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Aftersun(2022)'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영화는 저화질의 캠코더 화면으로 시작한다. 11살 소피는 아빠를 인터뷰하겠다며 캠코더를 들고 이리 저리 움직인다. 소피는 아빠와 함께 터키로 짧은 여행을 왔다. 이 여행은 소피에게도, 아빠 케일럼에게도 특별하다. 소피의 부모는 이혼했고 소피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아빠와의 여행, 소피는 이 여행의 모든 것을 캠코더에 담고 싶어한다. Charlotte Wells의 장편 영화 데뷔작 'Aftersun(2022)'은 관객을 1990년대 초반, 낯선 터키의 관광지로 데려간다. 30살의 아빠와 11살의 딸은 행복한 여행의 추억을 만들고 돌아올 수 있을까...

  저렴한 호텔에서 머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빠. 소피는 그저 아빠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쁠 뿐이다. 하지만 딸을 먼저 재우고 테라스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이 젊은 아빠의 뒷모습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이 감지된다. 케일럼에게 '아빠'의 역할은 무언가 맞지 않는 옷처럼 보인다. 딸과 함께 포켓볼을 하려는 케일럼에게 관광객인 십 대 청년들은 같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소피를 케일럼의 여동생으로 오인한다. 기분이 상한 케일럼은 자신은 소피의 '아빠(dad)'라며 즉각 정정해준다. 소피와 오누이로 보이는 이 젊은 아빠 케일럼은 아마도 20대 초반에 '아빠'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을 것이다. 안정된 직업도 없는 그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도 버거운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가 소피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느리고 무료하게 지나간다. 아빠와 딸은 늘어지게 소파에 누워있거나,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하지만 이 아빠에게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 한밤중에 바닷가로 달려나간 그는 마치 죽어버릴 것처럼 파도를 향해 돌진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돌아와서 잠든 딸의 옆에 머문다. 그가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딸 소피 때문일 것이다. 석고 붕대를 한 그의 손이 어떻게 하다 다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손은 어떤 면에서 케일럼의 정신적 불안정성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방에 혼자 있을 때에 큰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기도 한다.    

  소피는 아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렇지만 무엇이 아빠를 힘들게 하는 것인지 어린 소피는 알지 못한다. 소피는 아빠가 옆에 없는 시간을 십 대 청소년 관광객들을 관찰하면서 보낸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그들의 모습은 소피에게 낯설면서 신기하다. 소피는 또래 소년과 입맞춤을 하기도 하고, 두 청년이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관객은 11살의 소피가 20년이란 세월이 흘러 어떤 여자와 함께 있는 침대에서 눈을 뜨는 것을 본다. 그 집에서는 아기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소피가 아기가 있는 여성 동거인과 살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터키 여행은 소피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시작임을 짐작케 한다.    

  영화는 중간 중간 수수께끼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나이트클럽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는 케일럼과 그런 그를 쳐다보는 젊은 여성이 있다. 케일럼은 딸 소피 몰래 관광지의 나이트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 물론 케일럼은 딸과 모든 시간을 하지도 않았고, 딸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지도 않았다. 관광객을 위한 노래 자랑 시간에 소피는 케일럼에게 무대에 나가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한다. 하지만 케일럼은 딸의 제안을 거절한다. 소피는 혼자 가라오케에 맞추어 쓸쓸히 노래를 부른다. 케일럼은 그런 소피를 무심하게 쳐다볼 뿐이다. 그때 소피가 부른 노래는 R.E.M.의 'Losing My Religion'. 이 노래는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미국 남부의 속어로 'lose religion'은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뜻이다. 노래는 짝사랑하는 사람의 괴롭고도 절망적인 심정을 담았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아빠 케일럼에 대한 소피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빠와 딸은 곧 다시 화해하고 관광지에서의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낸다.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식사 시간, 케일럼과 소피는 웨이터에게 부탁해서 둘의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는다. 검은색의 필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둘의 다정한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변한다. 그 폴라로이드 필름처럼 관객은 나이트클럽의 케일럼을 바라보던 젊은 여성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정신을 잃고 미친듯이 춤추는 아빠 케일럼을 소피는 필사적으로 붙잡으려고 한다. 소피는 아빠를 끌어안지만, 곧 소피는 아빠를 놓친다.

