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혼이 다 나쁜 건 아니에요. 난 우리 부모님이 이혼한다고 했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였어요."

  부부의 첫째 딸은 부모의 이혼을 그렇게 회고했다. 매트 리들후버 감독의 2020년작 다큐 'My Darling Vivian'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전설 조니 캐시(John R. Cash)의 숨겨진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조니 캐시와 두 번째 부인 준 카터와의 러브스토리는 영화 '앙코르(Walk the Line, 2005)'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첫 번째 부인, 비비안 리베르토가 바로 이 다큐의 주인공이다. 그들 부부의 4명의 딸들은 부모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과 어머니의 인간적 모습에 대해서 증언한다.

  유명인과 그 가족들의 실제 삶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다큐가 들려주는 비비안의 삶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17살의 비비안은 잘 생긴 공군의 구애를 받는다. 짧은 연애 기간 후, 독일로 파병된 남자는 3년 동안 엄청난 러브레터를 보낸다. 그리고 그가 귀환했을 때, 비비안은 그와 결혼한다. 세일즈맨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여자의 남편은 노래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가수가 된다.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이 신인 가수는 곧 스타덤에 오른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이 활약했고, 영화도 찍었으며, 꽉 짜인 공연 스케줄로 집에 들어오는 날은 거의 드물었다. 그 사이 여자는 4명의 딸들 엄마로 바쁘고, 외롭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기치 않은 삶의 변화. 숲 속에 지은 대저택에는 수시로 방울뱀과 야생동물이 출몰했다. 여자는 산탄총을 들고 방울뱀을 쏘아 죽이기도 했다. 극성 팬들은 집 주소를 알고 찾아와 밤낮으로 문을 두들겨 댔다. 내성적인 성격의 비비안에게 그러한 변화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거기에다 그 시대 유명인들이 거쳐가는 안좋은 인생 행로를 남편은 걸어가고 있었다. 약물 중독이었다. 각성제를 비롯한 여러 약물에 중독된 자니 캐시는 멕시코에서 약물을 밀반입하려다 체포된다. 언론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비안은 그런 남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가 신문에 크게 사진이 실린다. 남편은 곧 풀려났지만, 그 일의 불똥은 엉뚱하게 튄다. 비비안의 외모를 두고 흑인이 분명하다며 온갖 추측이 쏟아진다.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제시되는 비비안의 외모에서 흑인 혼혈의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비비안의 부모와 형제는 모두 백인이고 오직 비비안만이 그들과 구별되는 외모와 피부색을 가졌다. 공공연한 인종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1960년대, 유명 컨트리 가수의 부인이 흑인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비비안의 외증조모가 흑인 노예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KKK단을 비롯해 극성 팬들은 비비안과 가족에게 협박을 가했고, 조니 캐시의 공연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비비안은 그 모든 것과 홀로 맞서야 했다. 조니 캐시도 곤경에 처했지만, 그는 결혼 생활을 정리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첫째 딸의 회고대로 정말로 좋은 이혼이었을까? 어쨌든 남자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컨트리 가수와 재혼해서 경력의 성공가도를 달린다. 비비안도 재혼하지만, 딸들의 부양은 전적으로 비비안의 몫이었다.

  4명의 딸들은 신산스러웠던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 보며 회한에 젖는다. 그들은 어머니 비비안에게 전적인 연민만을 보이지 않는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에 정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비비안은 딸들에게 그렇게 충실한 엄마 노릇을 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살피며 컸고, 불안정한 엄마를 보면서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엄마가 한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한다. 남편이 재혼한 여자가 전처의 딸들을 자신이 다 키우고 있다며 뻔뻔하게 언플할 때, 남편이 죽은 뒤에 성대하게 열렸던 추모 음악회에서 그 여자 준 카터가 조니 캐시의 유일한 동반자로 칭송받을 때, 비비안의 슬픔과 분노는 클 수 밖에 없었다. 비비안은 손자들을 보살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렇게 조니 캐시의 첫 번째 아내는 공식적으로 잊혀졌다.
 
