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 Burnham: Inside(2021) 1시간 27분
Eighth Grade(2018) 1시간 34분
Make Happy(2016)  1시간 



1. 시작, 'Bo Burnham: Inside'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단편 소설 '여학생'. 서른 살의 남성 작가는 십 대 여학생에 빙의한 것처럼 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여학생의 내면 풍경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읽는 이들을 놀라게 만든다. 미국의 스탠드 업 코미디언 Bo Burnham의 2018년작 영화 'Eighth Grade'를 보면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렸다. 27살의 청년은 8학년(우리나라의 중학 3학년에 해당) 여학생 케일라의 내면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그려낸다. 코미디언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처음엔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등을 곧게 펴고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이 젊은 친구의 진정한 재능은 코미디가 아니라 영화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작은 'Bo Burnham: Inside(2021)'였다. Covid-19 전염병이 휩쓰는 시기에 번햄은 LA 집 작업실에서 자기 혼자 공연한 영상들을 그러모았다. 이 작품의 구성 방식은 간명하다. 각각의 소주제가 있고, 번햄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을 부른다. 때로 독백과 해설도 들어간다. 단순한 틀 안에서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매우 다양하다. 번햄이 주의깊게 다루는 부분은 인터넷 문화이다. 백인 여성이 올리는 흔한 인스타그램에 대한 뒤틀린 유머, sexting을 비롯한 SNS의 일그러진 단면, 아마존의 수장 제프 베이조스에 대한 신랄한 풍자... 물론 그 비판과 풍자의 중심 소재는 자기 자신이다. 번햄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자조적 성찰, 고립된 상황에서 겪는 불안과 우울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젊은 친구가 혼자서도 잘 노는구만!'하고 큭큭거리며 'Bo Burnham: Inside'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좀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인사이드'에서 그가 부른 자전적 노래 'Problematic'과 '30'에 짤막하게 드러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었는데 공황 장애가 왔고, 그 때문에 활동을 쉬어야만 했다. 'Make Happy(2016)'는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찍은 1시간짜리 스탠드 업 코디미 공연 영상물이다. 거기에는 '인사이드'를 만들어낸 번햄의 창작 원리랄지, 주요 관심사가 들어있다. 인종과 성을 주제로 하는 거침없는 유머, 자신에 대한 자학적인 풍자, 직접 창작한 랩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노래를 소화하는 가창력. 'Make Happy'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으로 16살에 스타덤에 오른 번햄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입증한다. 그 작품은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다. 'Welcome to Burnham World!'


2. Bo Burnham, 8학년 케일라가 되다!

  쉬는 기간에 만든 'Eighth Grade(2018)'는 번햄의 첫 영화 연출작이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8학년 여학생 케일라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동영상을 찍는 것을 보게 된다. 차분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케일라. 또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물에서 케일라는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나 말에 신경쓰지 말고 의연하게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정작 케일라 자신은 학교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 신세이다. 말수가 거의 없어서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애'로 뽑히기까지 한 케일라. 한마디로 존재감 없는 주변부 청소년의 전형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떡하면 나도 애들의 관심을 받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케일라의 '자신감 동영상'은 현실 은따의 이상화된 가상 캐릭터가 펼치는 공연인지도 모른다. 케일라는 틈만 나면 자신의 동영상을 올리고 조회수를 확인한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도 케일라는 쩌리 신세이며, 그 누구도 케일라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케일라는 강박적으로 인스타에 매달린다. 인기있는 애들을 팔로우하고 끊임없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이 아이가 애정과 소통을 갈구하는지를 입증한다.

