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식이 몇 명인지 잘 모르겠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짧게 한숨을 쉰다.

  "엄마, 잘 생각해봐. 몇 명인 것 같아?"
  "세 명인 거 같은데, 어디 다른 데에 또 한 명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젠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해도 그냥 웃어넘긴다. 그럴 때 나는 자식들 생일을 이야기해 달라고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는 그 생일들을 다 정확하게 말해본 적이 없다. 때로는 당신의 생일도 기억을 못하기도 한다. 엄마의 기억력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며칠 전, 엄마에게 온 우편물을 들여다 보다가 건강보험 공단에서 온 것을 발견했다. 공단에서 보낸 우편물의 내용은 이러했다. ***님께서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으셨는데, 그동안 이용실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필요하신 서비스가 있다면 이용하십시오... 엄마는 장기요양등급 5등급을 받으셨다. 치매 특별 등급으로도 불리는 이 등급에는 요양보호사의 방문요양 서비스와 주간 보호 센터 이용 금액의 부분적인 국가 보조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엄마는 등급 판정을 받으신지 2년이 지나도록 그런 서비스를 신청해본 적이 없다. 엄마가 그걸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엄마의 집에 오는 것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센터에서 어울리는 것도 엄마는 다 싫다고 하신다.

  나는 오전에 엄마의 집에 들러서 산책도 시켜드리고, 학습 교재를 가지고 인지 학습도 함께 한다. 중간 중간 간식도 챙겨야 한다. 5월에는 엄마가 손목 골절로 수술을 하셨는데, 깁스를 다 풀은 지금은 손가락 재활 운동이 필요하다. 병원에서는 손가락 재활 치료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유튜브를 보고 손가락 재활에 필요한 동작들을 찾아보고 엄마에게 필요한 재활 운동을 해드린다. 그러니까 요즘의 나는 요양보호사, 인지치료사, 재활치료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엄마의 하루하루는 Delete 버튼만 작동하는 컴퓨터의 키보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말한 것, 누군가와 전화 통화한 일, 식사할 때의 반찬 등등,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일에 엄마는 매번 실패한다. 그저 '몰라', 라고만 답하실 뿐이다. 나는 엄마에게 농담 삼아 '몰라 여사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엄마, 맨날 모른다고만 말하면 어떡해? 좀 생각을 해봐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데 정말 생각이 안나는데? 그냥 머릿속이 하얘."

  요즘 나는 매일 엄마에게 자식이 몇 명인지, 자식들의 생일은 언제인지를 물어본다. 가끔은 엄마가 있지도 않은 자식에 대해서 말할 때가 있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자식이 한 명 더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자식이 한 명 더 있다면 지금 우리 형제가 나누어 지고 있는 짐이 좀 가벼워질까 생각해본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과 마음의 고통이 n분의 1로 딱 떨어지게 나눌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엄마의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게 되면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는 한데... 댁은 누구요?"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좀 많이 슬프겠지. 그래도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든지 적응하게 마련이다. 자식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자식의 존재를 말하는 엄마를 평온하게 바라보는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스러져 가는 엄마의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수 밖에. 세상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무수히 많다. '우리 모두 힘내요, 파이팅!' 나는 그들에게 그딴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얼굴의 볼 수 있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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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인 M은 전형적인 수재(秀才)였다. 공부를 잘했던 M이 무슨 장학금이며 표창같은 것을 자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공부 잘하는 그 선배가 무척 부러웠었다. 나는 과학 선생에게 그 선배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했더랬다.

  "야, 너 M이 얼마나 어렵게 공부하는지 아냐? 걔네집 무지 가난해. 단칸방에서 식구들이 다 살아. 그런 곳에서 M이 공부를 한다고."