  딸들이 어머니의 삶에 대한 공식적 복원에 적극적이었던 배경에는 영화 '앙코르'가 있었다. 사실과는 다른 영화 속 비비안에 대한 묘사는 딸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준 카터는 약물에 절은 조니 캐시를 구원한 음악적 동반자이며 연인으로 각인되었지만, 비비안은 정서불안의 철없는 아내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더스틴 티틀은 비비안의 손자로 할머니의 삶을 복원하는 이 다큐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다큐는 유족들이 소장한 편지, 사진, 비디오 자료들을 통해  비비안 리베르토의 인간적 모습을 차근차근 되살려낸다. 이 다큐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 '앙코르'의 원제 'Walk the Line'이 가진 역설에 대해서도 알게된다. 그것은 조니 캐시의 노래 제목 'I Walk the Line'에서 따온 것으로, 그 노래는 사실 비비안에 대한 연가로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조니 캐시가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래서 잊혀지길 바랬던 첫 번째 부인 비비안. 'My Darling Vivian'은 한 남자를 사랑했었고, 그 사랑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한 여성의 삶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다음 글은 화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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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선생님이 노숙자라고 하던데, 정말 그래요?"
  "아니, 난 노숙자(homeless)가 아냐. 그냥 집이 없는 것(houseless) 뿐이야."

  한때 학교 보조 교사로 일했던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학생에게 그렇게 대답한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의 2020년작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집을 떠나 길 위의 삶을 택한 중년 여성 펀(Fern)의 이야기를 담는다. 원작은 2017년에 출판된 제시카 브루더의 동명 논픽션으로, 클로이 자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색을 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펀'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자오의 창작물인 셈이다.

  펀이 오랫동안 살던 석고 광산 도시 엠파이어는 광산의 폐쇄와 함께 도시로서의 운명도 끝난다. 암에 걸린 남편의 죽음을 겪으며 펀은 밴 한 대에 자신의 삶을 담아 길을 떠난다. 영화는 온갖 일용직을 전전하며 노매드(nomad)의 삶을 고수하는 펀의 여정을 보여준다. 무려 1시간 50여분에 이르는 이 영화는 줄거리라고 할 것이 없다. 펀이 하는 다양한 일들, 아마존의 물류창고 일, 드러그 스토어 점원, 캠핑장 청소일, 햄버거 음식점 주방일 등이 마치 씨실처럼 직조된다. 날실은 길에서 만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펀이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광대한 미국 자연의 풍경도 정말 멋진 배경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나? 맞다. 이 영화는 음악이 꽤 좋다. 나중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보니 현대 음악 작곡가로 잘 나가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이름이 뜬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명상적인 울림을 준다. 정말 그 뿐이다.

  '노매드랜드'는 작년 한 해 동안 아카데미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를 휩쓴 영화이다. 나는 도대체 이 영화의 어디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찾아낼 수 없었다. 경제적 기반의 붕괴와 남편의 죽음. 여자는 그렇게 길을 떠났고, 길 위의 삶에도 잘 적응했다. 영화는 펀이 만나는 노매드들의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현시대 미국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늘어놓는다.