  번햄은 십 대 시절에 이미 유튜브로 스타가 된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인터넷과 대중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이로서 '가상 공간'에 대한 탐구는 그의 주요한 관심사일 수 밖에 없었다. 'Eighth Grade'의 케일라는 어떤 면에서는 번햄의 열화(劣化)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정점에 올랐던 코미디언은 칩거의 시간에 들어갔고,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인사이드'는 다시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필사적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8학년이 된 번햄 '케일라'의 일상에 신나고 재미난 일은 하나도 없다. 싱글 파더인 아버지와는 데면데면하고, 학급의 퀸인 케네디에게 늘 무시당하고, 좋아하는 남자애 에이든은 케일라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인터넷과 SNS는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케일라의 실질적 조언자, 전자 스승이 된다. 번햄은 십 대 청소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 무시무시한 매체를 집요하고 깊이있게 탐구한다. 가상 공간에서의 소통과 관심에 대한 강박적 열망은 오히려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를 차단시켜 버린다. 케일라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소통을 바라는 아버지의 대화 시도를 번번이 거부한다.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케일라의 힘겨운 투쟁은 고등학생 라일리와의 만남에서 위기를 맞는다. 라일리는 '진실 게임(truth or dare)'을 빙자해 케일라에게 성적인 요구를 한다. '싫다'는 감정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사이에서 케일라의 내면은 극렬하게 요동친다. 이 영화에서 케일라가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표현하는 그 장면에서 케일라는 소리친다. 'No!'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도 케일라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그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통해 케일라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다.

  번햄은 청소년기의 주요한 특징인 '자기 중심성(Adolescent egocentrism)'이 인터넷이라는 매체와 긴밀히 결합한 현시대의 초상을 그려낸다. 전자 음악 작곡가 Anna Meredith가 담당한 음악은 그러한 주제를 잘 부각시킨다. 음악과 사운드는 케일라의 내면과 계속해서 공명한다. 케일라가 가슴이 뛰거나 놀라움을 느낄 때, 배경에 깔리는 음악 또한 과도하게 음량이 커진다. 그런가 하면 케일라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사운드는 꺼진다. 라일리의 차에서 내린 케일라는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집에 들어온다. 놀란 아빠가 케일라를 진정시키는 동안 관객은 무음으로 처리된 화면 속의 두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Middle school wasn't so great for me, but I'm past it now. And I'm moving forward, and you can do that too with high school if it didn't go great."
  (중학교 시절은 사실 좀 별로였죠. 하지만 이젠 다 지나갔어요. 난 계속 나아갈 거고, 여러분도 고등학교에서 그럴 거에요. 때로 힘들겠지만요.)


  케일라는 더이상 '자신감 동영상'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그렇게 덧붙인다. 진짜 자신, 현실 세계와 만나기로 한 케일라처럼 번햄도 이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Inside'에서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내내 1인극을 펼쳤던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멀끔하게 단장한 외모로 작업실 문밖으로 나간다. 조명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어색하고, 약간은 두려운 표정으로 그는 서있다. 번햄이 창작자로서 가지는 매우 중요한 재능은 자신의 상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적 관점, 그리고 영상물을 다루는 본능적 감각이다. 케일라와 번햄의 힘들었던 8학년은 지나갔다. 그가 'Eighth Grade'에서 보여준 청소년 세대와 사회 탐구, 'Bo Burnham: Inside'의 치열한 자기 성찰과 매체 통찰력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 친구야말로 진짜 영화를 해야한다, 고 나는 외치고 싶어졌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ighth Grade(2018)'에서 케일라 역으로 열연을 펼친 Elsie Fisher. 이 배우의 직관적인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Bo Burnham: Inside(2021)'의 한 장면. 이렇게 망가졌던 번햄은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원래 이런 외모의 청년이었다.



****Social Media의 어두운 면을 조망한 다큐 The Social Dilemma(202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social-dilemma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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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 비디오 여행'의 인기 코너인 '영화 대 영화'. 김경식의 맛깔나는 해설은 언제 들어도 즐겁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전창걸의 구수한 입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영화 'CODA'를 보면서 그 코너에 딱 맞는 영화네, 싶었다. 이 영화는 2014년에 만들어진 '미라클 벨리에(La Famille Bélier)'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작이다. 과연 'CODA'는 원작 영화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이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그냥 마음을 내려놓는 편이 낫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지는 범작이기 때문이다.