  31살이 된 딸은 11살에 아빠와 함께 찍은 홈비디오를 본다. 조악한 화질 속에 담긴 아빠와 딸의 시간은 마침내 봉인에서 풀려난다. 어느 시점에서 아빠는 어린 딸의 삶에서 사라져버렸다. 딸은 그 아빠를 흔들리는 홈비디오 화면과 불완전한 기억의 방에서 그리움으로 불러낸다. 서른 살의 아빠가 맞닥뜨려야 했던 인생의 무게와 불안, 고통과 외로움을 딸이 이해하기까지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11살의 소녀가 알 수 없었던 것을 이제 31살의 소피는 바라보고 느낀다.

  영화 'Aftersun'에서 아빠와 딸이 함께 했던 시간은 파편화되고 모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관객은 소피가 깨닫게 된 아빠 케일럼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이 영화의 그러한 불친절함은 놀랍게도 영화가 가진 위대한 본질과 연결된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retrospection). 영화가 마침내 끝났을 때 나는 자리에서 한참을 일어날 수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고,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꼈다. 감독 Charlotte Wells는 혈육지친(血肉之親)에 대한 내밀한 이해와 사랑을 매혹적인 영상 태피스트리로 직조해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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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미터가 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여자는 하루를 보낸다. 파리 16구, 빅토르 위고 거리의 신문 가판대(kiosk)는 4대에 이르는 여자 집안의 가업이었다. 여자는 대학에서 장식 미술을 전공했지만, 예술로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버거운 일이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잠깐 돕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은 6년 동안 이어졌다. 감독 알렉산드라 피아넬리(Alexandra Pianelli)는 자신의 첫 장편 다큐 'Le Kiosque(The Kiosk, 2020)'를 바로 그곳, 키오스크에서 찍었다. 감독이 머리에 두른 GoPro(액션캠)와 카운터에 세워둔 iPhone 카메라에는 키오스크를 찾는 다양한 이들이 찍힌다. 새벽 5시, 키오스크의 셔터 문이 열리고 도시의 소음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다큐는 시작된다. 피아넬리는 자신이 서있는 카운터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한다. 벽에는 온갖 메모와 주의 사항, 단골 손님들의 캐리커쳐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거스름돈이 있는 돈통에는 그 자리를 거쳐간 가족의 손가락 자국들이 마치 오래된 화석처럼 남아있다.  

  키오스크의 첫손님은 노숙자 다미엔이다. 고양이를 안고 온 남자는 늘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어디선가 또 주워오는 것 같다. 금발의 노부인 마르셀은 유쾌한 대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레를 배우는 어린 꼬마 숙녀도 엄마와 함께 온다. 길을 묻는 청년도 있다. 매일 가게를 찾는 단골들과의 대화는 유쾌하고 정겹다. 달달한 간식을 들고와서 나누어주는 영감님도 있다. 여러 손님들이 오가는 가운데 피아넬리는 키오스크에서 자신이 처리해야하는 일들을 설명한다. 300개가 넘는 잡지의 위치, 가격을 숙지해야하는 것은 기본이다. 단골 손님들의 구매 선호도를 잘 알고 있으면 판매에 도움이 된다. 말을 걸어오는 온갖 손님들에게 적절히 응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러는 무례한 이도 있고, 추근대는 남자 손님도 있다. 카운터에 와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인간도 있다. 과일 노점상을 하는 이슬람 이민자는 경찰의 단속을 피해 팔던 과일을 키오스크에 숨겨놓기도 한다.

  피아넬리가 보여주는 키오스크의 풍경에는 사람 사이의 온기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온다. 감기에 걸린 피아넬리를 위해 중국인 단골 손님은 집안의 상비약을 챙겨서 준다. 신용카드만 가진 여자 손님은 지하철표는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는 말에 좌절한다. 2유로가 없어서 난처해하는 손님을 위해 노숙자 다미엔은 친절하게 잔돈을 건넨다. 노숙자의 도움을 받게된 여자 손님의 표정과 말에는 당혹감이 묻어져 나온다. 과일 노점을 하는 이슬람 상인은 자신의 모국어로 구슬픈 노래를 한참 동안 부른다.   
 
