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형편없는(lousy) 결정이야!" 


  마리의 부모는 모두 농인()이다. 정상으로 태어난 마리는 결혼을 했는데, 자신의 아기가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어치료사인 마리는 새로운 치료 방법인 인공와우 수술을 자신의 아들에게 해주려고 한다. 그런 마리의 결정을 부모는 이해하지 못한다. 인공와우 수술은 위험하며 그 결정이 형편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수술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마리의 뜻은 단호하다. 남편 크리스도 마리의 결정에 찬성한다.


  크리스에게는 농인인 형이 있다. 형 피터는 농인인 부인 니타와의 사이에서 아이 셋을 두었는데, 아이들 모두 농아다. 이제 5살이 된 첫째 딸 헤더의 인공 와우 수술 여부를 두고 피터와 니타 부부도 고심한다. 피터의 부모는 손녀 헤더의 미래를 위해서 수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터와 니타는 인공 와우 수술이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며 내켜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피터는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 과연 헤더는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조쉬 애런슨 감독이 2000년에 만든 다큐 'Sound and Fury'는 인공 와우 수술을 두고 농인 가정에 일어난 갈등과 대립을 담아낸다. 당시의 미국에서 인공 와우 수술은 청각 장애에 대한 새로운 치료 방법으로 막 저변을 넓혀가던 시기였다. 다큐를 보면 그 신기술을 두고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의견이 양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공 와우를 귀에 삽입하는 침습적 수술 방식에 농인들은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낀다. 피터와 크리스 형제 가족들에게 닥친 갈등과 대립의 시작도 바로 그 수술 때문이었다.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피터와 니타 부부는 헤더에게 수술이 필요없다고 마음을 굳힌다.


  "그건 네가 해야할 결정이 아냐. 헤더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구!"


  헤더의 할머니는 그렇게 외친다. 그러나 피터의 뜻은 확고하다. 딸의 미래를 위해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부모인 자신이며, 자신의 결정은 수술을 해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내 니타도 피터와 뜻이 같다. 농인의 정체성을 가지고도,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부부에게는 가족의 화합도 중요하다. 헤더가 들을 수 있게 되면 듣지 못하는 자신들에게서 멀어질 것이라며 염려한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을 이 다큐에 나오는 피터와 니타 부부만큼 잘 보여주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동생 크리스 부부의 결정을 비난하고, 헤더의 조부모와도 극렬히 대립한다. 아이의 인공 와우 수술 문제를 두고, 이 가족은 극심한 분노와 논쟁에 휩싸인다. 


  아니, 듣지 못하는 딸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수술을 해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지금 시점에서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아르티니안 가족에게 불어닥친 분노와 갈등의 광풍(fury)을 보는 것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공 와우 수술이 지금은 표준적 치료 방법이 되었지만, 이 다큐가 만들어진 20년 전에는 획기적인 신기술로 그에 대해 의구심과 불안이 팽배했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아이의 수술 결정을 두고 벌어지는 가족 갈등은 정상인과 농인의 현실 인식,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 내부의 갈등과도 같은 여러 층위의 요인들이 겹쳐 있다. 


  "몸 속에 그런 이상한 기계를 집어넣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새로운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피터와 니타 부부는 헤더에게 수술이 필요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헤더의 할머니는 헤더에게 수술을 해주지 않기로 결정한 아들 내외를 인정할 수 없다. 맹렬히 대립하며 극심한 논쟁을 이어가던 끝에 피터는 결국 '분리'를 택한다. 피터 부부는 살던 뉴욕을 떠나 메릴랜드로 이사해 버린다. 헤더는 농아 학교에 다니게 하고, 부부는 가족과 단절된 채 그곳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다큐는 그렇게 끝나버린다. 정말 딸에게 수술 안해주고 살게 할 건가? 피터와 니타 부부의 그 완고하기 짝이 없는 믿음과 결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와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본질적으로 그들 부부는 아이가 들을 수 있게 되면 가족과 멀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아이에게 수술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보다는, 정체성의 혼란과 완벽한 정상인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그들 부부가 못 배운 사람도 결코 아니다. 좋은 교육을 받았고, 중산층으로서 여유있는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과연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할 때, 부모가 취해야할 최선의 태도는 무엇일까? 'Sound and Fury'는 청각 장애인 부모가 아이의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거기에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여러 복잡한 요인이 개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가 자신의 살아온 경험과 가치관에만 의지할 때 얼마나 편협하며 무모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피터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려 있는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숙고하는 자세임에도 그 부부는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헤더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다.