  작은 어촌 마을, 루비에게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오빠가 있다. 아빠와 오빠를 따라 뱃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 씩씩한 아가씨는 가족의 대변인 노릇도 하고 있다. 루비의 부모가 병원에 가는 일, 어촌의 조합 일을 비롯해 집안의 대소사는 말을 할 줄 아는 루비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일들이 버겁기는 해도 루비는 묵묵히 해낼 뿐이다. 학교의 동급생들은 루비가 CODA(Child of deaf adult, 청각 장애인을 부모로 둔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리며 무시한다. 그런 상황에서 별 생각없이 들어가게 된 합창반. 지도 교사 베르나르도는 루비의 재능을 발견하고 음대 진학을 권유한다. 하지만 집안의 생계가 걸린 뱃일은 루비의 도움이 없으면 해나가기 어렵다. 자신의 진로와 가족 사이에서 루비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루비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원작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주인공 폴라의 가족이 사는 농촌 마을은 어촌으로, 남동생은 오빠로, 파리의 음악 대학은 버클리 음대로 바뀐다. 내가 놀란 것은 등장인물들의 분장과 스타일링까지도 판박이처럼 베꼈다는 사실이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긴 수염을 기른 폴라의 아빠, 금발 머리를 늘어뜨린 엄마의 모습은 배우만 바뀌었을 뿐 '코다'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된다. 정말이지 감독 Sian Heder(본인이 시나리오도 썼다)는 배알도 없네, 하고 혀를 찼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 관객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은 따로 있다. 루비는 합창반의 마일스와 집에서 듀엣곡을 연습하는데, 부모의 침실에서 나는 소리에 방해를 받는다. 화가 치밀고 당황한 루비는 침실문을 거칠게 열어제낀다. 아무리 그래도 딸이 부모의 동침 장면을 보게 만드는 건 영 곤혹스럽다.

  그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청각장애인인 루비의 부모와 오빠가 루비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보이는 데에 있다. 가족은 작은 어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데, 루비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마저도 어렵게 된다. 이는 오리지널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벨리에 가족은 나름대로 먹고 살만한 부농이며, 폴라의 아버지는 시장 선거에 출마까지 한다. 'CODA'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좀 더 현실에 천착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도입부에서 루비가 배를 타고 가족과 조업을 함께 하는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다. 실제로 주인공 에밀리아 존스는 수화는 물론 연기를 위해 뱃일을 익혔다. 영화 속 루비의 책임은 꽤 무겁다. 가족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짐짝'이 된다.

  '미라클 벨리에'의 폴라가 고민하는 것은 끈끈한 애정으로 묶인 가족과의 이별이지,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다. 루비는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가족과 집안의 생계를 내팽개쳐야 한다. 루비에게 그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비가 실기곡으로 선택한 'Both Sides, Now'는 한 소녀의 성장과 독립이라는 주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노래에는 이제껏 잘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양면성을 바라보는 이의 심정이 담겨있다. 그처럼 루비도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차분하게 보고 싶어한다. 'Je vole(나는 날아올라요)'을 부르는 원작 영화의 폴라와는 달리 루비는 가족과 자신의 미래라는 양쪽(Both Sides)을 두고 고민한다.

  나는 아카데미가 이 영화에 작품상을 안겨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었다. 다양성을 수용하라는 요구에 뜨뜻미지근하게 움직였던 아카데미가 올해는 정치적 판단을 과도하게 했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상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CODA'에게 덥썩 상을 안긴 것을 보면 그렇다. 청각장애인 배우들의 열연, 제작 과정에서 여러 명의 통역사를 두고 비장애인 스태프와의 협업을 이루어낸 점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정치적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엄밀한 공정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CODA'가 3관왕(각색, 남우조연, 작품)을 차지한 일은 상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다.

  어설픈 짝퉁 같은 영화. 'CODA'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가?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 어떤 품격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루비는 대학에 합격해서 보스턴을 향해 떠난다. 남은 가족은 루비의 새출발을 격려한다. 이 가족이 루비 없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이 결말 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제목 'CODA'에는 악장, 악곡의 끝부분을 일컫는 뜻도 있다. 이제 막 루비와 가족의 작은 이야기 악장이 끝났을 뿐이다. 산다는 건 그렇게 불확실하고 모호한 가운데에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아이의 인공와우 수술을 두고 벌어진 청각 장애인 가정의 갈등, 다큐 Sound and Fury(200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sound-and-fury2000.html

