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시절 제작된 영화들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고 환영받는 영화 장르는 코미디였다. 국가가 영화 산업을 총괄하는 소련 당국의 입장에서도 코미디는 수익률이 높은 장르였기 때문에 제작과 검열에서도 비교적 관대했다. 엘다 라쟈노프(Eldar Ryazanov) 감독은 코미디 영화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다. 'Unbelievable Adventures of Italians in Russia(1973)', 'Office Romance(1977)'는 그의 대표작으로 소련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라쟈노프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도 대부분 자신이 했다. 1966년작인 '차 조심!(Beware of the Car)'도 그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의 첫 부분, 어두운 밤, 서류 가방에 모자, 트렌치 코트를 입은 남자가 복잡한 계단을 오르내리며 조심스럽게 차고에 접근한다. 소련 느와르인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남자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전지적 시점의 이 해설자는 사건의 국면마다 설명을 덧붙이며 영화에 독특한 색채를 덧입힌다.

  겸손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자동자 보험 설계사 유리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는 고객들 가운데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의 차를 훔친다. 수사관 막심은 연이은 차량 도난 사건의 범인 때문에 골머리를 썩인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난다. 연극을 좋아하는 유리와 막심은 지역 극장의 배우로도 활약하는데, 그들은 새로 상연될 '햄릿'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차량 절도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을 조사하던 막심은 유리가 범인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로서 막심은 유리를 체포하는 일을 주저한다. 범인과 경찰, 이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어떻게 끝날까...

  사실 소련 코미디 영화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는 일은 별로 없다. 이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 느와르로 시작했던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유리의 캐릭터는 정말로 특이한데, 차를 훔칠 때 보여주는 계획성과 명민함과는 달리 일상에서는 순진하고 어수룩한 모습을 보여준다. 라쟈노프 감독은 유리라는 인물을 '돈키호테와 미슈킨(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의 주인공), 로빈 후드'의 특성을 조합해 설정했다. 유리는 자신의 물욕 때문에 차를 훔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일을 한다. 그가 훔친 차의 고객들은 부정한 이득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다. 백화점에서 외제 물건을 빼돌려 비싼 가격에 파는 소매상, 뇌물을 받거나 횡령을 저지른 이들이 유리의 표적이다. 유리는 차를 팔아 그 돈을 고아원에 기부한다.    

  영화 '차 조심!'은 당시 소련 사회가 가진 문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공산주의 정권이라고 해서 부정부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 그것이 순박하고 착실한 유리가 차량 절도범으로 변모하는 이유이다. 어쨌든 '소련 영화 촬영 위원회(Goskino)'는 차량 절도범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 난색을 표했다.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차량 절도를 모방할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에 따라 인민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은 배격되었다. 라쟈노프는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잡지에 실었고, 독자들의 반응이 좋자 비로소 영화로 만들 기회를 얻는다.

  이 영화를 본 어느 러시아의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도 비현실적인 내용이었고, 지금의 관객들은 더 이해못할 구식 영화라고 평했다. 일정부분, 그 관객의 말이 맞기는 하다. 그러나 영화 '차 조심!'은 여러 흥미로운 지점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값비싼 자동차'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 유리는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훔치는 차들의 주인들은 '돈', 그것도 부정하게 축재하고 소비하는 비도덕적인 인물들로 제시된다. 백화점 소매상으로 나오는 디마(안드레이 미로노프 분, 그는 라쟈노프 영화의 단골 출연 배우이다)의 장인은 은퇴한 군 장교로 교외에 화려한 다챠(dacha, 교외 별장)를 짓는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사유재산을 전적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근로소득을 비롯해 개인 소유의 주택이 인정되었고, 상속도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디마는 재판정에서 소련의 법은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소리치며, 유리의 처벌을 요구한다. 물론 유리는 당연히 죗값을 치루는 것으로 나온다.

