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층 아파트의 이사에 거대 사다리차가 사용되지만, 아주 예전에는 아파트 옥상의 곤돌라(gondola)가 쓰였다. 거기에 이삿짐을 싣고 몇 번을 오르내리면 이사가 끝났다. 이토 치쇼(伊藤智生) 감독의 영화 '곤돌라(Gondola, 1987)'에서 남자 주인공은 곤돌라에 타서 빌딩의 외벽을 청소한다. 영화의 도입부는 아찔한 부감 쇼트로 청소부 료가 곤돌라에서 고층 빌딩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이다. 뜨거운 여름 날, 고공에서 빌딩 창문을 닦아내고 있는 료는 창문 너머 사무실 풍경을 들여다 보게 된다. 잘 정돈된 사무실에서 직원들은 저마다 바삐 일하고 있다. 부러움인지 자괴감인지 모를 감정을 느낀 료는 곤돌라에서 발밑의 도시 풍경을 응시한다. 료의 눈에 비친 마천루의 협곡에는 푸른 바닷물이 일렁인다.

  도시의 최하층 노동자로서 료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 고급 레스토랑의 외벽 창문을 청소할 때, 료를 보게 된 외국인 손님은 웨이터를 불러 항의한다. 료는 그의 눈앞에서 당장 치워져야 할 물건과 같은 존재가 된다. 웨이터는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으로 간단히 문제를 해결한다. 료가 청소하는 고층 빌딩과 고급 주거지와는 달리, 그의 단칸 자취방은 누추하기 짝이 없다. 료가 고향에서 보내온 택배 상자를 열어 어머니의 음식을 맛볼 때, 화면은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뀐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된 료의 과거는 바닷가 어촌 마을의 청년이다. 그렇다. 료가 빌딩숲에서 바다를 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홀로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 알콜 중독자 아버지, 가난한 살림. 료는 그곳을 떠나 도시의 빌딩 청소부가 되었다.

  삶이 외롭고 힘든 것으로 치자면,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소녀 카가리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는 불화로 헤어졌고, 함께 살고 있는 엄마는 카가리에게 무관심하다. 카가리의 집 곳곳은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다. 엄마는 자신의 침실에서 보이는 카가리의 방을 블라인드로 가려버린다. 이 아이가 유일하게 마음을 주는 대상은 흰색 카나리아 새 치토. 그런데 이 새가 다친다. 피범벅이 된 새를 손에 들고 서있던 카가리를 마침 창문 청소를 하고 있던 료가 보게 된다. 새의 치료를 도운 료에게 카가리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얼핏 보기에 '곤돌라'는 영화과 졸업생이 만든 졸업작품 같다는 인상을 준다. 가난하고 외로운 청년과 상처받은 소녀. 둘의 우정은 료의 고향 마을 여행으로 더 깊어지고 풍부해진다. 카가리가 치토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하자, 료는 관까지 만들어서 정성스럽게 새의 장례식까지 치뤄준다. 도무지 현실이라면 있을 법하지 않은 동화같은 이야기. 약간은 어설퍼 보이는 이 영화를 반짝거리게 만드는 것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빼어난 풍광과 서정성이다. 감독 이토 치쇼의 이 첫 영화에는 열정과 순수함이 존재한다.