  헤더는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감독 조쉬 애런슨은 사람들로부터 이 가족의 후일담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Sound and Fury: 6 Years later(2006)'를 만들었다. 헤더는 다큐가 나온 이후 3년 뒤인 9살 때에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았다. 피터와 니타 부부는 수술을 받고 싶다는 헤더의 뜻을 받아들였고, 결국 마음을 바꿨다. 2006년에 만든 다큐에서 중학생이 된 헤더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 속에 새롭게 적응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술로 변화된 딸을 보며 니타도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았다. 그들 가족은 수술을 두고 벌였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봉합했다.


  헤더는 이후 조지타운 대학과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재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경력을 쌓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큐 'Sound and Fury'는 청각 장애인 가족에게 일어난 갈등의 여정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가치관과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가져올 수 있는 결정의 파장을 들여다 본다. 결국에는 소통과 이해가 분쟁을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사진 출처: aronsonfilms.com 

 


*내일은 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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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넓은 천지 사방에, 내 짝은 어디있는가

   님이여, 나의 사랑이 되어주시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양치기로 산에서만 살아온 타를로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전통 가요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외로운 이가 간절히 연인을 찾으며 부르는 노래. 그는 누가 자신의 이름을 지어주었는지도, 또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이 돌보는 양떼들에 관한 것이 전부다. 양들의 색깔부터 시작해서 새끼 양은 몇 마리인지, 새끼를 가진 암양은 얼마나 되는지 타를로는 그 모두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산다.