  '연극'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인 유리와 막심이 보여주는 연대의식 또한 눈길을 끈다. 막심은 유리의 체포영장을 찢어버리려고까지 한다. 그는 유리가 차를 훔치는 이유, 그리고 유리의 자선 행위에 감화를 받는다. 이 두 사람이 보여주는 우정은 극중극으로 공연되는 '햄릿'의 장면들과 함께 제시된다. 유리 역을 맡은 이노켄티 스목투노프스키(Innokenty Smoktunovsky)는 미묘하고 복합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다. 라쟈노프는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다루면서도 코미디의 본질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는 밋밋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차 조심!'은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흐루시초프의 실각으로 '해빙기'는 끝나가고 있었지만, 영화 속 모스크바의 모습은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소련 영화 음악의 간판스타였던 안드레이 페트로프의 정겨운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소련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사진 출처: ru.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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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데뷔작 '로저와 나(Roger and Me, 1989)'는 여러모로 흥미있는 작품이다.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백수로 고향에 돌아온 무어는 GM(제너럴 모터스)의 공장 폐쇄와 인력 감축으로 고향 플린트가 경제적으로 몰락한 것을 보게 된다. 그는 GM의 최고 경영자 로저 스미스를 만나서 이야기라도 들어보자, 하고 카메라 하나 들고 길을 나선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다큐는 이후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서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처럼 작용했다. 이전까지 대상과의 객관적 거리를 중시했던 다큐멘터리 제작 경향은 무어가 보여준 참여적이고 적극적인 인터뷰, 영화적 재구성과 같은 방법들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경멸적 의미로 'Moore Kids'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다큐 제작자들이 비슷한 다큐들을 쏟아냈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모건 스펄록의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 2004)'일 것이다.

  2021년 EIDF 상영작인 사카하라 아츠시 감독의 '옴 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과 나(Me and the Cult Leader, 2020)'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었다. 영문 제목도 '나와 사이비 교주'이며, 사카하라 감독은 마이클 무어가 '로저와 나'에서 썼던 야구 모자 비슷한 모자를 쓰고 나온다. 1995년, 일본 도쿄에서 옴 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하고 6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감독 사카하라 아츠시는 당시 그 지하철을 타고 있다가 사린 가스에 노출되어 회복할 수 없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알레프(Aleph)로 이름을 바꾸고 여전히 활동 중인 옴 진리교의 실체에 접근해 보기로 결심한다. 2015년, 1년여의 노력 끝에 알레프의 중요 인사인 홍보 담당자 아라키와의 만남이 성사된다. 감독은 아라키와의 짧은 여행을 계획한다. 이 다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두 사람의 여행 기록을 담았다.

  천인공노할 테러를 저지른 종교 단체가 어떻게 이름을 바꾸고 여전히 신도를 끌어들이며 활동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 정부는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옴 진리교 단체를 감시해왔지만, 헌법에 명시된 '사상과 종교의 자유'는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으로 옴 진리교에도 해당된다. 사카하라 아츠시는 분노와 고통, 그리고 궁금증을 가지고 아라키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우연의 일치로 그들은 같은 교토 출신으로 명문 교토 대학의 1년 선후배 사이였다. 그들의 고향 교토와 모교의 교정을 돌아 보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다큐에서 보여지는 사카하라 아츠시는 매우 활달하고 직설적인 인물이다. 그와는 달리 아라키는 내성적이며 거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카하라와 아라키는 같이 음악을 듣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기묘한 우정을 쌓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옹호하는 아라키를 보며 사카하라는 분노한다. 아라키에게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의 참회의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압박해가는 감독의 모습은 어떤 부분에서는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아라키에게 과거의 그 사건에 대해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테러 사건 1년 전에 출가(가족과 주변과의 연을 끊고 입회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아라키는 테러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며, 단지 그의 잘못이 있다면 아직까지 잘못된 종교적 망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사카하라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라키에게 사과를 요구한 이유는, 사과가 아라키의 내면적 각성을 이루고 아사하라의 망령에서 벗어나게 할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다큐에서도 엿볼 수 있듯, 감독은 완고하고 충실한 추종자인 아라키에게 연민과 우정의 감정을 갖고 있다. 사실 다큐는 '가해자/피해자'의 대립적 구도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들의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이비 교주'의 사악한 영향력을 통찰하게 만든다. 사카하라와 아라키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관객들은 그 두 사람의 순탄치 않았던 인생 역정을 듣게 된다. 사카하라는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아내될 사람이 옴 진리교 신자라는 고백을 듣는다. 결혼을 취소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 결혼은 1년 반만에 끝난다. 아라키는 어린 시절의 잦은 병치레, 극도로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탐구심을 가졌던 자신의 성장 과정을 들려준다. 교주 아사하라와의 만남은 아라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어떤 면에서 아라키가 끈질기게 사카하라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며 교주를 옹호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 전부가 부정당한다는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기에서부터 시작이었군요, 우리 두 사람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모교를 돌아보면서 교주 아사하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카하라는 리무진을 타고 교정에 들어온 아사하라에게 '날아봐, 날아보라구(아사하라는 공중부양 능력이 있다고 공언했다)!'고 외쳤던 일화를 들려준다. 그러자 아라키는 학교에서 교주를 만난 것은 그 1년 뒤였는데, 친구로부터 아사하라에게 날아보라고 소리질렀던 사람에 대해 들었다고 말한다. 아라키의 그 이야기를 듣고 사카하라는 기이한 인연의 시작을 되새겨본다.