  선배 M은 명문대 치대에 들어갔다. 학교 대의원 회의의 임원이라는 공통점으로 나는 M과 약간의 친분이 있었다. M이 대학에 들어간 뒤로 나는 몇 번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고서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나는 M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구글 검색창에 M의 이름을 입력하니 바로 검색 결과가 뜬다. M은 모교 대학병원의 조교수가 되어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병원 홈페이지에 나온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었다. 뭐라고 썼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선배가 이룬 성취를 보니 기쁘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낸 메일에 M은 아주 짧은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인생의 성공이 외적인 지위나 이룬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뭔가 읽는 사람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재수없는 답장이었다. 나는 M의 그 말이 같잖은 충고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M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며칠 전, 참으로 쓸데없는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구글 검색창에 M의 이름을 써넣어 본 것이다. 나는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그 쓸데없는 짓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다. M은 강남의 대형 치과의 대표 원장이 되어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촌스러운 외모의 M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단칸방에서 고군분투하며 공부하던 선배 M은 그야말로 인간승리-이 표현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를, 아니 그 단어 대신 입신양명(立身揚名)인가, 아무튼 진짜 성공한 전문직 여성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병원 홈페이지에 나온 그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M이 아직도 인생의 의미는 외적인 성공에 있지 않는다고 믿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대 진학은 출세의 지름길이다. 그런 면에서 고 3때 같은 반이었던 L도 그것이 진리임을 보여주었다. 나는 의대를 가겠다는 일념으로 이과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내 문제는 의사라는 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형적인 '문과 머리'라는 데에 있었다. 나에게 어려운 이과 수학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어떻게든 수학을 잘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나는 악전고투 끝에 패잔병으로 남았다. 결국 내신 1등급을 받기는 했어도 의대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1, 2학년 때는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던 L은 고 3때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나는 L이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어. 집안에 의사나 판검사는 한 명 정도 있어야 한다고. 난 어떻게든 의대에 갈 거야."

  내신 2등급으로 L은 지방대 의대에 진학했다. L이 레지던트였을 때 나는 L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영화를 공부하겠다고 늦은 나이에 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L은 남성 위주의 의사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그리고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다. 이제 L은 대학병원 안과의 과장이다. 아마도 L의 부친은 집안에 의사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 만족할 것이다.

  엊그제였나,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클릭하다가 S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S는 자신의 신작 소설을 홍보하고 있었다. S는 내가 들었던 시 창작 수업의 수강생이었다. 수업을 담당한 시인 선생은 S가 쓴 시에 대해 가혹한 혹평을 했더랬다.

  "이건 요설(妖說)이야, 요설. 이런 글은 뭐랄까, 문학의 바닥을 보여주는 아주 안좋은 글에 해당하지."

  시인 선생은 혹평했던 S와는 달리, H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생은 H가 조만간 등단할 것이라고 했고, 그는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2년인가 3년 뒤에 H는 등단했다. H는 이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시인이다. 그런데 선생이 요설이라며 극악의 평을 했던 S도 등단했다. 나는 H도, S의 글도 다 싫어했다. 글로도 인간적으로도 둘은 내게 밉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인 선생의 안목에는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런 나에게 S의 등단은 나름 충격이었다. 소설가로서 S는 몇 권의 책을 연이어 냈다. 저런 소설도 팔리기는 하네... S의 소식은 몇년 동안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S는 이제 신작 소설을 들고 나온 것이다. 영조(英祖)는 사도 세자에 대한 편벽된 미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위가 '귀를 씻는 일'이었다. 실록에는 사도 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영조가 귀를 씻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S의 신작 홍보 뉴스를 읽고 나니 나는 영조처럼 귀를, 아니 눈을 씻고 싶어졌다.  

  러프 컷(rough cut). 그것은 영화를 촬영한 원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가 보는 영화는 '편집(editing)'이라는 마법을 거쳐야만 한다. 편집 이전의 원본인 러프 컷에는 모든 것이 뒤엉켜 있다. 서사는 엉망진창이고 촬영 과정의 온갖 실수와 결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혼란의 도가니에서 에디터는 정교하게 불순물을 걸러낸다. 가끔 누군가의 인생 이력을 들여다 보노라면 편집자가 감독의 의도대로 잘 뽑아낸 필름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나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M과 L, 그리고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의 S와 H의 이야기가 그렇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나, 도대체 뭘 하면서 살아온 걸까?"

  내 인생의 러프 컷을 돌려보는 일은 뼈저린 회한을 동반한다. 장르는 불분명하고 서사는 개연성도 없다. 신의 손을 가진 편집자가 와도 그 러프 컷은 구제가 안될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렇다. 잘 편집된 보기 좋은 영화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러프 컷 인생을 끌어안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나는 러프 컷 자체가 영화로 나온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인생의 러프 컷에서 나름의 의미를 끌어내는 일은 오직 그것을 찍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언젠가 이 러프 컷을 내가 편집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뒤죽박죽이 된 필름들을 나만의 솜씨로 이어붙이다 보면 멋진 실험 영화 한 편이 탄생할 수도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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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꿈을 꾸었다. 내 집의 거실에서 연예인 A가 미니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수구가 없다보니 세탁기의 물이 흘러나와 거실은 물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 A가 우리집에 머무르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군식구처럼 A는 턱하고 거실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A는 내가 싫어하는 연예인이다. 큰 덩치의 그는 다소 험한 인상의 사람이다. 나는 물바다가 된 거실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A에게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쨌든 그의 행짜를 두고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젠 우리집에서 머물 수 없어요. 그러니 짐 싸서 나가주면 좋겠어요."
  "날더러 나가라고? 내가 왜?"