  빚까지 내서 어렵게 영화를 찍었지만, '곤돌라'는 일본 국내에서 개봉관조차 잡기 어려웠다. 정작 영화가 호평을 받은 곳은 해외였다. '곤돌라'는 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어 관심을 받았다. 이토 치쇼는 1987년 요코하마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감독은 더이상 독립 예술 영화를 찍지 않았다. 반전(反轉)의 삶. 이 감독의 영화 여정에서 '곤돌라'는 분명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었다. 그는 '곤돌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AV(Adult Video)를 찍다가 아예 그 길로 들어섰다. 이름도 바꾸어 버렸다. 본명을 버리고 'TOHJIRO'라는 이름으로 무려 1000여 편에 이르는 AV를 찍었다. 이토 치쇼, 아니 토지로는 일본 성인 영화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영화에 대한 초심을 버린 변절자인가? '곤돌라'에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이 감독의 관심이 분명히 드러나 있기는 하다. 엄마가 죽은 새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가리는 샤워중인 엄마에게 분을 터뜨린다. 벌거벗은 엄마는 딸을 거칠게 밀쳐낸다. 그 장면 말고도 영화에는 목욕 장면이 또 있다. 나중에 카가리가 료의 고향 마을에 갔을 때, 료의 모친은 카가리와 함께 목욕을 한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늙은 여성의 나신은 삶의 고통을 견뎌낸 몸이다. 료의 모친은 카가리가 엄마에게 상처받은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도록 만든다. 그렇게 료의 모친의 몸은 카가리 엄마의 젊은 육신과 대비된다.

  '곤돌라'의 원판 네거티브 필름이 손상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토 치쇼는 자기 돈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했다. 그렇게 복원한 영화로 2017년, 무려 30년만에 영화를 재개봉한다.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 반응이 좋아서였을까? 그가 '곤돌라'를 잇는 두 번째 영화를 찍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출처 ja.wikipedia.org). 자신의 영화 인생 대부분을 AV에 헌신한 이 노년의 감독이 어떤 영화를 내놓을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어떤 면에서 영화 '곤돌라'는 이토 치쇼에게 평생을 두고 넘어야할 산 같은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른 살 청년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 세상을 향한 순수의 외침, 그 모든 것이 '곤돌라'에 봉인되어 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세월의 힘을 견뎌낸 영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ameblo.jp
영화 도입부의 부감 쇼트. 료가 작업하는 곤돌라가 보인다



당시 신인배우였던 료 역의 Kai Kenta와 카가리 역의 Uemura Keiko는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두 배우의 연기 작업은 이 작품 이후로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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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한테 정원이나 잘 가꾸라고 해.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내버려두는 건 죄악이니까."

  남편은 여자가 생겼다고 고백한다. 이 부부는 결별을 앞두고 있다. 나탈리는 해마다 여름이면 남편의 별장이 있는 해안가 마을을 찾았다. 별장의 정원은 나탈리의 애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이제 나탈리가 그곳을 찾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별장에서의 마지막 휴가, 그렇게 25년의 결혼 생활은 끝을 향해 간다. 미아 한센-뢰베(Mia Hansen-Løve)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 2016)'은 중년의 위기를 마주한 철학 교사 나탈리의 힘겨운 여정을 담는다.

  적어도 남편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탈리의 삶은 괜찮았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나탈리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이다. 이제 생의 마지막에 접어든 나탈리의 모친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병고와 외로움을 호소한다. 한밤중에,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나탈리는 엄마의 호출을 받는다. 몸이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구급대를 부르는 것은 일상이다. 구급대원은 나탈리에게 모친을 챙기라며 한소리를 한다. 그 누구보다 딸의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 늙은 엄마. 나탈리는 엄마를 돌보는 일에 점점 지쳐간다.

  그런 나탈리에게 남편은 만나는 여자가 있으며, 자신은 곧 집을 나갈 생각이라고 알려준다. 남편은 나탈리와 같은 철학 교사로서 두 사람은 삶과 지성의 공동체를 나름대로 잘 꾸려왔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무너져 내릴 기세이다. 엄마와 남편, 의지하고 믿었던 가족은 인정사정없이 나탈리를 마구 흔든다. 거기에다 평생을 두고 해온 일도 난관에 부딪혔다. 나탈리의 철학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젊은 세대의 가벼운 취향에 맞추라며 은연중에 압박을 가한다. 철학을 진지하고 엄격하게 받아들이는 나탈리는 그런 출판사의 요구가 못마땅하다. 학교에서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한창이다. 시위 학생들은 나탈리를 꼰대 기성 세대로 치부한다. 일과 가정, 이 중년의 여자는 위기에 처해있다.

