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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유리 조각과 같은 이물질이 들어가면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까? 빠른 시간 안에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제거는 가능하다. 하지만 유리 조각의 경우는 투명해서 더러는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내가 만난 2명의 안과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올 봄의 일이다. 책상 스탠드의 전구를 갈다가 그것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튀어서 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다니던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유리 조각을 빼내었다. 그런데도 눈에는 이물감과 통증이 지속되었다. 아무래도 미처 제거되지 않은 유리 조각이 남은 것 같았다. 거기에다 눈 안쪽 가장자리에는 작은 수포 같은 것도 생겼다. 다시 안과에 갔다.

  "일단 현미경 상으로는 유리 조각은 더는 보이지 않습니다. 남아있는 유리 조각이 있을 수도 있겠죠. 염증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눈 안쪽에 생긴 건 나도 잘 모르겠네요. 난 망막 전문이라 외안부 질환은 안봅니다. 진료 의뢰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에 가보시죠."

  이 의사는 대학 병원 안과 교수로 10년을 넘게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눈에 생긴 작은 뾰루지 같은 것이 뭔지 모른다는 말이 나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무슨 중대한 질환도 아니고 진료 의뢰서를 들고 대학 병원에 가야한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나는 그 의사가 웬만하면 외래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을 귀찮아서 안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이렇게 병원 한번 왔다 가는 일도 환자인 내 입장에서는 힘이 들어요. 저는 선생님이 볼 수 있는 거면 그냥 치료받았으면 하는데요. 이걸 가지고 또 대학 병원에 가보라니 내 입장에서는 좀 무책임하게 들리네요."
  "뭐가 무책임하다는 겁니까? 내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결막에 난 게 진짜 뭔지 모른다니까요. 난 망막만 본다구요. 우리 병원은 망막 전문 병원입니다. 지금 환자들 기다리고 있어서, 환자분하고 더이상 이야기 할 시간 없습니다."

  의사는 모니터에 눈을 고정하고 진료 의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내 뒤로는 환자들이 열 명도 넘게 밀려있었다. 이 의사는 환자가 말을 길게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전부터 나는 이 의사의 진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기는 했다. 내가 눈에 대해 뭔가 물어보려고 하면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든 진료실에서 빨리 내보내고 싶은 눈치였다. 나이든 노인 환자가 눈 영양제에 대해 말하니까 큰소리로 면박을 주는 것도 들었다. 이 병원의 진료실 문은 열려져 있어서 의사와 환자의 대화 소리가 다 들린다. 뭔가 환자에 대한 응대가 썩 좋지 않은 의사구나 생각은 했다. 하지만 실력이 뛰어난 의사여서 병원은 환자들로 언제나 미어터졌다. 나도 그런 환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이구, 3분 커트 진료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버시구려.'

  나는 그렇게 속으로 화를 삭이면서 병원을 나왔다. 그 의사가 써준 진료 의뢰서를 가지고 대학 병원 안과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안과 전문 병원을 알아보고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예약하기 전에 그 병원에서 결막 질환을 보는지 물어보았다. 문의한 병원의 안내 데스크에서 의사에게 물어보고 진료를 본다는 답을 주었다. 그 병원에는 세 명의 안과 전문의가 있었다. 나는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볼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병원의 홈페이지를 둘러 보았다. 내가 주의깊게 본 것은 의사의 경력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그렇다. 그런 경우에 나는 의사의 관상을 본다... 병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들 가운데 한 의사가 환자를 보는 사진이 참 인상적이었다. 젊은 의사가 진중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 의사한테 진료를 보기로 예약했다. 

  마침내 예약한 날에 병원에 가서 의사를 보았다. 삼십 대 중반의 젊은 의사는 마치 대학생처럼 보였다. 나는 진료 의뢰서를 보여주며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짧게 요약해서 말했다. 이제는 의사를 만날 때 말을 간결하게 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가 말을 길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병원 진료가 괜히 3분 커트, 5분 커트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이것저것 묻는 환자는 곧 짜증이 뚝뚝 떨어지는 우거지상 얼굴의 의사를 보게 된다. 나에게 진료 의뢰서를 써준 안과 의사도 그랬다.