***캐나다 시골 마을 두 친구의 성장과 독립, 다큐 Passage(202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assage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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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The Emancipation Proclamation)을 공포한다. 링컨의 선언문은 선포 당시 실질적 효력을 갖지는 못했다. 1865년에 수정 헌법 13조가 비준되고 나서야 흑인 노예들은 진정한 자유민이 될 수 있었다. 그 선언문은 남부 연맹에 대한 일종의 심리전술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이 선언문이 절실히 필요한 쪽은 링컨과 북부 연합이었다. 북부의 초기 전황은 불리했다.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야만 했다. 흑인 군대에 대한 아이디어가 그렇게 나왔다. 1월의 선언문 발표에 이어 3월에 흑인 병사로 구성된 연대가 조직되었다. 에드워즈 즈윅 감독의 1989년작 'Glory'는 매사추세츠 54 지원병 연대(54th Massachusetts Infantry Regiment)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소심하고, 무언가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은 젊은 장교를 보게 된다. 로버트 쇼(매튜 브로데릭 분)는 전투에서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가를 받는다. 그런 그에게 매사추세츠 54 연대를 지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군 역사상 흑인 병사들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부대였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지만, 등장하는 흑인 병사 캐릭터들과 그 이야기는 거의 허구에 가깝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류의 전쟁 영화를 만나면 무언가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영화가 실제와는 또 얼마나 다르게 조미료를 치고 가공했는지, 그걸 다 찾아보고 나면 허망해질 때가 많다. '영광의 깃발'도 그런 면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않다.

  오합지졸과 같은 초짜 흑인 병사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점차 진짜 군인이 되어간다.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병사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곁들여진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이러하다. 쇼의 어린 시절 친구로 기꺼이 부대원이 되는 토마스, 노예 출신으로 거칠고 반항적인 트립(덴젤 워싱턴 분), 부대원 가운데 연장자로 온화한 성품을 지닌 롤린스 상사(모건 프리먼 분), 쇼의 친구로 함께 부대를 이끄는 부하 장교 포브스가 있다. 군복과 군화 같은 보급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에 시달리는 연대의 모습, 흑인들을 향해 내뱉는 백인 병사들의 인종차별적인 언사, 무차별적인 방화와 약탈을 지시하는 폭압적 지휘관... 영화는 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조리와 모순을 조각조각 이어붙인다. 거기에 극적인 장면도 있다.

  트립은 탈영을 시도했다가 형벌로 공개 채찍질을 받게 된다. 트립의 벗겨진 등에는 그의 노예 시절을 암시하는 험한 흉터 자국이 보인다. 영화는 트립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통해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처지를 부각시킨다. 그런데 당시 군대에서의 채찍질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흑인 병사들이 정해진 급여 13달러(백인 병사에게만 해당)가 아닌 10달러의 차별적 급여에 반발하며 파업하는 사건은? 영화는 쇼가 부대원들의 파업에 동참해 자신의 급여 통지서를 찢어버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로버트 쇼가 그걸 찢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부대원들의 급여 파업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부모는 열렬한 노예제 폐지론자로 그 자신도 인본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화는 허구와 사실을 섞어 괜찮은 그림으로 직조해 나간다. 에드워드 즈윅은 드라마적 요소에 더해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을 효율적으로 배치한다. 이 영화가 갖는 미덕은 이렇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로서 적당한 선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가공의 인물들을 통해 관객을 미시사적 진실에 접근하도록 만든다.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롤린스 상사는 행군 도중에 마을의 흑인 아이들을 만난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한다. 그 장면은 그가 속한 흑인 연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매사추세츠 54연대의 그 누구도 죽음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남부 연맹은 흑인 병사는 물론이고 백인 지휘관까지 처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았다. 실제로 남군에 포로로 잡힌 흑인 병사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그러므로 흑인 병사들은 입대할 때부터 목숨을 내놓고 전장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원 입대해서 싸운 이유는 어떤 면에서 그들 자신 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있었다. 자신들은 비록 죽을지라도 어린 세대들은 노예가 아닌 미합중국의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롤린스가 어린 꼬마들에게 건네는 인사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마침내 영화는 부대원들이 비극적으로 전사하는 Fort Wagner 전투에 이른다. 난공불락의, 패배가 예견된 이 무모한 전투에서 쇼를 비롯해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스러진다. 영화는 포연이 남아있는 새벽의 풍경 속에 끝난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이후의 일은 이러하다. 관례대로라면 장교인 로버트 쇼의 시신은 북군에게 인도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남군은 그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쇼는 부대원들과 함께 묻혔다. 장렬하게 전사한 매사추세츠 54연대의 지휘관과 부대원들의 이야기는 당시 북부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로버트 쇼와 흑인 연대의 존재는 남북 전쟁에서 북부인들이 왜 싸우는가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감독 에드워드 즈윅에게 이 영화는 2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드라마와 액션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1994년에 내놓은 '가을의 전설'에서 즈윅은 'Glory'의 음악을 담당했던 제임스 호너와 또 한 번 같이 작업하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다. 흥행 면에서 높은 성적을 낸 '가을의 전설'과는 달리 'Glory'는 제작비를 겨우 상회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 역사적 사실과 몇몇 부분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광의 깃발'은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물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성찰하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일. 영화 'Glory'는 비참한 노예의 신분에 있던 흑인들이 인간, 그리고 시민의 권리를 얻기 위해 치루어야 했던 희생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남북 전쟁을 다룬 이안 감독의 영화 'Ride with the Devil(1999)'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ride-with-devil1999.html
 