  "나는 이 삶이 마음에 들어요. 자유롭고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과연 실제 길 위의 삶이 그토록 충만하고 낭만적이며 평화로운 경험으로만 채워질까? 영화는 펀이 계속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생계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거주가 불안정한 여성이 겪는 위험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한다. 여성 노숙자들이 드문 이유는 성적 위협과 착취가 매우 현실적인 위험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평화로운 노매드 공동체의 모습은 실제의 현실을 탈색시킨 것이다. 길 위의 삶은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어나갈 수 없다. 치안을 비롯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도 변수로 작용한다. 이 영화의 처절한 지루함에 몸이 뒤틀릴 무렵, 펀에게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밴이 고장난다. 영화 시작 후 1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나는 그제서야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펀은 차 수리비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펀의 선택은 여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여동생은 돈도 빌려주고, 같이 살자고 제안도 한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살게된 마음 맞는 노매드 데이브도 펀에게 진짜 '집'에서 살자고 말한다. 그러나 펀은 그 모든 것을 거부한다. 이 여자는 결코 절박한 처지의 노숙자가 아니다. 클로이 자오는 길 위의 삶을 이상적으로 포장한다. '집'으로 상징되는 물질에 매몰된 삶을 '죽은 것'이란 메시지를 보여줌으로써, 펀의 선택은 진정한 자유와 생의 의지에 대한 표현이 된다. 그것은 여동생의 집에서 지인들과 나눈 주택 구매에 대한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펀은 집을 사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란 자신의 미래를 건축물에 매몰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매드랜드'는 기꺼이 삶의 불안정성을 끌어안고 진정한 내적 자유와 평화를 위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찾길 요구한다. 그것이 노매드의 삶이라고 추켜세우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거친 현실과는 다르게 매끄럽게 가공되어 있으며 그저 얄팍한 성찰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작년 한 해에 이 영화가 그토록 세간의 화제가 된 이유는 전례없는 전염병의 시대에 줄어든 영화 제작 편수, 그리고 이 영화의 풍광이 보여주는 감상적 위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클로이 자오의 이 영화는 지루하고, 생기도 없으며, 경박스럽다. 한가지 더, 아마존 물류 센터의 급여가 '꽤 괜찮다'고 말하는 펀의 대사는 정말이지 끔찍하다. 아마존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혹독한 조건의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기업인지 클로이 자오는 정말 몰랐을까? 떠오르는 젊은 거장이라고 칭송받는 이 여성 감독은 정치 감각과 현실 타협 능력만큼은 대단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출처: empire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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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구라(忠臣蔵)'는 억울하게 죽은 주군을 대신해 복수를 하는 47명의 가신(家臣)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이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좀 챙겨보는 이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인데, 이걸 극화한 것이 무척 많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추신구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신선조(新選組)'이야기 또한 문학과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졌다. 특히 2004년에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는 젊은 세대의 관객들에게 신선조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사와시마 타다시 감독의 '신선조(Shinsengumi, 1969)'는 막부 말기 쇼군의 친위 부대였던 신선조의 결성과 몰락의 과정을 그린다. 신선조를 이끌었던 콘도 이사미 역은 당시 일본 영화의 간판 스타였던 미후네 토시로가 맡았다. 그는 제작자로도 참여했으므로 영화는 사실상 미후네 토시로가 지배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해 낸다. '신선조'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잘 정리된 자료들이 많으므로 참조하면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된다. 막부 말기, 교토는 천황을 옹립해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파와 쇼군을 지켜야 한다는 막부파가 대립하는 혼란스런 격전지였다. 신선조는 쇼군을 호위하기 위한 하급 무사들의 집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무사들 뿐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콘도 이사미 또한 농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농 집안 출신으로 일반 농민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신선조를 이끌었던 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막부의 시각에서 봤을 때, 신선조의 존재는 적당히 써먹고 버려도 좋은 '사냥개' 정도의 의미였을 것이다. 진짜로 신선조가 했던 일은 그러했다. 존왕양이파를 주도했던 초슈 번과 그 일당들에 대한 가차없는 암살과 처단으로 신선조는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미후네 토시로가 연기한 콘도 이사미는 쇼군과 막부를 옹호하는 신선조의 수장이다. 농민 출신인 그가 처음부터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선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신선조의 첫 수장이었던 세리자와의 알콜 중독과 상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를 보여준다. 신선조는 초창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후원이고, 나쁘게 말하면 상인들에게 '삥'을 뜯어야 했는데 상인들 입장에서는 막부파와 천황파 사이에서 줄타는 것이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세리자와는 자신의 무력을 너무 함부로 휘둘렀으므로 곧 제거의 대상이 된다. 콘도 이사미는 결격 사유를 지닌 전임자와 그 일파를 제거하고 정당한 수장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신선조를 이끌며 천황파의 막부 타도 음모를 분쇄하는데, 미후네 토시로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연기한다. 특히 존왕양이파들의 회합 장소를 습격해서 처단한 이케다야 사건 장면은 비좁은 공간에서의 처절한 결투를 잘 보여준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막부의 인정을 받고 잘 나가는 신선조에도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엄격한 규율의 적용과 반복되는 살상행위에 회의를 느끼는 신선조원들. 그들은 자신들이 피에 굶주린 막부의 개가 아니라며 항변한다. 그렇게 나가는 이탈자들에게 자비란 없다. 그러나 콘도 이사미는 그들에 대한 무자비한 처단을 명령하는 악역으로 비춰지지는 않는다. 그는 어디까지나 중용의 미덕을 지닌 인물로, 신선조의 엄혹한 교조주의적 입장을 대변하는 히치카타가 기꺼이 악역을 대신한다. 아무튼 미후네 토시로는 자신이 돈 들여 만든 영화에서 나쁜 모습은 하나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런 시대극에서 여성 캐릭터는 별로 말할 거리가 없다. 대의를 위해 자신과 어린 딸을 놔두고 떠나는 남편에게 '결심한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하는 콘도 이사미의 아내, 언제든 쉴 수 있는 안식처로 평생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게이샤 연인은 그저 영화 속 악세사리일 뿐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시의 그런 역사적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민중의 삶이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것이었다. 여성의 삶은 더 어려웠다. 결국 남편의 죽음을 마주하거나(콘도 이사미의 아내), 연인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거나(게이샤의 여동생), 기약없이 만날 날을 기다리는(신선조원 오키타의 정인) 일이 그들의 몫이었다.