  "유리 조각이 눈에 들어간 거면 큰 사고를 겪으셨네요. 그럼 어디 한번 눈을 볼까요?"

  의사는 세극등 현미경으로 내 눈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혹시 남아있는 유리 조각이 결막에 남아있는지 면봉으로 쓸어내리면서 꼼꼼하게 확인했다. 의사는 결막 안쪽에 난 수포는 결막낭인데, 제거를 해도 재발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제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사가 마취 안약을 내 눈에 점안하고 주사 바늘로 그걸 터뜨리는 데에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 뒤에 다시 안과에 가서 보니 다행히 결막낭이 재발하지 않고 깨끗이 나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적으로 눈의 이물감과 통증을 느꼈다. 그런 이야기를 내가 하자, 의사는 현재로서는 별 문제가 없어보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말했다. 나는 이 의사가 환자를 보고 대하는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선생은 환자인 내 이야기를 주의깊게 경청했고, 진료 내용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도 잘해 주었다. 이 의사에게는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눈 때문에 느끼는 불안과 걱정을 상당부분 덜어주었다. 적어도 이 의사한테 진료를 보면 아픈 눈이 다 잘 나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심 속으로 이런 좋은 의사도 다 있네, 하고 감탄했다.

  나는 대학 병원에 가보라며 나를 진료실에서 떠밀어낸 3분 커트 의사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의사의 문전박대 때문에 좋은 의사 선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3분 커트 의사는 내 눈에 생긴 수포가 결막낭이라는 것을 정말로 몰랐던 것일까? 아니, 대학 병원에서 10년 넘게 교수로 구른 사람이 젊은 의사가 단번에 보고 아는 결막낭 질환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나? 망막만 보는 의사는 그런 사소한 외안부 질환을 모르는 것이 당연한가? 아마도 그건 의사 본인만이 아는 일이겠지. 내가 분노하는 건 그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이다. 그는 환자를 존중하지도 않았고, 환자가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하는 능력도 없었다. 안과 의사로서 눈을 보는 실력이야 출중할지 몰라도, 나는 그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교 체험 극과 극' 프로그램처럼 나는 눈 때문에 두 명의 안과의사를 만나보았다. 한 사람은 의사로서 참으로 별로였고, 다른 한 사람은 정말로 괜찮은 의사 선생이었다. 어쩌면 의사도 진정한 재능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공부 머리가 좋고, 환자 치료를 잘하는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아픈 환자의 마음을 살피는 일. 심의(心醫), 의사로서의 최고 경지는 그렇게 환자의 불안한 마음까지 보듬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의사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진료실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환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환자가 조금만 이야기를 길게 하거나 뭘 물어보면 의사의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의사도 개인 사업자이니, 의사들이 입만 열면 성토하는 현행 의료 수가 체계에서는 의사가 어떻게든 환자를 많이 보아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술이 돈과 효율로 환산되는 이런 현실은 매번 마주할 때마다 씁쓸함을 남긴다. 아마도 내가 알게 된 그 좋은 안과 의사도 언젠가 명의가 되어 3분 커트로 환자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의사 선생이 심의(心醫)로서의 마음가짐만큼은 오래 지켜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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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약도 먹지 말고, 연고도 바르지 마세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올해 1월의 일이다. 나의 왼쪽 엄지 발톱은 한 달 넘게 자라지 않았다. 발톱 주변은 빨갛게 붓고 아팠다. 진통제와 항생제 연고를 써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피부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발톱 무좀인지도 모른다고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무좀은 아니었다. 종종 발톱이 안자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경우 발톱이 빠질 수도 있고, 다시 자랄 수도 있으니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런데 병원에 다녀오고 2달이 지나고서도 발톱의 통증과 부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었다. 약이나 연고를 쓰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아플 때마다 소염진통제를 먹었고, 항생제 연고를 발랐다. 그쯤 되니 나는 이건 단순한 발톱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다시 피부과를 방문했다. 대기 환자로 미어터지는 피부과에서 2시간을 기다려서 의사를 보았다. 내가 아파서 혼자 약도 먹고 연고를 발랐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의사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의사는 내 발톱을 건성으로 들여다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의 문제는요, 의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데에 있어요. 나는 피부과 의사로서 전문적으로 수련을 하고 오랫동안 많은 환자를 봐왔단 말입니다. 내가 소염제나 연고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환자분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자가처방으로 이거 저거 썼죠? 그냥 내버려 두면 해결될 수도 있는 거에요. 환자분이 그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네요. 자꾸 아프다고 하시니까 어쩌면 피부과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정형외과나 신경과 문제일지도 모르겠네요. 진료 의뢰서를 써드릴 테니 대학병원에 가보세요."