  피아넬리는 수동적으로 카메라에 키오스크의 사람과 풍광만을 담지는 않는다. 장식 미술 전공자답게 골판지로 직접 만든 미니어처를 비롯해 다채로운 그림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집안의 가업인 키오스크는 잡지 업계의 구조 조정과 파업으로 어려움에 처한다. 그렇다. 종이로 만든 잡지와 신문을 찾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당연히 키오스크의 매상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잡지 출판업계의 디지털로의 전환은 어렵게 이어오던 가업에 결정타를 날린다. 피아넬리의 개인적인 다큐는 이제 시대의 변화를 담는 영상사회학적인 탐구가 된다.

  마침내 폐업이 결정된다. 피아넬리와 모친은 단골 손님들과 송별회를 연다. 단순히 잡지와 신문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와 삶이 있었던 키오스크는 해체된다. 피아넬리의 카메라는 비로소 가판대의 카운터를 떠나 밖에서 키오스크의 최후를 담는다. 그 쓸쓸한 마지막에 비감한 소식이 더해진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노숙자 다미엔은 거리에서 삶을 마감했다. 키오스크의 비좁은 카운터에서 동동거리며 버거운 하루를 보냈던 피아넬리의 6년은 그렇게 끝났다. 이 놀랍고도 생생한 생활밀착형 다큐에는 웃음과 눈물, 감동과 함께 날카로운 사회학적 통찰이 곁들여져 있다. 감독 알렉산드라 피아넬리는 다큐 'Le Kiosque(2020)'로 키오스크에 대한 조밀하고도 다채로운 영상 보고서를 써낸다. 


*사진 출처: film-documentair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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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는 https://www.lecinemaclub.com 에서 일주일 동안 무료로 상영된다. 영어 자막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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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의 중학교 기간제 교사 조 가드너는 학교로부터 정규직 채용 제안을 받는다. 비정규직에서 '비'자가 빠지는, 정말 기쁘고 좋은 소식인데 정작 조는 시큰둥하다. 사실 조에게는 좀 다른 꿈이 있다. 바로 재즈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는 것. 그런데 의외로 행운은 빨리 찾아온다. 조는 유명 재즈 뮤지션 도로시아 윌리엄스가 이끄는 재즈 콰르텟 오디션에 합격한다. 하늘을 날으는듯한 기분도 잠시, 조는 정말로 자신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도로 맨홀에 빠진 그는 바로 저승으로 향하는 천상 계단에 서있게 된 것이다. 잠깐, 난 정말 죽은 게 아니야.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구! 조는 그렇게 외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디즈니 Pixar의 애니메이션 '소울(Soul, 2020)'의 도입부는 주인공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만 그 대사를 읊조리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 조도 필사적으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의 도입부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Soul'의 스토리적 기원은 1940년대 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이클 파웰(Michael Powell)과 에머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가 공동 감독한 'A Matter of Life and Death(1946)'에 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된 전투기 조종사는 천국 안내자의 실수로 목숨이 연장된다. 그를 저승으로 데려오려는 안내자와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게 되는 주인공. 이 영화에 나오는 천상 세계로 가는 계단을 비롯해 천국의 내부 모습은 'Soul'에서 조가 가게 되는 영혼 세계와 유사하다.

  조는 지구에서 태어나기로 예정된 영혼을 훈련시키는 멘토가 된다. 조에게 배정된 영혼은 22번. 인생의 불꽃(spark)를 찾아낸 영혼만이 지구로 내려갈 수 있는 배지를 받게 되는데, 22번은 만나는 멘토마다 번번이 실패했을 정도로 테스트를 통과할 의지가 없다. 어떻게든 22번을 꼬드겨서 지구로 내려갈 방법만을 찾는 조. 조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22번에게 보여주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피아노를 치는 순간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조. 이렇게 사후 세계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복기하는 모습은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의 'Heaven Can Wait(1943)'에서 이미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Soul'의 내러티브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과거 거장의 영화적 유산에 상당부분을 기대고 있는 셈이다.

