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비


내일은 비 예보가 있다
아침 햇살은 넉넉하니
서둘러 빨래를 한다
엄마가 오래전 수술
자국이 아프다고 말하면
다음날 꼭 비가 왔다
내 오른쪽 귀가 따끔,
거리면 비가 온다
다음날, 아니 그
다음날에도 비가
몇 방울이라도 온다
오후 늦게 이불 빨래를
걷는다 다가오는
비의 기운이 찔끔
거리며 돋는 노랑
차렵이불에는 조금
있으면 누런 송화
가루가 묻어날 것이며
누리끼리한 장마의
손거스러미가 떨어질
것이다 빨래 건조기에는
이러한 노글노글한
낭만이 없다 따끔,
다시 한번 오른쪽 귀의
신경이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아팠던 모든
것들은 자신의 눌렸던
슬픔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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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사라다


엄마는 사라다를
정말 잘 만드셨어
요리를 좀 하시는
편이었지 하지만
난 엄마처럼 그런
재주는 없어 가만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더군 아주 간단한
이유 그건,

절대로 레시피를
따라서 하지
않기 때문이야

무슨 요리의 대가도
아니면서 계량컵과
스푼은 철저히
무시하며 요리의
순서도 바꾸어버려
뭐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귀찮아서 그래

최근에는 나만의
새로운 요리를
개발했어
냉장고에는 이런
저런 식재료들이
굴러다니기 마련이지
그런 자투리들을,

죄다 그러모으는 거야

견과류 조금
파프리카 몇 조각
살짝 물크러지려는
양상추 한 움큼
조각난 햄
옥수수 통조림
그리고 뭐가 있더라
그래, 귀리가 있었지

마요네즈에 버무리고
밀폐용기에 나누어
넣고 냉동실로
보내버려

그게 무슨
맛이냐고?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생각보다
고달파 맛에
집착하는 삶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야 천천히
읽으면 어차피
똑같은 걸
사라다 사라다
사라다 냉동
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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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간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화장실 청소는
이상하게 하루 이틀씩
미뤄져 일요일에
하던 것이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그렇게 미뤄지다
한 달 만에 일요일
악보의 도돌이표

무대공포증에 걸린
피아니스트는
다시는 무대에서
연주를 못할 것
같은 심정이 되어
갖고 있는 모든
악보를 내어다
버릴 궁리를 하지

매일 음계 연습을
하지만 암만 궁리해
봐도 이걸로 먹고
살 방편은 참으로
요원하며 눈물나게
궁핍하며 짠하게
소름이 돋고
소금물을 들이킨
심정이 되어 버려

하기 싶지 않은 때에
하기 싫은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한다,
고 누군가 주제넘게
충고하더군 참으로
오랫동안 너는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이야기만
써내려고 했어

화장실 청소같은
불편한 인생의
모서리 가만히
고개를 수그려
쓰고 싶지 않은
이 시간에
쓰고 싶지 않은
이 시를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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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專業主婦)


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요
인터넷 게시판에
나이 오십의 주부가
글을 썼다 전문직
친구가 마냥 부럽고
남편은 자신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군
누군가 위로하길
인생에서 비교는
무의미해요 자신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죠 진짜 그러냐
그런지도 모른다
비교는 찌그러진
얼굴의 지름길이다
타인의 행복을
곁눈질하며 아픈
상처에 빙초산을
들이붓고는 왜 삶이
이 모양인가 무수히
묻다가 쇼핑몰 앱에
고개를 콕 파묻는다
지뢰가 깔린 상품들의
홍수림(紅樹林)에서 빠져나올
구멍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마음의 누추한
평화를 찾기 위해
들락날락하면서
그렇게 또 멀미나는
하루의 끝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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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미래


말라비틀어진 눈에
인공눈물을 넣고
시를 쓴다 시란 본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국을 끓여먹을
수도 어디다 내다 팔
수도 없다 그저 마음이
괴로운 이들이 파고 또
파는 무수한 우물일
뿐이거늘 너는 한밤중에
시를 쓰고 있는가 아마도
그것은 이 시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다 지금 듣고
있는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19일 전에 세상을 떴다
그의 음반을 듣는 동안
나는 그의 영혼과 이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예술은 영매(靈媒)이며
신성한 것을 지상에
중계한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것에
접속할 뿐이다 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의 시간과
그 시간을 사는 독자를
향한다 나는 그 독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얼어붙은
변방에 살고 있는 자의
바늘 같은 뾰족한 눈물과
푸르스름한 의지의 신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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