  막부가 천황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 이후에도 신선조는 끝까지 저항한다. 쇼군의 친위부대에서 하루아침에 반란군이 되어버린 신선조. 그들이 근대 일본 탄생의 걸림돌에서 무사도의 화신으로 변모하는 과정의 열쇠는 신선조의 부대 깃발에 새겨진 '마코토(誠)'에서 찾을 수 있다. 극중 콘도 이사미는 몰락해 가는 막부의 모습을 목도하고도 신선조로서 '마코토'의 마음가짐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신선조를 수구 권력의 시대착오적 저항의 이미지가 아닌, 격동의 시대에 충심을 다한 무사의 후광을 씌운다. 일본 시대극(時代劇) 영화, 그리고 미후네 토시로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놓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신선조의 백과 사전 항목을 보는 듯한 밋밋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과 한 집단의 흥망성쇠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사진 출처: zh.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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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의 다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마치 패키지로 보이는 다큐들이 있다. 산악 다큐인 'Free Solo(2018)', 'Meru(2015)', 그리고 'Man on Wire(2008)'.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암벽산 엘 캐피탄(El Capitan)을 맨손으로 등반한 알렉스 호놀드의 이야기를 담은 'Free Solo'는 정말이지 나름의 충격 같은 것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도전의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 호놀드가 엘 캐피탄 등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도전하다 사망한 동료 산악인들 소식을 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로 그가 하는 일이 목숨을 걸고 할 만한 일일까? 호놀드와 비슷하게 목숨을 걸고 도전을 했던 이가 있었다. James Marsh의 2008년작 다큐 'Man on Wire'는 1974년에 뉴욕 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빌딩에서 외줄타기 도전을 시도한 필립 프티트(Philippe Petit)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큐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프티트와 당시에 프티트의 도전을 도왔던 이들의 증언, 기록 영상과 사진, 재연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티트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층 빌딩에서 외줄타기를 선보인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17살 때 세계 무역 센터의 착공 소식을 읽은 후 당시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로 기록될 그 곳에 매료되었다. 저글링과 줄타기 같은 거리 공연을 하며 자신만의 외줄타기(high-wire walk) 기술을 연마해 나갔다.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선보인 외줄타기 공연의 성공으로 그는 고무되어 있었다. 물론 그런 시도 자체는 모두 허가받지 않은 것이었고, 매번 체포되어 일시적인 구금을 겪어야 했다. 마침내, 프티트는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꿈에 도전한다.

  영웅 신화에서 영웅이 조력자 없이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결같은 정서적 지지를 보낸 여자 친구 애니, 사진 작가, 자금 담당, 장비 설치를 돕는 이들... 모두 다 프티트가 가진 열정과 놀라운 재능에 사로잡힌 이들이었다. 이미 성공한 모험이었음에도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전이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프티트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릴 터였다.