  티베트 출신의 감독 페마 체덴의 2015년작 '塔洛(Tharlo)'는 순박한 양치기 타를로에게 닥친 비극을 담아낸다. 어느 날 그는 경찰서장에게서 신분증을 만들라는 권유를 받고, 신분증에 필요한 사진을 찍기 위해 읍내의 사진관에 들른다. 사진사는 타를로의 헝클어진 땋은 머리를 보더니, 외모를 좀 단정하게 하고 오라고 이른다. 사진관 건너편에 있는 미용실에 들른 타를로. 젊고 매력적인 미용사 양츠오는 타를로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 본다. 남자가 자신이 돌보는 양들 가운데 100마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자 여자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이내 타를로는 양츠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2011년작 'Old Dog'의 마지막 부분에서 티베트 사람들에게 닥친 비관적 미래를 명징하게 보여주었던 페마 체덴은 'Tharlo'에서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나이도 모르고 신분증 없이도 양치기로 잘 살아왔던 타를로는 신분증 사진 한 장을 찍으려다 예기치 않은 비극 속으로 발을 디딘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읍내 미용실에서 어떻게든 대도시로 떠날 궁리만 하는 여자에게 타를로는 쉬운 먹잇감이나 다름없다. 순박한 타를로에게 양떼를 팔아 베이징이든 어디든 여길 떠나서 같이 살자고 유혹한다. 그때쯤, 관객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영화 'Tharlo'는 티베트에 불어닥친 개발의 바람과 변화된 모습을 마치 영상 보고서처럼 보여준다. 타를로가 들른 사진관에서는 먼저 온 신혼 부부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 뒤에는 티벳 전통 사찰 사진이 배경막으로 드리워져 있다. 그것을 걷어내고 찍는 다음 사진의 배경막은 베이징의 천안문(마오쩌둥의 사진이 있는)이다. 마지막 배경은 뉴욕이다. 그 부분에 이르면 사진사는 부부에게 전통 의상이 어울리지 않으니 준비된 양복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한다. 부부는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사진사의 요구에 따른다. 마침내 옷을 갈아입고 뉴욕의 배경막 앞에 앉은 부부의 표정은 어색하고 긴장되어 있다. 그때 타를로는 어미 잃은 새끼 양을 작은 가방에 넣어서 데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새끼 양을 안고 찍어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흔쾌히 그렇게 한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양장을 한 신혼 부부는 어린 양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는 사진을 찍는다. 비로소 그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그 사진관 장면에서 페마 체덴은 변화하는 티베트의 모습을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재현한다. 그가 보는 티베트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의 내면은 아직까지 전통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신혼 부부가 어린 양을 품에 안았을 때 보여주는 편안한 표정이 그러하다. 그들의 근원은 너른 들판과 산에서 양들과 함께 하는 유목 생활에 있었다. 타를로가 반한 미용사 양츠오도 짧은 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양을 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유목민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타를로는 티베트에서 그렇게 사라져가는 직업을 가졌다. 오직 양떼만 알던 타를로는 양츠오와의 만남을 통해 가라오케와 멘솔 담배의 맛을 알게 된다. 남아있는 마지막 전통과 급작스럽게 조우한 새로운 문물이 가져올 결과가 파국일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페마 체덴의 롱테이크 사랑은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첫 장면의 롱테이크는 무려 12분이다. 경찰서에서 자신의 암기 실력을 뽐내는 타를로는 1949년에 했던 마오쩌둥의 연설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암송해 보인다. 그 도입부에 뭔가 좀 뜨악한 기분이 드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티베트인 최초로 북경 전영 학원을 졸업한 영화 감독이라고 하더니, 저렇게 친정부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나 오해할 수도 있다. 페마 체덴이 'Tharlo'의 첫 장면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도하는 것인지 짐작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어쨌든 그도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티베트 출신 영화인으로서 생존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치적으로 영합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그는 2016년에 베이징 공항에서 공안에 체포된 이력이 있는데, 그때의 죄목은 사회불안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은 페마 체덴의 영화 작업이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꽤나 껄끄럽게 느껴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타를로는 양떼를 다 팔아버리고 얻은 돈을 양츠오에게 건넨다. 늘 혼자서 부르던 세레나데를 마침내 들려줄 연인을 찾았다 믿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타를로의 기대는 가차없이 배반당한다. 여자는 돈을 가지고 달아나고, 타를로는 낡은 오토바이를 끌고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오토바이가 고장난다. 하는 수 없이 힘겹게 오토바이를 끌고 가다 설산 앞에 멈춰선 타를로는 더이상 자신에게 양떼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그에게는 오랫동안 길러온 땋은 머리도 없다. 양츠오가 새출발을 해야한다며 타를로의 머리를 다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머리의, 고장난 오토바이에 앉아 있는 망연자실한 타를로의 모습은 전통과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티베트의 현실을 상징한다. 페마 체덴이 그려낸 티베트의 영상사회학적 보고서인 셈이다. 'Old Dog'에서 암시한 불모의 미래는 그렇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영화적 은유가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그리 달가울 리가 없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끊김 없이 술술 마오쩌둥의 연설을 암송했던 타를로는 사건 신고를 하려고 들른 경찰서에서 서장의 요구로 다시 한번 암송을 해보인다. 그러나 그는 더듬거리면서 중간에 멈춘다. 민머리가 된 후에 그는 마치 혼이 나가버린 사람 같다. 내적으로는 중국에 동화되어가고 있고, 외적으로는 서구 문물에 정신없이 물들어가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 페마 체덴은 순박한 양치기 타를로에게 닥친 비극을 통해 티베트의 암담한 미래를 펼쳐놓는다. 그 미래를 상상하는 관객들은 티베트인이 아니더라도 폐부를 찌르는 고통과 마주한다. 자신(身)을 잃어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사진 출처: 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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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티 해리(Dirty Harry, 1971)'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니 무슨 형사가 악당보다 더 잔혹하고 무법자처럼 구는가, 참 낯선 형사 캐릭터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 형사를 연기한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같은 해에 제작된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에서 진 해크먼이 연기한 마약반 형사도 역시 남다른 형사 캐릭터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범죄자를 단호하게 응징하는 열혈 형사, 때론 선 넘는 폭력도 휘두르는 그런 형사의 모습은 새롭기까지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The Gauntlet(1977)'에서 그는 또 다시 형사로 나온다. 별 볼 일 없는 형사로 술에 절어 사는 벤 쇼클리는 어느 날 경찰 국장의 부름을 받는다. 라스베가스로 가서 '거스 몰리'라는 증인을 피닉시 시까지 호송해 오라는 임무가 쇼클리에게 주어진다. 남자인 줄 알았던 증인의 직업은 창녀, 매춘 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다. 몰리는 한사코 가기를 거부하면서, 가는 도중에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경찰서를 떠나는 순간부터 이 두 사람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이어진다. 호송차가 폭발하는가 하면, 잠깐 들른 몰리의 집은 경찰의 총격으로 벌집이 되다 못해 무너져 내린다. 도대체 몰리는 무슨 사건에 연루되었길래 이렇게 다들 죽이려고 난리인가, 쇼클리는 수상한 냄새를 맡는다.