  거인의 어깨어 기대어 손쉽게 출발을 하기는 했지만, 'Soul'의 플롯은 나름대로 독창적이다. 지구에 태어날 영혼을 훈련시키는 영혼 세계의 개념, 그곳에서 멘토가 되는 주인공, 그리고 그의 파트너 22번 영혼. 조와 22번은 조력자 문윈드의 도움으로 지구에 함께 떨어진다. 문제는 조가 자신의 몸이 아닌 고양이로 환생했다는 데에 있다. 22번은 뜻하지 않게 조의 육신으로 살아가게 된다. 한편 영혼 세계의 회계 담당자 테리는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그 둘을 찾아 지구에 온다. 과연 이 환장할 영혼의 단짝들은 테리의 추격을 피할 수 있을까... 

  조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22번은 멘토들이 아무리 가르쳐주려고 애를 써도 알 수 없었던 그 '불꽃(spark)'을 드디어 찾아낸다. 그것은 가을 단풍나무에서 떨어진 날개 달린 씨앗 하나에 있었다. 22번은 씨앗이 자신의 손에 떨어졌을 때의 그 놀랍고도 황홀한 느낌에 매료당한다. 아, 이게 불꽃이구나... 그리고 22번은 선언한다. 나 이대로 여기에서 살아갈래! 고양이가 되어버린 조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다. 그건 22번 네 몸이 아니라 내 몸이야. 그걸 가지고 난 해야할 일이 있어. 도로시아 윌리엄스와 공연을 하는 게 내 꿈이라구.

  결국 조와 22번은 어떻게 되었을까? 테리한테 붙잡힌 둘을 다시 영혼 세계로 돌아간다. 그뒤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쓸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굉장한 철학적 문제를 다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인생의 의미'이다. '불꽃(spark)'으로 표현되는 그것이 있어야만 영혼 세계의 어린 영혼들은 지구에서 태어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가운데 그 '불꽃'이 어떤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조에게 있어서 그것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를 칠 때의 기쁨이겠지만, 사실 그러한 순간은 인생에서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혼 세계의 카운슬러는 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꽃,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매일 주어진 일상, 매 순간에 깃들인 소중함을 깨닫는 것. 22번에게 작은 단풍나무 씨앗이 손에 내려앉았을 때 일어난 일이 그러했다. '인생의 의미는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의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내는 데에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Soul'은 나즈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그렇게 일러준다. 아, 나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인생에 대한 이토록 깊은 성찰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감성이 메말라버린 어른을 위한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동화. 아직 'Soul'을 만나지 못한 이들은 조와 22번의 여정을 한번 따라가보길 바란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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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드라마에 내재된 문화와 정체성의 갈등

                                                        

  

  사랑하는 가족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몇 개월, 영화 'The Farewell(2019)'에서 주인공 빌리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 그러하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계 미국인 빌리. 할머니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진 빌리는 할머니가 말기 폐암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받을 충격을 염려하여 병세를 숨기기로 결정한다. 마침 빌리의 사촌 결혼식을 앞두고 대가족은 고향인 중국 창춘에 모인다. 빌리도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중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빌리는 할머니에게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의 결정에 마지못해 동의한다. 과연 할머니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은 끝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Lulu Wang 감독의 영화 'The Farewell(别告诉她, 2019)'은 얼핏 보기에 가족 드라마라는 장르의 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빌리의 중국에서의 여정이 진행될수록 이민자의 정체성과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고민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창춘 공항에 도착한 빌리는 정신없이 달려드는 호객꾼들에 놀란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곳곳마다 건축중인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어린 시절에 중국을 떠난 빌리에게 변화하는 중국의 모든 것은 낯설기만 하다. 호텔의 프런트 직원은 빌리가 미국에서 왔다는 말에 미국과 중국 두 나라 가운데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 빌리는 두 나라가 서로 다를 뿐이라고만 답한다. 숙모는 미국보다 중국에서 돈을 벌기가 쉽다며 빌리에게 중국으로 돌아오라며 호기롭게 말한다. 정작 숙모는 아들을 미국 유학 보내려고 애를 쓴다.