  A는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영 기분 나쁜 꿈은 그렇게 끝났다. 꿈에서 깨어서 생각을 해보니 어딘지 모르게 짚이는 데가 있었다. 오랫동안 나의 꿈에서 '집'은 나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였다. 무언가 신경쓰이는 일이나 걱정이 있으면 집과 관련한 꿈을 꾸곤 했다. 낡고 어수선하게 살림살이가 널브러진 집에는 낯선 사람들이 출몰하곤 했다. 나는 그런 꿈을 편치 않은 내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겼다.

  A가 나오는 그 꿈도 마찬가지다. 왜 내가 싫어하는 외부인이 집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그곳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강하게 A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고작 말 몇마디를 했을 뿐이고, A는 내 말을 들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꿈에서 깬 뒤에 나는 그것이 아픈 내 몸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달 넘게 원인불명의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A는 침입자였고, 병마였다. 꿈에서 나는 A를 내쫓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2020년 9월에 방영된 클래스 e에서는 신화학자 고혜경이 출연해서 강의를 들려주었다. 콩쥐팥쥐, 빨간신, 나무꾼과 선녀 같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전래동화를 중심으로 신화학, 심리학, 영성학적인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졌다. 나는 처음에는 좀 심드렁하게 들었더랬다. 그러다가 강의 중반부에 가서는 정말 재미있어서 끝까지 열심히 시청했었다. 그 강의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착취적인 연인에게 고통받은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예로 나왔다. 그 여성은 꿈에서 무서운 남자를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여성은 남자를 피하고 도망쳐 다녔다.

  "그 남자가 누구겠어요? 현실에서 그 여성을 괴롭히는 연인이지요. 여자가 그 남자에게 겁먹고 얼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요. 꿈속에서라도 대항하고 싸워야 해요. 그래야지만 그 여성은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꿈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압도적인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대상에게 저항하는 것이 의지적으로 가능할까? 신화학자가 일러준 조언이 나에게는 아주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와 마음에 꽂혔다. 그 뒤로 나는 꿈에서 낯선 사람과 감정적으로 대립하거나 싸우게 될 때, 크게 소리를 내고 지지않으려고 했다. 놀랍게도 꿈에서도 인간의 의지가 발현되는 부분이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오늘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진통제를 한무더기로 지어왔다. 도대체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의사는 먼저 찍은 곳과는 다른 부위의 MRI를 찍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게 다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얼마 전의 그 꿈대로라면 그냥 이 원인불명의 통증과 당분간 동거생활을 하는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또 다시 내 꿈속에서 A가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든 A와 맞서서 그를 내 집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의사는 지금으로서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통증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아마도 이 의사에게 나는 골칫덩이 환자일지도 모른다. 의사가 이런저런 진통제를 쓰자고 하면 나는 싫다고 하고, 무슨 검사를 하자고 해도 버티다가 받는다. 의사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이 통증이 어쩌면 심리적인 것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다. 어떻게든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독여야만 지금의 병이 좀 더 빨리 낫지 않을까 싶다. 내가 싫어하는 낯선 사람이 기거하는 꿈 속의 내 집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처진다. 한 달치의 약을 다 먹을 즈음에는 나를 괴롭히는 통증이 가실까? A가 없는 정갈한 거실에서 내가 편안히 쉬는 꿈을 꿀 수 있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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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병원에 자주 다녔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원인불명의 통증 때문에 지난달부터 신경과 진료를 받고 있다. 통증은 잡히질 않고, 이제는 다른 곳까지 아프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안과, 오늘은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내가 다니는 안과의 선생님은 정말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다.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아픈 눈도 잘 보아준다. 오늘 이비인후과에 다녀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은 로또급의 행운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종합 병원은 언제나 그렇듯 환자들로 북새통이다. 귀와 목이 한 달 넘게 아파서 종합 병원 이비인후과에 예약을 했다. 그런데 이 병원의 이비인후과는 세부 진료 과목이 귀와 목, 코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귀와 목이 아프면 두 명의 의사에게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다. 고민을 하다가, 귀 보다는 목이 더 많이 아프니까 목을 보는 의사한테 예약을 했다. 내가 예약한 의사는 두경부와 목을 잘 본다는 평이 있었다.