  영화에서 나탈리 역을 연기한 배우는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위페르는 65살이었다. 이 뛰어난 배우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인생의 위기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중년의 나탈리, 그 인물 자체가 된다. 철학을 전공한 젊은 제자 파비안과의 미묘한 관계, 신뢰를 배반한 남편에게 냉담함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하는 모습, 끊임없이 자신의 애정을 갈구하는 엄마에 대한 애증의 감정... 위페르는 그 모든 것을 실제 자신의 모습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관객을 나탈리의 삶 속으로 순식간에 들어가게 만드는 놀라운 흡인력은 이 배우의 저력을 가늠하게 만든다. 감독 미아 한센-뢰브의 차분하고 치밀한 연출은 그런 위페르의 연기와 깊이 공명한다.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았던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떠났고, 버겁다고 생각했던 모친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다. 나탈리는 철학교사로서 학생들의 지적인 성장을 돕는 삶을 살아온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나탈리에게 철학은 단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준칙이다. 학생들에게 시민의 자유와 정치 체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할 때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는 인생의 고통을 돌아보며 파스칼(Blaise Pascal)을 이야기한다. 물론 철학적 가르침과 삶을 조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탈리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버스 속에서 눈물을 쏟는다. 그러다 우연히 버스 창밖으로 남편과 새 연인을 목격한다. 울음은 허탈한 웃음으로 바뀐다. 아끼는 제자 파비안은 나탈리에게 실천이 결여된 부르주아의 삶을 살고 있다고 비난한다. 나탈리는 인간 관계의 허망함과 삶의 불확실성을 마주한다. 그런 힘든 시기에 나탈리가 의지하는 대상은 철학이 아니라, 엄마가 남긴 뚱뚱한 고양이 '판도라(Pandora)'이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는 신이 봉인한 온갖 고통과 슬픔의 상자를 여는 여인이다. 그 판도라처럼 나탈리도 뜻하지 않은 중년의 문제 상자를 열어 보게 된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탈리가 판도라를 부둥켜 안으며 울 때, 관객은 이 냉철한 중년 여성이 삶의 고비를 힘겹게 통과하고 있음을 본다.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 영화 속 나탈리가 겪는 상실감과 고통은 우리 모두가 지금 마주하는, 또는 먼 미래에 그렇게 될 인생의 보편적 단면들이다. 영화의 마지막, 나탈리는 성탄 저녁에 어린 손주를 어르며 평화로운 미소를 짓는다. 아내, 엄마, 딸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온 한 여자. 관객은 이제 나탈리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평화를 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아 한센-뢰브는 그렇게 '중년'의 관문을 지나는 여자의 내적 분투와 그 궤적을 담담히 따라간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홍콩의 여성 감독 허안화(Ann Hui)의 '여인 사십(女人 四十, Summer Snow, 1995) 리뷰. 이 영화도 중년 여성의 삶의 위기를 다룬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7/summer-snow-1995.html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Home(2008)'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ursula-meier-home2008-sister201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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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 11일, 비버리 힐즈 호텔에 머물고 있던 가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48살, 한 시대를 풍미한 팝의 여제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Nick Broomfield와 Rudi Dolezal의 다큐 'Whitney: Can I Be Me(2017)'는 타고난 재능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으나, 결국 불운한 개인사와 약물 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삶을 조망한다. 다큐는 휘트니의 가족과 지인들의 인터뷰, 실황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비디오 아카이브 자료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재능. 스타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휘트니 휴스턴은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휴스턴의 모친 씨시 휴스턴은 잘 알려진 가스펠 가수였다. 두 명의 사촌도 음악계에 몸담고 있었다. Dionne Warwick은 유명한 가수였고, Leontyne Price는 이름있는 소프라노였다. 십 대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무대에 올랐던 휘트니는 모델 활동도 병행하면서 이름을 알려나갔다. 휘트니의 재능은 얼마 지나지 않아 Arista 레코드사의 수장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눈에 띈다. 첫 앨범이 나온 때는 22살, 휘트니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신이 주신 목소리'라는 찬사와 함께 휘트니는 단숨에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휘트니 휴스턴과 계약을 맺은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팝 음악계의 거물로 무엇이 돈이 될지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휘트니가 가진 흑인 여가수로서의 소울(soul) 감성을 철저히 무시했다. 대신에 휘트니의 노래를 팝 음악 주류 소비자인 백인들의 감성에 맞추었다. 그 결과 휘트니는 잘 나가는 팝 가수가 되었지만, 흑인 음악계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재능있는 여가수는 자신이 가진 팝 음악적 상품성과 진정으로 하고 싶은 노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느라 애를 썼다. 휘트니가 나중에 음반사와의 힘겨루기 끝에 내놓은 소울 발라드는 큰 인기를 끌었다.