  빌리에게 중국의 외양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 실질은 가족주의적 전통에 단단하게 갇혀 있는 기이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결혼식장 예약을 비롯해 피로연 음식을 정하는 모든 문제는 가모장(家母長)인 할머니의 손에 달려있다. 할머니는 손님들에게 체면이 깎여서는 안된다며 무엇이든 최고급품으로 계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작 결혼식의 당사자인 손주와 일본인 손주 며느리의 뜻은 안중에도 없다. 가족들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뭉치며, 할머니의 심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족의 중심, 그 근원으로서 할머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물론 이 가족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큰 감정이 '사랑'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한 중국식 가족주의는 할머니의 병세를 알리는 문제를 두고 빌리의 미국식 사고방식과 충돌한다. 빌리는 미국에서라면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가족들에게 성토한다. 하지만 삼촌은 할머니가 지게될 마음의 부담을 가족들이 대신 나누어 갖는 것이라며 빌리를 나무란다. 빌리에게 중국의 가족,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다가온다.

  Lulu Wang은 빌리가 느끼는 심적인 혼란을 창춘의 급변하는 도시 풍광을 통해 보여준다. 가족과 함께 마사지 업소를 다녀온 빌리는 등에 난 커다란 부황 자국에 놀란다. 우연히 보게 된 마작판에는 젊은 여성이 접객원으로 앉아있다. 피곤에 절은 결혼식장의 직원들은 손님들의 눈을 피해 한구석에서 졸고 있다. 또래 젊은 세대 중국인의 모습에서 빌리가 마주한 계층적, 문화적 차이는 그렇게 투영된다. 빌리의 엄마는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중국의 배금주의를 에둘러 비판하며 미국이란 나라가 가진 관대함과 배려를 언급한다. 미국에서 중산층으로 안착한 빌리의 부모, 작가로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빌리. 중국을 떠난지 25년 동안 이 가족은 중국이라는 나라, 그 문화와 서서히 멀어져 왔다.

  이 영화의 중국어 제목은 '别告诉她', 우리말로 풀어서 말하면 '할머니에게 알리지 말아요'가 되겠다. 결국 빌리도 온가족의 '하얀 거짓말'에 동참한다. 빌리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떤 면에서 중국인 이민자 2세대인 빌리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개인보다 가족, 사회의 가치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빌리가 전적으로 동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혈족인 할머니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서 나온 결정일 것이다. 그런 빌리에게 할머니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도 자신이 살아온 삶의 지혜와 사랑이다. 영화 'The Farewell'은 감독 Lulu Wang의 경험담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다. 영화는 미국에서는 의외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으나, 중국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마도 중국 관객들에게는 중국계 미국인의 젠체하는 문화적 설교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Lulu Wang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내적 갈등을 평이하게 풀어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이 영화의 대부분의 대사는 중국어(Mandarin)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The Farewell'은 중국 영화일까, 미국 영화일까? 미국 자본으로 제작되었고, 미국 배급사가 배급을 했으니 미국 영화가 맞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Minari, 2020)'가 대부분 한국어 대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나리'가 미국에서 개봉될 때, 외국 영화인지 미국 영화인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영화 속 대사의 언어를 두고 미국에서 그런 논쟁이 촉발되는 것은 '영어'라는 자국어 중심주의에 대한 예시로 볼 수도 있다.  

정이삭 감독, 미나리(Minari, 202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minari-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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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흑인 청년들을 통해 바라본 미국 Foster Care System
 

  "LA에는 3만 명의 위탁 아동(foster child)이 있으며, 그들이 사회로 나갈 무렵에는 65%의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다."