  의사는 더이상 길게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다. 자신의 진료 컴퓨터 창에 대기 환자가 9명으로 떴다며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모멸감과 불쾌함을 느끼며 진료실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날 저녁, 빨갛게 붓고 욱신거리는 발톱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을 했다. 왜 내 발톱은 자라지도 않고 이렇게 아픈가? 나는 검색창에 입력어를 달리 해가며 검색을 해보았다. 마침내 나와 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하다가 결국 끝(!)을 본 블로거의 글을 읽었다. 그 블로거도 나와 증상이 같았다. 발톱이 자라지 않았고, 통증과 부기에 염증까지 생겼다. 그는 피부과에서 내성 발톱 진단을 받고 발톱 일부분을 절제하는 시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형외과에도 가서 주기적으로 염증 치료도 받았다. 그렇게 1년 가까이 고생을 하다가 궁리 끝에 그는 대학 병원의 족부 전문 클리닉을 찾아갔다.

  의사는 그에게 제대로 자라지 못한 발톱이 겹겹이 쌓인 상태라고 했다. 치료법은 '발톱을 뽑는 것' 뿐이어서, 그는 결국 발톱을 뽑았다. 1년에 걸친 고생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블로거가 쓴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새로 자라고 있는 발톱의 사진이 찍혀있었다.

  아니, 발톱을 뽑아야 한다고? 정말 그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나는 인터넷 검색을 이어갔다. 마침내 영어로 된 의학 논문들 사이에서 내 발톱의 진단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Retronychia. 우리말로 번역하면 '역행(逆行) 발톱' 쯤 되겠다. 찾아보니 이건 정확한 한글 진단명도 없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위로 자라야할 발톱이 발톱 뿌리 쪽을 파고 들면서 생기는 병이었다. 외상이나 다른 충격에 의해 발톱 뿌리의 성장판에 문제가 생기면, 발톱은 정체된 상태로 있게 된다. 문제는 그 발톱 밑에서 계속 새로운 발톱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마치 떡판이 쌓이듯 겹겹이 쌓인 발톱은 그 밑의 피부를 압박하며 통증과 염증을 유발시킨다.

  그럼 이 Retronychia의 치료법은 무엇인가? 초기에는 발톱에 고농도의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당한 시일이 지난 경우에는 '발톱을 뽑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내가 본 블로거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Retronychia가 생기는가? 그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 것은 '외상'이다. 발톱 뿌리 부분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은 발톱의 성장판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12월 경에 엄지 발가락에 무거운 물건이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결국 발톱을 뽑는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발톱 뽑는 수술은 정형외과에서나 할 텐데... Retronychia에 대한 영어 논문들을 읽고 나니 나는 무척이나 심란해졌다. 뭔가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지 나는 희망을 가지고 검색해 가며 구글신의 가호를 빌었다. 그리고 최신 논문 하나를 찾아냈다.

  "Retronychia 치료의 새로운 지견: 발톱을 뽑는 것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논문은 발톱을 뽑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효과적인 치료방법이지만 환자에게 매우 큰 고통과 불편을 줄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그렇게 발톱을 뽑고 나서도 병이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논문은 Retronychia 환자들에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발톱을 갈아내는 것이 효과적임을 입증했다.

  "뽑지 않아도 된다. 갈아내라!"