  사카하라가 다큐를 찍은 것은 2015년이었지만, 편집 작업에는 5년이나 걸렸다.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업이 그토록 힘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제작사에서 추천한 와타나베 준코가 편집을 하게 되면서 다큐는 긴 기다림 끝에 관객과 만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두 남자의 짧지만 내밀한 내적 여정이 잘 담겨진 데에는 편집의 공이 크다. 옴 진리교 교주와 테러의 핵심 관계자들의 사형이 이루어진 것은 2018년이었다. 사카하라 감독은 그 소식이 어느 정도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아라키는 여전히 알레프에 몸담고 있으며, 사카하라 감독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한다. 'Me and the Cult Leader'는 그렇게 과거의 한 인물로 인해 인생의 비가역적인 변화를 겪은 두 남자의 현재를 고통스럽게 응시한다. 



*사진 출처: dbox.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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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N사의 등장은 영상물의 유통과 소비에 있어서 여러모로 혁신을 일으켰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 늘 배급 문제로 고민하는 제작자들에게 좋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빌리 코번 감독의 2021년작 '코카인 카우보이: 마이애미의 제왕들(Cocaine Cowboys: The Kings of Miami)'은 N사의 6부작 다큐로 편성되어서 방영되었다. 코번 감독은 2006년에 'Cocaine Cowboys'로 마이애미의 두 마약 거물들에 대한 고발 다큐를 내놓았는데, 올해 나온 6부작 다큐는 그 후속편으로 다큐의 완성판이라고 보면 된다. 다큐는 Sal Magluta와 Willy Falcon이 1970년대부터 마이애미에 구축한 마약 왕국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1부 윌리와 살, 2부 코카인 75톤, 3부 산더미 같은 증거, 4부 마이애미가 아니라면, 5부 팜므 파탈, 6부 무차초스여 안녕, 이렇게 6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당 50여분 가량으로 만들어진 이 다큐의 흡인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이 다큐를 보려는 이들은 가급적 주말 저녁에 보는 것이 낫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다 보느라 밤을 샐지도 모른다. 다큐는 액션, 스릴러, 법정 드라마, 로맨스, 마치 온갖 종류의 장르 영화들을 절묘하게 합쳐놓은 것 같다. '코카인 카우보이'는 두 명의 마약왕의 일대기인 동시에 1970년대에서 80년대, 90년대까지 아우르며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마약 거물들의 가족과 지인들, 그들의 조직원들, 사건을 취재한 칼럼니스트, 그들을 기소한 연방 검사와 FBI 요원들, 마약왕들을 옹호한 변호사들, 그 모든 이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자료 화면으로 제시되는 사진과 녹음 테이프들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쿠바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한 마이애미에서 윌과 살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났다. 197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살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는 마약상 윌을 만나면서 인생이 뒤바뀐다. 둘은 죽이 잘 맞았다. 소소한 푼돈벌이였던 마약 사업은 콜롬비아의 악명높은 메데인 마약 카르텔로부터 공급을 받게 되면서 획기적 발판을 마련한다. 연방 정부의 해안 경비대를 피해 경비행기와 보트로 직접 공수한 엄청난 양의 마약으로 윌과 살은 거물 마약상의 삶에 진입한다. 윌과 살은 소형 보트 경주 경기를 휩쓴 선수로도 맹활약하며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마약 왕국은 판매책, 공급책, 자금 세탁팀, 법률 자문팀으로 세분화되면서 기업의 형태로 변모한다. 마약으로 번 돈은 마이애미의 지역 경제로 흘러들어갔는데, 특히 그들의 투자로 마이애미의 부동산 경기는 대단한 호황을 누렸다. 마이애미에서 그들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으며, 쿠바 이민자 사회에서 그들은 영웅이나 다름 없었다.