  다큐는 간결하고 건조한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Jen Araki의 다큐 'We Gotta Get Out Of Here(2019)'은 LA의 위탁 가정 출신 5명 청년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미국의 Foster Care System은 부모의 학대, 유기, 방치 등에 의해 제대로 양육될 수 없는 아동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복지 서비스이다. 위탁 부모는 정해진 자격 요건을 갖추고 필수 교육 과정을 이수한 이들이 될 수 있다. 그 시스템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허점이 있는지는 다큐에 처음 등장하는 TY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21살 TY
는 3달 전에 위탁 가정을 떠나서 룸메이트 마이크와 지내고 있다. TY는 7살 때부터 위탁 아동이 되었고, 38개의 위탁 가정을 거쳤다. 그는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여러 약병들을 보여준다.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TY는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는 중이다. 만약 그가 직업을 얻는다면 정부로부터 받는 여러 혜택들은 박탈된다. 지병이 있는 TY가 직업을 갖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TY의 룸메이트 마이크의 경우는 상황이 좀 더 낫다. 인생의 진로를 군대에서 찾기로 결심한 마이크는 매우 성실한 청년이다. TY는 이제까지 자신이 함께 지낸 위탁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정신 질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건강하고 활달한 마이크가 아주 예외적인 친구라고 덧붙인다. 당연하게도 TY에게 마이크는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마이크는 해병대 입대가 예정되어 있다. TY는 지금 지내고 있는 집에서는 더이상 지내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살 집을 알아봐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돈은 18살 TJ와 19살 티파니에게도 절실히 필요하다. 연인 사이인 둘은 열악한 위탁 가정 환경에서 무작정 뛰쳐나왔다. 하지만 당장 머물 곳이 없다. TJ의 형 BJ는 스무 살, 복싱 클럽에서 훈련 중인 그의 처지는 동생 보다 안정적이다. 괜찮은 위탁 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BJ는 운동으로 불운한 인생의 물꼬를 열어 보려고 한다. 딱한 동생의 처지를 지나치지 못한 BJ는 자신의 위탁 부모에게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TJ와 티파니는 어렵게나마 정부로부터 1달 동안 모텔에서 지낼 수 있는 바우처(voucher)를 받아냈다. 저렴한 모텔의 이불은 누더기처럼 구멍이 나있고, 더러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싸움 소리도 들어야 한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티파니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5명의 위탁 가정 출신의 청년들은 모두 흑인이다. 그들은 또한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정서적으로 취약한 데다, 질병까지 갖고 있는 경우에는 상황이 더 나빠진다. TJ는 HIV에 감염된 채로 태어났다. 그는 계속해서 치료약을 복용해야만 한다. 연인 티파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둘의 미래에는 시작부터 그렇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마이크와 BJ는 힘들게나마 인생의 첫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는다. 마이크는 해병대에 입대하고, BJ는 첫 시합에서 이긴다.

  다큐가 5명 청년들의 삶을 따라가는 동안 젊은 흑인 여성의 인터뷰가 중간 중간 이어진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 여성 또한 성장기를 위탁 아동으로 보냈다. 그는 위탁 가정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 끼친 영향을 털어놓는다. 위탁 가정을 떠날 무렵엔 미혼모가 되었고, 죽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자는 유대인 자선 단체의 도움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대학에 진학했고, 이제는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 여성은 Foster care system의 생존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행운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다큐의 마지막 자막은 위탁 아동들의 암울한 미래를 명확하게 입증한다. 그들 가운데 3분의 1은 노숙자가 된다. 65%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데, 대학에 진학하는 이들은 3% 미만이다. 더 놀라운 점은 캘리포니아 교도소의 수감자 70%가 위탁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굉장히 사회성이 짙은 주제임에도 감독 Jen Araki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길거리 연주자의 기타 선율로 시작한 이 다큐는 중간 중간 LA의 풍광을 시적으로 배치한다.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의 외관은 위탁 청소년들이 겪는 생존의 어려움과 대비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좋은 쪽으로 바꾸려는 의지는 그들 자신을 구한다. 티파니는 대학에 진학했고, 딸을 출산했다. TY도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가 뇌전증을 약물로 잘 통제하고 학업을 끝마친다면 성공적으로 사회에 안착할 것이다. 비록 TJ가 경범죄로 수감되었지만 그에게도 기회는 있다. 다큐의 제목 'We Gotta Get Out Of Here'는 위탁 가정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청년들의 말처럼 들린다. 한편으로 그 제목은 현재의 미국 Foster care system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표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큐는 미국의 구멍난 사회 복지 정책을 5명의 흑인 청년들의 눈을 통해 정밀하게 응시한다.     

     
*사진 출처: face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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