  그것은 내게는 마치 거룩한 계시처럼 여겨졌다. 그래, 발톱을 갈아내 보자. 나는 그 논문에 실린 환자들의 발톱 사진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발톱의 어떤 부분을 갈아낼 것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러니까 제일 겉부분의 발톱을 갈아내면 그 아래에 자라고 있는 새로운 발톱이 올라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무려 한 달 넘게 발톱을 조금씩 갈아내었다. 그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두꺼워진 발톱을 갈아내는 일은 처음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얇아지면 피부와 닿게되면서 고통을 유발한다. 도구도 여러가지를 썼다. 손톱 손질용 버퍼부터 전동 네일 드릴, 나중에는 공업용 줄세트까지 사야했다. 발톱이 쉽게 갈리게 만들기 위해 티눈액도 중간중간 썼다. 사용한 기구의 소독은 철저히 했다. 그렇게 해서 발톱의 상당 부분을 갈아내었다. 그 이상은 고통스러워서 더 할 수도 없었다.

  놀랍게도 나는 발톱을 갈아내면서 발톱 주변의 통증과 부기가 가라앉았음을 발견했다. 아마도 자라지 않고 피부를 누르는 상층부 발톱이 주는 압박이 덜해지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어제, 나는 발톱이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7개월 동안 자라지 않던 발톱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Retronychia가 뭔지도 모르는 피부과 의사한테 갔다가 무려 7달 동안 생고생을 했다. 내가 화가 치미는 것은 환자에 대한 그 의사의 태도에 있다. 환자가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고 분명히 염증 소견이 존재하는 데도 그 의사는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임상적 경험만을 내세웠을 뿐이다. 의사가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로 환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청취하지 않을 때, 그 결과는 환자의 고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굳이 그 의사의 입장을 이해해 본다면 Retronychia가 피부과의 임상 현장에서 최근에서야 주목받고 있는 질병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 병을 보고한 영어 논문은 1999년에서야 나왔다. 그 이후에도 피부과 학회지에서는 드문드문 언급되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Retronychia는 오랫동안 오인되고 무시된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Retronychia는 발톱색의 변형을 동반한다. 노랗게 변한 발톱색 때문에 종종 이 질환은 발톱 무좀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다. 더러는 내성 발톱으로 오진된다. 그러므로 환자들은 효과도 없는 무좀 치료와 내성 발톱 치료를 받다가 발톱은 물론 발가락의 변형에 이르기도 한다.

  나는 이 글을 발톱이 자라지 않는 문제로 고생하는 Retronychia 환자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자라지 않는 발톱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우선은 피부과 진료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만약 발톱 무좀도 아니고 내성 발톱도 아니라면, 외상에 의한 발톱 뿌리의 손상으로 생기는 Retronychia일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 따라야 한다. 나에게는 그 행운이 비껴갔다. 만약 그대가 Retronychia로 고생하고 있다면 부디 그 행운을 붙잡아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Retronychia에 대한 해외 피부과 학회 영어 논문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10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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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디 2024-03-1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남겨주시니 감사합니다^^저도 고생하다가 발톱을 뽑으니 해결되네요ㅠ보라*병원,아*병원의 피부과 교수님들도 원인을 모르니 답답했네요ㅠㅠ하루빨리 우리나라도 Retronychia에대해 알려져서 환자들이 고생하지않았으면 합니다..제경험상 발톱부분에 충격을 주거나,압박스타킹이나 발목조이는 양말을 지속적으로 신으면 피가 잘 안통해서 그런지.. 제경우는 생기는거같아요ㅠ그로인해 4~5년마다 동네정형외과에 가서 발톱을 뽑아달라고 합니다ㅠ이번에도 발톱뽑으러 가기전에 이글을 보게됬네요..이렇게 글을 접하니 반가운마음이 들고 감사하네요^^

푸른별 2024-03-12 19:55   좋아요 0 | URL
아이쿠, 스탠디님은 큰 병원 2군데를 다니면서 고생했군요. 기록으로 남긴 제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작은 발톱 하나가 그렇게 사람을 고생을 시키더군요. 모쪼록 쾌유를 빕니다.
 