  폭염의 버스 정류장은 무슨 찜질방 같았다. 배차 간격이 25분인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이 무더위에 괴롭기 짝이 없었다. 힘겹게 버스에 타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수납을 하고 예약접수증을 이비인후과 접수대에 냈다. 이 병원의 이비인후과는 초진 환자는 예진을 하는데, 그걸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가 한다. 나는 왜 환자의 병력 청취를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가 하는 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래도 진료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다. 예진을 하고 나서는 30분 넘게 기다렸다. 환자가 밀려서 예약된 시간은 이미 훌쩍 넘어 버렸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증상에 대해 의사에게 말을 하는데, 2분이나 지났을까? 의사가 내 말을 끊는다.

  "그래서 환자분은 도대체 어디가 아파서 여기 온 거에요?"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나는 언제 통증이 시작되었고, 그 통증의 양상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는 대뜸 그런 식으로 되묻는다. 환자의 병력 청취를 그따위로 하는 의사와는 더이상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귀와 목이 아프다구요!"

  의사는 후두내시경으로 1분 남짓한 시간에 목을 들여다 보았다. 목에는 이상이 없고, 편도선이 좀 부은 것 같으니 약을 처방해주겠단다. 얼른 진료실에서 내가 나가주었으면 하는 의사의 뜻이 노골적으로 전달된다. 그렇게 나는 진료실에서 떠밀리듯 나왔다. 진료에 걸린 시간은 5분이 좀 넘은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귀를 봐달라는 말을 못한 것이 떠올랐다. 간호사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좀 기다려 보라고 한다. 의사는 다른 환자의 초음파 검사 때문에 검사실에 갔다가 10분 뒤에 왔다. 내가 대기실의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의사한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들렸다.

  "난 귀는 안봐."

  그 말을 하고서는 의사는 진료실로 쌩, 하고 들어가 버린다. 목 전문 이비인후과 의사의 굳은 신조를 목격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 그래. 귀는 안본다구요? 속으로 기가 차지만 별 수가 없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 레지던트 선생한테 귀를 볼 수 있게 해준단다. 좀 기다렸다가 레지던트가 있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예진할 때 병력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 줄 알고 뭔가 더 말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 레지던트 왈,

  "환자분은 왜 말을 안하고 진료에 협조를 안합니까?"

  아니, 예진 시스템은 어디에 밥 말아 먹었나?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세 번이나 해야된다는 건가? 참으로 이 병원 이비인후과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군요. 진료 과정 내내 쌓여있던 나의 불만이 터져나온다.

  약국에 들러서 약을 지어 집에 돌아오니 세 시간이 지났다. 병원이란 공간이 환자들에게 유쾌한 곳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런데 거기에 권위 의식과 불친절이 뼛속까지 절은 의사까지 만나고 나면 기분은 더 바닥을 친다. 저런 의사들에게 환자란 어떤 존재일까? 3분 컷, 5분 컷으로 빨리빨리 진료실에서 내보내야 하는 짐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걸까? 기본적인 병력 청취는 무 자르듯 잘라먹고, 환자의 고통에는 1도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를 만나는 일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내가 오늘 만난 이비인후과 의사를 떠올려 보니, 기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진료하는 기계. 지금 다니는 안과의 의사 선생을 만나기 전의 불친절 끝판왕 안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군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거기에 '의사'라는 직업은 인공지능으로 좀처럼 대체가 어려운 직업으로 맨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AI 의사를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의사들마다 가지는 비균일한 임상 경험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오진의 가능성은 AI가 의사라는 직업군에 접합될 수 있는 지점을 넓혀준다. 이미 의료계의 여러 영역에서 AI는 실험적으로 적용되고 있고, 그 성과는 놀라울 정도이다. 적어도 AI 의사는 불친절과 권위 의식을 보여주는 일은 없겠지.

  내가 오늘 만난 진료 기계 이비인후과 의사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환자에 대한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않는 의사를 만나는 일은 교통사고와 같다. 이런 저런 언론지에 실린 인터뷰며 사진발은 헛껍데기일 뿐이다. 막상 그 의사를 만나보면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성의를 눈꼽만큼이라도 보여주는 의사에게 감지덕지해야하는 건가?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고 가시지 않은 울분을 쏟을 곳이라고는 이 글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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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1+1 세일 행사에서부터였다. 분쇄 원두 하나를 구매하면 판매 중인 분쇄 원두 상품 하나를 더 보내준다고 했다. 거기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기는 했다. 판매자는 랜덤으로 보내주는 원두는 유통 기한이 촉박한 상품이라고 적어놓았다. 뭐 유통기한이 좀 촉박해도 두어 달 정도 남은 것이었다. 어, 이건 괜찮은데. 3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무료 배송이 되는지라, 나는 장바구니에 원두를 채워넣고 3만원을 넘겼다. 주문한 원두 상품은 4개, 어떤 분쇄 원두가 랜덤으로 올 것인지 약간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렸다.

