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 같은 거 보면 말일세, 사자나 하이에나가 어떻게 사냥하는 줄 아나? 걔들은 웬만해선 한창때의 짐승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네. 그럼 어떤 걸 사냥감으로 삼느냐? 약하고 어디 다친 것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지. 내가 본 깡패놈들도 그러더군. 거긴 그놈들의 사냥터였어. 동네에서 제일 불쌍하고 없어 보이는 사람들부터 처내는 거야."
"거기라면...어딜 말씀하시는 건가요?"
"상계동..."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잠겨있는듯이 들렸다.
"못사는 사람들이 흘러흘러 모여들었더랬지. 그런데 올림픽이 열린다니까 서울에 그런곳이 있다는 게 챙피했던 거야. 그래서 윗대가리들이 결정했지. 밀어버리자, 밀어버리면 된다. 개패듯이 내쫓아 버리면 될 줄 알았던 게지."
"그래서 어르신도 그때 거기서 쫓겨났었나요?"
"낸들 별 수 있나? 거기 사람들 다 그랬지. 매일매일 시한폭탄 떠안고 사는 것 같았어. 언제 깡패놈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생각했으니까. 나중에 포크레인으로 동네 집들 밀리는 거 보니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더구먼. 더이상 가슴졸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저승사자 같은 저 놈들 꼴을 안봐도 되는구나 해서. 누군 죽도록 얻어맞아서 반병신으로 살고 그랬으니까. 그래도 어디 말할 데가 있어야지."
이야기를 하던 노인은 입이 마르는지 연신 침삼키는 소리를 냈다. 나는 창가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한 잔 뽑아왔다.
"고맙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율무차를 받아들었다. 상계동이라... 올림픽이 열릴 무렵에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의 땟국물을 아직 다 빼지 못할 때였을 것이다. 올림픽은 옷만 군복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은 정권의 총력적인 홍보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노인의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동네가 없어진 건가요?"
"암만. 포크레인 수십 대 들이닥치고 깡패놈들, 뭐 어중이떠중이 공무원들까지 길앞잡이들처럼 서있었지. 그런 건 당해낼 수가 없는 거여. 그냥 모래성 쓸려나가듯 부서지더만. 여자들하고 애들이 울부짖고, 난리도 그런 난리통이 또 있을까? 그래도 소용없었어."
노인의 손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노인은 컵에 남은 율무차를 바지에 조금 흘리고 말았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서 얼른 그걸 닦았다.
"이게 한번 떨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아. 아마 젊을 때 되게 맞아서 그런 걸 거야."
"거기, 그 깡패들한테요?"
"아냐, 이건 뭐... 전에 어디 끌려가서 그랬어."
참으로 노인의 팔자도 기구하네. 상계동에서는 살던 집도 뺏기고, 그 전에는 어딜 끌려가 되게 맞았다고 하고. 한편으로는 저 노인이 혹시 정신을 놓은 사람이라 횡설수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맨몸뚱이로 쫓겨난 게... 아까 걔 말야, 내 아들 녀석. 동민이가 다섯 살 때, 큰애가 열 살 되던 해였어. 동민이 갸가 좀 못배웠지. 가방끈이 짧아. 그래서 말본새, 행동거지가 그 모양인기라."
"그럼, 그때 어르신은 거기서 가족들 데리고 어디로 가셨어요?"
"열심으로 데모한 사람들은 명동에서 한동안 천막치고 살고 그랬는데. 난 사람들이 부천 쪽에 살 데가 있다 그래서 글루 갔지. 근데 놈들이 거기까정 쫓아오더만."
"아니, 왜요? 거긴 서울도 아닌데. 경기도 부천이면 올림픽하고 상관도 없잖아요."
"아, 그게, 성화가 지나간다는 거여. 그 횃불 들고 뛰는 거 말야. 그거 들고 뛰는 사람이 우리가 살기로 한 동네를 지나가니까 우리더러 거기 못산다고, 나가라고."
그 말을 하던 노인은 손에서 종이컵을 떨구었다. 나는 심하게 흔들거리는 노인의 손을 잠깐 잡아주었다. 다행히 컵은 거의 비어있어서 바닥은 닦지 않아도 되었다.
"긍께 말이지, 그 사달이 난 게 올림픽 때문이 아니냔 말이지. 내가 정말로 궁금했다니까. 도대체 뭐하는 것들이 와서 놀고 자빠졌길래 이다지도 못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하구. 궁리 끝에 올림픽 구경을 가보기로 했어."
"구경이요?"
"응, 구경. 폐막식 날 말야. 내가 거기 경기장을 빙빙 몇 바퀴를 돌았나 몰라. 날도 어둑어둑해지겠다, 가만 보니 뒷문에는 지키는 사람도 안보이더만. 그래서 수월찮게 들어갔지. 사방이 번쩍거리고 올림픽 공연이랍시고 눈이 뒤집히게 휘황찬란하데. 뭐 나중에는 강강수월래를 하고 춤추고 난리가 났어.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거여. 저 인간들은 이거 땜시 얼매나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는지 알기는 알까 싶어서. 그래서 내가 거기서 우쨌는지 아나?"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입가가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대한민국은 깡패들과 가진 놈들의 천국이다, 독재 국가다,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녔어. 양코쟁이 외국인들이 그 말을 뭔 수로 알아들어. 그저 실실 웃기나 하지. 어쨌든 그렇게 악이라도 쓰니까 내 맴이 좀 낫더라고."
마침내 노인의 손이 차분해졌다. 복도 중간에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느끼는 귀의 통증을 뻐근하게 느꼈다. 그것은 마치 1988년의 서울 상계동에서 2018년의 경기도 일산의 복지관으로 타임 슬립(time slip) 여행을 한 것 같았다.
"점심 시간이 끝났나 보네요. 아드님이 준 서류를 내러 가죠. 그런데 어르신 성함이..."
"선, 종, 호."
노인은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