 

  "오늘 그림그리기 시간에는 집을 그려보려고 해요. 어르신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탁 트인 들판이 어르신들 앞에 있어요. 거기에 집을 짓는 거에요. 그렇게 떠오른 집을 종이에 그려볼까요?"
  "뭔 집을 그려? 지금 살고 있는 집 말고 다른 집? 그런 게 있지도 않은 데 어떻게 그리라는 거야?"

  박씨 영감이 책상 위 자신의 스케치북을 밀쳐놓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유, 어르신. 언젠가 꼭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집이 있으실 텐데요. 그걸 그리면 됩니다. 우선 누구와 함께 살 건지 떠올려 보세요. 그런 다음에 방의 갯수를 정해요. 창문은 크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좀 자그맣게 만들 것인지, 결정하구요."
  "난 아무하고도 살고 싶지 않아. 다 못돼먹은 인간들 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LA 할머니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싫어. 흰종이가 무서워."

  수업 시간에는 하이드 씨가 아닌 지킬 박사로 지내는 김씨 할아버지가 옆에서 말을 보탰다. 아무래도 오늘 그림 수업은 영 분위기가 아니다 싶었다. 강사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중년의 아주머니 강사는 동네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좋은 뜻의 무료봉사. 취지는 좋았지만 노인들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억센 당나귀들처럼 굴었다. 거의 매번의 수업시간이 이랬다. 나는 차라리 자유 낙서 시간이 어떨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방이 너무 많으면 청소하기가 힘들겠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신씨 할아버지가 혼자 중얼거렸다.

  "자, 여기 어르신의 그림을 보세요. 이렇게 선을 그어서 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 창을 그려넣습니다. 어르신, 지금 그리는 집에는 몇 명이 살게 될까요?"
  "우리 집사람하고 나."

  신씨 할아버지의 아내는 오랫동안 요양원에서 지내왔다. 최근에는 건강이 안좋아져서 요양 병원으로 옮겼다고 얼핏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그 일 때문인지 신씨 할아버지는 요새 들어 많이 침울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그림 속 집의 지붕을 이제 막 그려내던 참이었다. 그는 색연필통에서 색을 신중하게 골랐다. 그렇게 해서 고른 색은 초록색이었다. 진한 초록색의 지붕이 2층 양옥집에 얹어지고 있었다.

  "근데 속이 좀 안좋네."

  신씨 할아버지의 안색이 약간 창백하게 보였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보건실로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 그게 아니구... 좀 토할 것 같아서. 학생이 나 좀 화장실에 데려다 주구려."

  나는 신씨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중풍으로 편마비가 있음에도 그는 지팡이에 의지했고,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나는 교실 뒷편에 있는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할아버지를 앉힌 다음에 서둘러 화장실로 이동했다. 화장실에서 할아버지가 토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등을 두드렸다.

  "좀 괜찮으세요? 많이 힘드시면 오늘은 집에 일찍 가는 것이 좋겠어요."

  노인은 몇 번을 꺽꺽대는 소리를 내더니 겨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의 구토 소리를 들으니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 뭐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이러지... 어쨌든 집에는 안가, 안간다구. 바깥 공기를 마시면 나아질 거야."

  그가 집에 안가려는 이유를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은 자신을 싫어하는 며느리와 되도록이면 집에서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신씨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벽면 거울에 비친 노인의 얼굴이 무척 지쳐보였다. 나는 복지관 앞마당에 있는 화단으로 휠체어를 천천히 밀었다.

  "집사람 말이야. 살 날이 얼마 안남았어."
  "요양 병원에 계시다고 듣기는 했는데..."
  "전부터 소화가 잘 안된다고 그러기는 했어. 난 그저 거기 음식이 안맞나 보다 그랬지. 그런데 그게 췌장암 말기라는 거야. 10년을 치매 앓으며 힘들게 고생하더니 결국 이렇게 가려는 모양이야."
  "어르신 맘이 안좋으시겠네요."
  "나야 아무려나 살게 되겠지. 그냥 집사람만 불쌍하고 그래. 지난 주말에 갔더니 나한테 '연우 아빠'라고 불러. 얼마만에 그말을 들었는지 몰라. 치매로 정신줄 놓고 나서는 나를 못알아 봤거든. 맨날 나한테 삼촌이라고... 죽을 때가 되니 정신이 잠깐 말짱해진 건지도 모르지."