  이 영화,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액션과 그야말로 '찐' 마초 캐릭터 형사의 종횡무진 활약이 돋보이는 숨겨진 명작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런 영화에서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영화에서라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범벅을 만들어 놓았을 화면을 '진짜' 액션으로 꽉꽉 채워넣는다. 몰리의 집이 총격으로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당시로서는 25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쏟아부었고, 세트로 만든 집에 7000군데나 드릴을 뚫어놓았다. 그런가 하면 몰리와 쇼클리가 애리조나 사막에서 헬리콥터 저격수에서 쫓기는 장면에서는 '리얼' 헬리콥터가 전선줄에 엉켜서 폭발한다(특수 제작된 헬기로 엔진이 없긴 하지만). 그리고 이 영화의 대미(尾)를 장식하는 버스 총격전에는 총알 8000발에 버금가는 폭파 장치가 사용되었다. 영화 제작비 550만 달러 가운데 무려 백만 달러가 영화 속 갖가지 액션 장면 연출에 쓰였다. 정말 제값하는 폭파, 총격 장면들은 관객들의 기대를 충실히 따라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벤 쇼클리 형사는 '잔말 말고 나만 믿고 따라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폭주족한테 오토바이 뺏어서 사막 질주하고, 버스 탈취해서 죽기살기로 총격전을 막아내고, 결국엔 증인 호송에 성공한다. 'The Gauntlet'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흥행 감독으로서의 충분한 재능이 있음을 제작자와 관객들에게 강력하게 입증한다. 이 영화를 보는 이라면 누구나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총잡이로 시작한 신인이 어느새 헐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영화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간다. 그러나 배우와 감독으로서 쌓은 눈부신 명성에 가려진 그의 사생활과 인간성은 그렇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 몰리 역을 맡은 산드라 록(Sondra Locke)은 1975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동거 관계를 유지했다. 말이 동거였지, 거의 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영화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이기도 했다. 산드라는 재능있는 배우로서 연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골수 마초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산드라가 연출로 발판을 넓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영화 경력에 방해가 된다면서 아이 갖는 것도 거부했다(산드라는 두 번 임신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이를 원치 않았다).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 관계는 급기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산드라를 집에서 내쫓는 결말에 이르렀다. 산드라는 동거인으로서 위자료 소송을 냈고, 결국 합의금을 받기는 했으나 그 이후 산드라의 영화 경력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럽게 끝난 소송전, 그리고 산드라와 동거 기간 중에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면서 비밀리에 아이도 얻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 뻔뻔함을 어디에 빗댈 수 있을까? 산드라는 나중에 자서전을 냈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사악하기 그지 없으며, 자신을 착취한 거짓말쟁이'라고 맹비난을 퍼붓었다. 물론 이스트우드는 변호사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그뿐 아니라 자서전이 나오지 못하게 방해했다. 이 나쁜 남자의 뒤끝은 그토록 지저분하고 역겨웠다.


  'The Gauntlet'에서 산드라가 연기한 몰리는 창녀이지만 나름대로 명석하고, 순수한 면모도 가지고 있다. 호송차 안에서 자신을 모욕하는 경찰을 말로써 농락하는 깡다구도 있는 여성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쇼클리와 몰리는 실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초 형사 쇼클리를 사랑하게 된 몰리가 결국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하고 청혼까지 한다. 산드라 로크도 지독한 사랑 때문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얽매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허구와 현실을 오간다. 나쁜 남자와 함께 사막을 건너는 목숨 건 여정을 했던 몰리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다. 그러나 현실의 산드라 로크는 그 긴 여정 끝에 망가지고 잊혀졌다. 생의 마지막은 암투병으로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영화의 제목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형벌에서 따온 것이다. 벌을 받는 사람이 양쪽으로 도열한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곤봉이나 채찍, 창과 같은 무기로 얻어맞는 형벌을 'Gauntlet'이라고 한다. 영화 마지막에 쇼클리는 탈취한 버스로 피닉스 시내에 진입한다. 그때 도로 양쪽에 깔린 경찰들의 총격이 그 Gauntlet 형벌처럼 이루어진다. 그 죽음의 도로를 뚫고 나쁜 남자 쇼클리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어쩌면 그 장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경력이 앞으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날아올랐지만, 그때 그의 옆에 있었던 여자는 추락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쁜 남자와 사막을 건너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여배우의 비극을 떠올린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제리 필딩의 재즈 음악이 아주 좋다. 도입부, 중간 중간의 액션 장면, 결말 부분의 재즈 선율을 놓치는 관객은 드물 것이다. 