***역사학자 Kevin M. Levin은 Smithsonian Magazine에 영화 'Glory'가 실제 역사와 어떤 부분이 다른지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썼다.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why-glory-still-resonates-more-three-decades-later-180975794/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매사추세츠 54연대를 이끌었던 Robert Gould Shaw. 그는 25살의 나이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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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돈의 색깔(The Colour of Money)
2부  치명적 영향(Fatal Impact)
3부  야만의 유산(A Savage Legacy)

러닝타임 2시간 56분



1. 노예제, 인종주의의 시작

  2007년, BBC는 노예제를 다룬 3부작 다큐를 내놓았다. 노예 무역 금지법(Slave Trade Act). 200년 전에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이 법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은 1807년에 노예 무역을 폐지했다. 미국의 남북 전쟁(The Civil War)을 촉발한 노예제의 기원에는 제국주의와 함께 시작된 인종주의(racism)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도구화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 과연 노예제(Slavery)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BBC의 3부작 다큐는 서구 식민주의의 추악한 맨얼굴과 그 어두운 유산을 냉철하고도 처절하게 응시한다.

  1부 '돈의 색깔'에서는 노예제의 근원적 동력이 경제적 논리였음을 밝힌다. 영국은 노예 무역의 선두주자였다. 1640년대부터 영국은 카리브해 식민지 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일꾼들을 조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식민지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서 노예 사냥꾼들은 닥치는 대로 원주민을 잡아들였다. 잡힌 흑인들은 목에 낙인이 찍혔고, 노예선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짐짝처럼 실려서 영국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보내졌다. 그것은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장사였다. 노예 무역으로 산출된 이득은 영국의 금융업을 살찌웠다.

  물론 영국이 본격적인 노예 무역에 나서기 이전에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원주민 학대와 착취가 선행되었다. 원주민 문제를 두고 1550년에 열린 바야돌리드 회의, 가톨릭 주교인 Bartolomé de Las Casas는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한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노예제를 두고 이후 서양에서 벌어질 첨예한 논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서양은 어떻게 노예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했을까? 거기에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9장 25절에는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아들이 형제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것은 노예제의 영속성을 옹호하는 증거로 여겨졌다.

  계몽주의자들은 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노예제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흑인들은 짐승에 가까운, 열등한(inferior) 존재이므로 그들에 대한 차별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인종주의를 뒷받침하는 주요한 학문이 등장한다. 다윈의 사촌이었던 Francis Galton의 골상학(Phrenology)은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사회적 진화론자(Social Darwinism)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것은 우생학(eugenics)의 시대를 예견하는 불길한 징조였다. 이제 다큐의 2부 '치명적 영향'에서는 인종적 차이를 우열로 분류하는 우생학이 제국주의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준다.