  어쨌든 이 20세기 돈키호테 필립 프티트는 무작정 창 하나 들고 풍차에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가 가진 재능은 단지 외줄타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놀라운 집중력과 실행력까지 갖추었다는 점에 있었다. 프티트는 자신이 도전할 빌딩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철저히 조사했다. 헬리콥터 빌려서 항공 사진으로 빌딩 외부를 촬영했고, 빌딩의 구조적 측면을 알아내기 위해 가짜 기자로 위장하고 건축가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했다. 당시에도 세계 무역 센터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으므로 필요한 신분증을 위조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프티트와 친구들은 여러 시일에 걸쳐 필요한 장비들을 빌딩 최상층부까지 나르고,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외줄에 몸을 맡기고 세계 최고층 빌딩 사이를 여러 번 왕복했다. 당시의 장면은 스틸 사진으로 제시되는데, 그 사진 속의 프티트는 충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장면은 관객들이 그를 외줄타기 모험가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이후에 예술가의 정체성을 갖고 high-wire walk에 대한 공연을 이어갔다. 24살에 달성한 위업은 그를 단번에 유명인사로 만든다. 프티트는 온갖 찬사와 각광을 받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조력자들에게 인간적인 신의는 갖추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큐는 프티트가 가진 인간적 약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유명세를 즐기던 프티트는 미국에 정착했다.

  다큐의 마지막은 희끗희끗한 머리의, 살이 붙은 중년의 프티트가 잔디밭에서 외줄타기 연습을 하면서 들려주는 조언으로 마무리 된다.

  "인생이란 벼랑 끝에 선 것과 같아요... 당신을 얽어맨 규칙, 성공, 반복되는 일상에 저항해야 합니다. 도전만이 살 길이에요. 당신은 당신 삶의 외줄을 타야하는 겁니다."

  아, 그냥 한숨이 나왔다. 저런 사람이나 되니까 저렇게 살아가지,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재능이 없는 열정은 무모한 시도를 반복하게 할 뿐이며, 결국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에 접어들 뿐이다. 내가 너무 늙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런 다큐를 보고나면 그냥 심드렁해진다. 어쩌면 이 다큐는 그저 1시간 34분 동안 감자칩을 먹으며 시간 때우기 좋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같다. 상업 영화적 감각이 뛰어난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 2015)'로 만들어 냈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인생, 필립 프티트는 그렇게 자신의 전기 다큐와 영화 작품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 출처: ny.curb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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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8-19 00:09   좋아요 0 | URL
푸른별님, 저는 Philippe Petit 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십수 번 외울만큼 읽다보니 이 분이 제 기억에는 젊은 모습 그대로 콕 박혀 있어요. 중년의 그가 외줄타기 하며, 저런 지혜로운 이야기를 전하다니! 다큐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푸른별 2021-08-19 23:20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이 다큐도 나름대로 재밌습니다.
 


  외신에서 아주 가끔씩 스페인의 바스크 분리 독립 운동과 관련된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스페인의 오랜 지역적 정서와 결합된 일부 극렬 정치집단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아마도 스페인 근현대사에서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약간만 알고 있는 정도의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대부분 그렇게 여길 것이다. 훌리오 메뎀 감독의 1991년작 'Vacas(Cows, 1991)'은 바스크 지방의 두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스페인 근현대사를 성찰한다. 영화는 4개의 챕터로 나누어 전개된다. 1. 1875년 3차 칼리스트 전쟁(The Third Carlist War), 2. 도끼(1905년), 3. 불타는 구덩이(1차 세계 대전), 4. 숲속의 전쟁(스페인 내전). 주인공 마누엘 역은 배우 까르멜로 고메즈가 맡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의 3대에 걸친 역을 소화해 낸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스페인 근대사의 칼리스트(카를로스파)들에 대한 개관적 지식이 필요하다. 1883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7세가 사망하자 3살된 딸 이세벨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이들이 왕실의 후손인 카를로스 백작을 왕위에 올리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무려 3차례에 걸친 칼리스트 전쟁은 스페인의 복잡한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 냈다. 결국 칼리스트들은 패배했지만, 바스크 지방의 칼리스트들은 바스크 자치주의를 주장하는 쪽으로 분화했다. 왕당파에서 반 공화주의, 극우 보수주의로 변화한 칼리스트은 스페인 내전에서는 프랑코 편에 선다. 프랑코가 그들이 원하는 자치권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칼리스트들을 경계하던 프랑코는 그들을 철저히 이용해먹고 탄압했다.