**사진 출처: movierambling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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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영화들은 보고 있노라면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다소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 보는 이의 내면을 건드리기 때문인데,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 어떤 의미로든 허탈함과 비애감을 느끼게 된다. 꾸창웨이 감독의 2005년작 공작(孔雀, Peacock)은 문화 대혁명이 끝나가던 무렵, 1970년대 어느 소도시에 살던 일가족의 삶을 펼쳐놓는다. 아직 문혁의 정치적 여진이 남아있는 어수선하고 침체된 시대적 분위기는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나 꾸창웨이 감독은 최대한 정치적인 색채를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인물들의 이야기와 정서에 집중한다.


  평범한 소시민 부부에게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서사가 진행되는데, 맨 처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딸 웨이홍이다. 동네에 잠시 주둔한 낙하산 부대를 보며 새로운 인생을 꿈꾸던 웨이홍은 지원서를 내지만 탈락한다. 웨이홍은 크게 상심하지만, 지긋지긋하고 괴로운 삶의 출구는 도무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동네 제약회사에서 약병이나 닦으며 사는 것은 견디기 힘든 모멸감만을 안길 뿐이다. 결국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해서 탈출구를 찾는다. 


  두번째 이야기는 바보형 맏이 웨이구오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이런 방식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 1950)'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되며 커다란 그림을 향해 나아간다. 다소 떨어지는 지능과 비만한 체구 때문에 남들에게 놀림받고 얻어맞는 그의 삶도 결코 녹록지 않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들마다 크고 작은 사고를 쳐서 그만두게 된다. 웨이구오는 엄마가 맺어준 다리 저는 아가씨와 결혼해서 포장마차로 그럭저럭 먹고 살아간다.


  마지막 이야기는 막내의 몫이다. 웨이창은 바보형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 신세로 괴롭게 지내다 쥐약을 타서 형을 죽일 생각까지 하게 된다. 늘 형만 감싸고 도는 부모에 대한 불만으로 학교를 때려치우고 가출해버린 후 가족과는 연락을 끊은 웨이창. 오랜 시간이 흘러서 손가락 하나를 잃고, 애 딸린 여자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는 이혼한 누나가 부모와 지내고 있다.


  이 영화는 원래 4시간 분량이었던 것을 극장판으로 편집하면서 2시간 25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이야기가 중간 중간에 약간씩 비어있다는 느낌을 준다. 딸 웨이홍이 낙하산 부대에 지원했다 떨어진 후에, 직접 만든 엉성한 낙하산을 자전거에 매달고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웨이홍이 낙하산을 재봉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볼 수 없다. 인물들이 들려주어야할 긴 이야기들이 그렇게 잘려나가다 보니, 영화는 마치 레코드 판에서 갑자기 튀는 부분처럼 툭툭 끊긴다. 어떤 면에서는 세 남매가 마주한 막다른 삶의 골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공작'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열렬히 소망하고 갖고 싶어했던 것들, 사랑도 일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매번 만나는 닫힌 삶의 문 앞에서 대충 타협하며 돌아서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영화의 마지막에 세 남매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동물원 나들이를 한다. 그들은 공작새 우리를 지나가면서 공작의 화려한 날개를 보길 기대하며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공작새는 그들에게 날개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화면에서 모두 사라진 후에 비로소 공작은 찬란한 빛깔의 날개를 천천히 펼쳐 보여준다. 