2. 인종주의의 전지구적 확장 

  영국은 1833년에 식민지에서의 노예제를 폐지한다. 식민지인들에게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고된 기독교 농부로의 전환에 지나지 않았다.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종의 비전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실패에 이른다. 태즈매니아 섬의 경우, 격렬히 저항했던 원주민들은 정착민들의 잔혹한 폭력과 질병에 노출되어 결국 절멸에 이르렀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사회적 진화론자들에게 인종적 열등함에 대한 증거로 인식되었다. 다른 대륙에서도 대규모의 원주민 학살이 있었다. 나미비아의 사막에 위치한 독일의 집단 수용소 'Shark Island'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 지역의 Herero 원주민들은 독일 정착민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결국 독일은 원주민들을 체포해 집단 수용소로 이주시켰다. 1905년에서 190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감된 원주민들은 노동력 착취, 기아, 강간을 비롯한 잔인한 폭력 행위에 노출되었다. 나치의 우생학자로 널리 알려진 Eugen Fischer는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수행했다. 이것은 이후 일어날 나치의 6백만 유대인 학살을 예고하는 핏빛 서곡이었다. 이제 제국주의의 유산인 인종주의는 전지구적으로 확대된다. 3부 '야만의 유산'은 그 무시무시한 파급의 실체를 보여준다.

  1885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를 개인 식민지로 삼고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해 나간다. 그는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이며 살인마였다. 천연 고무의 채취를 위해 동원된 원주민들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발이 무참하게 잘렸다. 고무를 비롯해 상아와 카카오도 수탈의 대상이었다. 벨기에 초콜릿의 명성에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들어있다. 콩고에서 나온 수익은 왕 개인의 사치와 화려한 건축물을 짓는 데에 쓰였다. 그 시기에 죽어나간 콩고인들의 숫자는 적게는 100만 명, 많게는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링컨의 노예 해방으로 흑인들이 자유를 찾았지만,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남북 전쟁 이후 남부는 독자적인 주 입법을 통해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주도해 나갔다. KKK단의 발흥과 함께 1882년에서 192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린치로 죽은 흑인은 3500명에 이른다. 노예제를 연구하는 미국의 교수는 당시 남부에서 판매된 엽서들을 보여주며 린치의 의미를 설명한다. 엽서에 인쇄된 사진들에는 린치당한 흑인들이 찍혀있다. 25센트 정도 하는 그런 값싼 엽서들은 남부인들의 일상에서 린치가 희화화된 오락이었음을 입증한다.


3. 새로운 시대의 인종주의

  195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힘겹게 인종주의의 철폐를 위해 싸우는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국가가 인종차별을 제도화하고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며 1976년에 흑인들은 소웨토 봉기를 일으켰다. 한편 영국은 식민지에서 이주해온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로 부각한다. 1981년의 인종 폭동, 1993년에는 스티븐 로렌스라는 흑인 청년이 5명의 백인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은폐했고, 2012년이 되어서야 두 명의 범인들을 재판에 세울 수 있었다. 그 사건은 제국주의가 남긴 길고 어두운 인종주의의 폐해를 드러낸다.

  다큐는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시작된 제국주의가 인종주의라는 괴물을 탄생시켰음을 주지시킨다. 무려 5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 추악한 유산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번성했다. 과연 인류는 인종주의가 남긴 잔재와 악습을 끊어낼 수 있을까? 미국의 대안주의 언론 'vox.com'이 최근 실은 기사는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를 언급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미국 최대 규모의 돼지고기 육가공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공장이 위치한 장소는 주에서 매우 낙후된, 하층민 주거지역이다. 그곳에서 내뿜는 분진과 오폐물은 오랫동안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해왔다. 그리고 이는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 요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주민들 대부분은 그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흑인들이며, 그들에게는 업체에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할 그 어떤 법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은 강력한 의회 로비를 통해 법적 규제 수단을 약화시켰다

  기사는 이를 '환경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로 규정한다. 그곳에서 가공된 베이컨 제품들은 아시아 여러 국가(한국도 포함)로 수출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소비자가 미국산 베이컨을 구매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종주의의 질기고도 오랜 유산을 마주하는 셈이다. 이렇게 미세화되고 일상화된 인종주의가 우리 곁에 자리잡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 시작점은 인종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않는 일에서부터일 것이다.        