  이야기를 하던 노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아까 그리던 그림 말이야. 그거 집사람하고 내가 저 세상에서 살 집이야. 집 앞에는 이렇게 화단도 있구,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고... 아, 여기 채송화가 피었네. 어쩔 땐 말야.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저 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쟤들은 고통 따위는 모를 거 아냐. 정말이지 산다는 건..."

  신씨 할아버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은 애써 눈물을 참는 것 같았다. 그는 늘 완고한 표정을 지으며 복지관 노인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 할아버지가 느끼는 마음의 고통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비가 온 몸으로 아들의 집에서 군식구처럼 얹혀서 살았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아내는 오랫동안 치매로 고생하다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꿈꾼 노후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어르신, 좀 괜찮아지셨어요? 그럼 이제 교실로 가볼까요?"

  노인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휠체어를 끌고 교실로 돌아오는 동안 할아버지가 미처 말하지 못한 문장의 뒷부분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산다는 건...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대답은 사람들마다 다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노인의 이야기에서 삶이 고통일 수 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을 견디어 내고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교실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 집 앞에는 네모난 화단이 생겨났다. 신씨 할아버지는 거기에 붉은색과 노랑색을 점점이 찍고 연두색의 잎을 그려넣었다. 나는 그 꽃들이 아까 복지관 화단에서 본 채송화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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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의 세계 같은 거 보면 말일세, 사자나 하이에나가 어떻게 사냥하는 줄 아나? 걔들은 웬만해선 한창때의 짐승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네. 그럼 어떤 걸 사냥감으로 삼느냐? 약하고 어디 다친 것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지. 내가 본 깡패놈들도 그러더군. 거긴 그놈들의 사냥터였어. 동네에서 제일 불쌍하고 없어 보이는 사람들부터 처내는 거야."
  "거기라면...어딜 말씀하시는 건가요?"
  "상계동..."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잠겨있는듯이 들렸다.

  "못사는 사람들이 흘러흘러 모여들었더랬지. 그런데 올림픽이 열린다니까 서울에 그런곳이 있다는 게 챙피했던 거야. 그래서 윗대가리들이 결정했지. 밀어버리자, 밀어버리면 된다. 개패듯이 내쫓아 버리면 될 줄 알았던 게지."
  "그래서 어르신도 그때 거기서 쫓겨났었나요?"
  "낸들 별 수 있나? 거기 사람들 다 그랬지. 매일매일 시한폭탄 떠안고 사는 것 같았어. 언제 깡패놈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생각했으니까. 나중에 포크레인으로 동네 집들 밀리는 거 보니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더구먼. 더이상 가슴졸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저승사자 같은 저 놈들 꼴을 안봐도 되는구나 해서. 누군 죽도록 얻어맞아서 반병신으로 살고 그랬으니까. 그래도 어디 말할 데가 있어야지."
 
  이야기를 하던 노인은 입이 마르는지 연신 침삼키는 소리를 냈다. 나는 창가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한 잔 뽑아왔다.

  "고맙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율무차를 받아들었다. 상계동이라... 올림픽이 열릴 무렵에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의 땟국물을 아직 다 빼지 못할 때였을 것이다. 올림픽은 옷만 군복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은 정권의 총력적인 홍보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노인의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동네가 없어진 건가요?"
  "암만. 포크레인 수십 대 들이닥치고 깡패놈들, 뭐 어중이떠중이 공무원들까지 길앞잡이들처럼 서있었지. 그런 건 당해낼 수가 없는 거여. 그냥 모래성 쓸려나가듯 부서지더만. 여자들하고 애들이 울부짖고, 난리도 그런 난리통이 또 있을까? 그래도 소용없었어."