  다큐는 가수로서 놀라운 경력을 쌓아가는 휘트니의 여정 속 주요 인물들을 불러낸다. 로빈 크로포드는 휘트니의 고향 친구로 갑작스런 스타덤에 오른 휘트니를 지탱해주는 정서적인 중심축이었다. 휘트니는 로빈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문제는 로빈이 동성애자라는 데에 있었다. 휘트니의 모친 씨시 휴스턴이 둘의 관계를 반대했음에도, 휘트니는 로빈을 자신의 사업 파트너와 친구로 곁에 머물게 했다. 그런 가운데 한 남자가 등장한다. R&B계의 악동 보비 브라운은 전형적인 '나쁜 남자'였다. 그는 복잡한 여자 관계와 사건 사고로 유명했다. 보비는 곧 휘트니의 남편이 되었고, 자신의 아내 곁에 있는 로빈과 극렬히 대립한다. 다큐의 중반부를 차지하는 1999년의 유럽 투어 실황 공연과 무대 뒷편의 촬영 장면들은 보비와 로빈의 갈등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 즈음, 휘트니가 십 대 시절부터 접한 마약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로빈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약물과 음주 문제를 가진 보비는 휘트니의 상황을 악화시키며, 경쟁자 로빈이 떠나가도록 만들었다. 조금씩 무너져 내리던 휘트니의 경력은 오랜 친구를 잃으면서 결정타를 맞는다. 실패한 재활 치료, 불화한 남편과의 이혼, 망가진 목소리... 그렇게 휘트니는 대중의 눈에서 멀어졌다. 그 시기에 휘트니는 재정적으로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경력의 초창기부터 휘트니의 자산을 관리한 가족들은 돈을 물쓰듯이 써댔다. 이 여가수는 경제 공동체가 된 가족의 수익원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재능있는 여가수는 호텔방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휘트니의 유일한 혈육인 보비 크리스티나는 나중에 22살의 나이로 엄마와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여가수는 천부적 재능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나쁜 남자를 만났고, 약물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후대의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는 그런 휘트니 휴스턴의 삶과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Asif Kapadia의 다큐 'Amy(2015)' 또한 뛰어난 여가수의 비극적 삶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본이 지배하는 음반 산업, 그리고 그런 시스템에서 탄생하는 인기 가수, 그들을 나락에 빠뜨리는 약물 중독의 문제. 다큐 'Whitney: Can I Be Me(2017)'는 천재 여가수의 고통스러운 삶의 이면을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게 만든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Asif Kapadia의 다큐 'Amy(2015)'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7/kramer-vs-kramer1979-hilary-and.html