  내가 택배 상자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 나름 총알 배송이었다. 택배 상자에는 8개의 원두가 차곡차곡 담아져 있었다. 그런데 랜덤으로 온 원두는 죄다 유통 기한이 가장 촉박한 제품이었다. 그보다 유통 기한이 조금 더 남은 걸 보내주어도 좋았을 텐데, 싶기는 했다. 그래도 원두 4개가 공짜로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걸 언제 다 먹지, 하는 생각도 잠시. 200g 짜리 8개의 원두 봉지가 다 비워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름에는 커피 내리기가 귀찮아서 그냥 원두 냉침으로 해서 먹는데, 이게 생각보다 원두 소모량이 꽤 많다. 1달이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원두를 구매할 때가 되었다.

  먼저 구매했던 세일 가격을 떠올리니, 다시 이 원두를 구매하는 것이 비싸게 생각되었다. 판매 가격은 이전의 정상가로 적혀있었고, 물론 1+1 행사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다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3개 이상을 사면 머그컵을 증정한다고 했다. 스*** 로고가 새겨진 하얀색의 머그컵은 꽤나 예쁘게 보였다. 그래, 머그컵 하나에 만원이라 퉁치면 그리 나쁜 선택도 아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 이번에도 원두 상품 4개를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머그컵이 하나 생겼다. 막상 그 머그컵을 받아보니 좀 실망스러웠다. 비매품의 이 머그컵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예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이 컵을 찬장에 처박히게 만든 것은 '무거워서'였다. 그랬다. 컵은 나에게 무거웠다. 이걸 들고 커피를 마셨다가는 한 달 안에 내 손목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물론 좋은 도자기 컵은 원래 무겁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때 도자기 제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은품에 눈이 멀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흰색의 머그컵은 찬장의 장식품이 되었지만, 그래도 원두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이 원두를 사다먹기 전에는 대형 마트의 PB 상품인 원두를 구매했었다. 그걸 구매한 이유는 오로지 '가성비'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생두를 사다가 집에서 볶아 먹을 정도로 커피에 진심이었지만, 이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너무나도 번거롭고 귀찮다. 커피맛이라는 게 커피 전문점의 그 비싼 기계로 고압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다 거기서 거기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원두 비싼 거 사봤자 집에서는 그 맛을 온전히 내기도 어렵지. 나는 '가성비' 좋은 원두를 사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내게는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어떤 맛과 향 때문이 아니라, 아침에 기계적으로 뇌를 흔들어 깨우는 의식이 되는 것 같았다. '가성비' 원두, 아니 사실은 '저렴이' 원두의 맛은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가끔 커피 관련 뉴스를 보면 원두 가격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었다. 기후 변화, 커피 재배 지역의 분쟁, 커피 나무에 생기는 병충해까지, 원두 가격은 도무지 내릴래야 내릴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냥 이 원두로 쭉 가자. 그러던 생각이 전번에 산 원두 때문에 바뀌고야 말았다. 전번에 산 원두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그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냥 쓰디쓴 시커먼 물이었다.

  나는 1+1 행사로 산 스*** 원두를 내린 커피에다가 '저렴이' 원두로 내린 커피를 대충 섞어서 먹으면서 1kg이 넘는 원두를 소모할 수 있었다. 맛이 괜찮은 커피를 섞으니, 맛없는 커피도 대충 먹을만한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비싼 건 다 비싼 이유가 있네. 나는 양이 많은데 가격도 싸다고 먹었던 그 PB 상품 원두를 더이상 사고 싶지 않았다. 가격으로 치면 스*** 원두는 저렴이 원두의 4배 가격에 해당되었다. 그럼에도 중량과 가격을 비교하며 내 선택을 합리화하는 일은 뭔가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싼 게 비지떡. 이 단순한 삶의 진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명료하게 다가온다. 가격 비교 사이트를 찾아보는 일도 이제는 피곤하다고 느낀다. 터무니 없는 가격이 아니라면, 상품에 매겨진 가격과 그 상품의 질이 비례한다는 것을 수긍하게 된다. 그래 이 맛이야. 예전에 배우 김혜자 씨가 조미료 광고에서 했던 말을 나는 '가성비' 원두에서 탈출하고 나서야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1+1 행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엌 찬장에 처박힌 겉멋든 머그컵을 쓰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커피를 마실 때만큼은 합리적 구매란 '가격'이 아니라 '맛'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지만 나는 이 커피를 계속 마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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