  노인의 손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노인은 컵에 남은 율무차를 바지에 조금 흘리고 말았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서 얼른 그걸 닦았다.

  "이게 한번 떨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아. 아마 젊을 때 되게 맞아서 그런 걸 거야."
  "거기, 그 깡패들한테요?"
  "아냐, 이건 뭐... 전에 어디 끌려가서 그랬어."

  참으로 노인의 팔자도 기구하네. 상계동에서는 살던 집도 뺏기고, 그 전에는 어딜 끌려가 되게 맞았다고 하고. 한편으로는 저 노인이 혹시 정신을 놓은 사람이라 횡설수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맨몸뚱이로 쫓겨난 게... 아까 걔 말야, 내 아들 녀석. 동민이가 다섯 살 때, 큰애가 열 살 되던 해였어. 동민이 갸가 좀 못배웠지. 가방끈이 짧아. 그래서 말본새, 행동거지가 그 모양인기라."   
  "그럼, 그때 어르신은 거기서 가족들 데리고 어디로 가셨어요?"
  "열심으로 데모한 사람들은 명동에서 한동안 천막치고 살고 그랬는데. 난 사람들이 부천 쪽에 살 데가 있다 그래서 글루 갔지. 근데 놈들이 거기까정 쫓아오더만."
  "아니, 왜요? 거긴 서울도 아닌데. 경기도 부천이면 올림픽하고 상관도 없잖아요."
  "아, 그게, 성화가 지나간다는 거여. 그 횃불 들고 뛰는 거 말야. 그거 들고 뛰는 사람이 우리가 살기로 한 동네를 지나가니까 우리더러 거기 못산다고, 나가라고."

  그 말을 하던 노인은 손에서 종이컵을 떨구었다. 나는 심하게 흔들거리는 노인의 손을 잠깐 잡아주었다. 다행히 컵은 거의 비어있어서 바닥은 닦지 않아도 되었다.

  "긍께 말이지, 그 사달이 난 게 올림픽 때문이 아니냔 말이지. 내가 정말로 궁금했다니까. 도대체 뭐하는 것들이 와서 놀고 자빠졌길래 이다지도 못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하구. 궁리 끝에 올림픽 구경을 가보기로 했어."
  "구경이요?"
  "응, 구경. 폐막식 날 말야. 내가 거기 경기장을 빙빙 몇 바퀴를 돌았나 몰라. 날도 어둑어둑해지겠다, 가만 보니 뒷문에는 지키는 사람도 안보이더만. 그래서 수월찮게 들어갔지. 사방이 번쩍거리고 올림픽 공연이랍시고 눈이 뒤집히게 휘황찬란하데. 뭐 나중에는 강강수월래를 하고 춤추고 난리가 났어.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거여. 저 인간들은 이거 땜시 얼매나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는지 알기는 알까 싶어서. 그래서 내가 거기서 우쨌는지 아나?"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입가가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대한민국은 깡패들과 가진 놈들의 천국이다, 독재 국가다,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녔어. 양코쟁이 외국인들이 그 말을 뭔 수로 알아들어. 그저 실실 웃기나 하지. 어쨌든 그렇게 악이라도 쓰니까 내 맴이 좀 낫더라고."

  마침내 노인의 손이 차분해졌다. 복도 중간에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느끼는 귀의 통증을 뻐근하게 느꼈다. 그것은 마치 1988년의 서울 상계동에서 2018년의 경기도 일산의 복지관으로 타임 슬립(time slip) 여행을 한 것 같았다.

  "점심 시간이 끝났나 보네요. 아드님이 준 서류를 내러 가죠. 그런데 어르신 성함이..."
  "선, 종, 호."
 
  노인은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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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어르신들. 오늘 노래 수업은 여기서 끝마칠게요. 혹시 배우고 싶은 노래 있음 얘기해주세요."
  "저기, 배호 노래나 좀 틀어줘. 월매나 좋은 노래가 많은디 젊은 사람이라 그런가, 배호를 모르는겨? 누가 울어, 그 노래도 참 좋당케. 그런 거 한 곡조 뽑고 나면 마음에 맺힌 게 확 풀어져 뿌리지."
  "배호요? 아유, 잘 알죠. 알겠습니다, 어르신. 다음주에는 배호 노래로 찾아뵙겠습니다!"

