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우간다에는 메뚜기 사냥꾼이 있다
그곳에서 메뚜기는 인생역전의 아이템이다
메뚜기가 지나가는 언덕배기
작은 발전기에다 수십 개의 전구를 연결한다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드는 미쳐버린 빛
메뚜기들은 빛의 덫에 걸려
양철판때기에 우르르 쏟아진다
거대한 메뚜기의 무덤은 돈다발이 되고
사냥꾼들은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다시 메뚜기를 잡으러 간다

시장의 여자들은
메뚜기의 날개와 다리, 더듬이를
똑똑 떼어서 다듬는다 그리고는
펄펄 끓는 기름에 풍덩,
맛있는 메뚜기튀김 한 접시 뚝딱,
우간다의 국민 간식 메뚜기

메뚜기 다큐를 보던 가난한 시인은
자신도 메뚜기튀김과 같은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뜰채로
시어(詩語)를 잡으러 나간다
그가 원하는 알맞은 단어들은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

겨우 잡은 비실거리는 몇 개의 글자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넣고는 컴퓨터를 켠다
2시간째, 모니터의 화면은 텅 비어 있다

시는 튀겨낼 수 없다
시를 먹는 사람은 없다
시는 메뚜기가 아니다
그러나 메뚜기는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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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詩)


시를 몇 년 썼죠
그런데 돈도 안 되고
잘 써지지도 않아서
시를 버렸어요
아니, 어쩌면 시가
나를 버린 것인지도 몰라요

그럴 리가요
우리의 시는 당신을 버리지 않아요
우리의 시는 당신과 함께 행진했고
우리의 시는 당신과 함께 울었어요

물론, 우리의 시는 당신을 아프게도 했어요
당신의 속을 헤집어 놓고
당신을 막막하게 만들며
당신을 길 가장자리로 밀쳐냈지요

당신은 늙은 사람인가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의 목소리는 무슨 색깔인가요?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면
천천히 숨을 내쉬며 이렇게,

아, 에, 이, 오, 우

아름다움은 비참함에서 나오며
에러 코드(error code)가 떠도 당황하지 말고
이번 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오, 가을이 오는 소리를
우리의 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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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한 톨


아버지는 금식 중이었다

나, 저 밤 한 톨만 다오

호스피스(hospice) 병실의 누군가 건네준 삶은 밤을
아버지는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밤은 따뜻했다

의사가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에 눈을 감으셨다
그까짓 의사 말이 뭐라고
노란 밤 한 톨을

바람이 삐딱하게 걷는다
지 성질을 못 이겨
어느 산기슭의 밤나무를
후들겨 팰 때
늦여름의 밤 한 톨
가만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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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미학(美學) 선생이 말했다

사과나무의 사과를 보고
따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냥 세상 사람인 거죠
미학(美學)이란 말입니다,
사과의 그 빛깔, 그 모양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만드는

30년이 다 되도록 그 사과는
내 머릿속에서 매달려 있다
글을 써서 먹고 살 궁리를 하느니
손가락을 분질러 버려야지

자신에게 솔직해질 것
타인의 불행을 비웃거나 팔아먹지 말 것
통장의 잔고에 초연해질 것
실현 불가능한 글쟁이의 미학

찌그러지고,
흠이 있으며,
못생긴 풋사과 한 알
그러나, 아직 썩지는 않았어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미쳐버린 여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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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專門家)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을까요?

A가 말한다
많이 읽고 부지런히 쓰세요

수능시험 만점자가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했다는 소리 같네

B가 말한다
요즘 잘 나가는 시인을 찾아가세요
시의 전문가 아닙니까?
돈은 좀 들어요

전문가의 고견을 듣는 데
시 한 편당 만 원, 그러니까 
시 스무 편을 들고가면 이십만 원

피부가 타버릴 것 같은
개같은 날의 더위
검정 긴팔에 치마 레깅스의
여자 택배 기사가
허리가 휘어지도록 카트에
택배를 싣고서 지나간다

택배의 전문가는 
고객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택배 상자도 단정하게 놓는다

택배 기사의 배송 수수료는
건당 700원에서 800원 언저리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순전한 노동
기후 변화의 위기를 감내하는
당신은 진정한 전문가
부디 몸 상하지 않기를
존경을 담아
어느 입문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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