***영화 'Set It Off(1996)'리뷰
다큐 속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유럽 투어 중에 호텔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다. 그 영화는 흑인 여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 'Set It Off(1996)'이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1996-set-it-off19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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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복(薄福)하다. 복이 없거나 팔자가 사나움을 일컫는 말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엄마(Mother, 1952)'를 보고 있노라면, 주인공인 엄마의 삶에 저절로 그 말이 떠오른다. 패전 직후의 일본, 세 아이의 엄마 마사코는 장남을 병으로 잃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도 세상을 뜬다. 이 엄마는 이제 18살이 된 큰딸 토시코와 어린 딸 히사코, 그리고 여동생의 아들 테츠를 보살펴야 한다. 모두가 어렵고 가난한 시절, 가족은 집 한 켠을 개조해서 세탁소를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일을 도와주는 남편의 친구 키무라도 언제까지 있을 형편이 아니다. 엄마는 입이라도 덜기 위해 작은딸을 큰숙부 내외에게 보내려는 참이다.

  분명 전쟁은 끝났다. 그럼에도 이 영화 곳곳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전쟁 이전에 남편 로사쿠가 운영하던 세탁소는 아주 잘되었고, 그것으로 가족은 안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는 동안 가족의 삶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했던 아들은 열악한 노동 여건 속에서 병을 얻는다. 남편은 어떻게든 세탁소를 다시 열어보려고 애쓰다가 과로로 쓰러진다. 엄마의 여동생 노리코는 만주에서 남편을 잃었다. 세탁소 일을 돕는 키무라는 전쟁 포로로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어렵게 생환했다.

  남편의 장례식에 모인 마을 여자들은 전쟁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한다. 마사코가 작은딸을 맡기려는 큰숙부 내외는 징병으로 끌려나간 아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큰숙모는 아들의 사진을 놓고 거미를 실에 묶어 길게 내려뜨려 본다. 거미가 움직이자 아들이 살아있는 것이라며 내심 희망을 가져본다. 군부와 지배 계급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일본 국민의 삶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영화 '엄마'의 주인공 마사코는 그 전쟁의 여파를 자신의 삶에서 견뎌내는 중이다. 마사코는 아픈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고 싶지만, 그러려면 집안 살림을 다 팔아야할 지경이다. 그걸 아는 남편은 한사코 병원에 가기를 거부한다. 남편과 아들의 죽음, 그리고 작은 딸과의 이별. 그 모든 것은 전쟁이 가져다준 가난과 이어져 있다.

  나루세 미키오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 가족의 삶을 마냥 신산스럽게 그려내지 않는다. 영화 '엄마'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큰딸 토키코는 마을 빵집 청년 에이지와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다. 세탁소를 찾는 진상 손님들과의 일화, 토키코가 마을 축제의 노래 경연에 참여하는 장면, 가족이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은 전후 일본 민중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 온기의 중심축에는 엄마 역을 연기한 타나카 키누요(田中絹代)가 있다. 생의 대부분을 독신으로 지냈던 이 배우는 자신의 삶에서 '엄마'였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타나카 키누요가 보여주는 연기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며,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성은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영화 '엄마'에는 큰딸 토키코의 내레이션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점은 전지적인 관찰자의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오직 관객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다. 마사코는 가족이 평화롭게 지냈던 시절의 추억을 병석에 누운 남편과 공유한다. 토키코는 엄마의 재혼 소문에 대한 근심을 에이지에게 토로한다. 큰숙부네로 온 히사코는 자신이 그린 엄마의 초상화를 벽에다 차마 붙이지 못하고 책상 서랍에 조용히 넣는다. 아이는 그렇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감춘다.