  잘나가던 윌과 살의 사업은 레이건 정부의 엄격한 마약 단속 정책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범죄가 수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이 되어서였다. 1992년, 드디어 연방정부는 그들을 기소하고 재판에 회부한다. 연방 정부의 검사들은 자신만만했다. 압수한 엄청난 양의 마약들과 많은 증인들이 윌과 살의 범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증인들은 암살범들에 의해 줄줄이 죽어나가며, 윌과 살은 호화 법률팀을 꾸리며 재판에 대비한다. 1996년, 배심원단은 윌과 살이 무죄라고 판결을 내렸고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다큐는 관객들에게 미국 사법제도의 일그러진 일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넘쳐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마약왕들은 풀려났고, 그날은 마이애미 쿠바 공동체의 축제날이었다. 마이애미는 윌과 살의 더러운 돈으로 포장된 작은 왕국이었다. 주 정부와 사법 기관, 지역 커뮤니티, 종교 단체를 비롯해 그들의 돈이 흘러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름다운 해변 도시 마이애미의 내부는 썩은 돈 냄새로 진동했다.

  다큐의 후반부는 그들을 무죄로 만든 배심원단의 비밀과 정의의 사도로 나선 FBI 요원들의 맹활약, 그리고 살의 여자 친구에게서 압수한 마약 장부로 윌과 살을 재기소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사법 당국이 윌과 살의 마약왕국을 무너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0여년이었다. 다큐는 지역 사회를 장악한 범죄 조직의 위력과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 주정부 사법 관할권의 한계, 배심원 제도의 폐해, 뿌리 깊이 자리한 미국의 마약 문제를 조망한다. 강렬한 비트의 마이애미 사운드와 함께 역동적으로 편집된 화면은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대기순으로 매 편마다 요약 정리해서 보여주는 이 다큐의 친절한 면모는 칭찬할 만하다. 속시원한 결말은 만족스럽지만, 그럼에도 마이애미의 'Muchachos(the boys)'라고 불렸던 윌과 살의 이야기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들의 범죄를 가능하게 했던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과 범죄로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소홀한 부분이 있다. '마약왕들의 서사시'는 너무나 재미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범죄 서사시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은 뭔지 모를 씁쓸함을 남긴다.



*사진 출처: netfli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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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담에 내가 감독 되면, 저것들 안써. 그때도 지금처럼 웃음이 나오나 봐라."

  뭔가 학교에서 쩌리들만 모인 것처럼 보이는 영화 동아리의 부원은 자신을 비웃는 여학생들을 두고 그렇게 뇌까린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The Kirishima Thing, 2012)'는 2009년에 나온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금요일, 학교의 최고 인기남인 키리시마가 갑자기 배구부를 그만 두고 종적을 감춘다. 주말 시합을 앞둔 배구부, 키리시마를 중심으로 뭉치며 다녔던 친구들은 모두 혼란에 빠진다. 모두들 키리시마를 애타게 찾는 가운데, 학교의 아웃사이더들 모임인 영화 동아리의 좀비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갑작스런 키리시마의 부재는 아이들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마에다가 리더로 있는 영화 동아리의 촬영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영화는 처음에 키리시마의 소식이 전해진 금요일의 풍경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3번에 나누어 보여준다. 마에다와 영화 동아리 부원들, 키리시마의 여친 리사와 친구들, 키리시마의 절친 히로키를 좋아하는 밴드부 주장 사와지마, 이들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 1950)'처럼 키리시마의 소식을 다른 입장에서 접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 첫날의 묘사를 통해 관객들은 등장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키리시마'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절대적이다.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는 '영화 속 키리시마는 말하자면 일본의 천황과 같은 존재'라고 언급했다.