  미호 씨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함께 노래 수업이 끝났다. 배호라...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 가수는 아버지의 차에 늘 있었던 카세트 테이프의 주인공이었다. 테이프 겉면에 인쇄된 가수의 얼굴은 웃는 표정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테이프를 틀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 테이프를 어디다 두었더라? 그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마도 그냥 버려졌을 것이다. 나는 왜 그 가수의 노래를 들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어쩌면 배호의 노래를 무척 좋아했던 아버지의 삶을, 그 마음을 더 깊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점심 시간이 되었으므로 어르신들은 1층의 식당으로 갔다. 나는 교실 책걸상을 정리해놓고 실습 일지를 기록했다. 5층의 노인복지팀에 그걸 건네주고 가면 오늘 복지관에서의 일정은 끝이었다. 점심 시간이라 노인복지팀 사무실에도 사람이 없었다. 실습생 담당자 원표 씨 책상 위에 일지를 놓고 나오는데, 문앞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옆에는 휠체어에 탄 노인이 있었다. 노인이 낀 검정색 선글라스는 복지관의 방문객과는 어울리지 않게 뭔가 생경스러워 보였다.

  "지금은 점심 시간이라 다들 자리에 없습니다. 1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니까 좀 기다리셔야 할 텐데요."
  "아이구, 참. 여기 직원이요? 이것 좀 나 대신 처리해 주쇼.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아버지, 이 젊은 친구가 알아서 할 거니까 성깔 피우지 말고 고대로 따라만 해요."
  "아니, 난 직원이 아니라 실습생이라구요. 이러면 곤란합니다."

  남자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상계단으로 후다닥 뛰어내려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해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을 모른 척 하고 나 혼자 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복도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12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앞으로 30분은 더 넘게 기다려야만 한다. 나는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르신의 아드님은 참 경우가 없는 사람이네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일진이 안좋은 날인가 보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르신, 좀 기다려야 해요. 여긴 좀 그러니까 저쪽 창가 소파 있는 데로 갈게요."

  노인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치매나 중풍, 그게 아니면 다른 어떤 병이 있는 건가? 나는 천천히 휠체어를 창가 쪽으로 밀었다. 노인의 몸은 비쩍 말라 있었다. 그 때문에 휠체어를 미는 게 아니라, 휠체어가 저절로 굴러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바깥 풍경이 보이는 유리창 앞쪽에 휠체어를 세웠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기다리는 동안 전공책이나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중간 고사가 코앞이었다. 내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 놓았을 때, 노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자넨 몇 살이었나?"

  서울 올림픽이라면 1988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도대체 왜 이 노인은 뜬금없이 올림픽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나는 뭔가 노인이 치매라도 걸려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방금 전 노인의 아들이 보여준 무례함에다가, 이제는 노인의 헛소리까지 들어줘야 하는 건가 싶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어르신, 제가 좀 읽어야할 게 있어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달라 그거로군. 근데 내 이야기 듣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걸. 아마도 젊은 학생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테니."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노인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참으로 더러운 시절이었어. 무지막지한 시대였지."

  나에게 서울 올림픽은 교과서에 적힌대로 개발도상국 한국의 저력을 보여준 국가적 이벤트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그 시절을 더럽고 무지막지하다고 회상하고 있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죽도록 얻어맞았어. 집은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그 땐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었지."

  나는 노인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법치국가이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그건 무법천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어디서요? 누가요?" 
  "아주 나쁜 놈들이 그랬지. 그들 눈엔 가난한 사람들이 벌레로 보였던 거야. 그래서 벌레를 죽이듯 마구 때리고 밟았지. 그런데 말이야. 우린 사람이었다구."

  나는 그 말을 하는 노인의 손이 덜덜떨리는 것을 보았다. 이제 이 노인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노인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읽으려던 전공책을 조용히 덮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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