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뿐이다
나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심사평을 읽는다
언어라는 것은 얼마나 우습고 복잡한가
지금 막 써넣은 '장님'이란 단어가
자기검열에 걸린다 요즘 세상에
'장님'이란 말을 써도 되는지 잠깐, 생각해 본다
아니, 심사평에 대한 시를 쓰려는데
초장부터 '장님'이란 단어에서 걸려 넘어진다
자, 그럼 '장님' 대신에 '시각장애인'을 쓰면 어떨까
이건 좀 뭔가 밋밋한 느낌이 난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장님'으로 밀고 나가자
언어를 단련하는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응모작들이 많았다,
고 어느 심사위원은 한탄했다
언어를 단련하라고? 언어가 칼이니?
불에다 달구어서 두들기고 단련하게?
결국은 당신들 입맛에 맞는 거, 그런 거 뽑은 거겠지
그러니까, 당신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언어를 탐하라는 거지
코끼리를 읽는다
코끼리를 만진다
코끼리 다리를 살짝 꼬집어 본다
싸구려 커피 한 잔에도 감사하며 이렇게 코끼리를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