  배구부의 주장 키리시마의 부재로 토요일 시합에서 배구부는 패한다. 아무 말도 없이 연락을 끊고 잠수한 키리시마 때문에 여친 리사는 분노하며 허탈해 한다. 키리시마와 늘 어울렸던 히로키와 친구들은 도대체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한다. 키리시마의 카리스마에 기대어 매일의 일상을 보냈던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을 돌아볼 시간을 얻게 된다. 히로키는 자신이 속한 야구부 선배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재능과 꿈을 돌아본다. 배구부의 키 작은 고이즈미는 키리시마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열정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의 부족을 실감한다. 재능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또 있다. 배드민턴 동아리의 미카는 배드민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죽은 언니를 떠올리며 괴로워 한다. 미카는 비슷한 처지의 고이즈미에게 연민을 갖는다.

  영화는 학원물에서 빠질 수 없는 연애도 촘촘히 짜넣는다. 밴드부의 주장 사와지마는 히로키를, 마에다는 좀비 영화 보러 갔다 만난 카스미를 좋아하게 된다. 사와지마가 히로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열심히 연주하는 곡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다. 그러나 히로키는 그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마에다의 경우도 마찬가지. 영화는 그 또래 아이들이 겪는 짝사랑의 내밀한 감정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사와지마와 마에다는 또래 집단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자리한 내성적인 아싸(아웃사이더)의 초상을 보여준다. 마에다의 영화 동아리방이 비춰지는 장면이 흥미로운데, 그곳은 검도부 방의 구석진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그들에게 학교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동아리 활동이다. 사와지마는 밴드부 주장으로, 마에다는 감독으로 영화 촬영에 최선을 다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지금은 일본의 인기 배우로 자리잡은 이들의 신인 시절의 모습들을 즐겁게 볼 수 있다. 또래 집단의 인싸와 아싸에 대한 묘사를 비롯해 연애와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그 나이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희미하고 흐릿하게, 그리고 흔들려 보였다. 어쩌면 그렇게 흔들리면서 걸어가는 것이 청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감독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여배우와 결혼할 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지만,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영화를 찍는다는 마에다의 말은 청춘의 특권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그 시간은 먹고 사는 일에 매몰되지 않은, 어쩌면 좋아하는 것과 온전히 머물 수 있는 인생의 짧은 순간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asianwiki.com



**영화의 마지막에 마에다가 학교 옥상에서 좀비 영화를 찍을 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 2막에 나오는 '엘자의 대성당의 행렬(Elsa's Procession to the Cathedral)'이다. 사와지마의 밴드부 연주로 들려지는 이 곡은 마에다가 찍는 음울한 좀비 영화와 기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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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말이 있다. 미하일 롬(Mikhail Romm) 감독의 1962년작 '1년의 9일(Nine Days in One Year)'은 수포자가 아니라 '물포자(물리 포기자)'가 보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은 핵물리학자로 그의 주변 인물들도 물리학자들이다. 그들은 결혼식 연회장에서도 중수소의 양과 우주 여행을 주제로 냅킨에 계산까지 해가며 불꽃 튀기는 논쟁을 벌인다. 영화는 과학 연구에 자신의 삶을 내던진 젊은 과학자 구제프의 1년, 그 가운데 9일 보여준다. 그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진 기간이 아니라, 구제프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날들만을 뽑은 것이다. 미하일 롬은 냉전 시대를 살아가는 핵물리학자의 눈을 통해 과학과 인간의 관계, 과학적 발견과 윤리의 문제를 다룬다.