  영화의 마지막, 키무라상이 떠나고 세탁소일을 돕기 위해 16살 소년이 집에 들어온다. 늦은 저녁, 소년은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려다 잠이 들었다. 마사코는 '어머님(おかあさん)께'라는 글씨를 보며 소년에게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이 엄마는 여동생이 곧 데려갈 장난꾸러기 조카의 장난을 기꺼이 받아준다. 주변의 모든 것을 보살피며 어려움을 감내하는 어머니의 삶. 토키코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묻는다. '엄마는 정말로 행복한가요?' 나루세 미키오는 어둠이 내려앉은 집 앞의 풍경과 함께 영화를 닫는다. 영화 '엄마'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한 여자, 아내, 어머니의 가슴 저린 초상을 그려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큰딸 토키코 역을 연기한 카가와 쿄코(香川京子)는 전후 일본 영화계를 풍미한 여배우였다. 이 영화에서 카가와 쿄코의 데뷔 초기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흐르다(流れる, Flowing, 1956) 리뷰. 타나카 키누요는 이 영화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flowing-19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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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미족의 잊혀진 진실과 슬픔, Sami Blood(2016)

  사미족(The Sámi)은 스칸디나비아 북부 대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을 일컫는다. Amanda Kernell의 2016년작 'Sami Blood(스웨덴어 제목 Sameblod)'는 바로 그 사미족 소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노년의 엘라 마리아가 여동생의 장례식을 위해 사미족 마을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의 환대에 친근감을 느끼고 머무르고 싶어하는 아들과는 달리 엘라 마리아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급기야 엘라 마리아는 근처 호텔에 머물겠다며 마을을 떠난다. 젊은이들로 가득찬 클럽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엘라 마리아는 화려한 불빛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때는 1930년대, 스웨덴 북부 사미족 거주지에 사는 어린 자매 엘라 마리아와 은제나는 어머니 곁을 떠나야만 한다. 스웨덴 정부의 사미족 동화 정책에 따라 강제로 기숙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 그곳에는 자매와 같은 처지의 사미족 아이들이 모여있다. 외딴 산골에 위치한 학교에는 강압적인 여교사가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육한다. 아이들은 사미족 언어로 말하면 회초리를 맞는다. 언니 엘라 마리아는 스웨덴어를 열심히 배우며 웁살라에 가는 꿈을 품는다. 그와는 달리 동생 은제나는 사미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긴다. 조금씩 멀어지는 언니와 동생. 과연 이 자매 앞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미족 동화 정책은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북부 유럽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영화 속에서 스웨덴 정부 연구소 사람들은 아이들을 발가벗겨서 신체를 계측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 장면은 '동화 정책'이 인종주의와 우생학에 기반한 열등 민족 관리의 일환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교사는 웁살라의 학교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엘라 마리아의 바람을 비웃는다. 이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교사는 사미족의 머리는 좋지 않으며, 순록 목축이 사미족의 운명이라고 일러준다.

  학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사미족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욕적인 언사와 욕설을 퍼붓는다. 그 말에 항의하는 엘라 마리아는 청년들에게 붙잡혀 귀의 일부분이 잘리는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엘라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작은 칼을 빼앗아서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지른다. 그 칼은 사미족이 소유의 표식으로 순록의 귀에 흔적을 남길 때 쓰는 도구이다. 그렇게 엘라 마리아의 귀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는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국가가 사미족에게 저지른 학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는 스웨덴인이 되려는 엘라 마리아의 치열한 몸부림을 따라간다. 엘라 마리아는 학교에서 도망쳐 웁살라로 향한다. 스웨덴 청년과의 연애, 그곳 여학교에서의 생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가족을 찾기까지의 여정. 영화의 내러티브와 전반적인 만듦새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Sami Blood'에는 잊혀진 진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사미족 아이들이 언어와 전통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으며, 구조적인 차별 속에 살았음을 그 자체로 증명한다. 사미족의 정체성 대신 스웨덴인으로 살아온 엘라 마리아의 삶이 행복했었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언니는 사미족 전통 의상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용서해 달라'고 말할 뿐이다. 용서를 청해야하는 주체는 엘라 마리아가 아니라, 폭압적 인종 동화 정책을 편 국가 권력이라는 점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깨닫는다.   


