보려 해도
흐린 날 아픈 귀에는
이명이 흐르고

누구는
밥벌이에 뼈를 깎고
또 누구는
몇 명이나 보았는지 모를
영화 한 편 찍고
그리고
일찍 세상을 뜬
멀고 먼 너도 있다

애매한 재능으로
경계를 기웃거리며
시간의 톱밥을
꾸역꾸역 삼키는
이른 봄날의 저녁

오랜 가려움증이 도진
왼쪽 목덜미를
긁으며 생각한다

그래도
미치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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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올 때


그러니까 말이죠
이야기가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그 언젠가

주술사의 말을
들었다

정해진 그때를
알지 못한다면
미당첨 복권 같은
신세겠지 작가란

실버 유모차를 몰고
등 굽은 노파 둘이
1등 당첨자 배출점
로또 복권방으로
들어간다

저 나이에 당첨이 되면
뭐하게 비뚤게 웃지만
새카만 선팅지의
유리창은
물욕의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그러는 넌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니

애달피 좇았으나
사라지는 연인의 그림자
결코 가질 수 없는

문드러진 발가락
주름에 파묻힌 눈
이제 이야기가 온다 한들
환대할 수 없으리
부서진 손톱으로
꾹꾹 눌러서
그 얼굴이라도 만져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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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엄마, 왜 티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렸어?

몰라

23-8은 얼마지?

글쎄다 그 답이
당최 생각이

엄마는 1부터 89번에 이르는
점을 잇는다
커다란 귀상어가
스르륵

얘야, 이건 무섭구나

엄마는 이제 
TV 속 트로트의 나라로

쟤가 새로 나왔는데
노래를 잘하네

사라지는 겨울
엄지손톱만큼 뭉크러진
단감 하나 식탁에
두고 나온다

쥐똥나무 근처에서
멀리뛰기하는 까치
까치 까치 아빠
엄마를 좀 데려가 줘

툭툭
툭 툭툭
투투투 툭
부정맥의 심장
다독이며

오후 6시
시 쓰기에
가장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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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바비(Barbie, 2023), 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 감독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다. 그렇게 긴 영화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영화는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펜하이머( J. Robert Oppenheimer, 1904-1967)의 일대기를 다룬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은 정교하게 배치된 3개의 시간 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짜나간다. 오펜하이머가 대학생 시절이었던 때부터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오펜하이머에게 오욕과 수치를 안겨준 1954년의 청문회, 오펜하이머의 반대자 루이스 스트로스(Lewis Lichtenstein Strauss)의 1959년 청문회가 그것이다. 놀런은 이렇게 시간대를 교차시켜 보여주는 데에 재미를 붙인 것 같기도 하다. '덩케르크(Dunkirk, 2017)'에서도 그런 걸 써먹은 적이 있다.

  그런 내러티브적 변형이 효과적이었는지 내게는 물음표로 남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덩케르크'는 참으로 별로였고, 그나마 '오펜하이머'는 볼만 했다. '오펜하이머'는 실존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축약해서 보여준다. 놀런은 그의 인생이 격변의 시대와 교차하는 지점을 통찰력 있게 포착한다. 원자폭탄 개발의 주도적 과학자로서 오펜하이머에게 영광의 월계관만 씌워진 것은 아니었다. 내연녀의 비극적 죽음,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견뎌야 했던 사상 검증, 원폭 투하가 가져온 엄청난 살상에 대한 죄책감이 오펜하이머의 삶에 포개어져 있었다.

  영화는 뛰어난 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 불행이 '국가'가 수행한 거대한 전쟁 프로젝트와 긴밀히 맞물려 있음을 부각시킨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라고 해도 그것이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순간에 과학자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오펜하이머의 삶은 그것을 통렬하게 입증한다. 결국 소모되어 버려지는 삶.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 비참함과 서글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오펜하이머'와 함께 2023년의 미국 영화계의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의 바비(Barbie, 2023)이다. 완벽한 바비 인형의 삶에서 벗어나게 된 주인공 바비가 한 여성, 인간으로서 눈뜨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전형적인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감독 그레타 거윅은 매우 영리하게 그 전형성에서 벗어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바비 인형 회사 마텔(Mattel)과 긴밀히 협조한 자본주의적 영악성은 영화 속에서 매끄럽게 포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영화 '바비'의 세계관은 진부함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선정에서 '바비'가 철저히 외면당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바비'는 그런 대접을 받아도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이건 페미니즘에 대한 박대가 아니다. 그레타 거윅의 빈곤한 영화적 상상력과 놀라운 정치적 능력의 합작품 '바비'를 누구나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 나는 반대일세', 미국 아카데미 협회 회원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헐리우드의 또 다른 화제의 영화로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이 있다.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는 이 영화의 감독으로, 그리고 주인공 번스타인역으로 북 치고 장구 치는 놀라운 원맨쇼를 보여준다. 최근 몇 년 동안 할리우드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파는 데에 열심인듯 하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은 유럽 출신의 지휘자가 주류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미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인물이다. 영화는 그러한 번스타인의 음악적 성취 이면에 자리한 개인사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동성애자인 번스타인의 삶은 '결혼'과 '출세'라는 세속적 틀과 맞물리며 지속적인 파열음을 낸다. 영화 속 번스타인은 뛰어난 지휘자 이전에 기만적인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온다. 번스타인은 끊임없이 남자 연인들과 바람을 피우는 자기 삶의 방식에 한없이 관대하다. 결별을 요구하는 아내에게는 질투심에 눈이 멀었다고 비난하고, 딸에게도 진실을 숨기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이 남자는 외적으로는 위대한 지휘자(Maestro)라는 광휘에 휩싸여 있지만, 그 뒤에는 일그러진 인간적 면모가 숨겨져 있다.

  영화 속에서 번스타인은 동료 음악가를 비롯해 자신이 가르치는 남학생과도 연인 사이가 된다. 명백하게도 그러한 번스타인의 행동은 자신의 직업 영역에서의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을 예상하게 만든다. 번스타인의 모습은 영화 '타르(Tár, 2022)'에서 여성 지휘자 타르의 거울 이미지처럼 보인다. 물론 타르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감독 토드 필드(Todd Field)가 만들어낸 가상의 지휘자이다. 그 영화에서 타르는 음악적 권력을 남용하다 파국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단초는 타르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성적인 착취의 도구로 사용한 데에서 기인한다.

  영화 '마에스트로'를 보면서 나에게 든 의문은 이런 것이다. 왜 타르를 몰락하게 만들었던 성적 취향과 권력의 속성이 번스타인에게는 그 어떤 손상도 끼치지 않았는가? 번스타인은 죽을 때까지 남자들과 자유롭게 연애하고 동거했다. 그의 그런 사생활은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았고, 음악계에서도 암묵적인 비밀로 유지되었다. 브래들리 쿠퍼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둘러싼 번지르르한 신화에 균열을 가한다. 문제는 그 균열이 번스타인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근원적 탐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영화 '마에스트로'는 젠더와 예술 권력, 결혼제도와 성소수자인 LGBT에 관해 그럴싸한 변죽만 울리다 끝내버린다. 브래들리 쿠퍼는 감독으로서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듣기 좋은 노래와 볼거리만 있는 음악 영화는 한번 보고 잊혀질 뿐이다. 결국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진정성 있는 이야기이다.


*토드 필즈의 영화 '타르(Tár, 2022)'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todd-field-tar2022.html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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