  핵 융합 연구소 연구원인 구제프는 스승 신초프와 함께 실험을 하다 방사능에 피폭되는 사고를 겪는다(1일). 치사량의 방사능에 피폭된 스승은 사망하고, 구제프도 더이상의 피폭은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는다(2일). 그럼에도 그는 연구에의 열정을 멈출 수가 없다. 구제프와 친구 쿨리코프 사이에서 갈등하던 롤리야는 구제프와 결혼한다(3일). 그러나 일상의 모든 것을 연구에만 쏟는 구제프의 모습에 롤리야는 소외감을 느낀다(4일). 연구에 매진하던 구제프는 마침내 중성자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지만(5일), 그것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아서 연구는 답보 상태에 빠진다(6일). 구제프는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아 아버지를 만난다(7일). 실험 과정에서 또 다시 피폭을 겪은 그는 병이 심해지며(8일),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그는 골수 이식 수술을 기다린다(9일).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나는데, 그렇게 구제프의 인생에서 힘겨웠던 1년의 시간을 돌아본다.

  1960년대 소련이 이룬 과학적 발전은 눈부셨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은 최초의 우주인으로 지구 궤도 비행에 성공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군비 경쟁 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도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1년의 9일'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과학자의 삶을 확대해서 보여준다. 구제프는 학자로서 매우 금욕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하일 롬은 연구소와 구제프의 집을 매우 미니멀리즘적인 세트로 구성했다. 연구소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장소는 연구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지하 통로이다. 복잡한 전선줄이 얽혀있는 어두운 지하 복도는 연구원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연구의 진행 상황을 논의하는 곳이기도 하다. 과학이라는 신성한 사원을 지키는 사제들처럼 연구원들은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 연구소의 분위기는 구제프의 신혼집 살림살이에서도 볼 수 있다. 가스 스토브와 식탁, 찬장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부엌, 다른 가구가 없는 침실은 정감있는 집이 아니라, 숙식을 해결하는 하숙집 같다는 느낌을 준다.

  구제프는 자신의 연구가 핵폭탄과 같은 대량 살상 무기가 아니라 원자력 에너지로 쓰일 거라는 긍정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연구에 매진할수록 아내를 비롯해 주변과 단절된다. 그의 아버지 또한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구제프에게 중성자 연구가 핵폭탄 제조에 쓰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구제프도 자신의 연구가 가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는 과학자로서 자신이 해야할 임무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구제프와 상반되는 지점에 서있는 회의론자 쿨리코프는 이전의 과학 발전이 전쟁 무기 개발(독가스와 원자 폭탄)과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흐루시초프의 '해빙기(Thaw era)'에 만들어진 영화로서 '1년의 9일'은 나름의 균형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미하일 롬은 과학 연구에 헌신하는 구제프의 모습을 과학자의 순수한 이상으로 상정한다. 연구소 동료들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들도 물리학적 주제들로 그들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제프의 과학에 대한 열정은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걸게 만든다. 그는 피폭으로 쇠약해져서 수술대에 오른다. 개를 대상으로 치료 성과가 입증된 것이어서, 그가 수술을 해도 산다는 보장은 없다. 영화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숭고한 과학자에게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해빙기'라고 해서 검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본에서는 피폭으로 실명한 구제프가 어머니의 묘를 참배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 장면은 삭제되었다. 어쨌든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인민들에게 희망에 찬 결론을 보여주는 쪽을 선호했다.

  이 영화를 만들 무렵, 미하일 롬은 이미 지난 시대의 구세대 감독으로 기억되었다. 그는 VGIK(러시아 국립 영화 학교)에서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젊은 세대의 제자들을 길러내는 교육자로서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러나 롬은 이 영화로 자신이 가진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 번 입증해 보인다. 그가 그린 냉전 시대 과학자의 초상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다소 경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1년의 9일'은 독특한 소재로 그가 살던 시대의 과학적 진보에 대한 믿음, 인류애를 가진 과학자들의 열정, 국가 주도의 과학 연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사진 출처: ru.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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