  상처입고 접혀진 어떤 날개들은 결코 펼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다. 가진 야망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거듭 좌절하는 웨이홍, 어딜 가나 바보 취급에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버겁기만 한 첫째 웨이구오, 바보형에 대한 수치심으로 삶 자체가 어그러져서 되는대로 사는 막내 웨이창, 그들 삼 남매가 가졌던 꿈의 날개들은 그렇게 세월 속에서 부러져 접힌 상태이다. 그들이 결코 볼 수 없었던 공작새의 날개처럼 삶의 아름다운 빛깔을 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이들 또한 자신이 지나온 삶에서 그렇게 펼쳐지지 않은 날개들을 발견한다.  


  장예모,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에서 촬영을 담당했던 꾸창웨이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인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연출자로서 인물들의 감정을 충실히 끌어내는 역량이 돋보였을 뿐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좋았다. 영화에서 둘째 웨이홍 역을 맡은 장징추의 연기는 신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있고 노련하다. 무려 1000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뽑힌 이 여배우는 '공작'으로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더하여, 작곡가 도우 펭이 담당한 영화의 음악은 비감하면서도 아름다워서 영화와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사진 출처: moviedoub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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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 EBS 클래스 e에서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의 '사람의 기원' 강의를 들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은 아니고, 4강부터 들었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유익한 강의였다.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고인류학적인 지식을 업데이트하는 계기였다고나 할까, 이상희 교수는 그 분야의 새로운 연구결과를 찬찬히 일러준다. 그런데 강의를 도와주는 보조 도구는 호미닌 화석들이 전부였다. 뭔가 자료 화면으로 한번에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나 그런 것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게 된 다큐가 NHK에서 제작한 'Out of the Cradle; The Origins of Humanity(2018)'이다. 


  러닝 타임이 2시간 가량인데,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한 화면과 아주 섬세하게 재연된 초기 인류의 사냥과 생활 모습들이 흥미있게 펼쳐진다. 이런 다큐들은 보다보면 그렇다. 정말 돈이 꽤나 드는 다큐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텐데 제작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다. 아무튼 이 다큐는 지금 시점에서 고인류학의 최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멋지게 포장된 상자에서 선물꺼내듯이 풀어놓는다.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사람 속(Homo)의 유일한 종으로 살아남았지만, 호미닌(Hominin, 이족 보행 영장류)에는 20여 종이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440만년 전에 살았던 '라미두스(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 화석으로 밝혀진 최초의 이족 보행 영장류로 여겨지는데, 라미두스에서 발 모양이 진화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이어진다. 그 이후에 등장하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도구를 제작하고 육식을 하기 시작한다. 거기에서 나온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본격적인 사냥꾼의 면모를 보이며, 그들은 육식을 통해 커진 뇌와 작은 소화기관을 택함으로써 인류 진화의 신기원을 마련한다.


  다큐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에 대해서도 아주 비중있게 다룬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보다 더 큰 뇌용량과 상대적으로 큰 체구를 가졌음에도 결국 소멸에 이른 네안데르탈인의 삶의 모습이 생생한 화면으로 펼쳐진다. 그들의 사냥 장면을 보면 네안데르탈인들이 정교한 도구 대신 육탄전으로 사냥감에 맞선 소모적인 방식이 멸종에 이른 원인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극심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졌지만, 그들의 유전자는 오늘날의 인류 안에 남아있다.


  그런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현생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도구'였다. 정교하고 다양한 도구를 제작함으로써 인류는 지구 여러 곳으로 퍼져서 살 수 있었고, '인간다움'의 여러 요소를 획득해 나가게 된다. 다큐에서는 그런 도구들과 관련해서 실제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극지방에서 발견된 뼈바늘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뼈바늘은 추위를 막기 위한 털옷 제작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다. 초기 인류가 극한의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하고 생존해나간 비결은 결국 '창의성'이었다.


  라미두스가 두 발로 아프리카 초원을 처음 밟기 시작한 이후로 호미닌들에게 아프리카 대륙은 안온한 요람과 같은 곳이었다. 극심한 기후변화로 사막화되어가는 그곳을 떠나 낯선 대륙으로 향해야 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해변가에서 그 요람과 작별을 고했을 것이다. 그들이 두려움과 설렘, 희망과 불안을 안고서 바다를 바라보는 다큐에서의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이 다큐는 인류 조상들의 삶을 복원해내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때론 이런 과학 다큐를 통해서도 깊이있게 성찰해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docuwik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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