2. 사회주의 쿠바 영화의 전형적 풍경, The Last Supper(1976)

  오늘 영화 글의 여정은 북부 유럽에서 이제 쿠바로 향한다. 바깥의 영화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나라를 영화로 만나는 여정이다. 이 영화의 감독 Tomás Gutiérrez Alea는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고국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과 맞물려 그의 영화 작업은 당연히 국가 주도의 영화 산업과 긴밀한 연관을 맺었다. 1959년, 쿠바 혁명 정부는 'Instituto Cubano del Arte e Industria Cinematográficos(ICAIC)'을 설립했다. ICAIC는 쿠바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총괄하는 단체로 이곳의 역사가 쿠바 영화사이기도 하다. 영화 'The Last Supper(La última cena, 1976)'는 ICAIC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어떤 영화가 정치적 선전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고 해서 미학적 성취와 배치(背馳)되지는 않는다. 나치 시절에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만들어낸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 1935)''올림피아(Olympia, 1938)'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영화 'The Last Supper'는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시종일관 거칠고 직설적이며, 무엇보다 매우 지루하다. 잘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게 되었는데, 거의 2시간 동안 설교조의 웅변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참으로 괴로울 것이다.

  1790년대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쿠바.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소유한 스페인 귀족 백작은 성삼일(聖三日,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이르는 성주간의 목 금 토요일)을 맞이해 특별한 행사를 기획한다. 바로 자신의 농장 노예 12명을 뽑아, 예수의 최후 만찬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 농장 감독 돈 마누엘은 백작의 명에 따라 무작위로 만찬에 초대받을 노예 12명을 뽑는다. 도망쳤다는 이유로 마누엘에 의해 귀가 잘린 반항적 노예 세바스찬도 만찬 식탁에 초대받는다. 예수의 성삼일 전례를 따라하려는 백작은 노예들의 발을 씻기고 입을 맞춘다. 백작은 온갖 음식들이 차려진 식탁 중앙에 자리잡고 좌우의 노예들을 둘러보며 설교를 시작한다. 노예들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동안, 세바스찬은 백작에게 침을 뱉는다. 늙은 노예는 자신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애원한다. 예수 흉내 내기에 심취한 백작은 그 모든 상황에서 관대함을 보여주는데...

  무려 48분에 이르는 백작과 노예들의 만찬 시퀀스는 관객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백작은 노예들에게 자신이 믿는 성서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그런데 백작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것이 성서의 본질적 가르침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더 많은 고난을 받을수록 천국에 가깝다는 말을, 백작은 노예들의 삶에 빗댄다. 죽도록 일하고 고통스러운 노예들의 삶이야말로 그리스도가 말하는 행복한 삶이라고 우겨댄다. 백작이 보여주는 종교적 위선과 기만적 행태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는 스페인 식민 시대를 배경으로 오늘날의 착취적 자본주의와 종교의 허위의식을 맹공격한다. 영화는 만찬 식탁의 노예들로 대변되는 피지배 계층의 가난과 고통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성 금요일에 노예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백작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결말은 수탈자인 백작의 잔혹함을 부각시킨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 영화가 말하는 날것 그대로의 선전 선동에 진력을 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빈곤과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쿠바 정부는 영화를 체제 유지를 위한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도구로 인식했다. 과연 당시의 쿠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떤 면에서 백작이 성서의 가르침을 자신의 수탈을 정당화하는 데에 써먹었던 것처럼, 영화도 사회주의의 충실한 메신저였을 수 있다. 'The Last Supper'는 영화라는 매체가 시대, 정치 체제와 이념, 국가의 영향력 아래 놓인 종속적 산물임을 상기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revistacinecubano.icaic.cu    영화 'The Last Supper' 촬영 현장의 감독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사진 오른쪽) 



**사진 출처: themovedb.org   영화에서 엘라 마리아 역을 맡은 Lene Cecilia Sparrok은 사미족 출신의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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