*사진 출처: shadowandact.com



**'환경 인종주의'를 다룬 vox.com의 2022년 4월 1일자 기사
https://www.vox.com/future-perfect/23003487/north-carolina-hog-pork-bacon-farms-environmental-racism-black-residents-pollution-meat-industry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보스턴 미술관 소장
영국 화가 William Turner(1775-1851)의 '노예선(The Slave Ship, 1840)': 태풍에 전복된 처참한 노예선 사고를 그림


 
****이 3부작 다큐는 유튜브, documentarymania.com에서 검색 가능하다. 영어 자막은 캡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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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전쟁(The Civil War, 1861-1865)이 일어날 당시 남부의 인구는 9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흑인 노예 인구가 4백만 명이었다. 이는 면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남부의 경제 구조에서 노예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링컨은 노예 제도를 철폐하려고 했다. 남부인들 입장에서 그것은 재산인 노예를 잃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사회, 정체성 전부가 무너져 내리는 일이었다. 남부가 연방을 탈퇴하고 전쟁에 돌입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안 감독의 1999년작 'Ride with the Devil'은 남부인의 입장에서 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는 비정규 군사 조직인 'bushwhackers'는 노예제 철폐주의자들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감행한 일로 악명이 높았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민병대의 역할을 떠맡으며 북군을 공격했다. 'Ride with the Devil'에서 제이크(토비 맥과이어 분)는 친구 잭을 따라 엉겁결에 'bushwhackers'가 된다. 곧 그들의 무리에 백인 주인과 함께 다니는 흑인 다니엘도 합류한다. 그들에게 북군은 남부인들을 죽이고 남부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대적 악이다. 그 북군과 대적하기 위해 부대원들은 점점 더 잔혹해진다. 그렇게 전투가 거듭되면서 온화했던 제이크의 심성도 거칠게 망가져 간다.

  집과 가족, 공동체를 지킨다는 대의명분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희미해진다. 오직 무차별적인 살육과 방화만이 반복된다. 영화는 제복 입은 정규 군대의 전투 바깥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전장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제이크는 회의감을 느낀다. 이제 그를 싸움에 나서게 만드는 동력은 동료애에서 나온다. 잭의 죽음, bushwhackers 내부의 불화와 분열을 보면서 제이크는 남부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자각한다.

  이안 감독의 이 영화는 아마도 남부인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무겁고 어두운 남북 전쟁의 서사에는 어떤 극적인 반전이나 감동이 배제되어 있다. 이안은 이야기의 무미건조한 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어찌 보면 적당한 감동을 위한 영화적 타협을 거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잭과 젊은 과부 수의 러브 스토리가 짧게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마치 이야기의 구색맞추기용 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솔직히 러닝타임 2시간 28분(감독판 기준)이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보는 내내 심드렁했었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가고 있었다. 제이크는 잭의 아이를 낳은 수와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그는 평범한 한 가장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동료이자 친구, 흑인 다니엘도 자신의 길을 떠난다. 마침내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로 하고 인사를 나눌 때, 그들은 이제까지 불렀던 별명 대신 서로의 온전한 이름을 불러준다. 이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언가 가슴에 묵직한 감정이 올라옴을 느꼈다. 

  제이크는 독일인 이민자의 후손이었고 다니엘은 흑인이었다. 그들은 미국 사회 내부의 비주류, 변방에 자리한 이들이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 주변부의 사람들은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았다. 제이크와 다니엘이 남부 게릴라군이 된 것은 정치적 신념이 아닌 인간적 의리 때문이었다. 이안은 껍데기로 남은 정치적 대의명분에 냉소를 보낸다. 'Ride with the Devil'에서 전쟁은 인간 내면의 감성적 영역에 자리한 우정, 연대 의식, 충성심과 긴밀한 접점을 가진다. 제이크와 다니엘의 작별 장면은 어떤 면에서 남북 전쟁에서 스러진 무수한 개인들에 대한 호명이다. 그것은 북부 연방이나 남부 연맹에 속하지 않는 불행한 주변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이안은 자신의 실패한 영화에서 전쟁의 회색 지대에 자리한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이 영화에서 주인공 제이크와 잭은 미주리주 출신이다. 당시 미주리주는 노예제 찬성주였다. 미주리주의 싸움꾼들(Border Ruffian)은 인접한 켄터키주로 넘어가 노예제 폐지론자들 공격하는 일이 많았다. Ken Burns의 다큐 'The West(1996)' 4편에 그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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