  영화 'Vacas'의 첫 장면은 도끼로 나무를 패는 남자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날이 바짝 선 도끼로 무지막지하게 나무를 찍어내리는 이 긴장감은 영화 내내 유지된다. 첫 번째 챕터는 3차 칼리스트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마누엘은 이웃 카르멜로를 전장에서 만난다. 총격으로 죽은 카르멜로의 피를 얼굴에 묻혀 죽은 척 했던 마누엘은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30년이 지나고 노인이 된 마누엘은 나무 쪼개기의 달인이 된 아들 이그나시오과 손녀딸들을 보며 노후를 보낸다. 그는 주로 소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소는 그가 전장에서 도망쳤을 때 숲에서 처음으로 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소는 음울한 기운을 내뿜으며, 피를 흘리고 있다. 소는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사건들의 말없는 목격자이다. 훌리오 메뎀은 '소'를 역사의 무심한 방관자로 설정한다.

  나무 쪼개기 달인으로 온 나라에 이름이 알려지는 이그나시오와는 달리 그에게 시합에서 패배한 이웃 카르멜로 집안의 후안은 더욱 적대적이 된다. 후안은 이그나시오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페루를 낳은 여동생 카탈리나에게 목숨의 위협을 가하며 근친상간까지 시도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두 집안을 얽어맨 감정의 골과 정신병적 징후는 정파들의 전쟁으로 얼룩진 스페인 근현대사의 단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배 계급의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암투는 민중의 삶을 뒤흔들고 망가뜨린다. 미국으로 떠난 페루는 사진 기자가 되어 고향을 찾지만, 마을의 숲은 내전의 전장터가 된다. 삼촌 후안은 칼리스트로 프랑코의 정부군에 합류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다. 마누엘을 불구로 만들었던 참혹한 전쟁의 그림자는 그렇게 스페인 내전까지 이어진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망치는 것 뿐이다. 유럽이 전쟁 중이던 시기에 이그나시오는 카탈리나와 미국으로 도망쳤고, 삼촌의 호의로 겨우 목숨을 건진 페루는 연인인 이복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프랑스로 갈 것을 생각한다.

  'Vacas'에서 '소'와 함께 또 다른 목격자로 등장하는 사물은 '사진기'이다. 마누엘은 사진기를 접하고 틈만 나면 가족과 숲속의 동식물을 카메라에 담는다. 비공식적으로 기록되는 민중의 역사, 마누엘의 손자 페루가 종군 사진 기자로 다시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페루는 마을 숲속의 전투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떤 면에서 훌리오 메뎀은 자신의 첫 장편 영화에 스페인의 근현대사에 대한 영화적 성찰을 남긴 셈이다.


  그가 바라본 스페인의 고통스런 역사는 뿌리깊은 적의와 불화에서 뻗어져 나온 병든 가지들이다. 훌리오 메뎀은 그 모든 것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죽어가는 것을 모두 삼켜버리는 숲속의 오래된 그루터기, 마누엘이 만든 붉은 모자(칼리스트들의 모자)를 쓴 죽음의 사신 허수아비가 휘두르는 길다란 낫, 영화는 그런 이미지들과 함께 소리에도 집중한다. 숲속 장면에서 들리는 사람의 거친 숨소리, 나무를 찍어내는 도끼 소리, 그 소리들은 관객을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때로 어떤 영화들은 우리가 잘 모르는 낯선 나라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Vacas'를 만나는 관객들은 훌리오 메뎀이 영화적으로 예리하게 절단한 스페인 역사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사진 출처: dvdbe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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